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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대운문

밤바다에서 - 박재삼

by 열공햐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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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 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질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천하에 많은 할 말이, 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 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밤바다에서 - 박재삼

 

*질정(質定) 갈피를 잡아서 분명하게 정함.

 

시 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전통적, 낭만적, 회고적, 애상적

어조 : 심리적 상처를 달래는 듯한 어조

특징

  ① 전통적인 한() 정서를 세련되게 노래하고 있다.

  ② 시적 대상에 흐르는 빛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③ 비유법을 구사하여 화자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④ ‘-‘-로 끝나는 어미의 당위성을 드러내고 있다.

구성

  - 1: 누이의 슬픔을 함께 할 수 없는 자아가 바다로 나감.

  - 2: 바다에 나간 자아의 아픈 숨소리와 슬픔

  - 3: 오누이의 인간적 합일

제재 : 밤바다

주제 : 그리움에 정한

출전 : <현대문학>(1957)

 

 

 

박재삼(朴在森, 1933년 4월 10일 ~ 1997년 6월 8일)

  1933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나 삼천포에서 자랐다. 삼천포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 사환으로 들어가 일했는데, 이곳에서 교사이던 시조시인 김상옥을 만나 시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그 뒤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 중퇴하였다.

 

  1953 [문예]에 시조 <강가에서>를 추천받았고, 1955 [현대문학]에 시 <섭리>, <정적> 등이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19551964년 월간 현대문학사 기자를 거쳐 19651968년 대한일보 기자, 19691972년 삼성출판사 편집부장 등을 지냈다.

 

  시인은 개인적인 추억과 생활 주변의 체험을 비애어린 서정적 감각으로 엮었으며, 시에 '운다'(동사) '눈물'(명사)이란 시어가 많이 등장한다. 그의 시는 가난과 설움에서 우러나온 정서를 아름답게 다듬은 언어 속에 담고, 전통적 가락에 향토적 서정과 서민생활의 고단함을 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정주 시인은 박재삼 시인을 일컬어 한()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시인이라 하였다. 평생을 자유롭게 살았던 시인은 가혹한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고, 임종시까지 고혈압, 뇌졸중, 위궤양 등으로 투병하였다.

 

  현대문학신인상, 문교부 문예상, 인촌상, 한국시협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평화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조연현문학상, 6회 올해의 애서가상(1996) 등을 수상하였고, 은관문화훈장(1997)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춘향이 마음>, <천년의 바람>, <뜨거운 달>, 수필집 <아름다운 삶의 무늬>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정한(情恨)의 정서를 애잔한 가락과 섬세한 언어로 노래함으로써 우리 시의 전통적 서정을 가장 가까이 계승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재삼의 대표작이다.

 

  그의 시에는 남해안 삼천포에서 성장한 소년 시절을 소재로 한 회상조의 작품이 많은데, 이 시 역시 '소년 시절로의 회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에서 '누님' 한국 여인을 표상하고 있으며, 누이의 말 못하는 슬픈 사연이 화자의 여린 가슴에 여인의 한(恨)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러나 나이 어린 화자는 슬픔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고, 밤바다로 뛰어나가며 소리 죽여 흐느낀다. 그러므로 누이의 슬픔과 화자의 울음두 남매의 혈연적 아픔으로 동질화(同質化)되어 나타난다.

 

  누이의 슬픔을 함께 할 수 없는 어린 화자는 고샅길을 지나 밤바다에 나가 서서 눈물 흘리며, 달빛에 반짝이는 파도를 바라보고는 누이의 아픔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이나 밤새도록 소리내 우는 파도처럼 찬란해지고 더욱 아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이의 아픔이 소진하여 그 아픔이 아픔으로 극복될 때라야 비로소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결국 두 사람은 결구에서 각각 '섬''물결'로 비유됨으로써 누이가 섬이 되어 잠들 때, 화자는 섬에 와 부딪치며 우는 물결이 되는, 아름다운 인간적 합일을 이루며 시적 안정과 표현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

 

  감각적이면서 섬세한 시어로 명징(明澄)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이 시는 산문체 형식이면서도 박재삼만의 독특한 가락과 효과적인 점층법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적 정한(情恨)을 짙게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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