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전문

김정한 '수라도' 전문 일부

열공햐 2021. 1. 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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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도

김정한

 

 이와모도가 돌아간 뒤 십 분도 채 안 지나서였다. 마을 어귀에 잇는 동사의 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왔다. 집합 신호다,

 그렇게 징용 소집이 있는 날, 더구나 처녀 징용이 있는 날은 자식을 빼앗기는 집안은 흡사 초상 만난 집과 같았다. 아무리 싫더라도 안 갈 수 없고 또 안 뺏길 수 없기 때문이다.옥이는 비록 이녁 딸은 아니었지만 가야 부인은 이녁 달을 빼앗기는 것과 꼭 같은 기분이었다. 가족들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조그만 보퉁이를 들고나서는 옥이는 가는 설움도 설움이었거니와, 그러한 가족들과의 작별이 슬퍼 더욱 흐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새침해졌다.

 “갔다 오겠심더.”

 갔다 오겠다는 그 말이 듣는 사람에겐 더욱 뼈아프게 느껴졌다. 대문간에서 눈물을 씻는 사람은 가야 부인의 가족만은 아니었다. 이웃 사람들도 다 옥이를 보내며 슬퍼했다. 가야 부인은 일단 방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옥이를 뒤쫓아 나루터로 향했다.

 

 모두 고함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쏜살같이 뛰어 오는 사나이는 바로 가야 부인의 사위였다. 지난 밤새 돌아오지 않던 박서방이었다. 가야 부인은 옥이의 손을 꽉 붙들었다. 그녀가 배에 오를 차례였다.

 헐레벌떡 뛰어온 박서방은 옥이의 손을 덜렁 잡았다.

 “가지 마라!”

 그리곤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옥이의 팔을 잡은 채 숨소리가 기관차 피스톤 소리처럼 거칠었다.

 “와 이라노 이 사람이? 각중에 미쳤나?”

 이와모도가 옥이를 배에 밀쳐 올리려 했다.

 “머 내가 미쳐?”

 박서방은 연방 숨을 헐떡거리며 일어나더니.

 “그 손 띠이라, 내 처다!”

 이와모도가 어이없는 듯이 웃다가 눈을 흘긴다.

 “미쳤다문 니가 미친길세. 징거를 비이조야 알겠나?”

 박서방도 마주 눈을 흘겼다. 가야 부인은 어리둥절했다. 옥이도.

 “이 자식! 니가 무신 소리하노?”

 칼을 찬 순사 부장이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

 “무신 소리? 내 처라켔소!”

 박서방은 분명히 말했다.

 “내 처라?”

 “그렇소! 처녀가 아닌데 와 데리고 갈라카요? 징명을 비이 줄까요?”

 박서방은 두툼한 봉투를 꺼내 보였다. 호적 등본이었다. 분명히 옥이가 그의 호적에 처로 올려 있지 않은가! 면장의 도장도 찍혀 있다.

 “이상하잖나?”

 순사 부장도 그런 데는 할 도리가 없었다.

 “이상하게 아니오, 똑똑히 보고 말하시오!”

 박서방은 이렇게 말하고서 이와모도 쪽을 쳐다보았다.

 “인자 알겠나? 괜히 똑똑히 알지도 못하고 댐비지 말라 말이여.”

 그러곤 옥이의 팔을 잡고 있던 이오모도의 손을 사정없이 퉁겨 버렸다.

 “보소-.”

 옥이는 그제야 박서방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꼈다. 그것은 물론 넘쳐흐르는 감격의 흐느낌이었다.

 “어서 가자!”

 가야 부인은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옥이의 덜덜거리는 손을 끌었다.

 저만치서 면서기가 빙긋이 웃고 있었다.

 나루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마치 도깨비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하고서, 총총히 떠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생한 보람도 없이 원통하게도 오봉 선생이 마지막 숨을 거둔, 또 다른 의미로는 절통하게도 이와모도 참봉과 그의 조카 이와모도 구장이 세상을 지레 떠난 다음 해에, 식민지 조국은 이와모도의 이른바 ‘제국’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인자 가야 마님은 큰소리하기 안 됐능기요. 자손들도 다 베실할 끼고!……”

 이웃 아니, 인근동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들 말했다. 부러워들 했다. 곧 서울 아니면 적어도 읍내로라도 이사를 갈 거라고들 믿었다. 그러나 해방 일 년이 지나고, 이 년 아니, 삼 년이 지나 독립 정부가 수립되었어도 내처 그 곳에 머물러 있었을 뿐 아니라 별 수가 업었다. 해방의 덕을 못 본 셈이었다.

 몰론 일본까지 가서 대학을 다니다가 학병을 피해 도망질을 하고 다닌다던 막내 아들도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벼슬이라도 할 궁리는 않고 농민 조합인가 뭔가를 만든다고 자식 징용 보냈던 사람의 집을 찾아다니기나 하고, 아버지 명호 양반은 통일이 되지못한 것만 한탄하고 있었다.

 이런 꼴로 가야 부인의 시댁뿐 아니라 부락 자체도 아직 신통한 해방 덕을 못 보았다. 첫째, 징용을 끌려간 사람들이 제대로 돌아오질 않았다. 어쩌다가 돌아오는 사람은 거지가 되어 오거나 병신이 되어왔다. 더구나, ‘여자 정신대’에 나간 처녀들은 한 사람도 돌아오질 않았다. ‘설마?’하고 기다리는 판이었다. 그래서 부락들은 역시 걱정에 싸여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한 편 불행하리라 믿었던 이와모도 참봉의 집은 반대로 활짝 꽃이 피었다. 고등계 경부보로 있었던 맏아들은 해방 직후엔 코끝도 안 보이고 어디에 숨어 있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문만 들리더니, 뜻밖에 다시 경찰 간부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몇 해 뒤엔 어마어마하게도 국회의원으로 뽑혔다.

명호 양반은 아버지 오봉 선생을 닮아서 다시 두문불출을 하다시피 구겨지고, 아들 가운데서 제일 똑똑하다고 하던 막내도 결국 반거충이가 되어 어딜 돌아다니기만 했다.

“애닯기도 하제. 즈그 할배나 징조 할배가 그렇기 훌륭하고 독립 운동도 많이 했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들 안타까워했다. 양 접장이 살아 있었더람 뭐라고 할는지 사람들은 이렇게 궁금하게 여겼다. 가야 부인의 머리에 흰 털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 막내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야 부인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땐 돌아가신 시어머니처럼 천수나 치고, 미륵당에 나가면 미륵불 앞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곧잘 자줏빛 모란 꽃잎이 뚝뚝 떨어지곤 하였다.

“석이 안 왔나?”

가야 부인은 겨우 눈을 또 뜨곤 막내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멀리서 또 포성이 ‘쿵’하고 울려 왔다. 왜 사람들은 싸우지 않음 안 될까? 가야 부인은 무슨 말이라도 할 듯이 입을 약간 우물하다 만다. 이마에서 잇달아 솟는 땀이 드디어 그녕의 최후를 알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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