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경희대학교 수시모집 인문 체육 계열 논술 고사 문제지














2024학년도 신입생 수시모집 논술고사 문제지(인문·체육계)
경희대학교
[11월 18일(토) 오전]
지원학부(과) ( ) 수험번호 성명( )
| <유의사항: 아래 내용 위반시 감점 또는 0점 처리할 수 있음> |
| 1. 답안의 작성과 정정은 반드시 본교에서 지급한 흑색 필기구를 사용하시오. 2. 답안지에 제목을 쓰지 말고, 특별한 표시를 하지 마시오. 3. 답안지에 답안과 관련된 내용 이외에 어떤 것도 쓰지 마시오(예: 감사합니다 등). 4. 제시문 속의 문장을 그대로 쓰지 마시오. 5. 답안 작성 시 논제번호(예: I. I)에 맞춰 답안을 작성하며, 논제별 소문제번호[예: (1), (2)]를 쓰고 이어서 논술하시오. 6. 답안 정정 시에는 원고지 교정법을 따라야 하고 수정도구(수정액 또는 수정테이프) 사용은 절대 불가하므로 유의하시오. 7.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논제별 분량 제한을 준수하고, 답안지는 모든 논제를 포함하여 반드시 최종 1장만 제출 가능하오니 각별히 유의하시오. 8. 지정된 답안의 작성 영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시오. 9. 인문·체육계 문제지는 총 2장 4쪽입니다. |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가]
깨어 있는 잠자고 있는 이성의 명확한 증거에 의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물을 믿어서는 안 된다. 내가 여기에서 상상이나 감각이 아니라 이성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이를테면 태양을 아무리 자세히 본다고 해도 그것이 보이는 그대로의 크기일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양(羊)의 몸통에 사자의 머리가 붙어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런 괴물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이성은 우리가 보거나 상상하는 것이 진실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성에 따르면, 관념이나 개념은 모두 무엇인가 진실에 근거한다. 완전하고 진실한 신(神)이 진실성이 없는 관념을 우리 속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잠자고 있을 때의 추리는 결코 깨어 있을 때만큼 명확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비록 상상이 수면 중에 명료히 각성될 때가 간혹 있다 해도 말이다. 이성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완전한 것은 아니므로 우리의 생각도 모든 면에서 진실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진실은 꿈꿀 때보다 깨어 있을 때 더 잘 발견된다고
[나]
지금 우리는 거짓에 쉽사리 빠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성적으로 살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인간의 비이성적인 특성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독일의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알렉산더 클루게는 인간에게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에 대한 신념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 인간은 스스로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이 늘 밀치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으며, 이성적 판단을 바탕으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트럼프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슬로건을 듣고 출마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구호에 동조했다. 그들은 모두 과거의 안정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인간은 격세지감(之感)을 느낄 때 과거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너무 낯설 때, 거기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생경한 것들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면 이를 피하려는 감정을 갖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단순한 감정적 문제 해결책을 가진 지도자를 갈망하게 되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믿어온 진실을 거짓으로 느끼거나 사실과 거짓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지금 우리 시대에 뻔뻔한 거짓말들이 동하고 거짓이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저변에는 인간의 특성이 깔려 있다. 우리는 항상 진실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진실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칸트와 같은 학자들은 스스로 이성적으로 사는 것을 계몽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인간이 이성을 사용한다는 생각 자체가 인간을 감정의 동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감정적 존재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이성을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아주 오래된 갈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진실 그 자체보다 세상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주는 이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단순 명료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야기가 존재할 때 인간은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한 갈망 때문에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의 거짓 여부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감정이며, 그 안정감에 대한 희구로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다]
이성에 근거하는 법이 갖는 효과에 대해서는 대중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한 시각을 수용하면 여러 가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논쟁을 쉽게 끝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법은 생각할 수 없다. 공리주의 전통에 서 있는 일부 학자들은 법에서 감정을 배제하라고 주장해 왔다. 그들은 범죄자의 정신 상태 대신에 법을 통한 억제를 고려함으로써 감정을 배제한 순수한 법률 체계를 옹호해 왔다. 예를 들면, 살인 행위를 처벌할 때 그러한 처벌이 살인자 본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많은 면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공정성의 측면에서 그렇다. 자신의 아이가 살해당해서 충동적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은 사전에 모의해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과 분명히 다른 내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행위에 내재된 특성도 매우 다르다. 순전히 억제에 기반을 둔 시각은 이러한 내재적 차이를 포착하지 못한다.
주디 노먼은 수년간 남편에게 물리적·정신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남편은 강제로 그녀에게 성매매를 시키기도 했으며, 죽여 버리겠다고 자주 위험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은 노먼을 '개'라고 부르면서 가혹하게 구타했고, 자신은 침대 위에서 자면서 아내는 바닥에서 자게 했다. 노먼은 아이를 친정집에 맡기고 돌아와 잠들어 있는 남편을 총으로 쏴 죽였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측 전문가는 노먼이 두려움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남편을 없애지 않으면 "자신은 최악의 고문과 학대를 겪으며 살아가야 했을 운명"이며, "그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스캐롤라이나 주 대법원은 피고 측이 배심원들에게 정당방위임을 호소할 기회를 주지 않은 1심 재판부의 결정을 지지했다. 다수 의견을 낸 주 대법원 판사들은 피고 측 전문가의 소견이 "긴박한 죽음의 위협이나 심각한 육체적 위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 인정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라고 보았다. 하지만 소수의견을 낸 판사는 남편의 야만적 행위가 피고인의 삶의 질을 최악의 상태로 떨어뜨렸으며, 배심원들도 비참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그녀의 행위가 납득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76년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사형제도법령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형벌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자신의 삶의 이력을 이야기하고, 배심원들에게 동정심을 호소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판결문에는 형사에게 양형을 선고할 때에 동정심을 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적혀 있다. 물론 무분별한 동정심이 양형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동정심을 배제하는 것은 분명히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라]
공감의 확장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교류와 인프라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이다. 공감이 없는 사회생활이나 사회조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 자폐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가? 사회는 사교적이어야 하고 사교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이 확장되어야 한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다양한 종류의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많아야 하며, 공감이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져야 한다.
확장된 공감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평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유일한 인간적 표현이다.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때 구별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고군분투를 자신의 것처럼 동일시하는 행동이 평등 의식의 궁극적 표현이다.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같은 지평 위에 있지 않으면 진정한 공감은 불가능하다. 상대방보다 신분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다르고 낯설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기쁨이나 슬픔을 자신의 것처럼 실감하기 어렵다. 상대방에게 동정을 느낄 수도 있고 상대방이 안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과 진정으로 공감하려면 그들이 나 같다는 느낌과 반응이 있어야 한다. 공감을 하는 순간에는 '내 것'과 '네 것'이 없고 오직 '나'와 '너'만 있을 뿐이다. 공감은 같은 영혼이라는 공동의식이며, 그것은 사회적 신분의 구별을 초월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공감의 순간이 신분의 차이와 구별을 없애 버리는 것은 아니다. 공감의 범위를 넓히는 순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며 위로하고 지지하는 행동을 통해, 재산이나 교육이나 직업적 신분 등 다른 사회적 장벽이 잠시 뒤로 물러나는 것뿐이다. 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법적 권리나 경제적 수준의 평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유하고 유한한 존재이며 잘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고 그들의 인생을 예찬하는 것이다. 공감의 순간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경험 가운데 가장 밀도 높은 생생한 경험이다. 주변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살아 있다는 것을 더 크게 실감한다. 공감 의식이 성숙할수록 서로의 삶이 더 가까워지고 보편적이게 된다.
[마]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이러한 공감 능력에 입각한 해결책은 국제 문제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머나먼 타국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한 누스바움 같은 철학자 역시 이 방식을 지지한다. 소설가 중에도 이 견해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소설이 주는 유익함 중 하나가 도덕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본다. 1856년에 조지 엘리엇은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려면 감정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소설과 그 밖의 예술 작품이 이런 도덕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위대한 예술가가 표현하는 삶의 모습은 더없이 평범하고 이기적인 사람마저 놀라게 하고, 자신과 무관한 대상에게 관심을 갖게 한다. 이것을 도덕 감정의 원재료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영문학자 일레인 스캐리는 공감에 입각한 해결책에 의문을 표시했다. 타자의 삶을 상상하는 행위가 친절을 끌어내는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스캐리는 상대가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그의 처지를 상상하기가 어려운데 독일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들. 미국에 사는 불법체류자들, 폭격으로 사망한 수많은 이라크 군인들과 시민들의 경우처럼 낯선 사람들의 처지를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사실, 공감은 많은 경우 감정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수천 명의 타인이 끔찍하게 죽었다는 소식보다 내 아이가 살짝 다쳤다는 소식에 훨씬 더 가슴 아파한다. 부모라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마땅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이처럼 낯선 사람의 처지를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그럴수록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다면 이런 요구가 타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전혀 모르는 다수가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요구가 올바르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품는 마음이 낯선 사람에게도 똑같이 형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100만 명이 겪고 있는 고동을 목격한다고 해서 한 사람의 고통을 목격했을 때보다 100만 더 가슴이 아프지는 않다.
공감에 입각한 해결책을 지지하는 사람은 타인이 느끼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자신의 것만큼 중시하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듣기엔 좋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부유한 미국인은 굶주리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삶을 자기 자식의 삶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나 미래 전쟁이 불러올 결과들 개인의 삶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지구 온난화나 미래 전쟁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추상적인 다수이기 때문이다.
[바]
감정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장착된 고글(goggle)을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번쩍이는 적외선을 통해 사람들 내부에서 분노나 창피함. 서러움. 기쁨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지켜본다면 감정이 한 사람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감정은 전염된다. 친구가 당신 앞에서 울거나 웃긴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은 당신과 친구 사이의 공기를 통과해 당신의 뇌로 들어와 변화를 일으킨다. 당신은 친구의 감정을 넘겨받고 그들의 생각을 해석하고 그들의 안녕을 염려한다. 친구에게 공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이 그 자체로 하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신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공감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사실 공감이란 사람들이 서로에게 반응하는 몇 가지 방식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인지하는 것. 그들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 그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당신이 파란색을 어떻게 느끼는지 확실히 알 수 없고, 흥분했거나 두려울 때 당신이 정확히 뭘 느끼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사적인 세계는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궤도를 따라 서로의 주변을 맴돌지만, 궤도가 완전히 겹쳐지는 일은 결코 없다. 두 사람이 친구가 되면 두 세계는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간다. 공감은 그렇게 거리를 뛰어넘게 하는 정신의 초능력이다. 우리는 공감을 통해 다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고, 그들로 존재하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추측한다. 모르는 사람이 하는 감정적인 이야기를 들어도 우리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상당히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 얼굴을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무엇을 즐기고 있는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공감의 역할 중 하나는 친절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친절함은 경직된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기술 중 하나이다. 다윈은 친절함을 납득하지 못했다. 다윈에 따르면 생명체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그렇지만 타인을 돕는 것은 그 명제에 들어맞지 않으며, 특히 남을 돕느라 자신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릴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친절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이다. 친절의 기원은 인류 역사보다 앞선다. 생쥐, 코끼리, 원숭이, 까마귀까지 모두 공감과 친절한 행동을 보인다. 쥐는 같은 우리에 있는 다른 쥐가 전기 충격을 받는 것을 보면 동작을 멈추고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는데, 이는 불안을 나타내는 신호이다. 이처럼 다른 개체의 고통을 볼 때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쥐들은 한 우리에 있는 친구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자기 몫의 초콜릿 조각을 내어 주는 식으로 서로를 돕는다.
수천 년을 거치면서 우리 인류는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얼굴은 부드러워졌으며, 공격성은 줄어들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눈의 흰자가 커졌고, 얼굴 근육은 정교해졌으며 감정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뇌는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발달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가까운 친구나 이웃뿐 아니라 적이나 모르는 사람의 마음에까지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2017년에 사람들은 미국에서만 4,100억 달러를 자선활동에 기부했고, 자원봉사 활동으로 거의 10억 시간을 소비했다. 이런 친절의 상당 부분은 공감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자선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자원봉사 활동을 더 자주 한다. 과거에 우리는 친족이나 소수의 친구 같은 좁은 범위의 사람들만 배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배려의 원(圓)은 부족과 마을. 심지어 국가를 넘어설 정도로 확장되었다.
[사]
공감의 특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개인에게나 조직에게나 해가 초래될 수 있다. 무엇보다 공감은 제로섬 상황을 가져온다. 내 배우자에게 공감을 많이 할수록 내 어머니에게 드릴 공감의 양이 줄어든다. 공감을 하려는 의지와 공감하는 데 필요한 노력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이 점은 가족, 친구, 고객, 동료 등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된다. 미용사, 소방관, 전자통신 전문가 등 844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어느 연구 결과를 보면, 직장에서의 공감과 가정에서의 공감은 하나가 커지면 다른 하나는 작아지는 제로섬 상쇄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장에서 동료들의 어려움과 걱정거리를 경청해 주고 동료들의 과중한 업무를 옆에서 도와준다고 응답한 사람들일수록 가족과의 소통이나 연결에서는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이러한 제로섬 상황은 특히 내부인-외부인 관계에서 우려할 만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 팀이나 조직에 속한 내부인을 향해 공감을 느낄수록 그 바깥에 있는 외부인에 대해서는 공감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내부 유대감이 커질수록 외부와의 거리감 혹은 단절감이 비례해서 커진다. 이렇게 되면 여러 상이한 조직이나 직능 분야 간에 폭넓은 협력이 이루어질 수 없다. 공감의 또 다른 특성은 윤리적 판단 상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인들에게 공감하고 그 공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들의 이익이 곧 내 이익인 양 착각할 수 있다. 그럴 경우 그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너무 쉽게 눈감아 준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즉, 남에게 공감해서 그를 위하겠다는 이타적 생각을 할 때, 그것을 합리화의 근거로 삼아 무언가를 속이거나 부정직한 행동을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동료들에 대한 공감으로 인해 조직 내의 비리에 대한 공익 제보를 꺼리기도 한다. 공사(公私) 구분을 못 한다는 말이다. 회사, 사회단체, 정부기관 등 각종 조직의 많은 결함, 특히 억압적 태도, 무례한 언행, 성희동, 업무상 비위에 관한 실제 예들을 떠올려 보자. 주로 내부인보다는 구성원들과의 공감 가능성이 낮은 외부인에 의해 파헤쳐지고 변혁되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여러 국가에 관한 비교 연구에 의하면, 집단적 충성심을 중시하는 국가들에서 뇌물 등 부정부패의 정도가 더 심하다고 한다. 집단주의 문화에 젖어 소속감, 상호 의존성, 연대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다가 각종 비리에 관대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논제 I] [다]의 시각에서 [가]와 [나]의 입장에 대해 평가하시오. [801자 이상 ~ 900자 이하: 배점 40점]
[논제 II] [라]~[사]를 입장이 유사한 두 부류로 묶어 그 중 한 입장을 선택해 요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입장을 비판하시오. [1,001자 이상 ~ 1, 100자 이하: 배점 60점]
<끝>
| 1. 일반정보 | |
| 유형 | ■ 논술고사 □ 면접 및 구술고사 □선다형고사 |
| 전형명 | 논술우수자전형 |
| 해당 대학의 계열(과목)/ 문항번호 | (인문·체육 )계열 / ( I )문항 |
2.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 문항 및 제시문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가]
깨어 있든 잠자고 있는 이성의 명확한 증거에 의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물을 믿어서는 안 된다. 내가 여기에서 상상이나 감각이 아니라 이성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이를테면 태양을 아무리 자세히 본다고 해도 그것이 보이는 그대로의 크기일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양(羊)의 몸통에 사자의 머리가 붙어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런 괴물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이성은 우리가 보거나 상상하는 것이 진실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성에 따르면, 관념이나 개념은 모두 무엇인가 진실에 근거한다. 완전하고 진실한 신(神)이 진실성이 없는 관념을 우리 속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잠자고 있을 때의 추리는 결코 깨어 있을 때만큼 명확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비록 상상이 수면 중에 명료히 각성될 때가 간혹 있다 해도 말이다. 이성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완전한 것은 아니므로 우리의 생각도 모든 면에서 진실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진실은 꿈꿀 때보다 깨어 있을 때 더 잘 발견된다고.
[나]
지금 우리는 거짓에 쉽사리 빠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성적으로 살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인간의 비이성적인 특성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독일의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알렉산더 클루게는 인간에게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에 대한 신념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 인간은 스스로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으며, 이성적 판단을 바탕으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트럼프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슬로건을 들고 출마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구호에 동조했다. 그들은 모두 과거의 안정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인간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때 과거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너무 낯설 때, 거기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생경한 것들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면 이를 피하려는 감정을 갖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단순한 감정적 문제 해결책을 가진 지도자를 갈망하게 되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믿어온 진실을 거짓으로 느끼거나 사실과 거짓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지금 우리 시대에 뻔뻔한 거짓말들이 통하고 거짓이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저변에는 인간의 특성이 깔려 있다. 우리는 항상 진실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진실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칸트와 같은 학자들은 스스로 이성적으로 사는 것을 계몽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인간이 이성을 사용한다는 생각 자체가 인간을 감정의 동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감정적 존재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이성을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아주 오래된 갈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진실 그 자체보다 세상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주는 이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단순 명료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야기가 존재할 때 인간은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한 갈망 때문에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의 거짓 여부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감정이며, 그 안정감에 대한 희구로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다]
이성에 근거하는 법이 갖는 효과에 대해서는 대중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한 시각을 수용하면 여러 가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논쟁을 쉽게 끝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법은 생각할 수 없다. 공리주의 전통에 서 있는 일부 학자들은 법에서 감정을 배제하라고 주장해 왔다. 그들은 범죄자의 정신 상태 대신에 법을 통한 억제를 고려함으로써 감정을 배제한 순수한 법률 체계를 옹호해 왔다. 예를 들면, 살인 행위를 처벌할 때 그러한 처벌이 살인자 본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많은 면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공정성의 측면에서 그렇다. 자신의 아이가 살해당해서 충동적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은 사전에 모의해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과 분명히 다른 내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행위에 내재된 특성도 매우 다르다. 순전히 억제에만 기반을 둔 시각은 이러한 내재적 차이를 포착하지 못한다.
주디 노먼은 수년간 남편에게 물리적·정신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남편은 강제로 그녀에게 성매매를 시키기도 했으며, 죽여 버리겠다고 자주 위협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은 노먼을 '개'라고 부르면서 가혹하게 구타했고, 자신은 침대 위에서 자면서 아내는 바닥에서 자게 했다. 노먼은 아이를 친정집에 맡기고 돌아와, 잠들어 있는 남편을 총으로 쏴 죽였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측 전문가는 노먼이 두려움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남편을 없애지 않으면 "자신은 최악의 고문과 학대를 겪으며 살아가야 했을 운명"이며, "그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스캐롤라이나 주 대법원은 피고 측이 배심원들에게 정당방위임을 호소할 기회를 주지 않은 1심 재판부의 결정을 지지했다. 다수 의견을 낸 주 대법원 판사들은 피고 측 전문가의 소견이 “긴박한 죽음의 위협이나 심각한 육체적 위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 인정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라고 보았다. 하지만 소수의견을 낸 판사는 남편의 야만적 행위가 피고인의 삶의 질을 최악의 상태로 떨어뜨렸으며, 배심원들도 비참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그녀의 행위가 납득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76년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사형제도법령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형벌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자신의 삶의 이력을 이야기하고, 배심원들에게 동정심을 호소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판결문에는 형사범에게 양형을 선고할 때에 동정심을 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적혀 있다. 물론 무분별한 동정심이 양형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동정심을 배제하는 것은 분명히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논제 I] [다]의 시각에서 [가]와 [나]의 입장에 대해 평가하시오 [801자 이상 ~ 900자 이하: 배점 40점]
3.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출제 의도
2024학년도 경희대학교 인문·체육계열 수시모집 논술고사는 총 두 문제를 출제하였다. 고등학교 학력 수준에 맞추어 범교과적인 문제에 대한 이해력, 논리적·분석적 추론 능력, 비판 능력 등을 기반으로 한 종합적 사고 능력 및 서술 능력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본 논술고사는 현행 고등학교 교과서『국어』, 『문학』의 정확하고 비판적인 읽기,' '소통의 글쓰기,' '바른 맞춤법' '자아 성찰과 타자 이해' '인간다움과 공동체의 문화 발전,' '문제 해결의 사유' 영역, 화법과 작문』의 '작문의 원리와 실제 영역, 『독서의 주제 통합적 읽기', '독서의 본질', '독서의 방법', '독서의 분야' 영역, 『통합사회』의 '통합적 관점의 이해' 영역, 『생활과 윤리』의 '도덕적 탐구의 방법' 영역, 『윤리와 사상』의 도덕의 기초: 도덕적인 삶과 이성', '도덕의 기초: 도덕적인 삶과 감정' 영역, 『정치와 법』의 '민주주의와 헌법' 영역, 『언어와 매체의 '매체언어의 탐구와 활용' 영역 등에 등장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출제하였다.
[논제 I]의 [가],[나],[다] 제시문들은 인지 과정에서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입장, 감정 중심의 사회가 갖는 부정적 측면을 비판한 입장, 이성만이 아니라 감정적 요소를 함께 고려할 때 사법적 정의가 성취될 수 있다는 입장 등 이성과 감정의 중요성에 관한 다양한 논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선별되었다. 인간의 중요한 특징인 이성과 감정이 어떠한 가치와 한계를 지닐 수 있고, 개인 및 사회에 대해 어떠한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탐색·고찰하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특히 이성과 감정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균형 있게 사고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제시문 [가]는 이성에 충실한 인지 과정만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제시문 [나]는 감정이 지배하는 현실이 진실과 거짓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결국 거짓이 횡행하는 현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제시문 [다]는 사법적 정의는 이성만이 아니라 감정적 요소를 함께 고려함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제시문 [다]의 시각에서 볼 때, 제시문 [가]는 감정이 인간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고, 제시문 [나]는 몇몇 부정적 사례만을 부각시킴으로써 감정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한계가 있다.
본 논술고사는 응시생들이 여러 제시문들의 핵심을 파악한 후 논리정연하게 답안을 서술하는 것을 요구한다. 특히, 각 제시문을 개별적이며 고립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다른 제시문과의 관계와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입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본 논술고사는 여러 제시문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를 파악하고, 차이를 발견하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판단하고자 하였다. 또한 응시생이 특정 주제에 대한 사전 지식을 논술 답안에 그대로 옮겨 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제시문의 관점을 다른 제시문의 내용에 비판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4.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문항 해설
[논제 I]은 제시문 [다]의 내용이 제시하는 관점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가],[나]에서 제시한 입장을 평가하는 문제로, 이성과 감정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출제하였다.
각 제시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시문 [가]는 데카르트의 글을 발췌 윤문한 것으로서, 이성의 원칙에 충실한 인지 과정만이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점은 “이성의 명확한 증거에 의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물을 믿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에 명확히 드러난다. 이 주장에 따르면 상상이나 감각을 배제할수록 우리가 진실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상이나 감각 등 감정 영역의 요소는 이성에 입각한 정확한 인지와 판단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제시문 [나]는 악셀 하케의 글을 발췌 윤문한 것으로서, 인간은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바람과 달리 실상은 이성적 판단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감정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약점으로서 감정이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점은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 대중을 감정적으로 자극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정치인들을 보거나, 감정적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도자를 갈망하는 대중을 보면 알 수 있다.
제시문 [다]는 마사 누스바움의 글을 발췌 윤문한 것으로서, 법에서 감정 요소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부의 사람들은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이성적 판단만이 사법적 정의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취하지만, 맥락에 따라 감정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도 그러한 입장을 지지한다. 무분별한 동정심이 양형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감정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판결만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5.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채점 기준
1. 점수 배정
① 만점 : 각 논제 당 100점(두 논제 도합 200점)
② 기본 점수 : 60점
- 답안과 관련된 내용을 조금이라도 쓰면 60점
- 백지 및 답안과 관련 없는 글, 특별한 표시는 0점
③ 기준 점수 : 상(100점∼90점), 중(89점∼70점), 하(69점∼0점)
2. 채점 기준 : 정량평가
1) 원고지 사용법
① 띄어쓰기를 포함한 원고지 사용법, 국어정서법에 관한 것은 비교적 관대하게 처리하나 현격한 잘못을 범하고 있을 경우 채점위원의 재량에 따라 감점 처리한다.
② 예리한 문제 제기, 독창적인 구성, 탁월한 표현력 등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부여한다.
③ 백지이거나 고의적으로 특별한 표시를 한 답안은 0점 처리. 특별표시 여부는 해당 채점위원 전원의 협의를 거쳐 처리한다.
2) 원고분량에 따른 감점
① 원고분량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서술 내용을 중시)
② 아래의 기준으로 제시한 분량을 조금 벗어났다고 해도 일률적으로 감점 처리하지 않는다.
③ 지나치게 모자라거나 넘칠 경우에만 감점 기준에 따라 처리한다.
● [논제 I] (801자 이상∼900자 이하)
700자 미만 : 감점 10점
700자 이상∼750자 미만 : 감점 5점
950자 이상∼1,000자 미만 : 감점 5점
1,000자 이상 : 감점 10점
3) 원고분량에 따른 기타 기준
① 답안의 마지막 행에 한 자라도 쓸 경우 한 행을 채운 것으로 간주한다.
② 답안 가운데 한 행 이상을 지우고 보충하지 않았다면 그 행은 공란으로 간주한다.
③ 주어진 필기도구로 작성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공란으로 간주한다. (예; 연필로 작성한 부분은 무효 처리)
3. 채점 기준 : 내용평가
1) [논제 I] (100점 만점/60점 기본 점수)
① 제시문 [다]와 [가]가 이성과 감정의 위상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임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평가했으면 10점 가점
② 제시문 [다]와 [나]가 감정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임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서술했으면 10점 가점
③ 제시문 [다]에 대해 이성에 기반한 법률 체계가 완전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성만이 아니라 범죄의 동기나 동정심 같은 감정적 요소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으면 10점 가점
④ 비슷한 뜻의 문장을 반복하거나 제시문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쓰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내용을 통일감 있고 조리 있게 서술했으면 10점 가점(창의성 및 표현력 등을 중시)
6.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 예시답안
[다]는 법의 판결에서 감정도 이성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부의 사람들은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이성적 판단만이 사법적 정의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취하지만, 동기나 동정심 같은 감정적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도 그러한 입장을 지지한다. 무분별한 동정심이 양형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감정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판결만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다]는 상황적 맥락과 감정적 요소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법적 사례를 통해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의 관점에서 [가]의 상황은 부정적이다. [가]는 이성의 원칙에 충실한 인지 과정만이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상상이나 감각을 배제할수록 우리가 진실에 근접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감정적 요소가 정확한 인지와 판단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의 입장에서 이러한 [가]의 주장은 감정이 인간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될 수 있다. [다]에 따르면 사법적 정의는 감정적 요소를 함께 고려할 때 성취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가]는 지나치게 이성적인 원칙만을 고려한다는 한계가 있다.
[다]의 관점에서 [나의 상황도 부정적이다. [나]에 따르면 감정은 인간 존재의 약점이다. 과거에 머무름으로써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자극하여 영향력을 획득하는 정치인들, 감정적 문제해결책을 제시하는 지도자에 대한 대중의 갈망 등은 감정이 어떻게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 내는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주장은 일부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시켜 감정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판되어야 한다. (866자)
| 1. 일반정보 | |
| 유형 | ■ 논술고사 □ 면접 및 구술고사 □선다형고사 |
| 전형명 | 논술우수자전형 |
| 해당 대학의 계열(과목)/ 문항번호 | (인문·체육 )계열 / ( Ⅱ )문항 |
2.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 문항 및 제시문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라]
공감의 확장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교류와 인프라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이다. 공감이 없는 사회생활이나 사회조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 자폐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가? 사회는 사교적이어야 하고 사교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이 확장되어야 한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다양한 종류의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많아야 하며, 공감이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져야 한다.
확장된 공감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평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유일한 인간적 표현이다.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때 구별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고군분투를 자신의 것처럼 동일시하는 행동이 평등 의식의 궁극적 표현이다.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같은 지평 위에 있지 않으면 진정한 공감은 불가능하다. 상대방보다 신분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다르고 낯설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기쁨이나 슬픔을 자신의 것처럼 실감하기 어렵다. 상대방에게 동정을 느낄 수도 있고 상대방이 안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과 진정으로 공감하려면 그들이 나 같다는 느낌과 반응이 있어야 한다. 공감을 하는 순간에는 ‘내 것’과 ‘네 것’이 없고 오직 ‘나’와 ‘너’만 있을 뿐이다. 공감은 같은 영혼이라는 공동의식이며, 그것은 사회적 신분의 구별을 초월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공감의 순간이 신분의 차이와 구별을 없애 버리는 것은 아니다. 공감의 범위를 넓히는 순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며 위로하고 지지하는 행동을 통해, 재산이나 교육이나 직업적 신분 등 다른 사회적 장벽이 잠시 뒤로 물러나는 것뿐이다. 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법적 권리나 경제적 수준의 평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유하고 유한한 존재이며 잘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고 그들의 인생을 예찬하는 것이다. 공감의 순간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경험 가운데 가장 밀도 높은 생생한 경험이다. 주변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살아 있다는 것을 더 크게 실감한다. 공감 의식이 성숙할수록 서로의 삶이 더 가까워지고 보편적이게 된다.
[마]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이러한 공감 능력에 입각한 해결책은 국제 문제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머나먼 타국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한 누스바움 같은 철학자 역시 이 방식을 지지한다. 소설가 중에도 이 견해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소설이 주는 유익함 중 하나가 도덕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본다. 1856년에 조지 엘리엇은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려면 감정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소설과 그 밖의 예술 작품이 이런 도덕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위대한 예술가가 표현하는 삶의 모습은 더없이 평범하고 이기적인 사람마저 놀라게 하고, 자신과 무관한 대상에게 관심을 갖게 한다. 이것을 도덕 감정의 원재료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영문학자 일레인 스캐리는 공감에 입각한 해결책에 의문을 표시했다. 타자의 삶을 상상하는 행위가 친절을 끌어내는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스캐리는 상대가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그의 처지를 상상하기가 어려운데 독일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들, 미국에 사는 불법체류자들, 폭격으로 사망한 수많은 이라크 군인들과 시민들의 경우처럼 낯선 사람들의 처지를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사실, 공감은 많은 경우 감정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수천 명의 타인이 끔찍하게 죽었다는 소식보다 내 아이가 살짝 다쳤다는 소식에 훨씬 더 가슴 아파한다. 부모라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마땅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이처럼 낯선 사람의 처지를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그럴수록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다면 이런 요구가 타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전혀 모르는 다수가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요구가 올바르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품는 마음이 낯선 사람에게도 똑같이 형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100만 명이 겪고 있는 고통을 목격한다고 해서 한 사람의 고통을 목격했을 때보다 100만 배 더 가슴이 아프지는 않다.
공감에 입각한 해결책을 지지하는 사람은 타인이 느끼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자신의 것만큼 중시하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듣기엔 좋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부유한 미국인은 굶주리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삶을 자기 자식의 삶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나 미래 전쟁이 불러올 결과를 개인의 삶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지구 온난화나 미래 전쟁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추상적인 다수이기 때문이다.
[바]
감정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장착된 고글(goggle)을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번쩍이는 적외선을 통해 사람들 내부에서 분노나 창피함, 서러움, 기쁨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지켜본다면 감정이 한 사람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감정은 전염된다. 친구가 당신 앞에서 울거나 웃긴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은 당신과 친구 사이의 공기를 통과해 당신의 뇌로 들어와 변화를 일으킨다. 당신은 친구의 감정을 넘겨받고 그들의 생각을 해석하고 그들의 안녕을 염려한다. 친구에게 공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이 그 자체로 하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신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공감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사실 공감이란 사람들이 서로에게 반응하는 몇 가지 방식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인지하는 것, 그들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 그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당신이 파란색을 어떻게 느끼는지 확실히 알 수 없고, 흥분했거나 두려울 때 당신이 정확히 뭘 느끼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사적인 세계는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궤도를 따라 서로의 주변을 맴돌지만, 궤도가 완전히 겹쳐지는 일은 결코 없다. 두 사람이 친구가 되면 두 세계는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간다. 공감은 그렇게 거리를 뛰어넘게 하는 정신의 초능력이다. 우리는 공감을 통해 다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고, 그들로 존재하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추측한다. 모르는 사람이 하는 감정적인 이야기를 들어도 우리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상당히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 얼굴을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무엇을 즐기고 있는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공감의 역할 중 하나는 친절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친절함은 경직된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기술 중 하나이다. 다윈은 친절함을 납득하지 못했다. 다윈에 따르면 생명체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그렇지만 타인을 돕는 것은 그 명제에 들어맞지 않으며, 특히 남을 돕느라 자신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릴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친절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이다. 친절의 기원은 인류 역사보다 앞선다. 생쥐, 코끼리, 원숭이, 까마귀까지 모두 공감과 친절한 행동을 보인다. 쥐는 같은 우리에 있는 다른 쥐가 전기 충격을 받는 것을 보면 동작을 멈추고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는데, 이는 불안을 나타내는 신호이다. 이처럼 다른 개체의 고통을 볼 때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쥐들은 한 우리에 있는 친구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자기 몫의 초콜릿 조각을 내어 주는 식으로 서로를 돕는다.
수천 년을 거치면서 우리 인류는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얼굴은 부드러워졌으며, 공격성은 줄어들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눈의 흰자가 커졌고, 얼굴 근육은 정교해졌으며 감정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뇌는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발달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가까운 친구나 이웃뿐 아니라 적이나 모르는 사람의 마음에까지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2017년에 사람들은 미국에서만 4,100억 달러를 자선활동에 기부했고, 자원봉사 활동으로 거의 10억 시간을 소비했다. 이런 친절의 상당 부분은 공감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자선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자원봉사 활동을 더 자주 한다. 과거에 우리는 친족이나 소수의 친구 같은 좁은 범위의 사람들만 배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배려의 원(圓)은 부족과 마을, 심지어 국가를 넘어설 정도로 확장되었다.
[사]
공감의 특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개인에게나 조직에게나 해가 초래될 수 있다. 무엇보다 공감은 제로섬 상황을 가져온다. 내 배우자에게 공감을 많이 할수록 내 어머니에게 드릴 공감의 양이 줄어든다. 공감을 하려는 의지와 공감하는 데 필요한 노력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이 점은 가족, 친구, 고객, 동료 등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된다. 미용사, 소방관, 전자통신 전문가 등 844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어느 연구 결과를 보면, 직장에서의 공감과 가정에서의 공감은 하나가 커지면 다른 하나는 작아지는 제로섬 상쇄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장에서 동료들의 어려움과 걱정거리를 경청해 주고 동료들의 과중한 업무를 옆에서 도와준다고 응답한 사람들일수록 가족과의 소통이나 연결에서는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이러한 제로섬 상황은 특히 내부인-외부인 관계에서 우려할 만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 팀이나 조직에 속한 내부인을 향해 공감을 느낄수록 그 바깥에 있는 외부인에 대해서는 공감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내부 유대감이 커질수록 외부와의 거리감 혹은 단절감이 비례해서 커진다. 이렇게 되면 여러 상이한 조직이나 직능 분야 간에 폭넓은 협력이 이루어질 수 없다. 공감의 또 다른 특성은 윤리적 판단 상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인들에게 공감하고 그 공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들의 이익이 곧 내 이익인 양 착각할 수 있다. 그럴 경우 그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너무 쉽게 눈감아 준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즉, 남에게 공감해서 그를 위하겠다는 이타적 생각을 할 때, 그것을 합리화의 근거로 삼아 무언가를 속이거나 부정직한 행동을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동료들에 대한 공감으로 인해 조직 내의 비리에 대한 공익 제보를 꺼리기도 한다. 공사(公私) 구분을 못 한다는 말이다. 회사, 사회단체, 정부기관 등 각종 조직의 많은 결함, 특히 억압적 태도, 무례한 언행, 성희롱, 업무상 비위에 관한 실제 예들을 떠올려 보자. 주로 내부인보다는 구성원들과의 공감 가능성이 낮은 외부인에 의해 파헤쳐지고 변혁되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여러 국가에 관한 비교 연구에 의하면, 집단적 충성심을 중시하는 국가들에서 뇌물 등 부정부패의 정도가 더 심하다고 한다. 집단주의 문화에 젖어 소속감, 상호 의존성, 연대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다가 각종 비리에 관대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논제 Ⅱ] [라] ~ [사]를 입장이 유사한 두 부류로 묶어 그 중 한 입장을 선택해 요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입장을 비판하시오. [1,001자 이상 ~ 1,100자 이하: 배점 60점]
3.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출제 의도
2024학년도 경희대학교 인문·체육계열 수시모집 논술고사는 총 두 문제를 출제하였다. 고등학교 학력 수준에 맞추어 범교과적인 문제에 대한 이해력, 논리적・분석적 추론 능력, 비판 능력 등을 기반으로 한 종합적 사고 능력과 서술 능력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본 논술고사는 현행 고등학교 교과서 『국어』의 ‘읽기’, ‘쓰기’ 영역, 『화법과 작문』의 ‘작문의 원리와 실제’ 영역, 『독서』의 ‘독서의 본질’, ‘독서의 방법’, ‘독서의 분야’ 영역, 『언어와 매체』의 ‘매체 언어의 탐구와 활용’ 영역, 『통합 사회』의 ‘인간과 공동체’ 영역, 『생활과 윤리』의 ‘윤리 문제에 대한 탐구와 성찰’ 영역, 『사회·문화』의 ‘개인과 사회 구조’ 영역, 『윤리와 사상』의 ‘도덕의 기초: 도덕적 삶과 감정’ 영역 등에 등장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출제하였다.
[논제 II]의 [라]~[사] 제시문들은 현대사회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되는 공감의 긍정적 의미와 가치를 강조하는 입장과 공감을 도덕 법칙의 근거로 규정하는 태도의 위험성과 한계를 지적한 입장, 공감의 역기능을 지적한 입장 등 대조되고 상반된 논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선별되었다. 공감이라는 가치가 어떠한 의미와 한계를 지닐 수 있는지, 또한 그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실용적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탐색·고찰하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특히 오늘날 공감은 개인이나 특정한 공동체를 넘어 국제적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자주 언급되므로 그것을 다양한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균형 있게 사고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제시문 [라]는 공감의 가치를 사회적 측면에서 강조한다. 사회적 공감의 확장이 폭넓은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라는 것이 핵심적인 주장이다. 제시문 [마]는 인간의 공감 능력이 대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근거로 타자에게 공감하는 행위가 보편적인 친절을 끌어내는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제시문 [바]는 공감의 가치를 감정의 영역에서 찾는다. 공감은 사람들 간의 거리를 뛰어넘게 하는 정신적 초능력이며, 이러한 감정의 전염으로 인해 인류와 동물은 사회성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는 공감이 제로섬 상황을 가져온다는 점, 공사 구분을 불분명하게 만들어 잘못된 윤리적 판단을 초래한다는 점을 근거로 공감의 한계를 지적한다.
본 논술고사는 응시생들이 여러 제시문들의 핵심을 파악한 후 논리정연하게 답안을 서술하는 것을 요구한다. 특히, 각 제시문을 개별적이며 고립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다른 제시문과의 관계와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입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본 논술고사는 여러 제시문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를 파악하고, 차이를 발견하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판단하고자 하였다. 또한 응시생이 특정 주제에 대한 사전 지식을 논술 답안에 그대로 옮겨 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제시문의 관점을 다른 제시문의 내용에 비판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4.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문항 해설
[논제 II]는 네 개의 제시문을 입장이 같은 두 집단으로 분류한 후 한 입장을 채택하여 그 입장을 요약하고 다른 입장을 비판하는 문제를 출제하였다. 다양한 제시문들을 동일한 시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고, 한 입장을 취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리를 전개하고 반대 입장을 얼마나 조리 있게 비판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출제하였다. 구체적으로, 남에 대한 공감이 지닌 가치를 강조하는 [라],[바]를 한 부류로 묶고, 공감을 추구할 때 마주하게 되는 한계를 주목하는 [마],[사]를 또 한 부류로 묶어 상호 비교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논제이다.
[라]는 제러미 리프킨의 글을 발췌 윤문한 것으로서, 공감의 가치를 특히 사회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강조한다. 사교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이 확장될 수 있어야 하고, 공감의 확장은 사람들 간에 구별이 사라지며 평등 의식이 확산되는 것을 뜻한다. 공감은 같은 영혼이라는 공동의식이며, 이런 의식이 퍼질수록 서로의 삶이 가까워지고 보편성을 띨 수 있게 된다.
[마]는 폴 블룸의 글을 발췌 윤문한 것으로서, 공감의 한계를 특히 그것이 미치는 범위의 차이를 중심으로 논한다.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람에게는 공감 할 수 있겠지만, 시공간적으로 먼 곳에 있는 낯선 사람에게까지 두루 공감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공감만 강조하면 구체적 대상이 아닌 추상적 다수의 일반적 문제들은 간과하게 된다.
[바]는 자밀 자키의 글을 발췌 윤문한 것으로서, 공감의 가치를 특히 감정의 영역에서 찾는다. 공감은 사람들 간의 거리를 뛰어넘게 하는 정신의 초능력으로서, 우리는 공감을 통해 다른 사람의 세계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감정의 전염은 친절한 마음을 확산시킴으로써, 인류와 동물이 사회성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사]는 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애덤 웨이츠의 글을 발췌 윤문한 것으로서, 공감의 한계를 공감의 한정성과 윤리적 판단의 문제를 중심으로 지적한다. 첫째, 공감은 무한한 것이 아니고 제로섬이므로 내부인을 향한 공감의 증대는 오히려 외부인에 대한 단절감의 증가로 이어진다. 둘째, 공감은 공사 구분을 불분명하게 해 남의 잘못을 덮어주는 잘못된 윤리적 판단이 나오도록 할 수 있다.
5.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채점 기준
1. 점수 배정
① 만점 : 각 논제 당 100점(두 논제 도합 200점)
② 기본 점수 : 60점
- 답안과 관련된 내용을 조금이라도 쓰면 60점
- 백지 및 답안과 관련 없는 글, 특별한 표시는 0점
③ 기준 점수 : 상(100점∼90점), 중(89점∼70점), 하(69점∼0점)
2. 채점 기준 : 정량평가
1) 원고지 사용법
① 띄어쓰기를 포함한 원고지 사용법, 국어정서법에 관한 것은 비교적 관대하게 처리하나 현격한 잘못을 범하고 있을 경우 채점위원의 재량에 따라 감점 처리한다.
② 예리한 문제 제기, 독창적인 구성, 탁월한 표현력 등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부여한다.
③ 백지이거나 고의적으로 특별한 표시를 한 답안은 0점 처리. 특별표시 여부는 해당 채점위원 전원의 협의를 거쳐 처리한다.
2) 원고분량에 따른 감점
① 원고분량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서술 내용을 중시)
② 아래의 기준으로 제시한 분량을 조금 벗어났다고 해도 일률적으로 감점 처리하지 않는다.
③ 지나치게 모자라거나 넘칠 경우에만 감점 기준에 따라 처리한다.
● [논제 Ⅱ] (1,001자 이상∼1,100자 이하)
900자 미만 : 감점 10점
900자 이상∼950자 미만 : 감점 5점
1,150자 이상∼1,200자 미만 : 감점 5점
1,200자 이상 : 감점 10점
3) 원고분량에 따른 기타 기준
① 답안의 마지막 행에 한 자라도 쓸 경우 한 행을 채운 것으로 간주한다.
② 답안 가운데 한 행 이상을 지우고 보충하지 않았다면 그 행은 공란으로 간주한다.
③ 주어진 필기도구로 작성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공란으로 간주한다. (예; 연필로 작성한 부분은 무효 처리)
3. 채점 기준 : 내용평가
2) [논제 II] (100점 만점/ 60점 기본 점수)
① 제시문을 공감의 가치를 강조하는 [라]와 [바], 공감의 한계를 부각하는 [마]와 [사]로 분류했으면 10점 가점
② 제시문을 [라]와 [바] 또는 [마]와 [사]의 입장으로 묶어 그 핵심 내용을 제대로 요약했으면 10점 가점
③ 제시문을 공감의 가치를 강조하는 [라]와 [바]의 입장에서 공감의 한계를 부각하는 [마]와 [사]의 시각을 비판하거나, 또는 공감의 한계를 부각하는 [마]와 [사]의 입장에서 공감의 가치를 강조하는 [라]와 [바]의 시각을 비판할 때 논거에 따라 비판했으면 10점 가점④ 비슷한 뜻의 문장을 반복하거나 제시문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쓰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내용을 통일감 있고 조리 있게 서술했으면 10점 가점(창의성 및 표현력 등을 중시)
6.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 예시답안
[라],[바]의 관점에서 [마],[사]를 비판하는 경우
[라],[바]는 공감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공감이란 다른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인지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는 것으로서, 사회에서의 생활과 조직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이다. [라]는 공감의 가치를 특히 사회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강조한다. 사교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이 확장될 수 있어야 하고, 공감의 확장은 사람들 간에 구별이 사라지며 평등 의식이 확산되는 것을 뜻한다. 공감은 같은 영혼이라는 공동의식이며, 이런 의식이 퍼질수록 서로의 삶이 가까워지고 보편성을 띨 수 있게 된다. [바]는 공감의 가치를 특히 감정의 영역에서 찾는다. 공감은 사람들 간의 거리를 뛰어넘게 하는 정신의 초능력으로서, 우리는 공감을 통해 다른 사람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의 전염은 친절한 마음을 확산시킴으로써, 인류와 동물이 사회성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공감의 가치를 중시한 이러한 입장에서 [마],[사]는 공감의 한계를 과도하게 부각시킨다고 비판될 수 있다. [마]에 따르면, 타자에게 공감하는 행위가 보편적인 친절을 끌어내는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람에게 품는 공감의 마음을 낯선 사람에게도 똑같이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라],[바]에서 논의되고 있듯이, 공감은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는 성과를 내왔다. 사람들의 삶을 서로 연결시켜 평등한 가운데 사교적인 사회가 등장하게 하는 공감의 역할을 경시해서는 곤란하다.
한편 [사]는 공감의 한계를 두 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공감은 제로섬 상황을 가져오고 특히 내부인을 향한 공감이 외부인과의 단절감을 증가시킨다. 둘째, 공감은 공사 구분을 불분명하게 해 잘못된 윤리적 판단이 나오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라],[바]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진정한 공감은 제로섬이 아니고 모든 감정의 전염이 그렇듯이 하면 할수록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공사 구분을 못 해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집단 충성심이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부패는 공감과 다른 문제이다. (1,083자)
[마],[사]의 관점에서 [라],[바]를 비판하는 경우
[마],[사]는 공감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인지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는 공감 작업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오히려 여러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 [마]는 공감의 한계를 특히 그것이 미치는 범위의 차이를 중심으로 논한다.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람에게는 공감할 수 있겠지만, 시공간적으로 먼 곳에 있는 낯선 사람에게까지 두루 공감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공감만 강조하면 구체적 대상이 아닌 추상적 다수의 일반적 문제들은 간과된다. [사]는 공감의 한계를 공감의 한정성과 윤리적 판단의 문제를 중심으로 지적한다. 첫째, 공감은 무한한 것이 아니고 제로섬이므로 내부인을 향한 공감의 증대는 오히려 외부인에 대한 단절감의 증가로 이어진다. 둘째, 공감은 공사 구분을 불분명하게 해 남의 잘못을 덮어주거나 무시하는 잘못된 윤리적 판단이 나오도록 할 수 있다.
공감의 한계를 지적한 이러한 입장에서 [라],[바]는 공감의 가치만 과도하게 부각시켰다고 비판될 수 있다. [라]에 따르면, 사교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이 확장될 수 있어야 하고, 공감의 확장은 사람들 간에 구별이 사라지며 평등 의식이 확산됨을 뜻한다. 공감은 같은 영혼이라는 공동의식이며, 이런 의식이 퍼질수록 신분을 초월하여 서로의 삶이 더욱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사]에서 논의되고 있듯이, 공감은 한정되어 있고 친한 사람과 낯선 사람 간에 차이가 나므로 내부에서의 공감이 외부와의 폭넓은 협력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편 [바]는 공감의 가치를 감정의 영역에서 찾는다. 공감은 사람들 간의 거리를 뛰어넘게 하는 정신의 초능력으로서, 우리는 공감을 통해 다른 사람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의 전염은 친절한 마음을 확산시킴으로써, 인류와 동물이 사회성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마],[사]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의 감정적 자원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경계와 집단을 초월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다. (1,06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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