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농무(農舞) - 신경림

열공햐 2021. 6. 2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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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農舞) - 신경림 

 

*농무 : 풍물놀이에 맞추어 추는 춤. 꽹과리, 북, 태평소, 징 따위의 소리에 맞추어 벙거지에 매단 털이나 띠를 빙빙 돌리며 흥겹게 춘다.

*꺽정이 : 조선 명종 연간 구월산을 무대로 활동한 백정 출신의 의적인 임꺽정을 가리킴 (민중적 영웅의 상징) 
*서림이 : 임꺽정의 모사였으나 결국 권력에 붙어 임꺽정을 배신한 인물 
*쇠전 : 우시장, 소를 사고 파는 곳 
*도수장 : 도살장(屠殺場). 삶의 울분 토로의 분위기 연출 

 

자료: 사물놀이교육원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농민시, 참여시 
• 성격 : 사실적, 묘사적, 현실 비판적, 참여적

• 어조 : 비탄의 애절한 어조. 울분과 한탄의 어조 
• 제재 : 농무(농악놀이) 
• 주제 :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한, 농민들의 고뇌와 비애, 소외되고 억압된 삶에 대한 분노와 절망 


• 특징 :
 ① 공간의 이동에 따라 시상 전개가 이루어짐

    *운동장→소줏집→장거리→쇠전→도수장(점점 빨라짐, 신명의 고조 = 울분의 고조)  

    *운동장(한탄, 고달픔, 허탈, 쓸쓸) ⇨ 소줏집(절망, 서글픔, 답답, 원통) ⇨ 장거리(서글픔, 분노, 울분) ⇨ 쇠전(울분, 한) ⇨ 도수장(신명:역설)
 ② 직설적 표현으로 감정을 토로해 현실에 대한 화자의 정서를 드러냄.
 ③ 민요적 가락이 두드러지고,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심리를 반어적으로 표출해 부각시킴.
 ④ 스토리적 요소의 재미와 농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은 사실적 수법의 배합

 ⑤ 1970년대 농민시(참여시) 


• 구성 :
 1~6행: 농무가 끝난 뒤 답답하고 공허한 마음을 술로 달램 
 7~10행: 장거리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농악패에 대한 예전과는 다른 냉담함 
 11~14행: 피폐한 농촌 현실에 대한 울분과 좌절감
 15~20행: 신명난 농무를 통해 달래는 삶의 고뇌와 울분 토로

 

• 농무 : 흥겨움과 생명력 대신 농민들의 울분과 한을 떨쳐 버리려는 몸짓. 세상을 향한 비판과 저항을 발산하려는 행위 
• 출전 : <창작과 비평> (1971)



신경림(申庚林, 1936년 4월 6일 ~ )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본관은 아주 본명은 신응식(申應植). 충청북도 충주시(당시 충청북도 중원군)에서 노은면 연하리 상입장에서 면서기를 지낸 아버지 신태하(申泰夏)의 아들로 태어났다. 

 

  충주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 1955년 《문학예술》 잡지에 〈갈대〉, <낮달>, <석상>를 비롯한 시들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한때 건강이 나빠서 고향에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고, 다시 서울로 와 잡지사·출판사 등에 취직해 지내며 10년 동안 절필했다.

 

  1965년 겨울에 동료 시인이자 절친이었던 김관식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동안 생활 형편이 어려워 동네 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면서 끼니를 이어야 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원격지>, <산읍기행>, <시제> 등을 발표한다. 시학(詩學) 해설서인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를 출간하며 이미 작고한 국내 시인들과 생존해 있는 시인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197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농무(農舞)〉,〈전야(前夜)〉,〈서울로 가는 길〉 등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면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3년 만해문학상, 1981년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에 부임했다. 

 

  1988년작 '가난한 사랑 노래'의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라는 시귀는 본래 '탱크 바퀴 굴러가는 소리'였지만 대한민국 제5공화국 군사정부의 검열을 의식한 출판사의 만류로 수정했다고 한다. 

 

  재출발 이후 그의 시들은 '시골의 흙냄새에 묻어서 풍기는 생활의 땀냄새와 한(恨)과 의지 등'이 짙게 풍겨 이른바 민중시인의 이름을 얻게 했다. 농민문학·민중문학 등을 주제로 평론들도 발표하였다.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 대상 중 한 사람이 되어 노태우 정부로부터 감시당하였는데, 이는 1990년 10월 4일 외국어대 재학 중 민학투련 출신으로 보안사로 연행돼 프락치로 수사에 협조해오다 탈영한 윤석양 이병의 폭로에 의해 밝혀졌다.


  한국 문학계의 원로인지라 과거 한국 문단에서 활동했던 여러 유명한 시인과 작가들과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그 중에서는 천상병이나 김관식, 조태일, 민병산, 황석영 등이 있다. 특히 천상병이나 김관식 등은 서로 구수한 말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했으며 세 사람이 하나같이 알아주는 주당들이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전에 일제강점기 시기에 겪었던 어린 시절의 일화나 문단에서 사귀었던 여러 문학가들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오늘날의 시점으로 봐도 심히 기이한 각종 기행 등을 재미난 입담으로 다룬 수필집을 내어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수필집과 회고록을 종합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하였는데 신경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 기행에 있어서는 당대 문단의 1,2위를 다투던 천상병이나 김관식의 일화는 배꼽을 잡게 할정도로 웃기고도 기이하다. 한편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학창시절을 다룬 파트에서는 당시의 어수선한 사회상은 물론이고, 자신이 저질렀던 비행이나 창피스러운 일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소개하고 있어 이 역시 재미있다. 중학생때는 백석의 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시인 고은과 절친한 사이다. 고은이 만든 진보 문학 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고은을 보좌하며 행동대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1989년에는 고은과 함께 방북을 추진하여 판문점으로 가다가 경찰에게 저지당하여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또 '고은 문학의 세계' 등의 저서를 통해 고은의 업적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작업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해 빼도박도 못 하는 신경림의 흑역사로 남아있다.

 

저서에는 《농무(農舞)》(창작과비평사, 1973), 《새재》(창작과비평사, 1979), 《달 넘세》(창작과비평사, 1985), 《남한강》(창작과비평사, 1987), 《가난한 사랑노래》(실천문학사, 1988), 《길》(창작과비평사, 1990), 《쓰러진 자의 꿈》(창작과비평사, 1993),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창작과비평사, 1998), 《목계장터》(찾을모, 1999), 《뿔》(창작과비평사, 2002), 《신경림 시전집》(창작과비평사, 2004), 《낙타》(창비, 2008) 가 있다.(위키)

 

 

 

이해와 감상

  농무(農舞)는 원래 농촌에서 일을 끝낸 다음 노동의 피로를 풀고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행해지던 놀이로 농민들이 추는 춤이면서 동시에 농민들이 보고 즐기는 춤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1960~70년대의 비극적 농촌 현실과 농민의 울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소재삶의 한을 풀어 내는 집단적인 한풀이의 성격을 지닌다. 

 

  농무는 시인의 첫시집 <농무>(1973)의 표제가 된 작품으로, 1970년대 초반 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농촌 공동체의 모습을 그들의 놀이인 농무의 신명에서 찾고 있다.

 

시인은 이미 신명나지 않는 농촌 생활과 이를 안타깝게 지키려는 농민들의 몸짓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는데, 시의 주인공들의 감정은 서러움에서 흥겨움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흥겨움이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신명을 위함이 아닌 서러움을 이기기 위한 농무이기에 시를 읽다보면 절절한 서러움만 더 커지게 된다. 

  70년대 농민시의 대표적 작품인 이 시는 피폐한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울분을 공간적 이동을 통해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텅 빈 운동장, 철없는 쪼무래기들만 따라나서는 장거리에서의 농무, 채산성이 없는 농사 등은 농민의 소외감과 울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시적 상황 설정이다. 그런데 마지막에서 그 자조와 한탄이 '신명'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흥겨움의 표현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분노의 감정이다. 뿌리 깊은 좌절감과 울분을 농무의 신명이라는 역설적 상황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불우한 조건을 넘어선 흥겨운 축제를 표방하고 있는 이 시의 표면적 주제는, 뒷면에 숨겨진 당대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다분히 문학적인 방식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우리는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울분과 한의 정서에 공감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한’과 ‘신명’은 서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한에 신명이 섞이기도 하고, 신명에 한이 끼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또, 그 둘이 한 덩어리로 얽히기도 한다. 이 시에서도 한과 슬픔을 ‘신명’이라 표현하며 농무를 통해 농민들의 한과 슬픔을 표출하면서 또한 그것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응 방식은 단순한 체념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암담함과 울분을 이겨내기 위한 처절한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1960~70년대에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국가 경제의 중심은 도시, 공업이 차지하게 되었고, 농촌은 근대화의 흐름에서 소외되었다. 정부는 쌀값의 인상을 강력히 억제했는데, 도시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쌀의 가격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으로 농약 값이나 비료 값은 해마다 올라가는데 농가의 수익은 전혀 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 농촌 사회가 와해되었으며, 도시로 간 농민들은 도시 빈민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당시 이러한 농촌 사회의 실상을 반영한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이 시 중반에는 소설 ‘임꺽정’의 등장인물인 꺽정이와 서림이가 등장한다. 이들의 등장은 1960~70년대 농촌의 현실과 조선 명종 때의 현실을 비유적으로 결합시키는 이질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이 시의 문맥 속으로 임꺽정 이야기를 끌어들임으로써 60년대의 현실과 조선 시대 현실 사이에 대화 관계를 설정하게 한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 때 의적의 우두머리이며 서림이는 임꺽정의 모사(남을 도와 꾀를 내는 사람)이다. 조선시대 봉건제의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남다른 힘과 재주를 지녔지만 신분적 한계 때문에 그 힘과 재주를 적절히 쓸 수 없었던 그들의 울분과 한은 그들로 하여금 도둑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임꺽정의 이야기는 이 시를 단순한 농무에 대한 묘사로 만들지 않고 농무로 하여금 60년대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소외된 농촌, 농민들의 울분을 표현하는 춤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즉, 이 시에 임꺽정의 이야기를 끌어들임으로써 1960~70년대 농민의 현실과 수백 년 전 조선 시대의 농촌 현실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 모순에 저항하는 ‘임꺽정’을 통해 농민들의 적극적인 저항 의지를 나타내려는 의도도 드러내 준다.

 

*1970년대의 소설의 특징

  1970년대는 우리 역사에서 진보와 발전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거론된 시대이다. 사회적으로 전쟁의 상처가 아물고, 경제적으로는 중진국으로의 진입과 산업화의 가속력이 있었다. 삶의 여건도 많이 변화하여 농촌 사회가 해체되고, 농민들이 산업 노동자로 유입되었으며, 이에 따른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말미암아 도시 빈민이 생성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은 문학에도 영향력을 행사해 우리 소설에 풍성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1) 현실적 삶에 초점을 맞춘 양상을 드러냄

(1) 농촌 공동체의 해체와 근대화 비판
'관촌 수필, 해벽, 우리 동네(이문구), 자랏골의 비가, 암태도(송기숙), 쌈짓골(김춘복), 낙월도, 신궁(천승세), 그 바다를 끓며 넘치며(한승원) 등.

(2) 노동 현실의 양상
'삼포 가는 길, 객지(황석영),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 날개 또는 수갑, 창백한 중년(윤흥길),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 등

(3) 사회 병리적 현상을 상징적 다룬 소설
'퇴원, 병신과 머저리, 황홀한 실종(이청준), 실금(박태순), 이명(정종명), 견습 환자(최인호), 어릿광대의 치통(정연희), 엄마의 말뚝2(박완서), 동통(안장환), 파편(이동화), 어디가 아프십니까(김주영), 벌받는 사람들(한승원), 절망과 기교(오탁번), 개안 수술(문순태), 순이 삼촌(현기영), 직선과 독가스(임철우)' 등
  

2) 도시형 소설의 등장

 '도시의 흉년, 서울 사람들(박완서), 도시의 늪, 장난감 도시(이동화), 도시의 자전(신상웅), 돼지 꿈(황석영), 타인의 방(최인호), 유리의 방(서영은), 영자의 전성 시대(조선작), 서울 사람들(최일남), 고려장(전상국), 달팽이의 꿈(이문열)' 등
  

3) 역사 소설의 등장

 '북간도(안수길), 토지(박경리), 조선 총독부(유주현), 혁명(서기원), 들불, 연개소문, 임꺽정(유현종), 장길산(황석영), 이성계, 임진왜란(김성한), 객주(김주영), 지리산(이병주)' 등
  

4) 자유와 민주의 문제에서 자주의 문제로의 확산

 '분노의 일기(신상웅), 아메리카(조해일), 해벽(이문구), 황구의 비명(천승세), 탑, 낙타 누깔, 몰개월의 새(황석영), 머나먼 쏭바강, 인간의 새벽(박영환)' 등
  

5) 자아와 세계의 불화에 대한 낭만적 인식을 기저로 한 작품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최인호), 해빙기의 아침(한수산), 직녀, 불의 강, 꿈꾸는 새(오정희), 야만인(서영은)' 등

 

  시는 농촌의 절망과 농민의 울분을 고발, 토로하고 있으면서도, 그 울분이 선동적이거나 전투적인 느낌으로 발전되지 않는다. 그것은 '날라리를 불'고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드'는 '신명'으로 끝나는 작품 구조에 의해서 교묘한 역설과 시적 운치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울분과 절망을 정반대의 '신명'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통해 그들의 아픔이 역설적으로 고양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연 구분이 없는 20행 단연시 구조로 내용상 4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1단락은 1∼6행으로 농무가 끝난 뒤 농민들이 '소줏집'에서 답답하고 고달픈 심정을 술로 달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로 시작되는 1행은, 농무가 두렛일의 흥겨움보다는 농민들의 자조적인 한탄과 원한의 몸짓임을 나타내기 위한 예고의 의미와 하강적 이미지가 느껴진다. 청각적 심상과 시각적 심상을 이용하여 시의 분위기를 알려 주는 대목으로, 여기서 막이 내렸다는 시 내용을 고려해 보았을때 농촌사회가 막이 내렸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가설무대'는 임시로 만들어진 무대로 쉽게 해체가 가능하다. 무대가 있었던 '텅빈 운동장'공허감 소외감상징하는데, 농무가 끝난 뒤의 '텅 빈 운동장'이 주는 공허감은 이젠 더 이상 농무에 신명을 느낄 수 없는 농민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자, 이런 현실에 대한 공연자의 안타까움과 공허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한' 그들은 텅 빈 마음과 고달픈 삶을 그저 술로 달랠 뿐이다. 

 

  '분이 얼룩진 얼굴'에서 '분' '농무 분장'과 '분한 마음'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답답하고 고달프게'라는 표현을 통해 시적화자의 정서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2단락은 7∼10행으로 농악패에 대한 농민들의 냉담한 반응을 통해 예전과 달라진 농촌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옛날의 풍습대로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 보아도, 신명나게 놀아 주던 어른들 대신, '쪼무래기들'만 악을 쓰며 따라붙거나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 철없이 킬킬대는' 처녀애들뿐이다.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은 젊은 일꾼들이 떠나고 남은 농촌 사람들을 의미한다. 시인은 점점 무너져 가는 농촌 현실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룟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3단락 11∼16행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는 시의 발상 동기, 현실에 대한 농민들의 인식으로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나와 자신의 울분을 춤으로 삭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춤을 추는 그들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저항하거나, '서림이처럼 해해대'는 어리석고 나약한 소시민의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하며 자조적 한탄과 울분에 빠져 삶을 자학하거나 체념한다.

 

  임꺽정과 서림은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이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한 까닭은 농민들의 한과 슬픔이 다만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과 함께 해 온 역사적인 것임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배려로 볼 수 있다.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라는 구절에서는 당시 농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4단락은 17∼20행으로 자신의 한과 고뇌를 신명난 춤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이다.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이르렀을 때, 농민들의 현실에 대한 분노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로 극에 달하지만, 오히려 '날라리를 불고' 덩실덩실 '어깨를 흔드'는 신명으로 바뀐다. 도수장은 도살장을 말한다. 이 곳의 살의(殺意)는 농민들의 분노가 섬뜩할 정도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농민들은 그러한 분노를 농무의 신명나는 몸짓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이는 자신의 한과 슬픔을 역설적으로 고양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는 반어적 표현이자 역설적 상황으로 농민의 분노가 심화(내재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농민들이 추는 춤은 그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절망, 저항의 강한 몸짓이며, 자신들의 고뇌와 한의 뜨거운 발산임을 알 수 있다.(상황적 역설로 문장은 역설법이 아님)   


  이 시는 생활 터전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안타까운 몸부림을 농촌의 일상 언어를 통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농민들의 정취와 정감을 물씬 느끼게 해 주는 한편, 농민들의 격한 감정을 직접적인 서술로 표출하면서도 농무의 동작이나 농악기의 소리로 적절히 제어함으로써 탄탄한 서정성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가난과 절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농민과 소외된 농촌을 상기시켜 주는 뛰어난 문학성으로 말미암아 이 시는 제1회 만해 문학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현재 '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나, 시를 읽으면 70년대 농촌을 살아가는 농민의 답답한 심정과 울분, 비애가 그대로 전해온다. 이는 직접 내게 말을 건네는 듯한 1인칭 화자의 독백체로 이 시가 쓰여졌기 때문에 더 큰 감동을 준다.

 

<자료: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지학사,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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