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4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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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4 5

직녀에게 -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쳐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

문학/현대운문 2021.03.04

견우의 노래 -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해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로 북을 놀리게. 눈썹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 서정주, '견우의 노래' *오롯한 : 부족함 없이 완벽하다 *홀몸 : 1. 배우자나 형제가 없는 사람. 단신(單身). 독신(獨身). 척신(隻身). 2. 홑몸 *홑몸 : 1. 딸린 사람이 없는 몸. 2. 임신..

문학/현대운문 2021.03.04

사령(死靈) - 김수영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김수영 '사령' *사령(死靈) : 죽은 영혼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율격 : 내재율 • 성격 : 비판적. 주지적 • 어조..

문학/현대운문 2021.03.04

오랑캐꽃 - 이용악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이용악, '오랑캐꽃' *오랑캐 :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두만강 일대에 살던 여진족(女眞族)을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 멸시하..

문학/현대운문 2021.03.04

삭주 구성(朔州龜城) - 김소월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 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 리 삭주 구성(朔州龜城)은 산(山)을 넘은 육천 리요 물 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 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반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텐고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 김소월, '삭주 구성' * 삭주 구성 : 평안 북도에 있는 군청 소재지( 여기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을 의미)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민요시 • 성격 : 민요적,..

문학/현대운문 202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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