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날개
전상국
내가 국민학교 이학년 때 두호가 태어났다. 여덟 살 터울의 동생을 본 것이다. 두호의 출생은 우리 식구들뿐만 아니라 가깝고 먼 친척은 물론 이웃 사람들까지 떠들썩하게 했다. 칠대 독자 집안에 사내아이가 또 하나 태어난 이 경사야말로 결코 예삿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뜻하지 않은 기쁨 뒤에는 으레 그 기쁨이 무엇인가에 의해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위구심이 일게 마련이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게 마련이고 드디어는 그 두려움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처음의 그 기쁨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뒤이기 예사다.
우리집의 경우가 꼭 그랬다. 그때 아직 정정한 모습으로 살아 계셨던 할머니는 둘째 손자를 본 기쁨으로 동네 노인들 앞에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어 보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안방을 들랑거리며 두호 기저귀를 갈아 채우면서 그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만큼 두호에 대한 할머니의 정성은 너무 극성스러울 정도였다. 부정을 탄 사람, 이를테면 초상집에 다녀오는 사람이 우리 대문 근처만 얼씬거려도 야단이 났다. 내가 태어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두호도 석 달 열흘 간이나 안방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 정수박이를 만지면 단명하다고 해서 삼 년간 그곳에 쇠딱지를 한 번도 씻어내지 않았다. 삼신풀이굿을 위해 무당이 집안을 들랑거렸다. 두호가 베는 베개를 가지고 장난을 하다가 할머니한테 호된 매도 맞았다. 매를 맞고 내가 서럽게 울 때마다 할머니가 말했다.
"너두 이 할미가 다 그렇게 키웠단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두호의 몇 갑절이나 되는 정성을 쏟았다는 얘기다.
"니가 다 복이 많으려니까 동생을 본 거야."
그러면서, 아무리 내리사랑이라고는 하지만 그 대견한 거야 맏솓자에 비할 거냐고 남들 앞에서 내 자랑을 늘어놓던 할머니였다.
그런데 할머니한테 이때껏 안 하던 소리를 가끔 구시렁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조상 귀신들을 들먹여 입에 올리는 일이었다.
" 망할 영감태기 같으니라구. 몇 해만이라도 더 살다가 갈 것이지..............."
두호가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혼자 누리는 죄스러움을 몇 해 전 타향에서 객사한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 섞인 그런 푸념으로 나타냈다. 오대 독자였던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이 장가를 가 손자를 낳기까지 안절부절못하고 공연히 집안 여자들만 들볶았다는 것이다. 딸 하나를 낳고 꼭 십 년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때 할아버지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이러다간 손자도 못 보고 죽겠다며 투덜거리더니 결국 아버지를 열일곱 살에 장가를 들렸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를 스물둘에 낳았다. 그런데 집안에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해 안절부절못하던 할아버지가 나를 낳은 뒤로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육순이 지난 이가 늦바람이 난 것이다. 여자라곤 할머니밖에 모르던 할아버지가 이웃 마을에 살던 과부와 눈이 맞아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다. '귀신이 덧들린 거지' 그 일을 두고 할머니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딸 하나만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한 할머니가 시앗이라도 봐 자식을 보라고 했을 때는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던 이가 어쩌자고 그 어려운 손자까지 본 뒤에 그런 바람이 불었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가 점을 쳐봤다. 당신에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복채를 싸들고 점쟁이를 찾아다닌 할머니였다. 그럴 때마다 점괘가 신통하게도 잘 맞아떨어졌다. 십 년 만에 아들을 낳을 해까지 알아맞힌 점쟁이도 있었다. 이번의 경우 할아버지가 늦바람이 나 이웃 마을 과부와 달아난 일을 두고 점쟁이가 말했다.
'집 나갈 팔자구머!' 그 소경 점쟁이가 다시 말했다.'내버려 둬, 잘 나간 거니까. 억지루 잡아뒀다간 자식 잃을 수여.' 요는 집안에 살이 낀 두 사람이 한 지붕 밑에 살게 되면 결국 한쪽 기가 꺾여야 집안이 태평한 법인데 그렇게 되자면 한 사람이 죽는 길밖에는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 점쟁이 말을 고스란히 믿었다. 집 나간 할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팔자 푸념을 할 줄 모르는 할머니였다.
"니가 하라버이 대신이여!"
할머니가 내 등을 긁어주며 가끔 그런 뜻의 말을 했다. 할아버지가 집을 나갔기 때문에 우리 집의 손이 끊기지 않게 됐다는 뜻이었다.
집 나간 할아버지가 돌아온 것은 내 나이 여섯 살 때였다. 거적주검이 돼 돌아왔다. 할아버지와 함께 도망쳤던 그 과부가 아편쟁이였던 것이다. 논 몇 마지기 팔아가지고 나간 뒤 그 돈이 다 떨어지자 그대로 거지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다. 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은 채 객지에서 거적주검이 된 할아버지 소식을 처음 듣던 날 할머니는 젖을 더듬는 내 손을 무섭게 뿌리쳤다. 그때 나를 쏘아보던 할머니의 그 눈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눈에는 적의 같은 게 번쩍였던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장사를 치르고 이태 만에 엄마가 아이를 배자 할머니는 점쟁이부터 찾아갔다.
'아들을 낳겠구먼' 점쟁이가 다시 말했다. '허지만 아들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여.'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랬다. 할머니가 무슨 얘기냐고 다그쳐도 점쟁이는 속 시원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아기를 낳거든 그 출생 일자를 맞춰 다시 한번 와보라고만 했다. 그러나 두호를 낳기가 무섭게 그 점쟁이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그는 서울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리고 만 뒤였다. 다른 점쟁이들을 찾아다녔지만 별 신통한 소리를 듣지 못한 채 할머니는 오직 얼마 전의 그 점쟁이 말만을 마음에 새록새록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두호가 세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엄마와 함께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그때 군대에 들어가 집에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두호는 밖에 나갔어요, 어머니."
엄마가 큰소리로 말했다. 할머니는 앓아누우면서부터 두호를 싫어했다. 싫어한다기보다 차라리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당신 곁에 두호가 얼씬도 못하게 했다.
"우리 어머니가 왜 저런대?"
서울서 내려온, 아버지보다 열 살 위인 고모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가 고모 곁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말했다.
"내가 형님한테 묻고 싶은 얘기예요. 글쎄 어머님이 서울 가셨다 온 뒤로 저렇게 두호를 미워하신단 말씀예요."
고모가 뭔가 생각을 짚어내려는 듯 눈을 껌벅이다가,
"맞아.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여기 읍에 살던 그 점쟁이를 서울서 만나보셨대. 어머니 말로는 아주 용한 점쟁이라고 하데."
"그래, 그 점쟁이가 우리 두호를 미워하라고 했대요?"
"설마 그럴 리가! 다만 그 점쟁이를 만나고 나서 부랴부랴 집으로 내려가셨거든. 하긴 이런 말씀을 하시데. 두호 째가 자식이 아니라 사(邪)라고."
"아마 그건 그때 째 아버지가 제 고집대로 군대엘 들어간 일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엄마가 말했다.
사실 아버지는 육대 독자이기 때문에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걸 아버지 스스로가 지원해서 들어갔던 것이다. 할머니가 머리를 싸매고 누워 식음을 전폐하면서 말려도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그 즉시로 서울 고모내 집으로 내려갔던 할머니였다.
"도대체 그 점쟁이가 뭐라고 했을까요?"
"그걸 누가 알겠나, 어머니밖에!"
그 비밀을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마지막 숨을 거두는 모습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나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두호가 마당에 앉아 흙장난을 하고 있다가 내게 말했다.
"성아, 할무니 주겄나?"
두호는 얼굴에 온통 흙을 묻힌 채 반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더럭 무섬증이 났다. 할머니의 마지막 숨 거두는 순간의 그 무서움과는 또 다른, 살아 있는 사람의 교활한 눈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무서움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군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 즉시 조상 대대로 물려오는 논밭을 처분했다. 그리고 서울 망우리 근처로 이사를 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어림도 없었을 일을 아버지는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해 버렸다. 누가 말리고 어쩌고 할 여유도 주지 않고 척척 팔아버린 다음 서울로 이사를 한 뒤 오막살이 같은 집 하나를 사고 남은 돈으로 화물 트럭을 샀다. 농사나 지어먹던 농사꾼이 이처럼 생활환경을 바꾼 일은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하면서도 가끔 아버지한테 대들었다.
"한호 아버지, 정말 이래도 되는 거예요?"
그러나 아버지는 어깨에 바람을 일으킬 뿐 엄마 말 같은 건 들은 척도 안 했다.
아버지가 이처럼 사람이 바뀐 것은 군대 생활 삼 년, 거기서 배운 운전 기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군대에 들어가면서 곧 운전 교육대에서 자동차 운전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운전대를 잡은 그 첫날 아버지는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바란 새로운 세계의 열림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한마디로 자동차 운전이 아버지의 적성에 맞았던 것이다. 그 고되다는 군대 생활이 아버지에게는 마냥 신바람이 났을 뿐이다. 아버지는 운전 미치광이가 됐다. 그는 시간만 있으면 자기가 운전할 차에 달라붙어 그 차의 내부를 속속들이 알려고 햇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고 칸보이 지프를 따라 국도를 달려나갈 때 그는 어금니를 비집고 올라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커다란 괴물을 움직여 나가고 있는 자신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당신이 배속되어 있던 수송 중대에서 가장 모범적인 운전병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수송 책임을 맡은 선임하사가 운전병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어젯밤 내 꿈자리 되게 안 좋았데이. 느덜 중에 말이다, 내 꿈자리 액땜에 자신 있는 사람은 나서 보레이!' 평소 농담을 모르던 그가 그런 농담 비슷한 말을 하자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임마들이, 내사 삼대 독잔기라.' 그가 약간 멋쩍게 웃으면서 계속했다. '내가 아직 아들도 하나 못 맨들었는기라. 우리 집 와이프 뱃속에 지금 하나 삐약삐약하고 있다만........ 이런 차제에 내 죽을 수 있노?' 요는 꿈자리가 나쁜 자기를 누가 태우고 가겠느냔 얘기였다. 운전병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운전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도 모르게 깃들이는 금기 때문이었다. '임마들아, 그라믄 내사 하사 물어보겠데이, 느덜 중에 외아들이 아무도 없나?' 선임하사가 운전병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는 비로소 자신이 육대 독자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니, 나 태우고 갈 자신이 있나?' 손을 쳐든 아버지를 향해 선임하사가 물었다. '자신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날 아버지가 사고를 낸 것이다. 국도를 달리면서 옆에 앉은 선임하사가 출반 전에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흉몽, 애기, 더 이상한 일은 선임하사가 말한 그의 고향에 있는 뱃속에 들어 있을 아이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갓난애의 얼굴이 아닌 서너 살 먹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문득 그것이 두호의 모습으로 겹쳐 나타나기도 했다. 산모롱이 비탈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여름 한낮 쨍쨍한 햇볕에 아스팔트가 눅진눅진 녹아났다. 한없이 무료감에 빠져드는 그런 시간이었다. 이런 때 운전하는 사람들은 가끔 눈을 뜬 채 졸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바로 그랬다. 깜빡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길 한가운데 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핸들을 잡아 꺾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낭떠러지에 처박힌 차 속에 선임하사가 죽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몸이 생채기 하나 없이 말짱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 그 길 가운데 있던 아인 어떻게 됐나?' 아버지 얘기를 듣던 사람 하나가 물었다. '글쎄 그게 묘하다니까, 나는 분명 아이를 보았는데 내 차 뒤를 따라온 운전병들에 의하면 그런 아이는 거기 없었다는 거야. 결국 내가 헛것을 본 셈이었지.'
말하자면 아버지가 농사를 집어치우고 논밭을 팔아 서울로 올라온 즉시 화물 트럭을 산 것은 군대에서 선임하사를 죽게 했던 그 사건이 아버지 가슴에 오기처럼 뻗쳐 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죄의식하고는 거리가 먼 생각이었다. 비록 사람은 죽였을 망정 그날의 비현실적인 여러 요소가 아버지의 호기심에 불을 당긴 것이다. 선임하사의 꿈, 선임하사의 고향, 그의 아내 뱃속에 든 아이, 그리고 길 한가운데 서 있음으로 해서 자동차를 둘러엎었던 그 헛보여진 아이....... 이 모든 것은 아버지의 뜻과는 무관하게 일어났고 아버지의 의지로써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일들이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아버지는 그 커다란 괴물을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기꺼움으로 운전대를 잡아 왔지만 그 사고 이후부터 그는 운전대에 앉은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어떤 알 수 없는 힘과의 싸움을 의미했다. 제대를 하자 아버지는 기꺼이 그 싸움을 시작하기로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화물 트럭을 몰고 무슨 일이든 맡아서 했다. 답십리 고모네가 커다란 싸전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처음 그 싸전에 넣은 곡식을 모으기 위해 시골로 차를 몰고 다녔다. 그다음은 이삿짐을 나르는 일도 하고 집 짓는 데 쓰는 자제를 나르는가 하면 자갈 채취장에서 그 하청을 맡아 하는 등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뛰었다. 아버지는 항상 신바람이 났다. 몸도 보기 좋게 불고 얼굴도 피둥피둥 폈다. '야, 한호야, 느네 형 간다.' 내 친구들이 그렇게 놀려대기도 했을 정도로 아버지는 젊었다. 그러나 엄마는 아버지와 달랐다. 아버지처럼 그렇게 젊지 않았다. 아버지보다 두 살 위이긴 했어도 요즘같이 그렇게 팍삭 늙은 엄마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다지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차 운전을 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옛날 시골서 할머니가 하던 것과 똑같이 점쟁이를 찾아다녔다. 아버지가 차를 처음 끌고 나가던 날은 무당까지 집에 들여 굿을 했다. 굿떡을 마을에 돌리면서 엄마는 아버지의 무사를 빌었다. 아버지가 늦게 돌아오는 날은 골목까지 나가 아버지를 마중하느라 늘 잠을 설쳤다.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도 늘 구시렁거렸다. 엊저녁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는 게 어떠냐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마 말을 귓전으로 흘렸다. 그런 날은 하루 내내 엄마 얼굴에 그늘이 깔렸다. 아버지가 차를 가지고 나간 뒤 우리 형제가 조금 싸움을 해도, 하찮은 소리로 입바른 말을 해도 엄마는 언성을 높였다. 우리는 길에서 돌멩이도 마음대로 주워 들일 수 없었고 집안의 물건을 함부로 옮겨놓아도 안 되었다. 아버지가 운전을 하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금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아버지는 엄마와는 사뭇 달랐다. 엄마가 벌이는 그런 뒤숭숭한 일은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대개 무관심하게 웃고 넘어갔다.
'꿈자리가 너무 나빠요!'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아버지는, '당신 꿈은 나빴는지 몰라두 내 꿈은 되게 좋았다구!' 이렇게 웃어넘겼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엄마의 하는 일을 전연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두호 엄마가 그렇게 집에서 빌어주니까 내가 무사한 거 내가 다 안다구' 이런 식으로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는 그 말 한마디가 고마워 눈물을 질금거렸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또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 나섰다. 아버지에 대한 점괘가 늘 좋지 않게 나온다고 엄마가 답십리 고모한테 얘기하는 걸 여러 번 들었다. 엄마는 그 좋지 않은 점괘를 액막이하느라 사람들 눈을 피해 별의별 이상한 일을 벌이곤 했다. 소반 위에 쌀을 서른세 줌 받아놓고 그 위에 칼을 세워놓는가 하면 실을 일곱 발 반을 재서 끊은 다음 그 실로 이상한 매듭을 만들어 천장 속에 넣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구두 속이나 베갯속에는 언제나 부적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한 엄마의 액막이 놀음에 훼방꾼이 하나 있었다. 여섯 살이 된 두호가 바로 훼방꾼이었다. 두호는 엄마의 그러한 액막이 짓을 몰래 숨어 보고 있다가 엄마가 자리를 뜨면 이내 달려가 소반 위에 놓인 칼을 집어 마루에 꽂는가 하면 엄마가 천장 위에 감춘 실매듭을 목에 감고 다니기가 예사였다. 아버지 구두 속 혹은 베개나 옷 속의 부적도 늘 두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 일로 해서 엄마는 무섭게 화를 냈다. 두호에게 매질을 하는 엄마의 눈에서 나는 살의를 보았다. 엄마는 부들부들 치를 떨면서 사정없이 두호를 패댔다. 그러나 두호의 그런 짓궂은 버릇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엄마가 하는 일에 훼방을 놓았다.
한번은 엄마가 두호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너 죽고 나 죽자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드럭을 사서 운전한 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그 사고가 나기 바로 이틀 전이었다. 엄마가 좀 심한 액막이를 했었다. 그날 밤 나는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 봤다. 엄마가 우리 집 고양이 목에 노끈을 감으면서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뭔가 숫자를 세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고양이 목에 노끈을 꽤 여러 번 감았다. 고양이가 발버둥 치고 있었다. 답십리 고모네 싸전에 있던 고양이 중의 하나를 두호가 얻어다 기르는 , 꽤 큰 고양이였다. 두호의 것이었다. 엄마가 그 고양이 목에 노끈을 감아쥐고 집 뒤꼍으로 돌아갔다. 뒤꼍에 연탄을 넣어두는 창고가 있었다. 엄마는 그 연탄 창고 서까래에다 고양이 목을 매달았다. 고양이는 허공 중에서 버둥대며 짧고 절박한 울음소리를 냈다. 엄마가 그 고양이를 가운데 놓고 정확히 서른 여덟 바퀴를 맴돌았다. 서른 여덟은 아버지 나이였다. 아버지는 그때 자갈 채취장에서 묵어가며 차를 굴리고 있었다. 내일 모레면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들킬세라 내 방으로 돌아왔다. 두호는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고 그리고 오래오래 계속되는 고양이의 비명을 듣다가 제풀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계속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들었다. 나는 꿈속의 그 고양이 울음 소리 때문에 결국 잠이 깨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그때 고양이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무서움을 참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뒤꼍으로 돌아갔다. 달빛이 연탄 창고까지 비껴 들고 있었다. 거기 고양이가 추욱 늘어진 채 매달려 있었다. 내가 그 곁까지 다가가도 고양이는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죽었구나 ㅡㅡㅡ생각하면서 나는 방에서 가지고 간 면도칼을 꺼내 고양이가 매달린 노끈 중간쯤을 끊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만큼 놀랐다. 툭 둔탁한 음향을 내며 땅바닥에 떨어질 걸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땅에 떨어졌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놈은 냐아옹 ㅡㅡㅡ 아주 길고 암팡지게 한 번 운 다음 나는 듯이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누가 고양이를 살려줬니?"
아침에 엄마가 두호와 나를 불러놓고 아주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의 얼굴은 차고 매서웠다. 눈에 팔팔 살기 같은 게 날렸다. 두호가 코를 훌쩍 들이마시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나는 두호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어 얼른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한호야, 니가 그랬니?" 엄마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찼다. 나는 부르르 몸서릴 쳤다.
"내가 뭘 그랬단 말예요?" 나는 짐짓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이번에도 또 니가 그랬구나?" 엄마가 두호의 멱살을 잡았다. 두호가 멱살을 잡힌 채 엄마의 얼굴을 그 큰 눈으로 빤히 쳐다보며, '그거 내 고양인데...........' 멱살을 죄인 채 불분명한 발음으로 입엣소릴 하다가 내 쪽으로 힐끗 눈을 주었다.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요 망할 놈의 새끼!'" 엄마가 두호의 멱살을 더 다부지게 추켜들었다.
"너 죽고 나 죽자!" 두호를 질질 끌고 엄마는 부엌까지 가 식칼을 찾아 두호의 목에 댔다. 두호가 엄마한테 몸을 내맡긴 채 눈을 감았다. 엄마가 두호의 멱살을 풀면서 뒤로 밀어 던졌다. 두호의 몸이 부엌 시멘트 바닥에 나둥그러지며 머리가 계단 모서리에 둔탁한 소리로 부딪쳤다. 처음 몇 분 동안 두호는 울지 않았다. 엄마가 부둥켜안고 흔들어도 얼굴을 약간 찡그릴 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 두호는 아주 가냘픈 소리로 칭칭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고양이 울음 소리처럼 여리면서도 절박한 느낌을 주는 그런 것이었다. 두호는 낮게 한 차례 토했다. 그리고 골이 아프다고 누워 일어나지를 않았다. 엄마가 두호를 안고 울음을 터뜨리다가 드디어는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그 병원에서는 종합병원에 가 진찰을 해보라고 했다. 종합 병원은 이미 외래객을 받지 않는 시간이었다.
다음 날 오전 수업 중인데 담임이 나를 불러댔다. 집에 빨리 가보란 얘기였다.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호는 일어나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뭐야 엄마, 엄마가 학교에 전화한 거야?"
엄마가 나들이 옷을 챙겨 입고 나서며 말했다.
"두호하고 집 좀 보고 있거라. 아버지가 다치셨단다."
엄마 눈에 주렁주렁 눈물이었다.
아버지가 운전하던 트럭이 사람을 치면서 산비탈에 넘어진 것이다. 아버지는 이마에 유리 파편이 하나 박혔을 뿐 다른 데는 말짱했다. 문제는 아버지 차에 치인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완치 육 개월의 진단이 떨어진 중상이었다. 완치라고는 하지만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할 판이었다. 그 중상 당한 사람의 가족들이 다음 날 우리 집에 몰려와 난장판을 벌였다. 아버지는 병원에 있었고 엄마는 몸을 피했다.
두호는 그날도 배를 움켜쥐고 설설 기더니 아침에 먹은 걸 토해 냈다.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을 대라, 아버지 말고 다른 식구를 내놓아라 ㅡㅡㅡ 몰려온 사람들은 아우성이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그네들을 맡아야 했다. 하루 내내 버티던 사람들이 저녁에 물러가자 나는 긴장을 풀고 깜박 잠 속으로 떨어졌다. 꿈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날 밤 나를 속여 도망친 뒤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그 고양이가 나타나 목에 감긴 노끈을 풀어달라며 냐아옹 냐아옹 울었다.
아버지 차에 치인 그 사람의 치료를 위해서 우리는 집을 내놓아야만 했다. 부서진 아버지의 그 헌 트럭은 아무런 보탬도 못 되었다. 머리에 붕대를 맨 채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얼굴이 새까맣게 죽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우리는 남의 집에 방 한 칸을 빌려 살았다. 아버지는 그 젊고 싱싱하던 얼굴을 잃고 추욱 어깨를 늘어뜨린 채 방 안에 숨어 살았다. 집을 팔아 해결을 보았기 때문에 교도소에 안 간 것만도 다행이라고 엄마가 말하곤 했다.
엄마가 대신 벌이를 나갔다. 아동복을 이고 행상을 나선 것이다. 방을 지키는 것은 아버지와 두호였다. 물론 두호는 그날 부엌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뒤 몇 번 토하고 머리통을 감싸며 꼭 죽은 것처럼 누워 있더니 아버지가 사고를 낸 그 경황 속에서 우리 식구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던 것이다. 더 큰 탈이 생기지 않은 것만 해도 다해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두호가 그렇게 머리를 다쳤다는 얘기를 엄마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셋방 구석에서 아버지는 바보처럼 멍청한 눈으로 집안 식구 누구의 일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가 평화시장에서 떼어온 옷가지를 싸들고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도록 돌아다녀도 별 얘기가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패배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운전대를 잡고 자신의 힘으로 불가사의한 어떤 힘과의 대결에서 능히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했던 그만큼 그의 패배의 후유증은 컸다. 그는 깊은 실의의 늪에 빠져 허덕였다. 운전대를 잡지 못한 아버지는 송장과 다름없어 보였다. 내 학교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져도 별 관심이 없었으며 두호가 얼굴에 핏기를 잃은 채 빼빼 말라가고 있어도 매한가지였다.
나는 밤마다 꿈에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 목에 노끈이 칭칭 감겨 있었다. 나는 고양이 목에서 그 노끈을 풀어내고 싶었다. 숨이 답답하고 오줌이 마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좀체 잡히지 않았다. 겨우겨우 잡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예외 없이 두호였다. 나는 늘 두호의 목을 다잡아 쥔 채 눈을 뜨곤 했다. 눈을 뜨고도 나는 한참씩 고양이와 두호를 혼동하고 있었다.
"엄마, 두호 병원에 좀 데리고 가봐요."
나는 어느 날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가 행상을 쉬고 집에서 묵은 빨래를 하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고 없었다.
"두호가 왜?"
두호에 대한 내 경고를 무시한 채 엄마는 여전히 보따리 장사에만 신경을 쏟았다. 입에 풀칠하는 것, 그것 이상의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폐인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이처럼 낭패의 늪으로 떨어뜨린 그 힘은 무엇일까. 아버지는 그날 사고 당시의 정황 같은 걸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군대 수송 중대에 있었던 그 당시 선임하사를 죽이던 그날의 정황을 얘기하듯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나올 법한 얘기가 예상 외로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실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침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들었던 풀포기에 다시 물이 오르듯 그렇게 아버지가 싱싱하게 살이 오르기 시작한 날이 왔다. 답십리 고모가 우리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뒤숭숭한 일을 벌이고부터였다. 답십리 고모가 집에 오는 날은 엄마도 장사를 쉬었다. 그리고 고모와 함께 부엌 뒤에서 뭔가 숭숭거리며 얘기를 나눴다. 그네들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크게 주억거려 어떤 사실에 대해 깊은 긍정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어둡고 으스스한 집안 분위기를 내 어린 시절 기억에서 찾아 올렸다. 그랬다. 할머니가 살아 있던 시절, 시골에서 무당과 점쟁이가 집안을 드나들던 그때의 그 귀기에 찬 냄새였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새들어 사는 그 집에 무당이 나타나 굿판을 벌였다. 그 굿판은 교회에 나가는 주인집의 완강한 저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다. 마당에서는 차마 벌이지 못하고 우리의 좁은 그 단칸방에서 법석을 떨었다. 나는 귀를 막아 쥐고 골목을 빠져나가 그 창피한 현장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날 밤 나는 멀리 떨어진 도봉산 중턱까지 올라가 산속을 헤맸다.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나는 다만 두호를 생각했을 뿐이다. 두호를 산속에 데리고 오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을 눌렀다. 그 숲에서 나는 두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을 말해야 한다. 두호야, 형이 그때 그 고양일 살려준 거다. 두호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고집스런 목소리로 말한다. ‘그거 내 고양이야.’ 그래, 네 고양일 형이 살려준 거야. 살려준 거라구. 그러나 내 목소리는 힘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살려주지 않았다. 나는 비겁할 뿐이다. ‘그거 내 고양이야.’ 두호가 다시 고집스레 말한다. 나는 두호와의 눈싸움에서 지고 만다. 나쁜 새끼. 살의가 손끝으로 뻗친다. 나는 두호의 멱살을 잡는다. 갈참나무 가지를 붙잡고 몸을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때서야 나는 두호를 산에 데리고 오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저녁 그 굿판 이후 우리 집에 표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변화는 아버지가 다시 운전대를 잡게 된 일이다. 단 며칠 새에 싱싱하게 물이 오른 아버지는 그의 새로운 생활을 위해 일어섰다. 이번에는 관광 버스를 끌었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규모가 괜찮은 관광 버스 회사였다. 거짓말같이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인 아버지였다. 엄마도 물론 보따리 장사를 집어치웠다.
더 놀라운 변화는 그네들의 관심 밖으로 던져졌던 두호에 대한 문제였다. 소나기 같은 사랑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코 정상적인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네들은 이제까지 자기들이 보였던 자식에 대한 그 미온적인 사랑에 대해 참회라도 하듯 광적인 사랑을 퍼붓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대상은 물론 두호였다.
나는 열외자가 되어 그네들의 그 비정상적인 변화를 적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렇다. 나는 다분히 적의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두호와 나는 비록 여덟 살 차이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그네들 품 속의 어린 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내던져지는 걸 무서워했다. 나는 솔직히 그네들의 편애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모닥불 피우듯 가슴에 담아가지고 있었다.
두호에게 좋은 옷을 사다가 입혔다. 안집 아이들도 갖지 못한 장난감들이 주어졌다. 어느 날 나는 두호의 주머니에서 어린이 대공원 입장권 석 장을 발견했다.
‘두호야, 너 어린이대공원 갔었구나?’
내가 물었다.
두호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내가 짐짓 웃어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형아한테 얘기하지 말래쪄!’
나는 코웃음 쳤다.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음모가 우리 집안에 깔려 있었다. 그날 나는 월중 고사를 보고 집에 일찍 돌아왔다. 방문을 열어젖혔다.
두호가 컴컴한 방에 혼자 앉아서 뭔가 먹고 있었다. 주먹보다 조금 큰 통닭구이였다. 나는 놀랐다. 아직 우리 집이 통닭구이를 먹을 만큼 형편이 피질 못한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통닭뿐이 아니었다. 나는 두호가 몰래 숨어서 먹는 여러 가지를 확인했다. 얼음과자, 비싼 과일, 그리고 두호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넥타 등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나한테도 그 일부분이 돌아오긴 했어도 어째서 내가 이런 걸 먹어야 하나 ㅡㅡㅡ 하는 마음의 부담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입에 즐길 수가 없었다.
두호가 안집 마당에 서서 바나나를 먹고 있었다. 아직 바나나 철이 되지 않아 엄청나게 비싼 때였다. 안집 아이들이 두호를 둘러싸고 서서 바나나 껍질을 벗기고 있는 두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호야 그거 이리 내!”
내가 두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두호가 그 바나나를 뒤로 감췄다. 나는 그것을 뺏기 위해 두호의 목덜미를 잡았다. 너무 거쁜하게 잡혀들어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러나 나는 그에 그 바나나를 빼앗아 담 밖으로 집어던졌다. 두호가 울었다. 그의 거쁜한 몸무게만큼 두호는 아직 어린애였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버둥치며 울어댔다.
“한호야!”
째지듯 암팡지게 내 이름을 부르며 부엌에서 달려온 엄마가 미친 듯이 내 온몸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평소 엄마한테서 볼 수 없었던 발작이었다. 무섭게 쥐어뜯으며 등판을 후려치던 엄마가 두호를 끌어안으며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납득이 안 가는 이런 우스운 짓거리는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관광객들을 태우고 관광지에 갔다가 손님들로부터 팁을 받은 날은 꼭꼭 두호의 장난감을 사오곤 했다. 두호는 그 장난감들을 안집 마당에 여기저기 벌여놓고 놀았다. 안집 아이들이 침을 흘리며 두호 곁을 맴돌았다. 그러나 두호는 대단한 고집불통이었다. 안집 아이들과 전혀 어울려 놀지 않는 것은 물론 제 장난감에 손만 조금 대어도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버둥 치며 울어댔다. 더 우스운 것은 그러한 두호를 편드는 엄마의 짓거리였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두호를 끌어안으며 두호의 장난감에 손을 댄 안집 아이들을 향해 욕을 퍼대는 것이었다.
“두호 엄마, 정말 왜 이래요?”
안집 여자와 엄마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 우리 애들 보란 듯이 이렇게 많은 장난감을 사다 주는 거예요? 잘 멕이는 거야 애가 약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도대체 어린애들도 아니고 뭐예요?”
안집 여자가 마당에 그득한 장난감을 가리켜 보이며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아니, 내 애 내 돈으로 이런 거 사주는 게 뭐 잘못이나요?”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도무지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서 그래요.”
“눈 뜨고 못 보다니요?”
“우리 애들 교육상 나빠서 그래요. 부잣집 애들도 그렇게 버릇없인 안 키울 거예요.”
“알겠다구요. 셋방살이 주제에 장난감이 다 다 뭐냐 그 말씀이신데, 이거 집 못 가진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그렇게 푸념 삼아 맞서던 엄마가 나중에는 두호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어처구니없게 울고불고하는가 하면 나중에는,
“예수쟁이들 맘 좋다고 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구. 못 사는 사람 괄시하는 것들이 뭔 천당엔 가겠다구.....”
이처럼 억지를 부리고 나서는 엄마를 향해 안집 여자가 끌끌 혀를 찬다.
“이 여자가 정말 미쳤나? 맨날 무당만 찾아다니더니 귀신이 붙었는가 봐.”
“그래, 나 미쳤다. 이 예수쟁이야!”
“두호 엄마, 정말 요새 왜 이래?”
“왜 그러다니, 몰라서 그래? 나 미쳤어, 내 새끼가 죽는다는데 안 미칠 년 있어?”
엄마가 입에 게거품까지 물며 언성을 높였다.
“두호 엄마!” 엄마와는 달리 안집 여자의 목소리는 낮다. 정말 딱하다는 그런 얼굴로 엄마를 부른다.
“두호 엄마, 낼 당장 나하고 교회 좀 같이 가요. 난 정말 두호 엄마가 딱해 죽겠어요. 그래 그 무당 점쟁이들 말을 그대로 믿는 거예요?”
이번에는 엄마 쪽에서 금세 풀 죽은 얼굴이 됐다. 한참 만에 엄마가 한숨 섞어 말했다.
“물론 이해가 안 갈 거예요. 그런 건 직접 겪어 본 사람이 아니고선 아무도 모른다구요. 난 무서워요.”
엄마가 두호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몸서리쳤다. 싸움은 끝났다. 엄마나 안집 여자는 그 이상 더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네들은 그 정도로 화해가 된 듯 평상을 돌아갔다. 엄마의 두호에 대한 비정상적인 사랑이 그런대로 묵인된 셈이다.
엄마나 아버지의 두호에 대한 그 이해할 수 없는 편애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물론 알고 있었다. 두호가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갈수록 살이 빠지고 멍청한 애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따졌던 것이다.
“왜 두호를 병원에 안 데리고 가는 거예요?”
아버지를 향해 내가 말했다.
“야, 너, 엄마한테서 아무 얘기도 못 들었냐?”
“무슨 얘길요?”
“한호야!” 엄마가 부엌에서 밥을 짓다 말고 허둥지둥 방에 들어섰다.
“넌 아무것도 모르면 잠자코 있기나 해! 왜 내가 두호를 병원에 안 데리고 간 것 같니?”
“그럼 병원에 갔었단 말이야?”
“한두 번 간 게 아니라 말이야. 병원에 갈 때마다 그러더라. 두호한테 아무 병이 없다고.”
나는 엄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두호는 단 한 번도 병원에 간 일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애가 왜 저렇게 빌빌 한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엄마가 딴전을 피웠다. 아버지는 이미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돌아누운 뒤였다.
그네들의 그 납득하기 어려운 두호에 대한 편애의 비밀이 밝혀진 것은 답십리 고모를 통해서였다. 내가 우정 고모를 찾았던 것이다.
“고모, 그 점쟁이가 그렇게도 용해요?”
나는 짐짓 넘겨짚고 있었다.
“용하다니, 누가?”
“난 다 알고 있다고요. 고모 괜히 시치미 뗄 필요 없어요.”
순간 오십이 가까운 고모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엄마가 그 얘길 해주디?”
“무슨 얘길?”
내가 다그쳤다. 어렸을 적부터 고모는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나는 고모에게서 그네들 비밀의 그 끈적끈적한 것의 정체를 개내고 말 심산이었던 것이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꼭 빼닮은 고모가 내 다그침에 견디다 못해 입을 열었다.
“이건 너두 알고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오십이 가까운 고모는 열네 살 조카한테 그네들이 숨겨온 그 끈적끈적한 비밀의 정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네 동생 걔, 살아야 몇 달 더 못 산다.”
고모가 들려준 얘기의 핵심은 두호가 얼마 더 살지 못할 것이란 것이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얘기였다. 일의 빌미는 아버지가 자갈 채취장에서 자갈을 실어 나르다가 사고를 낸 데서부터였다. 말하자면 엄마는 아버지가 그런 사고를 낼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그처럼 찾아다니던 점쟁이들의 점괘가 그렇게 나왔다. 엄마가 찾아간 점쟁이들은 한결같이 아버지의 운수가 좋지 않고 말했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리는 군대를 기어코 자원해서 들어간 것이며, 군대에서 운전 사고를 내 사람을 죽인 일 그리고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논밭을 팔아치운 일에서부터 지금까지 서울에 올라와 그토록 풀리지 않던 갖가지 일이 모두 점쟁이 말대로였던 것이다. 물론 엄마는 점쟁이들이 시키는 대로 그 액땜이란 걸 부지런히 했다. 그러나 집안에 깃들인 사기(邪氣)가 너무 커 엄마의 정성이 들어먹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엄마와 고모는 집안의 그 사기를 눌러줄 어떤 힘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점쟁이도 그것을 제대로 일러주지는 못했다. 얘기가 제각각 달랐다. 어떤 점쟁이는 몇 대조 할아버지 산소를 잘못 써 그렇다면서 면례장사를 귀띔해 주기도 했고 어떤 이는 족집게로 집어내듯 집을 나가 객사한 할아버지의 원귀를 들춰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액기를 꺾을 만한 뾰족한 방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런데 느 엄마가 그 점쟁일 서울서 다시 만난 거다”
고모가 말하는 그 점쟁이란 옛날 우리가 시골에 살 때 할머니가 단골로 가던 그 용하다는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서울에 올라왔을 대 그 점쟁이를 다시 만나 무슨 얘긴가 들은 뒤로 두호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그네의 임종 바로 직전까지 두호를 얼씬도 못하게 하던 생각이 났다.
엄마가 그 점쟁이를 다시 만난 것은 아버지가 사고를 내고 폐인처럼 멍청한 얼굴로 방구석에 박혔던 몇 달 전, 먹고살기 위해 옷 보따리를 들고 돌아다닐 때였다. 물론 엄마가 먼저 그 할머니의 단골 점쟁이를 알아봤다. 그 점쟁이 역시 엄마를 알아봤다. 그리고 옛날 시골서 우리 집 내력을 떠르르 꿰뚫어 알고 있었다. 엄마가 그 점장일 붙들고 늘어졌다.
아무 날 아무 시에 난 애기 잘 크나? 점쟁이가 그렇게 물었다. 잘 큰다고 엄마가 대답했다. 그렇겠지! 점쟁이가 딴전을 피웠다. 엄마가 한 달 동안 장사한 돈을 복채로 놓았다.
문제는 두호였다. 두호가 사(邪)라는 것이었다. 한 집안에 살이 낀 사람이 둘 있으면 그렇게 안 좋다는 얘기였다. 손이 귀한 집일수록 그런 일이 흔하다고 했다.
“느 아버지하고 두호가 바로 상극이란 거여!”
고모가 말했다.
“그럼 액땜을 하면 될 거 아냐?”
내가 비꼬는 투로 묻자 고모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딴 방법은 없대드라. 두 사람 중에 하나가 죽는 수밖에....”
그 말을 어렵잖이 해내는 고모의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했다.
“그래서 두호가 죽을 거란 말예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쳤다. 고모가 내 입을 막으면서 말했다.
“그 점쟁이 말로는 두호가 명이 짧게 태어났다고 하더란다. 그 대신 일평생을 산 사람만큼 제 기를 써먹고 죽을 거란 얘기였다.”
몇 달 전 아버지의 운전 사고 때 두호가 길 한가운데 나타났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군대 시절 그 사고 때처럼 느닷없이 한 아이가 길 한가운데 나타나 두 손을 번쩍 들더란 것이다. 그 아이를 피하려고 운전대를 튼 순간 사고가 났다는 얘기였다.
“우리 아버지도 두호가 죽을 거란 걸 알고 있어요?”
“느 아버지한테야 얘기 안 할 수가 없더라. 그러나 두호가 느 아버지 대신 죽는다고야 어디 말하겠지? 그래 느 엄마랑 짜구설랑 두호가 몹쓸 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던 거다.”
“아버지가 그걸 믿을 것 같아요?”
“믿든 안 믿든 어쩌겠냐?”
나는 내 마음속에서 뭔가 허물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실망이었다. 나는 적어도 아버지만은 우리 집안 구석구석에 밴 그 미신적인 냄새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던 때문이다. 뭔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집안의 그 뒤숭숭하고 요령부득의 어떤 힘과 맞서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기대해 왔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올 적마다 두호의 장난감을 한아름씩 사오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벼엉신. 나는 입 속으로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느 아버지랑 엄마한테 그랬다. 기와 죽을 자식, 죽은 뒤에 포원이나 없게 잘 해주라구.”
“두호가 죽은 뒤, 산 사람이나 마음 덜 괴로우려고 그렇게들 열심이군요?”
나는 뒤틀리는 심사대로 한마디 쏘아붙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네들의 생각과는 달리 두호는 더 오래 버텨냈다. 눈은 더욱 퀭하게 들어가고 팔다리는 배배 꼬여갔지만 아직 그렇게 쉽게 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았다. 장난감이 안집 마당을 가득 채웠다. 이제 안집 아이들이 그 장난감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두호는 울지 않았다.
두호는 취학 통지서가 나왔다.
“몸은 약해도 이놈은 공분 잘할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엄마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대꾸했다.
“공연히 애 고생시킬 것 없이 집에서 편히 놀게 하는 게 어때요?”
“당신 정말 미쳤군!”
아버지가 언성을 높였다. 두호 문제를 놓고 그들이 얘기를 나눌 때 아버지는 늘 이처럼 엄마를 나무랐다.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싸움이 일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점쟁이와 엄마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돈만 있으면 두호를 위해서 뭔가 하고 싶어 안달을 했다.
아버지의 일이 잘 풀리면 풀릴수록 두호에게 쏟는 정이 각별했다. 말하자면 두호가 그처럼 빼빼 메말라가고 있는 대신 자신의 운이 펴인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아버지의 수입이 괜찮아졌다.
“이놈들아, 일 년만 참아라.”
일 년 후에는 집을 살 계획을 할 만큼 아버지의 수입은 좋았다. 엄마는 답십리 고모가 하는 계에 삼번과 이십번을 들었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안 하던 화장까지 하면서 엄마는 싱싱해졌다. 그러나 엄마가 두호의 불길한 그 일까지 잊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 형편이 펴이면 펴일수록 두호에 대한 엄마의 편애는 심해 갔다. 엄마는 아버지와는 달리 노골적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식으로부터 지레 정을 끊으려던 엄마의 통곡이었는지도 모른다.
“애 죽은 뒤에 애통해해야 소용없어요.”
두호는 엄마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았다. 엄마의 그러한 몰지각한 생각을 비웃는 듯 방구석이나 안집 마당에서 소리 없이 혼자 놀았다. 어떤 때는 아침에 나간 애가 저녁때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두호가 그렇게 밖에 나가 돌아오지 않을 때마다 엄마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얼굴로 허둥거렸다. 그러나 두호는 제 발로 집을 찾아 들어왔다.
“이놈의 새끼야, 너 어디 갔었니?”
엄마가 자신의 예감을 부끄러워하면서 그 부끄러움을 오히려 두호에 대한 매질로 나타냈다.
“엄마 속 이렇게 썩이려면 어서 칵 죽어버려!”
매를 맞은 뒤 두호는 허겁지겁 밥을 퍼 먹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잠들곤 했다.
“너 어디 갔었냐?”
어느 날 내가 살살 달래면서 물어보았다.
“산에 갔어!”
“산에 뭣 하러?”
“새 잡으러”
“새?”
“산에 새 많어!”
두호가 새를 좋아한 것은 사실이었다. 안집에서 십자매 한 쌍을 키웠을 때 두호는 몇 시간이고 그 새장 앞에 웅크려 앉아 있곤 했다. 그 십자매가 비를 맞아 죽었을 때 두호는 독감을 앓고 있었다. 독감을 앓고 나서도 두호는 그 빈 새장 앞에 오랫동안 웅크려 앉아 있곤 했다. 엄마가 두호를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두호는 밖에 나가는 대신 집안에서 불장난을 했다.
안집 여자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 펄펄 뛰었다. 엄마가 집안의 성냥을 모두 두호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감춰 놓았다. 그러나 그예 두호가 그 불장난으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게 깨끗하게 타버릴 수가 없었다. 안집은 물론 우리 집 세간살이까지 몽땅 타버렸다. 처음에 두호까지 죽은 줄 알고 엄마는 땅을 치고 울었다. 두호가 발견된 것은 다음 날 아침 이웃집 지하실에서였다.
“네가 불장난을 했지?”
사람들이 다그쳤다. 두호가 대답 대신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거지 신세가 되었다. 엄마는 경찰서에 스무 번도 넘게 불려 다녔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돈을 꾸어다가 안집에 넘겨주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교도소에 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우리는 산 밑 동네에 방 하나를 얻어 들었다. 밥을 해 먹는 양은솥에서부터 숟가락
까지 모두 새로 사야 했다.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학교를 당분간 쉬어야 했다.
“이 웬수 놈의 새끼!”
엄마는 두호한테 매질을 했다. 분에 복받쳐 매질을 하다간 제풀에 지쳐 두호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두호는 장난감 없이 놀았다. 집에 붙어 있는 시간보다 밖에 나가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밖에서 아이들하고 어울려 노는 게 아니라 혼자서 산에 올라가길 좋아했다. 산에 새가 많아. 그러나 두호는 늘 빈 손으로 돌아와 엄마의 눈치를 보며 밥을 먹은 다음 그 자리에 쓰러져 잠들어 버리곤 했다.
아버지가 월급을 타 오기가 무섭게 엄마는 점쟁이를 찾아 나섰다. 집안 구석구석이 으스스 귀기를 띠고 다시 그 이상한 부적들이 나붙기 시작했다. 이제 철이 든 두호는 엄마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두호에 대한 경계를 결코 풀지 않았다.
그런데 또 일이 터졌다.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오히려 깨끗하게 됐어요.”
아버지 소식을 가지고 온 회사 사람이 엄마한테 말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 치인 사람이 그 현장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크게 다쳐 입원을 한 뒤 두고두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것에 비하면 회사 측으로서는 정말 잘 된 일이란 것이었다.
그 사고로 해서 아버지는 삼백 리 떨어진 지방 도시의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다. 엄마가 이틀에 한 번씩 아버지 면회를 갔다. 새벽에 나간 엄마는 밤 열두 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엄마는 지쳐 있었다. 내가 라면을 끓여다 놓았지만 엄마는 이미 인사불성으로 잠이 든 뒤였다. 그렇게 옷을 입은 채 쓰러져 잠을 잔 엄마는 다시 새벽 세시쯤 눈을 떠 묵을 빨래를 하고 아침밥을 지어 놓은 다음 집을 나갔다. 엄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형제 같은 건 엄마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날 밤도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안집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몹시 높게 들려왔다. 온 식구가 박수를 치며 떠들썩했다. 권투 중계였다. 우리나라 선수가 세계 타이틀을 놓고 싸우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입술을 악문 채 참았다. 라면을 끓이는 냄비에 덴 손가락이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안집 텔레비전이 와와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케이오 펀치가 터진 모양이었다. 우리 방에는 그 흔해빠진 라디오 하나 없었다.
“혀엉, 라면 다 끓었나?”
두호가 목을 길게 빼들고 부엌을 내다보았다.
두호는 제 몫의 라면 한 그릇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웠다. 우리들은 그날 점심을 굶었던 것이다.
“혀엉, 나 무을!”
내가 부엌으로 물을 뜨러 나갔고, 그 사이에 두호가 내 라면 그릇을 차지하고 앉아 콧물을 길게 빼문 채 아귀아귀 먹어대고 있었다. 와아와아 안집 텔레비전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이 쌍놈의 새끼!”
나는 부드득 이를 갈았다. 두호가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아아 ㅡㅡ 나는 두호의 그 걸신들린 눈을 보자 소름이 끼쳤다. 두호가 이처럼 무서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고양이 사건이 있던 그날 아침 엄마한테 목을 죄인 채 나를 쳐다보던 그런 눈이었다.
“두호야, 나하고 산에 가자!”
나는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 실로 순간적인 결단이었다.
“......?”
“내가 저 뒷산에 새집을 맡아놨다. 밤에 가면 잡을 수 있다.”
나는 두호의 그 퀭한 눈이 번쩍 빛을 내는 걸 보았다.
우리는 뛰다시피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산의 큰길을 버리고 우정 샛길을 찾아 숲이 무성한 산속으로 들었다. 후둑후둑, 산새가 자리를 바꿔 앉느라 부산할 뿐 등산객들이 다 하산한 밤의 산속은 죽음처럼 조용했다.
“혀엉”
두호가 내 뒤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
나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생각보다 두호의 걸음은 빨랐다. 내가 아무리 빨리 걸어도 두호는 내 뒤에서 헉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 걸음을 빨리했다.
“형아, 같이 가자.”
드디어 두호가 울음 섞어 질러댔다. 산속의 그 휘휘한 밤공기가 우리들의 발소리에 의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발 끝에 채인 돌이 비탈을 굴러 내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다.
“귀신이닷 귀신!”
대여섯 걸음 뒤처진 두호를 향해 내가 느닷없이 부르짖었다. 귀신이닷, 귀신ㅡㅡ 밤의 산속 메아리는 그 울림이 더욱 쟁쟁하다. 소리 질러 놓고 나는 더욱 빨리 뛰었다. 마치 두호에게 잡히기만 하면 죽기라도 하는 양 그렇게 필사적으로 뛰었다.
“혀엉!”
상당히 뒤떨어진 데서 두호가 울부짖고 있었다. 우와 우와 산 전체가 울음소릴 냈다. 나는 문득 뒤돌아보았다. 산 아래 동네의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위치에까지 이르러 있음을 알게 됐다. 이제 단 한 발짝 앞도 분간하지 어려운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산속이었다.
나는 길 옆 바위 뒤에 가만히 몸을 숨겼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두호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두호가 징징 울면서 다가오는 기척이 있었다. 두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나는 가슴이 죄어들었다. 두호가 무서웠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기다렸다. 드디어 두호가 내 곁에까지 이른 순간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벼락 치듯 소리쳤다.
“귀신이닷!”
두호가 악 ㅡㅡ소릴 지른 다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얼결에 다시 산을 치뛰기 시작했다. 온통 내 발소리뿐이었다. 그 발소리에 질려 그만 걸음을 멈췄다. 정적이 쏴아 밀려왔다. 다시 온몸으로 소름이 끼쳤다. 두호의 기척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상반된 기대 속에 두호의 소재를 파악하고 싶었다.
“두호야!”
나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매우 큰 울림이 되어 되돌아왔다. 내가 내 목소리를 의식하는 그런 묘한 두려움이 머리 끝으로 쭈볏쭈볏 뻗쳤다.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그러나 두호를 버리려는 내 결심이 흔들리는 건 아니었다. 두호는 이미 버려졌다. 그는 대답할 수 없어야 한다.
“두호야!”
나는 서슴서슴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를 때는 전연 몰랐는데 경사가 급한 돌밭이었다. 발을 조심조심 디뎠다. 두호의 기척을 놓쳐서는 안 된다. 두호는 살아있을 것이다. 살아 있어야 한다. 탁. 나는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비탈길을 굴러 내릴 뻔하였다. 내가 발을 헛딛는 순간 돌 하나가 굴러내리기 시작했다. 비탈을 굴러 골짜기 그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돌덩이들의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산속의 그 정적을 여지없이 깨고 있었다. 나는 귀를 막았다. 돌덩이 속에 휘말려 굴러내리는 두호의 비명 때문이었다. 두호 혼자 산에 갔어요. 엄마는 내 말을 믿으리라. 갠 죽을 애였어요. 엄마가 사람들을 설득할 것이다. 그러나, 귀에서 손을 떼었을 때 이미 돌 구르는 소리가 그친 뒤였다. 그 소리보다 더 무서운 정적이 쏘아 밀려왔다.
“두호야!”
나는 계속 두호를 부르면서 서슴서슴 비탈길을 내려서고 있었다. 마치 술래잡기에서 숨은 아이를 찾는 술래처럼 조심조심 두호의 기척을 살폈다. 그러나 두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득 소름이 꽉 끼쳤다. 아마 그 돌덩이들의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두호야!”
나는 더럭 외로움 같은 걸 느꼈다. 그것은 무서움과는 또 다른 떨림이었다. 나는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엄마의 실신한 얼굴이 보였다. 네가 두홀 죽였지? 엄마가 내 목덜미를 낚아채며 소리친다. 아득한 절망이 가슴 밑바닥에 피어오른다.
“두호야!”
나는 차라리 울고 싶었다. 그러나 몸이 심하게 떨려 쉽게 울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문득 눈앞에 희끔한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혀엉!”
느닷없이 덮쳐 든 것은 두호의 작은 몸뚱이였다. 나는 겨우 주저앉는 것만은 면했다. 내 가슴에서 파닥이며 숨을 할딱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두호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그 깡마른 두 손으로 내 몸을 다잡아 쥐고 발발 떨었다. 마치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이 필사의 힘으로 바위를 그러쥐듯 그렇게 내 몸을 그러쥐고 있었다. 나는 두호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 심장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두호의 작은 손에서 다스한 체온이 내게 전해졌다.
“인마, 왜 대답 안 한 거야?”
내 물음에 두호가 아직은 겁먹은 목소리로,
“형아가 나 내뻐리구 갈려구 그랬지?”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그 작은 몸뚱이를 와락 껴안았다. 비로소 내 눈에서 뜨거운 것이 줄줄 쏟아졌다. 두호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는 두호를 등에 업고 어둠 속의 그 산길을 내려오면서 다시 보이기 시작한 산 아래 마을의 그 휘황한 불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불빛이 있는 산 아래 마을에 대한 적의 같은 것은 씻은 듯 가신 뒤였다.
나는 겅둥겅둥 뛰다시피 산길을 걸었다. 내 등에서 두호가 간지럼을 다는 듯 키들키들 웃었다.
“두호야!”
“으응, 혀엉!”
“우린 지금 새처럼 날아서 내려가는 거야.”
우리는 사실 어둠의 산에서 그 아래 불빛을 향해 훨훨 날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았다. 뱃속 그 깊은 데서 위로 뿌듯하게 치밀어 오르는 어떤 힘 같은 걸 느낄 수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날개 꺾인 이 어린 새의 어깻죽지에 새 살이 돋을 때까지 내가 그의 날개가 되어 퍼덕여 주리라ㅡㅡ 그런 마음 다짐이 어금니에 씹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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