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우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치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 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천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道)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 수염의 조 선달 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 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살이를 하러 간 거여……”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 맷돌*을 단단히 매어 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 거라”던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조 선달 영감님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 서정주, 신선재곤이. <질마재 신화>(1975)
*재곤(在坤) : 땅에 있다(있을 재, 땅 곤), 신선이 땅에 있다는 뜻으로 장애인도 땅에 살 권리가 있다는 의미
*절다: 짜다
*질마재 : 안장을 닮은 고개가 있는 시인의 고향 마을
*뒤대다1 : 1. 바로 말하지 아니하고 빈정거리는 태도로 비뚜로 말하다. 2. 거꾸로 가르치다.
*뒤대다2 : 1.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계속하여 돌보아 주다. 2. 학비 따위의 뒷돈을 계속 내주다.
*알음 : 1. 사람끼리 서로 아는 일. 2. 지식이나 지혜가 있음. 3. 신의 보호나 신이 보호하여 준 보람.
*연자 맷돌 : 소가 돌리는 큰 맷돌
*불가불 : 부득불 하지 아니할 수 없어, 마지못해
핵심 정리
• 갈래 : 산문시, 서정시
• 성격 : 낭만적, 토속적, 신화적
• 주제 : 장애인을 보살피는 질마재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 전통 사회의 공동체 의식
• 특징 :
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
② 산문 형식의 이야기하는 듯한 담담한 어조
③ 인물의 죽음을 부활과 재생으로 바라보는 신화적 상상력이 드러남
④ 전통적인 한국인의 가치관을 형상화
⑤ 설화적 요소를 활용하여 서사적 구성을 취함
⑥ 인물들의 대화를 직접 삽입하여 주제 형상화에 기여함
• 구성 :
1행: 마을 사람들이 앉은뱅이 재곤이를 돌봄.
2행: 마을 사람들이 앉은뱅이 재곤이를 돌보는 이유
3행: 재곤이가 사라짐.
4행: 재곤이가 사라진 이유에 대한 조 선달 영감의 해석
5행: 마을 사람들이 조 선달 영감의 해석에 동조함.
서정주(徐廷柱, 1915년 5월 18일 ~ 2000년 12월 24일)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교육자이다. 토속적,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쓴 한국의 이생명파 시인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이며,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미당(未堂), 궁발(窮髮), 뚝술이다. 탁월한 시적 자질과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해방 전후에 걸쳐 한국 문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친일 및 반인륜 행적과 신군부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역사적 평가에 있어 논란의 대상이다.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출생하였고 전라북도 부안에서 성장하였다. 서정주의 아버지는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다. 이를 두고 서정주 본인은 <자화상>에서 "애비는 종"이었다고 고백했다. 노비의 자식으로 서럽기만 했다던 서정주는 대를 이어온 노비의 신분을 벗어던짐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고 노비의 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자 그리고 내면에서 솟아나는 문학적 욕구를 펴고자 했다. 서정주는 14세에 서울로 상경해 중앙보통학교에 다녔다.
1933년 겨울, 개운사 대원암에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 밑에서 수학했다.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36년에 김광균·김동리·오장환 등과 함께 잡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전시 체제 때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 태평양 전쟁과 카미카제 같은 전쟁범죄들을 찬양하며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글을 통해 친일 행위를 하였다. 훗날 이 전범 행위가 불거지자 서정주는 이때 전범행위를 종천순일파라고 자칭하며 일본에게 친일행위는 했으나 받은 대가가 없다는 식으로 변명하다가, 나중에 자서전에서 그의 친일 행위에 대하여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라는 식으로 변명한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으며, 당시 총 11편의 친일 작품명이 공개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해방 후에는 당시 문학계를 풍미하던 좌익 계열의 문학적 흐름에 반대하여, 이른바 순수 문학의 기치를 내걸고 우익 성향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좌익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과 대결하였다. 서라벌예술대학과 동국대학교 등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역임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고, 다수의 문학 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줄곧 한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 강점기뿐만 아니라, 군부 독재와 유신독재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문학적 명성과는 별도로 그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그의 고택이 2000년대 후반 정부에 의해 복원 전 잠시 폐가로 버려져 있었다.
2000년 12월 24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현재 그의 고향 고창군에 미당문학관과 그가 살았던 서울 관악구에 미당이 살았던 집이 있다. 실제로 관악구와 고창군은 미당의 인연을 계기로 자매결연도시로 있다.
작품 해제
땅 우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질마재'는 시인의 출생지인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있는 마을 선운리의 속칭으로, 그 모양이 길마(수레를 끌 때 말이나 소 등에 안장같이 얹는 제구로 '질마'는 구개음화가 안된 상태)와 같은 형국으로 된 고개와 같다 하여 '질마재'로 부르는 것이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치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에서는 '질마재 사람들'의 인과응보적인 사고방식과 하늘을 두려워하는 순수함을 보여 준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 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천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에서는 구체적 시간이 드러나지 않은 설화적 분위기와 보편성이 드러난다.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에서 실종, 소외자, 낙오자에서 신적 존재로서 격상 되는 계기가 되며,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 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무거운 모습만이'에서는 앉은뱅이 재곤 힘든 삶의 모습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재곤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무거웠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거북은 예로부터 신령하게 여겨 온 동물로 장수를 의미하기도 하고 우주적 원리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道)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 수염의 조 선달 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 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살이를 하러 간 거여……”
지혜을 갖춘 조선달 영감은 천벌을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재곤이가 신선이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긍정적 인식을 심어 준다. 재곤을 신령스러운 거북과 연결하여 마을 사람들이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와 죽음을 부활로 보는 신화적 상상력을 연결하고 있다.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 맷돌*을 단단히 매어 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 거라”던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조 선달 영감님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 거라.'를 통해 재곤이의 죽음을 예상하던 마을 사람들도, 재곤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조 선달' 영감의 말대로 재곤이가 두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신선살이'를 갔다고 믿게 되는데, 재곤이가 죽어서 좋은 곳에 갔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신화적 상상력에 더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해와 감상
<신선 재곤이>는 1975년에 출간된 시집 『질마재 신화』에 실린 서정주의 작품으로, ‘앉은뱅이’인 재곤이를 돌보아 주는 질마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그린 시이다. 이야기체의 서사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장르는 자유시이지만 산문체로 쓰여 시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구성을 보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고 있으며, 인물의 죽음을 부활과 재생으로 인식하는 신화적 상상력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장애를 가진 재곤이를 위해 늘 끼니와 추위를 견딜 옷, 불을 뒤대어 주던 마을 사람들은 어느 날 재곤이가 없어졌다. 질마재 마을의 인정이 바닥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어서 마을사람들은 천벌을 받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신선도*에도 지혜가 있다는 조 선달 영감이 재곤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신선살이를 하러 하늘에 갔다며 마을 사람들의 긍정적 인식을 이끈다. 이러한 말에 마을 사람들은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의 죽음을 신선살이를 간 것으로 긍정한다. 이는 바람직한 삶의 귀결을 바라는 선인들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선도(神仙道) :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생긴 것으로 신선이 되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신선도를 믿는 사람들은 명산(名山) 수행을 통해서, 또는 불사(不死)의 약을 복용함으로써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동해 가에 삼신산(三神山;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 있다는 생각, 사람들을 보내 불사의 약을 구하려 했던 진시황의 이야기 등은 이와 관련된 것이다.
이처럼 서정주의 시 속에서는 초월적 존재의 신뿐만 아니라,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신적인 속성을 가지고 신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독특한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서정주가 세계와 우주를 범신론적, 범재신론적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정주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서로 돕고 보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시를 통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삶의 고통을 감당했을 재곤이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삶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 시는 비참한 삶이 신화적 상상력을 통하여 건강하게 재생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렇게 죽음을 부정적으로나 슬픔으로 남겨 두지 않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죽음이 다른 의미의 재생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에 대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에게 날개를 달 수 없는 현실적인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극한적인 한계 상황에서 날개를 달 수 없다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자포자기를 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다만 '신선 재곤이'라는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는바, 신선에 대한 재치 있는 상상력을 통해 죽음을 존재의 끝으로 여기지 않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민족 등과 같은 공동체 집단 내부에서 형성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구비 문학인 설화에는 전승 집단의 언어와 세계관이 잘 담겨 있어 전통적인 세계관 또는 초월적 세계관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래서 많은 문학 작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설화 형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설화의 종류에는 신성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화, 진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전설, 흥미성을 특징으로 하는 민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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