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우리는 믿어왔다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거나
하느님이 우리를 닮았으리라고
말하고 싶은 입과 가리고 싶은 성기의
왼쪽과 오른쪽 또는 오른쪽과 왼쪽에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하나씩 나누어 가진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
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을 쌓았다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자유롭게 널려진 산과 들과 바다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고
우리의 몸과 똑같은 모양으로
인형과 훈장과 무기를 만들고
우리의 머리를 흉내내어
교회와 관청과 학교를 세웠다
마침내는 소리와 빛과 별까지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고
이제는 우리의 머리와 몸을 나누는 수밖에 없어
생선회를 안주삼아 술을 마신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먹으며
묘하게도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붙었다고 웃지만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오른쪽과 왼쪽 또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결코 나눌 수 없는
도다리가 도대체 무엇을 닮았는지를
- 김광규, 도다리를 먹으며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비판적, 상징적, 우의적, 풍자적
• 표현 : 단순하고 반복적인 표현
• 구성 : 반복, 점층, 반전
• 어조 : 반어에 의한 풍자의 어조
• 특징 :
① 반어적인 풍자(도다리를 비웃는 듯한 반어적 표현)
② 마지막 연에서 일어나는 반전
• 제재 : 도다리
• 소재 : 도다리를 먹는 일상 생활
• 주제 : 이념 대립과 정치적 탄압에 대한 풍자적 비판, 인간 본위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경향 비판, 인간의 존재 가치를 왜곡하는 허위적 현실에 대한 풍자
• 출전 :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 특징 :
① 통시적(일찍부터, 마침내, 이제는)으로 인간의 대칭적 사고를 고찰
② 인간 사회의 모순 비판과 반성적 성찰
③ 인간의 사고와 나누어지지 않는 존재 자체인 도다리를 대조
④ 도치법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독선적 사고를 강조
⑤ '우리'라는 시어 반복을 통해 인간 모두의 문제로 일반화
김광규(金光圭, 1941년 1월 7일 ~)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5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하여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독문과에서 문학석사,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전공은 독일 현대시문학이다. 시집으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반달곰에게》,《아니다 그렇지 않다》,《크낙산의 마음》 등이 있다. 녹원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한양대학교 독문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대표시인 〈나뭇잎 하나〉의 주제는 존재의 소멸에서 오는 상실감과 안타까움이다. 이 시는 겨울이 되어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보면서 발견한 소멸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저마다 생성되었다가 끝내 소멸해 버리는 나뭇잎을 보면서 존재의 소멸에서 오는 상실감과 함께 자신도 언젠가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화자의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
이해와 감상
오른쪽 귀와 왼쪽 귀, 오른쪽 눈과 왼쪽 눈 등 대칭구조를 지닌 신체를 지닌 사람들. 인간들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려고 한다. 우리 나라를 남과 북으로 나누고, 사상이나 이념도 역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서로 경쟁한다. 또한 이러한 양분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찍부터 우리는 믿어왔다 /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거나 / 하느님이 우리를 닮았으리라고
도치법을 통해 절대적인 존재인 하느님과 닮았다는 인간들의 잘못된 믿음을 전한다. 이는 인간 본위의 독선적, 폐쇄적 사고를 강조하게 된다.
말하고 싶은 입과 가리고 싶은 성기의 / 왼쪽과 오른쪽 또는 오른쪽과 왼쪽에 /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하나씩 나누어 가진 /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 / 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을 쌓았다
좌우 대칭적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의 고착화 현상을 말하는데, 저울, 바퀴, 벽이라는 물리적 도구는 인간 본위의 사고 방식을 강요하게 된다. 상하 좌우 대칭의 형상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 자유롭게 널려진 산과 들과 바다를 /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고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는 화합보다는 분열을 선호하는 습성을 만든다.
우리의 몸과 똑같은 모양으로 / 인형과 훈장과 무기를 만들고 / 우리의 머리를 흉내내어 / 교회와 관청과 학교를 세웠다 / 마침내는 소리와 빛과 별까지도 /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고
'인형, 훈장, 무기'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대신 수행할 맹목적인 추종자들'이며, '교회, 관청, 학교'는 '인간 본위의 사고 방식을 강요하는 정신적 기관들'을 상징한다. '소리, 빛, 별'같은 자연현상이나 본질까지 인간 본위의 사고로 재단하는 극단적인 흑백 논리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인 편가르기에 대한 비판을 엿볼 수 있다.
이제는 우리의 머리와 몸을 나누는 수밖에 없어 / 생선회를 안주삼아 술을 마신다 /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먹으며 / 묘하게도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붙었다고 웃지만
세상을 재단하다가 급기야 자신의 머리(영혼)와 몸(육체)마저 분리하려드는 인간들은, 자신의 사고방식이 잘못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생선회를 먹는다. 도다리는 이분법적으로 나뉜 대칭적 인간의 몸이 낯설어 온몸을 떠는데, 그런 도다리를 산 채로 뜯어 먹는 독선적이고 대립적인 인간의 잔혹성도 엿보인다. 묘하게 몰려붙어 함께 공존하고 있는 도다리의 눈의 가치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 오른쪽과 왼쪽 또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 결코 나눌 수 없는 / 도다리가 도대체 무엇을 닮았는지를
편향적 사고에 치우친 우리는 아직도 결코 나눌 수 없는 도다리가 상징하는 의미를 알지 못한다. 도다리는 '중심과 주변의 대립, 지배와 복종의 대립, 가진 자와 소외된 자의 대립'같은 일체의 분열적인 삶의 모습을 타개할 수 있는 대상으로써 '융합과 합일의 세계'이다. 도다리는 인간이 믿고 있는 '하느님의 본질이며 진정한 모습이자 대립과 분열의 인간 습성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불러 일으키는 대상이다. 결국 하느님을 닮은 것은 인간이 아닌 도다리의 모습이다.
김광규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런 단순한 양분이 아니다. 그는 도다리를 먹는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하나의 진리를 발견한다. 감상에 젖거나 종교적 회의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한 쪽으로 몰려 있는 도다리의 눈, 이것이 시의 포인트이다. 한 곳에 뭉쳐 있는 도다리의 눈은 나누기를 좋아하는 인간으로선 무엇을 닮았는지 분별할 수가 없다. 도다리는 이념, 사상, 혹은 어떤 개념을 둘 또는 여럿으로 나눠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중심적, 독선적 사고를 가진 인간의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오른쪽, 왼쪽 혹은 왼쪽, 오른쪽으로 나눌 수 없는 도다리의 눈을 보면서 항상 파를 가르는 인간의 태도를 비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다리를 먹으면서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얼굴과 몸이 하느님의 형상을 닮아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하느님을 닮은 것은 오히려 좌우를 나울 수 없는 도다리일 수 있다는 것이 화자의 생각이다. 인간이 옳다고 믿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이 그릇된 것임을 반어적 어조를 통해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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