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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전문

고전소설 '춘향전' 전문 (원문)

by 열공햐 2021.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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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숙종대왕(肅宗大王) 즉위(卽位) 초에 성덕이 넓으시사 성자성손은 계계승승하사 금고옥적은 요순시절이요 의관문물은 우탕의 버금이라. 좌우보필(左右輔弼)은 주석지신이요 용양호위는 간성지장이라. 조정(朝廷)에 흐르는 덕화(德化) 향곡에 퍼졌으니 사해(四海) 굳은 기운이 원근에 어려있다. 충신은 만조하고 효자열녀 가가재라. 미재미재라 우순풍조하니 함포고복 백성들은 처처(處處)에 격양가라.

이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있으되 삼남의 명기로서 일찌기 퇴기하여 성가(成哥)가라 하는 양반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되 연장사순을 당하여 일점 혈육(血肉)이 없이 일로 한이 되어 장탄수심(長嘆愁心)에 병이 되겠구나. 일일은 크게 깨쳐 옛사람을 생각하고 가군을 청입하여 여쭈옵되 공순히 하는 말이

“들으시오. 전생에 무슨 은혜 끼쳤던지 이생에 부부 되어 창기(娼妓) 행실 다 버리고 예모도 숭상하고 여공도 힘썼건만 무슨 죄가 진중(珍重)하여 일점 혈육이 없으니 육친무족 우리 신세 선영향화 누가 하며

사후감장 어이 하리. 명산대찰(名山大刹)에 신공이나 하여 남녀간 낳게 되면 평생 한을 풀 것이니 가군의 뜻이 어떠하오”

성참판 하는 말이

“일생 신세 생각하면 자네 말이 당연하나 빌어서 자식을 낳을진대 무자(無子)할 사람이 있으리오”

하니 월매 대답하되

“천하대성(天下大聖) 공부자도 이구산(尼丘山)에 빌으시고 정나라 정자산은 우형산에 빌어 나계시고 아동방 강산을 이를진대 명산대천이 없을소냐. 경상도 웅천 주천의는 늦도록 자녀 없어 최고봉에 빌었더니 대명천자(大明天子) 나계시사 대명천지(大明天地) 밝았으니 우리도 정성이나 드려 보사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은 나무 꺾일소냐. 이날부터 목욕재계 정히 하고 명산승지(名山勝地) 찾아갈 제 오작교 썩 나서서 좌우산천 둘러보니 서북의 교룡산은 술해방을 막아 있고 동으로는 장림 수풀 깊은 곳에 선원사는 은은히 보이고 남으로는 지리산이 웅장한데 그 가운데 요천수는 일대 장강벽파 되어 동남으로 둘렀으니 별유건곤 여기로다. 청림(靑林)을 더위잡고 산수를 밟아 들어가니 지리산이 여기로다. 반야봉 올라 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명산대천 완연하다. 상봉에 단을 모아 제물을 진설하고 단하에 복지하여 천신만고 빌었더니 산신님의 덕이신지 이때는 오월 오일 갑자라. 한 꿈을 얻으니 서기 반공하고 오채 영롱하더니 일위 선녀 청학을 타고 오는데 머리에 화관(花冠)이요 몸에는 채의(彩衣)로다. 월패 소리 쟁쟁하고 손에는 계화일지를 들고 당에 오르며 거수장읍하고 공순히 여쭈오되

“낙포의 딸이더니 반도 진상 옥경 갔다 광한전에서 적송자 만나 미진정회 하던 차에 시만함이 죄가 되어 상제 대로하사 진토에 내치시매 갈 바를 모르더니 두류산 신령(神靈)께서 부인 댁으로 지시하기로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하며 품으로 달려들 새 학지고성은 장경고라. 학의 소리(에) 놀라 깨니 남가일몽이라. 황홀한 정신을 진정하여 가군과 몽사를 설화하고 천행으로 남자를 낳을가 기다리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十朔)이 당하매 일일은 향기 만실하고 채운이 영롱하더니 혼미 중에 생산하니 일개 옥녀(玉女)를 낳았나니 월매의 일구월심 바라던 마음 남자는 못 낳았으되 잠깐동안 풀리는구나. 그 사랑함은 어찌 다 형언(形言)하리. 이름을 춘향이라 부르면서 장중보옥같이 길러내니 효행(孝行)이 무쌍이요 인자함이 기린이라. 칠팔 세 되매 서책(書冊)에 착미하여 예모 정절을 일삼으니 효행을 일읍이 칭송(치) 아니할 이 없더라.

이때 삼청동(三淸洞) 이한림이라 하는 양반이 있으되 세대명가요 충신의 후예라. 일일은 전하께옵서 충효록(忠孝錄)을 올려 보시고 충효자를 택출하사 자목지관 임용하실 새 이한림으로 과천 현감에 금산 군수 이배하여 남원 부사 제수하시니 이한림이 사은숙배 하직하고 치행차려 남원부에 도임하여 선치민정(善治民情)하니 사방에 일이 없고 방곡의 백성들은 더디 옴을 칭송한다. 강구연월문동요라.

 

시화연풍하고 백성이 효도하니 요순시절이라.

이때는 어느 때뇨. 놀기 좋은 삼춘이라. 호연 비조 뭇 새들은 농초화답 짝을 지어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들어 온갖 춘정 다투는데 남산화발북산홍과 천사만사수양지에(서) 황금조는 벗 부른다. 나무나무 성림하고 두견 접동 다 지나니 일년지가절이라.

이때 사또 자제 이도령이 연광은 이팔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도량은 창해같고 지혜 활달하고 문장은 이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 일일은 방자 불러 말씀하되

“이 골 경처 어디매냐. 시흥춘흥(詩興春興) 도도하니 절승경처 말하여라.”

방자놈 여쭈오되

“글공부 하시는 도련님이 경처 찾아 부질없소.”

이도령 이르는 말이

“너 무식한 말이로다. 자고로 문장재사(文章才士)도 절승강산 구경하기는 풍월작문 근본이라. 신선도 두루 놀아 박람(博覽)하니 어이하여 부당하랴. 사마장경이 남으로 강호에 떠있다 대강(大江)을 거스를 제 광랑성파에 음풍이 노호하여 예로부터 가르치니 천지간 만물지변(萬物之變)이 놀랍고 즐겁고도 고운 것이 글 아닌 게 없느니라. 시중천자 이태백은 채석강에(서) 놀았었고 적벽강 추야월(秋夜月)에 소동파 놀았었고 심양강 명월에 백낙천 놀았었고

보은 속리 문장대에(서) 세조대왕(世祖大王) 놀으셨으니 아니 놀든 못하리라.”

이때 방자 도련님 뜻을 받아 사방 경개 말씀하되

“서울로 이를진대 자문 밖 내달아 칠성암 청련암 세검정과, 평양 연광정 대동루 모란봉, 양양 낙선대, 보은 속리 문장대, 안의 수승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가 어떠한 지 모르오나 전라도로 이를진대 태인 피향정, 무주 한풍루, 전주 한벽루 좋사오나 남원 경처 들어보시오. 동문 밖 나가시면 장림 숲 선원사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시면 관왕묘(關王廟)는 천고 영웅 엄한 위풍 어제 오늘 같사옵고 남문 밖 나가시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 좋사옵고 북문 밖 나가시면 청천삭출 금부용 기벽하여 우뚝 섰으니 기암(奇巖) 둥실 교룡산성 좋사오니 처분대로 가사이다”

도련님 이르는 말씀이

“아! 말로 들어보더라도 광한루 오작교가 경개로다. 구경가자.”

도련님 거동 보소 사또전 들어가서 공순히 여쭈오되

“금일 일기 화난하오니 잠깐 나가 풍월음영 시 운목도 생각하고자 싶으오니 순성이나 하여이다.”

사또 대희(大喜)하여 허락하시고 말씀하시되

“남주 풍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되 시제(詩題)를 생각하라.”

도령 대답

“부교(父敎)대로 하오리다.”

물러나와

“방자야 나귀 안장 지워라.”

방자 분부 듣고 나귀 안장 지운다. 나귀 안장 지울 제 홍영 자공 산호편 옥안 금천 황금륵 청홍사(靑紅絲) 고운 굴레 주락상모

더뻑 달아 층층 다래 은엽등자 호피(虎皮)도담에 전후걸이 줄방울을 염불법사(念佛法師) 염주 매달 듯

“나귀 등대하였소.”

도련님 거동 보소. 옥안선풍(玉顔仙風) 고운 얼굴 전반같은 채머리 곱게 빗어 밀기름에 잠재워 궁초댕기 석황 물려 맵시 있게 잡아 땋고 성천수주 접동베 세백저 상침바지 극상세목겹버선에 남갑사대님 치고 육사단 겹배자 밀화단추 달아 입고 통행전을 무릎 아래 넌지시 매고 영초단허리띠 모초단도리낭을 당팔사 갖은 매듭 고를 내어 넌지시 매고 쌍문초긴 동정 중치막에 도포 받쳐 흑사(黑絲) 띠를 흉중에 눌러 매고 육분 당혜 끌면서

“나귀를 붙들어라.”

등자 딛고 선뜻 올라 뒤를 싸고 나오실 제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삼문 밖 나올 적에 쇠금부채 호당선으로 일광(日光)을 가리우고 관도성남 넓은 길에 생기 있게 나갈 제 취래양주하던 두목지(杜牧之)의 풍챌런가. 시시오불하던 주랑의 고음이라. 향가자맥춘성내요

만성군자수불애라. 광한루 섭적 올라 사면을 살펴보니 경개가 장히 좋다. 적성 아침 늦은 안개 떠 있고 녹수(綠樹)에 저문 봄은 화류동풍(花柳東風) 둘러 있다. 자각단루분조요요 벽방금전상영롱은 임고대를 이르는 것이고 요헌기구하처요는 광한루를 이르는 것이라. 악양루 고소대와 오초 동남수(東南水)는 동정호로 흐르고 연자 서북의 패택이 완연(宛然)한데 또 한 곳 바라보니 백백홍홍 난만(爛漫) 중에 앵무 공작 날아들고 산천경개 둘러보니 에굽은 반송(盤松)솔 떡갈잎은 아주 춘풍 못 이기어 흐늘흐늘 폭포 유수(流水) 시냇가의 계변화는 뻥긋뻥긋 낙락장송(落落長松) 울울하고 녹음방초승화시라. 계수(桂樹) 자단(紫壇) 모란 벽도(碧桃)에 취한 산색 장강(長江) 요천에 풍덩실 잠겨 있고 또 한 곳 바라보니 어떠한 일 미인이 봉(鳳)새 울음 한가지로 온갖 춘정(春情) 못 이기어 두견화 질끈 꺾어 머리에도 꽂아 보며 함박꽃도 질끈 꺾어 입에 함쑥 물어 보고 옥수나삼 반만 걷고 청산유수 맑은 물에 손도 씻고 발도 씻고 물 머금어 양수하며 조약돌 덥석 쥐어 버들가지 꾀꼬리를 희롱하니 타기황앵이 아니냐. 버들잎도 죽죽 훑어 물에 훨훨 띄워 보고 백설같은 흰나비 웅봉자접은 화수 물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황금같은 꾀꼬리는 숲숲이 날아든다. 광한 진경(珍景)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방가위지 호남의 제일성이로다. 오작교 분명하면 견우직녀 어디 있나. 이런 승지(勝地)에 풍월이 없을소냐. 도련님이 글 두귀를 지었으되

고명오작선이요 광한옥계루라.

차문천상수직녀요 지흥금일아견우라.

이때 내아에서 잡술상이 나오거늘 일배주 먹은 후에 통인 방자 물려주고 취흥이 도도하야 담배 피워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거닐 제 경처(景處)의 흥에 겨워 충청도 고마 수영(水營) 보련암(寶蓮菴)을 일렀은들 이 곳 경처 당할소냐. 붉을 단(丹) 푸를 청(靑) 흰 백(白) 붉을 홍(紅) 고을고을이 단청(丹靑) 유막 황앵환우성은 나의 춘흥(春興) 도와 낸다. 황봉백접 왕나비는 향기 찾는 거동이라. 비거비래춘성내요 영주 방장 봉래산이 안하(眼下)에 가까우니 물은 보니 은하수요 경개는 잠깐 옥경이라. 옥경이 분명하면 월궁(月宮) 항아 없을소냐.

이때는 삼월이라 일렀으되 오월 단오일이렷다. 천중지가절이라. 이때 월매 딸 춘향이도 또한 시서음률(詩書音律)이 능통하니 천중절을 모를소냐. 추천을 하려고 향단이 앞세우고 내려올 제 난초같이 고운 머리 두귀를 눌러 곱게 땋아 금봉채를 정제하고 나군을 두른 허리 미양의 가는 버들 힘이 없이 드리운듯 아름답고 고운 태도 아장 걸어 흐늘 걸어 가만가만 나올 적에 장림(長林) 속으로 들어가니 녹음방초 우거져 금잔디 좌르륵 깔린 곳에 황금같은 꾀꼬리는 쌍거쌍래 날아들 제 무성한 버들 백척장고 높이 추천을 하려할 제 수화유문 초록 장옷 남방사홑치마 훨훨 벗어 걸어두고 자주영초 수당혜를 썩썩 벗어 던져두고 백방사(白紡絲) 진솔속곳 턱 밑에 훨씬 추켜올리고 연숙마 추천줄을 섬섬옥수 넌지시 들어 양수(兩手)에 갈라 잡고 백릉버선 두 발길로 섭적 올라 발구를 제 세류같은 고운 몸을 단정히 놀리는데 뒤 단장 옥(玉)비녀 은죽절과 앞치레 볼 것 같으면 밀화장도 옥장도(玉粧刀)며 광원사겹저고리 제색 고름에 태가 난다.

“향단아 밀어라.”

한 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 발 밑에 가는 티끌 바람 좇아 펄펄 앞 뒤 점점 멀어가니 머리 위의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흔들흔들 오고갈 제 살펴보니 녹음 속의 홍상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백운간에 번갯불이 쏘는 듯 첨지재전홀언후라. 앞으로 얼른 하는 양은 가벼운 저 제비가 도화(桃花) 일점 떨어질 제 찾으려 하고 좇는 듯 뒤로 번듯 하는 양은 광풍에 놀란 호접 짝을 잃고 가다가 돌이키는 듯 무산선녀 구름 타고 양대(陽臺) 상(上)에 내리는 듯 나뭇잎도 물어보고 꽃도 질끈 꺾어 머리에다 실근실근

“이 애 향단아. 그네 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찔하냐. 그네줄 붙들어라.”

붙들려고 무수히 진퇴(進退)하며 한창 이리 노닐 적에 시냇가 반석(磐石) 상(上)에 옥비녀 떨어져 쟁쟁하고 비녀비녀 하는 소리 산호채를 들어 옥반을 깨뜨리는 듯 그 형용은 세상 인물 아니로다.

연자삼춘비거래라. 이도령 마음이 울적하고 정신이 어찔하여 별 생각이 다 나것다. 혼잣말로 섬어하되 오호에 편주 타고 범소백을 좇았으니 서시도 올 리 없고 해성 월야(月夜)에 옥장비가로 초패왕을 이별하던 우미인도 올 리 없고 단봉궐 하직하고 백룡퇴 간 연후에 독류청총 하였으니 왕소군도 올 리 없고 장신궁 깊이 닫고 백두음을 읊었으니 반첩여도 올 리 없고

소양궁 아침날에 시측하고 돌아오니 조비연도 올 리 없고 낙포선녀(洛浦仙女)인가 무산선녀(巫山仙女)인가. 도련님 혼비중천하여 일신이 고단이라 진실로 미혼지인이로다.

“통인아.”

“예.”

“저 건너 화류(花柳) 중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어른어른 하는 게 무엇인지 자세히 보아라.”

통인이 살펴보고 여쭈오되

“다른 무엇 아니오라 이 고을 기생 월매 딸 춘향이란 계집아이로소이다.”

도련님이 엉겁결에 하는 말이

“장히 좋다. 휼륭하다.”

통인이 알외되

“제 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여 기생 구실 마다하고 백화초엽에 글자도 생각하고 여공재질이며 문장을 겸전하여 여염처자와 다름이 없나이다.

도령 허허 웃고 방자를 불러 분부하되

“들은 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오라.”

방자놈 여쭈오되

“설부화용이 낭방(南方)에 유명키로 방 첨사 병부사(兵俯使) 군수(郡守) 현감(縣監) 관장(官長)님네 엄지발가락이 두 뼘 가웃씩 되는 양반 오입장이들도 무수히 보려 하되 장강의 색과 임사의 덕행(德行)이며, 이두의 문필이며 태사(太사)의 화순심(和順心)과 이비의 정절(貞節)을 품었으니 금천하지절색이요 만고여중군자오니 황공하온 말씀으로 초래하기 어렵나이다.”

도령 대소(大笑)하고

“방자야 네가 물각유주를 모르는도다. 형산백옥과 여수황금이 임자 각각 있느니다. 잔말 말고 불러오라.”

방자 분부 듣고 춘향 초래 건너갈 제 맵시 있는 방자녀석 서왕모 요지연에 편지 전하던 청조같이 이리저리 건너가서

“여봐라, 이 애 춘향아.”

부르는 소리(에) 춘향이 깜짝 놀래어

“무슨 소리를 그 따위로 질러 사람의 정신을 놀래느냐.”

“이 애야, 말 마라. 일이 났다.”

“일이라니 무슨일.”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에 오셨다가 너 노는 모양 보고 불러오란 영이 났다.

춘향이 화를 내어

“네가 미친 자식이로다. 도련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 자식 네가 내 말을 종달새 열씨 까 듯 하였나보다.”

“아니다. 내가 네 말을 할 리가 없으되 네가 그르지 내가 그르냐. 너 그른 내력을 들어보아라. 계집아이 행실로 추천을 할 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추천하는 게 도리(道理)에 당연함이라.광한루 멀잖고 또한 이 곳을 논할진대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 방초는 푸(르)렀는데 앞 내 버들은 초록장 두르고 뒷 내 버들은 유록장(柳綠帳) 둘러 한 가지 늘어지고 또 한 가지 펑퍼져 광풍을 겨워 흐늘흐늘 춤을 추는데 광한루 구경처(求景處)에 그네를 매고 네가 뛸 제 외씨같은 두 발길로 백운간(白雲間)에 노닐 적에 홍상(紅裳) 자락이 펄펄 백방사(白紡紗) 속곳 갈래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같은 네 살결이 백운간에 희뜩희뜩 도련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실 제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잔말 말고 건너가자.”

춘향이 대답하되

“네 말이 당연하나 오늘이 단오일이라. 비단 나 뿐이랴. 다른 집 처자들도 예 와 함께 추천하였으되 그럴 뿐 아니라 설혹 내 말을 할 지라도 내가 지금 시사가 아니거든 여염(집) 사람을 호래척거로 부를 리도 없고 부른데도 갈 리도 없다. 당초에 네가 말을 잘 못 들은 바라.”

방자 이면에 볶이어 광한루로 돌아와 도련님께 여쭈오니 도련님 그 말 듣고

“기특한 사람이(로)다. 언즉시야로되 다시 가 말을 하되 이리이리 하여라.”

방자 전갈 모아 춘향에게 건너가니 그 새에 제 집으로 돌아갔거늘 저의 집을 찾아가니 모녀간(母女間) 마주 앉아 점심밥이 방장이라. 방자 들어가니

“너 왜 또 오느냐.”

“황송(하)다. 도련님이 다시 전갈하시더라. 내가 너를 기생으로 앎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기로 청하노라. 여가에 있는 처자 불러 보기 청문에 괴이(怪異)하나 혐의로 알지 말고 잠깐 와 다녀가라 하시더라.”

춘향의 도량한 뜻이 연분되려고 그러한 지 홀연이 생각하니 갈 마음이 나되 모친의 뜻을 몰라 침음양구에 말 않고 앉았더니 춘향모 썩 나 앉아 정신 없게 말을 하되

“꿈이라 하는 것이 전수이 허사(虛事)가 아니로다. 간 밤에 꿈을 꾸니 난데 없는 청룡(靑龍) 하나 벽도지에 잠겨 보이거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우연한 일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사또 자제 도련님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 몽자(夢字) 용 룡자(龍字) 신통하게 맞추었다.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느냐 . 잠깐 가서 다녀오라.”

춘향이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로 겨우 일어나 광한루 건너갈 제 대명전(大明殿) 대들보의 명매기 걸음으로 양지(陽地)마당의 씨암탉 걸음으로 백모래 바다 금자라 걸음으로 월태화용 고운 태도 완보로 건너갈 새 흐늘흐늘 월서시토성습보하던 걸음으로 흐늘거려 건너올 제 도련님 난간에 절반만 비껴 서서 완완히 바라보니 춘향이가 건너오는데 광한루에 가까운지라. 도련님 좋아라고 자세히 살펴보니 요요정정하여 월태화용이 세상에 무쌍이라. 얼굴이 조촐하니 청강(淸江)에 노는 학이 설월(雪月)에 비침 같고 단순호치 반개하니 별도 같고 옥도 같다. 연지를 품은 듯 자하상 고운 태도 어린 안개 석양에 비치는 듯

취군이 영롱하여 문채는 은하수물결 같다. 연보를 정히 옮겨 천연히 누에 올라 부끄러이 서 있거늘 통인 불러

“앉으라고 일러라.”

춘향의 고운 태도 염용하고 앉는 거동 자세히 살펴보니 백색창파 새 비 뒤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을 보고 놀라는 듯 별로 단장 한일 없이 천연한 국색이라. 옥안을 상대하니 여운간지명월이요 단순(丹脣)을 반개(半開)하니 약수중지연화로다. 신선을 내 몰라도 영주(瀛州)에 놀던 선녀 남원에 적거하니 월궁에(서) 모시던 선녀 벗 하나를 잃었구나. 네 얼굴 네 태도는 세상 인물 아니로다.

이때 춘향이 추파를 잠깐 들어 이도령을 살펴보니 금세(今世)의 호걸(豪傑)이요 진세간 기남자라. 천정이 높았으니 소년공명 할 것이요 오악이 조귀(朝歸)하니 보국충신 될 것이매 마음에 흠모하여 아미를 숙이고 염슬단좌 뿐이로다. 이도령 하는 말이

“성현(聖賢)도 불취동성이라 일렀으니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뇨?”

“성은 성(成)가옵고 연세(年歲)는 십육 세로소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허허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라. 성자(姓字)를 들어보니 천정일시 분명하다. 이성지합은 좋은 연분 평생동락(平生同樂)하여 보자. 너의 부모 구존하냐?”

“편모하(偏母下)로소이다.”

“몇 형제나 되느냐?”

“육십당년 나의 모친 무남독녀(無男獨女) 나 하나요.”

“너도 남의 집 귀한 딸이로다. 천정(天定)하신 연분으로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년락(萬年樂)을 이뤄 보자.”

춘향이 거동 보소 팔자청산 찡그리며 주순을 반개(半開)하여 가는 목 겨우 열어 옥성으로 여쭈오되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烈女) 불경이부절은 옛글에 일렀으니 도련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첩이라. 한 번 탁정한 연후에 인하여 버리시면 일편단심(一片丹心) 이내 마음 독숙공방(獨宿空房) 홀로 누워 우는 한(恨)은 이내 신세 내 아니면 누구일꼬 그런 분부 마옵소서.”

이도령 이른 말이

“네 말을 들어 보니 어이 아니 기특하랴. 우리 둘이 인연 맺을 적에 금석뇌약 맺으리라. 네 집이 어디메냐.”

춘향이 여쭈옵되

“방자 불러 물으소서.”

이도령 허허 웃고

“내 너더러 묻는 일이 허황하다. 방자야.”

“예.”

“춘향의 집을 네 일러라.”

방자 손을 넌지시 들어 가리키는데

“저기 저 건너 동산은 울울하고 연당은 청청(淸淸)한데 양어생풍하고 그 가운데 기화요초 난만(爛漫)하여 나무나무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하고 암상의 굽은 솔은 청풍(淸風)이 건듯 부니 노룡이 굼니는 듯 문 앞의 버들 유사무사양유지요 들쭉 측백 전나무며

그 가운데 행자목은 음양(陰陽)을 좇아 마주 서고 초당문전 오동 대추나무 깊은 산중 물푸레나무 포도 다래 으름 넌출 휘휘친친 감겨 단장 밖에 우뚝 솟았는데 송정 죽림(竹林) 두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게 춘향의 집입니다.”

도련님 이른 말이

“장원이 정결(淨潔)하고 송죽(松竹)이 울밀하니 여자 절행(節行) 가지로다.”

춘향이 일어나며 부끄러이 여쭈오되

“시속인심 고약하니 그만 놀고 가겠(습)니다.”

도련님 그 말을 듣고

“기특하다 그럴 듯한 일이로다. 오늘 밤 퇴령 후에 너의 집에 갈 것이니 괄시나 부디 마라.”

춘향이 대답하되

“나는 몰라요.”

“네가 모르면 쓰겠느냐. 잘 가거라 금야(今夜)에 상봉(相逢)하자.”

누에(서) 내려 건너가니 춘향모 마주 나와

“애고 내 딸 다녀오냐. 도련님이 무엇이라 하시더냐.”

“무엇이라 하여요. 조금 앉았다가 가겠노라 일어나니 저녁에 우리 집 오시마 하옵디다.”

“그래 어찌 대답하였느냐.”

“모른다 하였지요.”

“잘 하였다.”

이때 도련님이 춘향을 아연히 보낸 후에 미망이 둘 데 없어 책실로 돌아와 만사(萬事)에 뜻이 없고 다만 생각이 춘향이라. 말소리 귀에 쟁쟁 고운 태도 눈에 삼삼. 해지기를 기다릴 새. 방자 불러

“해가 어느 때나 되었느냐.”

“동에서 아귀 트나이다.”

도련님 대노(大怒)하여

“이 놈 괘씸한 놈. 서(쪽)으로 지는 해가 동(쪽)으로 도로 가랴. 다시금 살펴보라.”

이윽고 방자 여쭈오되

“일락함지 황혼 되고 월출동령하옵내다.”

석반이 맛이 없어 전전반측 어이 하리. 퇴령을 기다리려 하고 서책을 보려 할 제 책상을 앞에 놓고 서책을 상고하는데 중용 대학 논어 맹자 시전 서전 주역 고문진보 사략 이백(李白) 두시(杜詩) 천자(문)까지 내어 놓고 글을 읽을 새

“시전이라. 관관저구재하지주로다.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로다.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대학을 읽을 새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 재춘향(在春香)이로다. 그 글도 못 읽겠다.”

주역을 읽는데

“원은 형코 정코 춘향이 코 딱 댄 코 좋고 하니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등왕각이라. 남창은 고군이요 홍도는 신부로다. 옳다. 그 글 되었다.”

“맹자를 읽을 새 맹자 견양혜왕하신대 왕왈 수불원천리이래하시니 춘향이 보시러 오셨(습)니까.”

사략을 읽는데

“태고(太古)라. 천황씨는 이쑥덕으로 왕하여 세기섭제하니 무위이화(無爲而化)이라. 하여 형제 십이인이 각 일만팔천세하다.”

방자 여쭈오되

“여보 도련님. 천황씨가 목덕으로 왕이란 말은 들었으되 쑥떡으로 왕이란 말은 금시초문이오.”

“이 자식 네 모른다. 천황씨 일만팔천 세를 살던 양반이라 이가 단단하여 목덕을 잘 자셨거니와 시속(時俗) 선비들은 목떡을 먹겠느냐. 공자님께옵서 후생(後生)을 생각하사 명륜당에 현몽하고 시속 선비들은 이가 부족하여 목떡을 못 먹기로 물씬물씬한 쑥떡으로 하라 하여 삼백육십주 향교에 통문하고 쑥떡으로 고쳤느니라.”

방자 듣다가 말을 하되

“여보. 하느님이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거짓말도 듣겠소.”

또 적벽부를 들어 놓고

“임술지추칠월기망(壬戌之秋七月旣望)에 소자(蘇子) 여객(與客)으로 범주유어적벽지하(泛舟遊於赤壁之下)할 새 청풍(淸風)은 서래(徐來)하고 수파(水波)는 불흥(不興)이라.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천자(千字文)를 읽을 새

“하늘 천(天) 땅 지(地)”

방자 듣고

“여보. 도련님 점잖이 천자는 왠 일이요?”

“천자라 하는 글이 칠서의 본문(本文)이라. 양(梁)나라 주사봉(周捨奉) 주흥사가 하룻밤에 이 글을 짓고 머리가 희었기로 책 이름을 백수문이라. 낱낱이 새겨 보면 뼈똥 쌀 일이 많지야.”

“소인놈도 천자 속은 아옵니다.”

“네가 알더란 말이냐.”

“알기를 이르겠소.”

“안다 하니 읽어 봐라.”

“예 들으시오. 높고 높은 하늘 천(天) 깊고 깊은 땅 지(地) 홰홰친친 검을 현(玄) 불타다 누를 황”

“예 이놈. 상놈은 적실하다. 이놈 어디서 장타령 하는 놈의 말을 들었구나. 내 읽을 게 들어라. 천개자시생천하니 태극이 광대(廣大) 하늘 천(天), 지벽어축시하니 오행 팔괘로 땅 (地)지, 삼십삼천 공부공의 인심지시(人心指示) 검을 현(玄), 이십팔수 금목수화토지 정색 누를 황(黃), 우주일월(宇宙日月) 중화하니 옥우 쟁영 집 우(宇), 연대국도 흥 성 쇠 왕고래금(往古來今)에 집 주(宙), 우치홍수 기자에 홍범구주 넓을 홍(洪), 삼황오제 붕(崩)하신 후 난신적자 거칠 황(荒), 동방이 장차 계명(啓明)키로 고고천변일륜홍 번듯 솟아 날 일(日), 억조창생 경양가(擊壤歌)에 강구연월(康衢煙月)에 달 월(月), 한심 미월 시시(時時) 불어(나) 삼오일야에 찰 영(盈), 세상만사 생각하니 달빛과 같은지라 십오야 밝은 달이 기망(旣望)부터 기울 측(日仄), 이십팔수(二十八宿) 하도낙서 벌인 법(法) 일월성신(日月星辰) 별 진(辰),

가련금야숙창라 원앙금침에 잘 숙(宿), 절대가인 좋은 풍류(風流) 나열춘추에 벌일 렬(列), 의의월색 야삼경에 만단정회(萬端情懷) 베풀 장(張), 금일한풍소소래하니 침실에 들거라 찰 한(寒), 베개가 높거든 내 팔을 베어라 이만큼 오너라 올 래(來), 에후로혀 질끈 안고 님 각에 드니 설한풍에도 더울 서(暑), 침실이 덥거든 음풍(陰風)을 취하여 이리저리 갈 왕(往), 불한불열 어느 때냐 엽락오동에 가을 추(秋), 백발이 장차 우거지니 소년풍도를 거둘 수(收), 낙목한풍(落木寒風) 찬바람 백설강산에 겨울 동(冬), 오매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에 갈물 장(藏), 부용 작야 세우(細雨) 중에 광윤유태 부루 윤(潤), 이러한 고운 태도 평생을 보고도 남을 여(餘), 백년기약(百年期約) 깊은 맹서(盟誓) 만경창파(萬頃蒼波) 이룰 성(成), 이리저리 노닐 적에 부지세월 해 세(歲), 조강지처불하당아내 박대 못하나니 대전통편 법중 율(律), 군자호구(君子好逑) 이 아니냐 춘향입 내 입을 한테다 대고 쪽쪽 빠니 법중 려(呂)자 이 아니냐 애고애고 보고지고”

소리를 크게 질러 놓(으)니 이때 사또 저녁 진지를 잡수시고 식곤증(食困症)이 나계옵서 평상에 취침하시다 애고 보고지고 소리에 깜짝 놀래어

“이리 오너라.”

“예.”

“책방에서 누가 생침을 맞느냐 신다리를 주물렀냐. 알아(서) 들여라.”

통인 들어가

“도련님 웬 목통이오. 고함소리에 사또 놀라시사 염문하라 하옵시니 어찌 아뢰리까.”

딱한 일이로다. 남의 집 늙은이는 이농증도 있느니라만은 귀 너무 밝은 것도 예사 일 아니로다. 그러하다 하지마는 그럴 리가 왜 있을꼬. 도련님 대경(大驚)하여

“이대로 여쭈어라. 내가 논어라 하는 글을 보다가 차호(嗟乎)라 오로의구의(吾老矣久矣)라 몽불견주공(夢不見周公)이란 대문을 보다가 나도 주공을 보면 그리하여 볼까 하여 흥치(興致)로 소리가 높았으니 그대로만 여쭈어라.”

통인이 들어가 그대로 여쭈오니 사또 도련님 승벽 있음을 크게 기뻐하여

“이리 오너라. 책방에 가 목낭청을 가만히 오시래라.”

낭청이 들어오는데 이 양반이 어찌 고리게 생겼던지 만큼 걸음쏙까지 근심이 담쏙 들었던 것이었다.

“사또 그 새 심심하지요.”

“아 게 앉소. 할 말 있네. 우리 피차 고우로서 동문수업(同門受業)하였거니와 아시에 글 읽기같이 싫은 것이 없건마는 우리 아(兒) 시흥 보니 어이 아니 기쁠손가.”

이 양반은 지여부지간에 대답하것다.

“아이 때 글 읽기같이 싫은 게 어디 있으리오.”

“읽기가 싫으면 잠도 오고 꾀가 무수하지. 이 아이는 글 읽기를 시작하면 읽고 쓰고 불철주야 하지.”

“예 그럽디다.”

“배운 바 없어도 필재 절등하지.”

“그렇지요. 점 하나만 툭 찍어도 고봉추석같고 한 일(一)을 그어놓(으)면 천리진운이요

갓머리는 작규첨이요 필법논지하면 풍랑뇌전이요 내리 그어 채는 획은 노송도괘절벽이라. 창과(戈)로 이를진대 바른 등 넌출같이 뻗어갔다 도로 채는 데는 성난 쇠뇌끝 같고 기운이 부족하면 발길로 툭 차올려도 획은 획대로 되나니 글씨를 가만히 보면 획은 획대로 되옵디다.”

“글쎄 듣게. 저 아이 아홉살 먹었을 제 서울 집뜰에 늙은 매화 있는 고로 매화나무를 두고 글을 지어라 하였더니 잠시 지었으되 정성 들인 것과 용사비등하니 일람첩기라. 묘당의 당당한 명사 될 것이니 남면이북고하고 부춘추어일수하였데.”

“장래 정승하오리다.”

사또 너무 감격하여(라고)

“정승이야 어찌 바라겠나 만은 내 생전에 급제는 쉬 하리 만은 급제만 쉽게 하면 출육이야 범연히 지나겠나.”

“아니요. 그리 할 말씀이 아니라 정승을 못 하오면 장승이라도 되지요.”

사또가 호령하되

“자네 뉘 말로 알고 대답을 그리 하나.”

“대답은 하였사오나 뉘 말인지 몰라요.”

그렇다고 하였으되 그게 또 다 거짓말이었다.

이때 이도령은 퇴령 놓기를 기다릴 제

“방자야.”

“예.”

“퇴령 놓았나 보아라.”

“아직 아니 놓았소.”

조금 있더니 하인 물리라 퇴령 소리 길게 나니

“좋다 좋다. 옳다 옳다. 방자야. 등롱에 불 밝혀라.”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춘향의 집 건너갈 제 자취없이 가만가만 걸으면서

“방자야 상방에 불 비친다. 등롱을 옆에 껴라.”

삼문(三門) 밖 썩 나서 협로지간에 월색이 영롱하고 화간 푸른 버들 몇번이나 꺾었으며 투계소년 아이들은 야입청루하였으니 지체말고 어서가자. 그렁저렁 당도하니 가련금야요적한데 가기물색 이 아니냐. 가소롭다 어주사는 도원길을 모르던가. 춘향 문전 당도하니 인적야심한데 월색은 삼경(三更)이라. 어약은 출몰하고 대접같은 금붕어는 임을 보고 반기는 듯 월하(月下)의 두루미는 흥을 겨워 짝 부른다.

이때 춘향이 칠현금을 비껴안고 남풍시를 희롱타가 침석(寢席)에 졸더니 방자 안으로 들어가되 개가 짖을가 염려하여 자취없이 가만가만 춘향 방 영창 밑에 가만히 살짝 들어가서

“이애 춘향아 잠 들었냐.”

춘향이 깜짝 놀래어

“네 어찌 오냐.”

“도련님이 와 계시다.”

춘향이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울렁울렁 속이 답답하여 부끄럼을 못 이기어 문을 열고 나오더니 건넌방 건너가서 저의 모친 깨우는데

“애고 어머니. 무슨 잠을 이다지 깊이 주무시오.”

춘향의 모 잠을 깨어

“아가. 무엇을 달라고 부르느냐.”

“누가 무엇 달래었소.”

“그러면 어찌 불렀느냐.”

엉겹결에 하는 말이

“도련님이 방자 모시고 오셨다오.”

춘향의 모 문을 열고 방자 불러 묻는 말이

“누가 와야.”

방자 대답하되

“사또 자제 도련님이 와 계시오.”

춘향 어미 그 말 듣고

“향단아.”

“예.”

“뒤 초당에 좌석(座席) 등촉(燈燭) 신칙하여 포진하라.”

당부하고 춘향모가 나오는데 세상 사람이 다 춘향모를 일컫더니 과연이로다. 자고로 사람이 외탁을 많이 하는고로 춘향같은 딸을 낳았구나. 춘향모 나오는데 거동을 살펴보니 반백이 넘었는데 소탈한 모양이며 단정한 거동이 표표정정하고 기부가 풍영하여 복이 많은지라. 숫접고 점잔하게 발막을 끌어 나오는데 가만가만 방자 뒤를 따라온다.

이때 도련님이 배회고면하여 무료히 서 있을 제 방자 나와 여쭈오되

“저기 오는 게 춘향의 모로소이다.”

춘향의 모가 나오더니 공수하고 우뚝 서며

“그 새에 도련님 문안이 어떠하오.”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의 모라지. 평안한가.”

“예 겨우 지내옵니다. 오실 줄 진정 몰라 영접이 불민(不敏)하오니다.”

“그럴 리가 있나.”

춘향모 앞을 서서 인도하여 대문 중문 다 지나서 후원을 돌아가니 연구한 별초당(別草堂)에 등롱을 밝혔는데 버들가지 늘어져 불빛을 가린 모양 구슬발이 갈고랑이에 걸린 듯하고 우(右)편의 벽오동(碧梧桐)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래는 듯 좌(左)편에 섰는 반송(盤松) 청풍(淸風)이 건듯 불면 노룡(老龍)이 굼니는 듯 창전(窓前)에 심은 파초 일난초 봉미장은 속잎이 빼어나고 수심여주 어린 연꽃 물 밖에 겨우 떠서 옥로(玉露)를 받쳐 있고 대접같은 금붕어는 어변성룡하려 하고 때때마다 물결쳐서 출렁 툼벙 굼실 놀 때마다 조롱하고 새로 나는 연잎은 받을 듯이 벌어지고 급연삼봉 석가산은 층층이 쌓였는데 계하(階下)의 학 두루미 사람을 보고 놀래어 두 죽지를 떡 벌리고 긴 다리로 징검징검 끼룩 뚜르르 소리하며 계화(桂花) 밑에 삽살개 짖는구나.

그 중에 반갑구나 못 가운데 쌍 오리는 손님 오시노라 둥덩실 떠서 기다리는 모양이요 처마에 다다르니 그제야 저의 모친 영을 디디어서 사창을 반개하고 나오는데 모양을 살펴보니 뚜렷한 일륜명월 구름 밖에 솟아난 듯 황홀한 저 모양은 측량키 어렵도다. 부끄러이 당에 내려 천연히 섰는 거동은 사람의 간장을 다 녹인다.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더러 묻는 말이

“곤(困)치 아니하며 밥이나 잘 먹었냐.”

춘향이 부끄러워 대답치 못하고 묵묵히 서 있거늘 춘향이 모가 먼저 당에 올라 도련님을 자리로 모신 후에 차를 들어 권하고 담배 붙여 올리오니 도련님이 받아 물고 앉았을 제 도련님 춘향의 집 오실 때는 춘향에게 뜻이 있어 와 계시지 춘향의 세간 기물(器物) 구경온 바 아니로되 도련님 첫 외입이라 밖에서는 무슨 말이 있을 듯 하더니 들어가 앉고 보니 별로이 할 말이 없고 공연히 천촉기가 있어 오한증이 들면서 아무리 생각하되 별로 할 말이 없는지라 방중을 둘러보며 벽상(壁上)을 살펴보니 여간 기물 놓였는데 용장 봉장 가께수리 이럭저럭 벌였는데 무슨 그림장도 붙여있고 그림을 그려 붙였으되 서방 없는 춘향이요 학(學)하는 계집 아이가 세간기물과 그림이 왜 있을까만은 춘향 어미가 유명한 명기(名妓)라 그 딸을 주려고 장만한 것이었다. 조선의 유명한 명필(名筆) 글씨 붙여있고 그 사이에 붙인 명화(名畵) 다 후리쳐 던져두고 월선도(月仙圖)란 그림 붙였으되 월선도 제목이 이렇던 것이었다.

상제고거강절조에 군신조회 받던 그림 청년거사 이태백(李太白)이 황학전 꿇어 앉아 황정경 읽던 그림, 백옥루 지은 후에 자기 불러 올려 상량문 짓던 그림 칠월 칠석 오작교(烏鵲橋)에 견우직녀(牽牛織女) 만나는 그림, 광한전 월명야에 도약하던 항아(姮娥) 그림,

층층이 붙였으되 광채가 찬란하여 정신이 산란한지라 또 한 곳 바라보니 부춘산(富春山) 엄자릉은 간의대부 마다 하고 백구로 벗을 삼고 원학으로 이웃삼아 양구를 떨쳐 입고 추(秋) 동강 칠리탄에 낚시줄 던진 경(景)을 역력히 그려 있다. 방가위지선경이라. 군자호구(君子好逑) 놀 데로다. 춘향이 일편단심 일부종사 하려 하고 글 한 수를 지어 책상 위에 붙였으되,

대운춘풍죽이요 분향야독서라.

기특하다 이 글 뜻은 목란의 절개(節槪)로다.

이렇듯 치하(致賀)할 제 춘향 어미 여쭈오되,

“귀중하신 도련님이 누지에 욕림하시니 황공감격하옵니다.

도련님 그 말 한 마디에 말 궁기가 열리었지.

“그럴 리가 왜 있는가. 우연히 광한루에서 춘향을 잠깐 보고 연련히 보내기로 탐화봉접 취한 마음 오늘 밤에 오는 뜻은 춘향 어미 보러 왔거니와 자네 딸 춘향과 백년 언약을 맺고자 하니 자네의 마음이 어떠한가.”

춘향 어미 여쭈오되

“말씀은 황송하오나 들어 보오. 자하(紫霞)골 성참판(成參判) 영감이 보후로 남원에 좌정하였을 때 소리개를 매로 보고 수청을 들라 하옵기로 관장(官長)의 영을 못 어기어 모신 지 삼삭(三朔)만에 올라가신 후로 뜻밖에 포태하여 낳은 게 저 것이라. 그 연유(緣由)로 고목하니 젖줄 떨어지면 데려가련다 하시더니 그 양반이 불행하여 세상을 버리시니 보내질 못하옵고 저 것을 길러낼 제 어려서 잔병조차 그리 많고 칠세에 소학 읽혀

수신제가 화순심(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씨가 있는 자식이라 만사를 달통(達通)이요 삼강행실 뉘라서 내 딸이라 하리요. 가세(家勢)가 부족하니 재상가(宰相家) 부당(不當)이요 사서인 상하불급 혼인이 늦어가매 주야로 걱정이나 도련님 말씀은 잠시 춘향과 백년기약한단 말씀이오나 그런 말씀 말으시고 놀으시다 가옵소서.”

이 말이 참말이 아니라 이도련님 춘향을 얻는다 하니 내두사를 몰라 뒤를 눌러 하는 말이었다 이도령 기가 막혀

“호사에 다마로세. 춘향도 미혼전(未婚前)이요 나도 미장전이라 피차 언약이 이러하고 육례는 못할 망정 양반의 자식이 일구이언을 할 리 있나.”

춘향 어미 이 말 듣고

“또 내 말 들으시오. 고서(古書)에 하였으되 지신은(知臣)은 막여주(莫如主)요 지자(知子)는 막여부(莫如父)라 하니 지녀(知女)는 모(母) 아닌가. 내 딸 심곡 내가 알 지. 어려(서)부터 결곡한 뜻이 있어 행여 신세를 그르칠까 의심이요 일부종사하려 하고 사사이 하는 행실 철석같이 굳은 뜻이 청송(靑松), 녹죽(綠竹), 전나무 사시절(四時節)을 다투는 듯 상전벽해 될 지라도 내 딸 마음 변할손가. 금은(金銀), 오촉지백이 적여구산이라도 받지 아니할 터이요, 백옥같은 내 딸 마음 청풍인들 미치리요. 다만 고의(古義)를 효칙코자 할 뿐이온데 도련님은 욕심부려 인연을 맺었다가 미장전(未丈前) 도련님이 부모 몰래 깊은 사랑 금석(金石)같이 맺었다가 소문 어려 버리시면 옥(玉)결같은 내 딸 신세 문채 (文采) 좋은 대모 진주 고운 구슬 구멍노리 깨어진 듯 청강(淸江)에 놀던 원앙조(鴛鴦鳥)가 짝 하나를 잃었은들 어이 내 딸 같을손가. 도련님 내정이 말과 같을진대 심량하여 행하소서.”

도련님 더욱 답답하여

“그는 두 번 염려하지 마소. 내 마음 헤아리니 특별 간절 굳은 마음 흉중에 가득하니 분의는 다를망정 저와 내가 평생기약 맺을 제 전안 납폐 아니 한들 창파같이 깊은 마음 춘향사정 모를손가.”

이렇듯이 이같이 설화(說話)하니 청실홍실 육례 갖춰 만난대도 이 위에 더 뾰족할까.

“내 저를 초취같이 여길 테니 시하라고 염려 말고 미장전도 염려 마소. 대장부 먹는 마음 박대 행실 있을손가. 허락만 하여 주소.”

춘향 어미 이 말 듣고 이윽히 앉았더니 몽조가 있는지라 연분인 줄 짐작하고 흔연히 허락하며

“봉(鳳)이 나매 황(凰)이 나고 장군 나매 용마 나고 남원에 춘향 나매 이화춘풍 꽃다웁다. 향단아 주반 등대하였느냐.”

“예.”

대답하고 주효를 차릴 적에 안주 등물 볼 것 같으면 괴임새도 정결하고 대(大)양푼 가리찜, 소(小)양푼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매추리탕에 동래(東萊) 울산(蔚山) 대전복 대모 장도 드는 칼로 맹상군(孟嘗君)의 눈썹처럼 어슷비슷 오려 놓고, 염통산적, 양볶이와 춘치자명 생치 다리, 적벽 대접 분원기에 냉면조차 비벼놓고

생률 숙률 잣송이며 호도 대추 석류 유자 준시 앵두 탕기같은 청술레를 칫수있게 괴었는데 술병 치레 볼 것 같으면 티끌 없는 백옥병과 벽해수상 산호병과 엽락금정 오동병과 목 긴 황새병 자라병 당화병 쇄금병 소상동정 죽절병 그 가운데 천은 알안자 적동자 쇄금자를 차례로 놓았는데 구비함도 갖을시고. 술 이름을 이를진대 이적선 포도주와 안기생 자하주와 산림처사(山林處士) 송엽주와 과하주 방문주 천일주 백일주 금로주(金露酒) 팔팔 뛰는 화주 약주 그 가운데 향기로운 연엽주 골라내어 알안자 가득 부어 청동화로(靑銅火爐) 백탄 불에 남비 냉수 끓는 가운데 알안자 둘러 불한불열(不寒不熱) 데어 내어 금잔 옥잔(玉盞) 앵무배를 그 가운데 데웠으니 옥경 연화(蓮花) 피는 꽃이 태을선녀 연엽선 뜨듯 대광보국 영의정(領議政) 파초선(芭焦船) 뜨듯 둥덩실 띄워놓고 권주가 한 곡조에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라.

이도령 이른 말이

“금야(今夜)에 하는 절차 보니 관청(官廳)이 아니거든 어이 그리 구비한가.”

춘향 모 여쭈오되

“내 딸 춘향 곱게 길러 요조숙녀 군자호구 가리어서 금슬우지 평생동락하올 적에 사랑에 노는 손님 영웅호걸 문장들과 죽마고우 벗님네 주야로 즐기실 제 내당의 하인 불러 밥상 술상 재촉할 제 보고 배우지 못하고는 어이 곧 등대하리.

내자가 불민하면 가장(家長) 낯을 깎음이라. 내 생전 힘써 가르쳐 아무쪼록 본받아 행하라고 돈 생기면 사 모아서 손으로 만들어서 눈에 익고 손에도 익히라고 일시(一時) 반 때 놓지 않고 시킨 바라. 부족타 말으시고 구미대로 잡수시오.”

앵무배 술 가득 부어 도련님께 드리오니 도령 잔 받아 손에 들고 탄식하여 하는 말이

“내 마음대로 할진대는 육례를 행할 터나 그러질 못하고 개구멍 서방으로 들고 보니 이 아니 원통하랴. 이애 춘향아. 그러나 우리 둘이 이 술을 대례 술로 알고 먹자.”

일배주 부어 들고

“너 내 말 들어봐라. 첫째 잔은 인사주요 둘째 잔은 합환주라. 이 술이 다른 술 아니라 근원근본 삼으리라. 대순의 아황(娥皇) 여영(女英) 귀히귀히 만난 연분 지중타 하였으되 월로의 우리 연분 삼생가약 맺은 연분 천만년(千萬年)이라도 변치 아니할 연분 대대로 삼태육경 자손이 많이 번성하여 자손 증손(曾孫) 고손(高孫)이며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죄암죄암 달강달강 백세상수하다가(서) 한날 한시 마주 누워 선후없이 죽게 되면 천하에 제일가는 연분이지.”

술잔 들어 잡순 후에

“향단아 술 부어 너의 마누라께 드려라. 장모, 경사(慶事) 술이니 한 잔 먹소.”

춘향 어미 술잔 들고 일희일비하는 말이

“오늘이 여식의 백년지고락(百年之苦樂)을 맡기는 날이라. 무슨 슬픔 있으리까마는 저것을 길러낼 제 애비 없이 설이 길러 이때를 당하오니 영감 생각이 간절하여 비창(悲愴)하여이다.”

도련님 이른 말이

“이왕지사(已往之事) 생각 말고 술이나 먹소.”

춘향 모 수삼배(數三杯) 먹은 후에 도련님 통인 불러 상 물려 주면서

“너도 먹고 방자도 먹여라.”

통인 방자 상 물려 먹은 후에 대문 중문 다 닫치고 춘향 어미 향단이 불러 자리 포진(鋪陳)시킬 제 원앙금침 잣베개와 샛별같은 요강 대야 자리포진을 정히 하고

“도련님 평안히 쉬옵소서. 향단아 나오너라. 나하고 함께 자자.”

둘이 다 건너갔구나.

춘향과 도련님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는냐. 사양을 받으면서 삼각산(三角山) 제일봉(第一峰) 봉학 앉아 춤추는 듯 두 활개를 에구부시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纖纖玉手) 바듯이 겹쳐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 가는 허리를 담쏙 안고

“나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녹수(綠水)에 홍련화(紅蓮花) 미풍(微風) 만나 굼니는 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東海) 청룡(靑龍)이 굽이를 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 안고 진득이 누르며 기지개 켜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딱 벗어지니 형산(荊山)의 백옥(白玉)덩이 이 위에 비할소냐. 옷이 활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하고 슬그머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침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좇아 들어 누워 저고리를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골즙낼 제 삼승 이불 춤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맞추어 청그렁 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 잘 자고 났구나. 그 가운데 진진한 일이야 오죽하랴.

하루 이틀 지나가니 어린 것들이라 신맛이 간간 새로워 부끄럼은 차차 멀어지고 그제는 기롱(譏弄)도 하고 우스운 말도 있어 자연 사랑가(歌)가 되었구나. 사랑으로 노는데 똑 이 모양으로 놀던 것이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칠백 월하초(月下初)에 무산(巫山)같이 높은 사랑, 목단무변수

여천창해같이 깊은 사랑, 옥산전 달 밝은데 추산천봉 완월 사랑, 증경학무하올 적 차문취소하던 사랑, 유유낙일 월렴간에 도리화개 비친 사랑, 섬섬초월 분백한데 함소함태 숱한 사랑, 월하(月下)에 삼생(三生) 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없는 부부(夫婦) 사랑, 화우동산 목단화(牧丹花)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은하(銀河) 직녀(織女) 직금같이 올올이 이은 사랑, 청루미녀 침금(枕衾)같이 혼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 수양같이 청처지고 늘어진 사랑, 남창북창 노적같이 담불담불 쌓인 사랑, 은장 옥장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록 봄바람에 넘노나니 황봉백접(黃蜂白蝶) 꽃을 물고 즐긴 사랑, 녹수청강(綠水淸江) 원앙조격(格)으로 마주 둥실 떠 노는 사랑, 연년(年年) 칠월 칠석야(夜)에 견우직녀(牽牛織女) 만난 사랑, 육관대사 성진이가 팔선녀와 노는 사랑, 역발산 초패왕(楚覇王)이 우미인(虞美人) 만난 사랑, 당나라 당명황이 양귀비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같이 연연히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도를 보자. 빵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 보자. 너와 나와 만난 사랑 연분을 팔자 한들 팔 곳이 어디 있어. 생전 사랑 이러하고 어찌 사후(死後) 기약 없을소냐. 너는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 되되 땅 지(地)자 그늘 음(陰)자 아내 처(妻)자 계집 녀(女)자 변이 되고 나는 죽어 글자 되되 하늘 천(天)자 하늘 건(乾) 지아비 부(夫) 사내 남(男) 아들 자(子) 몸이 되어 계집 녀(女) 변(邊)에다 딱 붙이면 좋을 호(好)자로 만나 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 또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물이 되되 은하수 폭포수 만경창해수 청계수(淸溪水) 옥계수(玉溪水) 일대장강 던져두고 칠년대한 가물 때도 일상 진진 추져 있는 음양수(陰陽水)란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새가 되되 두견조도 될라 말고 요지 일윌(日月) 청조(靑鳥) 청학(靑鶴) 백학(白鶴)이며 대붕조 그런 새가 될라 말고 쌍거쌍래(雙去雙來) 떠날 줄 모르는 원앙조란 새가 되어 녹수(綠水)에 원앙격(格)으로 어화둥둥 떠 놀거든 나인 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 아니 될라오.”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경주(慶州) 인경도 될라 말고 전주(全州) 인경도 될라 말고 송도(松都) 인경도 될라 말고 장안 종로(鐘路) 인경 되고 나는 죽어 인경 망치 되어 삼십삼천(三十三千) 이십팔수(二十八宿)를 응하여 길마재 봉화 세 자루 꺼지고 남산(南山) 봉화 두 자루 꺼지면 인경 첫마디 치는 소리 그저 뎅뎅 칠 때마다 다른 사람 듣기에는 인경소리로만 알아도 우리 속으로는 춘향 뎅 도련님 뎅이라 만나 보자꾸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방아 확이 되고 나는 죽어 방아 고가 되어 경신년 경신일 경신시에 강태공 조작 방아 그저 떨거덩 떨거덩 찧거들랑 나인 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사랑이야.”

춘향이 하는 말이

“싫소. 그것도 내 아니 될라오.”

“어찌하여 그 말이냐.”

“나는 항시 어찌 이생이나 후생(後生)이나 밑으로만 되라니까 재미없어 못 쓰겠소.”

“그러면 너 죽어 위로 가게 하마. 너는 죽어 돌매 윗짝이 되고 나는 죽어 밑짝 되어 이팔청춘 홍안미색들이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맷대를 잡고 슬슬 두르면 천원지방 격(格)으로 휘휘 돌아가거든 나인 줄 알려무나.”

“싫소 그것도 아니 될라오. 위로 생긴 것이 부아 나게만 생기었소. 무슨 년의 원수로서 일생(一生) 한 구멍이 더하니 아무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명사십리 해당화가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나는 네 꽃송이 물고 너는 내 수염 물고 춘풍(春風)이 건듯 불거든 너울너울 춤을 추고 놀아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내 간간 사랑이지.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이 모두 내 사랑같으면 사랑 걸려 살 수 있나. 어화 둥둥 내사랑 내 예쁜 내 사랑이야. 방긋방긋 웃는 것은 화중왕 모란화가 하룻밤 세우(細雨) 뒤에 반만 피고자 한 듯 아무리 보아도 내 사랑 내 간간이로구나. 그러면 어쩌잔 말이냐. 너와 나와 유정(有情)하니 정자(情字)로 놀아보자. 음상동하여 정자 노래나 불러보세.”

“들읍시다.”

“내 사랑아 들어봐라. 너와 나와 유정하니 어이 아니 다정하리. 담담장강수 유유에 원객정 하교에 불상송 강수원함정 송군남포불승정 무인불견송아정 한태조 희우정, 삼태육경(三台六卿) 백관조정, 도량 청정, 각씨 친정(親庭) 친고통정, 난세평정 우리 둘이 천년인정(千年人情), 월명성희 소상동정(瀟湘洞庭), 세상만물 조화정 근심걱정, 소지 원정 주어 인정, 음식투정 복(福)없는 저 방정, 송정 관정 내정 외정, 애송정 천양정 양귀비 침향정, 이비(二妃)의 소상정(瀟湘亭), 한송정 백화만발 호춘정(好春亭), 기린토월 백운정(白雲亭), 너와 나와 만난 정(情) 일정 실정 논지하면 내 마음은 원형이정(元亨利貞), 네 마음은 일편탁정, 이같이 다정타가 만일 즉 파정하면 복통절정 걱정되니 진정으로 원정(原情)하잔 그 정자(情字)다.”

춘향이 좋아라고 하는 말이

“정(情) 속은 도저하오. 우리집 재수있게 안택경이나 좀 읽어주오.”

도련님 허허 웃고

“그 뿐인 줄 아느냐. 또 있지야. 궁자(宮字) 노래를 들어보아라.”

“애고 얄궂고 우습다. 궁자 노래가 무엇이오.”

“네 들어 보아라. 좋은 말이 많으니라. 좁은 천지(天地) 개탁궁, 뇌성벽력(雷聲霹靂) 풍우(風雨) 속에 서기(瑞氣) 삼광 풀려 있는 엄장하다 창합궁, 성덕(聖德)이 넓으시사 조림이 어인 일고. 주지객 운성하던 은왕의 대정궁(大庭宮), 진시황 아방궁, 문천하득하실 적에 한태조(漢太祖) 함양궁, 그 곁에 장락궁, 반첩여(班첩여)의 장신궁, 당명황제(唐明皇帝) 상춘궁(賞春宮), 이리 올라 이궁

저리 올라서 별궁, 용궁(龍宮) 속의 수정궁, 월궁(月宮) 속의 광한궁(廣寒宮), 너와 나와 합궁하니 평생 무궁이라. 이 궁(宮) 저 궁(宮) 다 버리고 네 양각 새 수룡궁(水龍宮)에 나의 심줄 방망이로 길을 내자꾸나.”

춘향이 반만 웃고

“그런 잡담은 말으시오.”

“그게 잡담 아니로다. 춘향아 우리 둘이 업음질이나 하여보자.”

“애고 참 잡상스러워라. 업음질을 어떻게 하여요.”

업음질 여러번 한성부르게 말하던 것이었다.

“업음질 천하 쉬우니라. 너와 나와 활씬 벗고 업고 놀고 안고도 놀면 그게 업음질이지야.”

“애고 나는 부끄러워 못 벗겠소.”

“에라 요 계집아이야 안 될 말이로다. 내 먼저 벗으마.”

버선 대님 허리띠 바지 저고리 훨씬 벗어 한 편 구석에 밀쳐 놓고 우뚝 서니 춘향이 그 거동을 보고 삥긋 웃고 돌아서며 하는 말이

“영락없는 낮도깨비 같소.”

“오냐 네 말 좋다. 천지만물이 짝 없는게 없느니라. 두 도깨비 놀아보자.”

“그러면 불이나 끄고 노사이다.”

“불이 없으면 무슨 재미 있겠느냐. 어서 벗어라 어서 벗어라.”

“애고 나는 싫어요.”

도련님 춘향 옷을 벗기려 할 제 넘놀면서 어룬다. 만첩청산(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없어 먹든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루는 듯 북해흑룡(北海黑龍)이 여의주를 입에다 물고 채운간에 넘노는 듯 단산 봉황(鳳凰)이 죽실 물고 오동(梧桐) 속에 넘노는 듯 구고 청학(靑鶴)이 난초를 물고서 오송간(梧松間)에 넘노는 듯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다 담쏙 안고 기지개 아드득 떨며 귓밥도 쪽쪽 빨며 입술도 쪽쪽 빨면서 주홍(朱紅)같은 혀를 물고 오색단청 순금장 안에 쌍거쌍래 비둘기같이 꾹꿍 끙끙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쏙 안고 젖을 쥐고 발발 떨며 저고리 치마 바지 속곳까지 활씬 벗겨놓으니 춘향이 부끄러워 한편으로 잡치고 앉았을 제 도련님 답답하여 가만히 살펴보니 얼굴이 복짐하여 구슬땀이 송실송실 앉았구나.

“이애 춘향아 이리 와 업히거라.”

춘향이 부끄러하니

“부끄럽기는 무엇이 부끄러워. 이왕에 다 아는 바니 어서 와 업히거라.”

춘향을 업고 치키시며

“어따 그 계집아이 똥집 장히 무겁다. 네가 내 등에 업히니까 마음이 어떠하냐?”

“한껏나게 좋소이다.”

“좋냐?”

“좋아요.”

“나도 좋다. 좋은 말을 할 것이니 네가 대답만 하여라.”

“말씀 대답하올테니 하여 보옵소서.”

“네가 금(金)이지야?”

“금이라니 당치 않소. 팔년풍진 초한시절에 육출기계 진평이가 범아부를 잡으려고 황금 사만(四萬)을 흩었으니 금이 어이 남으리까.”

“그러면 진옥(眞玉)이냐?”

“옥이라니 당치 않소. 만고영웅 진시황이 형산(荊山)의 옥을 얻어 이사의 명필(名筆)로 수명우천기수영창이라. 옥새를 만들어서 만세유전을 하였으니 옥이 어이 되오리까.”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해당화냐?”

“해당화라니 당치 않소. 명사십리(明沙十里) 아니거든 해당화가 되오리까.”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밀화 금패 호박(琥珀) 진주냐?”

“아니 그것도 당치 않소. 삼태육경(三台六卿) 대신재상(大臣宰相) 팔도방백 수령님네 갓끈 풍잠 다하고서 남은 것은 경향(京鄕)의 일등명기(一等名妓) 지환 벌 허다히 다 만드니 호박 진주 부당하오.”

“네가 그러면 대모(玳瑁) 산호(珊瑚)냐?”

“아니 그것도 내 아니오. 대모 간 큰 병풍 산호로 난간하여 광리왕 상량문(上樑文)에 수궁보물(水宮寶物) 되었으니 대모 산호가 부당이오.”

“네가 그러면 반달이냐?”

“반달이라니 당치 않소. 금야(今夜) 초생 아니거든 벽공에 돋은 명월(明月) 내가 어찌 기오리까.”

“네가 그러면 무엇이냐. 날 호려 먹는 불여우냐? 네 어머니 너를 낳아 곱도 곱게 길러내어 나만 호려 먹으라고 생겼느냐. 사랑 사랑 사랑이야 내 간간 내 사랑이야. 네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생률(生栗) 숙률(熟栗)을 먹으려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자 대모장도 드는 칼로 뚝 떼고 강릉 백청을 두루 부어 은수저 반간자로 붉은 점 한 점을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시금털털 개살구를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냐. 돝 잡아 주랴 개 잡아 주랴. 내 몸 통채 먹으려느냐.”

“여보 도련님. 내가 사람 잡아먹는 것 보았소?”

“예라 요것 안될 말이로다. 어화 둥둥 내 사랑이지. 이 애 그만 내리려무나. 백사만사가 다 품앗이가 있느니라. 내가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 업어야지.”

“애고 도련님은 기운이 세어서 나를 업었거니와 나는 기운이 없어 못 업겠소.”

“업는 수가 있느니라. 나를 돋워 업으려 말고 발이 땅에 자운자운하게 뒤로 잦은 듯 하게 업어다오.”

도련님을 업고 툭 추어 놓(으)니 대중이 틀렸구나.

“애고 잡상스러워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내가 네 등에 업혀 놓(으)니 마음이 어떠하냐. 나도 너를 업고 좋은 말을 하였으니 너도 나를 업고 좋은 말을 하여야지.”

“좋은 말을 하오리다 들으시오. 부열이를 업은 듯, 여상이를 업은 듯, 흉중대략 품었으니 명만일국 대신(大臣)되어 주석지신 보국충신 모두 헤아리니 사육신을 업은 듯, 생육신을 업은 듯, 일(日)선생 월(月)선생 고운선생을 업은 듯, 제봉을 업은 듯, 요동백을 업은 듯, 정송강을 업은 듯, 충무공(忠武公)을 업은 듯, 우암 퇴계 사계 명재를 업은 듯, 내 서방이지 내 서방. 알뜰 간간 내 서방.

진사급제(進士及第) 대 받쳐 직부주서 한림학사 이렇듯이 된 연후 부승지 좌승지 도승지로 당상하여 팔도방백(八道方伯) 지낸 후 내직으로 각신 대교 복상 대제학 대사성 판서 좌상 우상 영상 규장각하신 후에 내삼천 외팔백 주석지신(柱石之臣) 내 서방 알뜰 간간 내 서방이지.”

제 손수 농즙나게 문질렀구나.

“춘향아 우리 말놀음이나 좀 하여보자.”

“애고 참 우스워라. 말놀음이 무엇이오?”

말놀음 많이 하여 본 성부르게.

“천하 쉽지야. 너와 나와 벗은 김에 너는 온 방바닥을 기어다녀라. 나는 네 궁둥이에 딱 붙어서 네 허리를 잔뜩 끼고 볼기짝을 내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이리 하거든 흐흥거려 퇴김질로 물러서며 뛰어라. 알심있게 뛰게 되면 탈 승자(乘字) 노래가 있느니라.”

타고 놀자 타고 놀자. 헌원씨 습용간과 능작대무 치우 탁녹야에 사로잡고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면서 지남거를 높이 타고, 하우씨 구년지수 다스릴 제 육행승거 높이 타고, 적송자 구름 타고 여동빈 백로(白鷺) 타고, 이적선(李謫仙) 고래 타고, 맹호연 나귀 타고, 태을선인 학을 타고, 대국천자 코끼리 타고, 우리 전하(殿下)는 연을 타고, 삼정승(三政丞)은 평교자를 타고, 육판서(六判書)는 초헌 타고, 훈련대장은 수레 타고, 각읍 수령은 독교 타고, 남원부사는 별연을 타고, 일모장강 어옹(漁翁)들은 일엽편주(一葉片舟) 도도 타고, 나는 탈 것 없었으니 금야(今夜) 삼경(三更) 깊은 밤에 춘향 배를 넌짓 타고 홑이불로 돛을 달아 내 기계로 노를 저어 오목섬을 들어가되 순풍에 음양수(陰陽水)를 시름없이 건너갈 제 말을 삼아 탈 양이면 걸음걸이 없을소냐. 마부(馬夫)는 내가 되어 네 구종을 넌지시 잡아 구종걸음 반부새로 화장으로 걸어라.

기총마(騎聰馬) 뛰 듯 뛰어라. 온갖 장난을 다 하고 보니 이런 장관(壯觀)이 또 있으랴. 이팔(二八) 이팔(二八) 둘이 만나 미친 마음 세월 가는 줄 모르던가 보더라.

이때 뜻밖에 방자 나와

“도련님. 사또께옵서 부르시오.”

도련님 들어가니 사또 말씀하시되

“여봐라 서울서 동부승지 교지가 내려왔다. 나는 문부사정하고 갈 것이니 너는 내행을 배행하여 명일(明日)로 떠나거라.”

도련님 부교(父敎) 듣고 일변은 반갑고 일변은 춘향을 생각하니 흉중이 답답하여 사지에 맥이 풀리고 간장이 녹는 듯 두 눈으로 더운 눈물이 펄펄 솟아 옥면(玉面)을 적시거늘. 사또 보시고

“너 왜 우느냐. 내가 남원을 일생(一生) 살 줄로 알았더냐. 내직(內職)으로 승차되니 섭섭히 생각 말고 금일부터 치행등절을 급히 차려 명일 오전으로 떠나거라.”

겨우 대답하고 물러나와 내아(內衙)에 들어가 사람이 무론상중하하고 모친께는 허물이 적은지라. 춘향의 말을 울며 청하다가 꾸중만 실컷 듣고 춘향의 집을 나오는데 설움은 기가 막히나 노상에서 울 수 없어 참고 나오는데 속에서 두부장 끓 듯 하는지라. 춘향 문전 당도하니 통채 건더기채 보채 왈칵 쏟아져 놓(으)니

“어 푸 어 푸 어 허.”

춘향이 깜짝 놀래어 왈칵 뛰어 내달아

“애고 이게 웬일이오.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꾸중을 들으셨소. 노상에 오시다가 무슨 분함 당하(여) 계(시)오. 서울서 무슨 기별이 왔다더니 중복을 입어계(시)오. 점잖으신 도련님이 이것이 웬 일이오.”

춘향이 도련님 목을 담쏙 안고 치맛자락을 걷어 잡고 옥안(玉顔)에 흐르는 눈물 이리 씻고 저리 씻으면서

“울지 마오. 울지 마오.”

도련님 기가 막혀 울음이란게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더 울던 것이었다. 춘향이 화를 내어

“여보 도련님 입 보기 싫소. 그만 울고 내력 말이나 하오.”

“사또께옵서 동부승지하(여) 계시단다.”

춘향이 좋아하여

“댁의 경사요. 그래서, 그러면 왜 운단 말이오?”

“너를 버리고 갈 터이니 내 아니 답답하냐.”

“언제는 남원 땅에서 평생 살으실 줄로 알았겠소. 나와 어찌 함께 가기를 바라리요. 도련님 먼저 올라가시면 나는 예서 팔 것 팔고 추후(追後)에 올라갈 것이니 아무 걱정 말으시오. 내 말대로 하였으면 군색잖고 좋을 것이요. 내가 올라가더라도 도련님 큰 댁으로 가서 살 수 없을 것이니 큰 댁 가까이 조그마한 집 방이나 두엇 되면 족하오니 염탐하여 사 두소서. 우리 권구 가더라도 공밥 먹지 아니할 터이니 그렁저렁 지내다가 도련님 나만 믿고 장가 아니갈 수 있소. 부귀영총 재상가의 요조숙녀 가리어서 혼정신성할지라도 아주 잊든 마옵소서. 도련님 과거하여 벼슬 높아 외방 가면 신래마마 치행할 제 마마로 내세우면 무슨 말이 되오리까. 그리 알아 조처하오.”

“그게 이를 말이냐. 사정이 그렇기로 네 말을 사또께는 못 여쭈고 대부인전(大夫人前) 여쭈오니 꾸중이 대단하시며 양반의 자식이 부형(父兄)따라 하향에 왔다 화방작첩하여 데려간단 말이 전정에도 괴이하고 조정에 들어 벼슬도 못한다더구나. 불가불 이별이 될 밖에 수 없다.”

춘향이 이 말을 듣더니 고대 발연변색이 되며 요두전목에 붉으락 푸르락 눈을 간잔지런하게 뜨고 눈썹이 꼿꼿하여지면서 코가 발심발심하며 이를 뽀드득 뽀드득 갈며 온몸을 쑤신 입 틀 듯하며 매 꿩 차는 듯 하고 앉더니

“허허 이게 왠 말이오.”

왈칵 뛰어 달려들며 치맛자락도 와드득 좌르륵 찢어 버리며 머리도 와드득 쥐어뜯어 싹싹 비벼 도련님 앞에다 던지면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이것도 쓸데 없다.”

명경(明鏡) 체경 산호죽절을 두루 쳐 방문 밖에 탕탕 부딪치며 발도 동동 굴러 손뼉치고 돌아앉아 자탄가(自嘆歌)로 우는 말이

“서방 없는 춘향이가 세간살이 무엇하며 단장하여 뉘 눈에 괴일꼬. 몹쓸 년의 팔자로다. 이팔청춘 젊은 것이 이별될 줄 어찌 알랴. 부질없는 이내 몸을 허망하신 말씀으로 전정(前程) 신세 버렸구나.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천연히 돌아앉아

“여보 도련님 이제 막 하신 말씀 참말이요 농말이요.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백년언약 맺을 적에 대부인 사또께옵서 시키시던 일이오니까. 빙자가 웬 일이요.

광한루서 잠깐 보고 내 집에 찾아와서 침침무인 야삼경에 도련님은 저기 앉고 춘향 나는 여기 앉아 날더러 하신 말씀 구맹불여천맹이요 산맹불여천맹이라고 전년 오월 단오야(夜)에 내 손길 부여잡고 우둥퉁퉁 밖에 나와 당중(堂中)에 우뚝 서서 경경히 맑은 하늘 천 번이나 가리키며 만 번이나 맹세키로 내 정녕 믿었더니 말경(末境)에 가실 때는 톡 떼어 버리시니 이팔청춘 젊은 것이 낭군 없이 어찌 살꼬. 침침공방 추야장에 시름 상사 어이할꼬. 모질도다 모질도다 도련님이 모질도다. 독하도다 독하도다 서울 양반 독하도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존비귀천(尊卑貴賤) 원수로다. 천하에 다정한 게 부부정(夫婦情) 유별(有別)컨만 이렇듯 독한 양반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여보 도련님 춘향 몸이 천(賤)타고 함부로 버리셔도 그만인 줄 알지 마오. 첩지박명 춘향이가 식불감 밥 못 먹고 침불안 잠 못 자면 며칠이나 살 듯하오. 상사로 병이 들어 애통하다 죽게 되면 애원한 내 혼신(魂神) 원귀(怨鬼)가 될 것이니 존중(尊重)하신 도련님이 근들 아니 재앙이요. 사람의 대접을 그리 마오. 인물 거천하는 법이 그런 법이 왜 있을꼬. 죽고지고 죽고지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한참 이리 자진하여 설이 울 제 춘향모는 물색(物色)도 모르고

“애고 저것들 또 사랑 싸움이 났구나. 어 참 아니꼽다. 눈 구석 쌍 가래톳 설 일 많이 보네.”

하고 아무리 들어도 울음이 장차 길구나. 하던 일을 밀쳐 놓고 춘향 방 영창 밖으로 가만가만 들어가며 아무리 들어도 이별이로구나.

“허허 이것 별일 났다.”

두 손뼉 땅땅 마주 치며

“허 동네 사람 다 들어 보오. 오늘날로 우리 집에 사람 둘 죽습네.”

어간 마루 섭적 올라 영창문을 뚜드리며 우루룩 달려들어 주먹으로 겨누면서

“이년 이년 썩 죽어라. 살아서 쓸데없다. 너 죽은 시체라도 저 양반이 지고 가게. 저 양반 올라가면 뉘 간장을 녹이려냐. 이년 이년 말 듣거라. 내 일상 이르기를 후회되기 쉽느니라. 도도한 마음 먹지 말라고 여염 사람 가리어서 형세 지체 너와 같고 재주 인물이 모두 너와 같은 봉황의 짝을 얻어 내 앞에 노는 양을 내 안목에 보았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마음이 도고하여 남과 별로 다르더니 잘 되고 잘 되었다.”

두 손뼉 꽝꽝 마주 치면서 도련님 앞에 달려들어

“나와 말 좀 하여 봅시다. 내 딸 춘향을 버리고 간다 하니 무슨 죄로 그러시오. 춘향이 도련님 모신 지 거진 일 년 되었으되 행실이 그르던가 예절이 그르던가 침선(針線)이 그르던가 언어가 불순턴가 잡스런 행실 가져 노류장화 음란턴가. 무엇이 그르던가. 이 봉변이 웬 일인가. 군자 숙녀 버리는 법 칠거지악 아니면은 못 버리는 줄 모르는가. 내 딸 춘향 어린 것을 밤낮으로 사랑할 제 안고 서고 눕고 지며 백년 삼만육천일에 떠나 살지 말자 하고 주야장천 어루더니 말경에 가실 제는 뚝 떼어 버리시니 양류천만사인들 가는 춘풍(春風) 어이 하며 낙화낙엽되게 되면 어느 나비가 다시 올까. 백옥같은 내 딸 춘향 화용신도 부득이 세월에 장차 늙어져 홍안(紅顔)이 백수(白首)되면 시호시호부재래라. 다시 젊든 못 하나니 무슨 죄가 진중하여 허송(虛送) 백년 하오리까. 도련님 가신 후에 내 딸 춘향 님 그릴 제 월정명 야삼경에 첩첩수심(疊疊愁心) 어린 것이 가장(家長) 생각 절로 나서 초당전(草堂前) 화계상담배 피워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불꽃같은 시름 상사 흉중으로 솟아나 손 들어 눈물 씻고 후유 한숨 길게 쉬고 북편을 가리키며 한양 계신 도련님도 나와 같이 그리(워하)신지 무정하여 아주 잊고 일장 편지 아니 하신가. 긴 한숨에 듣는 눈물 옥안홍상(玉顔紅裳) 다 적시고 저의 방으로 들어가서 의복도 아니 벗고 외로운 베개 위에 벽만 안고 돌아누워 주야장탄(晝夜長嘆) 우는 것은 병 아니고 무엇이오. 시름 상사 깊이 든 병 내 구(救)치 못하고서 원통히 죽게 되면 칠십 당년 늙은 것이 딸 잃고 사위 잃고 태백산 갈가마귀 게발 물어다 던지 듯이 혈혈단신 이 내 몸이 뉘를 믿고 살잔 말고. 남 못할 일 그리 마오. 애고 애고 설운지고. 못하지요. 몇 사람 신세를 망치려고 아니 데려가오. 도련님 대가리가 둘 돋쳤소. 애고 애고 무서(워)라 이 쇠 띵띵아.”

왈칵 뛰어 달려드니 이 말 만일 사또께 들어가면 큰 야단이 나겠거든

“여보소 장모. 춘향만 데려갔으면 그만 두겠네.”

“그래 아니 데려가고 견뎌낼까.”

“너무 거세우지 말고 여기 앉아 말 좀 듣소. 춘향을 데려간대도 가마 쌍교 말을 태워 가자 하니 필경에 이 말이 날 것인즉 달리는 변통할 수 없고 내 이 기가 막히는 중에 꾀 하나를 생각하고 있네마는 이 말이 입 밖에 나서는 양반 망신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선조(先祖) 양반이 모두 망신할 말이로세.”

“무슨 말이 그리 좌뜬말이 있단 말인가.”

“내일 내행(內行)이 나오실 제 내행 뒤에 사당이 나올 테니 배행(陪行)은 내가 하겠네.”

“그래서요.”

“그만하면 알지.”

“나는 그 말 모르겠소.”

“신주(神主)는 모셔내어 내 창옷 소매에다 모시고 춘향은 요여에다 태워 갈 밖에 수가 없네. 걱정 말고 염려 마소.”

춘향이 그 말 듣고 도련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마소 어머니. 도련님 너무 조르지 마소. 우리 모녀 평생 신세 도련님 장중(掌中)에 매었으니 알아 하라 당부나 하오. 이번은 아마도 이별할 밖에 수가 없네. 이왕에 이별이 될 바에는 가시는 도련님을 왜 조르리까마는 우선 갑갑하여 그러하지. 내 팔자야. 어머니 건넌방으로 가옵소서. 내일은 이별이 될 텐가 보오.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이별을 어찌할꼬. 여보 도련님.”

“왜야.”

“여보 참으로 이별을 할 테요.”

촛불을 돋우(어) 켜고 둘이 서로 마주앉아 갈 일을 생각하고 보낼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 한숨질 눈물겨워 경경오열하여 얼굴도 대어보고 수족도 만져보며

“날 볼 날이 몇 밤이오. 애달파 나쁜 수작 오늘 밤이 망종(亡終)이니 나의 설운 원정(原情) 들어보오. 연근육순 나의 모친 일가친척 바이 없고 다만 독녀(獨女) 나 하나라. 도련님께 의탁하여 영귀(榮貴)할까 바랐더니 조물(造物)이 시기하고 귀신이 작해하여 이 지경이 되었구나. 애고 애고 내 일이야. 도련님 올라가면 나는 뉘를 믿고 사오리까. 천수만한 나의 회포 주야 생각 어이 하리. 이화(李花) 도화(桃花) 만발할 제 수변행락 어이 하며 황국(黃菊) 단풍 늦어갈 제 고절숭상 어이할꼬. 독숙공방 긴긴 밤에 전전반측 어이하리. 쉬느니 한숨이요 뿌리느니 눈물이라. 적막강산 달 밝은 밤에 두견성(杜鵑聲)을 어이 하리. 상풍고절 만리변(萬里邊)에 짝 찾는 저 홍안성을 뉘라서 금하오며 춘하추동 사시절에 첩첩이 쌓인 경물(景物) 보는 것도 수심이요 듣는 것도 수심이라.”

애고 애고 설이 울 제 이도령 이른 말이

“춘향아 울지 마라. 부수소관첩재오라. 소관의 부수들과 오나라 정부들도 동서(東西) 님 그리워서 규중심처(閨中深處) 늙어 있고

정객관산로기중에 관산의 정객이며 녹수부용 채연녀도 부부신정(夫婦新情) 극중(極重)타가 추월강산(秋月江山) 적막한데 연을 키워 상사하니 나 올라간 뒤라도 창전에 명월(明月)커든 천리(千里) 상사 부디 마라. 너를 두고 가는 내가 일일(一日) 평분 십이시(十二時)를 낸들 어이 무심하랴.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춘향이 또 우는 말이

“도련님 올라가면 행화춘풍(杏花春風) 거리거리 취하는 게 장진주요 청루미색(靑樓美色) 집집마다 보시느니 미색이요 처처에 풍악소리 간 곳마다 화월(花月)이라. 호색하신 도련님이 주야 호강 놀으실 제 나같은 하방천첩이야 손톱만큼(이)나 생각하오리까.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춘향아 울지 마라. 한양성 남북촌(南北村)에 옥녀가인(玉女佳人) 많건마는 규중심처 깊은 정 너밖에 없었으니 이 아무리 대장부인들 일각이나 잊을소냐.”

서로 피차 기가 막혀 연연(戀戀) 이별 못 떠날지라. 도련님 모시고 갈 후배사령이 나올 적에 헐떡헐떡 들어오며

“도련님 어서 행차하옵소서. 안에서 야단났소. 사또께옵서 도련님 어디 가셨느냐 하옵기에 소인이 여쭙기를 놀던 친구 작별차로 문밖에 잠깐 나가셨노라 하였사오니 어서 행차하옵소서.”

“말 대령하였느냐.”

“말 마침 대령하였소.”

백마욕거장시(白馬欲去長嘶)하고 청아석별견의로다. 말은 가자고 네 굽을 치는데 춘향은 마루 아래 툭 떨어져 도련님 다리를 부여잡고

“날 죽이고 가면 가지 살리고는 못 가고 못 가느니.”

말 못하고 기절하니 춘향모 달려들어

“향단아 찬물 어서 떠오너라. 차를 달여 약 갈아라. 네 이 몹쓸 년아 늙은 어미 어쩌려고 몸을 이리 상하느냐.”

춘향이 정신 차려

“애고 갑갑하여라.”

춘향의 모 기가 막혀

“여보 도련님 남의 생때같은자식을 이 지경이 웬 일이오. 절곡한 우리 춘향 애통하여 죽게 되면 혈혈단신 이내 신세 뉘를 믿고 살잔 말(인)고.”

도련님 어이없어

“이봐 춘향아 네가 이게 웬 일이냐. 나를 영영 안 보려느냐. 하량낙일수운기는 소통국의 모자(母子) 이별, 정객관산로기중에 오희월녀 부부 이별, 편삽수유소일인은 용산의 형제 이별, 서출양관무고인은 위성의 붕우(朋友) 이별. 그런 이별 많아도 소식 들을 때가 있고 생면(生面)할 날이 있었으니 내가 이제 올라가서 장원급제 출신하여 너를 데려갈 것이니 울지 말고 잘 있거라. 울음을 너무 울면 눈도 붓고 목도 쉬고 골머리도 아프니라. 돌이라도 망두석은 천만년이 지나가도 광석될 줄 모르고 나무라도 상사목은 창 밖에 우뚝 서서 일년춘절(一年春節) 다 지나되 잎이 필 줄 모르고 병이라도 훼심병은 오매불망 죽느니라. 네가 나를 보려거든 설워 말고 잘 있거라.”

춘향이 할 길 없어

“여보 도련님. 내 손에 술이나 망종 잡수시오. 행찬없이 가실진대 나의 찬합갊아다가 숙소참 잘 자리에 날 본 듯이 잡수시오. 향단아 찬합 술병 내오너라.”

춘향이 일배주 가득 부어 눈물 섞어 드리면서 하는 말이

“한양성 가시는 길에 강수(江樹) 청청(靑靑) 푸르거든 원함정을 생각하고 천시가절(天時佳節) 때가 되어 세우(細雨)가 분분커든 노상행인욕단혼이라. 마상(馬上)에 곤핍(困乏)하여 병이 날까 염려(되)오니 방초 무초 저문 날에 일찍 들어 주무시고 아침날 풍우상(風雨上)에 늦게야 떠나시며 한 채찍 천리마에 모실 사람 없사오니 부디부디 천금귀체 시사 안보(安保)하옵소서. 녹수진경도에 평안히 행차하옵시고 일자(一字) 음신 듣사이다. 종종 편지나 하옵소서.”

도련님 하는 말이

“소식 듣기 걱정 마라. 요지(瑤地)의 서왕모(西王母)도 주목왕(周穆王)을 만나려고 일쌍 청조 자래(自來)하여 수천리 먼먼 길에 소식 전송하였었고 한무제(漢武帝) 중랑장은 상림원 군부전(君父前)에 일척금서 보았으니 백안(白雁) 청조 없을망정 남원 인편(人便) 없을소냐. 슬퍼 말고 잘 있거라.”

말을 타고 하직하니 춘향 기가 막혀 하는 말이

“우리 도련님이 가네 가네 하여도 거짓말로 알았더니 말 타고 돌아서니 참으로 가는구나.”

춘향이가 마부더러

“마부야. 내가 문 밖에 나설 수가 없는 터니 말을 붙들어 잠깐 지체하여 서라. 도련님께 한 말씀 여쭐란다.”

춘향이 내달아

“여보 도련님. 인제 가시면 언제나 오시려오. 사절(四節), 소식 끊어질 절(絶), 보내나니 아주 영절, 녹죽(綠竹) 창송(蒼松) 백이숙제(伯夷叔齊) 만고충절(萬古忠節), 천산(千山)에 조비절, 와병(臥病)에 인사절(人事絶), 죽절(竹節), 송절(松節), 춘하추동 사시절, 끊어져 단절, 분절(分絶), 훼절, 도련님은 날 버리고 박절히 가시니 속절없는 나의 정절, 독수공방 수절할 제 어느 때에 파절(破節)할꼬. 첩의 원정(寃情) 슬픈 고절(苦節) 주야 생각 미절(未絶)할 제 부디 소식 돈절마오.

대문 밖에 거꾸러져 섬섬한 두 손길로 땅을 꽝꽝 치며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애고 일성(一聲) 하는 소리 황애산만풍소삭이요 정기무광일색박이라. 엎더지며 자빠질 제 서운찮게 갈 양이면 몇 날 며칠 될 줄 모를레라. 도련님 타신 말은 준마가편이 아니냐. 도련님 낙루(落淚)하고 훗 기약을 당부하고 말을 채쳐 가는 양은 광풍(狂風)에 편운(片雲)일레라.

 

 

이때 춘향이 하릴없어 자던 침방으로 들어가서

“향단아. 주렴 걷고 안석 밑에 베개 놓고 문 닫아라. 도련님을 생시는 만나보기 망연하니 잠이나 들면 꿈에 만나 보자. 예로부터 이르기를 꿈에 와 보이는 님은 신(信)이 없다고 일렀건만 답답히 그릴 진댄 꿈 아니면 어이 보리. 꿈아 꿈아. 네 오너라. 수심 첩첩 한이 되어 몽불성에 어이하랴.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인간 이별 만사(萬事) 중에 독수공방 어이하리. 상사불견 나의 심경 그 뉘라서 알아 주리. 미친 마음 이렁저렁 흐트러진 근심 후려쳐 다 버리고 자나 누우나 먹고 깨나 님 못 보아 가슴 답답 어린 양기(陽氣) 고운 소리 귀에 쟁쟁. 보고지고 보고지고 님의 얼굴 보고지고. 듣고지고 듣고지고 님의 소리 듣고지고. 전생에 무슨 원수로 우리 둘이 생겨나서 그린상사 한데 만나 잊지 말자 처음 맹세,

죽지 말고 한데 있어 백년기약 맺은 맹세 천금주옥(千金珠玉) 꿈 밖이요 세사일관 관계하랴. 근원 흘러 물이 되고 깊고 깊고 다시 깊고 사랑 모여 뫼가 되어 높고 높고 다시 높아 끊어질 줄 모르거든 무너질 줄 어이 아리. 귀신이 작해하고 조물이 시기로다. 일조(一朝) 낭군 이별하니 어느 날에 만나 보리. 천수만한(千愁萬恨) 가득하여 끝끝내 느끼워라. 옥안운빈 공로한이 일월이 무정이라. 오동추야 달 밝은 밤은 어이 그리 더디 새며 녹음방초 비낀 곳에 해는 어이 더디 간고. 이 상사 알으시면 님도 나를 그릴련만 독수공방 홀로 누워 다만 한숨 벗이 되고 구곡간장 굽이 썩어 솟아나니 눈물이라. 눈물 모여 바다 되고 한숨지어 청풍 되면 일엽주 물어 타고 한양낭군 찾으련만 어이 그리 못 보는고. 우수명월(憂愁明月) 달 밝은 때 설심조군 느끼오니 소연(昭然)한 꿈이로다. 현야월 두우성은 님 계신 곳 비치련만 심중에 앉은 수심 나 혼자뿐이로다. 야색(夜色) 창망한데 경경(耿耿)이 비치는 게 창외(窓外)의 형화로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앉았은들 님이 올까 누웠은들 잠이 오랴. 님도 잠도 아니온다. 이 일을 어이하리. 아마도 원수로다. 흥진비래 고진감래 예로부터 있건마는 기다림도 적지 않고 그린 지도 오래건만 일촌간장(一寸肝腸) 굽이굽이 맺힌 한을 님 아니면 뉘라 풀꼬. 명천(明天)은 하감하사 수이 보게 하옵소서. 미진인정(未盡人情) 다시 만나 백발이 다 진(盡)토록 이별없이 살고지고. 묻노라 녹수청산 우리 님 초췌행색 애연히 일별(一別) 후에 소식조차 돈절하다. 인비목석이어든 님도 응당 느끼리라.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앙천자탄(仰天自嘆)에 세월을 보내는데 이때 도련님은 올라갈 제 숙소마다 잠 못 이뤄 보고지고 나의 사랑 보고지고 주야불망(晝夜不忘) 우리 사랑 날 보내고 그린 마음 속히 만나 풀으리라. 일구월심(日久月心) 굳게 먹고 등과 외방(外方) 바라더라.

이때 수삭(數朔)만에 신관(新官) 사또 났으되 자하골 변학도(卞學道)라 하는 양반이 오는데 문필도 유여하고 인물 풍채 활달하고 풍류 속에 달통하여 외입 속이 넉넉하되 한갓 흠이 성정 괴퍅한 중에 사증을 겸하여 혹시 실덕(失德)도 하고 오결하는 일이 간다고로 세상에 아는 사람은 다 고집불통이라 하것다. 신연하인 하인 현신할 제

“사령 등 현신이요.”

“이방이요.”

“감상이요.”

“수배요.”

“이방 부르라.”

“이방이요.”

“그새 너희 골에 일이나 없느냐.”

“예. 아직 무고(無故)합니다.”

“네 골 관노(官奴)가 삼남에 제일이라지.”

“예. 부림직하옵니다.”

“또 네 골에 춘향이란 계집이 매우 색(色)이라지.”

“예.”

“잘 있냐.”

“무고하옵니다.”

“남원이 예서 몇 린고.”

“육백 삽십 리로소이다.”

마음이 바쁜지라

“급히 치행(治行)하라.”

신연하인 물러나와

“우리 골에 일이 났다.”

이때 신관 사또 출행 날을 급히 받아 도임차(次)로 내려올 제 위의도 장할시고. 구름같은 별연(別輦) 독교(獨轎) 좌우 청장 떡 벌이고 좌우편 부축 급창 물색 진한 모시 천익 백저전대 고를 늘여 엇비슷이 눌러 매고 대모관자 통영갓을 이마 눌러 숙여쓰고 청장 줄 검쳐 잡고

“에라 물러섰다 나 있거라.”

혼금이 지엄(至嚴)하고 

“좌우 구종 긴경마에 뒷채잡이 힘써라.”

통인 한쌍 책 전립에 행차 배행 뒤를 따르고 수배(首陪) 감상(監床) 공방이며 신연이방 가선하다. 노자 한쌍 사령 한쌍 일산보종 전배하여 대로변에 갈라 서고 백방수주 일산 복판 남수주 선을 둘러 주석(朱錫) 고리 어른어른 호기있게 내려올 제 전후에 혼금소리 청산(靑山)이 상응하고 권마성 높은 소리 백운(白雲)이 담담(澹澹)이라. 전주에 득달하여 경기전 객사 연명하고 영문(營門)에 잠깐 다녀 좁은목 썩 내달아 만마관 노구바위 넘어 임실 얼른 지나 오수 둘러 중화하고 즉일(卽日) 도임할 새 오리정으로 들어갈 제 천총이 영솔(領率)하고 육방(六房) 하인 청도도로 들어올 제 청도(淸道) 한쌍, 홍문기 한쌍, 주작 남동각(南東角) 남서각(南西角) 홍초남문 한쌍, 청룡 동남각(東南角) 서남각(西南角) 남초 한쌍, 현무 북동각(北東角) 북서각(北西角) 흑초홍문 한쌍, 등사

순시 한쌍, 영기 한쌍, 집사 한쌍, 기패관 한쌍, 군노(軍奴) 열두 쌍, 좌우가 요란하다. 행군 취타 풍악 소리 성동(城東)에 진동하고 삼현육각 권마성은 원근에 낭자하다. 광한루에 포진하여 개복(改服)하고 객사에 연명차로 남여 타고 들어갈새 백성 소시(所視) 엄숙하게 보이려고 눈을 별양 궁글궁글 객사에 연명하고 동헌에 좌기하고 도임상(到任床)을 잡순 후

“행수는 문안이요.”

행수, 군관(軍官) 집례받고 육방, 관속 현신 받고 사또 분부하되

“수노 불러 기생 점고하라.”

호장이 분부 듣고 기생 안책 들여 놓고 호명을 차례로 부르는데 낱낱이 글귀로 부르던 것이었다.

“우후동산(雨後東山) 명월(明月)이.”

명월이가 들어를 오는데 나군 자락을 걷음걷음 걷어다가 세요흉당에 딱 붙이고 아장아장 들어를 오더니

“점고 맞고 나오.”

“어주축수애산춘에 양편 난만 고운 춘색(春色)이 이 아니냐. 도홍(桃紅)이.”

도홍이가 들어를 오는데 홍상 자락을 걷어 안고 아장아장 조촘 걸어 들어를 오더니

“점고 맞고 나오.”

“단산(丹山)에 저 봉이 짝을 잃고 벽오동에 깃들이니 산수지영이요 비충지정이라. 기불탁속 굳은 절개 만수문전(萬壽門前) 채봉(彩鳳)이.”

채봉이가 들어오는데 나군 두른 허리 맵시 있게 걷어 안고 연보를 정히 옮겨 아장아장 걸어 들어와

“점고 맞고 좌부진퇴로 나오.”

“청정지연 불개절에 묻노라 저 연화(蓮花) 어여쁘고 고운 태도 화중군자(花中君子) 연심(蓮心)이.”

연심이가 들어오는데 나상을 걷어 안고 나말 수혜 끌면서 아장 걸어 가만가만 들어오더니

“좌부진퇴로 나오.”

“화씨같이 밝은 달 벽해(碧海)에 들었나니 형산백옥(荊山白玉) 명옥(明玉)이.”

명옥이가 들어오는데 기하상 고운 태도 이행(履行)이 진중한데 아장 걸어 가만가만 들어를 오더니

“점고 맞고 좌부 진퇴로 나오.”

“운담풍경근오천에 양류편금에 앵앵(鶯鶯)이.”

앵앵이가 들어오는데 홍상 자락을 에후리쳐 세요흉당에 딱 붙이고 아장 걸어 가만가만 들어오더니

“점고 맞고 좌부진퇴로 나오.”

사또 분부하되

“자주 부르라.”

“예.”

호장이 분부 듣고 넉자 화두로 부르는데

“광한전 높은 집에 헌도하던 고운 선비(仙妃) 반겨 보니 계향(桂香)이.”

“예. 등대하였소.”

“송하(松下)에 저 동자(童子)야. 묻노라 선생 소식. 수첩청산(數疊靑山)에 운심(雲心)이.”

“예. 등대하였소.”

“월궁(月宮)에 높이 올라 계화(桂花)를 꺾어 애절(愛折)이.”

“예. 등대하였소.”

“차문주가하처재요 목동요지 행화(杏花).”

“예. 등대하였소.”

“아미산월반륜추 영입평강에 강선(江仙)이.”

“예. 등대하였소.”

“오동 복판 거문고 타고 나니 탄금(彈琴)이.”

“예. 등대하였소.”

“팔월 부용(芙蓉) 군자 용(容)은 만당추수 홍련(紅蓮)이.”

“예. 등대하였소.”

“주홍당사 갖은 매듭 차고 나니 금낭(錦囊)이.”

“예. 등대하였소.”

사또 분부하되

“한숨에 열 두서넛씩 불러라.”

호장이 분부 듣고 자주 부르는데

“양대선 월중선 화중선이.”

“예. 등대하였소.”

“금선이 금옥이 금련이.”

“예. 등대하였소.”

“농옥이 난옥이 홍옥이.”

“예. 등대하였소.”

“바람맞은 낙춘이.”

“예. 등대 들어를 가오.”

낙춘이가 들어를 오는데 제가 잔뜩 맵시 있게 들어오는 체하고 들어오는데 소면한단 말은 듣고 이마빡에서 시작하여 귀 뒤가지 파 제치고 분성적한단 말은 들었던가 개분 석 냥 일곱 돈어치를 무지금하고 사다가 성(城) 겉에 회칠하듯 반죽하여 온 낯에다 맥질하고 들어오는데 키는 사근내 장승만한 년이 치마 자락을 훨씬 추워다 턱밑에 딱 붙이고 무논의 고니 걸음으로 낄룩 껑쭝 엉금엉금 섭적 들어오더니

“점고 맞고 나오.”

연연(娟娟)히 고운 기생 그 중에 많건마는 사또께옵서는 근본 춘향의 말을 높이 들었는지라 아무리 들으시되 춘향 이름 없는지라 사또 수노 불러 묻는 말이

“기생점고 다 되어도 춘향은 안 부르니 퇴기냐.”

수노 여쭈오되

“춘향모는 기생이되 춘향은 기생이 아닙니다.”

사또 문왈

“춘향이가 기생이 아니면 어찌 규중에 있는 아이 이름이 높이 난다?”

수노 여주오되

“근본 기생의 딸이옵고 덕색(德色)이 장한 고로 권문세족 양반네와 일등재사(一等才士) 한량들과 내려오신 등내마다 구경코자 간청하되 춘향모녀 불청(不聽)키로 양반 상하 물론하고 액내지간 소인 등도 십년 일득대면하되 언어수작 없었더니 천정(天定)하신 연분인지 구관(舊官) 사또 자제 이도련님과 백년기약 맺사옵고 도련님 가실 때에 입장후에 데려가마 당부하고 춘향이도 그리 알고 수절하여 있습니다.”

사또 분을 내어

“이놈 무식한 상놈인들 그게 어떠한 양반이라고 엄부시하요 미장전 도련님이 화방(花房)에 작첩(作妾)하여 살자 할꼬. 이놈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어서는 죄를 면치 못하리라. 이미 내가 저 하나를 보려다가 못 보고 그저 말랴. 잔말 말고 불러 오라.”

춘향을 부르란 청령이 나는데 이방 호장 여쭈오되

“춘향이가 기생도 아닐 뿐 아니오라 구등 사또 자제 도련님과 맹약(盟約)이 중(重)하온데 연치(年齒)는 부동(不同)이나 동반의 분의로 부르라기 사또 정체(政體)가 손상할까 저어하옵니다.”

사또 대노하여

“만일 춘향을 시각 지체하다가는 공형 이하로 각청(各廳) 두목을 일병태거할 것이니 빨리 대령 못 시킬까.”

육방이 소동, 각청 두목이 넋을 잃어

“김번수야 이번수야. 이런 별일이 또 있느냐. 불쌍하다 춘향 정절 가련케 되기 쉽다. 사또 분부 지엄하니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사령 관노 뒤섞여서 춘향 문전 당도하니 이때 춘향이는 사령이 오는지 관노가 오는지 모르고 주야로 도련님만 생각하여 우는데 망칙한 환(患)을 당하려거든 소리가 화평(和平)할 수 있으며 한때라도 공방살이할 계집아이라 목성(聲)에 철성이 끼어 자연 슬픈 애원성이 되어 보고 듣는 사람의 심장인들 아니 상할소냐. 님 그(리)워 설운 마음 식불감(食不甘) 밥 못 먹어 침불안석(寢不安席) 잠 못 자고 도련님 생각 적상되어 피골이 모두 다 상련이라. 양기(陽氣)가 쇠진하여 진양조란 울음이 되어

“갈까보다 갈까보다. 님을 따라 갈까보다. 천리라도 갈까보다 만리라도 갈까보다. 풍우(風雨)도 쉬어 넘고 날진, 수진,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는 고봉정상(高峰頂上) 동선령고개라도 님이 와 날 찾으면 나는 발 벗어 손에 들고 나는 아니 쉬어 가지. 한양 계신 우리 낭군 나와 같이 그리(워하)는가. 무정하여 아주 잊고 나의 사랑 옮겨다가 다른 님을 괴이는가.

한참 이리 설이 울 제 사령 등이 춘향의 애원성을 듣고 인비목석(人非木石) 아니거든 감심(感心) 아니 될 수 있냐.

육천 마디 사대(四大) 삭신이 낙수춘빙(落水春氷) 얼음 녹듯 탁 풀리어

“대체 이 아니 참 불쌍하냐. 이애 외입한 자식들이 저런 계집을 추앙(推仰) 못하면은 사람이 아니로다.”

이때에 재촉 사령 나오면서

“오너라.”

외(치)는 소리에 춘향이 깜짝 놀래어 문틈으로 내다보니 사령 군노 나왔구나.

“아차차 잊었네. 오늘이 그 삼일점고라 하더니 무슨 야단이 났나 보다.”

밀창문 여닫으며

“허허 번수(番手)님네 이리 오소 이리 오소. 오시기 뜻밖이네. 이번 신연(新延) 길에 노독(路毒)이나 아니 나며 사또 정체(政體) 어떠하며 구관댁(舊官宅)에 가 계시며 도련님 편지 한 장도 아니 하던가. 내가 전일(前日)은 양반을 모시기로 이목이 번거하고 도련님 정체(政體) 유달라서 모르는 체 하였건만 마음조차 없을손가. 들어가세 들어가세.”

김번수며 이번수며 여러 번수 손을 잡고 제 방에 앉힌 후에 향단이 불러

“주반상 들여라.”

취토록 먹인 후에 궤문 열고 돈 닷냥을 내어 놓(으)며

“여러 번수님네. 가시다가 술이나 잡숫고 가옵소. 뒷 말 없게 하여 주소.”

사령 등이 약주에 취하여 하는 말이

“돈이라니 당치 않다. 우리가 돈 바라고 네게 왔냐.”

하며

“들여 놓아라.”

“김번수야. 네가 차라.”

“불가(不可)타마는 입 수(數)나 다 옳으냐.”

돈 받아 차고 흐늘흐늘 들어갈 제 행수기생이 나온다. 행수기생이 나오며 두 손뼉 땅땅 마주 치면서

“여봐라 춘향아. 말 듣거라. 너만한 정절은 나도 있고 너만한 수절은 나도 있다. 너라는 정절이 왜 있으며 너라는 수절이 왜 있느냐. 정절부인 애기씨 수절부인 애기씨 조그마한 너 하나로 만연하여 육방이 소동, 각 청 두목이 다 죽어난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춘향이 할 수 없어 수절하던 그 태도로 대문 밖 썩 나서며

“형님 형님 행수형님. 사람의 괄시를 그리 마소. 거기라고 대대 행수며 나라고 대대 춘향인가. 인생일사도무사지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동헌에 들어가

“춘향이 대령하였소.”

사또 보시고 대희(大喜)하여

“춘향일시 분명하다. 대상(臺上)으로 오르거라.”

춘향이 상방(上房)에 올라가 염슬단좌(斂膝端坐) 뿐이로다. 사또 대혹(大惑)하여

“책방에 가 회계나리님을 오시래라.”

회계 생원(生員)이 들어오던 것이었다. 사또 대희하여

“자네 보게. 저게 춘향일세.”

“하 그 년 매우 예쁜데. 잘 생겼소. 사또께서 서울 계실 때부터 춘향 춘향 하시더니 한 번 구경할 만하오.”

사또 웃으며

“자네 중신 하겠나.”

이윽히 앉았더니

“사또가 당초에 춘향을 부르시지 말고 매파(媒婆)를 보내어 보시는 게 옳은 것을 일이 좀 경(輕)히 되었소마는 이미 불렀으니 아마도 혼사(婚事)할 밖에 수가 없소.”

사또 대희하여 춘향더러 분부하되

“오늘부터 몸 단장 정히 하고 수청(守廳)으로 거행하라.”

“사또 분부 황송하나 일부종사(一夫從事) 바라오니 분부시행 못하겠소.”

사또 웃어 왈

“미재미재라. 계집이로다. 네가 진정 열녀로다. 네 정절 굳은 마음 어찌 그리 어여쁘냐. 당연한 말이로다. 그러나 이수재(李秀才)는 경성(京城) 사대부의 자제로서 명문귀족 사위가 되었으니 일시 사랑으로 잠깐 노류장화(路柳墻花)하던 너를 일분 생각하겠느냐.

너는 근본 정절 있어 전수일절하였다가 홍안이 낙조되고 백발이 난수하면 무정세월약유파를 탄식할 제 불쌍코 가련한 게 너 아니면 뉘가 그(이)랴. 네 아무리 수절한들 열녀 포양 누가 하랴. 그는 다 버려두고 네 골 관장에게 매임이 옳으냐 동자(童子)놈에게 매인 게 옳으냐. 네가 말을 좀 하여라.”

춘향이 여쭈오되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요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 절(節)을 본받고자 하옵는데 수차 분부 이러하니 생불여사이옵고 열불경이부(烈不更二夫)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이때 회계 나리가 썩 하는 말이

“네 여봐라. 어 그년 요망한 년이로고. 부유일생소천하에 일색(一色)이라. 네 여러번 사양할 게 무엇이냐. 사또께옵서 너를 추앙하여 하시는 말씀이지 너 같은 창기배(娼妓輩)(에)게 수절이 무엇이며 정절이 무엇인가. 구관은 전송하고 신관 사또 연접함이 법전(法典)에 당연하고 사례에도 당연커든 괴이한 말 내지 말라. 너희같은 천기배(賤妓輩)(에)게 충렬이자(忠烈二字) 왜 있으리.”

이때 춘향이 하 기가 막혀 천연히 앉아 여쭈오되

“충효열녀(忠孝烈女) 상하(上下) 있소. 자상히 들으시오. 기생으로 말합시다. 충효열녀 없다 하니 낱낱이 하뢰리다. 해서(海西) 기생 농선이는 동선령(洞仙嶺)에 죽어 있고, 선천(宣川) 기생 아이로되 칠거학문 들어 있고, 진주(晋州) 기생 논개는 우리 나라 충렬로서 충렬문(忠烈門)에 모셔 놓고 천추향사하여 있고, 청주(淸州) 기생 화월이는 삼층각(三層閣)에 올라 있고, 평양 기생 월선이도 충렬문에 들어 있고, 안동 기생 일지홍은 생열녀문 지은 후에 정경 가자 있사오니 기생 해폐(害弊) 마옵소서.”

춘향 다시 사또 전에 여쭈오되

“당초에 이수재 만날 때에 태산(泰山) 서해(西海) 굳은 마음 소처(小妻)의 일심정절( 一心貞節) 맹분같은 용맹인들 빼어내지 못할 터요, 소진 장의 구변(口辯)인들 첩의 마음 옮겨가지 못할 터요,

공명 선생 높은 재조(才操) 동남풍은 빌었으되 일편단심 소녀 마음 굴복치 못하리라. 기산(箕山)의 허유는 부족수요거천하고 서산(西山)의 백숙 양인(兩人)은 불식주속하였으니 만일 허유 없었으면 고도지사 누가 하며 만일 백이 숙제 없었으면 난신적자(亂臣賊子) 많으리라. 첩신(妾身)이 수(雖) 천한 계집인들 허유 백(숙)을 모르리까. 사람의 첩이 되어 배부기가하는 법이 벼슬하는 관장님네 망국부주같사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사또 대노하여

“이년 들어라. 모반대역하는 죄는 능지처참하여 있고, 조롱관장하는 죄는 제서율에 율(律) 써 있고, 거역관장(拒逆官長)하는 죄는 엄형정배하느니라. 죽노라 설워마라.”

춘향이 포악하되

“유부녀 겁탈하는 것은 죄 아니고 무엇이오.”

사또 기가 막혀 어찌 분하시던지 연상을 두드릴 제 탕건이 벗어지고 상투고가 탁 풀리고 대마디에 목이 쉬어

“이년 잡아 내리라.”

호령하니 골방에 수청통인

“예.”

하고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주루루 끄어내며

“급창.”

“예.”

“이년 잡아 내리라.”

춘향이 떨치며

“놓아라.”

중계에 내려가니 급창이 달려들어

“요년 요년. 어떠하신 존전이라고 대답이 그러하고 살기를 바랄소냐.”

대뜰 아래 내리치니 맹호(猛虎)같은 군노 사령 벌떼같이 달려들어 감태같은 춘향의 머리채를 정정시절 연실 감 듯 뱃사공이 닻줄 감 듯 사월팔일 등(燈) 대 감 듯 휘휘친친 감아쥐고 동당이쳐 엎지르니 불쌍타 춘향 신세 백옥같은 고운 몸이 육자배기로 엎더졌구나. 좌우 나졸 늘어서서 능장, 곤장, 형장(刑杖)이며, 주장 짚고

“아뢰라. 형리(刑吏) 대령하라.”

“예. 숙여라. 형리요.”

사또 분이 어찌 났던지 벌벌 떨며 기가 막혀 허푸허푸 하며

“여보아라. 그년에게 다짐이 왜 있으리. 묻도 말고 형틀에 올려매고 정치를 부수고 물고장을 올려라.”

춘향을 형틀에 올려매고 쇄장이 거동 봐라. 형장이며 태장이며 곤장이며 한 아름 담쏙 안아다가 형틀 아래 좌르륵 부딪치는 소리 춘향의 정신이 혼미한다. 집장사령 거동 봐라. 이 놈도 잡고 능청능청 저 놈도 잡고서 능청능청 등심 좋고 빳빳하고 잘 부러지는 놈 골라 잡고 오른 어깨 벗어 메고 형장 집고 대상청령(臺上廳令) 기다릴 제

“분부 모셔라. 네 그년을 사정 두고 허장하여서는 당장에 명을 바칠 것이니 각별히 매우 치라.”

집장사령 여쭈오되

“사또 분부 지엄한데 저만한 년을 무슨 사정 두오리까. 이년 다리를 까딱 말라. 만일 요동하다가는 뼈 부러지리라.”

호통하고 들어서서 검장(檢杖) 소리 발 맞추어 서면서 가만히 하는 말이

“한두개만 견디소. 어쩔 수가 없네. 요 다리는 요리 틀고 저 다리는 저리 틀소.”

“매우 치라.”

“예잇. 때리오.”

딱 붙이니 부러진 형장개비는 푸르르 날아 공중에 빙빙 솟아 상방 대뜰 아래 떨어지고 춘향이는 아무쪼록 아픈 데를 참으려고 이를 복복 갈며 고개만 빙빙 두르면서

“애고 이게 웬 일이어.”

곤장 태장 치는 데는 사령이 서서 하나 둘 세건마는 형장부터는 법장이라 형리와 통인이 닭싸움하는 모양으로 마주 엎뎌서 하나 치면 하나 긋고 둘 치면 둘 긋고 무식하고 돈 없는 놈 술집 바람벽에 술값 긋 듯 그어 놓(으)니 한 일자(一字)가 되었구나.

춘향이는 저절로 설움겨워 맞으면서 우는데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부종사 뜻이오니 일개 형벌 치옵신들 일년이 다 못가서 일각인들 변하리까.”

이때 남원부 한량이며 남녀노소없이 모여 구경할 제 좌우의 한량들이

“모질구나 모질구나. 우리 골 원님이 모질구나. 저런 형벌이 왜 있으며 저런 매질이 왜 있을까. 집장사령놈 눈 익혀 두어라. 삼문(三門) 밖 나오면 급살을 주리라.”

보고 듣는 사람이야 누가 아니 낙루(落淚)하랴. 둘째 낱 딱 붙이니

“이비절을 아옵는데 불경이부 이내 마음 이 매 맞고 영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세째 낱을 딱 붙이니

“삼종지례 지중한 법 삼강오륜(三綱五倫) 알았으니 삼치형문 정배(定配)를 갈지라도 삼청동 우리 낭군 이도령은 못 잊겠소.”

네째 낱을 딱 붙이니

“사대부 사또님은 사민공사 살피잖고 위력공사(威力公事) 힘을 쓰니 사십팔방(四十八坊) 남원 백성 원망함을 모르시오. 사지를 가른대도 사생동거 우리 낭군 사생간(死生間)에 못 잊겠소.”

다섯 낱 채 딱 붙이니

“오륜(五倫) 윤기 그치잖고 부부유별(夫婦有別) 오행(五行)으로 맺은 연분 올올이 찢어낸들 오매불망 우리 낭군 온전히 생각나네. 오동추야 밝은 달은 님 계신 데 보련마는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기별 올까. 무죄한 이 내 몸이 악사할 일 없사오니 오결죄수 마옵소서.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여섯 낱 채 딱 붙이니

“육육은 삽십육으로 낱낱이 고찰하여 육만번 죽인대도 육천 마디 어린 사랑 맺힌 마음 변할 수 전혀 없소.”

일곱 낱을 딱 붙이니

“칠거지악 범하였소. 칠거지악 아니거든 칠개 형문 웬 일이오. 칠척검(七尺劍) 드는 칼로 동동이 장(杖) 질러서 이제 바삐 죽여주오. 치라 하는 저 형방아 칠 때마다 고찰 마소. 칠보홍안(七寶紅顔) 나 죽겠네.”

여덟 째 낱 딱 붙이니

“팔자 좋은 춘향 몸이 팔도 방백 수령 중에 제일 명관(明官) 만났구나. 팔도 방백 수령님네 치민(治民)하러 내려왔지 악형(惡刑)하러 내려왔소.”

아홉 낱 채 딱 붙이니

“구곡간장(九曲肝腸) 굽이 썩어 이 내 눈물 구년지수(九年之水) 되겠구나. 구고 청산(靑山) 장송(長松) 베어 청강선(淸江船) 무어 타고 한양성중 급히 가서 구중궁궐 성상전(聖上前)에 구구원정 주달(奏達)하고 구정(九庭) 뜰에 물러나와 삼청동을 찾아가서 우리 사랑 반가이 만나 굽이굽이 맺힌 마은 저근듯 풀련마는.”

열째 낱 딱 붙이니

“십생구사할 지라도 팔십년 정한 뜻을 십만번 죽인대도 가망없고 무가내지. 십육세 어린 춘향 장하원귀 가련하오.”

열 치고는 짐작할 줄 알았더니 열다섯 채 딱 붙이니

“십오야 밝은 달은 띠구름에 묻혀 있고 서울 계신 우리 낭군 삼청동에 묻혔으니 달아 달아 보느냐. 님 계신 곳 나는 어이 못 보는고.”

스물 치고 짐작할까 여겼더니 스물 다섯 딱 붙이니

“이십오현탄야월에 불승청원 저 기러기 너 가는 데 어디메냐. 가는 길에 한양성 찾아들어 삼청동 우리 님께 내 말 부디 전해다오. 나의 형상 자세(히) 보고 부디부디 잊지 마라.”

삼십삼천(三十三天) 어린 마음 옥황전(玉皇前)에 아뢰고저. 옥 같은 춘향 몸에 솟느니 유혈이요 흐르느니 눈물이라. 피 눈물 한데 흘러 무릉도원(武陵桃源) 홍류수(紅流水)라. 춘향이 점점 포악하는 말이

“소녀를 이리 말고 살지능지하여 아주 박살 죽여 주면

사후(死後) 원조라는 새가 되어 초혼조 함께 울어 적막강산 달 밝은 밤에 우리 이도련님 잠든 후 파몽이나 하여지다.”

말 못하고 기절하니 엎뎠던 통인 고개 들어 눈물 씻고 매질하던 저 사령도 눈물 씻고 돌아서며

“사람의 자식은 못 하겠네.”

좌우에 구경하는 사람과 거행하는 관속들이 눈물 씻고 돌아서며

“춘향이 매 맞는 거동 사람 자식은 못 보겠다. 모질도다 모질도다 춘향 정절이 모질도다. 출천열녀로다.”

남녀노소 없이 서로 낙루하며 돌아설 때 사또인들 좋을 리가 있으랴.

“네 이년 관정(官庭)에 발악하고 맞으니 좋은 게 무엇이냐. 일후에 또 그런 거역관장할까.”

반생반사(半生半死) 저 춘향이 점점 포악하는 말이

“여보 사또 들으시오. 일념포한 부지생사 어이 그리 모르시오. 계집의 곡한 마음 오유월 서리 치네. 혼비중천(魂飛中天) 다니다가 우리 성군(聖君) 좌정하(坐定下)에 이 원정을 아뢰오면 사또인들 무사할까. 덕분에 죽여주오.”

사또 기가 막혀

“허허 그년 말 못할 년이로고. 큰칼 씌워 하옥하라.”

하니 큰칼 씌워 인봉하여 쇄장이 등에 업고 삼문 밖 나올 제 기생들이 나오며

“애고 서울집아 정신 차리게. 애고 불쌍하여라.”

사지를 만지며 약을 갈아 들이며 서로 보고 낙루할 제 이때 키 크고 속없는 낙춘이가 들어오며

“얼씨고 절씨고 좋을씨고 우리 남원도 현판감이 생겼구나.”

왈칵 달려들어

“애고 서울집아. 불쌍하여라.”

이리 야단할 제 춘향 어미가 이 말을 듣고 정신없이 들어오더니 춘향의 목을 안고

“애고 이게 웬 일이냐. 죄는 무슨 죄며 매는 무슨 매냐. 장청의 집사님네 길청의 이방님 내 딸이 무슨 죄요. 장군방(將軍房) 두목들아 집장하던 쇄장이도 무슨 원수 맺혔더냐.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칠십당년 늙은 것이 의지없이 되었구나. 무남독녀 내 딸 춘향 규중(閨中)에 은근히 길러 내어 밤낮으로 서책만 놓고 내칙편 공부 일삼으며 나 보고 하는 말이. 마오 마오 설워 마오. 아들 없다 설워 마오. 외손봉사 못하리까. 어미에게 지극정성 곽거와 맹종인들 내 딸보다 더할손가.

자식 사랑하는 법이 상중하(上中下)가 다를손가. 이 내 마음 둘 데 없네. 가슴에 불이 붙어 한숨이 연기로다. 김번수야 이번수야 웃 영(令)이 지엄타고 이다지 몹시 쳤느냐. 애고 내 딸 장처 보소. 빙설(氷雪)같은 두 다리에 연지같은 피 비쳤네. 명문가 규중부야 눈 먼 딸도 원하더라. 그런 데 가 못 생기고 기생월매 딸이 되어 이 경색이 웬 일이냐. 춘향아 정신 차려라. 애고 애고 내 신세야.”

하며

“향단아. 삼문 밖에 가서 삯군 둘만 사오너라. 서울 쌍급주 보내련다.”

춘향이 쌍급주 보낸단 말을 듣고

“어머니 마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만일 급주가 서울 올라가서 도련님이 보시면 층층시하(層層侍下)에 어찌할 줄 몰라 심사 울적하여 병이 되면 근들 아니 훼절(毁節)이오. 그런 말씀 말으시고 옥으로 가사이다.”

쇄장의 등에 업혀 옥으로 들어갈 제 향단이는 칼머리 들고 춘향모는 뒤를 따라 옥문전 당도하여

“옥 형방 문을 여소. 옥 형방도 잠 들었나.”

옥중에 들어가서 옥방(獄房) 형상 볼작시면 부서진 죽창(竹窓) 틈에 살 쏘느니 바람이요 무너진 헌 벽이며 헌 자리 벼룩 빈대 만신을 침노한다. 이때 춘향이 옥방에서 장탄가(長嘆歌)로 울던 것이었다.

“이내 죄가 무슨 죄냐. 국곡투식 아니거든 엄형중장(嚴刑重杖) 무슨 일고. 살인죄가 아니거든 항쇄족쇄 웬 일이며 역률 강상 아니거든 사지결박 웬 일이며 음행도적(淫行盜賊) 아니거든 이 형벌이 웬 일인고. 삼강수(三江水)는 연수되어 청천일장지에 나의 설움, 원정(原情) 지어 옥황전에 올리고저. 낭군 그(리)워 가슴 답답 불이 붙네. 한숨이 바람되어 붙는 불을 더 붙이니 속절없이 나 죽겠네. 홀로 섰는 저 국화는 높은 절개 거룩하다. 눈 속의 청송(靑松)은 천고절을 지켰구나. 푸른 솔은 나와 같고 누른 국화 낭군같이 슬픈 생각 뿌리나니 눈물이요 적시느니 한숨이라. 한숨은 청풍(淸風)삼고 눈물은 세우(細雨) 삼아 청풍이 세우를 몰아다가 불거니 뿌리거니 님의 잠을 깨우고저.

견우직녀성은 칠석 상봉하올 적에 은하수 막혔으되 실기한 일 없었건만 우리 낭군 계신 곳에 무슨 물이 막혔는지 소식조차 못 듣는고. 살아 이리 그리느니 아주 죽어 잊고지고. 차라리 이 몸 죽어 공산(空山)에 두견이 되어 이화월백(李花月白) 삼경야에 슬피 울어 낭군 귀에 들리고저. 청강에 원앙 되어 짝을 불러 다니면서 다정코 유정(有情)함을 님의 눈에 보이고저. 삼춘에 호접(胡蝶) 되어 향기 묻은 두 나래로 춘광(春光)을 자랑하여 낭군 옷에 붙고지고. 청천에 명월 되어 밤 당하면 돋아 올라 명명히 밝은 빛을 님의 얼굴에 비추고저. 이내 간장 썩는 피로 님의 화상(畵像) 그려 내어 방문 앞에 족자 삼아 걸어 두고 들며 나며 보고지고. 수절 정절 절대가인 참혹하게 되었구나. 문채 좋은 형산백옥 진토(塵土) 중에 묻혔는 듯, 향기로운 상산초가 잡풀 속에 섞였는 듯, 오동 속에 놀던 봉황 형극 속에 깃들인 듯. 자고(自古)로 성현(聖賢)네도 무죄하고 궂기시니 요(堯), 순(舜), 우(禹), 탕(湯) 인군(仁君)네도 걸주의 포악(暴惡)으로 하대옥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성군(聖君) 되시고 명덕치민 주문왕도 상주(商紂)의 해를 입어 유리옥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성군 되고 만고성현(萬古聖賢) 공부자도 양호의 얼을 입어 광야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대성(大聖) 되시니 이런 일로 볼작시면 죄 없는 이내 몸도 살아나서 세상 구경 다시 할까. 답답하고 원통하다. 날 살릴 이 뉘 있을까. 서울 계신 우리 낭군 벼슬길로 내려와 이렇듯이 죽어갈 제 내 목숨을 못 살린가. 하운은 다기봉하니 산이 높아 못 오던가. 금강산 상상봉(上上峰)이 평지 되거든 오려신가. 병풍에 그린 황계(黃鷄) 두 나래를 툭툭 치며 사경일점에 날 새라고 울거든 오려신가.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죽창문을 열치니 명정월색(明淨月色)은 방안에 든다마는 어린 것이 홀로 앉아 달더러 묻는 말이

“저 달아. 보느냐. 님 계신 데 명기(明氣) 빌려라. 나도 보게야. 우리 님이 누웠더냐 앉았더냐 보는 대로만 네가 일러 나의 수심 풀어다오.”

애고 애고 설이 울다 홀연이 잠이 드니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호접이 장주 되고 장주가 호접 되어

세우(細雨)같이 남은 혼백(魂魄) 바람인 듯 구름인 듯 한 곳을 당도하니 천공지활하고 산령수려한데 은은한 죽림간(竹林間)에 일층(一層) 화각이 반공에 잠겼거늘 대체 귀신 다니는 법은 대풍기하고 승천입지하니 침상편시춘몽중에 행진강남수천리라. 전면을 살펴보니 황금대자로 만고정렬황릉지묘라 뚜렷이 붙였거늘 심신이 황홀하여 배회터니 천연한 낭자 셋이 나오는데 석숭의 애첩 녹주(綠珠) 등총(燈籠)을 들고 진주 기생 논개, 평양 기생 월선이라. 춘향을 인도하여 내당으로 들어가니 당상에 백의(白衣)한 두 부인이 옥수(玉手)를 들어 청하거늘 춘향이 사양하되

“진세간(塵世間) 천첩이 어찌 황릉묘를 오르리까.”

부인이 기특히 여겨 재삼 청하거늘 사양치 못하여 올라가니 좌(座)를 주어 앉힌 후에

“네가 춘향인가? 기특하도다. 일전에 조회차로 요지연(瑤池宴)에 올라가니 네 말이 낭자키로 간절히 보고 싶어 너를 청하였으니 심히 불안토다.”

춘향이 재배주왈(再拜奏曰)

“첩이 비록 무식하나 고서(古書)를 보옵고 사후에나 존안을 뵈올까 하였더니 이렇듯 황릉묘에 모시니 황공비감(惶恐悲感)하여이다.”

상군부인이 말씀하되

“우리 순군(舜君) 대순씨(大舜氏)가 남순수하시다가 창오산에 붕(崩)하시니 속절없는 이 두 몸이 소상죽림에 피눈물을 뿌려놓(으)니 가지마다 아롱아롱 잎잎이 원한이라. 창오산붕상수절이라야 죽상지루내가멸을 천추(千秋)에 깊은 한을 하소할 곳 없었더니 네 절행(節行) 기특키로 너더러 말하노라.

송관기천년에 청백은 어느 때며 오현금 남풍시(南風詩)를 이제까지 전하더냐.”

이렇듯이 말씀할 제 어떠한 부인

“춘향아. 나는 기주명월음독성에 화선하던 농옥이다. 소사의 아내로서 태화산(太華山) 이별 후에 승룡비거 한이 되어 옥소(玉蕭)로 원을 풀 제 곡종비거부지처하니 산하벽도춘자개라.

이러할 제 또 한 부인 말씀하되

“나는 한궁녀(漢宮女) 소군(昭君)이라. 호지(胡地)에 오가하니 일배청총뿐이로다. 마상(馬上) 비파 한 곡조에 화도성식춘풍면이요, 환패공귀월야혼이라. 어찌 아니 원통하랴.”

한참 이러할 제 음풍이 일어나며 촛불이 벌렁벌렁하며 무엇이 촛불 앞에 달려들겨늘 춘향이 놀래어 살펴보니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닌데 의의한 가운데 곡성이 낭자하며

“여봐라 춘향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나는 뉜고 하니 한고조(漢高祖) 아내 척부인이로다. 우리 황제 용비 후에 여후(呂后)의 독한 솜씨 나의 수족 끊어 내어 두 귀에다 불지르고 두 눈 빼어 음약 먹여 측간 속에 넣었으니 천추에 깊은 한을 어느 때나 풀어보랴.”

이리 울 제 상군부인 말씀하되

“이곳이라 하는 데가 유명이 노수하고 행위자별하니 오래 유(留)치 못할지라.”

여동(女童) 불러 하직할 새 동방 실솔성은 시르렁 일쌍 호접은 펄펄.

춘향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로다. 옥창(玉窓) 앵도화 떨어져 보이고 거울 복판이 깨어져 뵈고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려 보이거늘

“나 죽을 꿈이로다.”

수심 걱정 밤을 샐 제 기러기 울고 가니 일편 서강(西江) 달에 행안남비 네 아니야. 밤은 깊어 삼경이요 궂은비는 퍼붓는데 도깨비 삑삑, 밤새 소리 붓붓, 문풍지는 펄렁펄렁, 귀신이 우는데 난장 맞아 죽은 귀신, 형장 맞아 죽은 귀신 결령치사 대롱대롱 목 매달아 죽은 귀신 사방에서 우는데 귀곡성이 낭자로다. 방 안이며 추녀 끝이며 마루 아래서도 애고 애고 귀신 소리에 잠들 길이 전혀 없다. 춘향이가 처음에는 귀신 소리에 정신이 없이 지내더니 여러 번을 들어나니 파겁이 되어 청승 굿거리 삼잡이 세악 소리로 알고 들으며

“이 몹쓸 귀신들아. 나를 잡아 가려거든 조르지나 말려무나. 암급급여율령사파쐐”

진언 치고 앉았을 때 옥 밖으로 봉사 하나 지나가되 서울 봉사 같을 진대

“문수하오.”

외(치)련마는 시골봉사라

“문복(問卜)하오.”

하고 외(치)고 가니 춘향이 듣고

“불러주오.”

춘향 어미 봉사를 부르는데

“여보 저기 가는 봉사님.”

불러 놓(으)니 봉사 대답하되

“게 뉘기. 게 뉘기니.”

“춘향 어미요.”

“어찌 찾나.”

“우리 춘향이가 옥중에서 봉사님을 잠깐 오시라 하오.”

봉사 한번 웃으면서

“날 찾기 의외로세. 가지.”

봉사 옥으로 갈 제 춘향 어미 봉사의 지팡이를 잡고 인도할 제

“봉사님 이리 오시오. 이것은 돌다리요 이것은 개천이요. 조심하여 건너시오.”

앞에 개천이 있어 뛰어볼까 무한히 벼르다가 뛰는데 봉사의 뜀이란 게 멀리 뛰진 못하고 올라가기만 한 길이나 올라가는 것이었다.

멀리 뛴단 것이 한가운데 가 풍덩 빠져 놓았는데 기어 나오려고 짚는 게 개똥을 짚었지.

“어뿔싸. 이게 정녕 똥이지.”

손을 들어 맡아 보니 묵은 쌀밥 먹고 썩은 놈이로고. 손을 내뿌린 게 모진 돌에다가 부딪치니 어찌 아프던지 입에다가 훌 쓸어 넣고 우는데 먼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애고 애고 내 팔자야. 조그마한 개천을 못 건너고 이 봉변을 당하였으니 수원수구 뉘더러 하리. 내 신세를 생각하니 천지만물을 불견(不見)이라. 주야를 내가 알랴. 사시(四時)를 짐작하며, 춘절(春節)이 당해온들 도리화개 내가 알며, 추절(秋節)이 당해온들 황국단풍 어찌 알며, 부모를 내 아느냐, 처자를 내 아느냐, 친구 벗님을 내 아느냐. 세상천지 일월성신과 후박장단을 모르고 밤중같이 지내다가 이 지경이 되었구나. 진소위 소경이 그르냐 개천이 그르냐. 소경이 그르지 아주 생긴 개천이 그르랴.”

애고 애고 설이 우니 춘향 어미 위로하되

“그만 우시오.”

봉사를 목욕시켜 옥으로 들어가니 춘향이 반기면서

“애고 봉사님. 어서 오.”

봉사 그 중에 춘향이가 일색이란 말은 듣고 반가(와)하며

“음성을 들으니 춘향 각씨인가부다.”

“예. 기옵니다.”

“내가 벌써 와서 자네를 한번이나 볼 터로되 빈즉다사라. 못 오고 청하여 왔으니 내 쉰사가 아니로세.”

“그럴 리가 있소. 안맹(眼盲)하옵고 노래(老來)에 기력이 어떠하시오.”

“내 염려는 말게. 대체 나를 어찌 청하였나.”

“예. 다름 아니라 간밤에 흉몽을 하였삽기로 해몽도 하고 우리 서방님이 어느때나 나를 찾을까 길흉 여부 점을 하려고 청하였소.”

“그러게.”

봉사 점을 하는데

“가이태서유상치경이축축왈 천하언재심이요 지하언재시리요만은 고지즉응하시느니 신기영의시니 감이수통언하소서. 망지휴구와 망석궐의를 유신유령이 망수소보하여 약가약비를 상명고지즉응(尙明叩之卽應)하시느니.

복희, 문왕, 무왕, 무공(武公), 주공, 공자, 오대성현 칠십이현, 안증사맹, 성문십철, 제갈공명 선생, 이순풍, 소강절, 정명도, 정이천, 주염계, 주회암, 엄군평, 사마군, 귀곡, 손빈, 진(秦), 유, 왕보사, 주원장, 제대선생은 명찰명기하옵소서. 마의도자, 구천현녀,육정, 육갑 신장이여 연월일시(年月日時) 사치공조, 배괘동자, 성괘동랑, 허공유감, 여왕(女王) 본가봉사, 단로향화(壇爐香火), 명신문차실향, 원사강림언하소서. 전라좌도 남원부 천변(川邊)에 거하는 임자생신(壬子生辰) 곤명열녀(坤命烈女) 성춘향이 하월하일(何月何日)에 방사옥중하오며

서울 삼청동 거하는 이몽룡은 하일하시에 도차본부하오리까. 복걸 첨신은 신명소시하옵소서.”

산통을 철겅철겅 흔들더니

“어디 보자, 일이삼사오륙칠. 허허 좋다. 상괘로고. 칠간산이로구나. 어유피망하니 소적대성이라. 옛날 주무왕(周武王)이 벼슬할 제 이 괘를 얻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으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천리상지하니 친인이 유면이라. 자네 서방님이 불원간에 내려와서 평생 한을 풀겠네. 걱정 마소. 참 좋거든.”

춘향이 대답하되

“말대로 그러면 오죽 좋사오리까. 간밤 꿈 해몽이나 좀 하여 주옵소서.”

“어디 자상히 말을 하소.”

“단장하던 체경이 깨져 보이고 창전(窓前)에 앵도꽃이 떨어져 보이고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려 뵈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말라 보이니 나 죽을 꿈 아니오.”

봉사 이윽히 생각하다가 양구(良久)에 왈

“그 꿈 장히 좋다. 화락(花落)하니 능성실(能成實)이요, 경파(鏡破)하니 기무성(豈無聲)가. 능히 열매가 열려야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질 때 소리가 없을손가. 문상(門上)에 현우인(懸偶人)하니 만인이 개앙시(皆仰視)라.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렸으면 사람마다 우러러볼 것이요. 해갈(海渴)하니 용안견(龍顔見)이요 산붕(山崩)하니 지택평(地澤平)이라. 바다가 마르면 용의 얼굴을 능히 볼 것이요 산이 무너지면 평지가 될 것이라. 좋다. 쌍가마 탈 꿈이로세. 걱정 마소. 멀지 않네.”

한참 이리 수작할 제 뜻밖에 까마귀가 옥 담에 와 앉더니 까옥까옥 울거늘 춘향이 손을 들어 후여 날리며

“방정맞은 까마귀야. 나를 잡아 가려거든 조르지나 말려무나.”

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가만 있소. 그 까마귀가 가옥가옥 그렇게 울지.”

“예. 그래요.”

“좋다. 좋다. 가자(字)는 아름다울 가자(嘉字)요, 옥자(字)는 집 옥자(屋字)라. 아름답고 즐겁고 좋은 일이 불원간 돌아와서 평생에 맺힌 한을 풀 것이니 조금도 걱정 마소. 지금은 복채 천냥을 준대도 아니 받아 갈 것이니 두고 보고 영귀(榮貴)하게 되는 때에 괄시나 부디 마소. 나 돌아가네.”

 

“예 평안히 가옵시고 후일 상봉하옵시다.”

춘향이 장탄수심으로 세월을 보내니라.

이때 한양성 도련님은 주야로 시서 백가어를 숙독하였으니 글로는 이백(李白)이요, 글씨는 왕희지(王羲之)라. 국가에 경사 있어 태평과를 보이실 새 서책을 품에 품고 장중에 들어가 좌우를 둘러 보니 억조창생 허다 선비 일시에 숙배한다. 어악풍류 청아성에 앵무새가 춤을 춘다. 대제학 택출하여 어제를 내리시니 도승지 모셔내어 홍장(紅帳) 위에 걸어 놓(으)니 글 제에 하였으되

“춘당춘색이 고금동이라.”

뚜렷이 걸었거늘 이도령 글 제를 살펴보니 익히 보던 배라. 시지(試紙)를 펼쳐놓고 해제(解題)를 생각하여 용지연(龍池硯)에 먹을 갈아 당황모 무심필을 반중동 덤벅 풀어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 체(體)를 받아 일필휘지(一筆揮之) 선장하니 상시관이 이 글을 보고 자자(字字)이 비점이요 구구(句句)이 관주로다. 용사비등(龍蛇飛騰)하고 평사낙안이라 금세의 대재(大才)로다. 금방의 이름을 불러 어주삼배(御酒三盃) 권하신 후 장원급제 휘장이라. 신래(新來)의 진퇴(進退)를 나올 적에 머리에는 어사화요 몸에는 앵삼이라. 허리에는 학대로다. 삼일(三日) 유가한 연후에 산소에 소분하고 전하께 숙배하니 전하께옵서 친히 불러 보신 후에

“경의 재조 조정에 으뜸이라.”

하시고 도승지 입시(入侍)하사 전라도 어사를 제수하시니 평생의 소원이라.

수의(繡衣), 마패(馬牌), 유척을 내주시니 전하께 하직하고 본댁으로 나갈 때

철관 풍채는 심산맹호(深山猛虎)같은지라. 부모전 하직하고 전라도로 행할 새 남대문 밖 썩 나서서 서리, 중방, 역졸 등을 거느리고 청파역 말 잡아 타고 칠패, 팔패, 배다리 얼른 넘어 밥전거리 지나 동작이를 얼픗 건너 남대령을 넘어 과천읍에 중화(中火)하고 사근내, 미륵당이, 수원 숙소(宿所)하고 대황교, 떡전거리, 진개울, 중미, 진위읍에 중화하고 칠원, 소사, 애고다리, 성환역에 숙소하고 상류천, 하류천, 새술막, 천안읍에 중화하고 삼거리, 도리치, 김제역 말 갈아 타고 신구, 덕평을 얼른 지나 원터에 숙소하고 팔풍정, 화란, 광정, 모란, 공주, 금강을 건너 금영에 중화하고 높은 한길 소개문, 어미널티, 경천에 숙소하고 노성, 풋개, 사다리, 은진, 간치당이, 황화정, 장애미고개, 여산읍에 숙소참하고 이튿날 서리 중방 불러 분부하되

“전라도 초읍 여산이라. 막중국사 거행불명즉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추상같이 호령하며 서리 불러 분부하되

“너는 좌도로 들어 진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 구례로 이 팔읍을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고, 자, 중방 역졸 너희 등은 우도로 용안, 함열, 임피, 옥구, 김제, 만경, 고부, 부안, 흥덕, 고창, 장성, 영광, 무장, 무안, 함평으로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고, 종사 불러 익산, 금구, 태인, 정읍, 순창, 옥과, 광주, 나주, 평창, 담양, 동복, 화순, 강진, 영암, 장흥, 보성, 흥양, 낙안, 순천, 곡성으로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라.”

분부하여 각기 분발하신 후에

어사또 행장을 차리는데 모양 보소. 숱 사람을 속이려고 모자 없는 헌 파립에 벌이줄 총총 매어 초사갓끈 달아 쓰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갖풀관자 노끈당줄 달아 쓰고 의뭉하게 헌 도복에 무명실 띠를 흉중에 둘러 매고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솔방울 선추달아 일광을 가리고 내려올 제 통새암, 삼례 숙소하고 한내, 주엽쟁이, 가리내, 싱금정 구경하고 숩정이, 공북루 서문을 얼른 지나 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소강남여기로다. 기린토월(麒麟吐月)이며 한벽철연(寒碧淸煙), 남고창종(南固暮鍾), 건지망월(乾止望月), 다가사후(多佳射侯), 덕진채련(德眞採蓮), 비비락안(飛飛落雁), 위봉폭포(威鳳瀑布), 완산팔경을 다 구경하고 차차로 암행(暗行)하여 내려올 제 각읍 수령들이 어사 났단 말을 듣고 민정(民情)을 가다듬고 전공사(前公事)를 염려할 제 하인인들 편하리요.

이방, 호장 실혼(失魂)하고 공사회계(公事會計)하는 형방, 서기 얼른 하면 도망차로 신발하고 수다한 각 청상(廳上)이 넋을 잃어 분주할 제 이때 어사또는 임실 국화들 근처를 당도하니 차시(此時) 마침 농절(農節)이라. 농부들이 농부가(農夫歌)하며 이러할 제 야단이었다.

“어여로 상사디야 천리건곤 태평시(太平時)에 도덕 높은 우리 성군(聖君) 강구연월 동요 듣던 요(堯)임금 성덕(聖德)이라 어여로 상사디야. 순(舜)임금 높은 성덕으로 내신 성기 역산에 밭을 갈고 어여로 상사디야. 신농씨 내신 따비 천추만대(千秋萬代) 유전(遺傳)하니 어이 아니 높으던가 어여로 상사디야. 하우씨(夏禹氏) 어진 임금 구년홍수(九年洪水) 다스리고 어여라 상사디야. 은왕(殷王) 성탕 어진 임금 대한칠년(大旱七年) 당하였네 어여라 상사디야. 이 농사를 지어내어 우리 성군 공세 후에 남은 곡식 장만하여 앙사부모 아니하며 하육처자 아니할까 어여라 상사디야. 백초를 심어 사시(四時)를 짐작하니 유신(有信)한 게 백초로다 어여라 상사디야. 청운공명 좋은 호강 이 업(業)을 당할소냐 어여라 상사디야. 남전북답 기경하여 함포고복(含哺鼓腹) 하여보세 얼럴럴 상사디야.”

한참 이리할 제 어사또 주령 짚고 이만하고 서서 농부가를 구경하다가

“거기는 대풍(大豊)이로고.”

또 한편을 바라보니 이상한 일이 있다. 중씰한 노인들이 낄낄이 모여 서서 등걸밭을 일구는데 갈멍덕 숙여 쓰고 쇠스랑 손에 들고 백발가(白髮歌)를 부르는데

“등장가자 등장가자 하느님 전에 등장갈 양이면 무슨 말을 하실는지. 늙은이는 죽지 말고 젊은 사람 늙지 말게. 하느님 전에 등장가세.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이 원수로다.

오는 백발 막으려고 우수(右手)에 도끼 들고 좌수(左手)에 가시 들고 오는 백발 두드리며 가는 홍안(紅顔) 끌어당겨 청사(靑絲)로 결박하여 단단히 졸라매되 가는 홍안 절로 가고 백발은 시시(時時)로 돌아와 귀 밑에 살 잡히고 검은 머리 백발되니 조여청사모성설이라. 무정한 게 세월이라. 소년향락 깊은들 왕왕이 달라가니 이 아니 광음(光陰)인가. 천금준마(千金駿馬) 잡아 타고 장안대도 달리고저. 만고강산(萬古江山) 좋은 경개(景槪) 다시 한 번 보고지고. 절대가인(絶代佳人) 곁에 두고 백만교태(百萬嬌態) 놀고 지고. 화조월석 사시가경(四時佳景) 눈 어둡고 귀가 먹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어 할일 없는 일이로세. 슬프다 우리 벗님 어디로 가겠는고. 구추(九秋) 단풍잎 지듯이 선아선아 떨어지고 새벽하늘 별 지듯이 삼오삼오 쓸어지니 가는 길이 어디멘고. 어여로 가래질이야. 아마도 우리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인가 하노라.”

한참 이러할 제 한 농부 썩 나서며

“담배 먹세. 담배먹세.”

갈멍덕 숙여 쓰고 두덕에 나오더니 곱돌조대 넌짓 들어 꽁무니 더듬더니 가죽 쌈지 빼어 놓고 세우 침을 뱉아 엄지가락이 자빠지게 비빚비빚 단단히 넣어 짚불을 뒤져 놓고 화로에 푹 질러 담배를 먹는데 농군이라 하는 것이 대가 빡빡하면 쥐새끼 소리가 나것다. 양 볼때기가 오목오목 코궁기가 발심발심 연기가 홀홀 나게 피워 물고 나서니 어사또 반말하기는 공성이 났지.

“저 농부 말 좀 물어보면 좋겠구먼.”

“무슨 말.”

“이 골 춘향이가 본관에 수청들어 뇌물을 많이 먹고 민정(民政)에 작폐한단 말이 옳은지.”

저 농부 열을 내어

“게가 어디 사나.”

“아무데 살든지.”

“아무데 살든지라니. 게는 눈콩알 귀꽁알이 없나. 지금 춘향이를 수청 아니든다 하고 형장 맞고 갇혔으니 창가(娼家)에 그런 열녀 세상에 드문지라. 옥결같은 춘향몸에 자네 같은 동냥치가 누설을 시키다간 빌어먹도 못하고 굶어 뒤어지리. 올라간 이도령인지 삼도령인지 그놈의 자식은 일거후 무소식하니 인사(人事) 그렇고는 벼슬은커니와 내 좇도 못하지.”

“어 그게 무슨 말인고.”

“왜. 어찌 되나.”

“되기야 어찌 되랴마는 남의 말로 구습을 너무 고약히 하는고.”

“자네가 철 모르는 말을 하매 그렇지.”

수작을 파하고 돌아서며

“허허 망신이로고. 자 농부네들 일 하오.”

“예.”

하직하고 한 모롱이를 돌아드니 아이 하나 오는데, 주령 막대 끌면서 시조(時調) 절반 사설(辭說) 절반 섞어 하되

“오늘이 며칠인고. 천리길 한양성을 며칠 걸어 올라가랴. 조자룡의 월강(越江)하던 청총마(靑총馬)가 있었다면 금일로 가련마는 불쌍하다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여 옥중에 갇히어서 명재경각 불쌍하다. 몹쓸 양반 이서방은 일거 소식 돈절하니 양반의 도리는 그러한가.”

어사또 그 말 듣고

“이애. 어디 있니.”

“남원읍에 사오.”

“어디를 가니.”

“서울 가오.”

“무슨 일로 가니.”

“춘향의 편지 갖고 구관댁에 가오.”

“이애. 그 편지 좀 보자꾸나.”

“그 양반 철모르는 양반이네.”

“웬 소린고.”

“글쎄 들어보오. 남아(男兒) 편지 보기도 어렵거든 황 남의 내간을 보잔단 말이오.”

“이애 들어라. 행인이 임발우개봉이란 말이 있느니라. 좀 보면 관계하랴.”

“그 양반 몰골은 흉악하구만 문자속은 기특하오. 얼른 보고 주오.”

“호노자식이로고.”

편지 받아 떼어 보니 사연에 하였으되

일차 이별후 성식이 적조하니 도련님 시봉 체후만안하옵신지

원절복모하옵니다. 천첩 춘향은 장대뇌상에 관봉치패하고 명재경각(命在頃刻)이라. 지어사경에 혼비황릉지묘하여 출몰귀관하니 첩신(妾身)이 수유만사나 단지 열불이경(烈不二更)이요 첩지사생(妾之死生)과 노모(老母) 형상이 부지하경이오니 서방님 심량처지하옵소서.

편지 끝에 하였으되

거세하시군별첩고 작이동설우동추라. 광풍반야누여설하니 하위남원옥중수라.

혈서(血書)로 하였는데 평사낙안(平沙落雁) 기러기 격으로 그저 툭툭 찍은 것이 모두 다 애고로다. 어사 보더니 두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방울방울 떨어지니 저 아이 하는 말이

“남의 편지 보고 왜 우시오.”

“엇다 이애. 남의 편지라도 설운 사연을 보니 자연 눈물이 나는구나.”

“여보 인정있는 체하고 남의 편지 눈물 묻어 찢어지오. 그 편지 한장 값이 열 닷냥이오. 편지 값 물어내오.”

“여봐라. 이도령이 나와 죽마고우(竹馬故友) 친구로서 하향(遐鄕)에 볼 일이 있어 나와 함께 내려오다 완영에 들렸으니 내일 남원으로 만나자 언약하였다. 나를 따라 가 있다가 그 양반을 뵈어라.”

그 아이 반색하며

“서울을 저 건너로 알으시오.”

하며 달려들어

“편지 내오.”

상지할 제 옷 앞자락을 잡고 실랑하며 살펴보니 명주 전대를 허리에 둘렀는데 제기(祭器) 접시같은 것이 들었거늘 물러나며

“이것 어디서 났소. 찬 바람이 나오.”

“이놈 만일 천기누설(天機漏洩)하여서는 생명을 보전치 못하리라.”

당부하고 남원으로 들어올 제 박석치를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산도 예 보던 산이요 물도 예 보던 물이라.

남문 밖 썩 내달아

“광한루야 잘 있더냐. 오작교야 무사하냐.”

객사청청유색신은 나귀 매고 놀던 데요, 청운낙수 맑은 물은 내 발 씻던 청계수(淸溪水)라. 녹수진경 넓은 길은 왕래하는 옛길이요, 오작교 다리 밑에 빨래하는 여인들은 계집아이 섞여 앉아

“야야.”

“왜야.”

“애고 애고 불쌍터라. 춘향이가 불쌍터라. 모질더라 모질더라. 우리 골 사또가 모질더라. 절개 높은 춘향이를 위력겁탈(威力劫奪)하려 한들 철석같은 춘향 마음 죽는 것을 헤아릴까. 무정터라 무정터라. 이도령이 무정터라.”

저희끼리 공론하며 추적추적 빨래하는 모양은 영양공주, 난양공주, 진채봉, 계섬월, 백릉파, 적경홍, 심요연, 가춘운도 같다마는 양소유가 없었으니 뉘를 찾아 앉았는고. 어사또 누에 올라 자상히 살펴보니 석양은 재서(在西)하고 숙조(宿鳥)는 투림할 제 저 건너 양류목(楊柳木)은 우리 춘향 그네 매고 오락가락 놀던 양을 어제 본 듯 반갑도다. 동편을 바라보니 장림 심처(深處) 녹림간(綠林間)에 춘향집이 저기로다. 저 안에 내동원은 예 보던 고면(古面)이요, 석벽의 험한 옥(獄)은 우리 춘향 우니는 듯 불쌍코 가긍하다. 일락서산(日落西山) 황혼시에 춘향문전 당도하니 행랑은 무너지고 몸채는 꾀를 벗었는데 예 보던 벽오동은 수풀 속에 우뚝 서서 바람을 못 이기어 추레하게 서 있거늘 단장 밑에 백두루미는 함부로 다니다가 개한테 물렸는지 깃도 빠지고 다리를 징금 끼룩 뚜루룩 울음 울고 빗장전 누렁개는 기운없이 졸다가 구면(舊面)객을 몰라보고 꽝꽝 짖고 내달으니

“요 개야 짖지 마라. 주인같은 손님이다. 너의 주인 어디 가고 네가 나와 반기느냐.”

중문을 바라보니 내 손으로 쓴 글자가 충성 충(忠)자 완연터니 가운데 중(中)자는 어디 가고 마음 심(心)자만 남아 있고 와룡장자 입춘서(立春書)는 동남풍에 펄렁펄렁 이내 수심 도와낸다. 그렁저렁 들어가니 내정은 적막한데 춘향의 모 거동 보소. 미음 솥에 불 넣으며

“애고 애고 내 일이야. 모질도다 모질도다. 이서방이 모질도다. 위경 내 딸 아주 잊어 소식조차 돈절하네. 애고 애고 설운지고. 향단아 이리와 불 넣어라.”

하고 나오더니 울 안의 개울물에 흰 머리 감아 빗고 정화수 한 동이를 단하에 받쳐 놓고 복지(伏地)하여 축송하되

“천지지신 일월성신은 화위동심하옵소서.

다만 독녀 춘향이를 금쪽같이 길러내어 외손봉사 바라더니 무죄한 매를 맞고 옥중에 갇혔으니 살릴 길이 없삽니다. 천지지신(天地之神)은 감동하사 한양성 이몽룡을 청운에 높이 올려 내 딸 춘향 살려지이다.”

빌기를 다한 후

“향단아 담배 한 대 붙여 다오.”

춘향의 모 받아 물고 후유 한숨 눈물 질새, 이때 어사 춘향모 정성 보고

“나의 벼슬한 게 선영음덕으로 알았더니 우리 장모 덕이로다.”

하고

“그 안에 뉘 있나.”

“뉘시오.”

“내로세.”

“내라니 뉘신가.”

어사 들어가며

“이서방일세.”

“이서방이라니. 옳지 이풍헌 아들 이서방인가.”

“허허 장모 망령이로세. 나를 몰라, 나를 몰라.”

“자네가 뉘기여.”

“사위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 하였으니 어찌 나를 모르는가.”

춘향의 모 반겨하여

“애고 애고 이게 왠 일인고. 어디 갔다 이제 와. 풍세대작(風勢大作)터니 바람결에 풍겨 온가. 봉운기봉터니 구름 속에 싸여온가. 춘향의 소식 듣고 살리려고 와 계신가. 어서 어서 들어가세.”

손을 잡고 들어가서 촛불 앞에 앉혀 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걸인 중에는 상걸인이 되었구나. 춘향의 모 기가 막혀

“이게 웬 일이오.”

“양반이 그릇되매 형언(形言)할 수 없네. 그때 올라가서 벼슬 길 끊어지고 탕진가산(蕩盡家産)하여 부친께서는 학장질 가시고 모친은 친가로 가시고 다 각기 갈리어서 나는 춘향에게 내려와서 돈 천이나 얻어 갈까 하였더니 와서 보니 양가(兩家) 이력 말 아닐세.”

춘향의 모 이 말 듣고 기가 막혀

“무정한 이 사람아. 일차 이별후로 소식이 없었으니 그런 인사가 있으며 후긴지 바랐더니 이리 잘 되었소.

쏘아 논 살이 되고 엎질러진 물이 되어 수원수구(誰怨誰咎)할까마는 내 딸 춘향 어쩔라나.”

홧김에 달려들어 코를 물어 뗄려 하니

“내 탓이지 코 탓인가. 장모가 나를 몰라 보네. 하늘이 무심(無心)태도 풍운조화(風雲造化)와 뇌성뇌기(雷聲雷氣)는 있느니.”

춘향모 기가 차서

“양반이 그릇되매 간롱조차 들었구나.”

어사 짐짓 춘향모의 하는 거동을 보려 하고

“시장하여 나 죽겠네. 나 밥 한 술 주소.”

춘향모 밥 달라는 말을 듣고

“밥 없네.”

어찌 밥 없을꼬마는 홧김에 하는 말이었다. 이때 향단이 옥에 갔다 나오더니 저의 아씨 야단 소리에 가슴이 우둔우둔 정신이 울렁울렁 정처없이 들어가서 가만히 살펴보니 전의 서방님이 와 계(시)구나. 어찌 반갑던지 우루룩 들어가서

“향단이 문안이오. 대감님 문안이 어떠하옵시며 대부인 기후 안녕하옵시며 서방님께서도 원로에 평안히 행차하시니까.”

“오냐. 고생이 어떠하냐.”

“소녀 몸을 무탈하옵니다. 아씨 아씨 큰 아씨. 마오 마오 그리 마오. 멀고 먼 천리 길에 뉘 보려고 와계(시)관대 이 괄시가 왠 일이오. 애기씨가 알으시면 지레 야단이 날 것이니 너무 괄시 마옵소서.”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먹던 밥에 풋고추 저리김치 양념 넣고 단간장에 냉수 가득 떠서 모반에 받쳐 드리면서

“더운 진지 할 동안에 시장하신데 우선 요기하옵소서.”

어사또 반겨하며

“밥아 너 본지 오래로구나.”

여러가지를 한데다가 붓더니 숟가락 댈 것 없이 손으로 뒤져서 한편으로 몰아치더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 듯 하는구나.

춘향모 하는 말이

“얼씨구 밥 빌어먹기는 공성이 났구나.”

이때 향단이는 저의 애기씨 신세를 생가하여 크게 울든 못하고 체읍하여 우는 말이

“어찌할꺼나 어찌할꺼나. 도덕 높은 우리 애기씨 어찌하여 살리시려오. 어찌꺼나요 어찌꺼나요.”

실성으로 우는 양을 어사또 보시더니 기가 막혀

“여봐라 향단아.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너의 아기씨가 설마 살지 죽을소냐. 행실이 지극하면 사는 날이 있느니라.”

춘향모 듣더니

“애고 양반이라고 오기는 있어서 대체 자네가 왜 저 모양인가.”

향단이 하는 말이

“우리 큰 아씨 하는 말을 조금도 괘념 마옵소서. 나 많아야 노망한 중에 이 일을 당해 놓(으)니 홧김에 하는 말을 일분인들 노하리까. 더운 진지 잡수시오.”

어사또 밥상 받고 생각하니 분기탱천하여 마음이 울적, 오장이 울렁울렁 석반이 맛이 없어

“향단아. 상 물려라.”

담뱃대 투툭 털며

“여보소 장모. 춘향이나 좀 보아야지.”

“그러지요. 서방님이 춘향을 아니 보아서야 인정이라 하오리까.”

향단이 여쭈오되

“지금은 문을 닫았으니 파루치거든 가사이다.”

이때 마침 파루를 뎅뎅 치는구나. 향단이는 미음상 이고 등롱 들고 어사또는 뒤를 따라 옥문간 당도하니 인적이 고요하고 쇄장이도 간 곳 없네.

이때 춘향이 비몽사몽간에 서방님이 오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이요, 몸에는 홍삼이라. 상사일념(相思一念)에 목을 안고 만단정회(萬端情懷)하는 차라

“춘향아.”

부른들 대답이 있을소냐.

어사또 하는 말이

“크게 한번 불러 보소.”

“모르는 말씀이오. 예서 동헌이 마주치는데 소리가 크게 나면 사또 염문(廉問)할 것이니 잠깐 지체하옵소서.”

“무에 어때, 염문이 무엇인고. 내가 부를 게 가만 있소. 춘향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래어 일어나며

“허허 이 목소리 잠결인가 꿈결인가. 그 목소리 괴이하다.”

어사또 기가 막혀

“내가 왔다고 말을 하소.”

“왔단 말을 하게 되면 기절담락(膽落)할 것이니 가만히 계옵소서.”

춘향이 저의 모친 음성을 듣고 깜짝 놀래어

“어머니 어찌 오셨소. 몹쓸 딸자식을 생각하와 천방지방 다니다가 낙상하기 쉽소. 일후일랑은 오실라 마옵소서.”

“날랑은 염려말고 정신을 차리어라. 왔다.”

“오다니 뉘가 와요.”

“그저 왔다.”

“갑갑하여 나 죽겠소. 일러 주오. 꿈 가운데 님을 만나 만단정회하였더니 혹시 서방님께서 기별 왔소. 언제 오신단 소식 왔소. 벼슬 띠고 내려온단 노문 왔소. 답답하여라.”

“너의 서방인지 남방인지 걸인 하나가 내려왔다.”

“허허. 이게 왠 말인가. 서방님이 오시다니 몽중에 보던 님을 생시에 본단말(인)가.”

문틈으로 손을 잡고 말 못하고 기색하며

“애고 이게 누구시오. 아마도 꿈이로다. 상사불견(相思不見) 그린 님을 이리 수이 만날손가. 이제 죽어 한이 없네. 어찌 그리 무정한가. 박명하다 나의 모녀. 서방님 이별 후에 자나 누(우)나 님 그리워 일구월심 한이더니 내 신세 이리 되어 매에 감겨 죽게 되는 날 살리려 와 셰시오.”

한참 이리 반기다가 님의 형상 자세 보니 어찌 아니 한심하랴.

“여보 서방님. 내 몸 하나 죽는 것은 설운 마음 없소마는 서방님 이 지경이 왠 일이오.”

“오냐 춘향아. 설워 마라. 인명이 재천인데 설만들 죽을소냐.”

춘향이 저의 모친 불러

“한양성 서방님을 칠년대한(七年大旱) 가문 날에 갈민대우 기다린 들 나와 같이 자진(自盡)턴가. 심은 나무(가) 꺾어지고 공든 탑이 무너졌네. 가련하다 이내 신세 하릴없이 되었구나. 어머님 나 죽은 후에라도 원이나 없게 하여 주옵소서. 나 입던 비단 장옷 봉장 안에 들었으니 그 옷 내어 팔아다가 한산세저 바꾸어서 물색 곱게 도포 짓고 백방사주 긴 치마를 되는대로 팔아다가 관, 망, 신발 사드리고 절병, 천은비녀, 밀화장도, 옥지환이 함 속에 들었으니 그것도 팔아다가 한삼, 고의 불초(不肖)찮게 하여 주오. 금명간 죽을 년이 세간 두어 무엇할까. 용장, 봉장, 빼닫이를 되는대로 팔아다가 별찬 진지 대접하오. 나 죽은 후에라도 나 없다 말으시고 날 본 듯이 섬기소서. 서방님 내 말씀 들으시오. 내일이 본관 사또 생신이라. 취중에 주망 나면 나를 올려 칠 것이니 형문 맞은 다리 장독(杖毒)이 났으니 수족인들 놀릴손가. 만수운환 흐트러진 머리 이렁저렁 걷어 얹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들어가서 장폐하여 죽거들랑 삯군인 체 달려들어 둘러업고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놀던 부용당의 적막하고 요적(寥寂)한 데 뉘어 놓고 서방님 손수 염습하되 나의 혼백 위로하여 입은 옷 벗기지 말고 양지 끝에 묻었다가 서방님 귀히 되어 청운에 오르거든 일시도 둘라 말고 육진장포 개렴하여 조촐한 상여 위에 덩그렇게 실은 후에 북망산천 찾아갈 제 앞 남산 뒷 남산 다 버리고 한양성으로 올려다가 선산 발치에 묻어주고 비문에 새기기를 수절원사춘향지묘라 여덟자만 새겨 주오.

망부석이 아니 될까. 서산에 지는 해는 내일 다시 오련마는 불쌍한 춘향이는 한 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까. 신원이나 하여주오. 애고 애고 내 신세야. 불쌍한 나의 모친 나를 잃고 가산을 탕진하면 하릴없이 걸인 되어 이집 저집 걸식타가 언덕 밑에 조속조속 졸면서 자진하여 죽게 되면 지리산 갈가마귀 두 날개를 떡 벌리고 둥덩실 날아 들어 까옥까옥 두 눈을 다 파먹은들 어느 자식 있어 후여 하고 날려 주리.”

애고 애고 설이 울 제

어사또

“울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느니라. 네가 나를 어찌 알고 이렇듯이 설워하느냐.”

작별하고 춘향 집에 돌아왔지.

춘향이는 어둠침침 야삼경에 서방님을 번개같이 얼른 보고 옥방에 홀로 앉아 탄식하는 말이

“명천(明天)은 사람을 낼 제 별로 후박(厚薄)이 없건마는 나의 신세 무슨 죄로 이팔청춘에 님 보내고 모진 목숨 살아 이 형문 이 형장 무슨 일(인)고. 옥중고생 삼사삭에 밤낮없이 님 오시기만 바라더니 이제는 님의 얼굴 보았으니 광채없이 되었구나. 죽어 황천에 돌아간들 제왕전(諸王前)에 무슨 말을 자랑하리.”

애고 애고 설이 울 제 자진하여 반생반사(半生半死)하는구나.

어사또 춘향 집에 나와서 그날 밤을 새려 하고 문안 문밖 염문할 새 길청에 가 들으니 이방 승발 불러 하는 말이

“여보소. 들으니 수의도가 새문 밖 이씨라더니 아까 삼경에 등롱불 켜 들고 춘향모 앞세우고 폐의파관한 손님이 아마도 수상하니 내일 본관 잔치 끝에 일습을 구별하여 생탈없이 십분 조심하소.”

어사 그 말 듣고

“그놈들 알기는 아는데.”

하고 또 장청(杖廳)에 가 들으니 행수, 군관 거동 보소.

“여러 군관님네 아까 옥거리 바장이는 걸인 실로 괴이하데. 아마도 분명 어사(인)듯하니 용모파기 내어 놓고 자세히 보소.”

어사또 듣고

“그놈들 개개여신이로다.”

하고 현사에 가 들으니 호장 역시 그러하다. 육방(六房) 염문 다 한 후에 춘향집 돌아와서 그 밤을 샌 연후에 이튿날 조사 끝에 근읍(近邑) 수령이 모여든다. 운봉영장, 구례, 곡성, 순창, 옥과, 진안, 장수 원님이 차례로 모여든다. 좌편에 행수, 군관 우편에 청령, 사령 한가운데 본관은 주인이 되어 하인 불러 분부하되

“관청색 불러 다담을 올리라. 육고자 불러 큰 소를 잡고, 예방(禮房) 불러 고인을 대령하고, 승발 불러 차일을 대령하라. 사령 불러 잡인을 금하라.”

이렇듯 요란할 제 기치, 군물(軍物)이며 육각풍류(六角風流) 반공에 떠 있고 홍의홍상(紅衣紅裳) 기생들은 백수(白手) 나삼(羅衫) 높이 들어 춤을 추고 지화자 둥덩실 하는 소리 어사또 마음이 심란하구나.

“여봐라 사령들아 . 너의 원 전에 여쭈어라. 먼 데 있는 걸인이 좋은 잔치에 당하였으니 주효(酒肴) 좀 얻어 먹자고 여쭈어라.”

저 사령 거동 보소.

“어느 양반이건데, 우리 안전님 걸인 혼금(혼禁)하니 그런 말은 내도 마오.”

등 밀쳐내니 어찌 아니 명관(名官)인가. 운봉이 그 거동을 보고 본관에게 청하는 말이

“저 걸인의 의관은 남루하나 양반의 후예인 듯하니 말석에 앉히고 술잔이나 먹여 보냄이 어떠하뇨.”

본관 하는 말이

“운봉 소견대로 하오마는.”

하니, 마는 소리 후 입맛이 사납겠다. 어사 속으로

“오냐. 도적질은 내가 하마. 오라는 네가 져라.”

운봉이 분부하여

“저 양반 듭시래라.”

어사또 들어가 단좌하여 좌우를 살펴보니 당상의 모든 수령 다담을 앞에 놓고 진양조가 양양할 제 어사또 상을 보니 어찌 아니 통분하랴. 모 떨어진 개상판에 닥채 젓가락, 콩나물, 깍두기, 막걸리 한 사발 놓았구나. 상을 발길로 탁 차 던지며 운봉의 갈비를 직신

“갈비 한대 먹고지고.”

“다라도 잡수시오.”

하고 운봉이 하는 말이

“이러한 잔치에 풍류로만 놀아서는 맛이 적사오니 차운 한 수씩 하여 보면 어떠하오.”

“그 말이 옿다.”

하니 운봉이 운을 낼 제 높을 고(高)자, 기름 고(膏)자 두 자를 내어 놓고 차례로 운을 달 제 어사또 하는 말이

“걸인이 어려서 추구권이나 읽었더니 좋은 잔치 당하여서 주효를 포식하고 그저 가기 무렴하니 차운 한 수 하사이다.”

운봉이 반겨 듣고 필연(筆硯)을 내어주니 좌중이 다 못하여 글 두귀를 지었으되 민정(民情)을 생각하고 본관 정체(政體)를 생각하여 지었것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이 글 뜻은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더라.

이렇듯이 지었으되 본관은 몰라 보고 운봉이 글을 보며 내념

“아뿔싸. 일이 났다.”

이때 어사또 하직하고 간 연후에 공형 불러 분부하되

“야야. 일이 났다.”

공방 불러 포진(鋪陳) 단속, 병방 불러 역마(驛馬) 단속, 관청색 불러 다담 단속, 옥 형방 불러 죄인 단속, 집사 불러 형구(刑具) 단속, 형방 불러 문부 단속, 사령 불러 합번 단속, 한참 이리 요란할 제 물색없는 저 본관이

“여보 운봉은 어디를 다니시오.”

“소피하고 들어오오.”

본관이 분부하되

“춘향을 급히 올리라.”

고 주광이 난다.

이때에 어사또 군호할 제 서리 보고 눈을 주니 서리, 중방 거동 보소. 역졸 불러 단속할 제 이리 가며 수군 저리 가며 수군수군. 서리, 역졸 거동 보소. 외올 망건

공단 쓰개 새 평립 눌러 쓰고 석 자 감발 새 짚신에 한삼(汗衫) 고의 산뜻 입고 육모 방망이 녹피 끈을 손목에 걸어 쥐고 예서 번뜻 제서 번뜻 남원읍이 우꾼우꾼. 청파역졸 거동 보소. 달같은 마패(馬牌)를 햇빛같이 번뜻 들어

“암행어사 출또야.”

외(치)는 소리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 듯 초목금수(草木禽獸)인들 아니 떨랴. 남문에서

“출또야.”

북문에서

“출또야.”

동‧서문 출또 소리 청천(靑天)에 진동하고

“공형(公兄) 들라.”

외(치)는 소리 육방(六房)이 넋을 잃어

“공형이오.”

등채로 휘닥딱

“애고 중다.”

“공방 공방.”

공방이 포진 들고 들어오며

“안하려던 공방을 하라더니 저 불 속에 어찌 들랴.”

등채로 휘닥딱

“애고 박 터졌네.”

좌수 별감 넋을 잃고 이방 호장 실혼(失魂)하고 삼색나졸 분주하네. 모든 수령 도망할 제 거동 보소. 인궤 잃고 과줄 들고 병부 잃고 송편 들고 탕건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 쓰고 칼집 쥐고 오줌누기. 부서지(느)니 거문고요 깨지느니 북 장고라.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구멍 새앙쥐 눈 뜨듯 하고 내아(內衙)로 들어가서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관청색(官廳色)은 상을 잃고 문짝 이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후닥딱

“애고 나 죽네.”

이때 수의사또 분부하되

“이 골은 대감이 좌정하시던 골이라. 훤화를 금(禁)하고 객사(客舍)로 도처하라.”

좌정 후에

“본관은 봉고파직하라.”

분부하니

“본관은 봉고파직이오.”

사대문(四大門)에 방(榜) 붙이고 옥 형리 불러 분부하되

“네 골 옥수를 다 올리라.”

호령하니 죄인을 올리거늘 다 각각 문죄 후에 무죄자(無罪者) 방송할 새

“저 계집은 무엇인고.”

형리 여쭈오되

“기생 월매 딸이온데 관정(官庭)에 포악한 죄로 옥중에 있삽내다.”

“무슨 죄인고.”

형리 아뢰되

“본관 사또 수청으로 불렀더니 수절이 정절이라 수청 아니 들려 하고 관전(官前)에 포악한 춘향이로소이다.”

어사또 분부하되

“너만 년이 수절한다고 관정 포악하였으니 살기를 바랄소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춘향이 기가 막혀

“내려오는 관장(官長)마다 개개이 명관(名官)이로구나. 수의사또 듣조시오. 층암절벽 높은 바위 바람 분들 무너지며 청송녹죽 푸른 나무가 눈이 온들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주오.”

하며

“향단아 서방님 어디 계신가 보아라. 어젯밤에 옥 문간에 와 계실 제 천만 당부하였더니 어디를 가셨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

어사또 분부하되

“얼굴 들어 나를 보라.”

하시니 춘향이 고개 들어 대상(臺上)을 살펴보니 걸객(乞客)으로 왔던 낭군 어사또로 뚜렷이 앉았구나. 반 웃음 반 울음에

“얼씨구나 좋을씨고 어사낭군 좋을씨고. 남원읍내 추절(秋節)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이화춘풍(李花春風) 날 살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을 깰까 염려로다.”

한참 이리 즐길 적에 춘향모 들어와서 가없이 즐겨하는 말을 어찌 다 설화(說話)하랴. 춘향의 높은 절개 광채 있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어사또 남원 공사(公事) 닦은 후에 춘향 모녀와 향단이를 서울로 치행(治行)할 제 위의(威儀) 찬란하니 세상 사람들이 누가 아니 칭찬하랴. 이때 춘향이 남원을 하직할 새 영귀(榮貴)하게 되었건만 고향을 이별하니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아니 되랴.

놀고 자던 부용당(芙蓉堂)아. 너 부디 잘 있거라. 광한루 오작교며 영주각(瀛州閣)도 잘 있거라. 춘초는 연년녹하되 왕손은 귀불귀라 날로 두고 이름이라. 다 각기 이별할 제 만세무량(萬歲無量)하옵소서. 다시 보기 망연이라.

이때 어사또는 좌‧우도 순읍(巡邑)하여 민정을 살핀 후에 서울로 올라가 어전(御前)에 숙배하니 삼당상 입시(入侍)하사 문부(文簿)를 사정(査定) 후에 상(上)이 대찬(大讚)하시고 즉시 이조참의 대사성을 봉하시고 춘향으로 정렬부인을 봉하시니 사은숙배하고 물러나와 부모 전에 뵈온대 성은을 축수(祝壽)하시더라. 이때 이판 호판 좌‧우‧영상 다 지내고 퇴사 후에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백년동락(百年同樂)할 새 정렬부인에게 삼남삼녀(三男三女)를 두었으니 개개이 총명하여 그 부친을 압두하고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직거일품으로 만세유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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