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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전문

이청준 '줄' 전문

by 열공햐 202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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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광대」

 

 

이청준

 

 

1

 

“여봐.”

“…….”

“여봐, 자?”

“…….”

나는 여자를 버려두고 담배에다 새로 불을 붙였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여자가 먼저 약속을 어겨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밤이 한결 더 조용해진 것 같다.

─빨리 불 끄고 자요.

아까 여자는 슈미즈 바람이 되자마자 재촉을 해댔다.

─이봐, 난 네가 여자기 때문에 돈 주고 사온 게 아니야.

여자는 이불 깃을 턱으로 끌어 올리더니 한참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혼자 있기가 뭣해서 부른 것뿐이니까 여기서 밤을 지내주기만 하면 돼.

여자는 그제야 조금 웃었다

─당신은 좀 이상한 분이군요.

─대신 나보다 먼저 자서는 안 돼.

여자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 눈을 감아버렸다. 삼백 원이면 싸다고 생각했다 몇 번 여자를 불러보았다. 그녀가 깨어 있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그때마다 눈을 보시시 뜨고 나를 돌아다 보았다. 목 아래 깔린 그녀의 머리숱이 보였다. 나보다 먼저 잠이 들어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이 여자는 자기 몸 값쯤으로 계산한 모양이었다. 그건 좀 곤란하다. 내 쪽이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마음을 꼭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구석에 놓아둔 휴대용 녹음기와 카메라가 좀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흔히 이런 여자들은 아침에 먼저 일어나 가버리기가 쉽고, 대개 그때의 손버릇은 좋지 않게 마련이다.

마침내 여자가 자고 있다. 나는 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금방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역시 나는 고향을 찾아들었고, 그래서 조금은 흥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여행에 대한 미지근한 책임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까 낮에 차에서 너무 자버린 때문인가? ─남 기자, 본적이 전남 C읍이었지요?

어느 날 느닷없이 문화부장이 나에게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마는…….

C읍이 나와 관계되는 것은 이력서와 호적 초본뿐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잘됐습니다, 남 기자. 이번에 고향엘 좀 다녀오시오.

뜻밖의 호의였다.

나는 조금 의아스런 얼굴을 지었다.

나는 문화부 기자 가운데서 근무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문화부장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부장의 호의가 수상쩍었으나 어쨌든 잘됐다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어디나 좀 훌훌 한 차례 떠돌아다니고 싶던 참이었다.

─한 며칠 묵으면서 이걸 좀 이야기로 만들어 오시오.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부장은 C읍에 승천(昇天)한‘줄광대’가 있다고 하더라면서, 상당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여서 재미있는 기사 거리가 될 수 있을 테니 좀 자세히 취재를 해오라는 것이었다.

─좀, 어려운 일이군요.

─그럼 남 기잘 포상 여행이라도 시켜주는 줄 알았소?

─그게 아니라 거짓말 같은 걸 참말로 만들어 오라니 말입니다.

─허허……. 남 기잔 문학적 센스가 있는 사람이니까 잘 해낼 겁 니다.

나는 부장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문학적인 센스라는 말엔 입 속이 썼다. 그것은 내가 문학을 지망했으면서도 한 편의 작품도 쓰지 못했다든지 하는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우선 나에게는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건 전부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에 어떤 소설적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이 없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면 멀쩡하게 조리가 정연하던 생각의 흐름이 갑자기 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말도 적합지가 않다. 나의 머릿속은 혼란이라는 말로 딱 잘라서 규정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결국 내가 소설을 쓸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였다. 부장이 나에게 문학적인 센스가 있다고 한 것은 단지 내가 문과를 나왔다는 이유에서였을 뿐 나를 비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비위가 더 상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했다.

─어떻든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지근한, 말하자면 포상 여행이 아닌 출장 여행으로 나는 어젯밤 서울역에서 7시 야간 열차를 탔고, 아침 5시에는 광주에 도착했다. 서울은 저녁이었고 광주는 아침이었다. 그러니까 밤은 서울과 광주 사이에 있었다. 나는 그 동안 줄곧 잤다. 어쩌다 눈을 떠보면 창 밖에서 어둠이 서울 쪽으로만 몰려가고 있었다.

광주에 내려서 대강 아침을 먹고 다시 C읍행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도 나는 잤다. 그저 잤다고만 할 수는 없겠다. 다른 사람들은 자지 않고 있다든지 유리창을 흐르고 있는 것은 밤 대신 낮이라는 것 등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유리창을 흐르고 있는 것이 서울 쪽이면서 광주 쪽이라는 것도……. 산비탈 신작로를 비스듬히 기운 전봇대들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면서 잇대었다. 차가 그 전신주 사이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비키면서 달렸다. 겨울 한 철 깜박 잊혀진 산골의 주름살 같은 논배미들도 지나갔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자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자동차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아무렇게나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버스는 광주를 출발한 지 네 시간 만에 터덜터덜 C읍으로 들어섰다. 20년 만에 나의 고향이라고 하는 땅을 밟는데 불과 열네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나는 정말로 C읍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社支局이라도 찾아볼까 했으나, 나는 언뜻 눈에 먼저 띈 이 여관으로 들어와 내처 낮잠만 자버렸던 것이다. 잠이 깨어난 것은 시계가 다섯 시를 지난 뒤였다. 그러니까 지금 잠이 오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한꺼번에 너무 많이 자버린 탓일 게다. 하기는 난 서울 집에서도 일요일이면 밤과 낮을 뒤집어 살기가 일쑤였다. 낮에 잠을 자고, 밤을 뜬눈으로 지내느라면 나는 다른 사람의 두 곱을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그 시간만은 내가 다른 사람을 이기고 있다는 쾌감까지 덧붙었다. 어쨌든 지금 여자는 자고 있다.

“여봐!”

나는 다시 여자의 뺨에 손바닥을 대고 흔들었다. 아까부터 여자에게 물어보려던 말이 지금 막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까 저녁 무렵 잠이 깨었을 때 얼굴이 답답해서 세수를 좀 하쟀더니 물이 없다고 했다.

─가뭄에다 시골이 되어 그렇답니다

주인 여자는 행장 거지로 내가 위쪽에서 온 사람임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물을 길어다 줄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고 적갈색으로 녹이 슨 수도를 가리켰다. 날이 어두워지니까 여자가 이번에는 촛불을 켜들고 왔다. 파리똥이 까맣게 오른 30와트 전구에는 아직 불이 닳지 않고 있었다.

─시골이 되어서 늘 그렇답니다.

별로 답답해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얼굴로 전구를 쳐다보았다. 나는 저녁을 드는 둥 마는 둥 하고 거리로 나와버렸다. 여자를 한 사람 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C읍의 형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무에게나 물을 수도 없었고, 찾아갈 만큼 기억에 남아 있는 이름도 없었다. 밤을 혼자 지내기는 죽어라고 싫었다. 하는 수 없이 여관으로 와서 심부름하는 아이놈에게 부탁을 했다.

─밤에 이런 거 손대면 네가 책임져야 해!

아이놈에게 녹음기와 카메라를 가리켰더니, ─이 여잔 그런 거 절대로 손 안 대요.

아이놈이 반시간쯤 뒤에 여자를 데리고 와서야 그렇게 나에게 살짝 대답했다. 한데 지금 생각이 났다고 한 것은 여자를 사러 나갔을 때, 다릿목 집에서의 일이다. 그 앞을 지나가려니까 문득 눈에 뜨이는 간판이 있었다. 흰 바탕에 노랑과 검은색의 테를 두른 모양이 한눈에 장의사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간판 말이었다.

승천장의사(昇天葬儀社)─.

이것이 그 장의사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나는 부장의 부탁(그냥 부탁이라고만 해두자)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말을 간판으로 삼고 있는 장의사 주인이라면 뜻밖에 재미있는 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주인과 하룻밤 술자리를 같이 함으로써 이번 여행의 채무를 일찌감치 치러버릴 심산까지 생겨났다. 나는 우선 누구에게나 그 사내─아마 틀림없이 사내리라, 그것도 약간 기분 나쁜 잿빛 얼굴색을 하고, 어쩌면 두껍고 검은 테 안경을 썼을─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던 것인데, 이 여자와 같이 있게 된 뒤로도 여러 번 그것이 생각나기는 했으나, 그때마다 금방 다시 잊어버리곤 해서 여태 물어보질 못했던 것이다. 물론 꼭 지금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여봐?”

여자는 겨우 눈을 떠보고 귀찮은 듯이, “아이 아직두…….”

잠에 취한 소리를 하고는 반쯤 벗은 몸을 아주 돌아누워 버린다.

“요것 봐라!”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하더니 그대로 온몸이 더워지기 시작 한다.

─흠, 어차피 곧이듣지 않을 약속이었는걸 뭘.

 

2

 

아침에 일어났을 때─정말은 아침이 아니었다─내 팔목시계는 벌써 열두 시가 훨씬 지나 있었다. 여자는 물론 가고 없었다. 녹음기와 카메라는 그대로 있었다. 아이놈의 말은 역시 믿을 만해 보였다.

붉은 잉크 걸레를 헹궈낸 듯한 녹물에다 대강 얼굴을 문지르고 여관을 나섰다. 아무거로나 아침 겸 점심을 때워야 했다. 거리에는 겨울날답지 않게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파는 가까운 가게 가 없었다. 시내 버스 같은 것이 있을 리도 없었다. 나는 잠시 여관 처마 밑에 서 있었다. 실비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꼭 무엇을 잊고 있는 것같이 마음 한구석이 미심쩍었다. 아마 착각이겠지. 나는 실비 속으로 걸음을 옳겼다. 다릿목에 이르러서야 마음 한구석이 미심쩍었던 이유를 알았다.

 

昇天葬儀社─.

가는 실비에 젖고 있었다.

나는 두말없이 장의사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주인은 40이 조금 넘었을 듯한 사내였고, 약간 잿빛으로 번들거리는 피부색을 하고 있었다. 나의 예상이 적중하지 못한 것은 사내의 안경테가 검은색이 아니라 붉은색이라는 것뿐이었다.

“저, 용건이 있어 온 사람이 아닙니다만…….”

나는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

“간판이 기이해서 주인께서도 퍽 재미있는 분일 것 같아서요…….” 그러나 이 말은 사내에게 별로 호감을 주지 못한 모양이었다.

“간판이라뇨?”

사내는 마지못해 나무 걸상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두 손을 뒤로 모아 잡았다.

“승천이라니 아마 하늘로 보내주신다는 뜻이겠는데…… 아이디어가 좋습니다.”“뭐 그렇게 칭찬을 받을 만한 건 못됩니다.”

사내는 여전히 시들했다. 나는 약간 화가 났다. 이제 이자는 내가 쑥스럽지 않게 여길 빠져나갈 구실이라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아마 이 고을 양반이 아니신 모양인데…….”

엉거주춤하고 서 있는 내가 딱했던지 사내는 좀 민망스러워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머리를 끄덕여주고 문을 나서려고 했다.

“그러신 것 같았어요. 저건 이 골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깁니다.”나는 다시 발을 멈췄다.

“좋으시다면 제가 아침을 살까요?”

“난 아침과 점심을 다 먹었습니다.”

사내의 얼굴에 번쩍번쩍한 골이 몇 개 일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아…….”

나는 다시 당황해서 터무니없는 탄성을 발하고 나서 주렁주렁 매달린 소형 녹음기와 카메라만 맥없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난 선생이 뭘 하시는 분인지 알 만합니다.”

사내는 자기의 잿빛 얼굴에서 그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워버리기가 퍽 아까운 듯이 보였다.

 

조금 뒤에 나는 중국 음식점 이층에서 국물만 남은 우동 그릇을 몇 번씩이나 휘저으면서 망연스레 창문을 내라보고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에 대한 임무는 여기서 대강 끝내버려야 나머지 기간을 좀 편히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아무거나─ 그 아무거나인 것을 무슨 심각한 문젯거리나 된 듯이 큼지막한 활자로 찍어 내놓으면 가끔은 진짜 무엇이 되어버리는 수도 있었다. 장의사 사내의 이야기는 바로 그럴 수 있는 것이었다. 얼마간 미리 생각을 해둬야 할 점이 없지도 않았다. 그가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하는 말이 이랬다.

─하지만 그 녀석을 만나보기가 어려울 겝니다. 작자가 누구도 만나려질 않으려니까요. 아마 십 년내에 그 작자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내의 얘긴즉 이런 것이었다.

1949년, 그러니까 6·25사변이 있기 전 해에 C읍에 어떤 서커스단이 들어왔다고 했다. 말타기라든지 통굴리기라든지 자전거타기라든지 하는 곡예와, 여자며 원숭이며 하는 것들이 있다는 끔에서 그 서커스단은 다른 서커스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가설 극장 천장의 포장까지 걷어 젖히고 유독히 높게 줄을 걸어놓고, 걷는 것 같지도 않게 꼿꼿한 자세로 하늘을 건너다니곤 하던 젊은 줄광대 한 사람이 특별했다면 좀 특별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그 줄광대는 그때까지와는 달리 줄 위에서 발 재주를 조금씩 부리기 시작해서, 관람객의 흥을 돋우려는 것인가 했더니, 어느 날 밤 갑자기 줄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서커스단은 이내 C읍에서 파산을 해서, 단원들은 여수로 목포로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오직 트럼펫을 불던 사내 하나가 전부터 가끔 피를 쏟곤 하던, 폐가 아주 못 쓰게 상해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C읍에 그냥 주저앉아 있다고. 이상한 것은 그 줄광대가 줄에서 떨어져 죽은 얼마 뒤부터 사람들은 그가 승천을 해갔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C읍엔 다시 서커스가 들어오질 않았기 때문이었고 처음에는 그 줄광대가 썩 줄을 잘 탔다고 생각지도 않았으면서 몇 해가 지나니까 사람들은 그 줄광대가 명수로 줄을 잘 탔던 것같이 믿어버렸고, 그는 정말로 승천을 해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광대의 이야기는 C읍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어서 사내는 승천이라는 말을 그냥 자기 장의사 간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꾸고 난 지 며칠째 되는 날 갑자기 생각난 꿈을 어떻게 해득해 보려고 할 때처럼 좀 허황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든 그 줄광대에 대한 것은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이야깃거리는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그 트럼펫의 사내를 만나려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 이야기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문화부장이 말한 그 나의 문학적 센스 때문에 생긴 오해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사내를 한 번 만나봤으면 싶었다. 그러나 녀석은 사람을 만나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장의사 문을 나서려고 했을 때 사내가 다짐하듯 물어왔었다.

─선생은 꼭 그 녀석을 만나보시렵니까?

─꼭이랄 건 없지만…….

─가보십시오. 사실은 우리 쪽에서도 그 집엘 가보려는 사람이 없는 형편입니다.

말하고 나서 좀 장난스럽게 웃었다. 무엇을 감추고 있는 듯했으나 나는 트럼펫이 살고 있다는 곳의 약도를 얻어가지고 그곳을 나왔었다.

사내가 정말로 만나주지 않으면 어떻게 한다? 비에 젖고 있는 C읍의 지붕들을 창유리로 내다보며 나는 생각해 보았으나, 좋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C읍은 달라졌다면 역시 좀 달라진 듯도 싶었다. 시가의 중앙, 판자촌이 즐비하던 시장 바닥에는 이제 제법 이층 건물이 군데군데 솟아나고, 그 한가운데는 노상 스피커가 울고불고하는 극장 건물이 이마를 쑥 내밀고 앉아 있었다. 좀 북쪽으로는 경찰서와 갓 칠한 붉은 페인트가 선연한 소방서 건물이 나란히 서 있었다. 거기서 서쪽으로‘사꾸라 공원’(지금은 바뀌었지만)이라고 불리던 읍공원은 이제 별로 사람이 가는 것 같지가 않았고 아카시아로 덮였던 공원 아래쪽 벌은 주택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결국 나는 사내를 만날 아무 계략도 없이 중국집을 나와 약도를 따라 갔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 절반과, 까짓 싫다면 그만두라지 하는 생각 절반으로. 실비 속에 벌써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사꾸라 공원’중턱에 외따로 자리잡은 트럼펫 사내의 집은 몇 년째 지붕을 이지 않은 초가였다. 방이 둘이었다. 부엌 곁엣방에는 여자의 고무신이 한 켤레 놓여 있었으나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장의사 사내의 말과는 달리 나는 사내가 거처함직한 안방의 창호지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았다. 성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선 나에게 달려든 것은 코를 찌르는 냄새였다. 벌레처럼 조그마한 사내 하나가 방 아랫목에서 겨우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앉았다. 그 사내와 방안에 있는 모든 것─이불과 머리맡에 놓아둔 요강과 그 옆의 미음 그릇 같은─에서는 한결같이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풍겨나오고 있는 듯했다. 투명하면서 살갗으로까지 파고 들어와서 구역질을 일으킬 것 같은 냄새였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숨을 조금만 들이쉬었다가 힘껏 내쉬면서 실례한다는 말을 했다. 사내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내방을 뜻밖에 제법 반기는 눈치였다.

“누추한 곳을 어떻게…….”

말을 할 때 사내의 목에서는 가래가 끓었다. 도대체 이 사내의 뼈만 남은 육신을 가지고는 나이조차 짐작할 수가 없었다. 호흡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이 사내가 사람을 만나기를 싫어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반대로 C읍에서 이 사내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는 것은 옳은 소리였던 것 같았다. 나는 사내의 목과 이불을 들추고 나온 정갱이를 멍청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사내의 눈이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의식하고는 찾아온 목적을 좀 과장해서 설명했다. 말을 듣고 나서 사내는 나를 조금 경계하는 눈치였다. 나를 지켜보던 사내의 눈이 한 번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더니, 그 시선은 마치 내 뒤에 다른 사람이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나의 머리 위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 시선이 다시는 나에게로 향해 올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카메라와 녹음기를 가져온 게 잘못이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하시는 괴로움만 참아주신다면 나중에 그 이야기를 제가 취급할 방법을 선생께서 한정해 주실 수도 있겠고…….” 나는 사내를 달래보려다 입을 다물어버렸다. 나의 말주변이 우선 서투르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내의 눈은 도무지 나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사내는 나의 말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내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할 이유라도 가지고 있소?”갑자기 시선을 낮추며 나에게 묻고 나서, 사내는 열심히 나의 입을 지켜보았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쉬운 대로 대답을 해두자고 생각한 순간 사내가 다시 말했다.

“좋소. 이야기하리다. 나도 누구 한 사람에게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이야기해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으니까. 한데 이젠 언제 숨이 아주 끊길지 모르게 되었으니 더 미룰 수도 없어졌어요. 대신 잘 들어주셔야 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내게는 유일한 재산처럼 귀중하고 엄숙한 이야기니까요.”가래가 묻어나올 듯이 끈적끈적한 사내의 이야기가 귀중한 것일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사내의 이야기를 엄숙히 듣는 체함으로써 여행의 소임을 끝낼 수는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일단 거리로 나왔다가 사내가 입을 댈 만한 것을 몇 가지 마련해 가지고 다시 사내에게로 갔다. 그 부엌 방에는 여전히 한 켤레의 고무신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가지고 온 것을 사내에게 권한 다음 그 귀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

 

이야기는 예기했던 대로 그 젊은 줄광대의 승천에 대한 것이었다. 사내는 가래를 끓이며 이야기를 조금씩 이어나갔다.

“……그 광대는 이름이 허운이었습니다. 운이라는 이름자가 구름 운(雲)잔지 운수 운(運)잔지는 모르겠습니다. 광대들에게 이름을 글자로 쓴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하니까 그건 상관없습니다. 하여튼…… 운은 나보다 다섯 살 아래였지요. 바보같이 말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말이 적었는지 짐작이 가실지 모르겠습니다.

운에게는 역시 줄타기 광대로 늙은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사람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는 어머니가 없었다. 운은 그가 죽을 때까지도 어머니에 대한 확실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운이 처음부터 자기는 어머니 없는 세상에 나온 사람으로 믿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그는 어머니에 대한 것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와 아버지 사이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지 어떤지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운을 빼놓은 서커스단 사람들은 운이 겨우 두 살을 나던 겨울, 운의 어머니가 단장과의 부정을 의심받고 남편에게 목을 졸려 죽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때 벌써 머리가 희기 시작한 허노인은 그 일이 있고도 꼭 하룻밤 동안 줄을 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서커스단에서 줄을 탔고, 아들 운까지도 그곳의 줄광대로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처음 서커스단 사람들은 허노인과 단장 사이에 무슨 계략이라도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 허노인에 대한 오해가 풀리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지나야 했었다. 운이 열 살이 되던 해였다.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을 갔다가 시들해져 돌아온 운을 보고 허노인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세상에는 줄광대가 밟을 만한 땅이 없지.

그리고는 운에게 줄타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직선을 그어놓고 그 선에서 발이 벗어나지 않게 왕래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각목(角木)이었다. 발바닥 절반만한 넓이의 각목을 땅에 깔아놓고 손을 뒤로 모아 잡은 다음 몸을 꼿꼿이 하여 그 위를 왕래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리고 나중에는 빨리, 그랬다가는 다시 천천히, 그것이 아주 익숙하게 되었을 때 운은 눈을 싸매고 그때까지의 과정을 한 번 더 되풀이했다. 다음에는 그 각목이 줄로 바뀌고, 그 줄이 드디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꼬박 5년이 걸렸다. 운은 16살이 되었다. 그때 이미 그는 언뜻 보기에 허노인과 다름없이 줄을 탔다.

그러나 허노인은 운을 사람들 앞에서 줄을 오르게 하려는 눈치가 안 보였다. 하지만 운은 그 허노인에게 섣불리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운은 허노인을 무서워했다. 허노인은 운을 때리지 않았지만 시간만 나면 언제나 회초리를 들고 뒷마당에서 운의 줄타기 연습을 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참다못해 운이 어느날 아버지 허노인에게 속마음을 텄다.

―아버지 저도 이젠 사람들 앞에서 줄을 탔으면 합니다.

허노인은 그때 얼굴색이 조금 변했으나 온화하게 몰었다.

―그래, 그럼 줄을 탈 때 끝이 가까워 보이느냐?

―네,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가는 줄이 넓어 보이겠구나…….

그 위에서 뛰어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허노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되겠다!

운은 그 까닭을 몰랐으나 더 대꾸하지 못했다. 18살이 되었다. 운은 허노인에게 같은 청을 드렸다.

―어때 줄이 넓어 보이더냐?

―줄이 보이질 않습니다.

운은 불안했으나 사실대로 말했다.

―그래, 줄을 타고 있을 때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단 말이냐?

―예.

―귀도 들리지 않고?

―예.

그것도 사실대로 말했다.

―흠, 아직도 객기가 있어…….

허노인은 턱으로 줄을 가리켰다. 운은 또 아무 대꾸도 못하고 줄로 올라갔다. 사실 운은 자신이 허노인과 같이 줄을 잘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허노인이 줄을 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천장 포장을 걷어 젖히고, 넓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허노인은 흰옷에 조명을 받으며 줄을 건너는 것이었는데, 발을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게 그냥 흘러가듯 조용히 줄을 건너가는 노인의 모습은 유령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냥 땅 위에서 하품을 하고 잇는 것 같기도 했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줄을 타는 허노인이었지만 줄에서 내려오면 그의 온몸은 언제나 땀에 흠뻑 젖어 있곤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단장은 그런 허노인의 줄타기를 몹시도 싫어했다.

―구경꾼 놈들의 간덩이를 덜컹덜컹 내려앉게 해주란 말야. 재주를 좀 부려, 재주를.

단장은 허노인을 매번 나무랐다. 허노인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대꾸도 못 하고 땀만 뻘뻘 흘리다간 단장 앞을 힘없이 물러나오곤 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허노인은 여전히 전처럼 줄을 타는 것이었다. 운은 누가 뭐래도 허노인이 그렇게 줄을 타는 것이 좋았고, 자기도 그렇게 줄을 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러니까 운이 허노인에게 두 번째로 소원을 말하고 나서 1년쯤 지났을 때였다. 줄 위에서 그렇게 유연하던 노인의 발길이 합 번 변을 일으켰다. 딱 한 번, 발길이 가볍게 허공을 차는 듯한 동작을 하더니 줄이 잠시 상하 반동을 했다. 허노인은 가만히 몸을 지탱하고 있다가 곧 다시 줄을 건너갔가. 누구도 그것을 실수로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객석에 눈을 두고 있던 단장은 거기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함성에 놀라 하늘을 쳐다보았으나 줄이 상하로 조금씩 움직이는 것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을 정도였다.

“허노인이 줄을 잘 탔다고 하는 것은 운의 생가입니까, 혹은 노인의 생각입니까?”

 

나는 트럼펫의 사내가 숨을 좀 돌리게 하기 위하여 이야기로 뛰어들었다. 사내는 한 마디 말을 하기 위해서 거의 한번씩 숨을 들이쉬었다.

“그건 물론 운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이상하지 않습니까, 노인께서 운의 생각을 말씀하신다는 것은?”

“그렇지요. 하지만 이렇게 누워서 많은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운은 나와 나이가 가장 가까웠으니까 내가 그의 심중을 비교적 많이 이해하는 편이었고, 그도 내게만은 조금씩 얘기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벌써 나팔장이가 다 되었으니까 웬만큼 나팔을 불어주고 남은 시간은 대개 그 부자가 지내는 뒷마당에서 보냈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허노인이 한 번 발을 헛디뎠던 다음날이었지요. 마침 그날도 나는 거기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허노인이 아들의 줄타기를 보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줄 위에 있는 운이 아니라 무섭도록 줄을 쏘아보고 있는 노인의 눈과 땀이 송송 솟고 있는 이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은 갑자기 “이놈아!” 하고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줄 밑으로 내닫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야 나는 줄 위를 쳐다보았지요, 그런데 운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그냥 줄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이놈…… 너는 이 아비의 말도 듣지 않느냐?

하고, 줄을 내려왔을 때 노인이 호령을 했으나, 운은 역시 아리둥절해 있기만 했어요. 내가 놀란 것은 그때 허노인이 빙그레 웃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는 그 길로 곧 함께 주막 술집을 찾아들어갔습니다.”

사내의 이야기는 다시 계속되었다.

그 날 주막에서 허 노인은 운에게 술잔을 따라 주고, 그 날 밤으로 운을 줄로 오르라고 했다.

―줄 끝이 멀리 멀리 보여서는 더욱 안 되지만 가깝고 넓어 보여서도 안 되는 법이다. 그 줄이라는 것이 눈에서 아주 사라져 버리고, 줄에만 올라서면 거기만의 자유로운 세상이 있어야 하는 게야. 제일 위험한 것은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다. 줄에서는 눈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단 말이다.

노인은 조용조용 당부를 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노인의 일생을 몇 개로 잘라서 압축해 놓은 듯한 무게와 힘과, 그리고 알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자기의 전 생애를 운에게 떠넘겨 주려는 듯한 안간힘이 거기에는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 이젠 줄을 그만두시고 좀 쉬십시오.

운이 말했으나 노인은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줄에서 내 발바닥의 기력이 다했다고 다른 곳을 밟고 살겠느냐? 같이 타자.

그 날 밤, 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올라섰다. 운이 앞을 서고 허 노인이 뒤를 따랐다.

운이 줄을 다 건넜을 때는 객석이 뒤숭숭하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뒤를 따르던 허 노인이 줄에서 떨어져 이미 운명을 하고만 뒤였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나는 사내에게 더 이야기를 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허 노인이 운에게 마지막 당부를 할 때 그랬을 법한 컴컴하고 무거운 것이 이 사내에게서 쉴 사이 없이 흘러나왔다. 이 믿어지지 않는 집요한 이야기로써 사내가 나에게 떠맡기려는 것의 무게를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다음날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아닙니다, 마저 끝냅시다. 곧 끝납니다.”

사내는 아직도 고집을 세우며 이야기를 이으려고 했다. 그러나 말보다 잦은 사내의 기침 소리를 더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내 방을 나와 버렸다. 부엌 방에는 이제 불이 켜 있었으나 역시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나는 곧장 어제의 여관으로 돌아와 자리로 들었다. 사내의 이야기는 문화부장이 기대한 것과는 성질이 다를지 몰라도 기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노인의 운명 ―그 논리 이상으로 정연한 질서는 허 노인이 죽은 지금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허 노인은 줄을 지배하지 못하고 줄이 그를 지배했다.

그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인가. 또, 운은 노인의 무거운 운명을 떠맡아 지고 어떻게 자기 인생을 구축해 갈 수 있었는지. 장의사 사내의 이야기로는 운도 마찬가지로 줄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운은 노인의 인생을 배신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그것은 또 운에게 무슨 의미를 줄 수 있는가……이런저런 생각을 한참 하고 있는데 어젯밤의 여자가 불쑥 문을 들어섰다. 나는 여자가 좀 수상쩍었으나 이것저것 묻기가 귀찮아서 그냥 옆에 눕게 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나는 곧 피곤해져서 잠이 들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역시 여자는 가고 없었고, 윗주머니의 돈이 꼭 삼백 원이 줄어 있었다. 시계가 열 두 시를 넘고 있었다. 나는 어제와 똑같이 여관을 나와 다릿목으로 해서(다릿목에서는 장의사의 사내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아직 떠나지 않으셨군요” 하고 아는 체를 했다.) 중국집을 들렀다가 어제처럼 입가심을 사들고는 다시 '사꾸라 공원' 중턱의 사내에게로 갔다. 부엌방 문 앞에는 여자 고무신이 어제 그대로인 것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고, 사내의 방에서는 역시 역한 냄새가 코도 거치지 않고 내장으로 스며들었다. 사내의 숨소리가 어제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거칠어져 있었다. 사내는 내가 쑥스러워질 만큼 새삼스럽게 반기고는 곧 이야기를 이었다.

“……그러니까 그 뒤로 운이 허 노인의 당부대로 줄을 탔는지는 알 수 없었지요.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역시 전에 허 노인이 당하던 단장의 꾸지람을 고스란히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꾸지람을 듣고 있을 때까지도 영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청히 서 있기만 하곤 했지요. 그런데 나중에는 단장도 그런 운을 늘 나무랄 수만은 없게 되었어요. 활동 사진이라는 것이 갑자기 성하지 않았습니까. 그 쪽에 손님을 다 빼앗기고 나니 우리는 거렁뱅이가 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장이 그래도 그 중 나았습니다. 생각생각하다가 짜낸 것이 결국 구경꾼의 흥을 더 돋구어 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요, 그래 그 방편으로 제일 적합한 것이 운이었습니다. 줄을 그전 때보다 두 배, 세 배로 높이 매달았습니다. 허 노인도 여느 광대보다 높이 줄을 탔기 때문에 가설 극장의 천정 포장을 걷어 내야 했지만 이번에는 거기 비교가 안 될 정도였지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C읍까지 왔었습니다. 그 땐 가을이었지요.”

 

C읍에서 ―어느 날 밤, 운이 줄에서 내려와 보니 그에게 꽃다발이 하나 와 있었다. 꽃다발이라야 그 즈음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피어난 들국화를 몇 송이 꺾어다 종이 리본으로 묶은 것이었지만, 워낙 처음 있는 일이라 부처님 같은 운도 약간 호기심이 들었다. 꽃다발을 가져온 것은 소녀끼를 갓 벗은 여자라고 했다.

―잘 해 봐라 이 녀석. 총각 귀신은 제사도 없단다.

트럼펫의 사내가 웃으면서 그 꽃다발을 운에게 건네 주었다. 여자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일을 하고 갔지만, 언제나 운이 줄을 올라간 뒤에 왔다가 줄에서 내려오기 전에 가 버리기 때문에 정작은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매일밤 꽃다발을 맡았다 운에게 전해 주던 트럼펫이 보다 못해 하룻밤은 일을 꾸몄다.

―공원으로 가 봐라. 거기 여자가 기다리고 있을 게다.

운이 줄에서 내려오자 트럼펫은 운에게 일러 주었다.

“지금 이야기 중의 트럼펫이라는 운의 친구가 바로 노인이시겠지요?”

나는 갑자기 이 사내 자신에 대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라 그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나팔을 불고 나면 조금씩 피를 뱉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입에서 나팔을 뗄 수는 없었습니다. 나팔을 불지 못하면 진짜로 죽을 것 같았으니까요.”

“노인께서 여길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도 폐 때문인 것 같은데 그 때 노인께서는 독신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독신이었는데, 갑자기 각혈이 심해져서…….”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정말로 그랬을까? 나는 여전히 의문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누군가를 따라 떠났어야 할 이유도 되지 않는가. 그리고 그런 폐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가 없지도 않은가. 그렇다면 ―이 사내는 혹시 운을 찾아오는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러나 사내는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이야기를 서둘러 계속했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나는 운이 여자를 만나게 해 주었는데, 여자를 만나고 와서도 운은 별로 달라진 게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런 일이 한 주일쯤 계속되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운이 줄 위에서 재주를 피우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단장이나 구경꾼들은 무척들 좋아했지요. 하지만 나는 옛날 허 노인의 실수를 기억하고 있었던 만큼 그게 불안했습니다. 몇 번씩 그런 재주 같은 동작을 하고 줄을 내려온 운은 유독히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고, 단장의 칭찬에도 넋나간 눈만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나의 생각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어요. 운이 자꾸 귀와 눈을 때리면서 혼자 중얼중얼하는 것이었습니다. 못 견뎌 하는 얼굴이었어요. 허 노인이 운에게 당부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함성들을 지르고 좋아들했거든요. 불행한 일이었지만,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은 곧 증명이 되었어요. 어느 날 밤, 줄을 타고 내려온 운은 또 공원으로 갔고, 우리는 나머지 순서와 곡예에 곁들인 연극까지 끝내고 났을 때예요…….”

구경꾼이 막 자리를 일어서려는 참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운이 사례 인사를 끝내고 섰는 무대 위의 단장 앞으로 나섰다.

―오늘 밤 한 번 더 줄을 타겠습니다.

―아니, 왜?

단장이 의아해서 운을 쳐다봤다. 그러나 단장은 다시 아무 말도 못하고 운에게서 눈을 피했다. 운의 눈에서는 무서운 불길이 일고 있었다. 그 눈은 단장을 보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단장은 한 번 더 줄을 타겠다는 운의 말이 정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운은 이미 자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운을 비켜섰다. 운은 그대로 천천히 걸어가서 그 높은 항목을 한 번 눈이 부신 듯이 쳐다보고는 이내 그것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단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이 기울이고 운의 거동을 살피고 있다가 갑자기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마이크를 힘껏 거머쥐었다.

―여러분, 앉으십시오. 오늘 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하기 위해서 우리 서커스 단의 프로 중의 백미를 다시 한 번 여러분께 보여 올리겠습니다. 그것은 즉 보시다시피 인간의 승천(昇天)입니다. 인간의 승천!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우리 단(團)이 아니면 보실 수 없는 진귀한 구경거리입니다…….

“그 날 밤, 운은 떨어져 죽었습니다.”

“한데, 그 날 밤 운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했을까요?”

“네, 혹시 그 말씀에 해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운이 만나던 그 여자의 이야기를 마저 해 드리겠습니다. 그 날 밤 나는 아무래도 공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대강 일이 정리되었을 때 공원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공원이래야 선생님도 보셨겠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땐 벌써 고목이 다 된 벚나무 사이에 촉수 낮은 전등을 몇 개 매달아 놓고, 군데군데 녹색 페인트 칠을 한 걸상들이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걸상 하나에 여자는 내가 올라갔을 때까지 아직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어요. 운이 여자의 목을 졸라 죽이려다 말고 공원을 내려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며칠을 통해 운이 여자에게 한 말을, 여자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운의 말은 불과 다섯 마디도 되지 못했으니까요. 물론 사랑은 배워서 말로 하는 것만은 아니니까, 배우지 않고도 아는 방법으로만 그는 여자를 사랑했겠지요. 마지막 날 이야기가 이랬다고 합니다. 갑자기 운이 여자를 끌어안고서,

―난 이제 줄을 탈 수가 없다. 넌 나하고 같이 살아야 한다.

운은 마치 줄에서 내려왔을 때처럼 땀을 흘리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여자는 운이 그렇게 가까이만 있으면 언제나 무서워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전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그럼? 그럼?

운은 미친 사람처럼 여자를 안은 팔에 바싹 힘을 주었습니다.

―줄을 타고 계실 때, 그 땐 그런 것 같았는데, 이렇게 옆에만 오시면……무서워요.

―아야, 이젠 난 줄을 탈 수가 없는데…….

그러고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는데, 운의 손이 천천히 여자의 목으로 올라오더니 조금 있다가 그 손은 경련이 난 듯 여자의 가는 목을 조르기 시작하더랍니다. 여자는 별로 반항도 하지 않고 걸상에 쓰러졌는데, 운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 갑자기 손을 놓아 버리고는 일어서더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는 혼자 중얼중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고 다시 줄을 탈 수 있었지만, 아아……나는…….

그러다가 운은 산을 내려가 버렸답니다.”

사내는 그것이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이었던 것처럼 열심히, 그러고 상상으로는 미치지 못할 자세한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기침을 하지 않으려고 몸을 오그라뜨리고 힘을 주었다. 그러나 끝까지 이야기를 못하고 기어이 발작을 시작하고 말았다. 나는 사내가 발작을 멎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이으려고 하는 것을 보자, 갑자기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이제 사내에게 혼자는 더 말을 시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운은 처음부터 자기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두 번째 줄로 올라간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왜 운을 사랑할 수가 없었을까요?”

“글쎄 그게 이상합니다만……참 이걸 말씀드릴 걸 잊었군요. 그 여자는 한쪽다리를 절고 있었어요. 절름발이였단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난 자꾸 그 여자가 좋아한 것은 운이 아니라 운의 다리가 아니었나 해요. 여자는 줄 위의 운이 하늘을 날고 있는 학(鶴)으로 생각했더랍니다. 어떻든 그렇게 운이 죽고 나서 얼마가 지나니까, 이곳 사람들은 광대가 승천을 했다고들 말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 단장의 말을 빌어서 한 비웃음이었겠지요. 그러나 오랜 시일이 지나다 보니 운은 정말로 승천을 했다고 믿어버리게 되었어요, 아닌게 아니라 나도 아직 운이 줄을 타는 그 곧고 유연한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데……아마 그게 명인(名人)의 풍모가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어요.”

“그럼 그 절름발이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 여자도 뒤에 죽고 말았습니다.”

사내의 눈동자는 처음 내가 찾아왔을 때처럼 나의 머리 위 허공으로 멀리 떠올라 가 버렸다.

 

4

 

여관으로 돌아오자 나는 이불 위에 벌렁 드러누워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운이 마지막 날 밤 혼자 중얼거렸다는 말이, 운 자신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은 것처럼 귀에 쩡쩡하게 맴돌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고 다시 줄을 탈 수 있었지만, 아 아…… 나는…….

그리고 운은 줄 위로 가서 죽어버렸다고 했다. 무엇인지는 아직 도 잘 모르겠다. 천천히 정리를 해봐야겠다. 그렇게 하는 데는 고맙게도 그 나의 문학적 센스가 도움이 되어 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또 문에서 인기척이 있더니 노크도 없이 예의 여자가 들어섰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턱으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넌 이 고을에 젊은 줄광대가 한 사람 승천을 해갔다는데 그 이 야길 믿나?”나는 옷을 벗고 자리로 든 다음 여자의 목을 팔로 감으며 그렇게 물었다.

“네 , 믿어요.”

여자는 쉽게 긍정했다.

“아니, 사람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걸 믿어?”

“다들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요. 전 그런 건 뭐든지 믿고 싶거든 요.”

“미안하군…….”

그러나 여자의 말에 대한 나의 해석은 빗나간 것 같았다 “뭐가 미안해요, 갑자기?”

“약속을 해서 믿게 하구선 그걸 지키지 않았으니…… 그젯밤도 어젯밤도…….”

나는 여자의 아랫배로 손을 쓸어 내려갔다.

“그건 저도 믿지 않았으니 미안할 거 없어요.”

“그건 왜?”

“당신은 요즘 사람이거든요. 요즘 건 전 믿지 않아요. 광대 이야기는 옛날이야기니까 믿는 거지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이 여자는 트럼펫 사내의 말처럼 얼마간 엄숙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걸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있다. 그러나 이 여잔 때도 없이 정말 엄숙해질지도 모르지.

“이상하군. 어떻게 내가 떠나버리지 않은 걸 알구 왔어?”나는 손을 더 아래쪽으로 쓸어내리며 이야기를 돌렸다.

“아마 전 머지않아 돈이 좀 필요할 거예요.”

여자는 다른 말을 했다. 나는 이 여자가 옛날이야기 외에도 더 많은 것을 믿고 싶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녀 자신을 그러고 싶은 눈치였다. 돈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한데 여자가 내 주머니에서 처음 예약한 삼백 원 이상을 탐내지 않았다. 녹음기도 사진기도 무사했었다.

“선생님은 내일 떠나시죠?”

여자가 문득 다시 말했다. 남자의 체중을 받고 있는 여자로는 너무 차분한 목소리였다. 여자는 나에 대해서 뭔지 알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자가 무서워졌다.

다음날도 내가 깨었을 때는 한낮이 가까워서였고, 여자는 이미 가고 없었다. 주머니의 돈도 꼭 삼백 원이 줄어 있었다. 녹음기와 사진기는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어젯밤대로 머리맡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모처럼 여관에서 밥상을 비우고 거리로 나섰을 때는 어제 멎었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승천(昇天)에 관해서는 이제 더 들을 이야기가 없었지만, 나는 트림펫에게 들러 출장비 가운데서 얼마를 덜어주고, 인사도 하고 그리고 사내가 기침으로 너무 괴로워하지만 않는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이유도 그의 말로 좀 들어보고는 우선 C읍을 떠나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내에게서 아직 좀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C읍에 대해서 너무 마음을 주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방금 나온 여관의 이름이 생각나질 않았다. 세 밤을 같이 지낸 여자의 이름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昇天葬儀社와 줄광대의 이름 운(雲인지 運인지는 모르지만)뿐이었다. C읍에서는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이야기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닌게아니라 그것은 옛날이야기니까. 그것을 정말로 내가 쓰고 싶은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릿목 장의사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선생─ 트럼펫이 말입니다…….”

사내가 문턱에 서서 나를 보고 소리쳤다.

“그 사내가 어젯밤에 마지막 피를 쏟았다는구료.”

사내의 얼굴에 번들번들 골이 몇 개 나타났다. 내가 그 말을 얼 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장의사 안에서 사내의 등뒤로 여자가 한 사람 나타났다.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사내에게 건네려던 말을 삼켜버렸다. 인부에게 관을 지우고 그 뒤를 따라나 온 여자는 바로 어젯밤 나와 위아래로 살을 맞댔던 그 여자였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그러나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무연한 표정으로 나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끌리듯 여자의 뒤를 따랐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뒤에 나는 여자의 옆에서 걷고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를 흘끗 한 번 쳐다보는 여자의 눈에는 해득해낼 수 없는 어떤 언어가 안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빗물이 흘러들어 여자의 눈은 처음부터 젖어 있었으니까 나는 그게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돈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어젯밤 여자의 말이 떠올라서 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을까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여자가 처음으로 나직한 한마디를 말해왔다.

“돌아가세요. 이젠 다 끝났지 않아요.”

절망적일 만큼 침착한 목소리였다.

여자는 말하면서도 나를 보지 않았다. 앞을 가고 있는 인부의 등에다 시선을 달아매고 줄에 끌리는 사람처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관을 싼 포장지가 비에 젖어 검게 늘어졌다.

─그러나 너는 정직한 창녀다. 무엇을 믿고 싶어하고 있다. 그것뿐이다. 그리고 또…… 너의 어머니는 다리를 저는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차곡차곡 생각을 정리해 볼 수도 없었다.

C읍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들어버린 때문일까? 아 니면 어느 것 없이 거짓말을─적어도 나에게는 거짓말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만을─들은 때문일까. 소설을 생각할 때와 같은 그런 혼돈이 휘몰아들었다. ─나는 적합지가 않다. 좀더 확실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길 왔어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더욱이 그것을 여자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이 혼돈 속에서 나의 소재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영영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에게서 이 이야기는 아주 죽어버릴 것인지, 또 누구에게로 가서 그 사람의 어떤 질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인지는 조금만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실비가 줄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걷다가 여자의 옆을 떨어져버렸다. 여자는 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나는 작별의 말을 하지 않았다.

 

 

 

『사상계』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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