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사령(死靈) - 김수영

열공햐 2021. 3.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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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김수영 '사령'

 

*사령(死靈) : 죽은 영혼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비판적. 주지적

어조 : 자유와 정의가 실종된 상황에서 침묵해야 하는 자신을 반성하는 어조, 자조적, 성찰적

구성 : 수미쌍관

  - 1- 활자로만 존재하는 자유와 죽어 있는 나의 영혼

  - 2- 침묵만 지키고 있는 자아에 대한 반성

  - 3- 고요한 현실에 대한 현실

  - 4-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만

  - 5- 죽어 있는 자아에 대한 자괴감(自愧感)

제재 : 부도덕한 현실과 지식인의 죽은 영혼

주제 : 불의에 저항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자기 반성(自省)

사령 : 진정한 자유를 실천하려는 행동적 결단이 없는 삶의 모습(책 속의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자아의 의식

특징

  ① 일상적 어휘독백체 진술을 사용 자유와 정의가 소멸된 현실의 문제를 제시, 지식인의 반성을 촉구

  ② 추상적 대상을 의인화

  ③ 수미상관적 구조(수미상관은 처음과 끝의 반복을 통해 운율, 의미 강조, 여운, 안정감을 준다.)

시적 현실에 대한 태도 : 무기력하고 소시민적인 삶을 반성함. 지식인 모두의 반성을 촉구함. 부정적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정신이 용출하기를 희망함.

출전 : <달나라의 장난>(1959)

 

 

김수영(金洙暎, 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 27일 서울에서 지주였던 아버지 김태욱(金泰旭)과 어머니 안형순(安亨順)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나, 1968년 6월 16일 사망하였다. 

 

  김수영이 태어날 무렵부터 집안이 기울긴 했지만, 유년을 비교적 유복하게 보냈다. 김수영의 백부 김태흥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집안의 장손이나 다름없었던지라 김수영은 온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선린상업학교(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시인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들을 외워 읽을만큼 영어 실력이 유창했다고 한다.

  또한 작품 중 완전히 일본어로만 작성된 글도 있다. 당시 일제 치하에서 성장했던 한국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일본어에 유창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친일 행위 같은 것이 아니라, 힘든 삶을 벗어나 살고 싶다는 식의 푸념 같은 글들이므로 오해하면 안 된다. 아울러 김수영이 쓴 일본어 문헌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일본어의 영향인지, 지금은 히라가나로 쓰여야 할 부분에 가타카나가 쓰이는 방식이었다.

  1941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도쿄상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943년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가족들과 함께 만주 지린성으로 이주했다가 8.15 광복과 함께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심영 등과 함께 공연을 하다가 194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 창작을 시작하였다. 이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 4학년에 편입하여 잠시 수학했으나 중퇴하였으며,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후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6.25 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의용군으로 징집되었으나 탈출한다. 그러나 패잔병 추적에 나선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압송되었고 3년 만에 민간인억류자로 석방되었다. 이후 통역 일과 잡지사, 신문사를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하였다.

  김수영이 시대와 예술가, 혹은 지식인의 참여라는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나름의 활동을 하게 된 것은 4.19 이후의 일이었다. 1960년대로 접어들어서도 김수영은 여전히 양계와 번역료로 생활하면서 버젓한 직장을 가지지 않았으며, 시·시론·시평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후진성과 허위 의식을 비판하고 진정한 참여를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성격의 글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수능 단골이 되는 계기가 된다 .

  그토록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김수영은 1968년 6월 15일 문우들과 가졌던 술자리에서 귀가하던 중 과속버스에 치였다. 의식을 잃은 채 적십자병원을 실려가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음날인 6월 16일 유명을 달리 하였다. 신동엽이 「지맥 속의 분수」라는 조사(弔辭)에서 언급했다시피 그렇게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인을 잃었다”. 


  김수영 시인은 비판적이고 철학적인 시를 통해 당대의 상황을 표현하고, 자유주의를 노래하였다. 스스로 자신의 시어가 평범하다고 했지만, 시와 산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말(언어)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매우 진보적이다. 김수영은 일체의 정립된 언어와 고정된 언어를 부정직한 것으로 여겼다. 그의 언어는 관습의 언어가 아니라 “자기의 언어”이며, 대물림한 언어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다. 김수영의 시에는 한자어와 영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등장하고, 문어와 구어가 구별 없이 사용되며, 관념어와 구체어가 섞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즐겨 사용한 한자어, 일본어, 영어, 속어, 구어, 관념어 등은 어느 하나의 지배적 언어로 귀속되려는 언어에 대한 경계가 된다.

 
  초기에는 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였으나 점차 그 한계에서 벗어나려 하였고, 4.19 혁명을 고비로 강렬한 현실 의식을 추구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주로 자기 고백의 직설적인 어조소시민의 자기 각성, 지식인의 정직한 고뇌, 자유가 억압된 현실에 대한 항의를 다루며 ‘온몸’의 시학을 주창했다. 김수영은 자신의 시세계를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극복한 곳에 자리하고 싶었던 시인이다. 때문에 그의 시를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넘어 열린 시각으로 읽어야 그의 시세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

 

 

 

이해와 감상

  일반적으로 김수영의 작품정직과 사랑과 자유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세 개념은 별개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상보적(相補的)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읽는 독자에 따라 정직으로 자유와 사랑을 말하기도 하고, 자유로써 정직과 사랑을 포괄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핵심어는 ‘자유’이다. 그런데 그 자유는 시인이 일상 생활에서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의 활자로만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근대 민주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규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가 활자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사회가 비민주적 사회라는 지적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화자는 자유가 억제된 독재 정권에 항거하지 못하는 자신의 영혼을 죽은 것(사령)으로 여긴다. 흔히, ‘예언적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작가와 시인은 독재자의 부도덕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신명(身命)을 바칠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다. 그러나 현실은 독재 정권에 기생하여 개인의 부귀와 영달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사회이다. 자유를 말하는 벗 앞에서 고개 숙이고 있는 화자는 자신의 비겁함을 고백한다. 이것은 자신의 비겁함과 소심함을 자책하는 의미로 읽힌다.

 

  화자가 파악하고 있는 현실자유와 정의가 부재(不在)한 거짓된 공간이다. 거짓된 공간은 외면적인 고요로 위장되어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따라서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격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행동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수반한다. 이런 현실에 화자는 절망하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희망하는 자유와 정의가 보장된 사회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일까?

 

  1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면서 종결되는 이 시의 결구(수미상관)는 화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준다. 그것은 나와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현실 개혁의 운동에 앞장서자는 비판적 지식인의 솔직한 자기 반성의 태도이다. 이런 자기 반성적 태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자유와 정의는 책 속의 관념에서 현실의 가치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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