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지를
- 김수영, 푸른 하늘을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참여시
• 율격 : 내재율
• 성격 : 현실 참여적. 비판적. 의지적. 상징적
• 표현 : 반복법. 도치법
• 어조 : 남성적 어조
• 구성 :
- 1연 : 희생을 치르지 않는 자유는 무의미함.
- 2연 : 자유를 위해 비상한 사람은 피의 냄새와 고독함의 의미를 알 것임.
- 3연 : 혁명의 고독함을 알 것임.
• 제재 : 푸른 하늘, 노고지리
• 주제 : 자유를 위한 투쟁의 어려움
• 출전 : <김수영 전집>(1960)
김수영(金洙暎, 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 사이의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병약했으며, 선린고등상업학교 시절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원문 시작품들을 외워 읽을 만큼 영어 실력이 우수했다.
이후 일본의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 학병 징집을 피해 대학교 중퇴 후 만주의 길림성으로 이주했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시 창작을 시작하였다. 또 연희전문학교에서 잠시 수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한 채 중퇴했으며, 1947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후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한국 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조선인민군에 징집되어 참전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반공포로라고 함) 김수영 시인은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였기 때문에 통역 일과 잡지사, 신문사를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하였다.
1957년 제1회 시인협회상을 받았다. 1959년 첫 단독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춘조사에서 출간하였다. 이 시기의 시들은 바로 살고자하는 의지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사이의 갈등과 슬픔의 극복이 중심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후 번역과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1968년 6월 15일 밤 술자리가 끝나고 귀가하던 길에 서울 마포구 구수동에서 인도로 뛰어든 좌석버스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진 뒤 다음날 새벽에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2013년 그가 생전에 거주했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김수영 시인을 기리고 그의 시문 및 시학의 업적을 기리는 김수영문학관을 설립하였다.
한국의 대표적 참여 시인으로 평가받는 김수영은 초기에는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주로 쓰다가 4.19 혁명을 기점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탄압과 압제에 맞서 적극적으로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하는 시를 썼다. 그는 이렇게 썼다.
"4.19 때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통일을 느꼈소....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니까!"
김수영 시인은 이어령과의 논쟁을 했는데, "불온한 문학을 발표할 수 있는 사회가 정상사회"라고 비판했다.
평론가 김현은 그를 "1930년대 이후 서정주·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글이나 말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어렵고 까다로움)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평가한다.
그의 사후 민음사에서는 그를 기념하는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하여 1981년 이후 매년 수여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사회 의식적 주제를 담고 있다. 현대에 와서 시의 의미성과 사회적 참여가 문제로 대두하면서, 전통적 서정성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고 사회 비판과,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진실을 전면에 드러내게 되었다. 김수영은 이런 관심에 앞장선 시인이며, 그가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사회적 진실의 구현이며, 문제의 비판적 성찰이었다. 이 시도 그런 것의 일단(一端)이다.
이 시가 씌어진 시점에서 볼 때, 당대 지식인과 대중에게 가장 목말랐던 것은 자유였다. 오랜 역사의 질곡(桎梏), 말하자면 일제의 탄압, 그 후의 이념의 구속이었다. 그것이 빚어 낸 동족 상잔(同族相殘)의 비극, 이어진 독재 정치에서 한국민이 공통으로 겪었던 일은 자유의 구속이었다. 자유는 인간다움을 담보하는 조건이다. 역사는 이 자유 쟁취의 도정(道程)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적 자아의 자유관은 처절한 투쟁을 전제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1연에 보이는 자유의 피상적 의미는 낭만성에 근거한 것이다. 노고지리의 자유를 낭만으로 부러워하는 것을 화자는 부정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화자가 인식하는 자유의 참된 의미는 2연에서 제시되는데, 그것은 투쟁성이다. 자유의 도래는 필연적으로 투쟁의 과정을 겪게 마련이고, 이 투쟁의 과정에서는 희생이 따르는 것임이 인간사(人間事)의 철칙이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는 구절은, 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처절한 항거와 쟁취의 행동성을 수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비장한 결의가 있어야 한다. 그 결의는 물론 자신의 영달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희생은 대중을 향한 지성적 판단에서 이루어지며, 단호한 결의를 내면화하는 일이야말로 고독한 결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혁명이 고독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런데 그 고독한 결단은 자유의 구현을 위한 외면적 실상만은 아니다. 혁명은 고독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인식 태도야말로 시적 자아의 내면 풍경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것은 자유에의 치열한 쟁취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그 태도는 지성인의 책무이면서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당위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자유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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