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전문

박태원 '천변풍경' 전문 일부

열공햐 2021. 1. 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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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풍경

박태원

 

 이발소의 귀여운 소년 재봉이는,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이를테면 시골뜨기인 창수와 같은 아이가, 종로 구락부에서 놀고 지내며 달에 십 원씩이나 월급을 받는 것에도 이제는 이미 그다지 유혹을 느끼지는 않고, 젊은 이발사 김 서방과 밤낮 쌈을 하면서도 좀처럼 그곳을 떠나지는 않았다. 칼라 머리는 아직 만지지를 못하지만, 막깍는 것은 기계 놀리는 솜씨도 익숙하였고, 면도질은 또 아주 선수여서, 이제 얼마 안 가서 이발사 시험에 어렵지 않게 합격되리라는 것은 이 집 주인의 의 말이다.

 

 어느 날, 그는 개천가에서 동네 아이들이 난데없이 “아하하하.” 웃고 떠드는 소리에 놀라, 부리나케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개천 속을 들여다보는 아이들 둥 뒤에 가 포목전 주인이 맨머리 바람에 임바네쓰를 두르고, 같이 아래를 굽어보는 것이 눈에 띄자, 그는 곧 신기하게 눈을 깜박거리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렇게도 그가 벼르고 기다리던 포목전 주인의 중산모가 끝끝내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것이다. 그 불운한 중산모는 하필 골르디 골라, 새벽에 살얼음이 얼었다가 마악 풀린 개천물 속에 가 빠졌다.

 상판대기에 불에다 덴 자국이 있는 깍정이놈이 다리 밑에서 뛰어나와 얼른 건졌으나, 시꺼먼 똥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코에다 갖다 대 보지 않더라도 우선 냄새가 대단할 듯 싶다.

 포목전 주인은 잠깐 망살거리는 모양이었으나, 마침내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 그 사이에 모여든 구경꾼들과 눈이 마주치자 순간에 얼굴을 붉히고, 다음에 손상된 위신을 회복하려고 엄숙한 표정으로, 연래 애용하여 오던 모자를 개천 속에 남겨 둔 채, 큰기침과 함께, 그는 그 자리를 떠나 자택으로 향하였다.

 “예, 얘, 너 봤니? 으떡해서 떨어졌니? 응? 바람이 불었니?”

 재봉이는 중산모가 그의 머리에서 굴러 떨어지는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것이 아무래도 유감이었다.

 “인석아, 늬가 그렇게 밤낮 축수를 허드니, 그으예 그 어른이 모자 하나 버리구 말았구나.”

 점룡이 어머니가 바로 등 뒤에 와서 늘어놓았다. 그리고 다음은 혼잣말로,

 “지성이면 감천이지. 헌데 빌어먹을 내 계는 왜 그리 죽어라구 안 빠지누?”

 그는 그 계통 안에서 ‘돌다가’ 돌다가‘ 결코 빠지지 않는 곗돈을 내러, 오늘도 수표교를 향하여 가는 길이다.

 천변에 구경꾼들은 얼마 동안 좀처럼 흩어지지 않았다. 중산모를 삐두스름이 슨 깍정이 녀석이 바루 흥에 겨워 ‘채플린’ 흉내를 내고 있는 꼴이 제법 흥미 깊었던 까닭이다.

 입춘이 내일 모레래서, 그렇게 생각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대낮의 햇살이 바루 따뜻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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