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오랑캐꽃 - 이용악

열공햐 2021. 3. 4.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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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이용악, '오랑캐꽃'

 

*오랑캐 :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두만강 일대에 살던 여진족(女眞族)을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 멸시하여 이르는 말. 되. 만적(蠻狄). 외이(外夷). 이적(夷狄). 호적(胡狄).

*머리태 : 길게 늘어뜨린 머리털. ⇒ 규범 표기는 '머리채'

*아낙 : 1.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곳.(외간 남자는 아낙에 출입을 삼가는 것이 예의이다.) 2. 아낙네(우물가는 아낙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도래샘 :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 도래샘물.

*띳집 : 지붕을 띠(볏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인 집. 모옥(茅屋).

*털메투리 : 털로 만든 미투리. 미투리(삼, 노 등으로 만든 신이다. 모양은 목이 낮고 개방형으로 흔히 날이 여섯 개로 되어 있다. 짚신과 비슷하지만 짚신보다 고급스러운 물건)

미투리

 

 

원문, 이용악 당시 출간 도서

원문, 이용악의 책(1947년 4월 아문각(雅文閣)에서 그 초판이 간행)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낭만적, 민족적, 독백적, 서정적, 상징적

어조 : 연민과 서글픔이 느껴지는 어조

표현 :

  ① 이 시는 재래의 서정적 감정 처리 방식과 서사적인 표현 방식을 동시에 포용하고 있다.

  ② 이 시인은 오랑캐꽃을 마치 가깝게 다가가서 이야기하듯 의인화하여 표현했다.

  ③ 간접화법의 종결어미 갔단다영탄적 종결어미 흘러갔나를 사용함으로써 시간의 경과를 나타냈다.

  ④ 유사 어휘를 반복 사용하였다.

구성 :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

  ① 고려 군사에 쫓겨간 오랑캐(1)

  ② 세월이 덧없이 흘러감(2)

  ③ 오랑캐꽃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슬픔(3)

제재 : 오랑캐꽃

주제 : 이민(流移民)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

출간 : 1947년 4월 아문각(雅文閣)에서 그 초판이 간행되었다. 책 끝에 저자의 발문(跋文)으로 「오랑캐꽃을 내놓으며」가 있고 총 29편의 작품을 8부로 나누어 수록하고 있다. 시집 오랑캐꽃은 잘 다듬어진 언어의 기교(技巧)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당대 사회현실을 현재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는 비분(悲憤)과 함께 심화한데 있다.

 

 

 

이해와 감상

  일제의 수탈로 말미암아 소위 오랑캐땅으로 쫓겨난 유이민들의 비극적 삶을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서정주로부터 망국민의 절망과 비애를 잘도 표했다.”는 절찬을 받은 바 있다.

 

  이 시는 ‘오랑캐꽃’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민족이 처한 비통한 현실에 대한 연민과 비애를 노래한 작품이다. 복잡한 비유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그 의미를 쉽사리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연약하고 가냘픈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이민족의 지배 하에서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는 민족의 삶과 운명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오랑캐꽃의 이미지고통받는 민족의 현실등치(等値)시킴으로써 개인적인 서정을 그 시대의 보편적인 서정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꽃의 형태가 오랑캐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는 외형적인 유사성 때문에 오랑캐꽃이라 불리는 것이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그 옛날의 오랑캐나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해 버린 민족의 처지가 동일하다는 현실 인식이 이 시의 주요 모티프를 이루고 있으며, 그에 기초하여 오랑캐꽃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연민의 정민족이 처한 객관적 현실에로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 이 시의 기본적 구조가 된다.

 

  이 시는 첫머리에서 ‘오랑캐꽃’의 명명(命名)에 대한 유래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오랑캐와의 싸움에 시달렸던 우리 조상들이 오랑캐의 뒷 모습과 오랑캐꽃의 뒷 모습이 서로 닮아 그 꽃을 오랑캐꽃이라 했다는 설명이다. , 명명과거의 전쟁 체험 및 모습의 유사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랑캐꽃의 명명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앞머리에 제시해 놓고 전개되는 작품 내용은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먼저 1은 오랑캐와 고려와의 싸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이어 2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상당 기간 지났음을 묘사적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3화자의 주관적 인식과 그로부터 촉발되는 화자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화자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오랑캐꽃에 대해 극도의 비애감을 느끼고 있다. , 오랑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면서도 오랑캐꽃이라 불리게 된 데 대해 화자는 극도의 슬픔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감정은 마침내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화자의 감정은 폭발되고 만다. 오랑캐꽃이라는 잘못된 명명이 일종의 억울함이라면, 화자의 슬픔은 이러한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일제에 의해 오랑캐라고 천대받던 유이민들이자, 더 나아가 전 조선 민중의 억울함과 비통함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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