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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7

김동인 '태형' 전문

태형 김동인 "기쇼오(起床)!" 잠은 깊이 들었지만 조급하게 설렁거리는 마음에 이 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다. 나는 한 순간 화다닥 놀래어 깨었다가 또다시 잠이 들었다. "여보,기쇼야,일어나오." 곁의 사람이 나를 흔든다. 나는 돌아누웠다. 이리하여 한 초 두 초, 꿀보다도 단 잠을 즐길 적에 그 사람은 나를 또 흔들었다. "잠 깨구 일어나소." "누굴 찾소?" 이렇게 나는 물었다. 머리는 또다시 나락의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러디 말고 일어나요. 지금 오방 댕껭(點檢)합넨다." "여보, 십 분 동안만 더 자게 해주." "그거야 내가 알갔소? 간수한테 들키면 혼나갔게 말이지." "에이! 누가 남을 잠도 못 자게 해. 난 잠들은 지 두 시간도 못 됐구레. 제발 조금만 더..." 이 말이 맺기 전에 나의..

문학/소설전문 2021.01.30

김동인 '붉은산' 전문

붉은산 김동인 그것은 여(余)가 만주를 여행할 때 일이었다. 만주의 풍속도좀 살필 겸 아직껏 문명의 세례를 받지 못한 그들의 사이에 퍼져있는 병(病)을 조사할 겸해서 일 년의 기한을 예산하여 가지고 만주를 시시콜콜이 다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XX촌이라 하는 조그만 촌에서 본 일을 여기에 적고자 한다. XX촌은 조선사람 소작인만 사는 한 이십여 호 되는 작은 촌이었다. 사면을 둘러보아도 한 개의 산도 볼 수가 없는 광막한 만주의 벌판 가운데 놓여있는 이름도 없는 작은 촌이었다. 몽고사람 종자(從者)를 하나 데리고 노새를 타고 만주의 촌촌을 돌아다니던 여가 그 XX촌에 이른 때는 가을도 다 가고 어느덧 광포한 북극의 겨울이 만주를 찾아온 때였다. 만주의 어느 곳이나 조선사람이 없는 곳은 없지만 이러한..

문학/소설전문 2021.01.07

김동인 '배따라기' 전문

배따라기 김동인 좋은 일기이다. 좋은 일기라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 우리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 못 할 위엄을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고만 '사람'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장 우리 '사람'의 이해자인 듯이 낮추 뭉글뭉글 엉기는 분홍빛 구름으로서 우리와 서로 손목을 잡자는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 나는, 잠시도 멎지 않고 푸른 물을 황해로 부어 내리는 대동강을 향한, 모란봉 기슭 새파랗게 돋아나는 풀 위에 뒹굴고 있었다. 이날은 삼월 삼질, 대동강에 첫 뱃놀이하는 날이다. 까맣게 내려다보이는 물 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놀잇배들이 타고 넘으며, 거기서는 봄향기에 취한 형형색색의 선율이, 우단보다도 부드러운 봄공기를 흔들면서 날아온다. 그러..

문학/소설전문 2021.01.07

김동인 '발가락이 닮았다' 전문

발가락이 닮았다 김동인 노총각 M이 혼약(혼인하기로 한 약속)을 하였다―. 우리들은 이 소식을 들을 때에 뜻하지 않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습니다. M은 서른두 살이었습니다. 세태가 갑자기 변하면서 혹은 경제 문제 때문에, 혹 은 적당한 배우자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혹은 단지 조혼(결혼 적령기 전에 혼인함)이라 하는 데 대한 반항심 때문에, 늦도록 총각으로 지내는 사람이 많아 가기는 하지만, 서른두 살의 총각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친구들은 아직껏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에게 채근(어떤 일의 내용을 캐어 밝히거나 따지어 독촉함) 비슷이, 결혼에 대한 주의를 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M은 언제나 그런 의논을 받을 때마다(속으로는 매우 흥미를 가진 것이 분명한..

문학/소설전문 2021.01.07

김동인 '광화사' 전문

광화사 김동인 인왕(仁王) 바위 위에 잔솔이 서고 잔솔 아래는 이끼가 빛을 자랑한다. 굽어보니 바위 아래는 몇 포기 난초가 노란 꽃을 벌리고 있다. 바위에 부딪치는 잔바람에 너울거리는 난초잎. 여(余)는 허리를 굽히고 스틱으로 아래를 휘저어보았다. 그러나 아직 난초에는 4,5축의 거 리가 있다. 눈을 옮기면 계곡. 전면이 소나무의 잎으로 덮인 계곡이다. 틈틈이는 철색(鐵色)의 바위로 보이기는 하나, 나 무밑의 땅은 볼 길이 없다. 만약 여로서 그 자리에 한 번 넘어지면 소나무의 잎 위로 굴러 서 저편 어디인지 모를 골짜기까지 떨어질 듯하다. 여의 등뒤에도 2,3장(丈)이 넘는 바위다. 그 바위에 올라서면 무학(舞鶴)재로 통한 커다란 골짜기가 나타날 것이다. 여의 발아래도 장여(丈餘)의 바위다. 아래는 몇..

문학/소설전문 2021.01.05

김동인 '광염 소나타' 전문

광염 소나타 김동인 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혹은 사오십 년 뒤에 조선을 무대로 생겨날 이야기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다만, 이 지구상의 어떠한 곳에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성(可能性) 뿐은 있다― 이만치 알아두면 그만이다. 그런지라. 내가 여기 쓰려는 이야기의 주인공 되는 백성수(白性洙)를, 혹은 알벨트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찜이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또는 호모(胡某)나 기무라모(木村某)로 생각하여도 괜찮다. 다만 사람이라 하는 동물을 주인공 삼아 가지고, 사람의 세상에서 생겨난 일인 줄만 알면…… 이러한 전제로서, 자 그러면 내 이야기를 시작하자. "기회(찬스)라 하는 것이..

문학/소설전문 2021.01.05

김동인 '감자' 전문

감자 김동인 싸움, 간통, 살인, 도둑,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 (사농공상의 제 이위에 드는) 농민이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예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부터 없어졌다. 하나,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론 다른 집 처녀들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감고, 바짓바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 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원에 팔려서 시집이라는 것..

문학/소설전문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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