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직녀에게 - 문병란

열공햐 2021. 3. 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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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쳐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 문병란, '직녀에게'  

 

*노둣돌 : 말을 오르내릴 때에 발돋움으로 쓰려고 대문 앞에 놓은 큰 돌. 하마석(下馬石).  

 

시낭송 감상하기

 

김원중 노래 '직녀에게' 감상하기 

김원중 노래 '직녀에게'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참여적(민족 분단의 현실)

어조 : 강렬한 호소의 목소리

표현 : 견우가 직녀에게 건네는 말의 형식. 반복을 통한 의미의 강조

구성 :

  - 1~11행 직녀와 ''의 긴 이별과 슬픔

  - 12~26행 이별의 슬픔과 극복의 소망

제재 : 이별의 슬픔. 견우와 직녀 이야기

주제 : 자유의 갈망. 만남의 갈망

출전 : <땅의 연가>(1981)

작가 : 문병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예로부터 전해 오는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견우가 직녀에게 건네는 말의 형식으로 된 이 작품이다.

 

  시적 화자''(견우)가 되어 지금 직녀가 있는 반대편에서 직녀를 향하여 아주 강렬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두 사람은 현재 이별의 상황에 처해 있는데, ''는 직녀와 만나야 한다고 노래한다. 견우가 그토록 원하는 직녀와의 만남에 대한 절박성'면도날, 유방, 처녀막, 마지막 머리털, 칼날' 등에 나타나 있으며, 그들의 만남을 가로막는 장애물'말라붙은 은하수'로 설정되어 있다. 그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려면 '오작교, 노둣돌, 가슴, 눈물' 등이 있어야 한다고 시적 화자인 견우는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만남을 위한 수단으로 제시된 '오작교, 노둣돌'이 마련해 준 조건이라고 한다면, '눈물, 가슴'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의지로 자신들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소원대로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슬픔은 끝이 나고 사방이 꽉 막힌 죽음의 땅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면 슬픔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방은 막혀 버린 채 죽음의 땅에서 그야말로 죽음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결여와 소실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소중한 대상을 되찾기를 갈망하고 있는 이 작품은 곧 '자유 또는 만남에 대한 갈망'에서 주제를 찾아야 한다.

 

  한편, 이 시를 민족의 현실이 낳은 대립과 이별의 아픔을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에 비유하였다고 본다면 그 대립과 아픔이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염원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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