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듯 눈 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은 새파란 불붙어 있는 인광*
까만 귀뚜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기쁨이랴.
파란 불에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 한 즐검이랴.
- 싸늘한 이마. 박용철
*인광 : (1) [화학] 흰인이 공기 중에서 자연 변화에 의하여 발하는 빛. 어두운 곳에서 청백색의 빛이 난다. (2) [물리] 황화칼슘, 플루오린화 칼슘 따위의 물질에 빛을 비추다가 그쳐도 계속 빛나는 현상이나 그 빛.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전통적, 낭만적, 회고적, 애상적
• 어조 : 심리적 상처를 달래는 듯한 어조
• 특징
①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세련되게 노래하고 있다.
② 시적 대상에 흐르는 빛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③ 비유법을 구사하여 화자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④ ‘-리’와 ‘-라’로 끝나는 어미의 당위성을 드러내고 있다.
• 구성
- 1연 :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과 산꽃을 통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
- 2연 : 인광처럼 새파란 불이 붙은 화자의 외로운 몸
- 3연 : 간절한 외로움의 극치와 즐거이 별을 찾고 싶은 마음
• 제재 : 외로움, 이마
• 주제 :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과 외로움을 이겨 내기 위한 갈망
• 출전 : <시문학> 창간호, 1930.3
박용철(朴龍喆,1904~1938), 호는 용아(龍兒).
전남 광주 출생. 배재 고보 수료. 일본 도쿄 외국어학교 독문과를 거쳐 연희전문에서 수학. 1930년, 김영랑과 <시문학>을 창간. 이 잡지 1호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떠나가는 배>,<밤 기차는 그대를 보내고>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재질은 시 창작에서보다 순수시의 기치를 옹호하는 시론에서 더 많이 발휘되었다. 작품자체에서 심리적 구조 이외의 요소를 불순한 것이라고 배제하려는 태도와 함께 외국 문학의 이론을 폭 넓게 수용하고자 하는 자세로 일관한 시인이었다. 한국 문예사에 끼치고 있는 그의 발자취는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1930년대 벽두 순수시 전문지<시문학>을 창간하고 정지용, 김영랑, 변영로, 신석정 등을 그 동인으로 맞아들임으로써 격조 높은 순수시의 집단이 형성되는 길을 열었다.
둘째, 괴테.실러.릴케 등 독일계 시인들의 작품 및 키이츠. 테니슨. 브라우닝. 예이츠 등 영미계 시인들의 작품을 광범위에 걸쳐 수용, 소화하여 한국 근대시의 시야를 넓히는 데 공헌한 바 있다.
셋째, <시문학>을 비롯하여, <문예월간>,<문학> 등 순수 문예지를 발간, 1930년대의 시인과 작가들에게 작품 발표의 무대를 제공했다.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박용철 전집>(1939)이 간행되었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적 자아의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2행 1연의 전 3연의 간결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연의 첫 행은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둘째 행은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벗 삼고 싶은 대상을 보여 주고 있다. '- 라도 있으면(있다면)'이라는 표현은 화자의 외로움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는 것으로, 화자는 그 대상을 각각 '산꽃', '귀뚜리', '별'이라는 평범한 사물로 제시하고 있다.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
1연에서 화자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이라는 직설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 싼 세계를 어둠으로 인식하는 화자는 그 속에서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모두 빼앗기는 듯 눈 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은 새파란 불붙어 있는 인광
까만 귀뚜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기쁨이랴.
2연에서는 1연과는 다른 방식인 비유적 표현으로 외로움이 나타나 있다. 눈을 감으면 마치 자신의 몸이 '새파란 불붙어 있는 인광'처럼 느껴진다는 진술에서 그가 겪고 있는 외로움이 가히 짐작된다. 섬뜩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자는 한 마리 '귀뚜리'만 있으면 외로움을 이겨내는 큰 기쁨이 되리라고 한다.
파란 불에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 한 즐검이랴.
3연에서 외로움은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으로 나타나 있다. '파란 불', 즉 예민한 신경으로 인해 잠을 재촉하면 할수록 머리 속이 초롱초롱해지며 잠이 오지 않는 불면증같이 고통스러운 외로움을 말하고 있다. 이럴 때,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 큰 즐거움이겠냐고 화자는 자문하고 있다.
화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외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왜 어둠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이 시는 어느 것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지 않지만, 그런 대로 이 시가 읽히는 것은 바로 화자의 진한 호소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저 간단히 일제 치하라는 시대 상황으로만 설명하기엔 무언가 있어야 할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시는 20년대 초 {백조}파의 '감상의 과잉'에 박용철의 기교가 결합된 정도의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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