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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대운문

북어(北魚) - 최승호

by 열공햐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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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北魚)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비판적, 반성적, 상징적, 풍자적

어조 :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차분한 반성의 어조

특징

  ① 제재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통해 추상적 주제를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

  ② 제재의 속성을 통해 동시대의 삶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표현함.

  ③ 현대인을 말라 비틀어진 북어에 비유하여 나약한 자신과 현대인들을 풍자하고 있다.

구성

  1~8: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북어들

  9~12: 현실의 억압과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삶. (북어의 모습에서 침묵하는 삶에 대한 연민을 느낌)

  13~23: 북어의 주검과 다를 바 없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풍자와 반성

북어 =
말과 생각을 잃어버림. 꿈과 이상을 상실함 현실앞에서 무기력하고 나약하게 살아가고 있음

제재 : 북어

주제 : 희망 없는 굴종의 삶에 대한 비판과 반성

출전 : <고해문서>(1991)

 

 

 

이해와 감상

  시인은 사람들 북적거리는 한낮의 시장, 그 한 귀퉁이에 있는 건어물 가게의 북어를 말하고 있지 않다. 그가 이야기 하는 것은, 장사가 끝나 문을 닫아 건 밤의 건어물 가게에 놓인 북어다. 케케묵은 먼지가 덮인 채 또 하루를 더 기다리고 있는 북어 말이다.

 

  아마도 시인은 이런 북어의 이미지로써 우리의 삶을 말하려는 것일 게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 별다른 의미도 없는 목숨을 다만 하루하루 더 연장해 가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 하루하루 지날수록 더 때묻고 딱딱하게 말라가는 것만 같은 느낌,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 말이다. 시인은 그 죽음의 꿰뚫은 대가리들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왜 우리의 삶이 이 북어들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건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비관이자, 우리를 향한 이유 없는 모욕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시인은 말한다. 꼬챙이에 꿰이어 딱딱해진 북어들의 혀처럼 우리는 말의 변비증을 앓고 있다, 무덤 속의 벙어리들처럼 아무 말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느러미가 말라서 빳빳하게 굳어 버린 북어들처럼, 우리들도 빛나지 않는 막대기처럼 굳어서 어디로도 헤엄쳐 가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또 헤엄쳐 갈 곳도 없지 않냐고.

 

  아마도 이 시를 쓸 때에 시인은, 부당한 독재 권력에 대해 한 마디 비판의 말도 못하는 굴종의 삶을 가리켜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 ‘무덤 속의 벙어리라 말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아무런 희망도 품지 못하는 삶을 가리켜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 이라 말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군인 출신의 대통령이 아니라 내 손으로 뽑은 민간인 출신의 대통령이 있는, 이 민주화된 시대의 우리 삶은 이와 얼마나 다른 것인지, 과연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목소리가 얼마나 자유롭고 영향력 있게 울려 퍼지고 있는지, 우리는 희망의 시대를 힘차게 헤엄쳐 다니고 있는지, 이제 시인은 우리 삶이 이 북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지……그건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시인의 이런 비판은 타인들만을 향해 있지는 않다.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북어들이 일제히 입을 벌리고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하고 귀가 먹먹해지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는 시인의 환청, 그것은 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고백하는 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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