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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대운문

거산호 2 - 김관식

by 열공햐 202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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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맨날 변해 쌓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하는 데다가

보옥(資玉)*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네.

그 품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아아(峨峨)라히*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네 품이 고향인 그리운 산아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꿈 같은 산 정기(山精氣)를 그리며 산다.

 

-김관식, 거산호2

 

 

*북창 : 북쪽으로 낸 창

*장거리 : 장이 서는 거리, 세속에 찌든 삶.

*아아(峨峨)라히 : 산이나 큰 바위가 우뚝 솟은 위엄 있는 모양

*미역취 : 엉거시과의 다년생의 풀

*사람은 맨날 ~산이 아니냐 : 무한한 자연과 유한한 인간사의 대조

*보옥 : 보석. 산에 있는 꽃, 나무, 바위 등을 뜻함.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 평생 동안에, 영원히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탈속적, 동양적, 자연 친화적

특징

유한한 인간사와 자연의 영원성 대조

반문명적, 반세속적인 소박한 생활관 제시

안빈낙도, 유유자적하는 관조적 삶의 모습

구성

: 산을 향하여 앉은 뜻 (14)

: 산을 보고 배우는 삶 (58)

: 영원한 안식처로서의 산 (911)

: 산 정기를 그리며 사는 삶 (1215)

제재 : 세속을 초탈한 삶

주제 : 자연과의 동화(자연 귀의)

출전 : 창작과 비평 (1970)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세속을 벗어나 유유자적하는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김관식 말년의 대표작이다. 일찍이 한학(漢學)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시인은 초기 시에서 어려운 한자어를 많이 구사하여 유학자적 풍취를 짙게 드러내는 한시풍의 시를 주로 창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지조 높은 선비의 자세를 동양적 달관으로까지 승화시켜 표현한 작품을 썼다.

 

  이 '거산호(居山好)'시인이 요절하기 몇 달 전에 발표한 작품으로 시인이 평생 동안 추구한 동양 정신이 작품 속에 용해되어 높은 서정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연은 동화와 순응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다. , 그의 시의 '자연'은 동양 정신 그 자체인 셈이다.

 

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맨날 변해 쌓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이 시의 제 14행까지는 장거리(장이 서는 번화한 거리)로 대표되는 세속의 찌든 삶을 등지고 산을 바라보면서 유한한 인간사와 변함없는 자연을 대비시키고 있다.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壽)하는 데다가

보옥(資玉)*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네.

 

 제58행에서는 동양 정신의 정수를 의미하는 산 자체를 평생 동안 추구하는 시인의 탈속적, 고전적 감각이 드러나 있고

 

그 품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아아(峨峨)라히*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제9∼11행은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이라는 전생애 동안 무욕(無慾)의 경지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묘사하고 있다.

 

네 품이 고향인 그리운 산아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꿈 같은 산 정기(山精氣)를 그리며 산다.

 

  마지막 제1215행까지는 미역취에 취한 화자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제시하면서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는' 심화된 경지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화자는 분명히 세속 안에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는' 역설이 가능하고 '꿈 같은 산 정기를 그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평생 가난과 병고에 시달린 시인의 생애를 떠올리게 된다. 또한, 그러한 삶 속에서도 치열하게 자기 세계를 굳게 지켜 나간 시인의 내면 의지에 감동을 받게 된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물질과 권위에 가득 찬 세속을 벗어나 노장(老莊)의 무위(無爲)에 가까운 경지를 추구하는 시인의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반문명적이고 반세속적인 무욕(無慾) 의 삶의 자세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김관식(金冠植, 1934년 5월 10일 ~ 1970년 8월 30일)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한문번역가. 호는 추수(秋水)·만오(晩悟)·우현(又玄)·현현자(玄玄子). 흔히 천상병, 중광, 고은 등과 더불어 해방 이후 한국문학계의 기인으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또한 미당 서정주와는 동서지간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충청남도 논산시 출신으로, 본관은 사천 김씨이다. 1934년 5월 10일, 한약방을 경영하던 아버지 김낙희와 어머니 정성녀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인 김낙희는 일찍이 서원과 향교에서 전교와 제관을 지내는 등 선비정신이 강한 사람이었고, 덕분에 김관식도 아버지로부터 4살 때부터 한학을 익혔다.

  1952년에 강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충남대학교 토목공학과,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거쳐서 1953년에 동국대학교 농과대학에 진학하였으나 이듬해에 중퇴하였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정인보와 최남선, 오세창 등으로부터 꾸준히 한학을 배웠다. 한편 김관식은 17살 즈음에 서정주와 알고 지내게 되면서 추천을 받기 위해 그 집에 자주 오게되었다. 이때 서정주의 처제인 방옥례에게 반하여 3년 동안이나 구애를 하였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음독자살 소동까지 벌인 끝에 1954년에 결혼하였다. 이후 김관식은 방옥례와의 사이에서 2남 3녀를 얻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했던 경력이 인정되어서인지 1954년 이래로 경기도 여주농업고등학교·서울공업고등학교·서울상업고등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세계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1952년, 조지훈이 서문을 써주어 시집 《낙화집》을 발표하였다. 이후 1955년, 동서지간이었던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연(蓮)〉 · 〈계곡에서〉 · 〈자하문 근처〉 등을 발표하여 정식으로 문학계에 등단하였다. 이때부터 문학성을 인정받는 한편,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기 힘든 갖가지 기행을 선보여 세간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에 실시된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용산구 갑에 출마하여 당시 정계의 거물인 장면과 맞붙었으나 낙마하고 말았다. 그 여파로 경제 상황이 몹시 궁핍해졌기에 이듬해에는 서울 세검정에 소유하고 있던 과수원을 처분하고 홍은동으로 이사해야 했다. 이후로도 시인으로 활동하였으나, 평소 지나친 음주를 하였던 것이 원인이 된 탓인지 건강이 크게 상하여 간염을 앓았고, 결국 1970년에 불과 37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서정주는 김관식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애도하였다.

“세상의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고 욕만 퍼부으며 철저한 자존과 고독과 깡소주로만 살다가 완전히 폐가 녹아 사십도 못되어 스러져간 젊은 사내, 신동출신(神童出身)의 김관식이를 시인으로 추천한 것을 나는 한동안 후회했으나, 이제는 후회 안해도 되는가? 또다시 우리를 괴롭게 울리며 죽어갈 염려는 없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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