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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대운문

꽃나무 - 이상

by 열공햐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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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

 

이상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근처(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나는막달아났소.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핵심 정리

갈래 : 산문시

성격 : 심리적. 내면적. 관념적. 주지적

경향 : 초현실주의적

심상 : 인간의 내면 의식의 심상화. 심상의 병치

어조 : 고뇌하는 지식인의 자아 성찰적 어조

표현 : 역설법, 자유 연상법 사용

특징 : 띄어쓰기 무시('낯설게 하기'의 기법으로 관습의 파괴를 시도). 시의 율격을 배제함으로써 음악적인 요소 무시. 반이성(反理性)에 입각한 역설적인 기법

구성 :

  1~2문장 : 자아의 상황 설정

  3문장 : 두 자아의 통합 노력

  4문장 : 자아 통합의 불가능 인식

  5문장 : 자아 분열에 대한 공포

  6문장 : 좌절과 허탈 상태

구조 :

꽃나무 ---->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
단절
나 --->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제재 : 꽃나무(자아의 분열)

주제 : 자아 통합의 지향과 도피. 자아 성취를 위한 욕구와 좌절. 본질적 자아와 일상적 자아의 괴리(자아의 바른 모습 추구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

출전 : <카톨릭 청년>(1933)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비이성적, 비논리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자유로운 연상 작용으로 기술된 것이다. 따라서, 상식과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곤란하다. 띄어쓰기를 무시했다든가, ()과 행()의 구분을 배제한 것도 기존 시의 틀을 벗어난 것이다.

 

  난해한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꽃나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일상으로 생각하는 꽃나무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는 서정의 대상이지만, 이 시의 꽃나무는 의식(意識)을 가지고 있는 사물이다. 시인의 자의식을 투영한 것으로 시적 화자와 동일시한 것이다.

 

  이 시에는 두 개의 꽃나무가 나온다. 하나는 벌판 한복판에 있는 꽃나무이고, 또 하나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이다. 이 두 꽃나무는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는 왜 달아나야 했는지도 알아야 이 시의 이해는 가능하다.

 

  벌판에 홀로 서 있는 꽃나무시적 자아의 내면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이 꽃나무로부터 시적 자아가 막 달아나는 흉내를 낸다는 표현으로 보아 꽃나무는 일상적(日常的) 내지 현상적(現象的) 시적 자아와는 구분되는 본질적(本質的) 내지 이상적(理想的) 자아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일상적 자아가 바라는 자아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상적 자아인 화자는 두 자아간의 분열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바라는 삶을 살고자 하나 그것은 쉽게 달성되지 않는 것이어서 화자의 고충을 더해 주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상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이 시 역시 이상의 특징적 시 세계인 자아 분열의 심상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시의 상황을 장면을 설정하여 그려 보자.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우고 서 있다. 주변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다. 그런 꽃나무를 가 보고 있다. 이것이 이 시의 장면이다. 화자가 이 꽃나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의식을 추적해 보자.

 

  꽃나무를 단독자로 인식한다. 단독자인 꽃나무은 자기가 대상으로 삼을 다른 꽃나무를 생각하지만 갈 수가 없는 것으로 인식한다. 화려한 꽃은 대상에 다가가려는 열망의 표출로 본다. 그런 뒤 그 꽃나무와 자신의 처지가 동일하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화자의 고립 의식이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꽃나무는 자신과 똑 같은 꽃나무를 향하고자 한다. 양자 사이의 관계를 맺으려 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이상의 다른 시편들에 보이는 자아 분열의 세계, 소외 의식이 보인다.

 

  이상은 의식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지만, 그것에 합일하지 못하는 단절을 내적으로 경험한다. <오감도(烏瞰圖)>에 있는 시들은 바로 그런 세계가 주를 이룬다. 19세기를 청산해야 할 과거로 생각하면서도 19세기에 머무르고 있는 자아였기 때문에, 그의 자아는 언제나 분열과 두려움에 처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일종의 문화 충격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면 그의 자아가 어떤 양상으로 그려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꽃나무로 표상된 일상적 또는 현상적 자아는 또 다른 자아, 즉 본질적 또는 이상적 자아와 분리되어 있다. 이상적[본질적] 자아를 들여다보는 현상적[일상적] 자아의 자의식은 절망감에 젖어 있다. 즉 이상적 자아에 다가갈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단절 의식은 현상적 자아로 하여금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달아났소’라는 시어로 표현되어 있다. 그의 시에서 자주 보이는 달아나다는 소외 의식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의 위하여의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 주체가 꽃나무라면 다른 꽃나무를 위한다는 뜻이 되고, 가 주체라면 위하여의 대상이 꽃나무가 된다. 전자의 경우는, ‘꽃나무가 다른 꽃나무를 위해 그러듯이 나도 그런 흉내를 내어 보았다는 것으로 풀이되며, 후자꽃나무를 위해서 하는 양 이상스런 흉내를 내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여기서 꽃나무를 위해 이상스런 흉내를 내었다는 것은 어색하다. 이럴 경우 그 이상스런 흉내는 곧 달아나는 일인데, 꽃나무를 위해 달아났다는 것은 이해하기 곤란하다. 그러므로 꽃나무가 그러하듯이 나도 달아났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앞에서 꽃나무는 다른 꽃나무를 향해 열심히 생각한다 했는데, 달아난다고 하는 것에 또 무리가 따른다. 아마도 꽃나무가 다른 꽃나무에 통합하지 못하듯이 나 또한 다른 나에게 통합하지 못함을 알고 달아난다는 의미가 될 것 같다. 자아의 통합을 꿈꾸면서도 이상적 자아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의기 소침함, 그 소외의 간격이 주는 심리적 부담감에서 달아난다고 하면 그런 대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결국 이 시는, 현상적 자아가 이상적 자아를 지향하지만 통합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도리어 이상적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의식 현상을 반영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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