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만리
김학철
1. 장사보위전(1938)
적군의 발광적인 공격을 일단 물리치고 불과 몇 시간 동안에 처참한 수라장으로 벼해 버린 야산 밑에서, 조선의용군의 분대장 양수봉이 전장의 뒷거둠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포탄에 중동이 뭉청 끊겨져나간 나도밤나무 등걸에다 목덜미만 거북살스레 기댄 채 몸져누워 있는, 중상을 입은 듯 싶은 일본 병사 하나를 발견하였다.
양수봉은 워낙 천품이 너그러운지라 그 부상한 적병을 아군의 붕대소로 데려가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고 곧 행동으로 넘어갔다.
부상한 적병은 가까이에 인기척을 느낀 모양으로 힘없이 감았던 눈을 거슴츠레 떴다.
네 눈이 마주쳤다.
양수봉이 저도 모르게 무춤 발을 멈추는 것을 보자 그 일본 병사는 성한 손으로 피에 젖은 군복의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그 동작을 양수봉은 순간, 권총을 꺼내려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 죽어가는 놈이 최후 발악을 한다고 판단하였다.
양수봉은 전쟁의 법칙대로 잽싸게 선손을 쳤다.
일본병은 가슴패기에 총탄을 맞자 호주머니 더듬던 손을 떨어뜨리고 신음 소리 속에 한동안 경련을 일으키다가 그만 숨저버렸다.
양수봉은 죽은 자의 권총을 뒤져내려고 허리를 구부리고 그 군복 호주머니에 손을 디밀었다.
“어?......”.
권총이 없다.
손에 잡힌 것은 권총이 아닌 한 통의 편지!
양수봉이 맑은 정신으로 다시 생각해 보니......보통 병사가 권총을 휴대하였을 리 없잖은가! 그 일본병의 것으로 보이는 날창 꽂힌 38식 보총 한 자루가 서너 미터 밖 풀밭에 나둥그러져 있었다.
‘엉겹결에 판단을 잘못하구......생목숨 하나를 끊었구나!’
이렇게 깨닫자 양수봉은 곧 자기의 황겁한 행동을 스스로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봉투 속에 들어 있는 편지를 꺼내 펼쳐 보았다.
사진 한 장이 갈피에 끼어 있다. 오십 고개를 바라보는 안존한 부인 하나가 그 딸인상싶은 십팔구 세 나는, 가냘프게 생긴 소녀하고 둘이서 찍은 사진이었다.
편지는 그 소녀가 쓴 것이 분명한데 읽어보니 사연이 애절하였다.
……어머니는 날마다 오빠의 무운장구를 신불 앞에 빌고 계세요 사찌꼬언니도 사흘이 멀다고 찾아와서는 오빠의 소식을 묻군 하는데 이번에 부치는 ‘오마모리(호신부)’도 그 언니가 일부러 이세신궁에 가서 오빠 위해 얻어온거에요. 어머니도 저렇게 어진 며느리가 우리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은 신불이 굽어살핀 덕이라고 자꾸 뇌세요…….
‘내 일시 불찰루……아들에 오빠에 약혼자까지……한꺼번에 다 없애치웠구나.’
이런 자책감에 짓눌리어 양수봉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다.
“야, 그 자식 ‘앨로(신품)’군화를 신구 뒈졌구나!”
홀제 등 뒤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이렇게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 군화 내나 벗겨 신어야겠다.”
돌아보니 같은 분대의 덜렁쇠 김평민이다.
김평민은 뱀 잡으면 뱀고기 먹고 고양이 잡으면 고양이고기 먹고 하는……말하자면 좀 보통이 아닌 험상쟁이였다. 그는 얼굴에 튄 핏자국도 아직 닦지 않았는데 아주 대수롭지 않게 노획품-죽은 일본 병사가 신고 있는 ‘앨로’군화-에로 다가들었다. 가지가 신고 있는 노동화는 다 해져서 거덜이 났으므로 새것으로 갈아신을 작정인 것이다.
“가만둬라!”
양수봉이 새된 소리를 꽥 지르니,
“왜?……”
의아쩍은 얼굴로 김평민은 군화에 댄 손은 떼지 않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양수봉을 쳐다보았다.
“가만두라면 가만둘게지.”
“글세 까닭을 말해야지?…….”
“죽었으면 고만이지……맨발까지 벗길 건 뭐 있어!”
양수봉이 퉁명스레 흩뿌리니,
“야 그 자식 장히 자비롭다. 부처 가운데 토막 아니야?”
비양조로 엇나가며 김평민은 대수롭지 않게 구두끈을 끄르기 시작하였다.
“정말 그만두지 못하겠지?”
양수봉이 얼굴빛을 변하며 떨리는 손으로 권총자루를 거머쥐었다. 그 심상찮은 거동에 적이 놀란 김평민은 용수철이 튕겨지는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저거 미치잖았나. 헤, 아주 미치잖았나.”
이렇게 뇌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김평민은 핵 몸을 돌려서 천방지축 달아나며 짓떠들어대었다.
“사람 살리우, 양수봉이가 미쳤소……!.”
양수봉은 편지와 사진을 죽은 일본명의 호주머니에 도로 넣어주고 눈을 감겨주었다. 그런 연후에 김평민이 끄르다만 구두끈을 도로 매어주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소나마 속죄가 되는 것 같아서였다.
다저녁 무렵, 선득선득한 시냇물에 들어서서 땀과 피와 흙먼지와 화약연기로 뒤범벅이 된 몸들을 씻을 때 양수봉이 아까 있었던 일을 간단히 해명하니 머리와 얼굴에 게거품 같은 비누거품을 우그그 뒤집어써서 눈하고 입만 빠끔히 알리는 김평님이,
“듣기 싫다, 그따위 발명. 침략자를 동정하는 건 이 자식아, 항전의지의 쇠퇴야, 알겠니? 항전의지의 쇠퇴!”
이와 같이 못박고 곧 거품 속의 머리를 열 손가락으로 한바탕 버걱버걱 긁고나서,
“너는 현재 위험한 길을 걷구 있어.”
한마디를 덧붙이었다. 그리고는 흐믓한 듯,
“으흐흐흐…….”
하고 흐느끼며 물 속에 머리를 잠갔다.
조선의용군은 무존장아문(無尊丈衙門)이었으므로 보통 너나들이를 하였다. 더러는 이랬고 저랬소도 하였다. 단 고위급에 대하여만은 깍듯한 경어를 썼다. 그리고 고위급도 부하들에게 똑같은 경어를 쓰는 것이 조선의용군의 전통이었다.
밤, 깊북데기 위해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다가 양수봉이 그만 잠을 깨었다. 어디서 들개들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시체는 말끔히 다 그러묻었는데……저놈들이 또 무얼 가지구 저러는가. 너무 얕추 묻었던가?……’
잠이 벋놓였다. 옆에서 태평스레 코를 고는 소리가 낮에 있었던 격전을 아득한 옛일처럼 멀리로 밀어 보내었다.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김평민이는 낭만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모르는 인간이야 쥐어짠 행주 같은 교조주의자야. 문학이나 예술하고는 애당초에 담을 쌓구 사는 장작개비야. 날더러 상전의지가 쇠퇴했다구? 허허, 사람을 웃겨두 유분수지!’
양수봉은, 극히 유한한 원시동물적인 세포로 구성된 김평민의 두뇌를 가련하게 여겼다. 그러자 자기는 문무 겸비한 표준형의 혁명군으로 뚜렷하게 떠올랐다. 어는 역사 소설에 나오는 피도 있고 눈물도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본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히기까지 하였다.
양수봉은 또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걷잡을 수 없이 잠의 수령 속으로 빠져들어가면서,
“너무 얕추 묻었다니까…….”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2. 대치상태(1938-1939)
진격에 실패한 적군은 장사 공략을 일단 단념한 모양으로 제자리에서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아군도 막부산(幕阜山)산록에다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구불구불한 방어공사를 구축하였다.
이때부터 양군은 장장 11개월에 걸치는 대치상태로 들어갔다. 이듬해 가을 적군이 다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기까지.
그통에 죽어나는 것은 백성들이었다 일가의 목숨을 유지할 논밭뙈기가 대치한 양군의 진지 사이에 들어가 버렸으니……농사를 아니 지으면 굶어죽을 판이요 농사를 짓자니 또 늙어 죽을 늧이라. 속담 그대로,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승산이었다.
앉아서 굶어 죽으나 서서 맞아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이라고 생활의 위협을 극도로 느끼는 농이들이 칼 물고 뜀뛰기를 하였다. 몰래 진지를 넘나들며 논밭을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참으로 흙의 노예였다.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목숨들이었다.
적아를 마주 대하고 구불거린 진지는 성거가 가까운 데는 700-800미터밖에 안되었지만 먼데는 3-4킬로미터 내지 5-6킬로미터씩 되었다. 그 공간에 야산과 잡목림과 도랑과 논밭뙈기들이 그대로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로 여기저기 남아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비극이 여기서 발생하였다.
어느 날 저녁 무렵에 보초를 서고있던 김평민이 우전방 잡목림 변두리에 사람의 그림자 하나를 발견하였다. 100미터 안짝이었다. 조선의용군이 담당한 구역은 백성으로 변장한 적군의 정탐들이 출몰하는 요긴목이었으므로 김평민은 당연히 경각성을 높였다. 농민복색의 그 괴한은 나무줄기 뒤에 붙어서서 이쪽이 동정을 살피는 것이 분명하였다.
“누구야?”
김평민이 이 격발기를 철꺽 젖히니 그 괴한은 잽싸게 몸을 돌려서 도망질을 치기 시작하였다.
“섰거라!”
소리를 치는데도 그자는 아랑곳없이 허둥지둥 뺑소니만 쳤다.
열이 오른 김평민이 ‘섰거라’ 소리 세 번 만에 결연히 방아쇠를 그러당겼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잡동사니 나무 사이를 누비듯이 하며 달아나던 괴한이 두 팔을 쩍 벌리면서 나가동그라졌다. 이삼 분 기다려 보았으나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단방에 요정이 난 모양이었다.
김평민은 저로서도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의 사격술은 언제나 전대(全隊)의 조소의 대상으로 되어왔었기 때문이다. ‘청맹과니 포수’ 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소경이 문걸쇠를 잡았다고 다들 조롱하며 신기해하며 녹채를 빠져나와 현장으로 달려갔다. 녹채란 짧은 나무토막을 비껴 박거나 십자형으로 겹쳐 놓은, 반보병 차단물의 일종이다.
엎어져 죽은 정탐을 두엇이 달려들어서 얼굴이 드러나게 젖혀놓았다.
“엉? 이게 누구야?”
천만 뜻밖에도 그것은 조선의용군 부대가 주둔하는 마을에 사는 한 농민이었다. 시체에서 서너 발자국 떨어진 풀밭에 나동그러져 있는, 흙 묻은 괭이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는 군대 몰래 들일을 다니다가 운수 불길하여 오늘 횡액을 당한 것이었다. 보초가 서라니까 겁이 나서 들고뛰다가 눈깔 먼 총알에 아까운 목숨을 잃는 것이었다.
그 농민에게는 늙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철부지 어린 남매가 달려 있었다. 농사일을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노동력이 일조에 허무하기 짝이 없게 사라져버렸으니……. 뒤에 남은 식구들은 장차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희생자를 들것에 담아서 마을로 들여오니 남녀노소 숱한 이웃사람들이 말 한마디 없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 식구가 주검에 매달려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광경은 너무도 애처로워서 눈 뜨고는 보기가 어려웠다.
유가족을 무휼하는 것으로 불행한 사건은 일단 마무리되었으나 내려가지 않는 것은 김평민의 가슴속에 엉켜 있는 자기가책의 응어리였다.
‘내가 왜 좀더 신중하지 못했을까!’
김평민의 ‘덜렁쇠’는 자취를 감추었다. 일변하여 파김치가 되었다.
‘나는 절대루 자기를 용서할 수 없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김평민의 고뇌는 끝이 없었다.
풀이 죽은 김평민의 어깨를 툭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분대장 양수봉이다.
“엎지른 물인데……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어. 기운을 내라구.”
뼛속에 스며들도록 친절한 말이었다. 하지만 녹아버리기에는 응어리가 너무나 크고 또 단단하다는 것을 김평민은 느꼈다. 언젠가 양수봉을 항전의지가 쇠퇴했다고,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고 타박하던 일이 새삼스레 생각나서 김평민은 마음이 송구해졌다.
전쟁이란 죽이고 죽고 하는 식의 단순한 공식으로 엮어진 ‘참혹 행진곡’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을 형틀에 올려놓고 사정없이 시달리는 고문장이기도 하였다.
평소에 물덤벙술덤벙 아무데나 잘 뛰어드는 덜렁쇠가 생각 밖에도 그러한 고문에는 취약하였다. 양수봉보다도 더 심각하게 뉘우치고 한탄하고 그리고 번뇌에 지지눌렸다.
막부산 전선에는 몇 달 동안의 전투생활을 이와 같이 겪고나니 양수봉과 김평민은 나이보다 마음이 몇 갑절씩 더 겉늙었다.
3. 궤산(1939)
적군이 장장 10개월 동안의 계획적이고도 주밀한 준비 끝에 또 다시 공격을 발동하여 6만의 대군을 철도와 국도 두 길로 나누어서 파눅지세로 내리미는데 그 기세가 참으로 난당이었다.
조선의용군도 완강한 저항 끝에 마침내 대패하여 퇴각을 하는데……퇴각이라느니 보다는 궤산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였다. 부대가 온통 허물어져 흩어졌으니까 말이다. 문자 그대로의 풍비박산이었다.
양수봉이 천방지축 도망을 치다가 문득 정신을 수습하고 살펴본즉 손에 쥐었어야 할 총이 없다. 허둥거리는 통에 손아귀에서 빠져나갔지 아니면 뛰는 데 거추장스러우니까 쥐어뿌렸는지……아무튼 있어야 할 총이 없는 것이다.
양수봉이 두리번거리다가 발둔덕에 엎어져 죽은 우군의 시체 옆에 보총 한 자루가 나둥그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보총을 막 집어 들었을 때,
“너 살았구나.”
하는 말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니 김평민이었다.
군모는 없어져서 맨머리바람이고 각반은 풀려서 한쪽만 겨우 남고 한쪽은 아주 없어졌는데 그래도 김평민은 용케 총만은 들고 있었다.
네 눈이 마주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물에 빠진 두 마리의 수탉이 마주 선 것 같아서였다.
“다들 어디 갔니?”
“낸들 아니.”
“우리가 패잔병이 됐구나, 망신이다.”
“목숨이 붙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부대를 찾아가야지.”
“부대가 어디 있는 줄 알구?…….”
“넨장할…….”
“우선 어디 가서 무얼 좀 얻어먹어야지……허기증이 나서 난 서있기두 어렵다..”
“가자, 아무데루나 가자. 초상집 개 같구나 우리가.”
논틀밭틀로 얼마를 오다 보니 우군부대가 한창 방어공사를 하고 있는 데까지 왔다. 공사를 지휘하던, 중대장쯤 되어 보이는 젊은 군관 하나가 두 사람의 사나운 몰골을 눈앞에 보고는 적이 웃으면서,
“저 뒤에 우리 야전주방이 있으니……그리루들 가우.”
하고 손을 들어 가리켰다. 그리고 한마디를 혼잣말처럼 덧붙이는 것이었다.
“혼들이 단단히 난 모양이구먼.”
양수봉과 김평민이 다리를 들다시피 하며 잡목립 속에 임시로 포진한 야전주방에로 왔다. 거기에는 벌써 숱한 패잔병들이 먼저 와서 더운 입쌀죽과 식은 찐빵과 무짱아찌로 요기들을 하고 있었다. 다 먹고 물러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자도 있고 또 부상한 전우의 시중을 들어주는 자도 있었다. 몰골들은 다 양, 김 두 사람과 난형난제하여 비속한 말로 하면 거지들의 도회청과도 같았다.
지축을 흔드는듯한 포성은 여전히 들려와도 사정(射程)이 못 미치는지 포탄은 날아오지 않아서 벗어난 지 얼마 안되는 아비규환의 수라장, 전쟁터에 비하면 야전주방이 들어앉은 잡목림 속은 너무도 안온하여 옛이야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바로 옌가싶을 지경이었다.
기진맥진한 패잔병들이 육속 밀려드는 가운데 아는 얼굴--조선의용군--도 드문드문 끼어 있어서,
“어이, 여기야 여기. 일루 오라구.”
“어, 여기들 와 있었구먼.”
“다른 동무들은?…….”
“다른 동무들……내가 어떻게 알아? 거미새끼같이 흩어지는 통에……방향두 모르구 도망을 치다가……마침 저치를 만났기에 이렇게 목숨이 겨우 붙어 있는데.”
“자 자, 요기들이나 우선 하구나서…….”
“넨장할, 난 밥하구 꼭 영결을 하는 줄만 알았다.”
“그렇다면 어서어서 감격의 해후상봉부터 하라구. 오매불망 그리던 밥아, 우리가 죽지 않구 또 만났구나.”
옆에서 누가--먼저 먹은 치가--게트림을 하면서 빈정거렸다.
“그게 어디 밥이야? 죽이지.!”
“그럼 죽아. 오매불망 못 잊던 죽아, 우리가 죽지 않구 또 만났구나.”
4. 장사대첩(1939)
제9전구 사령장관 설악장군이 장사에서 철퇴하라는 장개석의 명령을 무시하고 20만 대군을 휘도하여 결연히 보위전에로 일떠서는 통에 조선의용군도 크게 힘을 얻어서 일단 궤산되었던 부대를 재편성해가지고 새판으로 전쟁마당에 뛰어들었다.
1개 집단군--7개 사단--의 대병력이 일주야 사이에 멱라강(漞羅江)의 남안을 따라 동으로 서로 무지스러운 빗장을 콱 지르니 강을 건너왔던 침략군이 선두부대는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당하여 끈 떨어진 망석중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경적필패’란 말은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뜻으로서 ‘적에 대하여 자고자대하지 말고 충분한 준비와 각성을 가져야 된다’는 말이다. ‘무적황군’도 무인지경을 거치듯이 승승장구를 하는 바람에 머리가 뜨거워져서 위에 말한 병법의 ABC를 깜박 잊었던 모양이다.
포위섬멸전이 벌어졌다. 갇히운 놈은 모조리 잡아없앨 판이다. 조선의용군 부대도 언제 도망질을 쳐보았더냐는 듯이 기세가 충전하여 전투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이 전투에서 또 하나의 시련이 양수봉과 김평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뿔뿔이 흩어진 잔적을 수색, 소탕하는 작전을 진행하던 중 갈팡질팡하는 피난민들 사이에서 수상한 남자 하나를 발견하고 양수봉이 서라고 명령을 한즉 그 농민복색을 한, 한쪽 다리를 약간 저는 사나이는 귀머거리인 듯 그저 절름절름 제 갈길만 가고 있었다. 양수봉이 몇 발자국 쫓아가서 팔꿈치를 꽉잡고 훽 낚아채니 그제야 사나이는 두 손을 벌려서 제 입과 귀를 가리키며,
“아바바바…….”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벙어리라는 표시인상싶었다.
“어떡헐까?”
양수봉이 의논조로 김평민을 돌아보았다.
“몸뒤짐을 한번 해보자구”
“아무려나.”
양수봉이 예사롭게 사무적으로 사나이의 몸에 손을 대려는 순간 여적 벙어리 피난민인 체하던 그자가 잽싼 반응을 보였다. 번개같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든 것이다.
가슴패기에 면바로 총구멍이 들이닥쳐보기는 난생처음이라 양수봉은 온몸에 식은땀이 쫙 내돋았다.
‘허무하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치듯 뇌리를 스쳤다.
“짤칵!”
불발
천우신조.
옆에 섰던 김평민의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죽으라고 쏜 것이 어떡허다 총신이 처져서 그자는 넓적다리를 맞고 털썩 주저앉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동안에 비로소 정신을 수습한 양수봉이 잽싸게 발길을 날리었다. 그자의 손목을 냅다 걷어찼다. 권총이 튕겨지듯 날아가 길섶에 떨어졌다.
“너, 일본인이지?”
양수봉이 내려다보며 일본말로 물으니 그자는 중국군의 입에서 일본말이--그도 유창한 일본말이--흘러나오는데 적으기 놀란 모양으로 의아쩍은 눈을 끔벅끔벅하며 마주 쳐다보기만 하였다. 동맥을 다쳤는지 총 맞은 자리에서 피가 자꾸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평민이 길섶에 떨어진 권총을 집어가지고 왔다.
“물어 볼 것 뭐 있어? 그깟 새끼, 없애치우지. 저리 비켜.”
양수봉이, 총을 겨누는 김평민을 제지하고 다시 따졌다.
“일본인이지? 말해!”
“일본인이라면 어쩔테야? 죽일라면 어서어서 죽이지……잔말이 왜 있어!”
그자가 자포자기하여 최후발악을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도리어 넋살을 먹고 잠시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우리는 포로를 죽이잖는다.”
양수봉이 명확히 일러주니 그자는,
“거짓말 마라!”
더욱더 비뚤어졌다. 김평민이 화가 치밀어서
“그따위 데리구 싱갱이질하다가 날 저물겠다. 저리 비켜라.”
하고 다시 총을 겨누는 것을 양수봉이,
“못써! 군법에 걸릴라구?”
또 한번 밀막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자는 일본군 치중병 소위로서 목숨을 살아보겠다고 주인이 피난을 가버린 빈집에 들어가 옷가지를 들추어내 입고 피난민들 틈에 끼어들어 도망질을 치다가 양수봉들의 검문에 걸린 것이었다.
“넨장할, 나중엔 별놈의 시중을 다 들잖나.”
군소리를 하면서도 김평민은 양수봉을 거들어서 사로잡은 치중병 소위의 허벅다리를 --그자가 몸에 지니고 있던 구급용 붕대주머니의 붕대로--동여매어 우선 지혈을 시켜주었다. 가만 내버려두면 출혈과다로 죽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김평민이 위생병을 부르러 간 동안에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은 안도감과 기왕 이렇게 된 바에는 좀 잘 보일 필요가 있다고 약삭빠르게 판단을 한 소위가 손목시계를 벗어서 양수봉에게,
“약소하나마 이건 제 성의올시다. 어서 받아주십시오.”
코아래 진상을 하였다. 고대 어서 죽이라고 지다위하던 때와는 딴판으로 아주 상냥스러우면서도 또 좀 비굴스러웠다.
양수봉이 무기 이외의 소지품은 하나도 몰수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정책이라고 타이르고 포로 소위의 그 ‘성의’를 받지 아니하니 그자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모양으로 어리뻥한 얼굴을 하였다.
이윽고 김평민이 터덜거리고 돌아왔다.
“위생병이 담가를 가지구 이제 곧 올거야.”
양수봉이 그 말을 포로 소위에게 일본말로 옮겨들리고 ‘안심하고 좀 기다리라.’고 한즉 포로 소위는 다리를 뻗고 펴더앉은 채 깍듯이 고개를 숙여서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그리고는 인도주의적인 이쪽놈(양수봉)보다도 감때사나운 저쪽놈(김평민)을 좀 삶아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으로 주체궂게 쥐고 있던 손목시계를 얼룬 김평민에게 건네주었다.
“뭐야?”
“제 성의올시다. 받아주십시오.”
“응, 그래.”
하고 김평민은 너털웃음을 한번 웃고나서,
“그 자식 보기보다 인사성 꽤 밝에.”
하고 아주 예사롭게 손목시계를 받아서 귀에 갖다대고 째각째각 소리를 잠시 들어본 뒤 곧 제 호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그 동작이 마치 남에게 비려주었던 손톱깍이를 도로 받아넣는 것만큼이나 수월스러웠다.
“이봐 평민이, 그 시계 도루 돌려주라구.”
양수봉이 타이르듯이 말하니 김평민은 대번에 밤을 물고,
“그건 왜?…….”
하고 맞갖잖은 얼굴을 하였다.
“포로의 소지품이 아닌가…….”
“포로의 소지품……그래 내가 달랬나 어쨌나. 제가 호의루 주는 건데…… 받으면 어때?”
“호의는 무슨 기급할 놈이 호의야.”
“그럼 뭐야?…….”
“그걸 몰라서 묻나?…….”
“…….”
말문이 막혀버린 김평민이 하릴없이 먹었던 밤을 도로 게워놓았다.
포로 소위는 호사스레 담가에 누워가면서 불가해한 얼굴을 하고 뒤돌려 받은 손목시계를 새삼스레 들여다보았다.
양수봉은 언젠가 순간적인 오해로 쏘아 죽인 일본 부상병의 일이 끈히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는 터이라 이날 포로한 치중병 소위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야전병원으로 후송하는 것이 마음에 대견스러울 정도로 합당하였다. 일종 속죄의 거뜬함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일본군 포로들의 운명에 대하여 몇 줄 적어보기로 하자.
국민당 통치구역에서 붙잡힌 포로들은 그곳에 있으면서 일본이 가족들과 편지거래를 할 수 있었는데 규정에 따라 피봉에다 반드시 ‘중화민국’ 넉자를 밝혀야 하였다. 가는 편지건 오는 편지건 이 넉자를 밝혀 적지 않은 것은 다 수리하지 않았다. 일본제국주의가 중국 정부를 ‘중경정권’이라고 지방정권급으로 격하시킨 데 대한 대항책이다. 황군은 포로가 있을 수 없다고 허세를 부리면서도 일본 정부는 하릴없이 이를 묵인하여 오고가는 우편물에다 다 ‘중화민국’ 넉 자가 밝혀졌는데 그 덕에 포로들은 고국에서 부쳐오는 소포를 항상 받는다는 고마운 혜택을 입었다.
각 전구에서 개별적으로 행동을 구속하지 않고 ‘놓아먹이는’ 포로들도 있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무 하는 일 없이 그렇게 거들거리다가 귀국한 자도 적지 않았다.
제발로 도망쳐온 일본군은 굉장히 후한 대우를 받았다. 일제로 일본군 주계 대위, 즉 군수관 한 놈이 주색잡기에 빠져서 거액의 공금을 횡령해 먹고 들통이 나게 되자 중국측으로 피신해 왔는데 중국 정부는 그자에게 월비 2백원씩을 지급하였다. 2백 원이면 당시 중국군 대좌의 봉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해방구에서 포로된 일본군인들의 운명은 이와 판이하였다. 그들은 거의 없이 연안에 본부를 둔, 일본공산당 지도자 노사까 산조오가 영도하는 ‘반전동맹’에 가입하여 총부리를 일본제국주의에게 돌려대었다. 팔로군 야전병원에서 헌신적으로 근무하는 일본군 군의소좌도 있었다. 각성한 일본 군인들--‘반전동맹’ 성원들--중에는 가열한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고국을 멀리 떨어진 중국땅에 묻혔다.
<중략>
7. 요문구전투(1942)
이해 5월, 일본 침략군은 저들이 ‘북지(北支)의 암’이라 일컫는 태항상 항일근거지에 대하여 이른바 ‘철옹성으로 완전 포위’한다는 대‘토벌’작전을 발동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철옹성이라고 호통을 칠만도 하여 팔로군 총사령부의 직속기관들이 그 포위망 속에 든다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나서경 주임이 이끄는 야전정치부는 새벽 4시에 요현(현재의 좌권현) 마전(삼밭)을 출발하여 한낮때 요문구에 당도하였는데 거기서 적군과 맞닥뜨렸다. 비전투원들로 편성된 대오가 산골짜기를 따라 행진하고 있을 즈음 불시에 앞길을 가로막으며 나타난 적병들이 총질을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에 나타난 적기가 거듭거듭 급강하 폭격을 하여 대오의 전후좌우에는 폭탄들이 연달아 터졌다. 한데 이 불의의 습격을 받은 대오는 그 대부분이 직속기관의 간부들로 편성이 된 까닭에 공문서가 든 상자 따위가 여간 많지 않아서 짐을 실은 노래, 말 들이 숱하였다. 무장을 갇춘 것은 경호소대 하나뿐. 그러므로 대오의 행동은 민첩할 수가 없었다. 이런 고비사위에 또 한무리의 적병이 돌연 후면에서 나타나더니 미친 듯이 총질을 가해오며 기세 사납게 달려들었다.
이 위급천만한 시각에 대오를 영솔하던 나서경은 재빨리 길가 둔덕 위에 뛰어올라가 한 손을 높이 쳐들며 고성으로 외쳤다.
“동지들, 우린 죽어두 같이 죽구 살아두 같이 살아야 하니까 다들 진정하구……내 지휘에 따르시오!”
그의 지휘에 따라 경호소대는 전원 즉시 앞에서 밀려드는 적을 맞받아나갔다. 하지만 뒤에서 밀려드는 적군은 누가 쳐물리친다?…….
이런 위기일발의 찰나에 천병(千兵)이 나타났다. 조선의용군 임익성지대 백여 명의 생력군이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돌연히 나타난 것이다!
임익성은 만분위급한 정황하에서 이것저것 고려할 여지가 없었다.
“전대……, 지체말구저 산마루루 바라오르자…….!”
명령일하에 전대는 일제히 길 없는 길을 톺아오르고 기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호치키스식 기관총을 맨 김평민이 땀을 철철 흘리며 숨이 턱에 닿아서 무슨 덩굴 따위를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휘어잡으며 바라오르는 뒤를 탄약수 한성호가 바짝 따랐다.
그동안 김평민의 신상에서 하나의 기적이 나타났었다. 이삼 년 동안의 가열한 전투 행정에서 애써 연마한 결과 소문난 따라지 사수--청맹과니 포수--였던 그가 굴지의 명사수로 변한 것이다.
양수봉은 날창 세운 보초를 잔득 거머쥐고 뒤질세라 치달아 올랐다. 먼저 오르는 게 장사다!
쌩쌩 공기를 가르는 적탄이 우박치듯 하는 가운데 죽기를 기쓰는 의용군대원들의 한몸 바치는 모습은 나서경의 눈 속에 영원히 가시지 않을 형상으로 인화되었다.
산마루를 점령하자 곧 김평민의 ‘호치키스 아가씨’는 밀려드는 적의 산병선을 향하여 철탄을 부챗살 모양으로 폈다. 그와 동시에 다른 백 개의 총구도 불규칙적으로 간단없이 총탄을 퍼부었다. 밀려들던 적군의 산병선이 총알벼락을 맞고 좀 어지러워지는 것 같더니 이어 뒤죽박죽으로 문란해졌다. 높은 데서 굽어보는 의용군은 낮은 데서 쳐다보는 일본군 사이에 맞불질이 시작되었다.
조선의용군이 적군과 맞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서경이 영솔하는 대오는 재빨리 행동하여 전원 흑룡동 방향으로 빠져나가는데 성공하였다.
총신이 달도록 연발 사격을 해대던 김평민이 악 소리도 못 지르고 푹 고꾸라졌다. 적탄이 면바로 양미간을 뚫은 것이다. 바로 옆에 착 엎드려서 탄약을 셍기던 한성호가 얼른 기관총으로 대들었다. 단 1초도 그것을 쉬어서는 아니될 형편이었다. 쓰러진 전우들 돌아볼 겨를이란 게 애당초 없었다. 김평민이 평소에 사랑하여 늘 닦아주면서 ‘우리 호치키스 아가씨’라고 애칭으로 부르던 기관총에는 채 식지 않은 선지피가 범벅으로 묻어 있었다. 한성호는 손에다 끈적끈적한 피칠을 해가며 잠시 끊겼던 연발사격을 다시 잇대었다. 그러나 얼마 아니하여 한성호도 또 푹 고꾸라졌다. 적탄이 앞가슴을 엇비슥이 뜷고 들어와 옆구리로 빠져나간 것이다. 치명적인 관통상이었다. 한성호는 선지피를 꿀걱꿀걱 게우며 간신히,
“어머니…….”
한마디를 부르자 이내 숨져버렸다. 양수봉은 그 ‘어머니’ 소리를 귓결에 들으며 얼른 제 총을 땅에 놓고 호치키스 아가씨께로 달려들었다.
‘불길한 호치키스 아가씨!’
적들은 밉살맞은 호치키스 아가씨를 침묵시키려고 집중사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몰방울 퍼붓고 있는 것이다.
잠시 끊겼던 연발사격을 또다시 잇대는 양수봉의 머릿속을 퍼뜩,
‘호치키스 아가씨의 세 번째 죽은 남편이 되지 아마 오늘…….’
이런 생각이 스쳤다.
기관총에 탄약이 떨어졌다. 호치키스 아가씨가 무용의 장물로 되어버렸다. 양수봉은 얼른 다시 땅바닥에 나둥그러져 있는 보총을 집어들었다.
임익성은 야전정치부의 짐 실은 말과 노새와 비전투원들로 편성된 비둔한 대오가 무사히 다 빠져나간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엄호의 목적을 달하였으므로 철수를 하려고 생각하였다. 초연 탄약이 거의 다 떨어져서 더 버틸래야 버틸 재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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