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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4

염상섭 '만세전(萬歲前)' 전문

만세전(萬歲前) 염상섭 1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던 전해 겨울이다. 세계대전이 막 끝나고 휴전조약이 성립되어서 세상은 비로소 번해진 듯싶고, 세계개조의 소리가 동양 천지에도 떠들썩한 때이다. 일본은 참전국이라 하여도 이번 전쟁 덕에 단단히 한밑천 잡아서, 소위 나리킨(成金), 나리킨 하고 졸부가 된 터이라, 전쟁이 끝났다고 별로 어깻바람이 날 일도 없지마는, 그래도 또 한몫 보겠다고 발버둥질을 치는 판이다. 노래가 끝나기 전 읽기 도전! 동경 W대학 문과에 재학 중인 나는 때마침 반쯤이나 보던 연종시험(年終試驗)을 중도에 내던지고 급작스레 귀국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해 가을부터 해산 후더침(아이를 낳은 뒤에 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생기는 여러 가지 병)으로 시름시름..

문학/소설전문 2021.10.28

염상섭 '두 파산' 전문

두파산 염상섭 1 "어머니, 교장 또 오는군요." 학교가 파한 뒤라 갑자기 조용해진 상점 앞 길을, 열어 놓은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고 등상( 床)에 앉았던 정례가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다본다. 그렇지 않아도 돈 걱정에 팔려서 테이블 앞에 멀거니 앉았던 정례 모친도 저절로 양미간이 짜붓하여졌다. 점방 안에서 학교를 파해 가는 길에 공짜 만화를 보느라고 아이들이 저편 구석 진열대에 옹기종기 몰려섰다가, 교장이라는 말에 귀 번쩍하였는지 조그만 얼굴들을 쳐든다. 그러나, 모시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며 우둥퉁한 중늙은이가 단장을 짚고 쑥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저희끼리 눈짓을 하고 킥킥 웃어버린다. 저희 학교 교장이 나온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어째 이렇게 쓸쓸하우?" 영감은 언제나 오면 하는 버릇으로 ..

문학/소설전문 2021.01.19

염상섭 '표본실의 청개구리' 전문

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 (1) 무거운 기분의 침체와 한없이 늘어진 생의 권태는 나가지 않는 나의 발길을 남포까지 끌어 왔다. 귀성한 후 칠팔 개삭간의 불규칙한 생활은 나의 전신을 해면같이 짓두들겨 놓았을 뿐 아니라 나의 혼백가지 두식하였다. 나의 몸의 어디를 두드리든지 알코올과 니코틴의 독취를 내뿜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피로하였다. 더구나 육칠월 성하를 지내고 겹옷 입을 때가 되어서는 절기가 급변하여 갈수록 몸을 추스리기가 겨워서 동네 산보에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친구와 이야기하면 두세 마디째부터는 목침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무섭게 앙분한 신경만은 잠자리에도 눈을 뜨고 있었다. 두 홰, 세 홰 울 때까지 엎치락뒤치락거리다가 동이 번히 트는 것을 보고 겨우 눈을 붙이는 것이 일 주일 간이나 넘은 뒤에..

문학/소설전문 2021.01.14

염상섭 '두 파산' 전문

두 파산 염상섭 영감은 옆에서 주인댁이 하는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고 골똘히 돈을 세더니, 커다란 검정 헝겊 주머니를 허리춤에서 꺼내놓는다. 옆에 섰는 정례는 그 돈이 아깝고 영감의 푸등푸등한 손까지 밉기도 하여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그래, 이 달치는 또 언제쯤 들리리까? 급히 내가 쓸데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본전까지 해 주어야 하겠는데……" 하고, 아까와는 딴판으로 퉁명스럽게 볼멘 소리를 하였다. 만화를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또 한 번 이 편을 건너다본다. 보얗고 점잖게 생긴 신수가 딴은 교장 선생 같고, 저기다가 양복이나 입고 운동장의 교단에 올라서면 저희들도 움찔하려니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잣돈을 받아들고 나서도 또 조르고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니, 설마 저런 교장이 있으랴 싶어 저희들끼리 ..

문학/소설전문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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