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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수오재기(守吾齋記)' 전문

열공햐 2024. 6. 28.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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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재기(守吾齋記)

 

 

정약용

 

  수오재(守吾齋), 즉 '나를 지키는 집'은 큰형님이 자신의 서재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 그 이름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며, "나와 단단히 맺어져 서로 떠날 수 없기로는 '나'보다 더한 게 없다. 비록 지키지 않는다 한들 '나'가 어디로 갈 것인가.이상한 이름이다."라고 생각했다. 

  장기로 귀양 온 이후 나는 홀로 지내며 생각이 깊어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환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하 만물 중에 지켜야 할 것은 오직 '나'뿐이다. 내 밭을 지고 도망갈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밭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집을 지고 달아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집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동산의 꽃나무와 과실나무들을 뽑아 갈 수 있겠는가? 나무뿌리는 땅속 깊이 박혀 있다. 내 책을 훔쳐 가서 없애 버릴 수 있겠는가? 성현(聖賢)의 경전은 세상에 널리 퍼져 물과 불처럼 흔한데 누가 능히 없앨 수 있겠는가. 내 옷과 양식을 도둑질하여 나를 궁색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천하의 실이모두 내 옷이 될 수 있고, 천하의 곡식이 모두 내 양식이 될 수 있다. 도둑이 비록 훔쳐 간다 한들 하나둘에 불과할 터,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다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천하 만물 중에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유독 이 '나'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며 출입이 무상하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지만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혹하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앙으로 겁을 주면 떠나가며, 질탕한* 음악 소리만 들어도 떠나가고, 미인의 예쁜 얼굴과 요염한 자태만 보아도 떠나간다. 그런데 한번 떠나가면 돌아올 줄 몰라 붙잡아 만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하 만물 중에 잃어버리기 쉬운 것으로는 '나'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니 꽁꽁 묶고 자물쇠로 잠가 '나'를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를 허투루 간수했다가 '나'를 잃은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과거 시험을 좋게 여겨 그 공부에 빠져 있었던 것이 10년이다. 마침내 조정의 벼슬아치가 되어 사모관대에 비단 도포를 입고 백주 도로를 미친 듯 바쁘게 돌아다니며 12년을 보냈다. 그러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친척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한강을 건너고 문경새재를 넘어 아득한 바닷가 대나무 숲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 '나'도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허둥지둥 내 발뒤꿈치를 쫓아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에게 홀려서 왔는가? 바다의신이 불러서 왔는가? 너의 가족과 이웃이

  소내*에 있는데, 어째서 그 본고장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멍하니 꼼짝도 않고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안색을 보니 마치 얽매인 게 있어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듯했다. 그래서 '나'를 붙잡아 함께 머무르게 되었다. 
  이 무렵, 내 둘째 형님* 또한 그 '나'를 잃고 남해의 섬으로 가셨는데, 역시 '나'를 붙잡아 함께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유독 내 큰형님만이 '나'를 잃지 않고 편안하게 수오재에 단정히 앉아 계신다. 본디부터 지키는 바가 있어 '나'를 잃지 않으신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큰형님이 자신의 서재 이름을 '수오'라고 붙이신 까닭일 것이다. 일찍이 큰형님이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의 자(字)를 태현(太玄)*이라고 하셨다. 나는 홀로 나의 태현을 지키려고 서재 이름을 '수오'라고 하였다." 

  이는 그 이름을 지은 뜻을 말씀하신 것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지키는 것이 큰일인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큰일이다."라고 하셨는데, 참되도다, 그 말씀이여! 

  드디어 내 생각을 써서 큰형님께 보여 드리고 수오재의 기문(記文)*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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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수오재(守吾齋), 즉 '나를 지키는 집'은 큰형님이 자신의 서재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 그 이름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며, "나와 단단히 맺어져 서로 떠날 수 없기로는 '나'보다 더한 게 없다. 비록 지키지 않는다 한들 '나'가 어디로 갈 것인가.이상한 이름이다."라고 생각했다. 의문 제기 - 독자의 관심 유도

승  장기로 귀양 온 이후 나는 홀로 지내며 생각이 깊어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환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귀양지에서 성찰의 시간을 보내다가 수오재의 의미를 깨닫게 됨


  천하 만물 중에 지켜야 할 것은 오직 '나'뿐이다. 주장 제시 내 밭을 지고 도망갈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밭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집을 지고 달아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집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동산의 꽃나무와 과실나무들을 뽑아 갈 수 있겠는가? 나무뿌리는 땅속 깊이 박혀 있다. 내 책을 훔쳐 가서 없애 버릴 수 있겠는가? 성현(聖賢)의 경전은 세상에 널리 퍼져 물과 불처럼 흔한데 누가 능히 없앨 수 있겠는가. 내 옷과 양식을 도둑질하여 나를 궁색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천하의 실이모두 내 옷이 될 수 있고, 천하의 곡식이 모두 내 양식이 될 수 있다. 도둑이 비록 훔쳐 간다 한들 하나둘에 불과할 터,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다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천하 만물 중에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은 없다. 주장에 대한 근거,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들과 그 이유


*큰형님 : 정약용의 큰형님은 정약현(1751~1821)이다. 신유박해(1801년 조선 순조 때 있었던 가톨릭교 박해 사건)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지만, 자신과 집안을 잘 지켜 냈다.
*장기 :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면, 정약용은 신유박해 때문에 그해 3월에서 10월까지 장기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성현 : 성인(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길이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과 현인(어질고 총명하여 성인에 다음가는 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

*궁색하다 : 아주 가난하다.


  그러나 유독 이 '나'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며 출입이 무상하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지만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혹하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앙으로 겁을 주면 떠나가며, 질탕한* 음악 소리만 들어도 떠나가고, 미인의 예쁜 얼굴과 요염한 자태만 보아도 떠나간다. 인간의 마은은 유혹이나 위험에 쉽게 흔들림. 열거법, 예시) 그런데 한번 떠나가면 돌아올 줄 몰라 붙잡아 만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하 만물 중에 잃어버리기 쉬운 것으로는 '나'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니 꽁꽁 묶고 자물쇠로 잠가 '나'를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를 허투루 간수했다가 '나'를 잃은 사람이다. 나:현상적, 외면적, 상황과 현실에 따라 수시로 변함, '나' : 본질적, 어떠한 상황,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나. 어렸을 때는 과거 시험을 좋게 여겨 그 공부에 빠져 있었던 것이 10년이다. 마침내 조정의 벼슬아치가 되어 사모관대에 비단 도포를 입고 백주 도로를 미친 듯 바쁘게 돌아다니며 12년을 보냈다. 그러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친척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한강을 건너고 문경새재를 넘어 아득한 바닷가 대나무 숲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 '나'도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허둥지둥 내 발뒤꿈치를 쫓아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말했다. 자아성찰
  "너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에게 홀려서 왔는가? 바다의신이 불러서 왔는가? 너의 가족과 이웃이

  소내*에 있는데, 어째서 그 본고장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자문을 통한 자아성찰
  그러나 '나'는 멍하니 꼼짝도 않고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안색을 보니 마치 얽매인 게 있어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듯했다. 그래서 '나'를 붙잡아 함께 머무르게 되었다. '나'를 되찾음
  이 무렵, 내 둘째 형님* 또한 그 '나'를 잃고 남해의 섬으로 가셨는데, 역시 '나'를 붙잡아 함께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나'를 잃어버렸던 과거 반성
유독 내 큰형님만이 '나'를 잃지 않고 편안하게 수오재에 단정히 앉아 계신다. 본디부터 지키는 바가 있어 '나'를 잃지 않으신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큰형님이 자신의 서재 이름을 '수오'라고 붙이신 까닭일 것이다. 일찍이 큰형님이 말씀하셨다.


*무상하다. : 일정하지않고 변하는 이가 있다.
*질탕하다 : 신이 나서 정도가 지나치도록 흥겹다.

*소내 :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현 마을.

*둘째 형님 : 정약전이다. 신유박해 때 신지도로 유배되었다가 나중에 다시 흑산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서에 <자산어보>가 있다.

 

 

  "아버지께서 나의 자(字)를 태현(太玄)*이라고 하셨다. 나는 홀로 나의 태현을 지키려고 서재 이름을 '수오'라고 하였다." 큰형님이 서재 이름을 '수오'라고 지은 이유

  이는 그 이름을 지은 뜻을 말씀하신 것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지키는 것이 큰일인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큰일이다."라고 하셨는데, 참되도다, 그 말씀이여! 맹자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

  드디어 내 생각을 써서 큰형님께 보여 드리고 수오재의 기문(記文)*으로 삼는다. 글을 쓰게 된 동기, '수오'의 의미를 깨닫고 '수오재기'를 쓰게 됨

 

*태현 : 심오하고 현묘한 이치를 뜻하는 말.

*기문 : 기록한 문서

 

 

 

출처 : 다산의 마음

글쓴이 : 정약용(1762~1836), 조선 후기의 학자, 호는 다산(茶山), 문장가 경학에 뛰어난 학자로,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저서에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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