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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국 3

전상국 '우상의 눈물' 전문

우상의 눈물   전상국         학교 강당 뒤편 으슥한 곳에 끌려가 머리에 털나고 처음인 그런 무서운 린치를 당했다. 끽소리 한 번 못한 채 고스란히 당해야만 했다. 설사 소리를 내질렀다고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 쫓아와 그 공포로부터 나를 건져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토요일 늦은 오후였고 도서실에서 강당까지 끌려가는 동안 나는 교정에 단 한 사람도 얼씬거리는 걸 보지 못했다. 더우기 강당은 본관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주 까마득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재수파(再修派)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들은 무언극을 하듯 말을 아꼈다. 그러나 민첩하고 분명하게 움직였다. 기표가 웃옷을 벗어 던진 다음 바른손에 거머쥐고 있던 사이다   병을 담벽에 깼다. 깨어져 나간 사이다병의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그의 걷어올린..

문학/소설전문 2024.12.17

전상국 '우리들의 날개' 전문

우리들의 날개 전상국 내가 국민학교 이학년 때 두호가 태어났다. 여덟 살 터울의 동생을 본 것이다. 두호의 출생은 우리 식구들뿐만 아니라 가깝고 먼 친척은 물론 이웃 사람들까지 떠들썩하게 했다. 칠대 독자 집안에 사내아이가 또 하나 태어난 이 경사야말로 결코 예삿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뜻하지 않은 기쁨 뒤에는 으레 그 기쁨이 무엇인가에 의해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위구심이 일게 마련이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게 마련이고 드디어는 그 두려움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처음의 그 기쁨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뒤이기 예사다. 우리집의 경우가 꼭 그랬다. 그때 아직 정정한 모습으로 살아 계셨던 할머니는 둘째 손자를 본 기쁨으로 동네 노인들 앞에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어 보였다. 하..

문학/소설전문 2021.02.26

전상국 '동행' 전문

동행(同行) 전상국 발목까지 빠져드는 눈길을 두 사내가 1)터벌터벌 걷고 있었다. 우중충 흐린 하늘은 곧 눈발이라도 세울 듯, 이제 한창 밝을 정월 보름달이 2)시세를 잃고 있는 밤이었다. 앞서서 걷고 있는 사내는 작은 키에 3)다부져 보이는 체구였지만 그 걸음걸이가 어딘지 모르게 허전허전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이 사내로부터 두서너 걸음 뒤져 걷고 있는 사내는 4)멀쓱한 키에 언뜻 보아 맺힌 데 없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앞선 쪽에 비해 그 걸음걸이는 한결 정확했다. 큰 키에 사내가 5)중절모를 눌러 쓰고 밤색 6)오버에 푹 싸이다시피 방한(防寒)에 빈틈이 없어 보이는가 하면 키 작은 사내는 희끔한 와이셔츠 위에 다만 양복 하나를 걸쳤을 뿐, 그 차림새가 퍽도 7)을씨년스러워 보였다. 그 양복이라는 것도..

문학/소설전문 202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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