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전문

이범선 '오발탄' 전문 (해설, 요약, 줄거리)

열공햐 2021. 1. 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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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탄

이범선

 

계리사(計理士) 사무실 서기 송철호(宋哲浩)는 여섯 시가 넘도록 사무실 한 구석 자기 자리에 멍청하니 앉아 있었다. 무슨 미진한 사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부는 벌써 집어치운 지 오래고 그야말로 멍청하니 그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딴 친구들은 눈으로 시계 바늘을 밀어 올리다시피 다섯시를 기다려 후딱 나가 버렸다. 그런데 점심도 못 먹은 철호는 허기가 나서만이 아니라 갈 데도 없었다.

송 선생님은 안 나가세요.”

이제 청소를 해야 할 테니 그만 나가 달라는 투의 사환애의 말에 철호는 다 낡아빠진 해군 작업복 저고리 주머니에 깊숙이 찌르고 있던 두 손을 빼내어서 무겁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가야지.”

하품 같은 대답이었다.

사환애는 저쪽 구석에서부터 비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먼지가 사정없이 철호의 얼굴로 몰려왔다.

철호는 어슬렁 일어섰다. 이쪽 모서리 창가로 갔다. 바께쓰의 물을 대야에 따랐다. 두 손을 끝에서부터 가만히 물 속에 담갔다. 아직 이른 봄이라 물이 꽤 손끝에 시렸다. 철호는 물 속에 잠긴 두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펜대에 시달린 오른손 장지 첫 마디에 콩알만한 못이 박혔다. 그 못에서 파란 명주실 같은 것이 사르르 물 속으로 풀려났다. 잉크 그것은 잠시 대야 밑바닥을 기다 말고 사뿐히 위로 떠올라 안개처럼 연하게 피어서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손가락 중심으로 하고 그 색의 농도가 점점 연해져 나갔다. 맑게 개인 가을 하늘색으로 대야 가장자리까지 번져나간 그것은 다시 중심의 손끝을 향해 접어들며 약간 파랑색으로 달무리 모양 둥그런 원을 그렸다.

! 이건 분명히 피다!

철호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물 속에서 손을 빼내었다. 그러자 이번엔 대야 밑바닥에서 한 사나이의 얼굴을 보았다. 철호의 눈을 마주 쳐다보는 그 사나이는 얼굴의 온 근육을 이상스레 히물히물 움직이며 입을 비죽거려 웃고 있었다.

이마에 길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 밑에 우묵하니 파인 두 눈. 깎아진 볼. 날카롭게 여윈 턱. 송장처럼 꺼멓고 윤기 없는 얼굴. 그것은 까마득한 원시인(原始人)의 한 사나이였다.

몽둥이 끝에, 모난 돌을 하나 칡넝쿨로 아무렇게나 잡아매서 들고, 동굴 속에 남겨 두고 나온 식구들을 위하여 온종일 숲 속을 맨발로 헤매고 다니던 사나이.

? 그건 용기가 부족하다.

멧돼지? 힘이 모자란다.

노루? 너무 날쌔어서.

? 그놈은 하늘을 난다.

토끼? 토끼. 그래 고놈쯤은 꽤 때려 잡음직하다. 그런데 그것마저 요즈음은 몫에 잘 돌아오지 않는다. 사냥꾼이 너무 많다. 토끼보다도 더 많다.

그래도 무어든 들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사나이는 바위 잔등에 무릎을 꿇고 앉아 냇물에 손을 씻는다. 파란 물속에 빨간 노을이 잠겼다. 끈적끈적하게 사나이의 손에 묻었던 피가 노을빛보다 더 진하게 우러난다.

무엇인가 때려잡은 모양이다. ? 멧돼지? 노루? ? 토끼?

그런데 사나이가 들고 일어선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보기에도 징그러운 내장. 그것이 무슨 짐승의 내장인지는 사나이 자신도 모른다. 사나이는 그 짐승의 머리도 꼬리도 못 보았다. 누군가가 숲 속에 끌어내어 버린 것을 주워 오는 것이었다.

철호는 옆에 놓인 비누를 집어 들었다. 마구 두 손바닥으로 비볐다. 우구구 까닭 모를 울분이 끓어 올랐다.

빈 도시락마저 들지 않은 손이 홀가분해 좋긴 하였지만, 해방촌 고개를 추어 오르기에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 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

저만치 골목 막다른 곳에, 누런 시멘트 부대 종이를 흰 실로 얼기설기 문살에 얽어 맨 철호네 집 방문이 보였다. 철호는 때에 절어서 마치 가죽끈처럼 된 헝겊이 달린 문걸쇠를 잡아당겼다. 손가락이라도 드나들만치 엉성한 문이면서 찌걱찌걱 집혀서 잘 열리지를 않았다. 아래가 잔뜩 잡힌 채 비틀어진 문틈으로 그의 어머니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자! 가자!”

미치면 목소리마저 변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이미 그의 어머니의 조용하고 부드럽던 그 목소리가 아니고, 쨍쨍하고 간사한 게 어떤 딴 사람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철호의 얼굴에 걸레 썩는 냄새 같은 것이 확 풍겨왔다. 철호는 문 안에 들어선 채 우두커니 아랫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 박물관에서 미라를 본 일이 있었다. 그건 꼭 솜 누더기에 싸놓은 미라였다. 흰 머리카락은 한 오리도 제대로 놓인 것이 없었다. 그대로 수세미였다. 그 어머니는 벽을 향해 돌아누워서 마치 딸꾹질처럼 어떤 일정한 사이를 두고 가자, 가자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해골 같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쨍쨍한 소리가 나오는지 이상하였다.

철호는 윗방으로 올라가 털썩 벽에 기대어 앉아 버렸다. 가슴에 커다란 납덩어리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정말 엉엉 소리를 내어 울고 싶었다. 눈을 꼭 지리 감으며 애써 침을 삼켰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철호는 저녁 때 일터에서 돌아오면 어머니야 알아듣건 말건 그래도 어머니 지금 돌아왔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곤 하였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것마저 안 하게 되었다. 그저 한참 물끄러미 굽어보고 섰다가 그대로 윗방으로 올라와 버리는 것이었다.

컴컴한 구석에 앉아 있던 철호의 아내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담요바지 무릎을 한쪽은 꺼멍, 또 한쪽은 회색으로 기웠다. 만삭이 되어서 꼭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배를 안은 아내는 몽유병자처럼 철호의 앞을 지나 나갔다. 부엌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분명 벙어리는 아닌데 아내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

철호는 누가 꼭대기를 쿡 쥐어박기나 한 것처럼 흠칠했다.

바로 옆에 다섯 살 난 딸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철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철호는 어린것에게 얼굴을 돌렸다. 웃어 보이려는 철호의 얼굴이 도리어 흉하게 이지러졌다.

나아, 삼촌이 나이롱 치마 사 준댔다.”

.”

그리구 구두두 사 준댔다.”

.”

그러면 나 엄마하고 화신 구경 간다.”

…….”

철호는 그저 어린것의 노랗게 뜬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철호의 헌 샤쓰 허리통을 잘라서 위에 끈을 꿰어 스커트로 입은 딸애는 짝짝이 양말 목달이에다 어디서 주운 것인지 가는 고무줄을 끼었다.

가자! 가자!”

아랫방에서 또 어머니의 그 저주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벌써 칠 년을 두고 들어 와도 전연 모를 그 어떤 딴 사람의 목소리.

철호는 또 눈을 꼭 감았다. 머릿속의 뇟줄이 팽팽히 헤어졌다. 두 주먹으로 무엇이건 콱 때려부수고 싶은 충동에 철호는 어금니를 바서져라 맞씹었다.

좀 춥기는 해도 철호는 집 안보다 이 바위 잔등이 더 좋았다. 그래 철호는 저녁만 먹으면 언제나 이렇게 집 뒤 산등성이에 있는 바위 위에 두 무릎을 세워 안고 앉아서 하염없이 거리의 등불들을 바라보며 밤 깊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느 거리쯤인지 잘 분간할 수 없는 저 밑에서, 술광고 네온사인이 핑그르르 돌고 깜박 꺼졌다가 또 번뜩 켜지고, 핑그르르 돌고 깜박 꺼지고 하였다.

철호는 그저 언제까지나 그렇게 그 네온사인을 지켜 보고 있었다. 바위 잔등이 차츰차츰 식어 왔다. 마침내 다 식고 겨우 철호가 깔고 앉은 고 부분에만 약간 온기가 남았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밑이 시려 올 것이다. 그러면 철호는 하는 수 없이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드디어 철호는 일어섰다. 오래 까부려 붙이고 있던 두 다리가 저렸다. 두 손을 작업복 호주머니에 깊숙이 찔렀다. 철호는 밤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바라보던 밤 거리보다 더 화려하게 별들이 뿌려져 있었다. 철호는 그 많은 별들 가운데서 북두칠성을 쳐다보았다. 머리를 뒤로 젖혀 하늘을 쳐다보는 채 빙그르르 그 자리에서 돌았다. 거꾸로 달린 주걱 같은 북두칠성은 쉽사리 찾아 낼 수 있었다. 그 북두칠성 앞에 딴 별들보다 좀 크고 빛나는 별, 그건 북극성이었다.

철호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지점과 북극성을 연결하는 직선을 밤 하늘에 길게 그어 보았다. 그리고 그 선을 눈이 닿는 데까지 연장시켰다. 철호는 그렇게 정북(正北)을 향하여 한참이나 서 있었다. 고향 마을이 눈앞에 떠올랐다. 마을의 좁은 길까지, 아니 그 길에 박혀 있던 돌 하나까지도 선히 볼 수 있었다.

으스스 몸이 떨렸다. 한기(寒氣)가 전기처럼 발끝에서 튀어 콧구멍으로 빠져 나갔다. 철호는 크게 재채기를 하였다. 그리고 또 한 번 몸을 부르르 떨며 바위 밑으로 내려왔다.

철호는 천천히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가자!”

철호는 멈칫 섰다. 낮에는 이렇게까지 멀리 들리는 줄은 미처 몰랐던 어머니의 그 소리가 골목 어귀에까지 들려 왔다.

가자!”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골목에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철호는 다시 발을 옮겨 놓았다. 정말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그건 다리가 저려서만이 아니었다.

가자!”

철호가 그의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그만치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가자는 것이었다.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렇게 정신 이상이 생기기 전부터 철호의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던 말이었다.

38. 그것은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도 철호의 늙은 어머니에게만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난 모르겠다. 암만해도 난 모르겠다. 삼팔선, 그래 거기에다 하늘에 꾹 닿도록 담을 쌓았단 말이냐 어쨌단 말이냐. 제 고장으로 제가 간다는데 그래 막는 놈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죽어도 고향에 돌아가서 죽고 싶다는 철호의 어머니였다. 그리고는,

이게 어디 사람 사는 게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며 한숨과 함께 무릎을 치며 꺼지듯이 풀썩 주저앉곤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철호는,

어머니, 그래도 남한은 이렇게 자유스럽지 않아요?”

하고, 남한이니까 이렇게 생명을 부지하고 살 수 있지, 만일 북한 고향으로 간다면 당장에 죽는 것이라고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갖은 이야기를 다 예로 들어가며 어머니에게 타일러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라는 것을 늙은 어머니에게 이해시키기란 38선을 인식시키기보다도 몇백 갑절 더 힘드는 일이었다. 아니,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했다. 그래 끝내 철호는 어머니에게 자유라는 것을 설명하는 일을 단념하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 보니 철호의 어머니에게는 아들지지리 고생을 하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만은 죽어도 하지 않는 철호가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늙은 어미를 잡으려고 공연한 고집을 피우고 있는 천하에 고약한 놈으로만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야 철호에게도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하늘이 알 만치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큰 지주로서 한 마을의 주인격으로 제법 풍족하게 평생을 살아오던 철호의 어머니 눈에는 아무리 그네가 세상을 모른다고는 해도 산등성이를 악착스레 깎아 내고 거기에다 게딱지 같은 판잣집들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이 해방촌이 이름 그대로 해방촌(解放村)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두 내 나라를 찾았다는 게 기뻐서 울었다. 엉엉 울었다. 시집올 때 입었던 홍치마를 꺼내 입고 춤을 추었다. 그런데 이 꼴 돟다. 난 싫다. 아무래도 난 모르겠다. 뭐가 잘못됐건 잘못된 너머 세상이디 그래.”

철호의 어머니 생각에는 아무리 해도 모를 일이었던 것이었다. 나라를 찾았다면서 집을 잃어버려야 한다는 것은 그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었다.

철호의 어머니는 남한으로 넘어온 후로 단 하루도 이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 오던 그 날, 6?25 동란으로 바로 발밑에 빤히 내려다보이는 용산 일대가 폭격으로 지옥처럼 무너져 나가던 날 끝내 철호는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큰애야 이젠 정말 가자. 데것 봐라. 담이 흠싹 무너뎄는데 삼팔선의 담이 데렇게 무너뎄는데, .”

그 때부터 철호의 어머니는 완전히 정신 이상이었다. 지금의 어머니, 그것은 이미 철호의 어머니는 아니었다. 아무리 따져 보아도 그것이 철호 자기의 어머니일 수는 없었다. 세상에 아들딸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그 날부터 철호의 어머니는

가자! 가자!”

하고 저렇게 쨍쨍한 목소리로 외마디 소리를 지를 뿐 그 밖의 모든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었다. 철호에게 있어서 지금의 어머니는 말하자면 어머니의 시체에 지나지 않았다.

뚫어진 창호지 구멍으로 그래도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철호는 윗방문을 열었다. 아랫방과 윗방 사이 문턱에 위태롭게 올려놓은 등잔이 개똥벌레처럼 가물거리고 있었다. 윗방 아랫목에는 딸애가 반듯이 누워서 송장 같았다. 그 옆에 철호의 아내가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꺼먼 헝겊과 회색 헝겊으로 기운 담요 바지, 무릎 위에는 빨간색 우단으로 만든 조그마한 운동화가 한 켤레 놓여 있었다. 철호가 방 안에 들어서자 아내는 그 어린애의 빨간 신발을 모두어 자기 손바닥에 올려놓아 철호에게 들어 보였다.

삼촌이 사 왔어요.”

유난히 살눈섭이 긴 아내의 눈이 가늘게 웃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아내의 웃음이었다. 자기가 미인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만 지 오랜 아내처럼, 또 오래 보지 못하여 거의 잊어버려 가던 아내의 웃는 얼굴이었다.

철호는 등잔이 놓인 문턱 가까이 서 앉으며 아내의 손에서 빨간 어린애의 신발을 받아 눈앞에서 아래위를 살펴보았다.

산보 갔었소?”

거기 등잔불을 사이에 두고 윗방을 향해 앉은 철호의 동생 영호(英浩)가 웃으며 철호를 쳐다보았다.

언제 들어왔니.”

지금 막 들어와 앉는 길입니다.”

그러고 보니 영호는 아직 넥타이도 끄르지 않고 있었다.

형님!”

새삼스레 부르는 동생의 소리에 철호는 손에 들었던 어린애의 신발을 아내에게 돌리며 영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도 한번 살아 봅시다. 제길, 남 다 사는데 우리라구 밤낮 이렇게만 살겠수, 근사한 양옥도 한 채 사구, 장기판만한 문패에다 형님의 이름 석 자를, 제길 장님도 보게 써서 대못으로 땅땅 때려 박구 한번 살아 봅시다.”

군대에서 나온 지 이 년이 넘도록 아직 직업도 못 잡은 영호가 언제나 술만 취하면 하는 수작이었다.

그리구 이천만 환짜리 세단차도 한 대 삽시다. 거기다 똥통이나 싣고 다니게. 모든 새끼들이 아니꼬와서 일이야 있건 없건 종일 빵빵 울리면서 동리를 들락날락해야지. 제길, 하하하.”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앉은 영호는 벌겋게 열에 뜬 얼굴을 하고 담배 연기를 푸 내뿜었다.

또 술 마셨구나.”

고학으로 고생고생 다니던 대학 삼학년에서 군대에 들어갔다가 나온 영호로서는 특별한 기술이 없이 직업을 잡지 못하는 것은 별 도리도 없는 노릇이라 칠 수도 있었지만, 이건 어디서 어떻게 마시는 것인지 거의 저녁마다 이렇게 취해 들어오는 동생 영호가 몹시 못마땅한 철호의 말이었다.

, 조금 했습니다. 친구들이…….”

그것도 들으나마나 늘 같은 대답이었다. 또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도 철호는 알고 있었다.

이제 술 좀 그만 마셔라.”

친구들과 어울리면 자연히 마시게 되는 걸요.”

글쎄 그러니까 그 어울리는 걸 좀 삼가란 말이다.”

그럴 수도 없구요. 하하하.”

그렇다구 언제까지 그저 그렇게 어울려서 술이나 마시면서 뭐가 되나.”

되긴 뭐가 돼요. 그저 답답하니까 만나는 거구, 만나면 어찌하다 한 잔씩 하며 이야기나 하는 거죠 뭐.”

글쎄 그게 맹랑한 일이란 말이다.”

그렇지만 형님. 그런 친구들이라도 있다는 게 좋지 않수. 그게 시시한 친구들이라 해도, 정말이지 그놈들마저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 뻔했나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외팔이, 절름발이, 그런 놈들, 무식한 놈들, 참 시시한 놈들이지요. 죽다 남은 놈들. 그렇지만 형님, 그놈들 다 착한 놈들이야요. 최소한 남을 속이지는 않거든요, 공갈을 때릴망정. 하하하하. 전우 전우.”

영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향해 후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철호는 그저 물끄러미 영호의 모습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영호는 여전히 천장을 향한 채 피어 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한 손으로 목의 넥타이를 앞으로 잡아당겨 반쯤 끌러 늦추어 놓았다.

가자!”

아랫목에서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영호는 슬그머니 아랫목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참이나 그렇게 어머니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영호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었다.

철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앞에 놓인 등잔불이 거물거물 춤을 추었다. 철호는 저고리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었다. 꼬기꼬기 구겨진 파랑새 갑속에서 담배를 한 개비 뽑아 내었다. 바삭바삭 마른 담배는 양끝이 반쯤 빠져 나갔다.

철호는 그 양끝을 비벼 말았다. 흡사 비가 모양으로 되었다. 철호는 그 비가 모양의 담배 한 끝을 입에다 물었다.

이걸 피슈. 형님.”

영호가 자기 앞에 놓였던 담뱃갑을 집어서 철호의 앞으로 내어밀었다. 빨간색 양담뱃갑이었다. 철호는 그 여느 것보다 좀 긴 양담뱃갑을 한 번 힐끔 쳐다보았을 뿐 아무 소리도 없이 등잔불로 입에 문 파랑새 끝을 가져갔다.

영호가 자기 앞에 놓였던 담배값을 집어서 철호의 앞으로 내어 밀었다. 빨간색 양담배 갑이었다. 철호는 그 여는 것보다 좀 긴 양담배 갑을 한 번 힐끔 쳐다보았을 뿐, 아무 소리도 없이 등잔불로 입에 문 파랑새 끝을 가져갔다. 영호는 등잔불 위에 꾸부린 형 철호의 어깨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었다. 지지지 소리가 났다. 앞 이마에 흐트려져 내렸던 철호의 머리카락이 등잔불에 타며 또르르 말려 올랐다. 철호는 얼굴을 들었다. 한 모금 빨자 벌써 손끝이 따갑게 꽁초가 되어 버린 담배를 입에서 떼었다. 천천히 연기를 내뿜는 철호의 미간에는 세로 석 줄의 깊은 주름이 패어졌다. 영호는 들었던 담배갑을 도로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등잔불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의 입가에서 야릇한 웃음이애달픈 아니 그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그런 미소가 천천히 흘러 지나갔다.

한참 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가자!”

아랫방 아랫목에서 몸을 뒤채는 어머니가 잠꼬대를 했다. 어머니는 이제 꿈속에서마저 생활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아주 낮은 그 소리는 한숨처럼 느리게 아래 웃방에 가득 차 흘러 사라졌다.

여전히 아무도 말이 없었다.

철호는 꽁초를 손끝에 꼬집어 쥔 채 넋빠진 사람 모양 가물거리는 등잔불을 지켜보고 있었고 동생 영호는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앉은 채 철호의 손끝에서 타고 있는 담배 꽁초를 바라보고 있었고, 철호의 아내는 잠든 딸애의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인 빨간 신발을 요리조리 매만지고 있었다.

가자!”

또 한 번 어머니의 소리가 저 땅 밑에서 새어나오듯이 들려왔다.

형님은 제가 이렇게 양담배를 피우는 게 못마땅하지요?”

영호는 반쯤 탄 담배를 자기의 눈 앞에 가져다 그 빨간 불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분에 맞지 않지.”

철호는 여전히 등잔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형님, 형님은 파랑새와 양담배와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으슈?”

? 그야 양담배가 좋지. 그래서?”

그래서 너는 보리밥도 못 버는 녀석이 그래 좋은 것은 알아서 양담배를 피우는 거냐 하는 철호의 눈초리가 번뜩 영호의 면상을 때렸다.

그래서 전 양담배를 택했어요.”

뭔가?”

형님은 절 오해하시고 계셔요.”

?”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양담배를 사서 피우겠어요. 어쩌다 친구들이 사 주는 것이니 피우는 거지요. 형님은 또 제가 거의 저녁마다 술을 마시고 또 제법 합승을 타고 들어오는 것도 못마땅하시죠. 저도 알고 있어요. 형님은 때때로 이십오 환 전차값도 없어서 종로서 근 십리를 집에까지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오시는 것을. 그렇지만 형님이 걸으신다고 해서, 한사코 같이 타고 가자는 친구들의 호의, 아니 그건 호의도 채 못되는 싱거운 수작인지도 모르죠. 어쨌든 그것을 굳이 뿌리치고 저마저 걸어야 할 아무 까닭도 없지 않습니까? 이상한 놈들이죠. 술 담배는 사 주고 합승은 태워 줘도 돈은 안 주거든요.”

영호는 손끝으로 뱅글뱅글 비벼 돌리는 담뱃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어쨌든 너도 이젠 좀 정신 차려 줘야지. 벌써 군대에서 나온 지도 이태나 되지 않니.”

정신 차려야죠. 그렇지 않아도 이 달 안으로는 어찌 되든 간에 결판을 내구 말 생각입니다.

어디 취직을 해야지.”

취직이요? 형님처럼요? 전차값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남의 살림이나 계산해 주란 말이지요?”

그럼 뭐 별 뾰족한 수가 있는 줄 아니.”

있지요. 남처럼 용기만 조금 있으면.”

?”

어처구니없는 영호의 수작에 철호는 그저 멍청하니 영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손끝이 따가웠다. 철호는 비루 깡통으로 만든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용기?”

, 용기.”

용기라니.”

적어도 까마귀만한 용기만이라도 말입니다. 영리할 필요는 없더군요. 우둔해도 상관 없어요. 까마귀는 도무지 허수아비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참새처럼 영리하지 못한 탓으로 그놈의 까마귀는 애당초에 허수아비를 무서워할 줄조차 모르거든요.”

영호의 입가에는 좀 전에 파랑새 꽁초에다 불을 당기는 철호를 바라보던 때와 같은 야릇한 웃음이 또 소리 없이 감돌고 있었다.

, 설마 무슨 엉뚱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철호는 약간 긴장한 얼굴을 하고 영호를 바라보며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아니요. 엉뚱하긴 뭐가 엉뚱해요. 그저 우리들로 남처럼 다 벗어 던지고 홀가분한 몸차림으로 달려 보자는 것이죠 뭐.”

벗어 던지고?”

, 벗어 던지고.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 던지고 말입니다.”

영호의 큰 눈이 유난히 빛나는가 하자 철호의 눈을 정면으로 밀고 들었다.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

너는, 너는.”

…….”

영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만은 똑바로 형 철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나 살자면 이 형도 벌써 잘 살 수 있었다..”

철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나라니요?”

양심을 버리고, 윤리와 관습을 무시하고, 법률까지도 범하고!”

흥분한 철호의 큰 목소리에 영호는 지금까지 철호의 얼굴에 주었던 시선을 앞으로 죽 뻗치고 앉은 자기의 발끝으로 떨구었다.

저도 형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고생하시는 형님을 용케 이 고생을 참고 견디는 형님을. 그렇지만 형님은 약한 사람이야요. 용기가 없는 거지요. 너무 양심이 강해요. 아니 어쩌면 사람이 약하면 약한 만치, 그만치 반대로 양심이란 가시는 여물고 굳어지는 것인지도 모르죠.”

양심이란 가시?”

. 가시지요. 양심이란 손끝의 가십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윤리. 그건 나이롱 빤쯔 같은 것이죠. 입으나 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죠. 관습이요? 그건 소녀의 머리 위에 달린 리봉이라고나 할까요? 있으면 예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없대서 뭐 별일도 없어요.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사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 되는 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돼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하기는커녕 그놈의 상투 끝에 턱 올라앉아서 썩은 흙을 쑤시던 더러운 주둥이를 쓱쓱 문질러도 별일 없거든요. .”

영호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거기 문턱 밑에 담배갑에서 새로 담배를 한 개를 빼어 물고 지금까지 들고 있던 다 탕 꽁다리에서 불을 옮겨 빨았다.

가자!”

어머니의 그 소리가 또 들렸다. 어머니는 분명히 잠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간간이 저렇게 가자 가자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어머니에게는 호흡처럼 생리화해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철호는 비스듬히 모으로 앉은 동생 영호의 옆얼굴을 한참이나 노려보고 있었다. 영호는 영호대로 퀭한 두 눈으로 깜박이기를 잊어버린 채 아까부터 앞으로 뻗힌 자기의 발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철호는 영호에게서 눈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아랫방과 윗방 사이 칸막이를 한 널쪽에 등을 기대며 모으로 돌아앉았다. 희미한 등잔불빛에 잠든 딸애의 조그마한 얼굴이 애처로웠다. 그 어린 것 옆에 앉은 철호의 아내는 왼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손을 펴 깔고 턱을 괴었다. 아까부터 철호와 영호, 형제가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는 그네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한쪽 손끝으로, 거기 방바닥에 가지런히 놓은 빨간 어린애의 신발만 몇 번이고 쓸어보고 있었다.

철호는 고개를 푹 떨구어 턱을 가슴에 묻었다. 영호는 새로 피어 문 담배를 연거푸 서너 번 들이빨았다. 그리고 또 말을 계속하였다.

저도 형님의 그 생활 태도를 잘 알아요. 가난하더라도 깨끗이 살자는. 그렇지요, 깨끗이 사는 게 좋지요. 그런데 형님 하나 깨끗하기 위하여 치르는 식구들의 희생이 너무 어처구니없이 크고 많단 말입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형님 자신만 해도 그렇죠. 밤낮 쑤시는 충치 하난 처치 못 하시고 이가 쑤시면 치과에 가서 치료를 하거나 빼어 버리거나 해야 할 거 아니야요. 그런데 형님은 그것을 참고 있어요. 낯을 잔뜩 찌푸리고 참는단 말입니다. 물론 치료비가 없으니까 그러는 수밖에 없겠지요. 그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 돈을 어떻게든가 구해야죠. 이가 쑤시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그걸 형님처럼, 마치 이 쑤시는 것을 참고 견디는 그것이 돈을치료비를 버는 것이기나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안 쓰는 것은 혹 버는 셈이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거야요. 그렇지만 꼭 써야 할 데 못 쓰는 것이 버는 셈이라고 할 수 없지 않아요. 세상에는 이런 세 층의 사람들이 있다고 봅니다. 즉 돈을 모으기 위해서만으로 필요 이상의 돈을 버는 사람과 필요하니까 그 필요하니만치의 돈을 버는 사람과, 돈 하나는 이건 꼭 필요한 돈도 채 못 벌고서 그 대신 생활을 조리는 사람들. 신발에다 발을 맞추는 격으로 형님은 아마 그 맨끝의 층에 속하겠지요. 필요한 돈도 미처 벌지 못하는 사람. 깨끗이 살자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시겠지요. 그래요. 그것은 깨끗하기는 할지 모르죠. 그렇지만 그저 그것뿐이지요. 언제까지나 충치가 쏘아 부은 볼을 싸 쥐고 울상일 수밖에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야 형님! 인생이 저 골목 안에서 십 환짜리를 받고 코 흘리는 어린애들에게 보여 주는 요지경이라면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값만치 구멍으로 들여다보고 말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어디 인생이 자기 주머니 속의 돈 액수만치만 살고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둘 수 있는 요지경인가요 어디. 싫어도 살아야 하니까 문제지요. 사실이지 자살을 할 만치 소중한 인생도 아니고요. 살자니까 돈이 필요하구요. 필요한 돈이니까 구해야죠. 왜 우리라고 좀더 넓은 테두리. 법률선(法律線)까지 못 나가란 법이 어디 있어요. 아니 남들은 다 벗어 던지구 법률선까지도 넘나들면서 사는데, 왜 우리만이 옹색한 양심의 울타리 안에서 숨이 막혀야 해요. 버률이란 뭐야요. 우리들이 피차에 약속한 선이 아니야요?”

영호는 얼굴을 번쩍 들며 반쯤 끌러 놓았던 넥타이를 마저 끌러서 방 구석에 픽 던졌다.

철호는 여전히 턱을 가슴에 푹 묻은 채 묵묵히 앉아 두 짝 다 엄지발가락이 몽땅 밖으로 나온 뚫어진 양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일론 양말 한 켤레 사면 반 년은 무난히 뚫어지지 않고 견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뻔히 알면서도 번번이 백 환짜리 무명 양말을 사 들고 들어오는 철호였다. 칠백 환이란 돈을 단번에 잘라 낼 여유가 도저히 없는 월급이었던 것이다.

가자!”

어머니는 또 몸을 뒤채었다.

그건 역설이야.”

철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신문지를 바른 맞은편 벽에, 쭈그리고 앉은 아내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비쳐 있었다. 꼽추처럼 꼬부리고 앉은 아내의 그림자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괴물스러웠다. 철호는 눈을 감았다. 머리마저 등 뒤 칸막이 반자에 기대었다.

철호의 감은 눈 앞에 십여 년 전 아내가 흰 저고리 까만 치마를 입고 선히 나타났다. 무대에 나선 그네는 더욱 예뻤다. E여자대학 졸업음악회였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다. 그 날 저녁 같이 거리를 거닐던 그네는 정말 싱싱하고 예뻤었다. 그러나 지금 철호 앞에 쭈그리고 앉은 아내는 그 때의 그네가 아니었다. 무슨 둔한 동물처럼 되어 버린 그네. 이제 아무런 희망도 가져 보려고 하지 않는 아내. 철호는 가만히 눈을 떴다. 그래도 아내의 속눈썹만은 전처럼 까맣고 길었다.

가자!”

철호는 흠칠 놀라 환상에서 깨어났다.

억설이요? 그런 지도 모르죠.”

한참이나 잠잠하니 앉아 까물거리는 등잔불을 바라보던 영호의 맥빠진 대답이었다.

네 말대로 한다면 돈 있는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이란 말밖에 더 되나 어디.”

아니죠. 제가 어디 나쁘고 좋고를 가렸어요. 나쁘긴 누가 나빠요? 왜 나빠요. 아 잘 사는 게 나빠요? 도시 나쁘고 좋고부터 따질 아무런 금도 없지요, .”

그렇지만 지금 네 말대로 잘 살자면 꼭 양심이고 윤리고 뭐고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뭐야.”

천만에요. 잘못 이해하신 겁니다. 간단히 말씀 드리면 이렇다는 것입니다. , 양심껏 살아가면서 잘 살 수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적다. 거기에 비겨서 그 시시한 것들을 벗어 던지기만 하면 누구나 틀림없이 잘 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역설이란 말이다. 마음 한 구석이 어딘가 비틀려서 하는 억지란 말이다.”

글쎄요. 마음이 비틀렸다고요. 그건 아마 사실일는지도 모르겠어요. 분명히 비틀렸어요. 그런데 그 비틀리기가 너무 늦었어요. 어머니가 저렇게 미치기 전에 비틀렸어야 했지요. 한강 철교를 폭파하기 전에 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누이 동생 명숙이가 양공주가 되기 전에 비틀렸어야 했지요. 환도령(還都令)이 내리기 전에 하다 못해 동대문 시장에 자리라도 한 자리 비었을 때 말입니다. 그러구 이놈의 배때기에 지금도 무슨 내장이기나 한 것처럼 박혀 있는 파편이 터지기 전에 말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전에, 제가 뭐 무슨 애국자나처럼 남들은 다 기피하는 군대에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노라고 자원하던 그 전에 말입니다.”

…….”

그보다도 더 전에 썩 전에 비틀렸어야 했을지 모르죠. 나면서부터 비틀렸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죠.”

영호는 푹 고개를 떨구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이 후르르 떨고 있었다. 철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윗목에 앉아 있던 철호의 아내가 방바닥에 떨어진 눈물을 손끝으로 장난처럼 문지르고 있었다. 영호도 훌쩍훌쩍 코를 들이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야. 너는 아직 사람이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어.”

그래요. 사람이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제 이 물고 뜯고 하는 마당에서 살자면, 생명만이라도 유지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는지는 알 것 같애요. 허허.”

영호는 눈물이 글썽하니 고인 눈을 천장을 향해 쳐들며 자기 자신을 비웃듯이 허허 하고 웃었다.

가자!”

또 어머니는 가자고 했다. 영호는 아랫목으로 눈을 돌렸다. 철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앞의 등잔불이 크게 흔들거렸다. 방안의 모든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집 전체가 그대로 기울거리는 것 같았다. 그것뿐 조용했다. 밤이 꽤 깊은 모양이었다. 세상이 온통 잠들고 있었다.

저만치 골목 밖에서부터 딱 딱 딱 딱 구두발 소리가 뾰족하게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 왔다. 바로 아랫방 문 앞에서 멎었다. 영호는 문께로 얼굴을 돌렸다. 삐걱삐걱 두어 번 비틀리던 방문이 열렸다. 여동생 명숙이가 들어섰다. 싱싱한 몸매에 까만 투피스가 제법 어느 회사의 여사무원 같았다.

늦었구나.”

영호가 여전히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은 채 고개만 뒤로 젖혀서 명숙을 쳐다보았다.

명숙은 영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돌아서서 문 밖에서 까만 하이힐을 집어 올려 아랫방 모서리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백을 휙 방구석에 던졌다. 겨우 웃저고리와 스커트를 벗어 걸은 명숙은 아랫방 뒷구석에 가서 털썩하고 쓰러지듯 가로누워 버렸다. 그리고 거기 접어 놓은 담요를 끌어다 머리 위에서부터 푹 뒤집어 썼다.

철호는 명숙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덤덤히 등잔불만 지켜보고 있었다.

철호는 언젠가 퇴근하던 길에 전차 창문 밖으로 본 명숙의 꼴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철호가 탄 전차가 을지로 입구 십자거리에 머물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잡이를 붙들고 창을 향해 서 있던 철호는 무심코 밖을 내다보았다. 전차 바로 옆에 미군 지프차가 한 대 와 섰다. 순간 철호는 확 낯이 달아올랐다.

핸들을 쥔 미군 바로 옆자리에 색안경을 쓴 한국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것이 바로 명숙이었던 것이다. 바로 철호의 턱밑에서였다. 역시 신호를 기다리는 그 지프차 속에서 미군이 한 손은 핸들에 걸치고 또 한 팔로는 명숙의 허리를 넌지시 끌어안는 것이었다. 미군이 명숙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뭐라고 수작을 걸었다. 명숙은 다리를 겹치고 앉은 채 앞을 바라보는 자세 그대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 미군 지프차 저편에 선 택시 조수가 명숙이와 미군을 쳐다보며 피시시 웃었다. 전차 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철호 바로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청년 둘이 쑥덕거렸다.

그래도 멋은 부렸네.”

? 그래 색안경을 썼으니 말이지?”

장시치곤 고급이지 밑천 없이.”

저것도 시집을 갈까?”

.”

철호는 손잡이를 놓았다. 그리고 반대편 가운데 문께로 가서 돌아서고 말았다. 그것은 분명히 슬픈 감정만은 아니었다. 뭐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숯덩어리 같은 것이 꽉 목구멍을 치밀었다. 정신이 아뜩해지는 것 같았다. 하품을 하고 난 뒤처럼 코 속이 싸하니 쓰리면서 눈물이 징 솟아올랐다. 철호는 앞에 있는 커다란 유리를 콱 머리로 받아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어금니를 꽉 맞씹었다. 찌르르 벨이 울렸다. 덜커덩 전차가 움직였다. 철호는 문짝에 어깨를 가져다 기대고 눈을 감아 버렸다.

그 날부터 철호는 정말 한 마디도 누이동생 명숙이와 말을 하지 않았다. 또 명숙이도 철호를 본 체 만 체했다.

자 우리도 이제 잡시다.”

영호가 가슴을 펴서 내어밀고 바로앉았다.

등잔불을 끄고 두 방 사이의 문을 닫았다.

푹 가라앉는 것같이 피곤했다. 그러면서도 철호는 정작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밤은 고요했다. 시간이 그대로 흐르기를 멈추어 버린 것같이 조용했다. 철호의 아내도 이제 잠이 들었나 보다. 앓는 소리를 내었다. 철호는 눈을 감았다. 어딘가 아득히 먼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철호는 잠이 들어가고 있었다.

가자!”

다들 잠든 밤의 그 어머니의 소리는 엉뚱하게 컸다. 철호는 흠칠 눈을 떴다. 차츰 눈이 어둠에 익어갔다. 며칠인가, 문틈으로 새어 들은 달빛이 철호의 옆에서 잠든 딸애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죽 파란 줄을 그었다. 철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길게 한숨을 쉬며 벽을 향해 돌아 누웠다.

가자!”

또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철호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도 마저 잠이 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랫방에서 명숙이가 눈을 떴다. 아랫목에 어머니와 윗목에 오빠 영호 사이에 누운 명숙은 어둠 속에 가만히 손을 내어밀었다. 어머니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뼈 위에 겨우 가죽만이 씌워진 손이었다. 그 어머니의 손에서는 체온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축축히 습기가 미끈거렸다. 명숙은 어머니 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한 쪽 손을 마저 내밀어서 두 손으로 어머니의 송장 같은 손을 감싸 쥐었다.

가자!”

딸의 손을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 어머니는 또 한 번 허공을 향해 가자고 소리 질렀다.

엄마!”

명숙의 낮은 소리였다. 명숙은 두 손으로 감싸 쥔 어머니의 여윈 손을 가만히 흔들었다.

가자!”

엄마!”

기어이 명숙은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명숙은 어머니의 손을 끌어다 자기의 입에 틀어 막았다.

엄마!”

숨을 죽여가며 참는 명숙의 울음은 한숨으로 바뀌며 어머니의 손가락을 입 안에서 잘근잘근 씹어 보는 것이었다.

겁내지 말라.”

옆에서 영호가 잠꼬대를 했다.

가자!”

어머니는 명숙의 손에서 자기의 손을 빼어가지고 저쪽으로 돌아누워 버렸다.

명숙은 다시 담요를 끌어다 머리 위까지 푹 썼다. 그리고 담요 속에서 흐득흐득 울고 있었다.

엄마.”

이번엔 윗방에서 어린 것이 엄마를 불렀다.

철호는 잠 속에서 멀리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채 잠이 깨어지지는 않았다.

엄마.”

어린것은 또 한 번 엄마를 불렀다.

오 오, 왜 엄마 여기 있어.”

아내의 반쯤 깬 소리였다. 어린것을 끌어다 안는 모양이었다. 철호는 그 소리를 멀리 들으며 다시 곤히 잠들어 버렸다.

오줌.”

, 오줌 누겠니? 자 일어나. 착하지.”

철호의 아내는 일어나 앉으며 어린것을 안아 일으켰다. 구석에서 깡통을 끌어다 대어 주었다.

, 삼촌이 네 신발 사 왔지. 아주 예쁜 거. 볼래?”

깡통을 타고 앉은 어린것을 뒤에서 안아 주고 있던 철호의 아내는 한 손으로 어린것의 베개맡에 놓아 두었던 신발을 집어다 보여 주었다. 희미하게 달빛이 들이비쳤을 뿐인 어두운 방안에서는 그것은 그저 겨우 모양뿐 색채를 잃고 있었다.

내꺼야? 엄마.”

그래. 네꺼야.”

예뻐?”

참 예뻐. 빨강이야.”

.”

어린것은 잠에 취한 소리로 물으며 신발을 두 손에 받아 가슴에 안았다.

자 이제 거기 놔 두고 자야지.”

, 낼 신어도 돼?”

그럼.”

어린것은 오물오물 담요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엄마, 낼 신어도 돼?”

그럼.”

뭐든가 좀 좋은 것은 아껴야 한다고만 들어오던 어린것은 또 한 번 이렇게 다짐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어린것의 담요 가장자리를 꼭꼭 눌러 주고 나서 그 옆에 누웠다.

다들 다시 잠이 들었다. 어느 사이에 달빛이 비껴서 칼날 같은 빛을 철호의 가슴으로 옮겼다. 어린것의 부시시 머리를 들었다. 배를 깔고 엎드렸다. 어린것은 조그마한 손을 배개 너머로 내밀었다. 거기 가지런히 놓아 둔 신발을 만져 보았다. 어린것은 안심한 듯이 다시 베개를 베고 누웠다. 또 다시 조용해졌다. 한참만에 또 어린것이 움직거렸다. 잠이 든 줄만 알았던 어린것은 또 엎드렸다. 머리맡에 신발을 또 끌어당겼다.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신발코를 꼭 눌러 보았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아주 자리 위에 일어나 앉았다. 신발을 무릎 위에 들어 올려 놓았다. 달빛에다 신발을 들이대어 보았다. 바닥을 뒤집어 보았다. 두 짝을 하나씩 두 손에 갈라 들고 고무 바닥을 맞대어 보았다. 이번엔 발을 앞으로 내놓았다. 가만히 신발을 가져다 신었다. 앉은 채로 꼭 방바닥을 디디어 보았다.

가자!”

어린것은 깜짝 놀랐다. 얼른 신발을 벗었다. 있던 자리에 도로 모아 놓았다. 그리고 한 번 더 신발을 바라보고 난 어린것은 살그머니 누웠다. 오물오물 담요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점심을 못 먹은 배는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가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철호는 펜을 장부 위에 놓았다. 저쪽 구석에 돌아앉은 사환애를 바라보았다. 보리차라도 한 잔 더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두 잔까지는 사환애를 시켜서 가져 오랄 수 있었으나 세 번까지는 부르기가 좀 미안했다. 철호는 걸상을 뒤로 밀고 일어섰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출입문으로 나갔다. 복도의 풍로 위에서 커다란 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보리차를 찻잔 하나 가득히 부었다. 구수한 냄새가 피어 올랐다. 철호는 뜨거운 찻잔을 손가락으로 꼬집어 들고 조심조심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찻잔을 입으로 가져 갔다. 후 불었다. 마악 한 모금 들여마시는 때였다.

송 선생님 전홥니다.”

사환애가 책상 앞에 와 알렸다. 철호는 얼른 찻잔을 책상 위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과장 책상 앞으로 갔다. 수화기를 들었다.

, 송철호올시다. ? 경찰서요? 전 송철호라는 사람인데요. ? 송영호요? 네 바로 제 동생입니다. 무슨?? ? 송영호가요? 제 동생이 말입니까? 곧 가겠습니다. , .”

철호는 수화기를 걸었다. 그리고 걸어 놓은 수화기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사무실 안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철호에게로 쏠렸다.

무슨 일인가. 동생이 교통 사고라도?”

서류를 뒤적이던 과장이 앞에 서 있는 철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 , 저 과장님,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철호는 마시던 보리차를 그대로 남겨 둔 채 사무실을 나섰다.

영문을 모르는 동료들이 서로 옆의 사람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는 것이었다.

 

철호는 전에도 몇 번 경찰서의 호출을 받은 일이 있었다. 양공주 노릇을 하는 누이동생 명숙이가 걸려 들면 그 신원 보증을 해야 하는 철호였다. 그 때마다 철호는 치안관 앞에서 낯을 못 들고 앉았다가 순경이 앞세우고 나온 명숙을 데리고 아무 말도 없이 경찰서 뒷문을 나서곤 하였다. 그럴 때면 철호는 울었다.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 정말 밉고 원망스러웠다. 철호는 명숙을 한 번 돌아다보는 일도 없이 전차 길을 따라 사무실로 걸었고, 또 명숙은 명숙이대로 적당한 곳에서 마치 낯도 모르는 사람이나처럼 딴 길로 떨어져 가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이동생이 아니라 남동생 영호의 건이라고 했다. 며칠 전 밤에 취해서 지껄이던 영호의 말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불안했다. 그런들 설마 하고 마음을 다시 먹으며 철호는 경찰서 문을 들어섰다.

권총 강도.

형사에게서 동생 영호의 사건 내용을 들은 철호는 앞에 앉은 형사의 얼굴을 바보모양 멍청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점점 핏기가 가셔 가는 철호의 얼굴은 표정을 잃은 채 굳어 가고 있었다.

어느 회사에서 월급을 줄 돈 천오백 환을 찾아서 은행 앞에 대기시켰던 지프차에 싣고 마악 떠나려고 하는데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 쓰고 색안경을 낀 괴한 두 명이 차 속으로 올라오며 권총을 내어들더라는 것이었다.

겁내지 말라! 차를 우이동으로 돌리라.”

운전수 또 한 명 회사원은 차가운 권총 구멍을 등에 느끼며 우이동까지 갔다고 한다. 어느 으슥한 숲속에서 차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는 둘이 다 차 밖으로 나가라고 한 다음 괴한들이 대신 운전대로 옮아 앉더라는 한다. 운전수와 회사원은 거기 버려 둔 채 차는 전 속력으로 다시 시내로 향해 달렸단다. 그러나 지프차는 미아리도 채 못 와서 경찰에 붙들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차 안에는 괴한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고 한다.

형사가 동생을 면회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철호는 그저 얼이 빠져서 두 무릎 위에 맥없이 손을 올려놓고 앉은 채 아무 대답도 못했다.

이윽고 형사실 뒷문이 열리더니 거기 영호가 나타났다.

이리로 와.”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배 앞에다 모으고 천천히 형사의 책상 앞에으로 걸어 나오는 영호는 거기 걸상에 앉았다. 일어서는 철호를 향하여 약간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동생의 얼굴을 뚫어져라고 바라보고 서 있는 철호의 여윈 볼이 히물히물 움직였다. 괴로울 때의 버릇으로 어금니를 꽉꽉 씹고 있는 것이었다.

형사는 앞에 와서 선 영호에게 눈으로 철호를 가리켰다.

형님 미안합니다. 인정선(人情線)에서 걸렸어요. 법률선까지는 무난히 뛰어넘었는데. 쏘아 보렸어야 하는 건데.”

영호는 철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옆으로 비스듬히 얼굴을 떨구며 수갑을 채운 오른손 엄지를 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때처럼 까붙여서 지그시 당겨 보는 것이었다.

철호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그저 영호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내린 이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가세요. 형님.”

영호는, 등신처럼 서 있는 형이 도리어 민망한 듯이 조용히 말했다.

수감해.”

형사가 문간에서 지키고 서 있는 순경을 돌려 보았다.

영호는 그에게로 오는 순경을 향해 마주 걸어갔다. 영호는 뒷문으로 끌려 나가다 말고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려 보았다.

형님. 어린것 화신 구경이나 한 번 시키세요. 제가 약속했었는데.”

뒷문이 꽝 닫혔다. 철호는 여전히 영호가 사라진 뒷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쏠 의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은데.”

조서를 한 옆으로 밀어 놓으며 형사가 중얼거렸다. 철호는 걸상에 가만히 걸터앉았다.

혹시 그 같이 한 청년을 모르시나요.”

철호의 귀에는 형사의 말소리가 아주 멀었다.

끝내 혼자서 했다고 우기는데, 그러나 증인이 있으니까 이제 차츰 사실대로 자백하겠지만.”

여전히 철호는 말이 없었다.

 

경찰서를 나온 철호는 어디를 어떻게 걸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철호는 술 취한 사람모양 허청거리는 다리로 자기 집이 있는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철호는 골목길 어귀에 들어섰다.

가자!”

철호는 거기 멈춰 섰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나 그는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하 하고 숨을 크게 내쉬는 철호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코 속으로 흘러서 찝찝하니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가자. 가자. 어딜 가잔 거야. 도대체 어딜 가잔 거야.”

철호는 꽥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거기 처마 밑에 모여 앉아서 소꿉질을 하던 어린애들이 부시시 일어서며 그를 쳐다보았다. 철호는 그 앞을 모른 채 지나쳐 버렸다.

오빤 어딜 그렇게 돌아다뉴?”

철호가 아랫방에 들어서자 윗방 구석에서 고리짝을 열어 놓고 뒤지고 있던 명숙이가 역한 소리를 했다. 윗방에는 넝마 같은 옷가지들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딸애는 고리짝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명숙이가 뒤져 내놓는 헌 옷들을 무슨 진귀한 것이나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철호는 아내가 어딜 갔느냐고 물어 보려다 말고 그대로 윗방 아랫목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어서 병원에 가 보세요.”

명숙은 여전히 고리짝을 들추며 돌아앉은 채 말했다.

병원엘?”

그래요.”

병원에라니?”

언니가 위독해요. 어린애가 걸렸어요.”

뭐가?”

철호는 눈 앞이 아찔했다.

점심 때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는데 영 해산을 못하고 애를 썼단다. 그런데 죽을 악을 쓰다 보니까 어린애의 머리가 아니라 팔부터 나왔다고 한다. 그래 병원으로 실어 갔는데, 철호네 회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나가고 없더라는 것이었다.

지금쯤은 아마 애기를 낳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명숙은 흰 헝겊들을 골라 개켜서 한 옆으로 젖혀 놓으며 말했다. 아마 어린애의 기저귀를 고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좀 전에 아찔했던 정신이 사르르 풀리며 온 몸의 맥이 쑥 빠져 나갔다. 철호는 오래간만에 머리 속이 깨끗이 개이는 것을 느꼈다.

말라리아를 앓고 난 다음날처럼 맥은 하나로 없으면서 머리는 비상히 깨끗했다. 뭐 놀랄 일이 있느냐 하는 심정이 되었다. 마치 회사에서 무슨 사무를 한 뭉텅이 맡았을 때와 같은 심사였다. 철호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언제나 새로 사무를 맡아 시작하기 전에 하는 버릇이었다.

어딜 가슈.”

명숙이가 돌아보았다.

병원에.”

무슨 병원인지도 모르면서.”

철호는 참 그렇다고 생각했다.

“S병원이야요.”

…….”

철호는 슬그머니 문 밖으로 한 발을 내 디디었다.

돈을 가지고 가야지, .”

.”

철호는 다시 문 안으로 들어섰다. 우두커니 발부리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명숙이가 일어섰다. 그리고 아랫방으로 내려갔다. 벽에 걸어 놓았던 핸드백을 열었다.

옛수.”

백 환짜리 한 다발이 철호 앞 방바닥에 던져졌다. 명숙은 다시 돌아서서 백을 챙기고 있었다. 철호는 명숙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철호의 눈이 명숙의 발 뒤축에 머물었다. 나일론 양말이 계란만치 구멍이 뚫렸다. 철호는 명숙의 그 구멍 뚫린 양말 뒤축에서 어떤 깨끗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철호는 명숙에 대한 오빠로서의 애정을 느꼈다.

가자.”

어머니가 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철호는 눈을 발 밑에 돈다발로 떨구었다. 허리를 구부렸다. 연기가 든 때처럼 두 눈이 싸하니 쓰렸다.

아버지 병원에 가? 엄마 애기 났어?”

그래.”

철호는 돈을 저고리 호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문을 나섰다.

가자.”

골목을 빠져 나가는 철호의 등 뒤에서 또 한 번 어머니의 소리가 들려 왔다.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다.

, 그래요.”

철호는 간호원보다도 더 심상한 표정이었다. 병원의 긴 복도를 휘청휘청 걸어서 널따란 현관으로 나왔다. 시체가 어디 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무엇인가 큰일이 한 가지 끝났다는 그런 기분이었다. 아니 또 어찌 생각하면 무언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긴 것 같은 무거운 기분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좀처럼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저 이제는 그리 서두를 필요도 없어졌다는 생각만으로 철호는 거기 병원 현관에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윽고 병원의 큰 문을 나선 철호는 전차 길을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 자전거가 휙 그의 팔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멈춰 섰다. 여섯 시도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제 사무실로 가야 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전차 길을 건넜다. 또 한참 걸었다. 그는 또 멈춰 섰다. 이번엔 어느 사이에 낮에 왔던 경찰서 앞에 와 있었다. 그는 또 돌아섰다. 또 걸었다. 그저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생각도 아니면서 그의 발길은 자동기계처럼 남대문 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문방구점, 라디오방, 사진관, 제과점, 그는 길가에 늘어선 이런 가게의 진열장을 하나하나 기웃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철호는 우뚝 섰다. 그는 거기 눈앞에 걸린 간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장기판만한 판에 빨간 페인트로 치과라고 써 있었다. 철호는 갑자기 이가 쑤시는 것을 느꼈다. 아침부터 아니 벌써 전부터 훌떡훌떡 쑤시는 충치가 갑자기 아파 났다. 양쪽 어금니가 아래 위 다 쑤셨다. 사실은 어느것이 정말 쑤시는 것인지조차 분간할 수가 없었다. 철호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 만 환 다발이 만져졌다.

철호는 치과 간판이 걸린 층계 이층으로 올라갔다.

치과 걸상에 머리를 젖히고 입을 아 버리고 앉았다. 의사는 달가닥달가닥 소리를 내며 이것저것 여러 가지 쇠꼬치를 그의 입에 넣었다 꺼냈다 하였다. 철호는 매시근하니 잠이 왔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좀 아팠지요? 뿌리가 구부려져서.”

의사가 집게에 뽑아 든 이를 철호의 눈앞에 가져다 보여 주었다. 속이 시꺼멓게 썩은 징그러운 이뿌리에 뻘건 살점이 묻어 나왔다. 철호는 솜을 입에 문 채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았다. 사실 아프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됐습니다. 한 삼십 분 후에 솜을 빼 버리슈. 피가 좀 나올 겁니다.”

이쪽을 마저 빼 주십시오.”

철호는 옆의 타구에 침을 뱉고 나서 또 한쪽 볼을 눌러 보였다.

어금니를 한 번에 두 개씩 빼면 출혈이 심해서 안 됩니다.”

괜찮습니다.”

아니. 내일 또 빼지요.”

다 빼 주십시오. 한 몫에 몽땅 다 빼 주십시오.”

안 됩니다. 치료를 해 가면서 한 대씩 빼야지요.”

치료요? 그럴 새가 없습니다. 마악 쑤시는 걸요.”

그래도 안 됩니다. 빈혈증이 일어나면 큰일납니다.”

하는 수 없었다. 철호는 치과를 나왔다. 또 걸었다. 잇몸이 멍하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하면 시원한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한 손으로 볼을 쓸어 보았다.

그렇게 얼마를 걷던 철호는 거기에 또 치과 간판을 발견하였다. 역시 이층이었다.

안 될 텐데요.”

거기 의사도 꺼렸다. 철호는 괜찮다고 우겼다. 한 쪽 어금니를 마저 빼었다. 이번에는 두 볼에다 다 밤알만큼씩한 솜덩어리를 물고 나왔다. 입 안이 찝찔했다. 간간이 길가에 나서서 피를 뱉었다. 그 때마다 시뻘건 선지 피가 간 덩어리처럼 엉겨서 나왔다. 남대문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서 서울역이 보이는 데까지 왔을 때 으스스 몸이 한 번 떨렸다. 머리가 휭하니 비어 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때에 번쩍 거리에 전등이 들어왔다. 눈앞이 한 번 환해졌다. 다음 순간에는 어찌된 셈인지 좀 전에 전등이 켜지기 전보다 더 거리가 어두워졌다. 철호는 눈을 한 번 꾹 감았다 다시 떴다. 그래도 매한가지였다. 이건 뱃속이 비어서 이렇다고 철호는 생각했다. 그는 새삼스레, 점심도 저녁도 안 먹은 자기를 깨달았다. 뭐든가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수한 설렁탕 생각이 났다. 입 안에 군침이 하나 가득히 고였다. 그는 어느 전주 밑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침을 뱉었다. 그런데 그것은 침이 아니라 진한 피였다. 그는 다시 일어섰다. 또 한 번 오한이 전신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다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았다. 그는 속히 음식점을 찾아 내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서울역 쪽으로 허청허청 걸었다.

설렁탕.”

무슨 약 이름이기나 한 것처럼 한 마디 일러 놓고는 그는 식탁 위에 엎드려 버렸다. 또 입 안으로 하나 찝찔한 물이 고였다. 철호는 머리를 들었다. 음식점 안을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머리가 아찔했다.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문 밖으로 급히 걸어 나갔다. 음식점 옆 골목에 있는 시궁창에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울컥하고 입 안엣것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위가 어두워서 그것이 뭔지 또는 침인지 알 수 없었다. 철호는 저고리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일어섰다. 이를 뺀 자리가 쿡 한 번 쑤셨다. 그러자 뒤이어 거기에 호응이나 하듯이 관자놀이가 또 쿡 쑤셨다. 철호는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빨리 집으로 돌아가 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큰길로 나왔다. 마침 택시가 한 대 왔다. 그는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철호는 던져지듯이 털썩 택시 안에 쓰러졌다.

어디로 가시죠?”

택시는 벌써 구르고 있었다.

해방촌.”

자동차는 스르르 속력을 늦추었다. 해방촌으로 가자면 차를 돌려야 하는 까닭이었다. 운전수는 줄지어 달려오는 자동차의 사이가 생기기를 노리고 있었다. 저만치 자동차의 행렬이 좀 끊겼다. 운전수는 핸들을 잔뜩 비틀어 쥐었다. 운전수가 몸을 한편으로 기울이며 마악 핸들을 틀려는 때였다. 뒷자리에서 철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S병원으로 가.”

철호는 갑자기 아내의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다. 운전수는 다시 홱 핸들을 이쪽으로 틀었다. 운전수 옆에 앉았던 조수 애가 한번 철호를 돌아보았다. 철호는 뒷자리 한 구석에 가서 몸을 틀어박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때에 또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X경찰서로 가.”

눈을 감고 있는 철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이미 죽었는데 하고 이번에는 다행히 차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냥 달렸다.

“X경찰서입니다. 손님.”

조수 애가 뒤로 몸을 틀어 돌리며 말했다.

가자.”

철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디로 갑니까?”

글쎄, .”

, 참 딱한 아저씨네.”

…….”

취했나?” 운전수가 조수 애를 쳐다보았다.

그런가 봐요.”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운전수는 기어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철호는 까무룩히 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속에서 운전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리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것이었다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철호는 점점 더 졸려 왔다. 다리가 저린 것처럼 머리의 감각이 차츰 없어져 갔다.

가자.”

철호는 또 한 번 귓가에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푹 모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차가 네거리에 다다랐다. 앞에 교통 신호에 발간 불이 켜졌다. 차가 섰다. 또 한 번 조수 애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죠?”

그러나 머리를 푹 앞으로 수그린 철호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따르릉 벨이 울렸다. 긴 자동차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호가 탄 차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행렬에 끼어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철호의 입에서 흘러내린 선지피가 흥건히 그의 와이셔츠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채 교통 신호대의 파란 불 밑으로 차는 네거리를 지나갔다.

 

 

 

 

[요약] 오발탄 - 이범선

 

 

줄거리

 

극심한 생활고로 아픈 이를 빼지도 못하고 나일론 양말을 사면 오래 신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값싼 목 양말을 살 수밖에 없는 계리사 사무실의 서기 송철호는 양심을 지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믿는다. 점심을 굶어서 허기진 배를 안고서도 도시락 주머니가 없어 홀가분하다고 위안을 삼으며 해방촌 고개를 넘어 엉성한 집으로 찾아온다. 삼팔선을 넘어 그리운 고향을 찾아서 '가자! 가자!'라고 헛소리를 외쳐대는 미친 어머니의 쉰 목소리를 들으면서 송철호는 방으로 기어든다. 간단한 저녁을 끝내고 답답한 집을 나와 수많은 등불들을 바라보면서 기구한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삼촌이 사줬다는 빨간 신발을 곱게 받쳐 들고 잠든 딸아이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만삭의 아내 얼굴에서 모처럼 가느다란 웃음을 본다. 고학으로 고생고생 다니던 대학 3학년을 결국 중퇴하고 군에 입대하여 상이 군인이 되어 돌아온 동생 영호가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고 양담배만 피우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그런데 동생은, 양심이니 성실이니 하는 것은 약한 자가 공연히 자신의 약함을 합리화시키려고 고집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도 이제 도덕이나 규범, 법 같은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잘 살아 보자고 대든다.

모두가 잠자리에 들어 고요해진 순간 '가자! 가자!' 하는 어머니의 헛소리가 울리고, 잠이 깬 명숙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벅차 오르는 서글픈 눈물을 참지 못하고 쏟아버린다. 잠에서 깬 딸아이는 빨간 신발을 보고 머리맡에 신주모시듯 곱게 놓고서 다시 잠이 든다.

다음날도 점심을 넘기고 허기진 배를 보리차로 채우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동생 영호가 권총 강도로 붙잡혔다는 것이다. 기어코 일을 벌린 동생을 면회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동생 명숙이는 아내가 병원으로 실려갔다면서 100환짜리 한 뭉치를 준다. 허겁지겁 병원에 왔으나 아내는 이미 죽은 뒤였다.

그는 정신없이 뛰쳐나와 치과에서 이를 몽땅 빼내 버리고 배고픔을 느끼자 식당으로 가서 설렁탕을 시켜 먹고 택시를 잡아 타고서 집으로, 병원으로, 경찰서로 정신없이 오간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라고 투덜대는 운전 기사의 말도 그는 듣지 못한다.

 

 

등장 인물

 

송철호 : 성실한 소시민이다. 성실하고 근면하나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면도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송영호 : 동생. 제대한지 이 년이 되는 실업자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인물이다. 형 철호와는 달리 기성의 것을 깨부수려는 비도덕성을 지녔다. 그래서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확천금을 꿈꾼다.

 

송명숙 : 여동생. 양공주로 전락한 인물이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나 소극적이다.

 

어머니 : 고향 상실과 전쟁의 상처 등으로 인해 실성한다. 전후의 비극을 가장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이다

 

 

 

 

.구성

 

발단 : 열심히 일해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계리사 송철호는 삶에 울분을 떠 트린다.

전개 : 정신 이상자인 어머니, 실업자인 남 동생, 양공주가 된 여동생 사이에서 송철호는 절망감을 느낀다.

위기 : 송철호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남 동생 영호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의 차이를 놓고 대립한다.

절정 : 동생 영호가 강도 짓을 하다 잡혔다는 연락이 오고, 집에서는 아내가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전한다.

결말 : 아내의 죽음을 확인한 송철호는 고집스럽게 양쪽 어금니를 다 뽑고 택시를 잡아타지만 행선지를 대지 못하고, 삶의 방향마저 상실한 자신의 모습이 오발탄임을 느낀다

 

 

 

 

 

갈래 : 단편소설, 전후 소설

문체 : 간결체

성격 : 사실적

제재 : 힘들게 살아가는 철호 가족들의 생활

주제 :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상혼을 고발하고 자유와 평화에 대한 의지와 동경

배경 : 시간적으로는 6·25 직후 사회적 빈곤과 실향민들의 아픔이 절정이던 시기이며, 공간적으로는 서울의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해방촌.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상의 특징

 

자극적이고 감동적인 이범선 자신의 독특한 설법의 효과

당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묘사

전쟁 이후 한국 사회가 겪고 있던 참다운 시련(허무주의라 일컬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사회 부정에 대한 반감을 가장 직설적인 방법으로 표상시킴.

가중되는 생활의 압력에 의한 자포자기적 상태의 소시민 누구나 겪고 있던 사회 부정에 대한 반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였다.

 

 

 

 

제목 <오발탄>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잘못 발사된 탄환. 이 작품에서와 같이 성실하게 일하지만 아이의 신불 하나 마음대로 못 사주는 가장,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꿈을 잃고 가난에 시달리던 끝에 죽어 가는 그의 아내, 생존을 위하여 강도 행각을 벌이는 동생, 양공주로 전락해 버린 여동생-- 이들은 모두 6·25의 피해자들이다. 오발탄이야말로 이들 인생에 대한 비유인 것이다.

 

 

 

 

 

어머니의 "가자! 가자!" 외침의 반복이 주는 효과의 장단점

 

전쟁의 와중에 북에서 꽤 큰 지주로 살던 집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와 피난민들의 판잣 집이 모여 있는 해방촌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 철호의 어머니는 벌써 칠 년째 입버릇처럼 고향으로 가자고 주장한다.

사실 어머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든 이념적인 문제로 남북이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어머니에게 있어서의 고향은 자유라든지 민주주의따위의 이념적인 문제보다 소중한 삶의 실체이다. 그리고 고향에 대한 이러한 감정은 비단 이 어머니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이러한 중얼거림은 우리 민족에게 느닷없이 다가온 분단의 충격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6·25때 용산 일대가 폭격으로 인해 생지옥처럼 되어버린 날, 어머니는 실성하고 만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더욱 집요하게 '가자, 가자'를 외치게 된다. 광인의 광기 어린 대사는 극적 상황을 좀더 예리하게 부각시키는 데에는 효과를 발휘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절규를 통해, 우리 민족에게 다가온 분단의 고통을 예리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절규의 지속적인 반복이 분단의 고통에 시달리는 우리 민중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데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분단을 낳게 한 원인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소홀히 만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좀더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즉 이러한 태도는 냉철하고 과학적인 현실 분석의 자세에서 벗어나기 쉽다. 왜 삼팔선이 만들어졌으며, 왜 한국전쟁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분석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좀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인간형을 등장시켜 이 문제를 집요하게 다루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애타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반복되는 절규는 전쟁과 분단 상황이 한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제시하는 데에는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독자를 이러한 측면으로만 몰입하게 만듦으로써 독자들이 새로운 인식의 단계로 나아가는 데에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측면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친동기간인 철호, 영호, 명숙의 삶 비교.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철호는 사무직 노동자이다. 철호는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그의 생활은 사냥을 마친 자들의 왕성한 잔치가 끝난 후에야 그 자리에 가서 남겨진 내장을 핥는 나약한 원시인에 비유되고 있다. 하루 종일 일하지만 식구들의 최소한의 생계도 책임질 수 없는 그는 무능한 가장으로서의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동생이 사다 준 빨간 신발 한 켤레가 아내에게 모처럼 환한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가장의 심사는 오히려 눈물겨울 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소시민이다. 우리는 그의 초라한 생활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전쟁 직후의 극도의 폐허 속에서 살아 남아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철호와 같은 인간형이라는 점에서 그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한 전형이다.

반면 영호와 명숙은 부정적인 인물이다. 생계를 위해 양공주로 나선 명숙과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으로 강도 행각을 벌인 영호는 전후 사회를 절망감을 안고 사는 인물형이다. 그러나 이들의 절망적인 삶의 원인이 전적으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에 있다고 보는 것은 무책임하다. 오히려 바람직한 인간이라면 상황이 어려울 때 성실함을 다해 이를 돌파해 나가는 의지를 보이는 인물일 것이다. 영호와 명숙은 사회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 삶의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인물이다. 물론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을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를 합리화하는 방편으로 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러 이유에서 우리가 영호와 명숙의 그릇된 삶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어린 조타의 신발 하나 제대로 사주지도 못하는 그들의 형편을 이해한다면, 그들의 선택에도 일말의 동정이 간다. 또한 절망적이고 어려운 삶을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설교 뒤에는 도덕적인 위선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

 

 

 

 

 

작품의 한계

 

어떤 평자는 이를 '서민성의 미학' 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곳에 이범선 문학의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이범선 소설의 주인공들은 숙명적인 환경을 아무런 반성 없이 그대로 수락하는 소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것은 그의 소설이 사회 고발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왜 서정적인 목소리를 유지하는가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이범선이 다루고 있는 소시민은 그들의 패배와 좌절을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 밖으로 확산시키지 못하고 자신의 뇌수 속에 그것을 한정시켜 버리고 만다. 그러한 굴욕적인 체험을 스스로가 수락하는 과정 속에서 소시민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사건의 의미

 

양동이에 잉크 묻은 손을 씻다가 잉크 방울이 물에 퍼져 나가는 것을 보고는 피라고 생각한다. 파란 명주실같이 풀려 나는 그 잉크 물을 보고 잉크가 손 끝에 묻은 것이 아니라 생활하다 입은 상처 때문에 내부에서 피가 흘러 엉겼다가 물에 풀리는 것이라는 연상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원시인 같은 한 사나이의 얼굴을 본다. 직접 사냥은 하지 못하고 남들이 먹다 버린 더러운 내장을 얻어 먹는 원시인에 비유한다. 이러한 것은 회계에 관한 검사, 조사, 감정 등을 직업으로 하는 계리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의 것은 없는 주인공의 직업과 비슷하다고 본다.

이 작품 전체적으로 깔린 가자! 가자!라는 어머니의 외침 '가자'라는 외침은 라이트모티프로 기능한다. 라이트모티프란 '작품 전개 중 여러 차례 반복되는 소절'을 뜻하는 음악 용어이다. 특히 이 작품의 중간 중간에 이 외침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증진시킨다.

철호가 마을 뒷산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철호의 관점에서 그 심리상태를 재구성해 보겠다.

: 좀 춥기는 해도 나는 집안보다 이곳이 좋다. 여기에는 풀과 나무,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있다. 그리고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인다. 나는 이곳에 서서 담배 한 대를 태우며 오늘을 잊는다. 나는 잊어야 할 게 너무 많다.

"가자! 가자!"

잊으려 하는데도, 어머니의 그 절규 같은 잠꼬대 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바람 소리,새소리 속에도 예의 그 '가자, 가자' 하는 절규가 끼어 들고 만다. 나는 그것을 잊어야 한다. 집안의 쌀 걱정, 장작 걱정, 동생의 취직 문제. . . .나는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발 밑에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인다. 술 광고 네온사인이 핑그르르 돌고 깜빡 꺼졌다가 또 번뜩 켜지고, 핑그르르 돌고는 깜빡 꺼지곤 한다. 저 아래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나보다는 행복하겠지. 핑그르르 돌다가 꺼지는 저 네온사인 밑에서는 흥겹게 어울려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런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인생들이 있기에 저처럼 밤늦은 시각까지 네온사인은 돌고 있는 것일 테니까.

담배 한 대를 피워 문다. 폐부 깊숙이 연기를 빨아본다. 긴 한숨이 나온다. 마침 바람이 불어와 독한 담배 연기가 눈 속을 파고 든다. 움찔, 눈물이 핑 돈다. 다시 어머니의 절규가 뇌리를 파고든다. 칭얼대는 어린 것, 없는 살림에도 늘 바지런히 움직이는 배부른 아내, 술에 취해 한쪽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영호, 값싼 화장품 냄새와 술 냄새로 찌든 명숙이.

바람이 차다. 나는 동굴과도 같은 그 움막 속으로 이제 돌아가야만 한다.

 

형 철호와 동생 영호의 대립

형과 아우가 서로 가치관의 대립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형을 도덕적이고 소극적 인물로 비록 가난하게 살더라도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동생은 가난하게 사는데 도덕과 양심이 무슨 소용이냐면서 그런 양심따위는 버릴 것을 권한다. 철호를 주동인물, 영호를 반동인물로 본다면 이 부분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이 존재한다.

 

동생 영호가 강도 짓을 하다가 잡힌다. 비록 가난을 조금이나마 이겨 보려고 강도짓을 했으나 양심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잡혀 든 영호. 가난함 때문에 한때 비도덕한 마음을 먹고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잡히고 수감된다.

 

아내가 해산하다 죽는다. 아내의 죽음으로 지금까지 태연하던 철호도 실의에 빠지고 만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으면 깨물던 이빨을 뽑는다. 그리고 나선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한다. 하지만 동생도 수감되고 아내도 죽은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방황한다. 그리고 자신이 조물주의 오발탄임을 느낀다.

 

 

 

 

[해설] 오발탄 - 이범선

 

 

 

<오발탄(誤發彈)>

 

 

 

 

1. 작가 소개 및 작품 경향

이범선(19201982). 호는 학촌(鶴村). 1920년 평안 남도 안주군 신안주면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다가 해방 후 북한에서 토지개혁이 본격화되자 30세 때 월남하였다. 거제도 장승포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으며, 55년에는 서울 대광고등학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해 김동리(金東里)의 추천으?현대문학지에 단편 <암표>(4월호)<일요일>(12월호)이 실림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1957현대문학<학마을 사람들>을 발표하여 많은 문학인의 관심을 끌었고 이어 사상계<사망 보류(死亡保留)>를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새로운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후 그의 대표작이라 불려지는 <오발탄>1959현대문학에 발표하여 61년 제5회 동인 문학상(東仁文學賞)을 탔다. 그 후 오월문예상(五月文藝賞) 장려상을 탄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장편 소설도 많이 발표하였는데 <동트는 하늘 밑에서> . <밤에 핀 해바라기> . <하오(下午)의 무지개> . <구름을 보는 여인> 등 신문 연재 소설을 발표하였다.

작품 경향은, 초기엔 그의 생활 체험이 반영된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었으며, 중기엔 사회 고발 의식이 짙은 리얼리즘의 문학을, 후기엔 인간의 잔잔한 휴머니티가 깔린 내용의 작품을 보여 주고 있다.

이범선의 작품 세계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향토적인 서정주의의 순수한 인간의 정을 감각적이고 시적인 문체로 담고 있는 작품들로, 비교적 초기에 씌어진 <학마을 사람들> , <갈매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한 유형은 현실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1950년대의 사회상을 파헤치고 적절히 묘사함으로써 문제점들을 환기시키고 통렬히 비판, 고발하고 있다. <피해자><오발탄> 등의 작품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은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을 통해 전쟁 후의 암울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후자의 유형은 전후 소설 중에서도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 줌으로써 그를 대표적인 전후 작가로 평가하는 근거가 된다.

초기의 작품인 <이웃> , <학마을 사람들> , <갈매기> 등에는 그의 생활 체험이 반영된 것으로서 어두운 사회의 단면과 무기력한 인간상이 많이 등장한다. 담담한 필치와 서경적 묘사의 수법으로 토착서민의 생태를 표현, 길흉의 미신 또는 무욕(無慾)의 인간상을 다루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 뒤 <피해자> , <오발탄>, <춤추는 선인장> 등에서는 사회고발 의식이 짙은 리얼리즘의 문학으로 전환하여 약자의 생존과 침울한 사회상, 종교의 위선, 남녀의 생태 등을 부각시키는 객관적인 묘사를 보여 주었다. 후기의 작품인 <냉혈 동물> , <삼계일심>에서는 잔잔한 휴머니티가 짙게 깔려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 작품 분석

. 오발탄(誤發彈)의 의미

잘못 발사된 탄환. 이 작품에서와 같이 성실하게 일하지만 아이의 신발 하나 마음대로 못 사주는 가장,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꿈을 잃고 가난에 시달리던 끝에 죽어 가는 그의 아내, 생존을 위하여 강도 행각을 벌이는 동생, 양공주로 전락해 버린 여동생. 이들은 모두 6·25의 피해자들이다. 오발탄이야말로 이들 인 생에 대한 비유인 것이다.

 

. 등장인물

1) 철 호 -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근무하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다가 좌절함. 주변 상황 때문에 자아를 상실하고 좌절하는, 전후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형.

2) 영 호 - 사회적 모순에 반발하여 양심을 내던지고 한탕주의로 살아가려는 인물. 권총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잡힘. 가치관이 전도된 혼란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 양심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함.

3) 어머니 - 전쟁통에 정신이상이 되어 밤낮 고향으로 가자는 말만 외침. 분단의 비극적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대다수 민중과는 상관없는 것임을 암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4) 명 숙 - 양공주로 가족들과 유대를 맺지 않는 자기 폐쇄적인 모습. 전후 여성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보여주는 인물.

5) 아 내 - 명문 여대 음악과 출신이지만 가난 때문에 출산 이상으로 죽음. 전후의 가난한 삶을 보여주는 인물.

 

 

 

. 작품 감상

<오발탄>은 짙은 허무주의를 바탕에 깔고, 전후의 암담한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고발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인 주인공 철호의 가족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어머니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다 미쳐버리며, 동생 영호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원 입대했다가 상이 군인이 되어 돌아와 권총강도를 저지른다. 여동생 명숙은 양공주가 되어 남의 수모를 당하면서도 밤이면 남몰래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울고 몸을 팔아 번 돈을 올케의 병원비로 선뜻 내놓는다. 여대생 시절 꿈 많던 아내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음악도였으나 생활에 찌들어 고통을 당하다가 죽어가며, 어린 딸 아이는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실히 살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던 철호는 결국 택시에 몸을 싣고 방향없이 어디론가 '가자' 고 한다. '가자'라는 말은 작품에서 두 가지 의미로 나타난다.

'가자! 가자!'라는 어머니의 외침은 전체적인 소설의 분위기를 결정짓고 있는 독백어가 되고 있다. 철호는 얼마 되지 않는 박봉의 생활과 정신이상이 된 어머니, 가난으로 인해 지난 날 자신이 미인이었다는 것도, 음악을 했었다는 것도 다 잊어버린 채 남편과 자식에게 매달려 사는 자의식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해져 버린 아내와 철없는 아이, 부조리한 현실에 불만을 품고 끝내는 도둑질을 하게 되는 남동생과 양공주가 되어 버린 여동생. 이들과 함께 살면서 어찌 해 볼 수 없는 현실의 압력 속에 자포자기적인 상태에 빠져 버린다. 그러한 암울한 가족적 배경 속에서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어머니의 '가자! 가자!'라는 외침은 철호에게 현실의 압력을 더욱 강박적으로 느끼게 하는 효과음이 되고 있으며 소설의 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가자'라는 말은 과거의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이 고향은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실향민들의 보편적 삶의 가치가 훼손되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전쟁으로 인해 철호의 가족은 고향을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는데, 현재의 현실의 고난이 심할수록, 행복했고 살 만했던 과거의 고향으로 '가자'는 말이 나오게 한다. 그러나 과거의 행복했던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가자' 라는 외침은 현실의 각박함을 더욱 대조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뿌리 뽑힌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한편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철호는 택시를 타고 아무데로나 '가자'고 말한다. 영호는 권총강도 혐의로 경찰에 잡혀 가고, 임신한 아내는 아기가 잘못되어 병원에 실려 가 결국 사망하는 계속된 불행 속에서 철호는 현실에 대한 대응력을 상실하여 어디로 가긴 가야 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 버린다. 철호의 '가자' 라는 외침은 삶의 방향감각을 상실해 버린 소시민 삶의 비극적인 절망과 좌절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에서 형제인 철호와 영호는 삶에 대한 대응방식이 서로 다르다. 이들 형제의 현실 인식과, 이에 대하여 소설 속에 제시된 전후 현실의 배경과 연관지어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영호는 근근이 대학 삼년을 다니다가 군대 갔다 와서 아직 직업 하나 구하지 못한 채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영호에게 전차 값도 안 되는 월급으로 남의 살림이나 계산해 주는 일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철호의 모습은 답답하게 여겨진다. 철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양심을 지키며 분수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호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윤리고 양심이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 던질 용기가 필요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영호는 어떻게든 게딱지 같은 판잣집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해방촌에서 벗어나 근사한 양옥에 세단차를 몰며 살고 싶은 것이다. 남들은 다 기피하는 군대에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다며 자원하여 입대했던 영호는 부상을 입고 제대해 보니 세상에 발 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세상의 질서에 그대로 따르며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담배'를 통해 이러한 두 인물의 가치관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철호는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에, 영호는 그렇게 살다가는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조차도 충족시킬 수 없는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영호는 양심껏 살면서 잘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옹색한 양심의 울타리 안에서 가난하게 살기보다는 법을 어겨서라도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전후 상황의 피폐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이러한 소시민의 삶을 제시하여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작가는 두 형제의 삶의 방식에 대해 어느 쪽도 편들지 않은 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호는 결국 권총강도 협의로 경찰서에 잡혀 가며 철호는 양심적으로 고지식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아내의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현실뿐이다. 현실의 폭압적인 힘 앞에서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는, 갈 곳 없이 방황하는 택시와 같은 소시민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라면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다운 삶의 질서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켜 살아야 할 것인지를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 비 평

이범선의 <오발탄>은 분명 문학계를 진동시킨 작품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자극적이고 감동적인 그의독특한 설법의 효과 때문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가 겪고 있던 참다운 시련, 그것을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면 <오발탄>은 그러한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제시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중되는 생활의 압력에 의해 자포자기적 상태가 된 소시민 누구나가 겪고 있던 사회 부정에 대한 반감을 가장 직설적인 방법에 의해 표상시켜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오발탄> 이 단지 이범선의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한국 소설사에 하나의 큰 파동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작품 내부적인 면에서도 소시민의 생활과 양심, 민족적 비극인 6.25, 그리고 인간의 생존이라는 것들이 크게 뭉쳐져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벽성을 지닌 <오발탄>에 대하여 김현은 이렇게 말한다.

 

이범선의 특색은 대부분의 평자(評者)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들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는 <오발탄>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짙은 리리시즘을 밑바닥에 깐 회상적(回想的) 취향, 얼마 되지 않는 봉급에 뿌리혹박테리아처럼 다닥다닥 매달린 식구들을 즐겨 보여 주는 그의 소시민에 대한 완강한 집착, 그러면서도 양심이라는 가시를 끝내 빼 버릴 수 없는, 아마도 틀림없이 기독교적 교육의 잠재인 듯한 도덕을, 이런 모든 그의 특성은 <오발탄>에서 희귀할 정도로 완벽한 예술적 환치를 획득하고 있다. 김 현, 사회와 윤리

 

 

 

또 백승철(白承喆)은 이렇게 말한다.

 

<오발탄> 속에는 이범선이 즐겨 그려 온 비극적인 삶의 절망·좌절·통곡·비애·발악이 중하게 집약되어 있는데 작가는 인간에 대한 사회의 압력, 학대의 양과 질이 어느 만큼인가 하는 것을 아주 하드보일드하게 추궁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고발 문학의 자기류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은 <오발탄>에서처럼 사회에 대한 정확한 주제 의식, 상 황 속에서 피흘리는 장본인들에 대한 동정 없는 응시, 그리고 그러한 조건 속에서 벌어지는 행동 반경을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발탄해설

 

 

 

이 두 가지 견해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범선의 <오발탄>이 지닌 허무주의적 색채와 고발 문학적 성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먼저 <오발탄>의 서두를 통해서 접근하여 보기로 한다.

 

계리사 사무실 서기 송철호(宋哲浩)는 여섯 시가 넘도록 사무실 한구석 자기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슨 미진한 사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부는 벌써 집어치운 지 오래고 그야말로 멍청하니 그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딴 친구들은 눈으로 시계 바늘을 밀어 올리다시피 다섯 시를 기다려 후딱 나가 버렸다. 그런데 점심도 못 먹은 철호는 허기가 나서만이 아니라 갈 데도 없었다.

 

이 서두에서 보듯이 송철호는 착실하고 양심적인 계리사 서기다. 그러나 그에게는 6.25의 역사적 상처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북에서 넘어와 이 암담한 생활에서 정신 이상을 일으켜 '가자'고 외쳐대는 어머니, 그에게는 진정한 사상적 대립의 현실적 논리를 전개시킬 수 없는 그런 것이 송철호를 누르고 있다. 또한 군대에 가서 상이군인으로 돌아와 몇 년을 빈둥거리는 아우는 그에게 또 다른 압력이 되고 있고, 양공주로 전신한 누이동생은 그에게 도덕적·윤리적 추락의 함정을 낳게 하고 있다.

또 지난날 자기가 음악을 했었다는 것도, 미인이었다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남편과 어린 딸에만 매 달려 있는 만삭의 아내는 그에게 또 다른 인간적 고뇌의 샘이 되고 있다. 이러한 그를 둘러싼 인간군들이 보내는 무한한 현실적 압력을 헤쳐 나가야 하는 착실하고 양심적인 송철호의 설정은 작가의 현실에 대한 격렬한 항변의 양식이다.

이 작품은 전후의 궁핍상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잘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철호, 고향으로 '가자'는 소리만 되뇌이는 어머니, 아이를 낳다 죽은 아내, 상이 군인이 되어 돌아와 권총 강도를 하다가 수감되는 영호,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양공주가 된 명숙, 이들 철호 일가는 모두 궁핍과 분단된 현실 때문에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한다. 이러한 가족의 비극적인 삶은 결국 철호의 정신을 혼란으로 몰아 넣으며 방향 감각을 잃은 오발탄과 같은 존재로 만들고 만다. 이렇게 일가의 비극을 통해서 전후 상황의 부적응성과 혼란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 이 작품의 일차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참뜻은 전후의 비참하고 불행한 면을 제시했다는 점보다는, 그처럼 비참하고 불행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양심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발견해야 한다.

철호 일가의 궁핍한 삶의 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양심과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빈곤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패이다. 둘째는 남북 분단과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굴레가 삶의 터전을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고 양심이라는 '가시'를 빼어 버리지 못한 채 가족들의 비극적인 삶을 바라보게 되는 송철호를 통해서, 전후 현실에서 양심을 가진 인간의 나아갈 바를 묻고 있다.

 

 

 

<참 고>

전후 문학 :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을 투시하고 전후의 황량한 인심과 그 비참한 생활을 부각하여 삶의 의미를 조명하는 문학.(구인환.戰後 한국문학의 地形圖)

1950년부터 약 삼 년 간 우리 민족 전체를 고통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었던 6·25 전쟁은 민족 상잔의 비극이었다. 전쟁의 참혹함은 인명을 앗아가고 국토를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고 문화와 정신 세계에도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그러한 자취는 전후문학에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후 문학의 특징은 우선 전쟁의 고통과 피난, 실향의 문제 등 전쟁체험을 그리면서도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초토화된 삶의 터전이 복구되고 전쟁의 충격과 사회적 혼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남에 따라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전후 세대의 작가들이 등장하여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전개하는데, 장용학·손창섭·이범선·오상원·김성한·선우휘·송병수·하근찬·오영수·전광용 등이 그들이다.

 

 

 

작가가 살던 시대의 사회·역사적 배경

이범선은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 역시 8·15 광복 이후에 남한으로 월남한 실향민의 한사람이었다. 그 당시 실향민이란 8.15 해방 직후 38선으로 인한 남북 분단 상황에서 월남한 사람들과 6·25 전쟁 중 남으로 피난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서 그는 이러한 전쟁을 겪으면서 작품들을 썼다. 이는 작품에서도 보여 주듯이 작가 자신이 실향민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참고문헌>

조건상, 2001, 이범선의 <오발탄>과 전후문학적 성격, 반교어문학회지, 13,

하정일, 1999, 전후소설의 성격과 이범선 문학,한국문학연구21,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채경선, 1984, <오발탄>에 나타난 작가의식 연구-인물 유형 분석을 통한,수련어문논집 11

박동규, 1984, 전후시대의 핵, 한국현대문학전집 17, 삼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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