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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학학습

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by 열공햐 2021.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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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논총 제45(2007. 4) 409432

 

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 광장 방앗골 革命 시장과 전장 을 중심으로 1)  이성우

 

차 례

 

. 한국전쟁의 특수성과 문학적 인식

. 남북 대치 상황에서 중립국 선택의 의미

. 하촌의 대립과 자족적인 공간 설정

. ‘시장을 바라보는 대조적 시선, 리고 양시쌍비론

. 객관적 현실과 소설적 현실 사이의 거리

 

 

* 고려대학교 강사 

 

. 한국전쟁의 특수성과 문학적 인식

  한국전쟁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쟁 발발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을 바라보는 주체의 시각에 따라 동족상잔의 비극이나 강대국의 대리전’, 또는 민족해방전쟁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만 봐도 그 사정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한국전쟁의 특수성은 현재까지 남한과 북한이 모두 전승국도 패전국도 아닌 휴전 상태에 있다는 사실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지금 전시 국가의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전쟁 자체가 지닌 비극성의 범위를 넘어서 냉전의 논리나 분단 극복의 문제와 결부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문학적 인식은 전쟁 발발 시기인 1950년대 이후 시간의 진전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보여 준다. 한국전쟁에 대한 1950년대 당시의 문학적 인식은 일종의 피해 의식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곧 생존의 위기와 존재론적 불구 의식, 윤리적 파탄, 역사적 수난 의식 등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한국전쟁에 대한 내면화 과정을 거치는데, 여기에는 분단의 이론적 인식과 내면화, 성장기적 각성 등의 항목이 포함된다.1) 1960년대 초반에 발표된 최인훈의 광장(1960), 오유권의 방앗골 革命 (1962),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1964) 역시 한국전쟁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같은 점진적인 인식의 진화선상에서 그 의미와 문제점을 거론할 수 있다.

 

  특히 이 세 작품들은 전쟁 그 자체에 시선을 고정시키기보다는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남북한의 분단과 대립 구조에까지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것은 곧 전쟁 자체의 비극성을 넘어서 분단 극복의 과제나 냉전의 논리까지를 직간접적으로 문제삼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들 세 작품에서 각기 특징적인 요소로 꼽히는 작중 인물의 양자택일적 선택 상황( 광장 )과 상하촌의 대립적인 배경 설정( 방앗골 革命 ), 시장전장의 대비와 양시쌍비론( 시장과 전장 ) 등의 대립 구조가 발현되는 양상을 분석하고, 동시에 이 같은 대립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주제 의식의 문제점을 고찰하고자 한다.

 

1) 이재선, 현대 한국소설사: 19451990, 민음사, 1991, 87. 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411

 

. 남북 대치 상황에서 중립국 선택의 의미

 

  최인훈의 광장 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남과 북이라는 두 개의 대립적인 이념 체계에 대해 동시에 비판적이었고 그 이념의 현실화에 대해 마찬가지로 비관적이었다는 언급2)에 적절히 요약되어 있다. 특히 광장은 1960년대의 통념적인 지적 풍토에 젖어 북한의 이념과 현실을 반인간적으로 그려내지 않았으며, 오늘의 급진적인 사유들처럼 그것들을 환상적으로 만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광장은 공정한 사고법을 유지했으며 주인공 이명준은 이념 문제에서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광장에 내재된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의 상관성을 면밀히 고찰할 필요성이 바로 이 지점에서 대두된다.

 

  광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립 구조는 광장/밀실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광장이 사회적 차원의 삶을 대변한다면, 밀실은 개인적 차원의 삶을 대변하는 공간이다. ‘광장이 비록 이 작품의 제목이기는 하지만다음 구절들을 읽어 보면 광장/밀실의 대립 구조야말로 작품의 주제 의식과 직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치? 오늘날 한국의 정치란 미군 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 그 중에서 깡통을 골라내어 양철을 만들구, 목재를 가려내서 소위 문화주택 마루를 깔구, 나머지 찌꺼기를 가지고 목축을 하자는 거나 뭐가 달라요? 그런 걸 가지고 산뜻한 지붕, 슈트라우스의 왈츠에 맞추어 구두 끝을 비비는 마루며, 덴마크가 무색한 목장을 가지자는 말인가요?

저 브로커의 무리들, 정치 시장에서 밀수입과 암거래에 갱들과 결탁한 어두운 보스들. 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3)

 

2) 김병익, 다시 읽는 광장 , 최인훈, 광장/구운몽 , 4, 문학과지성사, 1996, 336. 410 한국문학논총 제45집
3) 최인훈, 광장/구운몽 , 4, 문학과지성사, 1996, 55.412 한국문학논총 제45

 

  시장, 그건 경제의 광장입니다. 경제의 광장에는 도둑 물건이 넘치고 있습니다. 모조리 도둑질한 물건. 안 놓겠다고 앙탈하는 말라빠진 손목을 도끼로 쳐 떼어버리고, 빼앗아온 감자 한 자루가 거기 있습니다. 묻은 배추가 거기 있습니다. 정액으로 더럽혀지고 찢긴, 강간당한 여자의 몸뚱이에서 벗겨온 드레스가 거기 걸려 있습니다. 한 푼 두 푼 모아서 가계가 늘어가는 그런 얘기는 벌써 통하지 않아요. 바늘 끝만한 양심을 지키면서 탐욕과 조절을 꾀하자는 자본주의의 교활한 윤리조차도 없습니다. [……] 문화의 광장 말입니까? 헛소리의 꽃이 만발합니다.4) 이런 광장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진 느낌이란 불신뿐입니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뿐입니다.5)

4) 같은 책, 56. 
5) 같은 책, 57.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413

  남한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총체적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주인공 명준의 발언이다. 누가 읽더라도 위의 진술들은 건강한 공동체의 광장은 부재하고 썩을 대로 썩은 개인주의의 밀실만이 팽배한 남한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좀더 주의를 기울이면, 명준의 입을 통해 표출되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 현실 비판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라는 진술 부분이다. 인간은 자신만의 밀실이 있어야 비로소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은 광장에 떳떳이 나가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바로 이 같은 주제 의식이 주인공 이명준의 발언에 함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체제와 북한의 체제를 모두 경험한 인물인 이명준에게 남한/북한에 대한 양자택일이 강요되는 상황은 밀실/광장의 이분법이 다른 이름으로 반복되는 이 소설의 대립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또한 이런 종류의 이분법적 강제는 표면적으로는 전쟁이 끝난 그 시점에서도, 주인공 이명준의 내면에서는 실질적인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명준에게 강요되는 그 양자택일은 전쟁터에서 아군과 적군의 절박한 구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명준이 남한과 북한 가운데 어느 한쪽을 마땅히 선택할 것으로 기대되는 소설적 공간은 곧 전쟁터의 이분법이 그대로 확장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방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게 설득자들이 앉아 있고, 포로는 왼편으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네 사람의 공산군 장교와, 국민복을 입은 중공 대표가 한 사람, 합쳐서 다섯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장교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동무, 앉으시오.”

명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장교가 나앉는다. [……]

중립국.”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6)

6) 같은 책, 170171.414 한국문학논총 제45

  겉으로는 부드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강요되는 것의 요점은 남한 아니면 북한식의 이분법에서 북한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명준은 줄곧 중립국을 반복할 뿐이다. 이때 이명준의 중립국 선택은밀실만 있고 광장은 없는 사회인 남한이든, 광장만 있고 밀실은 없는 북한이든 그 어느 쪽도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는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시에 그 선택은 남북 분단 이후 양쪽의 구성원들을 옥죄고 있던 양자택일의 대립적 사고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립국 선택이 지니는 현실적 의미 맥락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광장이 지닌 문학사적 의의는 대부분 이런 측면에서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이명준의 중립국 선택이 마지막으로 가 닿는 지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는 두 마리 새들을 방금까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여자의 용기를, 방금 태어난 아기를 한 팔로 보듬고 다른 팔로 무덤을 깨뜨리고 하늘 높이 치솟는 여자를, 그리고 마침내 그를 찾아내고야 만 그들의 사랑을돌아서서 마스트를 올려다본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본다큰 새와 꼬마 새는 바다를 향하여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바다. 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친 그는 지금 핑그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7)

 

  작가는 전집판 광장을 내기까지 모두 다섯 번을 고쳐 썼다고 한다이에 대해 김현은 그 다섯 차례에 걸친 개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두와 말미에 나타나는 갈매기의 의미 변화라고 언급한 바 있다.8) 이전의 판본에서는 두 마리의 갈매기가 윤애와 은혜를 표상했지만, 전집판에서 그 갈매기들은 은혜와 그의 딸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집판에서 이명준이 몸을 던지는 바다는 단순한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뿌리를 내려야 할 우주의 자궁을 의미하게 된다. 결국 이전 판본에서 이명준의 죽음은 중립국에서도 별로 보람 있는 삶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자의 죽음이지만, 전집판에서 이명준의 죽음은 정말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투철하게 깨달은 사람의 자기가 사랑한 여자와의 합일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7) 같은 책, 187188
8) 김현, 사랑의 재확인: 광장 개작에 대하여 , 최인훈, 앞의 책, 313322.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415

 

  우리는 이러한 개작 과정에서 새로 부여된 상징적 의미들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9) 그러나 변함없이 문제가 되는 것, 이명준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은 현실에서의 삶이 아니라 현실을 벗어난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는 1960년에 첫 발표된 광장이나 그 이후 몇 차례의 개작을 거친 전집판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김현이 거듭 강조하는 사랑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 사랑은 현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벗어난 죽음을 비유적으로 수식하는 역할에 그칠 뿐이다. 이는 광장 의 플롯이 진행됨에 따라 이명준의 의식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대가 점차 사라져 급기야 시민의 광을 상실하고 이명준의 광장에 머물고 말았다는 지적10)과도 관련되는 문제이다. 결국 이명준이 마지막으로 선택했던 그 사랑은 독자들이 작중 인물인 이명준의 삶에서 객관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현실이 아니. 엄밀히 말해 그 사랑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강요하는 관념에 불과할수도 있는 것이다.

 

9) 물론 광장 개작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들도 있다. 이를테면, 원작 광장의 결말이 역사적인 성격이 강했던 반면 전집판 광장의 결말은 탈역사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이에 해당한다. 이상갑, <가면고>를 통해서 본 광장의 주제의식 ,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7,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0. 3, 90쪽 참조.
10) 박영준, 최인훈의 광장 에서 광장의 의미 층위에 대한 연구 , 어문논집 46, 민족어문학회, 2002. 10, 308.416 한국문학논총 제45

 

. 하촌의 대립과 자족적인 공간 설정

  오유권의 방앗골 革命 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는 시기에 방앗골의 상촌과 하촌을 배경으로 두 마을 사이의 대립과 그 화해 가능성을 모색한 장편소설이다.11) 이 작품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에서는 해방 직후 전근대적 농촌 사회인 방앗골의 상하층 간 신분적 갈등이 그려진다. 하층민들이 좌익 이데올로기에 급격히 휩쓸리는 과정도 묘사된다. 2부에서는 한국전쟁이 발발되고 나서 전황이 수시로 바뀌는 과정에서 자행된 좌익과 우익, 또는 하층민과 상층민 사이의 무자비한 살육과 보복의 참상이 드러난다. 3부에서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방앗골을 재건하고 영구적인 평화를 모색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 그려진.

 

  방앗골이라는 전근대적인 농촌 마을에서 양반 중심의 상촌과 상민이 대부분인 하촌 사이에는 애초부터 신분상의 대립이 내재한다. 물론 이 신분 대립은 지주와 소작인이라는 경제적 관계와 또 그로 인한 감정적 대립을 포함한 것이다. 방앗골의 이러한 전근대적 사회 구조는 해방이된 이후에도 본질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하촌 사람들의 계층적 적대감이 누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반상(班常)의 풍습이 희미해질수록 상촌 사람들은 문벌과 명비를 내세우려고 애쓰고, 하촌 사람들은 마저 무너뜨리고자 안간힘을 썼다.”12)라는 대목은 방앗골이 처한 대립과 반목의 실상을 잘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상촌 사람들이 하촌의 순태를 집단 구타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도화선으로, 잠재되어 있던 방앗골의 계층 대립은 더욱 표면화된다. 하촌 사람들은 마침내 부락회의에서 상촌에 보낼 결의문을 작성하기에 이른다.

11) 이 작품에 대하여 좌우 이데올로기 그 어느 쪽에도 경사되지 않은 객관적중적 시각을 견지함으로써 최인훈의 광장 과 더불어 분단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품이라는 전폭적인 긍정의 평가도 있다. 이봉범, 민중적 시각으로조명한 전쟁의 비극과 농촌공동체 복원의 문제: 오유권의 방앗골 혁명 에 대하, 민족문학사연구 16, 민족문학사연구소, 2000. 6, 278쪽 참조.
12) 오유권, 방앗골 革命 , 한국문학전집 28, 삼성당, 1984, 15.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417

 

첫째, 우리는 현대의 제사조에 따라 인권 평등과 계급 타파와 개성 존중을 유일한 목적으로 한다.

둘째, 상촌민 일동은 이조 오백 년간의 반상 제도와 봉건적 잔재를 일소하고 계급을 타파하라.

셋째, 상촌민 일동은 금반 부당한 억리 밑에 순태를 집단 구타한 데대하여 즉시 사과하라.

넷째, 우리는 이 마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하고 분열을 피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즉각적인 협상을 요망한다.13)

 

  하촌민들이 작성한 이 결의문에는 여러 대에 걸쳐 억눌려 살아온 사람들이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들이 여럿 들어 있다. 인권 평등을 비롯해 계급 타파, 개성 존중, 봉건 잔재 일소, 영구적 평화 등이 그러한 말들이다. 작가의 주제 의식의 일단이 결의문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촌민들의 이 결의문은 그러나 상촌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상촌민들은 도리어 더욱 조직적으로 하촌 사람들을 억압하려 든다. 결의문이라는 문서 한 장으로 상촌과 하촌 사이의 구조적 모순이 해소될 가능성은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상촌과 하촌이라는 대립 구도를 설정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런데 이 대립 구조의 설정은 한편으로 전쟁 이전의 봉건적 대립과 전쟁 이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을 한데 끌어안으려는 작가의 문제의식의 소산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하촌에 살고 있는 순태가 상촌의 금순이와 처음 사귀기 시작하면, “금순이를 정복하는 것은 그대로 상촌에 대한 승리”14)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여기서 금순이는 상촌의 민우와 하촌의 순태가 모두 마음에 두고 있는 처녀이다. 만일 그녀가 사려 있는 인물로 설정되었다면 민우와 순태 사이를 적대적인 대립 관계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 관계로 이끌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금순이가 민우를 거부하고 순태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상촌과 하촌 사이의 대립을 더욱 격렬하게 만드는 구성 방식을 취했다. 이는 곧 이 작품에서 크게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새로운 인물형의 창조가 아니라 상촌하촌의 대립 구조형성이라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13) 같은 책, 21
14) 같은 책, 33. 418 한국문학논총 제45

 

  전쟁 발발과 함께 방앗골은 상촌과 하촌이 각각 남한과 북한을 대변하면서 살육의 도가니가 되어 버린다. 인민군이 들이닥치자 하촌 사람들은 그 동안의 신분적인 억압을 상촌 사람들을 살육함으로써 보상받으려 한다. 그러다가 다시 국군이 들어오면 하촌민에 대한 보복 살인이 이어진다. 그러나 방앗골 사람들에게 전쟁은 살아남거나 혹은 무고하게 죽음을 당하는 것 이상의 별다른 의미가 없다

 

  너희 아비와 너희 형들이 우릴 죽였다. 너도 나도 아닌 사람들이 우릴 죽였다. 총으로, 칼로, 죽창으로 심장을 찌르고 골통을 깨뜨렸다. 직 살기 위해서 인민 공화국 만세를 불렀을 뿐, 오직 살길을 찾아서 대한민국에 충성을 하였을 뿐, 우리에게는 죄가 없다. 원통타, 원통타.15) 방앗골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탄식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전쟁이 민간인들에게 가하는 폭력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차적으로 그 탄식은 이 작품에서 방앗골이라는 배경 설정이 지닌 한계를 노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방앗골의 상촌과 하촌은 광복 이후 한국전쟁까지의 시대적 흐름을 대변하는 대립 구조임에는 틀림없으, 그 소설적 공간은 관념과 작위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시선 자체가 방앗골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않기때문에 한국전쟁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기대할 수 없으며, 작중인물들의 행동 역시 감정적인 대응의 수준에 머물고 만다. 전쟁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설정해 놓았으면서도 그 피해와 해결책의 제시는 철저히 방앗골 내부의 몫으로만 돌리는 모순과 비현실성이 그대로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합리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던 윤 노인마저 전쟁이 끝난 후 상촌과 하촌의 대립을 없애기 위해 취하는 방책 가운데 하나가 기껏 집터를 잡는 일이다.

15) 같은 책, 143.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419

 

이래서 어찌어찌 윤 노인의 승낙은 얻었으나 집터를 택하는 데는 약간의 난처한 의사 충돌을 면치 못했다. 상촌 사람들은 터를 기어코 상촌에 잡으려고 하였다. 잿더미가 된 터 위에 새 집을 늘리고 싶다는 것이. 그걸 윤 노인이 한사코 틀었다. 필시 하촌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피차 상반하게 한복판에다 지으라고 했다.16)

 

위의 인용문은 한국전쟁의 뒤처리가 감정의 문제로 국한되거나 혹은 우의적 공간으로 치환되는 정황을 드러낸다. 만일 상촌과 하촌의 한복판에 윤 노인의 집을 짓는 일이 현실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한국전쟁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한 마을 안에서 신분이나 감정상의 대립 때문에 발생한 다툼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와는 다르게 위의 대목이 우의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면, 이 소설에서 방앗골이라는 자족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매우 유치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윤 노인과 하촌의 순태, 상촌의 석만이 주도하는 마을 복구 작업에서 방앗골이라는 마을은 완전히 자족적인 공간으로 간주된. 그래서 마을의 수치라는 이유로 마을 안의 사람이 마을 바깥으로 나가거나 부모 잃은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는 것도 꺼려지는 가운데, 윤 노인이 내놓은 해결책은 독자들을 상당한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윤 노인의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제안에 당황한 두 사람은, 연 삼일간을 심각한 충격 속에서 번뇌하였다. 제안이라기보다 분부요, 분부라기보다 기원인 것 같았다. 사람 치고야 엄두도 못 낼 일을 그대로 좇을 수도 없고, 좇지 않으면 마을의 항구적인 해결책이 없을 것 같았다. 순태는 상촌 과부를, 석만이는 하촌 과부를 보라는 말에서 그들은 상하촌을 완전한 한 몸 한 피로 결합시키려는 윤 노인의 근본적인 수술 방안을 어렵쟎이 터득한 것이었다. 그 어떤 방법보다도 마을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분열 없는 영원한 평화를 가져오기에 다시없는 현안인 것 같았.17)

16) 같은 책, 153.420 한국문학논총 제45

 

  여기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의문은, 왜 신분제도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마을의 대립을 방앗골이라는 범위 안에서만 해결하려 하느냐는 점이다. 방앗골은 지리적으로 외진 곳이며 통신도 미비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인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용문에서 방앗골은 마치 모든 것이 자족적인 가상의 공간인 듯 인식되고 있다. 윤 노인은 그 지역을 일부다처제를 도입하면서까지 폐쇄적인 공간으로 유지하려한다. 여기서 한국전쟁이 핏줄이 서로 다른 민족 간에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동족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하촌을 핏줄로써 결합시켜 대립을 해소하려는 윤 노인의 생각이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가 하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물론 작가 특유의 농촌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지향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현실 세계의 부단한 변화를 포착하지 못하고 과거의 체험 세계를 복고적으로 지향”18)하고 말았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계층적 갈등과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뒤얽힌 복잡한 현실이 계층적 갈등으로 단순화되면서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의미가 지나치게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합리적인 현실 인식 태도나 냉철한 역사의식을 발견하기 힘들다작가는 느긋한 이상주의 혹은 성급한 휴머니즘으로 인해 자신이 만든 자족적인 소설 공간 속에 스스로 갇히고 만 것이다.

17) 같은 책, 189190.
18) 이봉범, 민중적 시각으로 조명한 전쟁의 비극과 농촌공동체 복원의 문제: 오유권의 방앗골 혁명 에 대하여 , 민족문학사연구 16, 민족문학사연구소2000. 6, 296.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421

 

. ‘시장을 바라보는 대조적 시선, 그리고 양시쌍비론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은 이미 그 제목에서부터 시장전장사이의 대비 구조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주인공 지영과 기훈이 생활 현장인 시장과 전투 현장인 전장에서 각각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 이 작품의 표면적인 구조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인공 지영과 기훈은 다름아닌 을 매개로 하여 서로 대립하거나 혹은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의 앞부분에서 작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지영과 기훈이 각각 시장을 지나가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두 인물이 시장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넌지시 드러낸다. 지영은 교사로 발령받은 황해도 연안의 시골 장터를 지나며, 기훈은 서울의 동대문 시장을 거닌다. 두 곳의 시장은 모두 가난이 지배하는 장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인식하는 지영과 기훈의 태도는 매우 다르다.

 

  시장은 축제(祝祭)같이 찬란한 빛이 출렁이고 시끄러운 소리가 기쁜 음악이 되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동화의 나라로 데리고 가는 페르시아의 시장그곳이 아니라도 어느 나라, 어느 곳, 어느 때, 장이면 그런 음악은 다 있다. 그 즐거운 리듬과 감미로운 멜로디가. 곳에서는 모두 웃는다. 더러는 싸움이 벌어지지만 장을 거두어 버리면 붉은 불빛이 내려앉은 목로점에서 화해 술을 마시느라고 떠들썩, 술상을 두들기며 흥겨워하고. 대천지 원수가 되어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422 한국문학논총 제45

 

  오다가다 만난 정이 도리어 두터워지는 뜨내기 장사치들.19) 지영에게 시장은 기쁘고 활기찬 곳이며, 대립과 원망 대신 화해와 정겨움이 넘치는 곳이다. 또한 그곳은 페르시아 시장에서 라는 음악이 표상하는 동화의 나라와도 같은 장소로 인식된다. 지영에게 시장은 현실적인 삶의 터전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이며 때로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심지어 지영은 전쟁 발발 후 인공 치하에 놓인 서울 남대문 시장에 가서도 비참한 현실 상황을 직시하기보다는 오히려 활기와 여유를 느낀다.

 

  떡장수, 메밀묵장수, 국수장수, 활기에 넘치고 가지가지 소리가 있는 시장, 페르시아 시장이 아니고 전쟁이 밟고 지나간 장터에도 음악은 있. 장난감 파는 가게에 인민군들이 서 있고 그들이 돌아갈 때 누이와 동생, 아들과 딸들에게 선물할 장난감을 고르고 있지 않은가.20) 지영은 여전히 현실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페르시아 시장의 이미지를 겹쳐서 시장을 바라본다. 그 동화적 분위기 속에서라면 전쟁 중의 적군이라도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장난감 고르는 모습이 먼저 눈에 띄게 마련이다. 지영의 경우 시장에 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일보다 자신의 자의식을 드러내며 스스로 조성한 시장의 동화적 분위기에 몰입하려는 경향이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녀에게 시장은 전쟁 전이든 전쟁이 일어난 후이든 별다른 인식의 변화를 보여 주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결국 지영에게 시장은 가변적인 현실이 아니라, 자신이 미리 부여한 고정된 의미를 지닌 비유 체계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이에 비해 기훈은 시장에 대해 냉철한 시각을 유지한다. 기훈에 의해서 비로소 시장은 그 의미상 전장과 연결된다.

19) 박경리, 시장과 전장 , 한국소설문학대계 40, 동아출판사, 1995, 117118.
20) 같은 책, 216.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423

  전장(戰場)과 시장(市場)이 서로 등을 맞대고 그 사이를 사람들은 움직이고 흘러간다. 사람도 상품도 소모의 한길을 내달리며, 그리고 마음들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 가는 민심을, 사라져 가는 인민들의 불길을 억지로라도 되살리기에는 오직 승리가, 사람과 상품의 소모를 막아 줄 결정적인 승리가 있을 뿐이라고 기훈은 생각한다.21) 기훈의 생각대로라면 시장은 상품이 소모되는 곳이며, 전장은 사람이 소모되는 곳이다. 시장과 전장은 기훈이라는 인물의 사유 체계를 통해 비로소 소모라는 속성을 통해 맞물려 있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이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기훈은 이미 당시 사람들이 소모와는 반대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기훈은 자신이 지닌 이데올로기를 위해 승리만을 생각하는 맹목적이며 모순된 모습을 동시에 드러낸다. 사실, 기훈은 여기서뿐 아니라 작품 곳곳에서 모순된 성격을 종종 표출하고 있다. 기훈이 부모나 다름없이 생각했던 석산 선생을 전쟁이 터진 후 갑자기 반동으로 몰아붙인 것, 동생인 기석의 공산당 입당 사실에 오히려 노골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보인 것 등은 기훈이 이중적이거나 혹은 매우 다면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 유형임을 말해 준다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작품에 나타나는 시장에 대한 대조적인 두 시선의 병치나 기훈의 다소 모호하고 이중적인 성격이 작가 박경리가 견지하고 있는 양시쌍비론적인 판단 태도와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국군을, 그리고 대한민국을 공공연히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민군을 욕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음속으로 이들 피란민은 관전(觀戰)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전 중 그들이 한마디의 의견도 없었다는 것은 그들이 현명했기 때문이다. [……]

21) 같은 책, 222.424 한국문학논총 제45

 

  대한민국에 불만하고 여러 가지 압제에 증오를 느끼면서도 그들은 이북군을 진정한 해방자로서 맞이하지 못하는 착잡한 심정의 소시민인 것이다. 진정 민중들은 어느 쪽에 가담하고 있는 것일까?22) 피란민들의 관전이나 침묵은 표면적으로 명철보신의 특성을 지니지, 근본적으로 그것은 작가 박경리가 견지하고 있었던 양시론적인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불편부당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다루며 양시쌍비론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사실 작품 내외적으로 다소 위험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 박경리는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 남과 북에 대한 양비론이나 이념 초월적인 가치관 등을 지향했다.

 

  이 작품에 대해, “정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하고자 한 작가의 불편부당성이 잘 드러나고 있”23)다고 평가한 것은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이 점에서 시장과 전장 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젖은 이른바 반공소설들과는 그 문학사적 위치를 달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또한 양시쌍비론이 지닌 위험성을 지적해 둬야 한다. 사실, 우리들 삶에는 딱 부러지게 어느 한 쪽의 잘잘못을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이 드물지 않다. 이럴 때 우리는 양시쌍비론에 기대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은 편리할 뿐이지 올바른 처사라고는 할 수 없다. 왜인가? 한마디로,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존재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게 들린다면, 잘 알려진 예를 하나 들어 보.

 

솔로몬의 재판에서, 두 여인은 서로가 자신이 아이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솔로몬은 아이를 둘로 갈라 나누어 가지라고 판결한다. 이때 솔로몬의 판결이 양시쌍비론이다. 둘 다 일리가 있으니 똑같이 옳다는 판결은 양측 모두를 존중하는 처사 같지만 실지로는 이처럼 진실(아이의 목)을 버리는 것이다. 솔로몬의 이 같은 판결에 찬성한 쪽은 물론 가짜 어머니이다. 가짜 어머니에게는 아이의 목숨보다도 양쪽이 모두 옳다는, 바로 그 자리에서의 판결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진짜 어머니는 지금 당장의 시시비비보다는 아이의 목숨이 남아 있기를 원한다. 솔로몬은 양측의 반응을 보고 진실을 가려낸다. 솔로몬은 양시쌍비론의 허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2) 같은 책, 197198.
23) 박종홍, 현대소설의 사회윤리의식: <원형의 전설><시장과 전장>을 중심으로 , 현대소설연구 9호, 한국현대소설학회, 1998. 12, 80쪽.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425

 

  양시쌍비론의 허점은 무엇인가?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는 것이다. 이를 낳은 사실(과거)이 없고, 아이의 목숨에 대한 소중함(미래)이 없다는 뜻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잘 알려진 명제를 상기하는 것도 좋다. 물론 그 대화는 미래를 바라보며 나누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현실에 급급해 판결을 내릴 때, 양시쌍비론은 잘못 판단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양시쌍비론은 판단의 회피이지 온전한 판결은 아니다. 이를테면 시장과 전장에 대해서 자신이 없을 경우에는 아예 판단중지(判斷中止) 상태로 빠져들기도 하였다.”24)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솔로몬의 일화에서 양시쌍비론이 최종 판결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법으로만 쓰이고 있음을 발견한다. 양측 당사자에게 동등한 진술의 기회를 주고(양시쌍비론), 판결하는 사람은 사건의 맥락(크게 말하면 역사의식)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솔로몬의 재판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가르침이다. 솔로몬이 행한 재판은 작가의 소설 쓰기와 대응된다. 요컨대 작품 속에 드러난 양시쌍비론의 결정적인 한계는, 현실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하기보다는 일종의 구경꾼이나 제삼자의 위치에 머물게 만든다는 점이다.

24) 조남현, 市場戰場 理念檢證 , 한국현대문학연구회 엮음, 한국의 전후문, 태학사, 1991, 126.426 한국문학논총 제45

 

. 객관적 현실과 소설적 현실 사이의 거리

  1960년대 초반에 발표된 최인훈의 광장, 오유권의 방앗골 革命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은 한국전쟁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내면화 과정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이 세 작품들은 전쟁의 참혹함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보다는 남북한의 분단과 대립 구조에까지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들 작품에서 각기 특징적인 요소로 꼽히는 작중 인물의 양자택일적 선택 상황( 광장 )과 상촌의 대립적인 배경 설정( 방앗골 革命 ), 시장전장의 대비와 양시쌍비론( 시장과 전장 ) 등의 대립 구조가 발현되는 양상을 분석했다. 또한 이 같은 대립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주제 의식의 문제점을 함께 고찰하였다.

 

  광장 에서 이명준의 중립국 선택이 끝내 벗어날 수 없는 문제는 이라는 객관적 상황이다. 이는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라는 문학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드시 거론해야 할 문제이다. 작가 최인훈이 개작을 거듭해 가며 이명준의 죽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 한 것도 결국은 중립국= 죽음이라는 한계를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려 시도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앗골 革命 에서 상촌하촌을 대립적으로 설정해 한국전쟁을 형상화하다가 봉착한 문제 역시 작품 속에 설정된 자족적인 공간에서 말미암은 비현실적 요소이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또한 분단의 상처를 일부다처의 혼인 관계로 해결하려는 시대착오적인 이상주의가 개입하기도 한다. 시장과 전장 에서는 시장전장이라는 단순 대비 구조를 넘어서는 입체성을 획득하면서도, 현실 상황에 대한 판단 보류 혹은 양시쌍비론적 태도라는 문제적인 유보 사항을 남기고 있다.

 

  이들 세 작품에 각기 내재한 문제는 결국 객관적 현실과 소설 속에 그려진 현실 사이의 미묘한 어긋남이라 할 수 있다. 그 어긋남은 기법의 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고려될 수도 있고, 아니면 작가의 미숙에 의한 결함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이는 곧 소설 작품의 구조와 주제 의식 사이의 문제 제기가 될 것이다.

 

  끝으로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은, 객관적 현실과 소설적 현실 사이의 어긋남은 작가의 몫이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은 그 시대의 몫으로 돌려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른바 메타 소설, 또는 작가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에서 글쓰기 자체에 대해 천착하는 일이야말로 객관적 현실과 소설적 현실 사이에 놓인 간극을 해체하는 작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제어 : 전후소설, 대립 구조, 주제 의식, 한국전쟁의 특수성, 양시쌍비, 객관적 현실과 소설적 현실428 한국문학논총 제4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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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Conflict Structure and Thematic Consciousness in Post-Korean War Novels in the 1960s - Focused on Gwangjang, Bangatgol Hyeokmyeong and Sijanggwa Jeonjang - Lee, Seong-Woo Choi In-Hoon’s Gwangjang, Oh Yoo-Gwon’s Bangatgol Hyeokmyeong and Park Gyeong-Ri’s Sijanggwa Jeonjang published in the early 1960s shows the process of internalization as a literary response to the Korean War. The three novels did not concentrate on the misery of the war itself. Rather, they expanded the scope of consciousness to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conflict structure. We analyzed how the pattern of conflict structure are expressed in the characteristics of the works such as the situation demanding a choice between two(Gwangjang), the confrontational background of the upper village and the lower village(Bangatgol Hyeokmyeong) and the contrast between the market and the war and the theory that both are right and wrong(Sijanggwa Jeonjang). In addition, we examined thematic consciousness derived inevitably from the conflict structure.

The problem from which Lee Myeong-Joon’s choice of the neutralist nation could not escape was the objective situation of ‘death.’ This is an issue that must be discussed although it is 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431 meaningful in literature history as a rejection of dichotomously confronting ideology. That writer Choi In-Hoon tried to give new meanings to Lee Myeong-Joon’s death through repeated revisions is also considered an effort to overcome the limitation of ‘neutralist nation=death’ in some way. 

The problem that Bangatgol Hyeokmyeong is faced with in giving shape to the Korean War by putting ‘the upper village’ and ‘the lower village’ antagonistic to each other is also an unrealistic element resulting from the self-sufficient space created in the story. This work also involves anachronistic idealism that tries to stitch up the wound of the division through polygamy. In Sijanggwa Jeonjang, cubicalness is achieved beyond simple contrast between ‘market’ and ‘war’ but it leaves the problematic attitude of deferring judgment of the real situation or viewing both as right and wrong.

A problem inherent in the three works is delicate discrepancy between the objective realities and the realities described in the stories. The discrepancy may be considered positively from the aspect of technique or can be pointed out as a mistake from the writers’ immaturity. That is, this is a matter between the structure and thematic consciousness of the novels.

Lastly, what we need to think once more is that a discrepancy between the objective realities and fictional realities should be attributed to the writer but part of it can be attributed to the historical situation of the age. Considering this, in so-called meta-novels, namely, novels in which the writer is the main character, pursuit for writing itself can narrow the gap between the objective realities and fictional realities. 432 한국문학논총 제45집 Key Words : post-Korean war novels, conflict structure, thematic consciousness, the peculiarity of the Korean War, the theory that both are right and wrong, objective realities and fictional reali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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