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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대운문 64

공부나 합시다 - 김남주

해석할 수 없는 시입니다. 바깥세상이 시끄러운지라 수학 문제를 풀던 선생님이 잠시 분필을 놓으시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학생 하나 벌떡 일어나 소리 지른다 - 선생님 공부나 합시다 때는 맑고 푸른 가을인지라 영어 문제를 풀던 선생님이 잠시 분필을 놓으시고 우리말 고운 시 하나 읊으려 하자 학생 하나 벌떡 일어나 소리 지른다 - 선생님 공부나 합시다 이런 학생 나중에 무엇이 될까 세상모르고 공부만 하여 남보다 수학 문제 하나 더 빨리 풀어 일등하여 일류대학 들어간들 무엇이 될까 이런 학생 나중에 시집 한 권 아니 읽고 공부만 하여 남보다 영어 단어 하나 더 많이 외어 우등으로 일류대학 들어간들 그런 학생 졸업하고 세상에 나오면 시끄러운 세상에 나와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 말끝마다 입으로 학생은 공부..

문학/현대운문 2022.04.14

싸늘한 이마 - 박용철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듯 눈 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은 새파란 불붙어 있는 인광* 까만 귀뚜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기쁨이랴. 파란 불에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 한 즐검이랴. - 싸늘한 이마. 박용철 *인광 : (1) [화학] 흰인이 공기 중에서 자연 변화에 의하여 발하는 빛. 어두운 곳에서 청백색의 빛이 난다. (2) [물리] 황화칼슘, 플루오린화 칼슘 따위의 물질에 빛을 비추다가 그쳐도 계속 빛나는 현상이나 그 빛.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전통적, 낭만적, 회고적, 애상적 • 어조..

문학/현대운문 2021.12.15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지를 - 김수영, 푸른 하늘을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참여시 • 율격 : 내재율 • 성격 : 현실 참여적. 비판적. 의지적. 상징적 • 표현 : 반복법. 도치법 • 어조 : 남성적 어조 • 구성 : - 1연 : 희생을 치르지 않는 자유는 무의미함. - 2연 : 자유를 위해 비상한 사람은 피의 냄새와 고독함의 의미를 알 것임. - 3연 : 혁명의 고독함을 알 것임. • 제재 : 푸른 하늘, 노고지리 • ..

문학/현대운문 2021.12.11

마음의 태양 - 조지훈

꽃 사이 타오르는 햇살을 향하여 고요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자. 가시밭길 넘어 그윽히 웃는 한 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하노니,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괴로움이 짐짓 웃을 양이면 슬픔도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고난을 사랑하는 이에게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圓光)은 떠오른다.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자. - 조지훈, 마음의 태양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이상적 • 어조 : 의지적 어조 • 표현 : 상징적 시어와 감각적 이미지를 구사 • 특징 : ① 3음보의 전통적 율격을 취하고 있다. ..

문학/현대운문 2021.12.10

도다리를 먹으며 - 김광규

일찍부터 우리는 믿어왔다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거나 하느님이 우리를 닮았으리라고 말하고 싶은 입과 가리고 싶은 성기의 왼쪽과 오른쪽 또는 오른쪽과 왼쪽에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하나씩 나누어 가진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 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을 쌓았다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자유롭게 널려진 산과 들과 바다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고 우리의 몸과 똑같은 모양으로 인형과 훈장과 무기를 만들고 우리의 머리를 흉내내어 교회와 관청과 학교를 세웠다 마침내는 소리와 빛과 별까지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고 이제는 우리의 머리와 몸을 나누는 수밖에 없어 생선회를 안주삼아 술을 마신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먹으며 묘하게도 두 눈이 오른..

문학/현대운문 2021.09.18

신선 재곤이 - 서정주

땅 우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치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

문학/현대운문 2021.08.18

농무(農舞)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農舞) - 신경림 *농무 : 풍물놀이에 맞추어 추는 춤. 꽹..

문학/현대운문 2021.06.24

폭포 -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 나는 맹목(盲目)*의 물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폭포 - 이형기 *단말마 : ‘임종(臨終)’을 달리 이르는 말. 숨이 끊어질 때의 모진 고통. *석탄기 : 고생대 데본기와 페름기의 중간에 있었던 지질 시대의 하나. 거대한 양치식물이 많았고 파충류와 곤충류가 나타났다. *복안 : 곤충(昆蟲), ..

문학/현대운문 2021.06.19

폭포 -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 - 김수영 *나타: 나태, 게으름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지시 • 성격 : 관념적, 상징적, 참여적, 주지적 • 어조 : 의지적이고 강인한 어조 • 제재 : 폭포 • 주제 : 부조리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저항 정신과 의지 • 특징..

문학/현대운문 2021.06.1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으면서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은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핵심 정리 - 갈래: 자유시, 서정시 - 성격: 철학적, 사색적, 문답적, 인본주의적, 전언적(삶의 지혜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 주제 : 시인의 사회적 책무와 서민들의 성실하고 건강한 삶에 대한 긍정, 시와 시인의 본질, 평범한 사람들의 진실된 삶이 진정한 시의 모습이라는 ..

문학/현대운문 202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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