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청준 4

이청준 '서편제' 전문

서편제 이청준 차례 서편제 소리의 빛 작가 노트 ‘의 희원’ 선학동 나그네 작가 노트 ‘우리의 영혼 위에 날아오르는 학’ 서편제 남도사람․1 이청준 여자는 초저녁부터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줄창 소리를 뽑아대고, 사내는 그 여인의 소리로 하여 끊임없이 어떤 예감 같은 것을 견디고 있는 표정으로 북장단을 잡고 있었다. 소리를 쉬지 않는 여자나, 묵묵히 장단 가락만 잡고 있는 사내나 양쪽 다 이마에 힘든 땀방울이 솟고 있었다. 전라도 보성읍 밖의 한 한적한 길목 주막. 왼쪽으로 멀리 읍내 마을들을 내려다보면서 오른쪽으로는 해묵은 묘지들이 길가까지 바싹바싹 다가앉은 가파른 공동 묘지―그 공동 묘지 사이를 뚫어나가고 있는 한적한 고갯길목을 인근 사람들은 흔히 소릿재라 말하였다. 그리고 그 소릿재 공동 묘지 길의..

문학/소설전문 2021.01.19

이청준 '병신과 머저리' 전문

병신과 머저리 이청준 화폭은 이 며칠 동안 조금도 메워지지 못한 채 넓게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돌아가 버린 화실은 조용해져 있었다. 나는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형이 소설을 쓴다는 기이한 일은, 달포 전 그의 칼 끝이 열살배기 소녀의 육신으로부터 그 영혼을 후벼내 버린 사건과 깊이 관계가 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수술의 실패가 꼭 형의 실수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피해자 쪽이 그렇게 생각했고, 근 십 년 동안 구경만 해 오면서도 그쪽 일에 전혀 무지하지만은 않은 나의 생각이 그랬다. 형 자신도 그것은 시인했다. 소녀는 수술을 받지 않았어도 잠시 후에는 비슷한 길을 갔을 것 이고, 수술은 처음부터 절반도 성공의 가능성이 없었던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사건은 형에게서뿐 아니라 수술중엔 어..

문학/소설전문 2021.01.07

이청준 '선학동 나그네' 전문

선학동 나그네 - 이청준 남도 땅 장흥(長興)에서도 버스는 다시 비좁은 해안 도로를 한 시간 남짓 달린 끝에, 늦가을 해가 설핏해진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종점지인 회진(會鎭)으로 들어섰다. 차가 정류소에 멎어서자, 막판까지 넓은 차칸을 지키고 있던 칠팔 명 손님이 서둘러 자리를 일어섰다. 젊은 운전기사 녀석은 그새 운전석 옆 비상구로 차를 빠져 나가 머리와 옷자락에 뒤집어쓴 흙먼지를 길가에서 훌훌 털어 내고 있었다. 사내는 맨 마지막으로 차를 내려섰다. 차를 내린 다른 손님들은 방금 완도 연락을 대기하고 있는 여객선의 뱃고동 소리에 발걸음들이 갑자기 바빠지고 있었다. 사내는 발길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배를 탈 일이 없었다. 발길을 서두르는 대신 그는 이제 전혀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한동안, 밀물..

문학/소설전문 2021.01.05

이청준 '줄' 전문

줄 -「줄광대」 이청준 1 “여봐.” “…….” “여봐, 자?” “…….” 나는 여자를 버려두고 담배에다 새로 불을 붙였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여자가 먼저 약속을 어겨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밤이 한결 더 조용해진 것 같다. ─빨리 불 끄고 자요. 아까 여자는 슈미즈 바람이 되자마자 재촉을 해댔다. ─이봐, 난 네가 여자기 때문에 돈 주고 사온 게 아니야. 여자는 이불 깃을 턱으로 끌어 올리더니 한참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혼자 있기가 뭣해서 부른 것뿐이니까 여기서 밤을 지내주기만 하면 돼. 여자는 그제야 조금 웃었다 ─당신은 좀 이상한 분이군요. ─대신 나보다 먼저 자서는 안 돼. 여자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 눈을 감아버렸다. 삼백 원이면 싸다고 생각했다 몇..

문학/소설전문 2020.09.2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