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열공햐 2021. 6. 1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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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으면서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은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핵심 정리

- 갈래: 자유시, 서정시
- 성격: 철학적, 사색적, 문답적, 인본주의적, 전언적(삶의 지혜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 주제 : 시인의 사회적 책무와 서민들의 성실하고 건강한 삶에 대한 긍정,

           시와 시인의 본질, 평범한 사람들의 진실된 삶이 진정한 시의 모습이라는 인본주의적 예술관의 표명  
- 특징 
  1. 일상적 체험으로 시인이 지향해야 할 사명 의식을 드러내며 시상을 전개함 
  2. 묻고 답하는 방식을 활용하여 주제 의식을 드러냄 
  3. 공간의 이동에 따른 화자의 깨달음이 나타남. 

- 시상의 흐름(짜임)
  1~2행 : 시의 개념에 대한 나의 대답 
  3~14행 : 시인의 본질에 대한 나의 생각 


김종삼(金宗三, 1921년 ~ 1984년)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일본 도요시마 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51년 시 <돌각담>을 발표한 후 시작에 전념.

 

  1957년 김광림 등과의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간했다. 이후 초기의 <현대시> 동인으로 활약했으며 <종 달린 자전거>, <시사회>, <다리 밑>, <원색(原色)> 등을 발표했으며,

 

  1968년 문덕수(文德守)·김광림과의 3인 연대시집 <본적지(本籍地)>, 이듬해 첫 개인시집 <십이음계(十二音階)>를 간행했다. 그의 시는 대체로 동안(童眼)으로 보는 순수세계 현대인의 절망의식을 상징하는 절박한 세계로 나눠볼 수 있으며 고도의 비약에 의한 어구의 연결과 시어가 울리는 음향의 효과를 살린 순수시들이다.

 

  1971년 현대시학상, 1983년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북치는 소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

  시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 시는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화자가, 소박한 삶에서 인간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시인임을 답하고 있다. 

 

  시나 예술이 현실과 동떨어져 관념과 추상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시인은 서민들의 건강한 생활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뒤 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의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시의 진술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시인은 유치하다고 생각 할 만큼 단순한 이 진술 속에 인정이 사람다움의 기초라는 인식을 담아냄으로써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자신의 정신 세계를 드러내는 한편, 현실 세계의 비정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했다. 또한 그것이 시인이 행하여야 할 중요한 사회적 책무임을 위회(괴롭거나 슬픈 마음을 위로)적인 방법으로 제시했다. ​ 

  시인에게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새삼스러우면서도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은 곧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지표가 무엇인지를 대답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화자는 자신은 시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겸손의 말로 시작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무교동, 종로, 명동, 남산, 서울역, 남대분 시장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공간을 걸으면서 계속 이어진 상념의 끝에 문득 적절한 대답이 떠오른다. 고생스러운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착하고 인정 넘치게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시인이 아니겠는가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착하고 순정한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대답한 것은 분명 동문서답이었다. 그러나 시인의 대답으로부터 우리는 충분히 답을 유추할 수가 있다. 착하고 순정하게 생활을 영위하는 일상인들이 시인이라면, 그들의 삶 자체가 시가 아니겠는가. 일상인들과는 다른 선택받은 존재로서의 시인이라는 관념, 고급한 언어 예술의 정화가 시라는 관념 등과 결별하고, 시라는 예술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무엇이 진정한 훌륭한 시이며 바람직한 시인의 모습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우회적으로 답변하고 있는 작품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라는 시와 시인의 존재 의미에 대한 질문에 나는 시인이 못 되므로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나는 시인이 아니라서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은 반어적인 표현이다. 시인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화자의 성찰적 자세와 겸허한 태도의 말 속에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빚어내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시를 써 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와 소망이 담겨있다. ​ 

1~2행 :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함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으면서 생각나고 있었다.   

 

  '무교동, 종로, 명동, 남산, 서울역, 남대문 시장'평범한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공간이자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상념에 빠진 화자가 걸어가는 곳이다. '생각나고 있었다'는 표현은 현재진행형으로, 깨달음이 찾아온 그 순간의 특별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표현이다. 

3~6행 :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 서민들의 삶 속에서 답을 찾음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은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에서 도치법이 사용되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에서 인간답고 슬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마치 시인의 조건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알파'그리스어 'a'로 출발, 기초, 근원을 상징한다. 그리고 '고귀한 인류, 영원한 광명이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김종삼 시인은 세상의 근원인 서민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예술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서민들의 삶을 시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그들의 삶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문학평론가는 그를 진정한 시인이라고 한 모양이다.

7~15 : '나'가 생각하는 진정한 시인

 

 

보헤미안 시인 김종삼 

  미학주의자 또는 순수 시인으로서의 위치가 밝혀져도 그의 전모 가운데 채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김종삼에게는 김현이 일찍이 통찰력을 가지고 '방랑'이라고 이름 붙인 어떤 것이 있다. 보헤미아니즘(부르주아 사회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방랑하며 사는 보헤미안들의 삶의 풍조)은 1950년대 몇몇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풍조였다.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김관식들로 이루어진 예술가 무리는 1960년대에 들어와 내면 의식을 탐구하는 그룹과 현실 참여를 하는 그룹이라는 두 벽에 부딪치게 된다. 김종삼이 한동안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도 어쩌면 여기서 찾아야 할는지 모른다. 소시민주의자들과 대시민주의자들 틈에 무시민주의자가 설 땅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희귀한 보헤미안 생존자인 것이다. 

- 황동규, 「잔상의 미학」에서- 


  김종삼은 시인이다. 그가 시인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를 시인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정도로, 김종삼은 시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표 시인이 자신은 시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시가, 바로 이 시다. 한창 시를 쓰고 있는 중에도 나는 시인이 못 된다고 말하는 시가, 바로 이 시다. 무슨 소리인지, 처음에는 의아하다. 그렇지만 시를 읽으면서 차츰 그 말뜻을 이해하게 된다. 게다가 조금씩 이해하면서 점차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면서 시를 잘 모르겠다는 그의 말은 참으로 겸손하다. 그런데 김종삼 시인은 겸양을 드러내려고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그가 참시인인 것이 이 대목에서도 드러나는데, 그는 시에 대해서 다 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들먹거리지도, 잘난 척 교만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는 항상 배우는 자세로, 더 정진하는 자세로 시를 높이고 몸을 낮추었다.

  이 위대한 시인은 부족하고 잘 모르는 자신보다 더 훌륭하고 빛나는 진짜 시인들이 있다고 말한다.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지만 순하고 명랑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에 허다하게 많지만 하나같이 고귀한 저 사람들. 김종삼 시인은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대단하고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라며 찬탄한다. 시인이 뭔가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면, 저 평범한 모든 이들이 가장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며 고개를 숙인다.

  선거철이다 보니 이 시가 더욱 마음에 들어온다. 이제 와서 김종삼 시인을 정치계로 모셔올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는 소박하게 바란다. 안 유명하고 덜 가졌으며 선한 사람들,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최고라는 생각, 이런 생각이 실현되는 좋은 정치를 말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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