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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대운문

마음의 태양 - 조지훈

by 열공햐 202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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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이 타오르는 햇살을 향하여

고요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자.

 

가시밭길 넘어 그윽히 웃는 한 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하노니,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괴로움이 짐짓 웃을 양이면

슬픔도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고난을 사랑하는 이에게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圓光)은 떠오른다.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자.

 

- 조지훈, 마음의 태양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이상적

어조 : 의지적 어조

표현 : 상징적 시어와 감각적 이미지를 구사

특징 :

3음보의 전통적 율격을 취하고 있다.

관념적 성격이 짙은 서정시이다.

구성

1() - 아름다운 이상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자

2() - 괴로움을 달게 여겨서 이상 세계를 만들자

3() - 괴로움을 사랑하며 이상 세계를 이루자.

4() - 아름다운 이상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자.

제재 : 하늘

주제 : 맑고 아름다운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

출전 : <역사 앞에서>(1959)

 

 

 

 

조지훈(趙芝薰, 1920년 12월 3일 ~ 1968년 5월 17일)

  일제 강점기 이후로 활동한 대한민국의 수필가, 한국학 연구가, 시인으로, 청록파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본명은 조동탁(趙東卓)이다.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중학 과정을 마치고서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여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그는 1939년 《문장》지에 〈고풍의상〉과 〈승무〉를 추천받아 문단에 등장하였다. 광복 후 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와 동국대학교 강사,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61년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 시인 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이듬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장에 취임하면서 민족문화 개발에 주력하였다.

  청록파의 한 사람으로 명시를 많이 남긴 조지훈의 시는 주로 자연, 무속, 선을 소재로 한 민족다운 색채가 짙고 불교 세계를 향한 관심은 종교의식을 일깨워 작품에 반영되었다. 박목월과 박두진을 비롯한 다른 청록파 시인이 후에 시 세계를 근본으로 변혁했는데 조지훈은 초기 자연과 친화한 시 세계를 꽤 많이 유지하였다. 1956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그 후로도 활발히 문학 활동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68년 5월 고혈압으로 토혈한 후 입원, 고혈압과 기관지확장증의 합병증으로 5월 17일 49세의 젊은 나이로 끝내 타계했다.

  시집으로 《청록집》과 《조지훈 시선》이 있고 수필집 《창에 기대어》, 논문집 《한국 민족운동사》이 있다. 지훈의 뜻은 芝(지초 지) -풀꽃 지 라고도 하며 들판에 일반적으로 자생하는 풀들을 지칭한다. 薰(훈할 훈) - 향기로운 훈 이라고도 하며 지훈이라는 이름 뜻은 특정한 꽃이나 나무의 향기가 아니라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향기 즉 들판을 거닐다 느낄수 있는 풀향 정도로 해석할수 있다.

  1920년 12월 3일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 조헌영과 어머니 전주 류씨 류노미(柳魯尾) 사이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했고 1939년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서 '고풍의상(古風衣裳)'이라는 시로 등단했다. 그 외의 작품으로는 승무(僧舞), 봉황수(鳳凰愁) 등이 있다. 또한 1947년부터 사망시까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고려대학교의 교가와 '호상비문'을 지었으며, 이 호상비문에서 따온 민족의 아리아라는 곡이 매우 유명하다.


  독립유공자 조승기(趙承基)의 6명의 증손자 중 한 명이기도 하며, 조태열 전 주유엔대사는 그의 셋째 아들이다.

 

  1946년 박목월, 박두진과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를 민족 주체의 위기로 보고 민족 주체 의식의 확립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래서 민족 전통을 연구하고 그것을 시로 써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서당 교육을 받았고 검정고시를 쳐서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 합격했으므로 일제식 교육을 일절 받지 않았다. 1941년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부터 사망시까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지조론'이라는 수필을 통해 이승만 정권 및 정치인들의 지조없음을 꾸짖은 전례가 있을 정도로 대쪽같은 인물이었다. 후배 문인 중엔 대선배인 서정주보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에 비판적이었다. 이승만 정권 때는 민권 수호 국민 총연맹, 공명 선거 추진 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김수영이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적이었다면 조지훈은 그 반대로 세속적인 이해와 타협을 거부했다. 말하자면 과거 조선 시대의 선비 정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지조론 중에서

  그는 과거 같은 민족을 탄압했던 친일 세력이 광복이 되자 미국에 달라붙어 친미 세력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혐오했고 그 중심에 있던 이승만의 자유당을 뒤엎어버리고 싶어했다. 그래서 4.19 혁명 때 앞장서서 학생 운동을 지지했고 학생이 앞장서 혁명의 선두가 되기를 요청했고 4.19 이후 권력 공백기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에 처음에는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 세력이 없던 박정희가 같은 일본 군인 출신들과 친일 자유당 인물들을 주축으로 공화당을 만들고 결정적으로 한일협정을 추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극명하게 비판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는가? 학문에의 침잠을 방패 삼아 이 참혹한 민족적 현실에 눈감으려는 경향은 없는가? (중략)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여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우리는 민족의 지사, 구국의 투사로서 자임해야 할 시기가 왔다.”   -조지훈이 고대 신문에 기고한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는가」중에서

  다만 정치적 성향 자체는 진보가 아니라 정통적인 보수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신경림 시인에 의하면 생전의 지론이 '부도덕하고 경박한 진보주의자보다 도덕적이고 성실한 보수주의자가 역사에 더 많이 기여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정부와 대립하면서 강경하게 나가는 진보적 문인들에게도 한 소리 했다는 말도 있다. 종합적으로 개인적 정치 성향은 보수적이지만 그럼에도 당시 정권들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그정도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조지훈 자신부터 명문가 출신인 데다가 한의학자 겸 제헌 국회 의원으로서 정치가였던 부친 조헌영이 6.25 전쟁 때 납북되고, 조부 조인석은 6.25 전쟁 때 좌익 청년들이 자신을 모욕하고 집안에서 난리를 치자 그 수치감에 자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지훈의 아들 조태열은 외교부 차관을 역임하고 주UN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로 재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와는 달리, 야사 중에는 매우 해괴한 장난을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시전설들인 '교수의 독특한 시험문제' 중 '시험지를 날려서 멀리 날아가는 순서에 맞춰서 채점하기' 방식을 쓴 사람 중에 조지훈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나키스트 독립 운동가인 박열과 약간 접점이 있다. 박열의 대역 사건 재판 당시 박열이 입은 조선 관복(사모관대)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조지훈의 아버지인 조헌영. 조지훈 본인도 '나의 시작(詩作) 노트'라는 수필에서 '박열이 입었던 관복을 집에서 어린 시절 직접 본 적이 있다.'고 회고하였다.

  바둑의 급수에 빗대어 술꾼의 등급을 매긴 주도 18단이란 글이 유명하다.

 

 

이해와 감상

  전통적인 운율과 선()의 미학을 매우 현대적인 방법으로 결합한 것이 조지훈 시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아한 고전적 취향은 한국인의 역사적문화적 인식을 일깨우는 뜻이 있으며,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일제 치하의 민족의 굴욕을 극복하려고 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시에서 저항적 요소가 보이는 것도 그러한 정신적 자세와 연결되어 있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꽃 사이로 타오르는 햇살을 보며 마음속의 고난과 슬픔을 씻어 내고자 하는 소망과, 푸른 하늘을 떠받들어 아름다운 혼으로 피어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밝음과 높음을 지향하는 정신적 자세해바라기노고지리로 표상하고 있다.

 

  박두진의 <>가 어둠을 적극적으로 거부한 데 반하여, 이 시는 그러한 고난과 시련의 상황을 거부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꽃 사이 타오르는 햇살을 향하여

고요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자.

 

  1연에서 시적 화자는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여 이상 세계 속에 정화된 영혼을 살게 하자고 당부하고 있으며,

 

가시밭길 넘어 그윽히 웃는 한 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하노니,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2연에서는 높고 거룩한 이상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육신의 괴로움도 참고 달게 받아들이라고 당부하고 있다.

 

괴로움이 짐짓 웃을 양이면

슬픔도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고난을 사랑하는 이에게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圓光)은 떠오른다.

 

3연에서는 고난이나 괴로움을 끌어안아 고난을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이상 세계를 이룰 수 있음을 당부하고 있으며,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자.

 

4연에서는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와 같이 높은 넋을 지니고 살아가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 시는 시련과 고난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마음속에 깨끗한 넋을 소유한 자만이 이상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태도가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지상적인 것을 천상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려는 시적 화자의 태도는 현실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정신적으로는 높은 넋을 지향해 나가는 진지함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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