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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6

김유정 '봄봄' 전문

봄봄 김유정   "장인님!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 하고 꼬바기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 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허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빙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

문학/현대산문 2022.01.28

김유정 '떡' 전문

떡 김유정 원래는 사람이 떡을 먹는다. 이것은 떡이 사람을 먹은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즉 떡에게 먹힌 이야기렷다. 좀 황당한 소리인 듯싶으나 그 사람이라는 게 역시 황당한 존재라 하릴없다. 인제 겨우 일곱 살 난 계집애로 게다가 겨울이 왔건만 솜옷 하나 못 얻어 입고 겹저고리 두렁이로 떨고 있는 옥이 말이다. 이것도 한 개의 완전한 사람으로 칠는지! 혹은 말는지! 그건 내가 알 배 아니다. 하여튼 그 애 아버지가 동리에서 제일 가난한 그리고 게으르기가 곰 같다는 바로 덕희다. 놈이 우습게도 꾸물거리고 엄동과 주림이 닥쳐와도 눈 하나 꿈뻑 없는 신청부(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라 우리는 가끔 그 눈곱 낀 얼굴을 놀릴 수 있을 만치 흥미를 느낀다. 여보게 이 겨울엔 어떻게 지내려나. 올..

문학/소설전문 2021.04.09

김유정 '땡볕' 전문

땡볕 김유정 우람스레 생긴 덕순이는 바른팔로 왼편 소맷자락을 끌어다 콧등의 땀방울을 훑고는 통안 네거리에 와 다리를 딱 멈추었다. 더위에 익어 얼굴이 벌거니 사방을 둘러본다. 중복 허리의 뜨거운 땡볕이라 길 가는 사람은 저편 처마 밑으로만 배앵뱅 돌고 있다. 지면은 번들번들히 달아 자동차가 지날 적마다 숨이 탁 막힐 만치 무더운 먼지를 풍겨 놓는 것이다. 덕순이는 아무리 참아 보아도 자기가 길을 물어 좋을 만치 그렇게 여유 있는 얼굴이 보이지 않음을 알자, 소맷자락으로 또 한번 땀을 훑어본다. 그리고 거북한 표정으로 벙벙히 섰다. 때마침 옆으로 지나는 어린 깍쟁이에게 공손히 손짓을 한다. “얘! 대학병원을 어디루 가니?” “이리루 곧장 가세요!” 덕순이는 어린 깍쟁이가 턱으로 가리킨 대로 그 길을 북으로..

문학/소설전문 2021.02.26

김유정 '만무방' 전문

만무방 김유정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아람드리 로송은 삑삑이 느러박엿다. 무거운 송낙을 머리에 쓰고 건들건들. 새새이 끼인 도토리, 뼛, 돌배, 갈입들은 울긋불긋. 잔듸를 적시며 맑은 샘이 쫄쫄거린다. 산토끼 두놈은 한가로히 마주 안자 그물을 할짝거리고. 잇다금 정신이 나는 듯 가랑입은 부수수, 하고 떨린다. 산산한 산들바람. 구여운 들국화는 그 품에 새뜩새뜩 넘논다. 흙내와 함께 향깃한 땅김이 코를 찌린다. 요놈은 싸리버섯, 요놈은 입 썩은 내 또 요놈은 송이-----아니, 아니 가시넝쿨속에 숨은 박하풀 냄새로군. 응칠이는 뒷짐을 딱지고 어정어정 노닌다. 유유히 다리를 옴겨노흐며 이나무 저나무 사이로 호아든다. 코는 공중에서 버렷다 오므렷다, 연실 이러며 훅, 훅 굽웃한 한 송목미테 이르자 그는 ..

문학/소설전문 2021.01.07

김유정 '동백꽃' 전문

동백꽃 김유정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드득 푸드득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 점순네 수탉(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 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며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

문학/소설전문 2021.01.05

김유정 '금따는 콩밭' 전문

금따는 콩밭 김유정 땅 속 저 밑은 늘 음침하다. 고달픈 간드렛불 맥없이 푸르께하다. 밤과 달라서 낮엔 되우 흐릿하였다. 거칠은 황토 장벽으로 앞서 좌우가 콕 막힌 좁직한 구덩이, 흡사히 무덤 속같이 귀중하다. 싸늘한 침묵, 쿠더부레한 흙내와 징그러운 냉기만이 그 속에 자욱하다. 곡괭이는 뻔찔 흙을 이르집는다. 암팡스러이 내려쪼며, 퍽 퍽 퍽…… 이렇게 메떨어진 소리뿐, 그러나 간간 우수수하고 벽이 헐린다. 영식이는 일손을 놓고 소맷자락을 끌어당기어 얼굴의 땀을 훑는다. 이놈의 줄이 언제나 잡힐는지 기가 찼다. 흙 한 줌을 집어 코밑에 바싹 들이대고 손가락으로 샅샅이 뒤져본다. 완연히 버력은 좀 변한 듯싶다. 그러나 볼통버력이 아주 다 풀린 것도 아니었다. 밀똥버력이라야 금이 나온다는데 왜 이리 안 나오..

문학/소설전문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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