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전문

이청준 '서편제' 전문

열공햐 2021. 1. 1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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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

이청준

  

 

 

차례  

 

서편제 

 

소리의 빛 

 

작가 노트 ‘<서편제>의 희원’ 

 

선학동 나그네 

 

작가 노트 우리의 영혼 위에 날아오르는 학’ 

 

 

 

서편제

남도사람1

이청준

 

여자는 초저녁부터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줄창 소리를 뽑아대고, 사내는 그 여인의 소리로 하여 끊임없이 어떤 예감 같은 것을 견디고 있는 표정으로 북장단을 잡고 있었다. 소리를 쉬지 않는 여자나, 묵묵히 장단 가락만 잡고 있는 사내나 양쪽 다 이마에 힘든 땀방울이 솟고 있었다.

전라도 보성읍 밖의 한 한적한 길목 주막. 왼쪽으로 멀리 읍내 마을들을 내려다보면서 오른쪽으로는 해묵은 묘지들이 길가까지 바싹바싹 다가앉은 가파른 공동 묘지그 공동 묘지 사이를 뚫어나가고 있는 한적한 고갯길목을 인근 사람들은 흔히 소릿재라 말하였다. 그리고 그 소릿재 공동 묘지 길의 초입께에 조개 껍질을 엎어놓은 듯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들앉아 있는 한 작은 초가 주막을 사람들은 또 너나없이 소릿재 주막이라 말하였다. 곡성과 상엿소리가 자주 지나는 묘지 길이니 소릿재라 부를 만했고, 소릿재 초입을 지키고 있으니 소릿재 주막이라 이를 만했다. 내력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그쯤 짐작을 하고 지나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소릿재와 소릿재 주막에는 또 다른 내력이 있었다. 귀밝은 읍내 사람들은 대개 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 보성 고을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이 소릿재 주막에 발길이 닿아 하룻밤쯤 술손 노릇을 하고 나면 그것을 쉬 알 수 있었다.

주막집 여자의 소리 때문이었다.

남자도 없이 혼자 몸으로 주막을 지키고 살아가는 여자의 남도소리 솜씨가 누가 들어도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손님 역시 그것을 이미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는 애초부터 그저 우연히 발길 닿는 대로 이 주막을 찾아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실상 읍내의 한 여인숙 주인으로부터 소릿재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미 분명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뒷얘기를 더 들을 것도 없이 그 길로 곧 자신의 예감을 좇아 나선 것이었다.

주막집에는 과연 심상치 않은 여인의 소리가 있었다. 초저녁께부터 시작해서 밤이 깊도록 지칠 줄 모르는 소리였다. 소릿재의 내력에는 그 서른이 채 될까말까 한 여자의 도도하고도 구성진 남도소리가 뒤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여인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주막을 찾아올 때의 그 부푼 예감이 아직도 흡족하게 채워지지 못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은 오히려 더욱 어떤 견딜 수 없는 예감 속으로 깊이 사내를 휘몰아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방안에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그는 거의 술 쪽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소리에만 넋이 팔려 있었다. 여자가 춘향가몇 대목을 뽑고 나자 사내는 아예 술상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제 편에서 먼저 북장단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좋으네. 참으로 좋으네……. , 이 술잔으로 목이나 좀 축이고 나서…….”

여자가 소리를 한 대목씩 끝내고 날 때서야 그는 겨우 생각이 미친 듯 목축임을 한 잔씩 나누고는 이내 또 다음 소리를 재촉해대곤 하였다.

그러다 여자가 이윽고 다시 수궁가한 대목을 구성지게 뽑아 제끼고 났을 때였다. 사내는 마침내 참을 수가 없어진 듯 그녀에게 다시 목축임잔을 건네면서 물었다.

한데…… 한데 말이네. 자넨 대체 언제부터 이런 곳에다 자네 소리를 묻고 살아오던가?”

……?”

여자는 사내의 그 조심스런 물음의 뜻을 금세 알아차릴 수가 없었던지 한동안 말이 없이 사내 쪽을 가만히 건너다보고 있었다.

이 고갯길을 소릿재라 이름하고, 자네 주막을 두고는 소릿재 주막이라 하던 것을 듣고 왔네. 그래 이 고을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지어 부르는 건 자네 소리에 내력을 두고 한 말이 아니던가?”

…….”

사내가 한번 더 물음을 되풀이했으나 여자는 이번에도 역시 대꾸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 여자의 침묵은 사내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여자는 다시 한동안이나 사내 쪽을 이윽히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뭔가 사내의 흉중을 헤아려 내고 싶어진 듯 천천히 고개를 저어댔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소릿재 주막의 사연은 자네가 첫번 임자가 아니더란 말인가? 자네 먼저 여기에 소리를 하던 사람이 있었더란 말인가?”

자기 예감에 몰리듯 사내가 거푸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소리에도 그러니까 앞서 이를 내력이 따로 있었더란 말이 아닌가?”

여자가 비로소 고개를 바로 끄덕였다. 그리고는 뭔지 괴로운 상념을 짓씹고 있는 듯 얼굴빛이 서서히 흐려지며 띄엄띄엄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답니다. 이 고개나 주막 이름은 제 소리 따위에 연유가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진짜 소리를 하시던 분이 계셨지요.”

그 사람이 누군가? 자네 먼저 소리를 하던 분이 어떤 사람이었던가 말이네.”

무덤의 주인이었지요.”

무덤이라니?”

요 언덕 위에 묻혀 있는 소리의 무덤 말씀이오. 소릿재를 알고 소릿재 주막을 알고 계신 양반이 소리 무덤 얘기는 아직 모르고 계시던 모양이구만요. 뒤쪽 언덕 위에 그분 무덤이 있답니다. 소리만 하다 돌아가셨길래 소리를 함께 묻어 드린 그분의 무덤이 말씀이오. 소릿재나 소릿재 주막은 그분의 무덤을 두고 생긴 말이랍니다…….”

다그쳐대는 사내의 추궁을 피할 수 없어진 듯 아득한 탄식기 같은 것이 서린 목소리로 털어놓은 여인의 이야기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625 전화로 뒤숭숭해진 마을 인심이 조금씩 가라앉아 가고 있던 1956, 7년 무렵의 어느 해 가을여자가 아직 잔심부름꾼 노릇으로 끼니를 벌고 있던 읍내 마을의 한 대가집 사랑채에 이상한 식객 두 사람이 들게 되었다. 환갑 진갑 다 지낸 그 댁 어른이 우연히 마을 나들이를 나갔다 데리고 들어온 소리꾼 부녀였다. 나이 이미 쉰 고개를 넘은 늙은 아비와 열다섯 살이 채 될까말까 한 어린 딸아이 부녀가 똑같이 주인 어른을 반하게 할 만큼 용한 소리꾼이었다.

주인 어른은 그 부녀를 아예 사랑채 식객으로 들여앉혀 놓고 그 가을 한철 동안 톡톡히 두 사람의 소리를 즐기고 지냈다.

아비나 딸아이나 진배없이 소리들을 잘했지만, 목소리를 하는 것은 대개 딸아이 쪽이었고 아비는 북장단을 잡는 쪽이었다. 주인 어른은 실상 아비 쪽의 소리를 더 즐기는 눈치였지만, 그 아비는 이미 늙고 병이 들어 기력이 쇠해져 있는 데다, 나어린 계집아이의 도도하고 창연스런 목청에는 주인 어른도 못내 경탄해 마지않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녀는 그 가을 한철을 하염없이 소리만 하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새 겨울이 닥쳐 오고, 겨울철 찬바람에 병세가 더치기 시작했던지, 가을철부터 심심찮게 늘어 가던 그 아비 쪽의 기침소리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발작기로 변해 갔다.

그러자 아비는 웬일인지 한사코 그만 어른의 집을 나가겠노라 이상스런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고, 고집을 말리다 못한 주인 어른이 마침내는 노인의 뜻을 알아차린 듯 찬바람 휘몰아치는 겨울 거리 밖으로 두 부녀를 내보내고 말았다.

이윽고 들려온 소문이, 그날 한나절 방황 끝에 두 부녀가 찾아든 곳이 이 공동 묘지 길 아래 버려진 헛간 같은 빈집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이 들어 거동이 어려워진 늙은 아비는 식음을 전폐한 채 밤만 되면 소리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을 전해 들은 주인 어른이 그때의 그 심부름꾼 계집이던 여인에게 다시 양식거리를 그곳까지 이어 보내곤 했다. 그녀가 심부름을 나가 보면 모든 게 소문대로였다. 고개 아랫마을 사람들은 밤만 되면 그 아비의 소리를 듣는댔다. 고갯길 주변에 공동 묘지가 생긴 이래로 어느 때보다도 깊은 통한과 허망스러움이 깃들인 소리라 했다.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귀찮아하거나 짜증스러워하는 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 부녀를 두고 까닭 없는 한숨소리들을 삼키며 자신들의 세상살이까지 덧없어할 뿐이었다.

그럭저럭 그 해 겨울도 다해 가던 음력 세모께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은 마침 가는 해를 파묻어 보내듯 온 고을 가득하게 밤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그날 밤 새벽녘에 아비는 드디어 이승에서의 마지막 소리를 하고 나서 그 길로 그만 피를 토하며 가쁜 숨을 거둬 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음날 저녁 무렵, 소식을 전해 들은 주인 어른의 심부름을 받고 여인이 다시 부녀의 오두막으로 갔을 때는, 재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미 공동 묘지 길목 위의 한구석에 소리꾼 아비의 육신을 파묻고 돌아오던 참이더랬다.

한데 또 하나 알 수 없는 것은 그렇게 해서 아비가 죽고 난 뒤의 계집아이의 고집이었다. 소리꾼 아비가 죽고 나자 여인네 집 주인 어른은 의지할 데 없는 그 계집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계집아이는 어찌 된 속셈인지 한사코 그 흉흉한 오두막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어른의 말을 따르기는커녕 나중에는 죽은 아비의 소리까지 그녀가 다시 대신하기 시작했다. 보다못해 주인 어른이 이번에는 또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어린 계집아이 혼자 지키고 앉아 있는 오두막으로 그 당신네 잔심부름꾼 여자아이를 함께 가 지내게 했고, 게다가 술청지기 사내까지 한 사람을 덧붙여 자그마한 술 주막을 내게 해주더라 했다.

무슨 소리를 들을 귀가 있을 턱은 없었지만, 저 역시도 그 여자나 여자의 소리에는 신기하게 마음이 끌리는 대목이 있었던 터라서, 어른의 말씀에 두말없이 주막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것이 그 여자한테 소리를 익히게 된 인연이었지요. 그 여자도 이번에는 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던지 그로부터 몇 년간은 주막을 찾아든 사람들 앞에 정성을 다해 소리를 했고, 손님이 없는 날은 저한테까지 소리를 배워 주느라 밤이 깊은 줄을 모를 때가 많았어요. 그런 세월을 꼬박 3년이나 지냈다오.”

여자는 이제 아득한 회상에서 정신이 깨어나고 있는 듯 서서히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여인은 아비의 기일이 찾아오면 음식을 장만하기보다 정갈한 술 한 되를 따로 마련하고, 고인의 영좌 앞에 밤새도록 소리를 하는 것으로 제례를 대신했는데, 어느 해 겨울엔가는 제주조차 따로 마련함이 없이 밤새도록 소리만 하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 날이 밝고 보니 그날 새벽으로 그녀는 혼자 집을 나간 채 그것으로 그만 다시는 영영 종적을 들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비의 삼년상이 끝나던 날 새벽의 일이었다 했다.

그런데 희한스런 일은 그 아비의 주검이 묻히고 나서도 계속 주막에서 들려 나오는 그 여인의 소리에 대한 아랫마을 사람들의 말투였다. 아비가 죽고 나선 그의 딸이 소리를 대신했고, 그 딸이 자취를 감추고 나선 여자가 다시 그것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아랫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그 소리를 옛날에 죽은 그 늙은 사내의 그것으로만 말했다는 것이다. 묘지에 묻힌 소리의 넋이 그의 딸과 여자에게 그것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딸이 하거나 여자가 대신 하거나 사람들은 언제나 그것을 죽은 사내의 소리로만 들으려 했고, 그렇게 말하기를 좋아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 사람들은 그 어른의 무덤을 소리 무덤이라고들 한답니다. 소릿재니 소릿재 주막이니 하는 소리도 거기서 나온 말이고요. 전 말하자면 그 소리 무덤의 묘지기나 다름없는 인간이지요. 하지만 전 그걸 원망하거나 이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답니다. 이래봬도 지금은 제가 그 노인네의 소리를 받고 있는 턱이니께요. 언젠가는 한 번쯤 당신의 핏줄이 이곳을 다시 스쳐갈 날을 기다리면서 이렇게 당신의 소리 덕으로 끼니를 빌어먹고 살아가는 것도 저한테는 이만저만한 은혜가 아니거든요.”

여자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끝맺고 나서 다시 소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흥보가가운데서 흥보가 매품팔이를 떠나면서 늘어놓는 신세 타령의 한 대목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자가 성큼 소리를 시작하자 사내도 이내 다시 북통을 끌어안으며 뒤늦은 장단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장단을 잡아 나가는 사내의 솜씨가 아까처럼 금세 소리의 흥을 타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는 아직도 뭔가 자꾸 이야기의 뒤끝이 미진한 얼굴이었다. 여자의 소리보다 아직은 이야기를 좀더 캐고 싶은 표정이 역연했다. 하지만 사내의 기색 따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여자의 소리가 점점 열기를 더해 가기 시작하자, 사내 쪽도 마침내는 북채를 꼰아 쥔 손바닥 안에 서서히 다시 땀이 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가슴이 끓어오르는 어떤 뜨거운 회상의 골짜기를 헤매어 들기 시작한 듯 두 눈길엔 이상스런 열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때 과연 몸을 불태울 듯이 뜨거운 어떤 태양의 불볕을 견디고 있었다.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의 머리 위에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여름 햇덩이가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의 한 숙명의 태양이었다.

파도비늘 반짝이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변가 언덕밭의 한 모퉁이그 언덕밭 한 모퉁이에 누군지 주인을 알 수 없는 해묵은 무덤이 하나 누워 있었고, 소년은 언제나 그 무덤가 잔디밭에 허리 고삐가 매여 놀고 있었다. 동백나무 숲가로 뻗어 나온 그 길다란 언덕밭은 소년의 죽은 아비가 그의 젊은 아낙에게 남기고 간 거의 유일한 유산이었다. 소년의 어미는 해마다 그 밭뙈기 농사를 거두는 일 한 가지로 여름 한철을 고스란히 넘겨 보내곤 했다.

소년은 날마다 그 무덤가 잔디에서 고삐가 매인 짐승 꼴로 긴긴 여름날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언덕배기 무덤가에서 소년은 더러 물비늘 반짝이며 섬 기슭을 돌아 나가는 돛단배를 내려다보기도 했고, 더러는 또 얼굴을 쪄오는 여름 태양볕 아래 배고픈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나저제나 밭고랑 사이로 들어간 어미가 일을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여름마다 콩이 아니면 콩과 수수를 함께 섞어 심은 밭고랑 사이를 타고 들어간 어미는 소년의 그런 기다림 따위는 아랑곳이 없었다. 물결 위를 떠도는 부표처럼 가물가물 콩밭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하루 종일 그 노랫소리도 같고 울음소리도 같은 이상스런 콧소리 같은 것을 웅웅거리고 있었다. 어미의 웅웅거리는 노랫가락 소리만이 진종일 소년의 곁을 서서히 멀어져 갔다간 다시 가까워져 오고, 가까워졌다간 어느 틈엔가 다시 까마득하게 멀어져 가곤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뙈기밭가로 해서 뒷산을 넘어가는 고갯길 근처에서 이상스런 노랫가락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밭두렁 길을 지나 뒷산으로 들어가는 푸나무꾼 같은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던 소리였다. 하지만 그날의 노랫가락은 동네 나무꾼들의 그것이 아니었다. 산으로 들어간 나무꾼도 없었고 소리를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도 없었다. 산을 휩싸고 있는 녹음 속 어디선가 하루 종일 노랫소리만 들려 왔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것은 이날 처음으로 그 산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어오던 어떤 낯선 노래꾼의 소리였다. 어쨌거나 그날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노랫소리는 진종일 해가 지나도록 숲속에서 흘러 나왔고, 그러자 한 가지 이상스런 일이 일어났다. 밭고랑만 들어서면 우우우 노랫소리도 같고 울음소리도 같던 어미의 그 이상스런 웅얼거림이 이날따라 그 산소리에 화답이라도 보내듯 더욱더 분명하고 극성스럽게 떠돌아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어미는 뜨거운 햇볕 아래 하루 종일 가물가물 밭이랑 사이를 가고 또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산봉우리 너머로 뉘엿뉘엿 햇덩이가 떨어지고, 거뭇한 저녁 어스름이 서서히 산기슭을 덮어 내려오기 시작하자, 진종일 녹음 속에 숨어 있던 노랫소리가 비로소 뱀처럼 은밀스럽게 산 어스름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곤 그 뱀이 먹이를 덮치듯 아직도 가물가물 밭고랑 사이를 떠돌고 있던 소년의 어미를 후닥닥 덮쳐 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그날의 소리는 아주 소년의 마을로 들어와 집 문간방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었으며, 동네 안에 둥지를 틀고 들어앉게 된 소리의 남자는 날만 밝으면 언제나 그 언덕밭 뒷산의 녹음 속으로 숨어 들어가 진종일 지겹도록 산울림만 지어 내리곤 하였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녹음이 소리를 숨기고 사는 양한 소리였다. 밭고랑 사이를 오가는 여인네의 그 괴상스런 노랫가락 소리도 날이 갈수록 극성스러워져 갔다. 소년은 여전히 그 무덤가 잔디에서 진종일 계속되는 노랫가락 소리를 들어야 했고, 소리를 들으면서 허기에 지친 잠을 자거나 소리를 들으면서 그 잠을 다시 깨야 했다. 잠을 자거나 잠을 깨거나 소년의 귓가에선 노랫소리가 떠돌고 있었고 소년의 머리 위에는 언제나 그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햇덩이가 걸려 있었다.

소리는 얼굴이 없었으되, 소년의 기억 속엔 그 머리 위에 이글거리던 햇덩이보다도 분명한 소리의 얼굴이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뜨겁게 불타고 있던 그 햇덩이야말로, 그날의 소년이 숙명처럼 아직 그것을 찾아 헤매 다니고 있는 그 자신의 운명의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소년이 그 소리의 진짜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것은 그의 어미가 어느 날 밤 뜻하지 않은 소동 끝에 홀연 저승길로 떠나가 버리고 난 다음날 아침의 일이었다. 소리가 마을로 들어서던 그 한여름이 지나가고 해가 훌쩍 뒤바뀌고 난 이듬해 이른 여름의 어느 날 밤, 소년의 어미는 땅덩이가 꺼져 내려앉는 듯한 길고도 무서운 복통 끝에 흡사 핏속에서 쏟아내듯 작은 살덩이 형상 하나를 낳아 놓고는 그날 새벽으로 그만 영영 눈을 감아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 아침에야 비로소 소리의 사내가 그 후줄근한 모습을 들러내며 소년의 집 사립문을 들어서던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아직도 그때의 그 사내의 얼굴이 소리의 진짜 얼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소년에겐 여전히 그 뜨거운 햇덩이가 소리의 진짜 얼굴로 남아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달라져 버린 소리의 사내가 핏덩이 같은 갓난애와 소년을 데리고 이 고을 저 고을로 소리를 하며 밥구걸을 다니고 있었을 때도, 소리의 진짜 얼굴은 언제나 그 뜨겁게 이글거리는 햇덩이 쪽이었다.

괴롭고 고통스런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심판인지 사내는 그 고통스런 소리의 얼굴을 버리고는 살 수가 없었다. 머리 위에 햇덩이가 뜨겁게 불타고 있지 않으면 그의 육신과 영혼이 속절없이 맥을 놓고 늘어졌다. 그는 그의 햇덩이를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소리를 찾아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식으로 이날 이때까지 반생을 지녀온 숙명의 태양이요, 소리의 얼굴이었다.

사내는 여자의 소리에 다시 그 자기 햇덩이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무서운 인내 속에 그 뜨겁고 고통스런 숙명의 태양볕을 끈질기게 견뎌 내고 있었다.

그러자 이윽고 여자의 소리가 끝났다. ‘흥보가한 대목이 다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여자가 소리를 끝내고 나서도 아직까지 그 끓는 태양볕을 머리 위에 견디고 있는 듯 한참이나 더 얼굴을 고통스럽게 찡그리고 있었다. 이마와 콧잔등에는 실제로 태양볕의 열기를 견디고 있던 사람처럼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래 그 여잔 한번 여길 떠나고 나선 그걸로 그만 소식이 아주 끊기고 말았더란 말인가?”

이윽고 깊은 상념에서 깨어난 사내가 곁에 놓인 술잔으로 천천히 목을 한 차례 축이고 나선 조심스럽게 여자를 다시 채근하고 들기 시작했다. 아깟번 이야기에서 미진했던 것이 다시 머리에 떠오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식이 아주 끊겼다면 자넨 그래 짐작조차 가는 곳이 없었던가? 그때 그 여자가 여길 떠나면 어느쪽으로 갔음직하다고 짐작조차 떠오르는 데가 없었던가 말이네.”

그러나 여자는 이제 그만 사내의 추궁에는 흥미가 없어진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이미 사내의 흉중을 환히 꿰뚫고 나서 섣부른 말대답을 부러 삼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꼬리를 물고 있는 사내의 추궁에도 그녀는 이제 좀처럼 시원한 대답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소만, 어디 그런 짐작이 닿을 만한 곳이나 있었겠어요.”

몰라서도 그럴 수는 있었겠지만, 말을 자꾸 피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가는 곳을 짐작할 수 없었다면, 그 사람들 부녀가 어디서부터 이 고을로 흘러 들었는지, 전부터 지내 오던 곳을 얘기 들은 일은 있었을 게 아닌가?”

소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한곳에 정해 놓고 몸을 담는 일이 있었겠소. 그저 남도 일대를 쉴새없이 두루 떠돌아다녔다더구만요.”

소리를 하던 부녀간 외에 따로 친척 같은 것도 없고? 그 여자한테 무슨 동기간 비슷한 것이라도 말이네…….”

그야 태생지가 어딘 줄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집안 내력인들 곧이곧대로 속을 털어 보이려 했겠소…….”

그런데 그때였다. 여자의 말 가운데 부지중 뜻밖의 사실이 한 가지 흘러 나왔다.

행여 또 그런 핏줄 같은 것이 한 사람쯤 있었다 해도 앞을 못 보는 그 여자 처지에 떳떳이 얼굴을 내밀고 찾아 나설 형편도 못 되었고요.”

그녀가 장님이었다는 소리였다.

아니, 그 여자가 그럼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단 말인가? 그리 된 내력이 도대체 어떤 것이었다던가? 그 여자 아마 태생부터가 장님으로 난 여잔 아니었을 거 아닌가 말이네.”

사내의 표정이 갑자기 사납게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는 부지중에 깜박 그런 말을 하고 나서도, 사내의 반응에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천연스럽게 말꼬리를 다시 눙치고 들었다.

그 여자가 장님이었다는 걸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하기야 그 여잔 눈이 먼 사람답지 않게 거동이 워낙 가지런해서 함께 지내고 있을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을 때가 많았으니께요. 하지만 손님 말씀대로 그 여자도 태생부터가 장님은 아니었던가 봅디다.”

그래, 어떻게 되어서 눈을 잃게 되었다던가? 사연을 들은 것이 있으면 들은 대로 얘기를 좀 털어놔 보게.”

사내의 목소리는 억제할 수 없는 예감에 떨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는 처음 얼마간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말끝을 자꾸 흐리려 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사내의 기세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상세한 내력까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요…….”

딸아이에게 눈을 잃게 한 것은 다름아닌 그녀의 아비 바로 그 사람이었을 거라 말한 것이 여자가 사내에게 털어놓은 놀라운 비밀의 핵심이었다.

소리꾼의 딸아이 나이 아직 열 살도 채 못 되었을 때어느 날 밤 그녀는 갑자기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그의 아비 곁에서 잠을 깨어 일어나게 되었고, 잠을 깨고 일어나 보니 그녀의 얼굴은 웬일로 숯불이라도 들어부은 듯 두 눈알이 모진 아픔으로 활활 타들어 오는 것 같았고, 그것으로 그녀는 영영 앞을 못 보는 장님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라 했다. 여자의 아비가 잠든 계집 자식 눈 속에 청강수를 몰래 찍어 넣은 것이라 했다. 그런 얘기는 여자가 일찍이 읍내 대가댁 심부름꾼 시절서부터 이미 어른들에게 들어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눈으로 뻗칠 사람의 정기가 귀와 목청 쪽으로 옮겨가 눈빛 대신 목청 소리를 비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의 여자는 결코 그런 끔찍스런 얘기를 믿으려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사실이 못내 궁금해진 여자가 그 눈이 먼 여인 앞에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고 물었을 때 가엾은 그 계집 장님은 길고 긴 한숨으로 그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믿어도 좋은 듯이 대답을 대신하고 말더랬다.

한데 손님은 어째서 자꾸 그런 쓸데없는 얘기에까지 흥미가 그리 많으시오? 가만히 보니 아까부터 손님은 제 소리보다 외려 그 여자 이야기 쪽에 정신이 팔리고 계신 듯해 보이시던데 손님한테도 무슨 그럴 만한 곡절이 계신 게 아니시오?”

이야기를 대충 끝내고 난 여자가 짐짓 심통을 좀 부려 보고 싶은 어조로 묻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는 이제 그의 오랜 예감이 비로소 어떤 분명한 사실에 이르고 있는 듯 얼굴빛이나 몸짓들이 부쩍 더 사나워져 갔다. 얼굴 한구석엔 내력을 알 수 없는 어떤 기분 나쁜 살기의 빛마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심통스런 추궁엔 거의 몸부림이라도 치듯이 고갯짓을 거칠게 가로 저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미처 그런 눈치까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담 손님은 제 얘길 너무 곧이곧대로 믿고 계신가 보구만요. 전 아직도 그걸 통 믿을 수가 없는데 말씀이오. 눈을 그렇게 상해 놓으면 목소리가 대신 좋아진다는 거, 아닌게아니라 그럴 수도 있는 일이겠소?”

무심결에 묻고 나서야 그녀는 그만 제풀에 문득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번에도 계속 고개만 가로 저어대고 있는 손님의 눈빛에서 그녀도 비로소 그 내력을 알 수 없는 살기 같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직도 무엇 때문에 갑자기 사내가 그런 눈이 되고 있으며, 무엇이 아니라고 그토록 고갯짓을 되풀이하고 있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눈을 멀게 해도 소리가 고와질 수는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좋은 목청을 길러 주기 위해 그 아비가 딸년의 눈을 멀게 했다는 소리꾼 부녀의 이야기 전부를 부인하고 싶은 것인지, 그녀로서는 도대체 손님의 고갯짓을 옳게 새겨 읽어 낼 재간이 없었다. 더더구나 여자로서는 그 딸년의 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더 분명하고 비정스런 소리꾼 아비의 동기를 점치고 있는 사내의 깊은 속마음은 상상조차도 못했을 일이었다.

 

어이 가리 어이 가리, 황성 먼길 어이 가리

오늘은 가다 어디서 자고, 내일은 가다 어디서 잘 거나…….

 

한동안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여자가 이윽고 사내를 유인하듯 천천히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공연히 거북해진 방안 분위기를 소리로나 눅여 보고 싶은 심사인 듯했다.

심청가중에 심봉사가 황성길을 찾아가는 정경으로, 여자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유장하고 창연스런 진양조 가락을 뽑아 넘기고 있었다. 지그시 눈을 내리감은 사내의 장단 가락이 졸리운 듯 이따금씩 여자를 급하게 뒤쫓곤 했다.

사내는 이미 여자의 소리를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그 어릴 적의 이글거리는 햇덩이를 머리 위에 뜨겁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비 아닌 아비가 되어 버린 옛날 사내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미를 잃고 난 소년이 사내의 그 소리 구걸길을 따라 나선 지도 어언 10여 년에 이르고 있었다.

사내는 채 철도 들지 않은 계집아이와 소년을 앞세우고 고을고을 소리를 팔며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내는 항상 그의 어린것에게도 소리를 시키는 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어린 녀석은 그저 마지못해 소리를 흉내내는 시늉을 해 보일 뿐, 정작으로 그것을 익히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사내는 마침내 녀석을 단념하고 이번에는 그보다도 더 나이가 어린 계집아이 쪽에 소리를 배워 주기 시작했다. 계집아이에겐 소리를 시키고 사내녀석에겐 북장단을 치게 했다. 재간이 좀 뻗친 탓이었을까? 계집아이 쪽은 신통하게도 소리를 잘 흉내내었고, 목청도 제법 들을 만했다. 사람들이 모인 데서 아비 대신 오누이가 소리를 놀아 보여서 치하를 듣는 일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사내는 끝내 나어린 오뉘 소리꾼을 만들기가 소원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어린 사내녀석은 아비의 뜻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사내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자기 손으로 그 나이 먹은 사내와 사내의 소리를 죽이고 말 은밀한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어미를 죽인 것이 바로 사내의 소리였다. 언젠가는 또 사내가 자기를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녀석을 떨리게 했다. 소리를 하고 있을 때밖엔 좀처럼 입을 여는 일이 드문 버릇이나 사내의 그 말없는 눈길이 더욱더 녀석을 두렵게 했다. 어미의 원한을 풀어 주고 싶었다. 사내가 자기를 해치려 들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사내를 없애 버려야만 했다. 사내를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에 그런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내가 두렵기 때문에 그가 시키는 대로 북채잡이 노릇까지는 터놓고 거역을 할 수가 없었다. 순종을 하는 체해 보이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사내가 소리를 하고 있을 때, 그 하염없고 유장한 노랫가락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녀석은 번번이 그 잊고 있던 살기가 불현듯 되살아나곤 했다. 그는 무엇보다 그 사내의 소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타고 이글이글 떠오르는 뜨거운 햇덩이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사내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문득문득 기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거기다가 사내는 또 듣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자기 소리에 취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산길을 지나가다 인적이 끊긴 고갯마루턱 같은 데에 이르면 통곡이라도 하듯 사지를 풀고 앉아 정신없이 자기 소리에 취해 들곤 하였다. 사내가 목청을 돋워 올리기 시작하면 묵연스런 산봉우리가 메아리를 울려 오고, 골짜기의 산새들도 울음소리를 그치는 듯했다. 녀석이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불타고 있는 그의 햇덩이를 보는 것은 그런 때의 일이었다. 그런 때는 유독히도 더 사내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살의가 치솟곤 했다.

사내의 소리는 또 한 가지 이상스런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에게 살의를 잔뜩 동해 올려놓고는 그에게서 다시 계략을 좇을 육신의 힘을 몽땅 다 뽑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녀석이 정작 그의 부푼 살의를 좇아 나서 볼 엄두라도 낼라치면, 사내의 소리는 마치 무슨 마법의 독물처럼 육신의 힘과 부풀어 오른 살의의 촉수를 이상스럽도록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곤 하였다. 그것은 심신이 온통 나른하게 풀어져 버리는 일종의 몸살기와도 비슷한 증세였다.

그런데 더욱더 알 수 없는 것은 그때마다 녀석을 대하는 사내의 태도였다.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은 그때 사내 쪽에서도 어느만큼은 벌써 그의 마음속 비밀을 눈치채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다. 그것이 녀석으로 하여금 그를 더욱 두려워하게 한 이유의 하나가 되고 있었다. 사내를 해치려 하고 있는 터에, 그리고 그것을 그토록 오랫동안 망설이고 주저해 온 터에 사내라고 그에게서 전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한데도 사내는 전혀 수상한 낌새를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체 무심스레 소리에만 열중하고 있기가 예사였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다 꿰뚫어 알고 있으면서도(그가 소리를 할 때마다 녀석에게 이상한 살기가 부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오히려 녀석을 기다리며 유인이라도 해대고 있는 듯이 끝없이 깊은 절망과 체념기가 깃들인 모양새로 더욱더 극성스레 목청만 돋워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오후였다.

녀석은 마침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소리꾼 일행은 그날도 어느 낯선 고을의 산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따라 사내는 또 길을 걸으면서까지 그 극성스런 소리를 쉬지 못하고 있었다. 쉬엄쉬엄 소리를 뿌리며 산길을 지나가던 일행이 이윽고 한 산마루의 고갯길을 올라서자, 사내는 이제 거기다 아주 자리를 잡고 주저앉아 새판잡이로 다시 목청을 놓기 시작했다. 가을산은 붉게 불타고 골짜기는 뽀얗게 멀어져 있었다. 사내는 그 산과 골짜기에서도 깊은 한이 솟아오르는 듯 오래오래 소리를 계속 했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자기 소리에 힘이 지쳐 난 듯 길가 가랑잎 위로 슬그머니 몸을 눕히더니 그 길로 그만 잠이 든 듯 기척이 조용해졌다.

그런데 녀석은 또 그날따라 사내의 길고 오랜 소리로 하여 사지가 더욱 나른하게 힘이 빠져 있었다. 사내의 노랫가락이 너무도 망연하고 절망스러웠다. 잦아들 듯한 한숨으로 제풀에 공연히 몸이 떨려 올 지경이었다.

녀석은 이제 더 이상 견디고 있을 수가 없었다. 까닭 없이 가슴에 복받쳐 오르는 그 기이한 서러움이 녀석을 더 참을 수 없게 했다.

그는 이윽고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잠잠해진 사내의 주위를 조심조심 몇 차례나 맴돌았다.

하지만 사내는 그때 실상 잠이 든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녀석이 마침내 계집아이조차 모르게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가슴에 안고 가만가만 사내의 뒤쪽으로 다가서 갔을 때였다. 그리고는 제 겁에 제가 질려 어찌할 줄을 모르고 한참 동안이나 그냥 몸을 떨고 서 있을 때였다. 녀석은 그때 차라리 사내가 잠을 깨고 일어나 그의 거동을 들켜 버리게라도 되었으면 싶던 참이었는데, 사내가 정말로 천천히 머리를 비틀어 뒤에 선 녀석을 돌아다보았다.

왜 그러고 있는 거냐?”

그는 무엇인가 기다리다 못한 사람처럼 조금은 짜증이 섞인 듯한 목소리로 녀석을 슬쩍 나무랐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나무라려고 들지도 않았고 돌멩이의 사연을 묻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그 조용한 한마디뿐 녀석의 심중을 유인하듯 다시 고개를 돌려 잠이 든 시늉이 되고 말았다.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작자는 처음부터 녀석의 마음속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어 보였다. 한데도 위인이 무슨 생각으로 그토록 아무것도 모른체해 줄 수가 있었는지, 그 점은 이날 이때까지도 해답을 풀어 낼 수 없는 기이한 수수께끼였다.

녀석이 사내의 곁을 떠난 것은 그러니까 그런 일이 생겼던 바로 그날 오후의 일이었다. 사내는 끝내 녀석을 모른체했고, 녀석은 더 이상 자신을 견디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끌어안은 돌멩이를 버리고 용변이라도 보러 가듯 스적스적 산길가 숲속으로 들어가 그 길로 영영 두 사람 앞에 모습을 감춰 버리고 만 것이다. 숲속을 멀리 빠져 나와 두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되었을 때, 그를 부르며 찾아 헤매는 듯한 사내의 소리가 골짜기를 아득히 메아리쳐 오고 있었지만, 녀석은 점점 소리가 멀어지는 반대쪽으로 발길을 재촉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녀석에겐 아직도 그 골짜기를 길게 메아리쳐 오던 사내의 마지막 소리를 피해 갈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소리를 만나기만 하면 그때의 그 사내의 소리를 다시 듣곤 했다.

이날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이날 밤도 그는 어느새 안타깝게 그를 찾아 헤매는 사내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버릇처럼 어디론가 그것에서 멀어지려 숨이 차도록 다급한 발길을 끝없이 재촉해 가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고 목을 좀 쉬게.”

사내가 마침내 제풀에 힘이 파한 얼굴로 여자를 제지하고 나선 것은 그러니까 전혀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었던 셈이다.

 

사내는 이제 얼굴빛이 참혹할 만큼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래 여자는 그럼 자기의 눈을 멀게 한 비정스런 아비를 어떻게 말하던가?”

몇 잔째 거푸 술잔을 비우고 난 사내가 이윽고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여자에게 물었다.

그 여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답니다.”

사내 앞에선 이제 더 이상 숨길 일이 없다는 듯 여인의 말투가 한결 고분고분해지고 있었다.

여자가 말한 일이 없더라도 평소에 아비를 대하는 거동 같은 것을 보아 그 여자가 제 아비를 용서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는 맘속으로 짐작해 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말이네.”

빈틈없이 파고드는 사내의 추궁에 여자는 거의 억지 짐작을 꾸며 대고 있는 식이었다.

행동거지로만 본다면야 말도 없고 원망도 없었으니 용서를 한 것 같아 보였지요. 더구나 소리를 좀 안다 하는 사람들까지도 그걸 외려 당연하고 장한 일처럼 여기고들 있었으니께요.”

그 목청을 다스리기 위해 눈을 멀게 했을 거라는 얘기 말인가?”

목청도 목청이지만, 좋은 소리를 가꾸자면 소리를 지니는 사람 가슴에다 말못할 한을 심어 줘야 한다던가요?”

그래서 그 한을 심어 주려고 아비가 자식 눈을 빼앗았단 말인가?”

사람들 얘기들이 그랬었다오.”

아니지…… 아닐 걸세.”

사내가 다시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람의 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어 주려 해서 심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닐 걸세. 사람의 한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누구한테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어떤 사람들한텐 사는 것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것이 사는 것이 되듯이 말이네……. 그보다도 고인한테 좀 미안한 말이지만, 노인은 아마 그 여자의 소리보다 자식년이 당신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해두고 싶은 생각이 앞섰을지도 모르는 일일 거네.”

여자는 드디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사내는 이제 그 여자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아직도 한참이나 깊은 상념 속을 헤매듯이 아득하고 몽롱한 목소리로 혼자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여인이 제 아비를 용서한 것은 다행한 일이었을지 모르는 노릇이지. 아비를 위해서도 그렇고 그 여자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여자가 제 아비를 용서하지 못했다면 그건 바로 원한이지 소리를 위한 한은 될 수가 없었을 거 아닌가. 아비를 용서했길래 그 여자에겐 비로소 한이 더욱 깊었을 것이고…….”

여자가 문득 다시 사내를 건너다보았다.

손님께서는 아마 그렇게 믿어야 마음이 편해지시는가 보군요.”

그리고 여자는 그제서야 사내가 안심이 된다는 듯 모처럼만에 한차례 웃음을 보이고 나더니 이번에는 별로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스스럼없이 물었다.

그래, 손님께서 이제 그 여자가 장님이 되어 버린 것을 아시고도 여전히 그 누이를 찾아 헤매 다니실 참인가요?”

여자의 그 갑작스런 발설에도 사내는 무얼 좀 새삼스럽게 놀라워하는 기색 같은 것이 전혀 안 보였다.

그저 여망이 있다면 멀리서나마 그 여자 소리라도 한번 만나게 되었으면 싶네만, 글쎄 언제 그런 날이 있을는지…….”

지나가는 소리처럼 힘들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는, 그녀가 불쑥 자신의 맘속을 짚어 낸 것이 새삼 크게 궁금해지기라도 한 듯 비로소 조금 생기가 돋아 오른 눈길로 여자 쪽을 그윽히 건너다보았다.

이젠 여자 쪽에서도 벌써 사내의 그런 눈치를 알아차린 듯, 그러나 어딘가 지레 시치미를 떼고 있는 목소리로 엉뚱스레 의뭉을 떨어대고 있었다.

아마 그 여자 어렸을 때 소리 장단을 부축해 준 북채잡이 어린 오라비가 한 분 계셨더라는데, 제가 여태 그걸 말씀드리지 않고 있었던가요?”(1976)

 

 

소리의 빛

남도사람2

 

주막집은 장홍읍(長晎邑)을 아직 10여 리쯤 남겨 놓고 탐진강(耽津江) 물굽이의 한 자락을 끼고 돌아앉아 있었다. 이웃 고을 강진에서 장홍읍으로 들어가는 지방도로 가로수열이 저만치 마주 달려가고, 장홍읍의 표상처럼 얘기되는 억불산 바위 정봉이 10여 리 저쪽 하늘 위로 뽀얗게 솟아올라 보이는 강물굽이바로 이 탐진강 강물굽이의 버스길 양편에 10여 가호의 작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고, 주막집은 이 작은 마을에서도 좀더 물가 가까이까지 아래켠으로 자리를 내려앉아 있었다. 주막이라야 술손이 붐빌 만큼 한 길목이 못 되고 보니 길을 지나가는 반뜨내기 술손들로는 술청 살림 요량도 제대로 세워 나가기 어려운 집이었다.

옥호(屋號)도 없는 이 산골 주막집 살림은 그러니까 대개 3대째나 대물림을 이어온 이 집 주인 사내 천씨의 천렵술에 의지하는 바가 훨씬 큰 편이었다. 주인 천씨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읍내 쪽에서 제 발로 우연히 길을 찾아 든 색시와 하룻밤 동안 신방 비슷한 것을 차려 보았을 뿐 이튿날 새벽에 평생 색시가 되어줄 줄 알았던 여자가 농짝 서랍을 몽땅 뒤져 싸들고 줄행랑을 놓아 버린 후로는 그의 나이 쉰을 넘긴 이날 이때까지 평생을 줄창 홀아비로 늙어 가는 위인이었다. 그 천씨 사내가 아직은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대물림을 받은 천렵꾼답게 강을 열심히 나다녔고, 그 탐진강 천렵에서 건져 낸 강물고기들을 10여 리 바깥 읍내 술가게들에까지 안주감으로 먹여 오는 것으로 간신간신 주막 살림을 요량해 오는 터였다.

그런 주막이었다.

이 주막집에 좀 이상스런 여자가 하나 있었다. 주인 사내 천씨가 강으로 나가고 나면 술청 일을 대신 맡아 손님도 맞고 술시중도 들곤 하는, 이를테면 주모 격인 여인이었다. 나이 한 서른쯤 나 보이는 장님 색시였다. 눈을 못 보는 깐으로는 술청 일이 완전히 손에 익어 있어 별다른 불편을 느끼는 것 같진 않았지만, 하여튼 이런 궁벽한 주막집에 그나마도 하필 장님 색시를 술청 주모로 들여앉히고 있는 데에는 어딘지 좀 심상찮은 사연이 있음직했다. 하지만 그 장님 색시나 주인 사내 사이에선 이렇다 할 사연 같은 것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눈이 멀어 도망질 같은 건 엄두를 못 낼 거라 믿는 늙은 홀아비 천씨가 여자를 슬그머니 제 색시로 주저앉히고 싶어 그랬는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있었지만, 여자가 주막에 온 지도 그럭저럭 10년을 헤아리게 된 이날까지 별반 그럴 만한 낌새가 엿보이지 않는 걸 보면 그런 것도 결코 아닌 것 같았다. 주인 사내 천씨가 애초에 여자를 못 볼 고자라거니 어쩌니 하는 불확실한 소문들만 이웃간에 가끔 분분해지곤 할 뿐이었다.

주막 주인 천씨나 장님 색시 쪽은 그 작은 마을 안의 꺼림칙스런 소문들마저 전혀 아랑곳을 하지 않으려 했다. 여자는 누구한테나 자기 신상에 관한 일로는 입을 열어 보인 일이 없었고, 천씨 사내도 여인의 일에는 반벙어리나 거의 다름이 없는 행세였다. 마을 사람들과는 얼굴을 대하기조차 두려운 듯, 날만 새면 사내는 하루 종일 혼자서 강물을 오르내리면서 지냈고, 여자는 여자대로 혼자서 말없이 술손을 맞고 보내는 일이 아니면 가끔 가다 그 술청마루 끝 볕발 속으로 나와 앉아 보이지도 않는 눈길을 들판 건너 먼 산허리께로 내던진 채 끊임없이 무엇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다만 해가 져서 주인 천씨가 강물에서 돌아오고, 더 이상 술손을 기다릴 일이 없을 만큼 밤이 한참 깊고 나면, 이 조그만 주막집 구석방 한 모퉁이에서 여자의 놀랍도록 구성진 남도 노랫가락이 흘러 나올 때가 종종 있었는데, 밤이 그쯤 깊고 나면 이웃의 10여 가호 마을 사람들은 이미 잠이 들어 버렸거나, 잠이 들지 않은 사람이라도 거리가 좀 떨어진 주막께서 흘러 나오는 소리엔 귀가 잘 닿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아니 어쩌다 밤늦게 주막길을 지나다 소리를 들은 사람이 몇몇쯤 있었다 해도, 그들 역시 그 소리를 아마 여자를 품을 수 없는 고자 주인놈의 해괴한 밤놀이쯤 되는 게라고, 고개를 잠시 갸우뚱거려 보았을 뿐, 여자의 소리를 별로 귀담아들어 둘 줄은 몰랐을 터였다.

임자년(壬子年) 한 해가 다 저물어 가던 늦가을의 어느 날 저녁 무렵, 인근에선 전혀 낯이 익지 않은 외지 손님 하나가 이 주막을 찾아 들었다. 초가집 울타리 너머로 탐스럽게 휘어 뻗은 늦가을의 서리 감나무라도 구경하듯 차도 타지 않고 읍내 쪽에서 터벅터벅 버스길을 걸어 들어온 사내는, 어딘지 피곤기 같은 것이 짙게 어려 있어 잘해야 마흔 줄을 갓 올라섰을 그의 나이가 쉰 살도 더 넘어 보일 만큼 추연스런 인상이었다. 서울에서 무슨 한약재 수집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 다니노라는 사내는 그러나 결코 그 한약재 수소문을 위해 이 마을 주막을 찾은 것 같지가 않았다. 마을로 들어서선 누구 동네 사람들한테 약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보기는커녕 길 안내 한마디 물은 일 없이 단걸음에 곧장 주막을 찾아 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마 주막을 찾아 들 때부터 이미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작정이었던 듯 추근추근 한가한 취기를 돋워 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것은 그 눈먼 주막집 여자에 대한 사내의 태도였다. 그는 처음 술손을 맞는 주막 여자가 눈이 먼 장님인 것을 알고서도 조금도 이상해하거나 꺼림칙스러워 하는 눈치를 안 보였다. 오히려 그는 미리부터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그렇지도 않았다면 그 눈이 먼 여자의 조용하고도 침착스런 거동거지로 하여 오히려 어떤 나른한 안도감 같은 걸 느끼고 있는 듯한 그런 차분스런 표정이었다. 사내는 그저 무심결인 듯 여자의 옆얼굴을 잠깐씩 스쳐볼 뿐, 여기서는 이제 아무것도 조급해야 할 일이 없다는 듯 추근추근 술청마루에 걸터앉아 술잔만 비워 내고 있었다.

사내에게 알 수 없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오늘 밤엔 자네 소리나 몇 대목 해줄 수 없겠는가?”

저녁참이 훨씬 지나고서였다. 주막집 천씨가 강에서 돌아오자 여자가 그 주인 사내 방으로 저녁상을 들여보내고 난 다음이었다. 싸늘한 가을밤 한기를 피해 이번에는 여자의 방안으로 아주 술자리를 옮겨 앉은 사내가 뜻밖의 주문을 건네 왔다.

내 우연찮게 읍내서부터 자네 소문을 듣고 왔네. 술맛보단 소리를 좇아 남도 천지 안 돌아 본 데가 없는 위인이니, 내 자네 소리만 있어 주면 이대로 앉아 밤이라도 새우겠네.”

무심스럽기만 하던 사내답지 않게 간절한 어조였다. 어지간히 소리를 찾아 다닌 위인인 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누구에게선가 이미 여자의 소리에 대한 귀띔을 받고 찾아온 손님이 분명했다.

여자는 처음 1년 가야 한두 번 있을 둥 말 둥한 술손의 드문 주문에 몹시도 귀가 선 얼굴이었다. 자신의 소리를 사주려는 데 대한 고마움은커녕 뜻하지 않게 희롱을 당한 사람처럼 엷은 노기의 빛이 잠시 그녀의 얼굴 위를 스쳐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이내 사내의 소청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 같았다. 두 번째 주문이 되풀이되었을 때 여자의 노기는 어떤 깊은 체념기 속에 서서히 스러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술손으로 하여 새삼 알 수 없는 예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듯 이상스럽게 망연스런 얼굴로 술손 쪽을 멀거니 건너다보고 있었다.

여자가 소리를 시작한 것은 그러니까 주막집 봉창 너머로 굽이치는 강물소리가 훨씬 더 가깝게 부풀어오른 늦저녁 무렵부터였다. 여자는 아직 술청과 천씨 사내의 안방을 몇 차례 더 드나들고 난 다음에야 새삼스럽게 다시 머리를 손질하고, 그리고 벽에 걸린 한복 치마저고리로 옷차림까지 새로 단정하게 고쳐 입고 나왔다. 그런 다음 그녀가 선반에 올려놓은 낡은 북과 북채를 조용히 안아 내린 것으로 이내 소리가 시작된 것이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려 하고

제주 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

 

흔히 남쪽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호남가라는 단가(短歌)였다. 북통을 지그시 끌어안은 여자는 그 차분하고 태연한 중모리 장단의 북가락을 함께 곁들여 가며 장중하고 끓어오르는 듯한 남정네의 질긴 목청으로 첫마디서부터 힘차고 도도하게 소리를 뽑아 나갔다.

 

홍양에 돋은 해는 보성에 비쳐 있고

고산의 아침 안개 영암을 들러 있다……

 

아무래도 여자답지 않은 목청이었다.

남도소리 특유의 애조와 한스러움은 있었으나 그 또한 서리 내린 가을 달밤의 기러기소리와도 같이 미려한 여인의 수수로움이 아니라, 무럭무럭 처연스럽게 가슴을 복받쳐 오르는 장부의 통한이 역연한 소리였다. 그러나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소리를 듣고 있는 술손의 표정에는 이번에도 별로 의아스러운 빛이 없었다. 남정네처럼 장중하고 도도한 여자의 목청 속에, 그 여인스럽지 않게 허허한 장부풍의 통한 속에 그는 오히려 깊은 수긍과 감동을 맛보는 듯 머리를 크게 주억이며 깊이깊이 소리에 취해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어느새 호남가한 가락을 끝내고 나자 사내는 비로소 다시 눈을 번쩍 뜨며,

좋으네, 참으로 좋으네…….”

진심 어린 치하와 목축임잔을 건네고 나선 이내 또 다음 소리를 거푸 청하는 것이었다. 여자는 손님이 건네주는 술잔을 공손히 비워 낸 다음 그 술잔을 다시 남자한테로 되돌리고 나더니, 그녀로서도 이미 작정이 되어 있었던 듯 스스럼없이 또 다음 소리의 채비를 시작했다.

 

아서라 세상사 쓸데없다…… 군불견 도원도리……

 

이번에도 똑같이 호방하고 장중스런 여자의 목청에 사내는 다시 눈을 감고 취한 듯이 깊은 고개 장단을 보내기 시작했다. 여자의 소리에는 점점 더 힘이 태이기 시작하고 이마와 콧잔등에 땀방울이 솟아 맺힐 만큼 치열스런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소리를 듣고 있는 사내의 얼굴에도 차츰 어떤 고통이 빛이 어려 들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알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일그러진 그의 이마까지 번들번들 어느새 땀에 젖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리 인생 춘몽과 같으오니 한 잔 먹고 즐겨 보세.

 

여자의 구성진 목소리가 편시춘한 가락을 끝내고 나자 사내는 이번에도 역시 그녀에게 목축임을 한 잔 건네고 나서 거푸거푸 다음 소리를 재촉했다.

하지만 사내는 아무래도 숨이 자주 끊어지는 단가 나부랭이로는 마음이 차오르질 않은 모양이었다. 여자가 어느새 또 태평가한 가락을 힘들여 끝맺고 나자 손님은 드디어 안타까운 듯이 새판잡이 주문을 건넸다.

, 이제 그쯤 했으면 목도 제법 닦았을 테니 이제부턴 좀 진짜 소리를 해보게나. 춘향가라든지 심청가라든지, 아무거나 자네 맘에 맞는 대로 한 대목씩 말이네.”

단가는 그만두고 진짜 판소리를 하라는 청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여태 목을 트느라 소리를 해온 것이 아니었던 만큼 힘이 제법 파해 있었다. 아니, 여자에겐 실상 이제 힘이 파하고 안 파하고가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여자는 소리를 하는 동안 손의 숨소리가 이상스럽게 자꾸 거칠어져 가는 기미를 느끼고 있었다. 아까부터 줄곧 그녀의 보이지 않는 눈길 속을 맴돌던 어떤 예감의 빛이 문득 그녀의 소리 동작을 멈추게 하였다.

소리 듣기를 그토록이나 즐겨 하시오?”

…….”

여자의 물음에 무엇인가 속을 들킨 것처럼 표정이 움칠해진 사내가 새삼스럽게 다시 유심스런 눈초리로 그녀를 곰곰 건너다보았다. 여자가 소리를 좀 쉬고 싶은 게 분명했다.

소리를 좋아하시게 된 내력이라도 있으시오? 소리 좋아하시는 양반치고 내력 없는 분은 없습데다.”

확신을 가진 듯 여자가 거푸 손님에게 물었다.

내력이라니…….”

사내가 잠시 말을 망설이는 듯하더니 마침내 무슨 속다짐이라도 하고 난 듯 갑자기 한 차례 한숨소리 같은 것을 길게 내뿜었다.

하기야 내력으로 말한다면 그런 것이 아주 없지도 않았제.”

그리고는 그 한숨을 토해 낼 때의 망연스런 표정만큼이나 허허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내력이 있었제…….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록 아직 이 흉한 꼴을 하고 남도 천지 소리를 찾아 안 가본 데가 없는 몸이라네. 하지만 오늘 밤 자네 소리를 만나고 보니 후회를 안 해도 좋았을 세월이었네…….”

들을 만한 데도 없이 천하기만 한 제 소리요.”

여자가 짐짓 겸손해 하였다. 그러나 사내는 희미한 웃음기 속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닐세, 자네 소리에는 내게 무엇보다 반갑고 소중한 것이 있었네. 소리보다도 나는 그 소리 속에서 그것을 만나러 이 세월을 허송하고 다녔을지도 모르는 소중스런 것이 말이네.”

그것이 무엇이오! 손님한테 그토록 소중스러운 것이 무엇이오.”

눈먼 여자의 표정이 점점 초조하고 안타깝게 변해 가고 있었다.

자네가 정 듣고 싶다면 내 말을 해줌세…….”

사내가 천천히 그 소중스런 것의 내력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어렸을 때 잃었거나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잃어 가고 있던 어떤 뜨거운 햇덩이에 대한 기억이었다.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의 머리 위에 이글이글 불타 오르는 뜨거운 여름 햇덩이가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의 한 숙명의 햇덩이였다.

그것은 바로 몇 해 전이던가, 사내가 보성 고을의 한 주막집에서 밤새워 여자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에게 들려준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 숙명의 햇덩이에 관한 회한 어린 내력에 다름아닌 이야기였다.

……파도비늘 반짝이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변가 언덕밭의 한 모퉁이그 언덕밭 한 모퉁이에 누군지 주인을 알 수 없는 해묵은 무덤이 하나 누워 있었고, 소년은 언제나 그 무덤가 잔디밭에 허리고삐가 매여 놀고 있었다. 동백나무 숲가로 뻗어 나온 그 길다란 언덕밭은 소년의 죽은 아비가 그의 젊은 아낙에게 남기고 간 거의 유일한 유산이었다. 소년의 어미는 해마다 그 밭뙈기 농사를 거두는 일 한 가지로 여름 한 철을 고스란히 넘겨 보내곤 했다.

소년은 날마다 그 무덤가 잔디에서 고삐가 매인 짐승 꼴로 긴긴 여름날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언덕배기 무덤가에서 소년은 더러 물비늘 반짝이며 섬 기슭을 돌아 나가는 돛단배를 내려다보기도 했고, 더러는 또 얼굴을 쪄오는 여름 태양볕 아래 배고픈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나저제나 밭고랑 사이로 들어간 어미가 일을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여름마다 콩이 아니면 콩과 수수를 함께 섞어 심은 밭고랑 사이를 타고 들어간 어미는 소년의 그런 기다림 따위는 아랑곳이 없었다. 물결 위를 떠도는 부표처럼 가물가물 콩밭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하루 종일 그 노랫소리도 같고 울음소리도 같은 이상스런 콧소리 같은 것을 웅웅거리고 있었다. 어미의 웅웅거리는 노랫가락 소리만이 진종일 소년의 곁을 서서히 멀어져 갔다간 다시 가까워져 오고, 가까워졌다간 어느 틈엔가 다시 까마득하게 멀어져 가곤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뙈기밭가로 해서 뒷산을 넘어가는 고갯길 근처에서 이상스런 노랫가락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밭두렁 길을 지나 뒷산으로 들어가는 푸나무꾼 같은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던 소리였다. 하지만 그날의 노랫가락은 동네 나무꾼들의 그것이 아니었다. 산으로 들어간 나무꾼도 없었고 소리를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도 없었다. 산을 휩싸고 있는 녹음 속 어디선가 하루 종일 노랫소리만 들려 왔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것은 이날 처음으로 그 산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어오던 어떤 낯선 소리꾼의 소리였다. 어쨌거나 그날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노랫소리는 진종일 해가 지나도록 숲속에서 흘러 나왔고, 그러자 한 가지 이상스런 일이 일어났다. 밭고랑만 들어서면 우우우 그 노랫소리도 같고 울음소리도 같던 어미의 이상스런 웅얼거림이 이날따라 그 산소리에 화답이라도 보내듯 더욱더 분명하고 극성스럽게 떠돌아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어미는 뜨거운 햇볕 아래 하루 종일 가물가물 밭이랑 사이를 가고 또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산봉우리 너머로 뉘엿뉘엿 햇덩이가 떨어지고, 거뭇한 저녁 어스름이 서서히 산기슭을 덮어 내려오기 시작하자, 진종일 녹음 속에 숨어 있던 노랫소리가 비로소 뱀처럼 은밀스럽게 산 어스름을 함께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그 뱀이 먹이를 덮치듯이 아직도 가물가물 밭고랑 사이를 떠돌고 있던 소년의 어미를 후닥닥 덮쳐 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그날의 소리는 아주 소년의 마을로 들어와 어느 집 문간방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었으며, 동네 안에 둥지를 틀고 들어앉게 된 소리의 남자는 날만 밝으면 언제나 그 언덕밭 뒷산의 녹음 속으로 숨어 들어가 진종일 지겹도록 산울림만 지어 내리곤 하였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녹음이 소리를 숨기고 사는 양한 소리였다. 밭고랑 사이를 오가는 여인네의 그 괴상스런 노랫가락 소리도 날이 갈수록 점점 극성스러워져 갔다. 소년은 여전히 그 무덤가 잔디에서 진종일 계속되는 노랫가락 소리를 들어야 했고, 소리를 들으면서 허기에 지친 잠을 자거나, 소리를 들으면서 그 잠을 다시 깨야 했다. 잠을 자거나 잠을 깨거나 소년의 귓가에선 노랫소리가 떠돌고 있었고, 소년의 머리 위에는 언제나 그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햇덩이가 걸려 있었다.

소리는 얼굴이 없었으되, 소년의 기억 속엔 그 머리 위에 이글거리던 햇덩이보다도 분명한 소리의 얼굴이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뜨겁게 불타고 있던 그 햇덩이야말로, 그날의 소년이 숙명처럼 아직 그것을 찾아 헤매 다니고 있는 그 자신의 운명의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소년이 그 소리의 진짜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것은 그의 어미가 어느 날 밤 뜻하지 않은 소동 끝에 홀연 저승길로 떠나가 버리고 난 다음날 아침의 일이었다. 소리가 마을로 들어서던 그 한여름이 지나가고 해가 훌쩍 뒤바뀌고 난 이듬해 이른 여름의 어느 날 밤, 소년의 어미는 땅덩이가 꺼져 내려앉는 듯한 길고도 무서운 복통 끝에 흡사 핏속에서 쏟아내듯 작은 살덩이 계집아이 형상 하나를 낳아 놓고는 그날 새벽으로 그만 영영 눈을 감아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 아침에야 비로소 소리의 사내가 그 후줄근한 모습을 드러내며 소년의 집 사립문을 들어서던 것이었다.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그 소리를 하던 남자, 그러니깐 내겐 아마 의붓아버지가 되었을 뻔한 그 사내는 이제 더 이상 얼굴을 들고 살아갈 수가 없게 됐제. 그래서 끝내는 애 어미되는 사람의 무덤을 만든 뒤에 그 길로 곧 핏덩일 싸들고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네!”

사내는 이제 남의 얘기라도 하듯이 담담한 얼굴이 되어 이야기를 끝맺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아직도 그때의 그 사내의 얼굴이 소리의 진짜 얼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소년에겐 여전히 그 뜨거운 햇덩이가 소리의 진짜 얼굴로 남아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달라져 버린 소리의 사내가 핏덩이 같은 갓난애와 소년을 데리고 이 고을 저 고을로 소리를 하며 밥구걸을 다니고 있었을 때도, 소리의 진짜 얼굴은 언제나 그 뜨겁게 이글거리는 햇덩이 쪽이었다.

괴롭고 고통스런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심판인지 사내는 그 고통스런 소리의 얼굴을 버리고 살 수가 없었다. 머리 위에 햇덩이가 뜨겁게 불타고 있지 않으면 그의 육신과 영혼이 속절없이 맥을 놓고 늘어졌다. 그는 그의 햇덩이를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소리를 찾아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식으로 이날 이때까지 반생을 지녀온 숙명의 태양이요, 소리의 얼굴이었다.

하니까 그 다음 이야기는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대개 짐작이 가겠네마는, 어쨌거나 나는 그런저런 내력으로 이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그 누추한 어릴 적 기억을 버리지 못해 이런 청승맞은 소리 비렁뱅이질을 계속하고 다니는 꼴이라네. 소리를 들으면 어렸을 적에 그 밭두렁가에 누워 보던 바다비늘이 아슴아슴 떠오르고 골짜기 숲으로부터 복더위를 씻어 가던 한 줄기 바람결이 내 얼굴을 지나가고…… 아니 그보다도 나는 소리만 들으면 그 이마 위에서 무섭게 들끓고 있던 여름 햇덩이를 다시 보게 되곤 하니 말이네. 그런데 말이네, 그런데 난 오늘 밤 자네한테서 내 눈썹을 불태울 것 같은 그 뜨거운 햇덩이를 다시 보게 된 것일세. 자네처럼 뜨거운 내 햇덩이를 품은 소리를 만난 일이 없는 것 같단 말일세……. 이제 내가 이토록 자네 소리에 끌리는 까닭을 알겠는가…….”

사내는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도 마치 아직도 그 들끓는 태양볕을 머리 위에 견디고 있는 듯이 얼굴을 심히 고통스럽게 찡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얼굴에는 사내의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도 시종 마음이 흔들리는 듯한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여름날 햇볕에 지쳐 난 가로수처럼 무겁고 적막한 모습으로 시종일관 무연스레 허공만 지키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차라리 그녀가 가끔 술청마루 끝 볕발 속으로 나와 앉아 보이지 않는 눈길 속에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사내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해서는 오히려 그녀의 그 보이지 않는 눈길 속을 맴돌고 있던 어렴풋한 예감의 빛마저 말끔히 흔적이 가시고 없었다.

, 그러시면 이제 제 소리나 밤새 해드리겠소.”

여자가 이윽고 뭔가 사내를 달래듯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그녀 앞에 안고 있던 북통과 장단 막대를 말없이 사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소리를 청해 들을 양이면 이제부턴 장단을 좀 잡아 달라는 시늉이었다. 소리를 청해 들을 만한 사람에겐 흔히 해온 일이었다. 여자는 으레 손님의 솜씨를 믿는 얼굴이었다.

여자의 갑작스런 주문에 이번에는 오히려 사내 쪽이 뜻밖인 모양이었다. 여자가 밀어 보낸 북통을 앞에 한 사내의 눈길엔 졸지에 일을 당하고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여자의 눈길은 거의 일방적으로 손님을 강요해 오고 있는 식이었다.

하두 오래 손을 잡아 본 일이 없어서……. 내 장단이 자네 소리에 잘 맞아 들지 모르겠네…….”

사내도 마침내는 여인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듯 천천히 자기 앞으로 북통을 끌어당겨 갔다.

그로부터 여자와 술손은 다시 소리로 꼬박 밤을 지새듯 하였다.

여자는 이제 숨이 짧은 단가에서 본격적인 판소리 가락으로 손님을 휘어잡아 나갔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한 자리에서부터 춘향가의 옥중비가 한 대목을 넘어가고, ‘흥보가중의 흥보 매품팔이며 신세한탄 늘어놓는 진양조 한 가락을 엮어 내고, ‘수궁가적벽가로 명인 명창들의 이름난 더늠들을 두루 불러 돌아간 후에, 나중에는 심청가의 심봉사 황성길 찾아가는 처량한 정경까지 끈질기게 소리를 이어 나갔다.

지칠 줄 모르는 소리였다. 여자의 목청은 남정네들의 그 컬컬하고 장중스런 우조(羽調)뿐 아니라 여인네 특유의 맑고 고운 계면조(界面調)풍도 함께 겸비하고 있어서, 때로는 바위처럼 우람하고 도저한 기백이 솟아오르는가 하면 때로는 낙화처럼 한스럽고 가을 서릿발처럼 섬뜩섬뜩한 귀기가 넘쳐 났다. 가파른 절벽을 넘고 나면 유장한 강물이 산야를 걸쳐 있고, 사나운 폭풍의 한밤이 지나고 나면 새소리 무르익는 꽃벌판의 한나절이 펼쳐졌다.

놀라운 것은 그 지칠 줄 모르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술손의 장단가락 솜씨 또한 예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춘향이 옥중가 한 대목이 어떠시오.

흥부가 매품팔이 나가는 신세타령 한 대목이 어떠시오?

여인은 소리를 한 대목씩 시작할 때마다 번번이 손님에게 의향을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손님도 그거 좋겠네, 그거 좋겠네’, 즐겁게 화답을 보내며 여자가 첫소리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장단가락을 잡아 나가곤 했다. 느리거나 빠르거나 여자의 소리만 시작되면 사내는 마치 장단을 미리 외우고 있었던 것처럼 솜씨가 익숙했다.

그러나 손님이고 여자고 새삼스레 상대편의 솜씨를 놀라워하는 빛은 전혀 서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여인과 손님은 끊임없이 소리를 하고 장단을 몰아 나갈 뿐이었다.

 

어이 가리 어이 가리 황성만리를 어이 가리

오늘은 가다 어데 가 자며 내일은 가다 어데 잘고……

더듬더듬 더듬으며 정향없이 올라갈 제

때는 삼복 증염이라 별빛은 불꽃 같고 땀은 흘러 비 같은데……

 

여자는 소리를 굴렸다가 깎았다 멎었다가 풀었다 하면서 온갖 변화무쌍한 조화를 이끌어 냈고, 손님에 대해서도 때로는 장단을 딛지 않고 교묘하게 그 사이를 빠져 넘나드는가 하면, 때로는 장단을 건너가는 엇붙임을 빚어 내어 그 솜씨를 마음껏 즐기게 하였다.

그것은 마치 소리와 장단이, 서로 몸을 대지 않고 능히 상대편을 즐기는 음양간의 기막힌 희롱과도 같은 것이었고, 희롱이라기보다는 그 몸을 대지 않는 소리와 장단의 기묘하게 틈이 없는 포옹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기묘한 포옹 속에서도 손님과 여인은 역시 놀라움이 없었다. 손님 쪽에 무슨 변화가 있다면 그는 여자의 소리에서 어렸을 적 그의 햇덩이를 다시 만나 그 햇덩이의 뜨거운 열기를 무서운 인내로 견뎌 내듯 일그러진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솟아나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그 열기에 숨이 차오르는 듯 헐떡헐떡 거친 숨소리를 힘겹게 깨물어 삼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마치 손님의 그 햇덩이가 그의 이마 위에서 더욱 뜨겁고 고통스럽게 불타오르기를 열망하듯 긴긴 밤 목소리에 여느 때보다도 지침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손님과 여자는 새벽녘 동이 틀 무렵에야 간신히 소리를 끝내고 여인의 방에서 함께 잠자리로 들었다. 소리를 좋아하는 술손 중엔 가끔 잠자리까지도 여인과 함께하기를 원해 오는 수가 있었고, 그런 밤 여자가 손님과 잠자리를 함께하는 것을 주인 사내 천씨마저 그리 불결스러워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손님 쪽도 그렇고 여자 쪽도 그렇고 소리가 끝났을 때 두 사람은 으레 그래야 할 사람들처럼, 그러기를 미리 작정해 둔 사람들처럼 아무 말이나 스스럼이 없이 한방에다 나란히 잠자리를 펴고 든 것이다. 그리고 아침 날이 밝았을 때 손님은 으레 또 그러기로 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도 없이 슬그머니 주막을 떠나 버리고 없었다.

 

사람이 떠나가 버린 빈 잠자리가 자리를 들 때 한가지로 고스란했다. 잠을 깨고 난 여자가 손님의 빈 잠자리를 쓰다듬듯 정성스레 개켜 올리고 나서, 천천히 혼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문 밖엔 이미 술청마루까지 기어 올라온 아침 햇발 속에 주인 천씨가 그녀를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손님은 벌써 길을 떠나시던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었던지 주인 사내가 먼저 여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그 보이지 않는 눈길로 들판 건너 먼 산허리 쪽을 더듬으며 무심스레 내뱉었다.

그리 되었소. 오라비는 말도 없이 혼자서 떠나셨소.”

오라비라? 간밤의 그 손님이 말인가.”

여인의 대꾸에 천씨 사내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물었다.

하지만 여자의 얼굴에는 아직도 전혀 마음이 흔들리는 기색이라곤 없었다.

그렇답니다. 간밤엔 제 오라비를 만났더랍니다.”

주인 사내는 비로소 뭔가 짐작이 간다는 듯 고개를 한 차례 크게 끄덕이고 나더니 이윽고 다시 질문의 꼬리를 이었다.

하기야 나도 간밤부터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없지 않았다네. 하지만 자넨 여태까지 한번도 오라비 이야길 한 일이 없었는데……. 그렇다면 그때 그 산소리가 저녁 어스름을 타고 내려와서 콩밭 여자에게 아이를 배게 하여 낳은 핏덩이가 바로 자네였더란 말인가?”

천씨 사내는 간밤 동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은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고 서슴없이 물었다.

그렇답니다.”

여자가 다시 분명하게 대답했다. 사내 앞에선 이제 아무것도 이야기를 숨길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오라비는 어젯밤 일부러 그 핏덩이가 계집아이였다는 말씀은 참아 버리셨소. 그 소리꾼 노인이 어린 핏덩이를 싸안고 마을을 떠날 때 어린 당신도 길을 함께하고 있던 일까지……. 오라비는 제 기억이 안 닿을 만한 일만 말하시고 기억이 살아 있는 뒷날 일은 입을 덮고 마시더이다. 하지만 전 알고 있었더랍니다.”

그리고 나서 여자는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옛날 일 몇 대목을 사내 앞에 조용히 털어놓았다.

소리꾼 아비는 나어린 오누이를 앞세우고 이 마을 저 마을 소리로 끼니를 빌고 떠돌아 다녔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비는 철도 들기 전의 두 어린것들에게 소리를 시키는 것이 소원이었던지, 틈만 나면 성화가 대단했댔다. 산길을 가다 고갯마루 같은 곳에 다리를 쉬고 앉아 있을 때나 어느 마을 사랑채의 헛간 같은 골방 속에 들어앉아 지낼 때나 아비는 한사코 어린것들에게 소리를 배워 주려 애를 쓰고 있었다 했다. 하지만 오라비는 웬 고집으로 끝끝내 소리를 하지 않으려 했고, 어린 그녀만이 무슨 재간이 좀 뻗쳤던지 세월 따라 조금씩 조금씩 소리를 익혀 가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아비는 마침내 그녀에게만 소리를 하게 했고, 소리를 싫어하는 오라비에게는 북장단을 익히게 하여 제 누이의 소리를 짚어 나가게 했다는 것이다. 아비 소리꾼이 데리고 다니는 오누이의 소리 솜씨는 한동안 시골마을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되곤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오라비는 끝내 그 북채잡이조차도 따르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어느 해 가을날인가. 인적 드문 산길을 지나가던 아비가 통곡이라도 하듯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수궁가한 대목을 처연스럽게 뽑아 넘기고 나서 기운이 파해 드러누워 있을 때, 오라비는 용변이나 보러 가듯 숲속으로 들어가고 나선 영영 다시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말았다는 것이다.

오라비가 가고 난 후 노인네는 아마 딸년마저 도망질을 칠까 봐 겁이 나지 않았겠소. 그래 아비는 딸의 눈을 멀게 한 거랍니다.”

여자는 비로소 한숨 섞인 음성으로 눈이 멀게 된 사연을 털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죽이고 나니까 그 죽은 눈빛이 다시 목청으로 살아났던지 그녀의 소리는 윤택해지고, 그 덕분에 부녀는 오라비가 곁을 떠나고 난 다음에도 힘들이지 않고 이 고을 저 고을로 구걸유랑을 계속해 다닐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럭저럭 환갑길에 들어선 노인이 어느 겨울날 저녁 보성 고을 근처 한 헛간 같은 빈집에서 피를 토하며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었을 때 아비는 비로소 그녀가 모르고 있던 몇 가지 비밀그녀와 그녀의 달아난 오라비 사이의 어정쩡한 인륜관계 하며 잠든 딸에게 청강수를 찍어 넣어 그녀의 눈을 멀게 한 비정스런 아비의 업과들을 눈물로 사죄하고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네한테 오라비가 있었다 해도 어젯밤 손님이 그때의 오라비라고 장담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보아하니 자네나 손님이나 양쪽 다 그런 일은 입에도 올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인 천씨가 아직도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직도 전혀 목소리가 흐트러지는 기색이 없었다.

오라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은 벌써 손님을 처음 대했을 때부터 들기 시작했소. 손님이 소리를 찾아 다니게 된 내력을 말했을 때는 다시 의심할 여지도 없었고요. 하지만 정말 오라버니 소리가 목에까지 솟아오를 뻔한 것은 북채를 손님께 내어드리고 나서 제 소리가 오라비의 장단을 만났을 때였답니다. 오라비의 솜씨는 옛날의 제 아비 되는 노인의 솜씨 그대로였소.”

그렇다면 자네 오라비라는 사람도 그땐 자넬 알아보고 있었을 게 아닌가.”

알아보았겠지요. 절 알고 여기까지 길을 찾아오신 건지도 모르고요. 모르고 오셨더라도 그 양반 장단을 놀아 나가면서는 분명히 알고 계셨을 것이오.”

그렇다면 글쎄…… 자네를 알아보고도 오라비는 어째서 끝내 오라비라는 소리 한마디 못해 보고 그렇게 허망히 길을 떠나가고 말았단 말인가.”

그것은 아마 오라비가 또 날 죽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오.”

오라비가 자넬 죽이고 싶어하다니?”

사내의 두 눈이 다시 크게 벌어졌다.

노인네가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말씀하신 것이 또 한 가지 있었답니다. 당신은 늘 소리를 할 때 오라비 눈에 살기가 도는 것을 보았더라고요. 당신이 소리를 하면 오라비는 이상스럽게 눈빛이 더워지면서 당신을 해치고 싶어 못 견뎌하더랍니다. 오라비가 싫은 짓을 참아가면서도 의붓아비를 따라다닌 것은 그 불쌍한 노인네가 당신의 어머니를 죽인 거라 작심하고 어미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을 거랍니다. 노인네는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서 원수를 갚으라고 오라비 앞에 더욱 힘이 뻗치게 목청을 돋워대곤 하셨더라고요……. 하지만 오라비는 결국 원수를 갚기는커녕 당신 편에서 먼저 노인의 소리를 못 이기고 도망을 치고 말았다는 말씀이었지요. 그런데…… 어젯밤엔 저도 소리를 하면서 오라비한테서 그런 살기가 완연하게 느껴져 오더구만요. 오라빈 그걸 무슨 햇덩이 같은 거라고 말씀하고 있었지만, 그게 바로 살기였을 게라요. 오라비가 그 햇덩이 때문에 이마가 뜨거울 때 당신은 그 살기가 일고 있었던 것이오.”

자네는 그럼 오라비한테서 그런 살기를 느끼면서도 무슨 정성으로 밤새껏 그리 목청을 뽑았던가? 오라비 살기가 부풀어 끝장이라도 나고 싶었던가 말이네.”

…….”

그리고 또 자네 오라비란 사람도 그런 살기가 돌았다면 어째서 끝내 자네를 해치지 못하고 말도 없이 문을 나갔겠는가 말이네.”

그야 오라비는 옛날에도 노인을 해치진 못했지요. 노인을 해치고 싶어했다뿐, 소리 때문에 외려 당신 쪽에서 몸을 피해 달아난 위인이었다지 않습디까. 오라버닌 제 소리에 살기가 일었을지 모르지만, 제 소리 때문에 또 당신 쪽에서 먼저 몸을 피해 가신 것입네다.”

그걸 자네 오라비도 알았을까. 그 오라비한테도 자네가 이미 오라비를 그토록 알아보고 있는 눈치를 말이네.”

소리가 어우러져 나가면서 오라버니도 족히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오.”

…….”

틈을 주지 않고 물어대던 사내가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자 자신이 묻기도 전에 속절없는 목소리로 혼자서 말을 이어 나갔다.

오라비가 안 것은 그것만도 아니었을 것이오. 오라비는 제가 어떻게 눈을 잃게 되었는지, 그런 곡절조차 묻질 않았으니께요. 오라비는 그걸 묻지 않아도 벌써 알고 계셨던 거랍니다. 소리를 하거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그걸 아는 법이니께요. 어르신네가 10여 년 동안이나 절 곁에 두고 계시면서도 여태까지 제 신상에 대한 내력은 아무것도 물으려 하지 않고 계신 것 한가지로 말씀이오.”

하기야 자네 소리를 들으면 자네라는 사람을 물어 보지 않아도 속을 다 알 수가 있었던 건 사실이었제.”

주인 사내가 다시 용기를 얻은 듯, 그러나 이번에는 그 자신 뭔가 창연스런 감회에 사로잡힌 듯 적막한 목소리로 떠듬거리고 있었다.

난 자네 오라비처럼은 소리를 모르지만, 그래도 자네 소리에 서린 깊은 정한(情恨)을 만나고 보면 자네가 겪어온 반생의 사연을 눈으로 보는 듯했다네. 눈이 멀게 된 사연도 자네의 한을 보면 알 수 있고, 자네가 살아온 험난스런 반생의 내력도 자네의 한을 보면 저절로 다 알아볼 수가 있더란 말이네.”

그러고 나서 사내는 이제 여자의 아픈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한결 더 부드럽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있게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아마 자네 오라비라는 사람이 그렇게 가버린 것도 자네의 그 한을 다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었는가 싶네. 사람들 중엔 때로 자기 한 덩어리를 지니고 그것을 소중스럽게 아끼면서 그 한 덩어리를 조금씩 갈아 마시면서 살아가는 위인들이 있는 듯싶데그랴. 자네가 그렇고, 내가 그렇고, 알고 보면 자네 오라비라는 사람도 아마 그 길에서 그리 먼 데 있는 사람은 아닐 걸세. 그런 사람들한테는 그 한이라는 것이 되려 한세상 살아가는 힘이 되고 양식이 되는 폭 아니겄는가. 그 한 덩어리를 원망할 것 없을 것 같네. 더더구나 자네같이 한으로 해서 소리가 열리고 한으로 해서 소리가 깊어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일세. 자네 오라비도 아마 그 점을 알고 있었던 듯싶네. 자네는 아까 오라비가 자넬 해치고 싶은 충동을 못 이겨 간 거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설사 맞는 데가 있다 치더라도 내 짐작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네. 자네 오라빈 자네 소리에 서린 한을 아껴 주고 싶은 나머지, 자네한테서 그것을 빼앗지 않고 떠나기를 소망했음에 틀림없을 걸세.”

여자의 찌부러든 두 눈에서 소리 없이 물기가 맺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아직도 미처 여자의 눈물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망연해할 건 없어. 언제 또 생각나면 그 양반이 자넬 다시 찾아올 때도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사내가 다시 간절한 목소리로 여자를 위로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그렇게는 아니될 줄 싶소. 오라버니도 아마 저 모양으로 당신의 한을 먹고 살아가시는 양반이라면 이제 다시 제게 와서 당신의 한을 앗길 짓을 하시지도 않으실 양반이오.”

그리고 나서 그녀가 다시 조용히 뱉어낸 몇 마디는 주막 주인 천씨 사내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소리였다.

오라버니가 예까지 다시 절 찾아온다고 해도 우리 남매는 이제 이것으로 두 번 다시 상면을 할 수도 없는 처지고요.”

심상찮은 여자의 말에 주인 사내가 문득 수상한 눈길로 그녀를 돌아다보았으나, 여자는 이미 마음을 굳게 작정해 버린 뒤인 것 같았다.

오라버니가 제 소리를 아껴 주시는데, 저한테도 그 오라비의 한이나마 제것 한가지로 소중스럽게 아껴 드릴 도리를 다해 드려야 할 듯싶소.”

말하고 있는 여자의 표정은 그녀가 그 술청마루 끝 햇볕 속으로 나와 앉아 보이지도 않는 눈길로 먼 산허리 쪽을 더듬어대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던 그런 때의 그 하염없는 표정 그대로였다.

하지만 여자는, 이제 비로소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그녀 앞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주인 사내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듯 한숨 섞인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르신네 곁을 찾아온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구요. 제 팔자를 생각해 보면 당치도 않게 편한 세월이 너무 길었었나 보아요. 이젠 그만 어디론가 몸을 좀 옮겨야 할 때도 되었지요…….”(1978)

 

 

 

 

 

-작가 노트-

 

<서편제>의 희원

 

서울에서 지낼 땐 내 중요한 무엇을 잃고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아 늘 고향 동네로 가 살고 싶고, 고향에 가 있으면 또 세상을 등지고 혼자 적막하게 유폐되어 버린 것 같아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변덕스런 심사에 쫓기면서, 마음으로나 실제로나 그 고향 고을과 서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떠돌고 있는 것이 저간의 내 세상살이 행적이다. 그리고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오고, 돌아왔다 다시 떠나곤 하는 정처 잃은 삶의 떠돎 혹은 떠돌이의 삶의 사연은 써모은 것이 졸저 <서편제>의 이야기들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잃고 어느 만큼씩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자신의 고향땅, 사랑하는 부모형제, 정다운 이웃들, 자기가 지니고 누려야 할 올바른 삶의 길과 모습, 그런 것을 잃고 떠나 그것을 다시 찾아 돌아가려 늘 아프게 떠돌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서편제>의 이야기와 인물들을 우리 정서의 한 보편적 내용이라 할 한()의 예술양식 판소리 가락 위에 실어 풀어 나가게 된 연유다. 돈벌이 길이든 공부 길이든 도피 길이든,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서 떠나야 하고 지니고 누려야 할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지 아니치 못하게 한 아픈 사연들, 그리고 긴 세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가파른 처지에 대한 원망 속에 그 떠돎의 정한이 쌓여 맺히고, 그럴수록 언제나 다시 본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희원과 열망 속에 그 소리의 적극적인 한풀이의 정서가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그 소리나 <서편제>에서의 한을 쌓임이나 맺힘의 사연보다, 본래의 삶의 자리와 자기 모습을 되찾아가는 적극적인 자기 회복의 도정, 그 아픈 떠남과 회한의 사연들까지도 우리 삶에 대한 사랑과 간절한 희원으로 뜨겁게 끌어안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풀이의 과정을 더 소중하게 풀어 보려 한 것이다. 한의 맺힘 자체는 원한(怨恨)이 되기 쉽고 파괴적인 한풀이만을 낳기 쉬움에 반하여, 그 아픈 떠남의 사연과 회한 껴안기넘어서기의 떠돎은 우리 삶에 대한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풀이와 정화상승의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소리의 정서는 우리 삶의 희로애락과 선하고 악함, 아름답고 더러움, 좋아하고 미워함 등의 모든 감정의 행태들을 한마당에 이끌어 내어 그것을 보다 크고 신명스런 삶의 활력으로 힘차게 융합시켜 나감을 본다. 그 통합과 극복의 뜨거운 예술 정신에 홀려 나는 감히 그 소리의 정서와 한의 양식을 <서편제>의 모체로 삼아 보려 한 것이다.

이 소리의 건강한 풀이 정서와 관련하여 근자 <서편제>를 영화로 찍은 필름을 보고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몇 차례나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무슨 슬픔 같은 걸 억지로 강요당한 것 같은 쑥스러움이 없었다. 그 눈물이 슬픔보다는 기쁨, 회한보다는 해한과 정화의 자연스런 공감물인 때문일 것이다. 이는 물론 원작자로서 제 소설의 값이나 영화에 대한 기여도를 내세우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매체가 달라지면 작품의 표현방식이나 감동의 질도 상당량 달라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나의 소설 <서편제>와 영화 <서편제>는 각기 별개의 작품이라 할 수 있고, 나는 될수록 한 무관한 관객으로 그 영화를 보려 하였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그 눈물을 빌려 말하려는 바는, 영화 <서편제>에서도 우리 소리의 한풀이, 그 해한의 풀이 정서가 우리 삶을 얼마나 더 아름답게 고양시키고 빛내 주었던가 하는 것이다. 다만, 영화에서는 소리꾼 여자가 마침내 나름대로의 득음(得音)의 경지에서 후련스런 해한과 절정의 해방감을 맛보지만, 소설에서는 언제까지나 끝없이 떠돎만이 계속 되고 그 떠돎 자체가 우리 삶의 한 운명적 과정이요 비극적인 꿈의 짐이 아닌가 싶어, 나는 그 영화대본의 원작자 처지에서 마음이 새삼 아득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지만.(1993. 6)

 

 

 

 

선학동(仙鶴洞) 나그네

남도사람3

 

남도 땅 장흥에서도 버스는 다시 비좁은 해안 도로를 한 시간 남짓 내리달린 끝에, 늦가을 해가 설핏해진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종점지인 회진(會鎭)으로 들어섰다.

차가 정류소에 멎어 서자 막판까지 넓은 차칸을 지키고 앉아 있던 일고여덟 명 손님이 서둘러 자리를 일어섰다. 젊은 운전기사 녀석은 그새 운전석 옆 비상구로 차를 빠져 나가 머리와 옷자락에 뒤집어쓴 흙먼지를 길가에서 훌훌 털어 내고 있었다.

사내는 맨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려섰다. 차에서 내린 다른 손님들은 방금 완도 연락을 대기하고 있는 여객선의 뱃고동소리에 발걸음들이 갑자기 바빠지고 있었다.

사내는 발길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배를 탈 일이 없었다. 발길을 서두르는 대신 그는 이제 전혀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한동안 밀물이 차오르는 선창 쪽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다간 뒤늦게 무슨 할 일이 떠오른 듯 눈에 들어오는 근처 약방으로 발길을 황급히 재촉해 들어갔다.

약방에서 사내는 이마에 저녁 볕조각을 받고 앉아 있는 젊은 아낙에게서 박카스 한 병을 샀다. 거스름돈을 내주는 여자에게 그가 물었다.

아주머니, 요즘 물때가 저녁 만조겠지요?”

그러겠지라우. 보름을 지낸 지가 엊그제니께요. 지금도 하마 물이 거의 차올랐을 텐디요?”

거스름을 내주며 묘하게 게으르고 건성스러워 들리는 사투리의 여자에게 사내가 다시 재우쳐 물었다.

선학동 쪽에 하룻밤 묵어 갈 만한 곳이 있을까요? 옛날엔 그쪽 길목에 술도 팔고 밥도 먹여 주는 조그만 주막이 하나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자는 그제서야 쉰 길을 거의 다 들어서고 있는 듯한 사내의 행적을 새삼 눈여겨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짙은 피곤기 같은 것이 어려 있는 사내의 표정과 허름한 몰골에 금세 흥미가 떨어지는 어조였다.

손님도 아마 선학동이 첫길은 아니신가 본디, 그야 사람 사는 동네에 하룻밤 길손 묵어 갈 곳이 없을랍디요. 동네로 건너가는 길목엔 아직 주막도 하나 남아 있고요…….”

사내는 박카스병을 열어 안엣것을 마시고 나서 곧 약국을 나왔다. 그리고는 이내 선창 거리를 빠져 나가 선학동 쪽으로 늦은 발길을 재촉해 나서기 시작했다.

서쪽 산마루 위로 낙조가 아직 한 뼘쯤 남아 있었다.

서둘러 가면 늦지 않겠군.”

사내는 혼자 중얼거리며 걸음걸이에 한층 속도를 주었다.

……이곳을 지난 것이 30년쯤 저쪽 일이던가. 그때 기억에 따르면 선학동까지는 이 회진포에서도 아직 10리 길은 족히 되고 남은 거리였다. 해 안으로 그 10리 길을 모두 걸어 닿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이쪽 길목에 아직 주막이 남아 있다면, 그 선학동을 물 건너로 바라볼 수 있는 주막까지만 닿으면 되었다. 하다못해 그 선학동 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돌고개 고빗길만 돌아서게 되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해 안으론 어쨌거나 선학동을 보아야 했다. 선학동과 선학동을 감싸 안고 뻗어 내린 물 건너 산자락을, 그 선학동 산자락을 거울처럼 비춰 올릴 선학동 포구의 만조(滿潮)를 놓치지 말아야 했다.

사내는 갈수록 발길을 서둘러댔다.

한동안 물깃을 따라 돌던 해변길이 이윽고 산길로 변하였다. 선학동으로 넘어가는 돌고개 산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왼쪽으로 파란 회진포의 물길을 내려다보며 산길은 소나무 숲 무성한 산굽이를 한참이나 구불구불 돌아나가고 있었다.

.

솔바람소리가 제법 시원스럽게 어우러져 들었으나, 갈 길이 조급한 사내의 이마에선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아났다.

.

왼쪽 눈 아래로 때마침 포구를 빠져 나가는 완도행 여객선의 바쁜 뱃길이 그림처럼 내려다보였다. 사내는 그 여객선의 긴 뱃고동소리에조차 공연히 마음이 쫓기는 심사였다. 그는 그 여객선과 시합이라도 벌이듯 허겁지겁 산길을 돌아들었다.

하지만 여객선의 속력과 사내의 걸음걸이는 처음부터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배는 순식간에 포구를 빠져 나가 넓은 남해 바다를 향해 까맣게 섬기슭을 돌아서고 있었다.

사내도 이젠 거의 마지막 산굽이를 돌아들고 있었다. 선학동 쪽으로 길을 넘어설 돌고개 모롱이가 눈앞에 있었다.

사내는 새삼 표정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산길이 제법 높아 그런지 저녁 해는 회진 쪽에서보다 아직 한 뼘 길이나 더 남아 있었다. 이제 마지막 산모롱이를 하나 올라서고 나면, 거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 들어간 선학동 포구의 긴 물길이 눈앞을 시원히 막아설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보게 될 것이었다. 장삼자락을 길게 벌려 선학동을 싸안은 도승 형국의 관음봉(觀音峯)과 만조에 실려 완연히 모습 지어 오를 그 신비스런 선학(仙鶴)의 자태를. 그리고 또 재수가 좋으면 그는 어쩌면 듣게 될 것이었다. 그 도승의 품속 어디선가로부터 둥둥둥둥 포구를 울리며 물을 건너오는 산령(山靈)의 북소리를, 그리고 그 종적 모를 여인의 한스런 후일담을…….

사내는 억누를 수 없는 기대감 때문에 발걸음마저 차츰 더디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에겐 오래 망설여댈 여유가 없었다. 그는 긴장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심호흡을 한번 크게 내뱉고 나서는 이내 성큼성큼 마지막 산모롱이를 올라섰다.

순간사내의 얼굴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이 너무도 의외였다.

돌고개 너머론 또 한 줄기 바다가 선학동 앞까지 길게 뻗어 들어가 있어야 하였다. 물이 있어야 할 곳에 물이 없었다. 바닷물은 언제부턴가 돌고개 기슭에서부터 출입이 끊겨 있었다. 돌고개 기슭과 관음봉의 오른쪽 산자락 끝을 건너 이은 제방이 포구의 물길을 끊어 버리고 있었다. 포구는 바닷물 대신 추수가 끝난 빈 들판으로 변해 있었다. 들판 건너편으로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앉은 선학동의 모습이 아득히 떠올랐다. 비상학(飛翔鶴)의 모습은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둥둥…… 관음봉 지심(地心)에서부터 물을 건너 울려 온다던 그 산령의 북소리도 들려 올 리 없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다만 장삼자락을 좌우로 길게 펼쳐 앉은 법승 형국의 관음봉뿐이었다. 그 기이한 관음봉의 자태도 포구에 물이 차올라 있을 때의 얘기였다. 마른 들판을 싸안은 관음봉은 전날과 같이 아늑하고 인자스런 지덕(地德)과 풍광을 깡그리 잃고 있었다. 그것은 다만 들판을 둘러싸고 내려앉은 평범한 산줄기에 불과했다.

사내는 모든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듯 그 자리에 털썩 몸을 주저앉히고 말았다. 그리고는 이제 잃어버린 선학동의 옛 풍정을 되새기듯 아쉬운 상념 속을 헤매 들기 시작했다.

 

선학동(仙鶴洞)그곳엔 옛부터 기이한 이야기 한 가지가 전해 오고 있었다. 이야기는 포구 안쪽에 자리잡은 선학동의 뒷산 모습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그 산세가 영락없는 법승의 자태를 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뒤쪽으로 주봉을 이루고 있는 관음봉은 고깔처럼 뾰죽하게 하늘로 치솟아오른 모습이 영락없는 법승의 머리통을 방불케 하였고, 그 정봉(頂峯)을 한참 내려와 좌우로 길게 펼쳐 내려간 양쪽 산줄기는 앉아 있는 법승의 장삼자락을 형용하고 있었다. 선학동 마을은 이를테면 그 법승의 장삼자락에 안겨 든 형국이었다. 그런데다 그 마을 앞 포구에 밀물이 차오르면 관음봉 쪽 산심의 어디선가로부터 둥둥둥둥 법승이 북을 울려대는 듯한 신기한 지령음(地靈音)이 물 건너 돌고개 일대까지 들려 오곤 한다는 것이었다.

마을터가 상서롭게 일컬어져 온 것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 보다 더 관심이 가는 일은 선대들의 묘자리를 위해 관음봉 산자락 가운데서도 진짜 지령음이 솟아오르는 명당(明堂) 줄기를 찾는 일이었다. 마을엔 옛부터 그 지령음이 울려나오는 곳에 진짜 명당이 숨어 있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 데다, 사람들은 그 명당을 찾아 조상의 뼈를 묻음으로써 관음봉의 음덕(陰德)을 대대손손 누리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뿐더러 관음봉 산록에 명당이 있다 함은 이 마을을 선학동이라 부르게 된 데에도 또 하나 깊은 내력이 있었다. 산의 이름이 관음봉이라 한다면 마을 이름도 마땅히 관음리 정도가 되는 게 상례였다. 그러나 마을은 옛부터 이름이 선학동이라 하였다. 까닭인즉, 마을 앞 포구에 밀물이 차오르면 관음봉이 문득 한 마리 학으로 그 물 위를 날아오르기 때문이었다. 포구에 물이 들면 관음봉의 산 그림자가 거기에 떠올랐다. 그 물 위로 떠오르는 관음봉의 그림자가 영락없는 비상학의 형국을 자아냈다. 하늘로 치솟아오른 고깔 모양의 주봉은 힘찬 비상을 시작하고 있는 학의 머리요, 길게 굽이쳐 내린 양쪽 산줄기는 그 날개의 형상이 완연했다.

포구에 물이 차오르면 관음봉은 그래 한 마리 학으로 물 위를 떠돌았다. 선학동은 그 날아오르는 학의 품안에 안긴 마을인 셈이었다.

동네 이름이 선학동이라 불리게 된 연유였다. 그리고 그런 연유로 관음봉의 명당은 더욱 굳게 믿어지고 있었다. 명당을 얻기 위해 관음봉 일대에 묻힌 유골은 헤아려 낼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포구에 물길이 막혀 버리고 있었다. 관음봉의 그림자가 내려 비칠 곳이 없었다. 포구의 물이 말라 버림으로 하여 이제는 더 이상 그 관음봉이 한 마리 선학으로 물 위를 날아오를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관음봉은 이제 날개가 꺾여 주저앉은 새였다. 그것은 이제 꿈을 잃은 산이었다.

사방은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짙게 젖어들어 있었다. 어스름이 내려 깔린 들판 건너로 관음봉의 무심스런 자태가 더욱 황량스럽게 멀어져 갔다.

.

솔바람소리가 시시각각으로 짙은 어둠을 몰아 왔다.

사내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비로소 생각이 난 듯이 뻗어 내려간 들판과 어둠 속으로 눈길을 천천히 훑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여자의 소식을 만날 희망 따윈 머리에서 깡그리 사라지고 없었다. 고을 모습이 너무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선학동엔 이제 선학이 날지 않았다. 학이 없는 선학동을 여자가 일부러 지나쳤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젠 날이 너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왕 날을 잡아 나선 길이었다.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어 갈 수밖에 없었다.

 

약국 여자가 일러준 대로 주막은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산길이 들판으로 뻗어 내려간 솔밭 기슭에 10여 가호 정도의 작은 마을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포구를 막아 들판이 되면서 길목 따라 생겨난 마을인 듯했다.

사내는 휘청휘청 힘없는 걸음걸이로 산길을 내려갔다. 주막은 마을 초입께에 마른 버섯처럼 낮게 쪼그려 붙어 앉아 있었다. 초가지붕을 인 옛 그대로의 모습이 어슴푸레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 사내는 그 음습하고 쇠락한 주막집 사립문 안으로 무심히 들어섰다.

주인장 계십니까.”

사내의 인기척소리에 어두운 부엌 쪽에서 이내 한 중년 연배의 아낙이 치맛자락에 물 묻은 손을 훔치며 나타났다.

얼핏 보아하니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었다. 주막집 주인이 바뀐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 무렵에 이미 쉰 고개를 훨씬 넘어서고 있던 주막집 노인이었다. 30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변했을 세월이었다. 그때의 노인이 아직 주막을 지키고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목 좀 축일 수 있겠소?”

그는 별 요량도 없이 아낙에게 말했다.

약주를 드실라고요?”

아낙은 왠지 그리 달갑지 않은 어조로 그에게 되물어 왔다.

그럽시다.”

사내는 거의 건성으로 대꾸하고 나서 마루 위로 털썩 몸을 주저앉혔다.

갖다 놓은 지가 며칠 돼서 술이 좀 안 좋을 것인디 그래도 괜찮겄소?”

아낙은 마치 술을 팔기 싫은 사람처럼 한번 더 다짐을 주고 나서야 부엌 쪽으로 몸을 비켜 나갔다.

아낙의 태도는 웬일인지 늘상 그런 식이었다.

잠시 후, 아낙이 초라한 목판 위에다 김치 보시기 하나와 술주전자를 얹어 내왔을 때 사내가 다시 아낙에게 말했다.

어떻게 저녁 요기도 좀 함께 부탁드릴 수 있겠소?”

아낙은 이번에도 주막집 여편네답지 않게 심드렁한 소리로 되물어 왔다.

, 이 골이 초행길이신게라우?”

, 초행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 오늘 하룻밤을 여기서 아주 묵어 갔으면 싶소만…….”

내친 김에 사내가 다시 밤까지 묵어 갈 뜻을 말했으나, 아낙은 역시 마음이 금방 내켜 오지 않는 표정으로 그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왜 묵고 가기가 어렵겠소?”

사내가 재차 묻고 들자 아낙은 그제서야 마지못한 듯 반허락을 해왔다.

글씨…… 요샌 밤을 묵어 가신 손님이 통 없어 놔서요. 상 차림새도 마땅찮고 잠자리도 험할 것인디, 그래도 손님이 좋으시다면 할 수 없지라우.”

사내는 그래도 상관이 없노라고 했다. 그리고 그게 돈 받고 남의 시중들어 주는 남도 사람들의 소박한 자존심이나 결벽성 때문이거니 여기며 그 역시 마음속에 크게 괘념을 않으려 했다.

선학동 포구가 그새 모두 들판이 되었는데도 형편들은 그리 나아지질 못한 것 같군요.”

사내는 기둥 하나 너머로 부엌일을 서둘러대고 있는 아낙에게 망연스런 어조로 말하며 혼자 술잔을 비워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인연이 되어 사내와 아낙 사이에 오간 몇 마디가 뜻밖의 인물을 불러 내고 있었다.

글씨, 우리 같은 길갓집 살림이야 고을 인심에 기대 사는 처진디, 들농사가 는다고 그런 인심까지 함께 늘지는 않는갑습디다.”

주막집 아낙은 사내가 말한 뒤 한식경이나 지나서 솔불 연기 사이로 구정물통을 한손에 들고 서서 잠시 지난날의 주막일을 푸념 섞어 들춰 냈다.

그야 한 10여 년 전엔 포구일 때문에 공사판 사람들이 줄을 서 가며 찾아들 때도 있긴 했지만, 그것도 그저 그 한때뿐 공사가 끝나고는 그만 아니었겄소.”

선학동에 학이 날지를 못하게 됐으니 그런가 보군요.”

아낙의 푸념에 사내는 문득 들판 건너 어둠 속에 싸여 들고 있는 관음봉 쪽을 건너다보며 아직도 반혼자말처럼 무심스레 말했다.

선학동은 이제 이름뿐 아닙니까? 관음봉이 그림자를 드리울 물을 잃었으니 학이 이제는 날아오를 수가 없지요. 그래 학마을에서 학이 날지를 못하게 됐으니 인심이 그렇게 말라든 거 아니겠소…….”

그런데 그때.

포구물이 말랐다고 학이 아주 못 나는 것은 아니라오.”

덜컹 하고 안방문이 열리며 느닷없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말꼬리를 잇고 나서는 품이 여태까지 문 뒤에서 바깥 얘기를 귀담아들어 오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주인 사내쯤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어느새 등불까지 켜들고 인사말도 없이 불쑥 손에게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다시 심상찮은 소리를 덧붙여 왔다.

하기야 이 포구의 물길이 막힌 뒤로는 우리도 한동안 그리 생각을 했지요. 물이 마른 포구에 진짜로 관음봉이 그림자를 드리울 수는 없었으니께요. 하지만 요샌 사정이 다시 달라졌어요……. 노형은 보실 수가 없을지 모르지만 이 물도 없는 포구에 학이 다시 날기 시작했으니께요…….”

주인 사내는 말을 하면서도 왠지 이쪽 표정을 무척이나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기미가 역력했다. 하더니 그는 마침내 어떤 확신이 서 오는 듯, 그래 어느 구석인가는 오히려 시치밀 떼고 있는 듯한 어조로 손의 호기심을 돋우고 들었다.

연전에 한 여자가 이 동넬 찾아들었지요. 그리고 그 여자가 지나간 다음부터 이 고을에 다시 학이 날기 시작했어요……. 헌디 손님도 아마 오래 전부터 이 선학동의 비상학 얘길 알고 기셨던 모양이지요?”

……죽었던 학이 다시 날기 시작했다? 한 여자가 이 고을을 찾아들고 나서부터?

사내에게 비로소 어떤 질긴 예감이 움직여 오기 시작했다. 사내의 말투는 어딘지 이미 이쪽 맘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일부러 그의 궁금증을 충동질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사내가 긴장을 한 것은 그가 켜들고 온 희미한 불빛 아래로 주인 사내의 얼굴을 보았을 때였다. 불빛에 드러난 사내의 얼굴엔 이미 초로의 피곤기 같은 것이 짙게 어려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그 사내의 불거진 광대뼈와 짙은 두 눈썹 모습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한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긴장감 때문에 가슴이 새삼 두근거려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늘상 그래 왔듯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다.

그거 참 듣던 중 희한한 얘기로군요. 아닌게아니라 나도 이 선학동 비상학 얘기는 오래 전에 한번 들은 일이 있었소마는. 그래 어떤 여자가 이 골을 다녀갔길래 가라앉아 버린 학을 다시 날아오르게 했단 말이오.”

 

사내는 선학동을 찾은 것이 허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주인은 손에게 너무도 많은 기대를 갖게 했다. 손은 주인에게 은근히 여자의 이야기를 졸라댔다. 그는 여자가 선학동의 학을 다시 날아오르게 한 사연을 몹시도 듣고 싶어하였다. 주인은 그러나 거기서부터는 왠지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으려 하질 않았다. 그는 손 앞에서 새삼 이야기의 서두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거 뭐 노형한테는 상관이 되는 일도 아닐 텐디요……. 이따 저녁 요기나 끝내고 나시거든 심심파적으로나 들려 드릴까…….”

이야기를 잠시 피해 두고 싶은 듯 자리까지 훌쩍 비켜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 쪽도 이제는 짐작이 있었다. 주인 사내는 손이 그토록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연유조차도 묻질 않았다. 그러나 그 주인 역시도 어딘지 이제는 손 앞에서 여자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기미가 역력했다. 작자는 짐짓 손의 조바심을 돋우려는 게 분명했다.

사내의 짐작은 과연 옳았다.

주인 사내는 그새 어디 마을이라도 나간 듯 손이 그럭저럭 저녁상을 물린 다음까지도 모습을 통 나타내지 않았다. 그래 혼자 술청 뒷방에서 막막한 예감에 부대끼던 사내가 참다 못해 다시 앞마루로 나가 보니, 작자가 또 어느새 소리도 없이 그곳에 돌아와 있었다. 뿐더러 그는 어느새 술상까지 마루로 내받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태 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빈 술잔 한 개를 남겨 두고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손이 나타나자 그는 이번에도 말이 없이 남은 술잔을 다짜고짜 손 앞으로 채워 건넸다.

손도 말없이 주인 건너편 술상 앞으로 자리를 잡고 걸터앉았다.

보름 지난 달빛이 들판을 가득 내려 비추고 있었다. 등잔불도 없는 술자리가 달빛으로 밝기가 그만저만하였다.

손이 이윽고 술잔을 비워 내어 주인에게 건넸다. 그러자 주인도 자기 앞의 술잔을 손에게로 비워 건네며 제물에 먼저 입을 열어 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께 지금서부터 한 30년 전 내가 이 집에서 술 심부름을 하고 지내던 시절이었지요…….”

주인은 이제 앞뒤 사정을 제쳐놓고 단도직입적으로 어렸을 적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손으로선 다소 갑작스런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주인이 거두절미 어렸을 적 얘기를 꺼낸 것처럼 손 쪽도 뭔가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던 듯 표정이 그리 설어 보이지 않았다.

어느 해 가을이던가. 이 집에 참 빼어난 남도 소리꾼 부녀가 찾아든 일이 있었어요. 머리가 반백이 다 되어간 늙은 아비하고 이제 열 살이 넘었을까말까 한 어린 계집아이 부녀였는디, 철모를 적에 들은 기억이지만, 양쪽이 모두 명창으로다 소리가 좋았지요…….”

주인은 제법 소중스레 간직해 온 이야기를 털어놓듯 목소리가 차츰 낮게 가라앉아 가고 있었다. 주인의 이야기에 말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 손의 표정도 그럴수록 조급하게 쫓겨 대고 있었다. 주인은 그 손이 뭔가 자신의 예감에 부대끼고 있는 기미는 아랑곳도 않은 채 혼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소리는 주로 아비 되는 노인 쪽이 많이 하고 딸아이에겐 아직 소리를 가르치기 겸해 어쩌다 한 번씩밖에 시키는 일이 없었지만서도, 우리가 듣기엔 그 딸아이의 목청도 노인에 진배없이 깊고 도도했지요. 그 부녀가 온 뒤로 주막은 날마다 소리 즐기는 사람들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어요. 헌디 노인은 선학동 사람들이 소리를 들으러 이 주막으로 물을 건너오게 했을 뿐 당신이 소리를 하러 주막을 떠나는 일은 한번도 없었어요. 언제고 이 주막에 앉아서 소리를 했지요. 연고를 알고 보니 노인은 그때 이 주막에 앉아 소리를 하면서 선학동 비상학을 즐기셨던 거드구만요. 포구에 물이 차오르고 선학동 뒷산 관음봉이 물을 타고 한 마리 비상학으로 모습을 떠올리기 시작할 때면, 노인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그 비상학을 벗 삼아 혼자 소리를 시작하곤 했어요. 해질녘 포구에 물이 차오르고 부녀가 그 비상학과 더불어 소리를 시작하면 선학이 소리를 불러낸 것인지 소리가 선학을 날게 한 것인지 분간을 짓기가 어려운 지경이었지요. 헌디 그렇게 한 서너 달쯤 지났을까요. 노인넨 그 동안 맘속으로 깊이 목적한 일이 따로 있었던 거드구만요. 무어라 할까…… 노인넨 그냥 비상학을 상대로 소리만 즐긴 게 아니라 어린 딸아이의 소리에 선학이 떠오르는 이 포구의 풍정을 심어 주려 했다고나 할까……. 하여튼지 한 서너 달 그렇게 소리를 하고 나니 노인네 뜻이 그새 어느 만큼은 채워졌던가 봅디다. 계집아이의 소리가 처음 주막을 찾아들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도도하고 장중스러워지는구나 싶었을 때였어요. 부녀가 홀연 주막을 떠나가고 말았어요. 그리곤 영 소식이 없었지요…….”

주인은 거기서 목이 맺히는 듯 다시 술잔을 비워 손에게로 건넸다. 손은 말없이 그 술잔을 받아 놓음으로써 주인의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주인이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뒤로 이 선학동엔 부녀의 소리를 잊지 못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기약도 없이 떠나가 버린 부녀가 다시 한번 이 고을을 찾아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고요. 하여간에 그 부녀의 소리는 두고두고 이 고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깃거리로 남게 되었어요. 하지만 부녀는 다시 마을을 찾아온 일이 없었고 그럭저럭하다 보니 이 선학동 사람들도 종당엔 그 부녀의 일을 차츰 잊어 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이 산밑 포구가 마른 들판으로 변해 가고 관음봉이 다시 학이 되어 물 위를 날 수 없게 된 담부터선 그 부녀의 이야기도 영영 사람들 머리에서 잊혀지고 말았어요. 헌디 아마 이태 해 전 봄이었을 거외다……. 그러니께 그때만 해도 벌써 포구가 맥힌 지 7, 8년이 지난 뒤라 소리꾼 부녀는 물론 비상학의 기억까지도 까맣게들 잊고 지내던 참이었는디, 어느 날 느닷없이 여자가 여겔 다시 왔어요…….”

주인은 거기서 다시 말을 멈추고 손 쪽을 이윽히 건너다보았다.

이야기는 이제 바야흐로 제 줄기로 접어 들어가고 있었다. 손 쪽에서도 이젠 더 이상 조용히 예감을 견디고만 있기가 어려워진 것 같았다.

여자라니요? 그때 그 소리를 하던 노인의 딸아이가 말이오?”

손이 자기 앞에 밀린 술잔을 하나 재빨리 비워 내어 주인 쪽으로 건네며 물었다.

그 여자가 아니라면 누구겠소.”

주인은 손의 참견을 가볍게 나무라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그새 많이 장성을 하였더구만요. 아니 장성을 했다기보다는 소리에 세월이 많이 배어들었어요. 소리를 배워 준 옛날 노인네도 오래 전에 벌써 여읜 뒤였고. 허지만 난 금방 여잘 알아봤지요. 여자쪽도 물론 이쪽을 쉬 알아봐 줬고요…….”

무슨 일로 여자가 다시 이 고을을 찾아들었소?”

손이 다시 참을성 없이 끼여들었다. 하지만 주인은 이제 그러는 사내를 굳이 허물하고 싶은 기색이 아니었다.

그야 우선은 옛날 선학동의 비상학을 한번 더 찾아보고 싶어서였겄지요. 허지만 여자는 이 선학동 학이나 소리하는 것말고도 진짜 치러야 할 일거리를 한 가지 지니고 왔었소…….”

주인은 간단히 손의 궁금증을 무지르듯 말하고 다음 이야기를 이으려 하였다.

그런데 그때 손이 또 한번 주인의 말줄기를 끊고 들었다.

치러야 할 일거리라뇨? 그 여자가 무슨 일거릴 가지고 왔었소?”

예감에 부대껴대다 못한 참견이었다.

주인은 이제 손의 참견을 아예 무시를 해버리려는 눈치였다. 그는 이제 손 쪽에서 무얼 물어 오고 무얼 조급해하든 짐짓 아랑곳을 않으려는 어조로, 또는 누구에겐가 그걸 전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다소간은 무겁고 조급한 어조로 혼자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여자에 관한 그 주인의 이야기는 대강 이런 것이었다.

여자는 옛날의 아비 대신 웬 초로(初老)의 남정 한 사람과 늦은 저녁길로 주막을 찾아왔다. 그때 그 초로의 남정은 여자의 소리 장단통 하나와 매동거지가 제법 얌전한 나무 궤짝 하나를 등에 지고 왔는데, 그 나무 궤짝은 다름아닌 여자의 옛날 아비의 유골을 모신 관구(棺柩)였다.

여자는 옛날 소리를 하고 떠돌다가 보성 고을 어디선가 숨이 걷혀 묻힌 아비의 유골을 20여 년 만에 다시 선학동으로 수습해 온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이 선학동 산하에 당신의 유골을 묻어 드리기 위해서였는데 그게 당신의 유언인 듯싶었고, 여자로서도 그게 오랜 소망이 되어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학동은 원래부터 명당이 숨어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 있는 곳이었다. 선학동 산지엔 이미 다른 유골을 묻을 곳이 없었다. 묘자리를 잡을 만한 곳은 이미 모두 자리가 잡혀졌고, 설사 아직 그런 곳이 남아 있다 하여도 임자 없는 땅이 있을 리 없었다. 암장이나 도장이 아니고는 여자는 이내 일을 치를 수가 없었다. 마을엔 이제 여자의 소리와 비상학의 기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여자의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은근히 자기네 산 단속들을 서두르고 나섰다. 암장이나 도장조차도 섣불리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서두르지 않았다. 일을 서두르거나 초조해하는 빛이 조금도 없었다. 여자는 그저 소리만 하면서 날을 보냈다. 해가 설핏해지면 여자의 소리가 주막 일대의 어둠을 흔들었다.

 

함평 천지 늙은 몸이……

 

여자가 소리를 하고 초로의 남정이 장단을 잡았다. 나이 든 여자의 도도한 목청은 차츰 선학동 사람들을 주막까지 건너오게 하였고, 그 소리는 날이 갈수록 다시 듣는 사람의 애간장을 들끓어오르게 만들곤 하였다.

여자의 소리가 한 며칠 그렇게 계속되자 선학동 사람들에게 이상스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선학동 사람들 중엔 누구도 아직 여자의 아비에게 땅을 내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여자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녀의 아비가 언젠가는 그곳에 땅을 얻어 묻히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걸 지극히도 당연한 일처럼 생각했다. 그게 누구네 산이 될지도 몰랐고 어떤 식으로 그렇게 일이 되어 갈지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은 여자의 소리를 듣고 막연히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주막집 사내는 더더구나 그랬다. 그는 누구보다도 여자의 소리에서 깊은 암시를 겪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만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침내 그때가 다가왔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홀로 앉아

 

어느 날 밤그날사 말고 여자는 유난히 힘을 들여 소리를 하였다. 그리고 자정이 넘어서야 여자는 간신히 소리를 그쳤고, 선학동 사람들도 들판을 건너갔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잠자리를 찾아 들판을 건너간 다음 여자가 마침내 주막을 나섰다. 초로의 남정에게 아비의 유골을 지워 밤길을 앞세우고서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여자는 그만 다시는 주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엔가 아비의 유골을 암장하고 그 길로 선학동을 떠나가 버린 것이었다.

헌디 괴이한 것은 여자가 떠나간 뒤의 이 선학동 사람들이었어요.”

주인은 이제 그쯤에서 이야기를 거의 끝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 마을 사람들의 괴이한 태도로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어 나가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여자가 갑자기 동넬 떠나가 버렸는디도 그 여자의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서로 묻는 법이 없었거든요. 언젠가는 여자가 으레 그런 식으로 떠나갈 줄 알고 있었던 듯이 말이오. 일테면 사람들은 여자가 어떻게 마을을 떠나간 건지 사연을 모두 짐작한 거지요. 그리고 그 편이 외려 다행스런 일이란 듯이 일부러 입들을 다물어 준 거라오. 하니까 여자가 그날 밤 그런 식으로 아비의 유골을 숨겨 묻고 간 지가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그곳이 알려지질 않았지요. 글씨, 어떤 사람들은 혹 그곳을 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거나 도대체가 그 일에 대해선 말들이 없거든요…….”

주인은 그쯤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손의 기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손은 이제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리고 있었다.

주인도 손도 거기서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뒷산 솔밭을 스쳐 가는 바람소리마저 어느새 고즈넉이 잦아들고 있었다. 술주전자도 이젠 바닥이 나 있었다. 한데도 주인에겐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는 빈 주전자를 들고 말없이 자리를 일어서서 부엌으로 나가 새로 술을 하나 가득 담아 왔다. 그리고는 손과 자신의 술잔을 채우고 나서 가만히 손 쪽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이번에는 뭔가 손 쪽에서 입을 열어 올 차례라는 듯 그를 기다리는 기미가 역력했다.

손의 침묵은 의외로 완강했다.

그는 여전히 혼자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 피해 나갈 수가 없는 자신의 예감에 입술이 오히려 굳어 붙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주인의 침묵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 여자 아마 앞을 못 보는 장님이 아니었소?”

말없는 주인의 강요에 견디다 못해 손이 마침내 한숨을 토하듯 주인에게 물었다. 어딘지 이미 분명한 짐작을 지닌 말투였다. 아니 그는 으레 사실이 그러리라 스스로 확신해 버리고 있는 듯 주인의 대답조차도 기다리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러자 주인은 여태까지 손에게서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그토록 긴 이야기를 했었던 듯 조급한 어조로 시인해 왔다.

, 그랬지요. 내가 여태 그걸 말하지 않고 있었던가. 그 여잔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다오. 그래 그 노인이 여자의 앞을 인도하고 다니면서 손발 노릇을 대신해 줬지요.”

그러나 그 주인의 어조에는 아직도 어딘지 시치밀 떼고 있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이 말도 듣기 전에 여자가 어떻게 장님인 줄을 알고 있었는지도 묻질 않았다. 그것은 주인 쪽도 손이 그러리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짐짓 그렇게 모른 척해 넘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손 쪽도 주인의 그런 태도엔 새삼 이상스러워지는 느낌이 없는 것 같았다.

말이 오가는 게 오히려 부질없는 노릇 같았다. 두 사람은 다시 내밀한 침묵으로 할말을 모두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윽고 손 쪽이 먼저 자탄을 해왔다.

부질없는 일이오. 부질없는 일이에요. 선학동엔 이제 학이 날질 못하는데, 그 학 없는 선학동에 여자가 아비의 유골을 묻고 간 것이 무슨 소용이 닿는 일이겠소.”

손은 그저 그 몇 마디뿐 자탄의 소리가 안으로 잦아지듯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하지만 주인은 이제 그것으로 모든 게 족한 모양이었다.

손은 아직도 여자와 자신의 인연에 대해선 분명한 말이 한마디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학이 날지 못하는 선학동에 아비의 유골을 묻고 간 여자의 일을 제 일처럼 못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주인은 그것으로 모든 일이 분명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한 것 같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니, 노형은 아까 내 얘길 잊었구만요. 여자가 한 일은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다요. 여자가 간 뒤로 이 선학동엔 다시 학이 날기 시작했다니께요. 여자가 이 선학동에 다시 학을 날게 했어요. 포구 물이 막혀 버린 이 선학동에 아직도 학이 날고 있는 것을 본 사람이 그 눈이 먼 여자였으니 말이오…….”

주인은 이번에야말로 선학동에 다시 학이 날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눈이 먼 여자가 누구보다 먼저 선학동의 학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딘지 허황하고 기이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는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번에는 손 쪽의 기미는 아랑곳을 전혀 않으려는 식이었다. 손님 쪽이 어떻게 이야기를 듣고 있든 그는 필시 자기가 지녀온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놓고 말 결심을 한 사람처럼 혼자서 열심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손은 다시 입을 다문 채 주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주인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그 여자가 자신의 노랫가락 속에 한 마리 학이 되어간 이야기였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심낭자 가지 마오

 

여자는 날마다 소리만 하고 지내고 있었다.

한 며칠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여자는 그저 아무때고 하고 싶은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 여자의 소리는 언제나 포구 밖 바다에 밀물이 들어오는 때를 맞추고 있었다. 그것도 마치 성한 눈을 지닌 사람이 바닷물이 차오르는 포구를 내려다보는 듯한 눈길로 반드시 마루께로 자리를 나앉아 잡고서였다.

어느 날 해질녘의 일이었다. 사내가 잠시 마을을 건너갔다 돌아와 보니 이날도 또 여자와 노인이 소리 채비를 하고 앞마루께로 나앉아 있었다. 주인 사내는 눈먼 여자의 주의를 흐트리지 않으려고 무심결에 발소리를 죽이며 사립 밖에서 잠시 두 사람의 동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내는 거기서 차츰 괴이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자에게선 이내 소리가 시작되어 나오질 않았다. 여자와 노인 사이에선 한동안 사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기이한 문답만 오가고 있었다. 문답은 주로 여자가 묻는 쪽이었고, 노인은 그걸 듣고 따르는 쪽이었다.

오늘은 음력 초이틀 물이지요?”

여자가 무엇엔가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노인에게 물었다.

아마, 그렇제.”

노인이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다소간 방심스레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말처럼 말했다.

그새 벌써 물이 많이 차올랐어요.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요.”

그리고 나서 여자는 반 마장이나 떨어진 방둑 너머 바닷물소리가 귀에 들려 오고 있는 듯 한동안 더 주의를 모으고 있었다.

사내가 따져 보니 아닌게아니라 물때가 거진 만조 무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옛날 같으면 포구 안으로 밀물이 가득 차올라 올 때였다. 하지만 포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바닷물은 오래 전에 이미 방둑 너머에서 출입이 막혀 버린 터였다. 한데도 여자의 귀는 그 밀물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젠 여자에게서처럼 자신의 귀에도 그 물소리가 들려 오는 듯 지그시 눈을 내리감고 있는 노인에게까지 그걸 자꾸 일깨워 주고 있었다.

어르신 귀에도 이제 소리가 들리시오? 물이 밀려드는 저 소리가 말씀이오.”

그래 내게도 들리는 듯싶네.”

여자를 달래는 듯한 노인의 대꾸. 하지만 주인 사내가 정작에 놀란 것은 여자의 다음 물음이었다.

물소리가 들리시면 어르신도 그럼 그 물 위를 나는 학을 보실 수가 있겠구만요.”

여자는 노인에게 묻고 나서 방금 자기 눈앞에서 날개를 펴고 떠오르는 학을 굽어보고 있기라도 하듯 머릿속 정경을 그려 보이고 있었다.

포구에 물이 가득 차오르면 건너편 관음봉이 물 위로 내려와서 한 마리 학으로 날아오르질 않겠소? 어르신도 그걸 볼 수가 있으시겠소?”

그래 인제는 나도 보이는 듯싶네. 이 포구에 물이 차오르고 건너편 산이 그 물 속에서 완연한 학으로 떠오르는 듯싶으네…….”

노인은 한사코 여자의 뜻을 따라 자신의 눈과 귀를 순종시키고 싶어하는 대답이었다.

그러자 여자는 정작으로 그 비상학을 좇듯이 보이지도 않는 눈길로 벌판 쪽을 한참이나 더듬어대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비로소 채비가 제법 만족스러워진 노인 쪽을 돌아보며 비탄조로 말했다.

아배의 소리는 그러니께 그 시절에 늘 물 위를 날아오른 학과 함께 노닐었답니다.”

주인 사내로선 갈수록 예사롭지 않은 소리들이었다. 눈 아래 들판엔 이제 물도 없고 산그림자도 없었다. 게다가 여자는 어렸을 적 그 아비의 소망처럼 그 물이나 산그림자의 형용을 깊이 눈여겨보았을 리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이제 눈을 못 보기 때문에 오히려 성한 사람이 볼 수 없는 물과 산그림자를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두 눈이 성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라붙은 들판에서 있지도 않은 물과 산그림자를 볼 리가 없었다. 있지도 않은 물과 산그림자를 본 것은 그녀가 오히려 앞을 못 보는 맹인이기 때문이었다.

사내의 그런 상상은 차츰 어떤 불가사의한 믿음으로 변해 갔다.

 

망망창해에 탕탕(蕩蕩)한 물결이라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에 날아들고……

 

여자가 마침내 소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내는 그 여자의 오장이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 속에 문득 자신도 그것을 본 것이다. 사립에 기대어 눈을 감고 가만히 여자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사내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온 옛날의 그 비상학이 서서히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여자의 소리가 길게 이어져 나갈수록 선학동은 다시 옛날의 포구로 바닷물이 차오르고 한 마리 선학이 그곳을 끝없이 노닐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사내는 여자의 학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는 날마다 밀물 때를 잡아서 소리를 하였다. 그 소리는 언제나 이 선학동을 옛날의 포구 마을로 변하게 하였고, 그 포구에 다시 선학이 유유히 날아오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러다 여자는 어느 날 밤 문득 선학동을 떠나갔다.

하지만 사내는 여자가 그렇게 선학동을 떠나가고 나서도 그녀의 소리가 여전히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그 소리가 귓전을 울려 올 때마다 선학동은 다시 포구가 되었고, 그녀의 소리는 한 마리 선학과 함께 물 위를 노닐었다. 아니 이제는 그 소리가 아니라 여자 자신이 한 마리 학이 되어 선학동 포구 물 위를 끝없이 노닐었다.

그래 사내는 이따금 말했다.

여자는 어디로 떠나간 것이 아니여. 그 여자는 이 선학동의 학이 되어 버린 거여. 학이 되어서 언제까지나 이 고을 하늘을 떠돈단 말이여."

여자가 그토록 갑자기 마을을 떠나가 버린 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주막집 이웃들이나 벌판 건너 선학동 사람들마저 사내의 그런 소리엔 그리 허물을 해오는 눈치가 없었다. 선학동 사람들은 여자가 모셔 온 아비의 유골을 모른체해 주듯 여자가 그렇게 주막을 떠나가고 나서도 그녀의 사연이나 간 곳을 굳이 묻고 드는 일이 없었다. 뿐더러 주막집 사내가 이따금 그렇게 앞도 뒤도 없는 소리를 지껄여대도 그러는 사내를 탓하려 들기는커녕 오히려 그와 어떤 믿음을 같이하고 싶은 진중한 얼굴들이 되곤 하였다.

손은 이제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린 표정이었다. 이따금 손을 가져가던 술잔마저 이제는 전혀 마음에 없는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난 주인 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슴속에 지녀 온 이야기들을 손 앞에 모두 털어놓은 것만으로 주인은 이제 자기 할 일을 다해 버린 사람 같았다. 손이 뭐라고 대꾸를 해오든 안 해오든 그로서는 전혀 괘념을 할 일이 아니라는 태도였다.

주인은 완전히 손의 반응을 무시하고 있었다. 뒷산 고개를 넘어오는 솔바람소리가 아직도 이따금 두 사람의 귓전을 멀리 스쳐 가고 있었다. 그 솔바람소리에 멀리 둑 너머 바닷물소리가 섞이는 듯하였다.

침묵을 견디지 못한 건 이번에도 결국 손 쪽이 먼저였다.

주인장 이야긴 고맙게 들었소.”

이윽고 손이 먼저 주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어조는 이제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다는 듯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아까 이야기 가운데서 주인장께선 일부러 사람을 하나 빠뜨려 놓고 있었지요.”

주인이 달빛 속으로 손을 이윽고 건너다보았다.

손이 다시 말을 이었다.

주인장 어렸을 적에 이 마을을 찾아 들었다는 그 소리꾼 부녀의 이야기 말이오. 그때 그 어린 계집아이에겐 소리 장단을 잡아 주던 오라비가 하나 있었을 겝니다. 그런데 주인장께선 일부러 그 오라비의 이야길 빼놓고 있었지요.”

추궁하듯 손이 주인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주인도 이젠 더 사실을 숨길 것이 없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깊이 끄덕여 보였다.

그렇지요. 난 그 오라비가 뒷날 늙은 아비와 어린 누이를 버리고 혼자 도망을 쳤다는 이야기까지도 여자에게 다 듣고 있었으니께요.”

그렇담 주인장은 그 오누이가 서로 아비의 피를 나누지 않은 남남 한가지 사이란 것도 알고 있었겠구만요. 그리고 그 어린 오라비가 부녀를 버리고 떠난 것은 차마 그 원망스런 의붓아비를 죽여 없앨 수가 없어서였다는 것도 말이오.”

주인이 다시 고개를 무겁게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손이 다시 물었다.

한데 주인장은 아까 무엇 때문에 부러 그 오라비의 얘기를 빼고 있었소?”

그야 노형도 그 오라빌 알 만한 사람이구나 싶었으니께요.”

주인은 간단히 본심을 말했다. 그러고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노형이 처음 비상학 얘길 꺼냈을 때 난 벌써 눈치를 챘거든요.”

그렇다면 주인장께선 끝끝내 그 오라빌 모른 척하고 속일 참이었소?”

아니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요. 난 외려 이 2, 3년 동안 늘 그 여자의 오라비란 사람을 기다려 온 걸요. 언젠가는 결국 그 오라빌 만나서 이야기를 모두 전해 주리라……. 그래야 무언지 내 도리를 다할 듯싶었으니께요.”

그 오라비가 이곳을 찾아올 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이오?”

여자가 그렇게 말을 했지요. 혹 오라비 되는 사람이 여길 찾아와 소식을 물을지 모른다고……. 그 여잔 분명히 그걸 믿고 있는 것 같았지요.”

왜 처음부터 그 얘길 안 했소? 주인장께선 벌써 다 이런저런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오.”

그건 그 여자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그 여잔 오라비가 혹 이곳을 찾아오더라도 그 오라비가 자기 이야기를 물어 오기 전에는 절대 이쪽에서 먼저 입을 떼어 말하지 말라는 부탁이었지요. 오라비가 정 마음이 괴로워 원망을 못 이긴 듯싶어 보이기 전엔 말이외다……. 그래 난 그저 노형의 실토를 기다려 온 거지요.”

주인은 거기서 잠시 말을 끊고 손의 기색을 살폈다.

손은 이제 다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말없이 뜨락의 달빛만 내려다보고 앉아 있는 손의 얼굴에 새삼스런 회한의 기미가 사무치고 있었다.

주인은 그 손의 정한을 부추겨 올리듯 느린 목소리로 덧붙이고 있었다.

허지만 이야기를 먼저 내놓지 말라던 것은 실상 여자가 남기고 싶었던 부탁이 아니었을 거외다. 여자는 그네의 오라버니가 여길 찾아올 줄도 알고 있었고, 이야기가 나올 줄도 알고 있었으니께요. 여자는 진짜 다른 부탁을 한 가지 남기고 갔다오. ……오라버니에게 더 이상 자기 종적을 알려고 하지 말아 달라고요. ……아깟번에 내가 그 여자는 학이 되어 지금도 이 포구 위를 떠돌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그건 실상 내가 생각해 내서 한 말이 아니랍니다. 그것도 그 여자가 처음 한 말이었다오. 오라비에게 나를 찾게 하지 마시오. 전 이제 이 선학동 하늘에 떠도는 한 마리 학으로 여기 그냥 남겠다 하시오……. 그게 그 여자가 내게 남긴 마지막 부탁이었소. 그리고 그 여잔 아닌게아니라 한 마리 학으로 하늘로 날아 올라간 듯 그날 밤 홀연 종적을 감춰 갔고 말이오…….”

 

이튿날 아침 손은 조반상을 물리자 곧 길을 나설 채비를 하였다.

그 어른의 묘소라도 한번 찾아가 보지 않고 바로 떠나시겠소?”

주인이 그 손에게 무심결인 듯 넌지시 물었다.

주인 아낙에게 인사를 고하며 신발을 꿰신으려다 말고 그 소리에 손이 주인을 돌아다보았다. 뭔가 은근히 추궁을 해오는 듯한 손의 눈길에 주인은 그제서야 좀 서두르는 듯한 어조로 변명처럼 말했다.

, 그야 내가 아는 체하고 나설 일은 아니오만, 노형이 원한다면 그 어른의 묘소는 내가 가리켜 드릴 수 있어서 말이외다…….”

그러자 손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주인을 보고 뜻있는 웃음을 머금어 보였다.

나도 알고 있었소. 간밤부터 나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눈이 먼 여자하고 노인네 둘이서는 워낙 힘이 들 일이었으니까요…….”

손은 그러나 곧 고개를 천천히 가로 저어 버리며 쓸쓸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 뭐 다 부질없는 일이지요. 당신 생전에 지어 묻힌 한인데 이제 와서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대로 그냥 떠나고 말겠소…….”

말을 끝내고 나서 손은 이내 몸을 돌이켜 깨끗하게 쓸린 주막 마당을 걸어 나갔다. 주인도 더 이상 그것을 손에게 권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손을 뒤따라 사립 앞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뭔가 미진한 것이 남아 있는 사람처럼 거기서도 쉽사리 손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 그 오라비는 그땔 마지막으로 누이를 다시 만날 수가 없었소?”

그가 새삼 손에게 물었다.

아니랍니다. 그 뒤로도 딱 한번 제 누이를 만난 적이 있었답니다. 한 두어 해 저쪽 일이었지요. 장흥읍 저쪽 어느 주막에서였답니다…….”

손은 걸으면서 남의 말을 전하듯 느릿느릿 말했다.

하지만 그때도 그 오라빈 끝내 자기가 오라비란 말을 못하고 말았답니다. 그 누이가 워낙 눈이 먼 여자였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땐 종적을 알 수가 없게 됐어요.”

주인 사내는 별 할 일도 없이 아직도 어정어정 손의 발길을 뒤따르고 있었다.

손도 굳이 주인의 그 은근한 배웅의 발길을 막지 않았다.

늦가을 아침 햇살이 유난히도 맑았다. 고개를 넘어오는 솔바람소리도 이날따라 유난히 가지런했다.

두 사람은 이윽고 솔밭길을 들어서고 있었다. 들판과 관음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손은 그제서야 걸음을 멈춰 섰다. 그러고는 뭔가 고개를 넘어서기 전에 주인의 마지막 말을 재촉하듯 말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주인도 이윽고 그 손의 뜻을 알아차린 듯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래, 노형은 아직도 그 누이의 종적을 찾아다닐 참이오?”

하지만 손은 이제 오히려 그런 주인을 안심이라도 시키듯 가만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오, 그도 뭐 이제는 다 부질없는 노릇 아니겠소. 하기야 이번길도 꼭 그 여자 소식을 만나리라는 생각에서 나선 건 아니지만 말이오. 글쎄 어쩌다 마음에 기리는 일이 생기면 여기나 한번 더 찾아오게 될는지……. 여기 선학동이라도 찾아와서 학의 넋이 되어 떠도는 그 여자 소리나 듣고 가고 싶소마는…….”

그러고는 지금도 그 선학동 어디선가 여자의 노랫가락 소리가 들려 오고 있는 듯, 그리고 그 노랫가락 속에 한 마리 학이 되어 물 위를 떠도는 여인의 모습을 보고 있기라도 하듯 눈길이 새삼 아득해지고 있었다.

솔바람소리가 다시 한 차례 산봉우리를 멀리 넘어가고 있었다.

주인은 거기서 길을 돌아섰다.

그리고 손은 다시 솔밭 사이의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주인 사내가 사립을 들어섰을 때 손도 방금 돌고개 모롱이를 올라서고 있었다.

하지만 손은 이내 고개를 넘어가지 않았다. 주인은 손이 고개를 넘어가기를 사립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롱이를 올라선 손의 모습은 한식경이 지나도록 사라질 줄을 몰랐다.

기다리다 못한 주인이 마침내 모롱이 쪽에서 먼저 눈길을 비켜 돌아서 버렸으나 고개 위의 사내는 한나절이 지나도록 그 모습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사내가 고개를 넘어간 것은 저녁나절 해도 거의 다 기울어 들 때쯤 해서였다.

손이 고개를 넘기를 기다리며 저녁나절 내내 사립 손질을 하고 있던 주인 사내가 어느 순간 아직도 작자의 모습이 그대로려니 싶은 생각으로 고개 쪽을 바라보니, 그가 문득 모습을 거두고 없었던 것이다.

손의 모습이 사라진 빈 고갯마루 위론 푸른 하늘만 무심히 비껴 흐르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는 문득 가슴이 저리도록 허망스런 느낌이 들었다.

그는 고개 위에 손이 모습을 남기고 있는 동안 하루 종일 그 고개 쪽으로부터 어떤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 오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것은 옛날에 들은 그 여인의 노랫가락 소리 같기도 하였고, 어쩌면 사내 그자가 한나절 내내 그렇게 목청을 뽑아 내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고개 위의 사내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자 그의 귓가에서도 이제 소리가 문득 그쳐 버린 것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정말로 하루 종일 그 소리를 듣고 있었는지 어쨌는지 분명한 분간을 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굳이 그런 걸 따지려 하지 않았다. 정말로 소릴 들었든지 말았든지 그런 건 굳이 상관하기가 싫었고 또 상관을 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사내는 그때 그런 몽롱한 마음가짐 속에서 또 한 가지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사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보았을 때, 길손의 모습이 사라지고 푸르름만 무심히 비껴 흐르는 고갯마루 위로 언제부턴가 백학 한 마리가 문득 날개를 펴고 솟아올라 빈 하늘을 하염없이 떠돌고 있었다.(1979)

 

   

 

-작가 노트-

 

우리의 영혼 위에 날아오르는 학

 

고향 마을 고개 너머엔 긴 포구가 뻗어 들어와 있고, 그 포구 건너편에 기이한 모습을 한 산줄기가 둘러서 있었다. 산줄기의 모습은 흡사 장삼을 걸치고 앉아 있는 도승지의 자태였다. 중간쯤에서 삼각형으로 높게 솟아오른 주봉(主峰)은 도승의 머리 부분에 해당했고, 그 양편으로 길게 흘러내린 두 산줄기는 양팔을 넓게 벌리고 앉아 있는 장삼자락이 완연하였다.

인근 사람들은 그 산줄기 안에 명당 자리가 깃들여 있다 하였다. 그것은 도승 모습의 산줄기가 명당 자리를 품안에 싸안은 형국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포구 건너편에서 들으면 때로 그쪽 산에선 도승이 둥둥 북을 울려대는 소리까지 들려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줄기에 명당이 깃들여 있으리라는 믿음은 그 산세의 자태가 도승의 모습에 방불한 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포구에 물이 가득 차오르면 장삼자락을 넓게 벌려 앉은 도승의 모습은 다시 포구에 그림자를 드리워 한 마리 학으로 물 위를 떠돌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명당 자리는 그 물 위를 날아오르는 한 마리 비상학에 안겨 밀물 때마다 구천(九天)을 함께 날아오르는 격이었다. 명당 중의 명당이 아니 깃들일 수 없었다.

어릴 적, 어른들에게서 자주 들어 온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 무렵 그 산이나 물에서 거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듣고서도 그저 어른들이 꾸며 낸 과장이거니만 여겨졌을 뿐 도승이고 학이고 거기에선 무슨 비슷한 형국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데 지난 가을, 10여 년 만에 모처럼 고향 마을을 찾아갔을 때였다. 향리에서 며칠 길동무를 해주던 어렸을 적 친구가 어느 날 해질녘에 옛 포구길을 함께 지나다가 무심결인 듯 말했다.

옛날엔 저 산세 가운데 참 기막힌 명당 자리가 있었다는데 말이시…….”

한탄조의 얘긴즉 이제는 그 산의 명당 자리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이젠 저 산도 날지 못하는 학의 꼴이 되었거든.”

포구는 그새 간척사업으로 물길이 끊겨 말라붙어 있었다. 포구의 물길이 끊기고 말았으니 산은 더 이상 학이 되어 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명당이 사라졌을 건 당연한 이치였다. 친구의 아쉬움은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명당이 사라졌거나 말았거나 그건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나는 그때 그 친구의 말에서 이상한 감동을 맛보고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 맞은편 산줄기가 한 마리 비상학으로 물이 마른 포구 위를 천천히 날아오르고 있는 모습을 눈앞에 역력히 그려 볼 수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토록 자주 이야길 들어도 보이지 않던 그 비상학의 모습을 이젠 오히려 물길이 끊어진 그 옛 포구의 허망스런 자취 위에서 말이다.

소설을 쓰는 일은 때로, 포구의 물이 말랐거나 말았거나 우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그 물을 지니게 하여 황지(荒地)에 가라앉아 버린 학이 우리의 영혼 가운데서 다시 날아오르게 하고, 혹은 그것을 다시 보게 하는 일이 되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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