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전문

주요섭 '사랑손님과 어머니' 전문 및 해석

열공햐 2024. 5. 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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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손님과 어머니

 

주요섭



  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박옥희이고요. 우리 집 식구라고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어머니와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아차, 큰일났군, 외삼촌을 빼놓을 뻔했으니…….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 외삼촌은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는지, 집에는 끼니 때 외에는 별로 붙어 있지 않아, 어떤 때는 한 주일씩 가도 외삼촌 코빼기도 못 보는 때가 많으니까요. 깜박 잊어버리기도 예사지요, 무얼.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년 나이 스물네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이 날더러 ‘과부 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은 아버지가 없지요. 아버지가 없다고 아마 ‘과부 딸’이라나 봐요.

외할머니 말씀을 들으면, 우리 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대요. 우리 어머니하고 결혼한 지는 일 년 만이고요. 우리 아버지의 본집은 어디 멀리 있는데, 마침 이 동리 학교에 교사로 오게 되었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우리 어머니는 시집으로 가지 않고 여기 이 집을 사고--바로 이 집은 우리 외할머니 댁 옆집이지요.--여기서 살다가 일 년이 못 되어 갑자기 돌아가셨대요. 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니까, 나는 아버지 얼굴도 못 뵈었지요.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버지 생각은 안 나요. 아버지 사진이라는 사진은 나두 한두 번 보았지요. 참으로 훌륭한 얼굴이야요.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참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잘난 아버지일 거야요. 그런 아버지를 보지도 못한 것은 참으로 분한 일이야요. 그 사진도 본 지가 퍽 오래 되었는데, 이전에는 그 사진을 늘 어머니 책상 위에 놓아 두시더니, 외할머니가 오시면 오실 때마다 그 사진을 치우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그 사진이 어디 있는지 없어졌어요. 언젠가 한번 어머니가 나 없는 동안에 몰래 장롱 속에서 무엇을 꺼내 보시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얼른 장롱 속에 감추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게 아마 아버지 사진인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먹고 살 것을 남겨 놓고 가셨대요. 작년 여름에, 아니로군, 가을이 다 되어서군요. 하루는 어머니를 따라서 여기서 한 십 리나 가서 조그만 산이 있는 데를 가서 거기서 밤도 따 먹고, 또 그 산 밑에 초가집에 가서 닭고깃국을 먹고 왔는데, 거기 있는 땅이 우리 땅이래요. 거기서 나는 추수로 밥이나 굶지 않게 된다고요. 그래도 반찬 사고 과자 사고 할 돈은 없대요. 그래서 어머니가 다른 사람의 바느질을 맡아서 해주지요. 바느질을 해서 돈을 벌어서, 그걸로 청어도 사고 달걀도 사고 내가 먹을 사탕도 사고 한다고요.

그리고 우리 집 정말 식구는 어머니와 나와 단 둘뿐인데, 아버님이 계시던 사랑방이 비어 있으니까 그 방도 쓸 겸, 또 어머니의 잔심부름도 좀 해줄 겸 해서 우리 외삼촌이 사랑방에 와 있게 되었대요.

금년 봄에는 나를 유치원에 보내 준다고 해서, 나는 너무나 좋아서 동무아이들한테 실컷 자랑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노라니까, 사랑에서 큰외삼촌이--우리 집 사랑에 와 있는 외삼촌의 형님 말이야요.--웬 한 낯선 사람 하나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큰외삼촌이 나를 보더니,

“옥희야.”

하고 부르겠지요.

“옥희야, 이리 온. 와서 아저씨께 인사드려라.”

나는 어째 부끄러워서 비실비실하니까 그 낯선 손님이,

“아, 그 애기 참 곱다. 자네 조카딸인가?”

하고 큰외삼촌더러 묻겠지요. 그러니까 큰외삼촌은,

“응, 내 누이의 딸……. 경선 군의 유복녀 외딸일세.”

하고 대답합니다.

“옥희야, 이리 온, 응! 그 눈은 꼭 아버지를 닮았네그려.”

하고 낯선 사람이 말합니다.

“자, 옥희야, 커단 처녀가 왜 저 모양이야. 어서 와서 이 아저씨께 인사드려라. 너의 아버지의 옛날 친구신데, 오늘부터 이 사랑에 계실 텐데 인사 여쭙고 친해 두어야지.”

나는 이 낯선 손님이 사랑방에 계시게 된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즐거워졌습니다. 그래서 그 아저씨 앞에 가서 사붓이 절을 하고는 그만 안마당으로 뛰어들어왔지요. 그 낯선 아저씨와 큰외삼촌은 소리 내서 크게 웃더군요.

나는 안방으로 들어오는 나름으로 어머니를 붙들고,

“엄마, 사랑에 큰외삼촌이 아저씨를 하나 데리고 왔는데에, 그 아저씨가아 이제 사랑에 있는대.”

하고 법석을 하니까,

“응, 그래.”

하고, 어머니는 벌써 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 와 있나?”

하고 물으니까,

“오늘부텀.”

“애구 좋아.”

하고 내가 손뼉을 치니까,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면서,

“왜 이리 수선이야.”

“그럼 작은외삼촌은 어데루 가나?”

“외삼촌도 사랑에 계시지.”

“그럼 둘이 있나?”

“응.”

“한 방에 둘이 있어?”

“왜 장지문 닫구 외삼촌은 아랫방에 계시구, 그 아저씨는 윗방에 계시구, 그러지.”

나는 그 아저씨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몰랐으나, 첫날부터 내게는 퍽 고맙게 굴고, 나도 그 아저씨가 꼭 마음에 들었어요. 어른들이 저희끼리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 그 아저씨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어렸을 적 친구라고요. 어디 먼 데 가서 공부를 하다가 요새 돌아왔는데, 우리 동리 학교 교사로 오게 되었대요. 또, 우리 큰외삼촌과도 동무인데, 이 동리에는 하숙도 별로 깨끗한 곳이 없고 해서 윗사랑으로 와 계시게 되었다고요. 또 우리도 그 아저씨한테 밥값을 받으면 살림에 보탬도 좀 되고 한다고요.

그 아저씨는 그림책들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어요. 내가 사랑방으로 나가면 그 아저씨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보여 줍니다. 또, 가끔 과자도 주고요.


어느 날은 점심을 먹고 이내 살그머니 사랑에 나가 보니까, 아저씨는 그때야 점심을 잡수셔요. 그래 가만히 앉아서 점심 잡숫는 걸 구경하고 있노라니까 아저씨가,

“옥희는 어떤 반찬을 제일 좋아하누?”

하고 묻겠지요. 그래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마침, 상에 놓인 삶은 달걀을 한 알 집어 주면서 나더러 먹으라고 합니다. 나는 그 달걀을 벗겨 먹으면서,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하고 물으니까, 그는 한참이나 빙그레 웃고 있더니,

“나두 삶은 달걀.”

하겠지요. 나는좋아서 손뼉을 짤깍짤깍 치고,

“아, 나와 같네. 그럼, 가서 어머니한테 알려야지.”

하면서 일어서니까, 아저씨가 꼭 붙들면서,

“그러지 말어.”

그러시겠지요. 그래도, 나는 한번 맘을 먹은 다음엔 꼭 그대로 하고야 마는 성미지요. 그래서 안마당으로 뛰어들어가면서,

“엄마, 엄마, 사랑 아저씨두 나처럼 삶은 달걀을 제일 좋아한대.”

하고, 소리를 질렀지요.

“떠들지 말어.”

하고, 어머니는 눈을 흘기십니다.

그러나 사랑 아저씨가 달걀을 좋아하는 것이 내게는 썩 좋게 되었어요. 그것은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달걀을 많이씩 사게 되었으니까요. 달걀 장수 노파가 오면, 한꺼번에 열 알도 사고 스무 알도 사고, 그래선 두고두고 삶아서 아저씨 상에도 놓고, 또 으레 나도 한 알씩 주고 그래요. 그뿐만 아니라 아저씨한테 놀러 나가면, 가끔 아저씨가 책상 서랍 속에서 달걀을 한두 알 꺼내서 먹으라고 주지요. 그래, 그 담부터는 나는 아주 실컷 달걀을 많이 먹었어요.

나는 아저씨가 매우 좋았어요마는, 외삼촌은 가끔 툴툴하는 때가 있었어요. 아마 아저씨가 마음에 안 드나 봐요. 아니, 그것보다도 아저씨 잔심부름을 꼭 외삼촌이 하게 되니까, 그것이 싫어서 그러나 봐요. 한번은 어머니와 외삼촌이 말다툼하는 것까지 내가 들었어요. 어머니가,

“야, 또 어데 나가지 말구 사랑에 있다가 선생님 들어오시거든 상 내가야지.”

하고 말씀하시니까, 외삼촌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제길, 남 어디 좀 볼일이 있는 날은 으레 끼니 때에 안 들어오고 늦어지니…….”

하고 툴툴하겠지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그러니 어짜갔니? 너밖에 사랑 출입할 사람이 어디 있니?”

“누님이 좀 상 들구 나가구려. 요새 세상에 내외합니까!”

어머니가 갑자기 얼굴이 발개지시고, 아무 대답도 없이 그냥 외삼촌에게 향하여 눈을 흘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외삼촌은 흥흥 웃으면서 사랑으로 나갔지요.

나는 유치원에 가서 창가도 배우고 댄스도 배우고 하였습니다. 유치원 여자 선생님이 풍금을 아주 썩 잘 타요. 그런데, 우리 유치원에 있는 풍금은 예배당에 있는 풍금과는 아주 다른데, 퍽 조그마한 것이지마는 소리는 썩 좋아요. 그런데 우리 집 윗간에도 유치원 풍금과 똑같이 생긴 것이 놓여 있는 것이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그래, 그 날 나는 집으로 오는 길로 어머니를 끌고 윗간으로 가서,

“엄마, 이거 풍금 아니우?”

하고 물으니까,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렇단다, 그건 어찌 알았니?”

“우리 유치원에 있는 풍금이 이것과 똑같은데 무얼. 그럼, 엄마두 풍금 탈 줄 아우?”

하고,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때껏 한 번도 어머니가 풍금 앞에 앉은 것을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십니다.

“엄마, 이 풍금 좀 타 봐!”

하고 재촉하니까, 어머니 얼굴은 약간 흐려지면서,

“그 풍금은 너의 아버지가 날 사다 주신 거란다. 너의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그 풍금은 이 때까지 뚜껑두 한번 안 열어 보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니까 금방 또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아 보여서 나는 그만,

“엄마, 나 사탕 주어.”

하면서 아랫방으로 끌고 내려왔습니다.

아저씨가 사랑에 와 계신 지 벌써 여러 밤을 잔 뒤입니다. 아마 한 달이나 되었지요. 나는 거의 매일 아저씨 방에 놀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나더러 그렇게 가서 귀찮게 굴면 못쓴다고 가끔 꾸지람을 하시지만, 정말이지 나는 조금도 아저씨를 귀찮게 굴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저씨가 나를 귀찮게 굴었지요.

“옥희 눈이 아버지를 닮았다. 고 고운 코는 아마 어머니를 닮았지, 고 입하고! 응, 그러냐, 안 그러냐? 어머니도 옥희처럼 곱지, 응?”

이렇게 여러 가지로 물을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 새 우리 엄마 못 봤수?”

하고 물었더니, 아저씨는 잠잠합니다. 그래 나는,

“우리 엄마 보러 들어갈까?”

하면서 아저씨 소매를 잡아당겼더니, 아저씨는 펄쩍 뛰면서,

“아니, 아니, 안 돼. 난 지금 분주해.”

하면서 나를 잡아끌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는 무어 그리 분주하지도 않은 모양이었어요. 그러기에 나더러 가란 말도 않고 그냥 나를 붙들고 앉아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뺨에 입도 맞추고 하면서,

“요 저고리 누가 해주지? ……밤에 엄마하구 한 자리에서 자니?”

하는 등 쓸데없는 말을 자꾸만 물었지요.

그러나 웬일인지 나를 그렇게도 귀여워해 주던 아저씨도 아랫방에 외삼촌이 들어오면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지요.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나를 껴안지도 않고 점잖게 앉아서 그림책이나 보여 주고 그러지요. 아마 아저씨가 우리 외삼촌을 무서워하나 봐요.

하여튼 어머니는 나더러 너무 아저씨를 귀찮게 한다고, 어떤 때는 저녁 먹고 나서 나를 방 안에 가두어 두고 못 나가게 하는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바느질에 정신이 팔려서 골몰하고 있을 때 몰래 가만히 일어나서 나오지요. 그런 때에는 어머니가 내가 문 여는 소리를 듣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려서 쫓아와 나를 붙들지요. 그러나 그런 때는 어머니는 골을 아니 내시고,

“이리 온, 이리 와서 머리 빗고…….”

하고, 끌어다가 머리를 다시 곱게 땋아 주시지요.

“머리를 곱게 땋고 가야지. 그렇게 되는 대루 하구 가문 아저씨가 숭 보시지 않니?”

하시면서 또 어떤 때에는 머리를 다 땋아 주시고는,

“응, 저고리가 이게 무어야?”

하시면서, 새 저고리를 내어 주시는 때도 있습니다.

어떤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아저씨는 나더러 뒷동산에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가자고 그러니까 아저씨가,

“들어가서 어머니께 허락받고 온.”

하십니다. 참 그렇습니다. 나는 뛰어들어가서 어머니께 허락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다시 세수시켜 주고 머리도 다시 땋고, 그리고 나서는 나를 아스러지도록 한 번 몹시 껴안았다가 놓아 주었습니다.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응.”

하고 어머니는 크게 소리치셨습니다. 아마 사랑 아저씨도 그 소리를 들었을 거야요.

뒷동산에 올라가서는 정거장을 한참 내려다보았으나, 기차는 안 지나갔습니다. 나는 풀잎을 쭉쭉 뽑아 보기도 하고 땅에 누운 아저씨의 다리를 꼬집어 보기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한참 후에 아저씨와 손목을 잡고 내려오는데 유치원 동무들을 만났습니다.

“옥희가 아빠하구 어디 갔다 온다, 응.”

하고, 한 동무가 말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 때 나는 얼마나, 이 아저씨가 정말 우리 아버지였더라면 하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정말로 한 번만이라도,

“아빠!”

하고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그렇게 아저씨하고 손목을 잡고 골목을 지나오는 것이 어찌도 재미가 좋았는지요.

나는 대문까지 와서,

“난 아저씨가 우리 아빠래문 좋겠다.”

하고 불쑥 말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나를 몹시 흔들면서,

“그런 소리하문 못써.”

하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가 몹시도 떨렸습니다. 나는 아저씨가 몹시 성이 난 것처럼 보여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어디까지 갔던?”

하고 나와 안으며 묻는데, 나는 대답도 못 하고 그만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놀라서,

“옥희야, 왜 그러니?”

하고 자꾸만 물었으나,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어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예배당에를 가려고 차리고 나서,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잠깐 사랑에를 나가 보았습니다. ‘아저씨가 아직두 성이 났나?’ 하고 가만히 방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책상에 앉아서 무엇을 쓰고 있던 아저씨가 내다보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 웃음을 보고 나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아저씨가 지금은 성이 풀린 것이 확실하니까요. 아저씨는 나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훑어보더니,

“옥희 오늘 어디 가노? 저렇게 곱게 채리구.”

하고 물었습니다.

“엄마하고 예배당에 가.”

“예배당에?”

하고 나서, 아저씨는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다보더니,

“어느 예배당에?”

하고 물었습니다.

“요 앞에 예배당에 가지, 뭐.”

“응? 요 앞이라니?”

이 때 안에서,

“옥희야.”

하고 부드럽게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얼른 안으로 뛰어들어오면서 돌아다보니까, 아저씨는 또 얼굴이 빨갛게 성이 났겠지요. 내 원, 참으로 무슨 일로 요새는 아저씨가 그렇게 성을 잘 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예배당에 가서 찬미하고 기도하다가 기도하는 중간에 갑자기 나는 ‘혹시 아저씨두 예배당에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나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남자석을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 바로 거기에 아저씨가 와 앉아 있겠지요. 그런데 아저씨는 어른이면서도 눈 감고 기도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처럼 눈을 번히 뜨고 여기저기 두리번두리번 바라봅니다. 나는 얼른 아저씨를 알아보았는데 아저씨는 나를 못 알아보았는지, 내가 빙그레 웃어 보여도 웃지도 않고 멀거니 보고만 있겠지요. 그래, 나는 손을 흔들었지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말더군요. 그 때, 어머니가 내가 팔 흔드는 것을 깨닫고 두 손으로 나를 붙들고 끌어당기더군요. 나는 어머니 귀에다 입을 대고,

“저기 아저씨두 왔어.”

하고 속삭이니까, 어머니는 흠칫하면서 내 입을 손으로 막고 막 잡아 끌어다가 옆에 앉히고 고개를 누르더군요. 보니까 어머니도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더군요.

그 날 예배는 아주 젬병이었지요. 웬일인지, 예배가 다 끝날 때까지 어머니는 성이 나서 강대만 향하여 앞으로 바라보고 앉았고, 이전 모양으로 가끔 나를 내려다보고 웃는 일이 없었어요. 그리고 아저씨를 보려고 남자석을 바라다보아도 아저씨도 한 번도 바라다보아 주지도 않고 성이 나서 앉아 있고, 어머니도 나를 보지도 않고 공연히 꽉꽉 잡아당기지요. 왜 모두들 그리 성이 났는지……. 나는 그만 으악 하고 한번 울고 싶었어요. 그러나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앉아 있어서 울고 싶은 것을 아주 억지로 참았습니다.


내가 유치원에 입학한 후, 처음 얼마 동안은 유치원에 갈 때나 올 때나 외삼촌이 바래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밤을 자고 난 뒤에는 나 혼자서도 넉넉히 다니게 되었어요. 그러나 언제나 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때이면 어머니가 옆대문--우리 집에는 대문이 사랑 대문과 옆 대문 둘이 있어서 어머니는 늘 이 옆 대문으로만 출입하시는 것이었습니다.--밖에 기다리고 섰다가 내가 달음질쳐 가면, 안고 집안으로 들어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쩐 일인지 어머니가 대문 가에 보이지를 않겠지요.

어떻게도 화가 나던지요. 물론 머릿속으로는 ‘아마 외할머니 댁에 가셨나 부다.’ 하고 생각했지마는, 하여튼 내가 돌아왔는데 문간에서 기다리지 않고 집을 떠났다는 것이 몹시 나쁘게 생각되더군요. 그래서 속으로 ‘오늘 엄마를 좀 골려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 대문 밖에서,

“아이고, 애가 원 벌써 왔나?”

하고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그 순간 나는 얼른 신을 벗어 들고 안방으로 뛰어들어가서 벽장문을 열고, 그 속에 들어가서 숨어 버렸습니다.

“옥희야, 옥희 너, 여태 안 왔니?”

하는 어머니 목소리가 바로 뜰에서 나더니,

“여태 안 왔군.”

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재미가 나서 혼자 흐흥흐흥 웃었습니다.

한참을 있더니 집에는 온통 야단이 났습니다. 어머니 목소리도 들리고, 외할머니 목소리도 들리고, 외삼촌 목소리도 들리고…….

“글쎄 하루 종일 집이라군 안 떠났다가 옥희 유치원 파하구 오문, 멕일 과자가 없기에 어머님 댁에 잠깐 갔다왔는데, 고 동안에 이런 변이 생긴걸…….”

하는 것은 어머니 목소리.

“글쎄, 유치원에서 벌써 이십 분 전에 떠났다는데 원 중간에서…….”

하는 것은 외할머니 목소리.

“하여튼 내 나가서 돌아댕겨 볼웨다. 원 고것이 어델 갔담?”

하는 것은 외삼촌의 목소리.

이윽고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가늘게 들렸습니다. 외할머니는 무어라고 중얼중얼 이야기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이젠 그만하고 나갈까?’ 하고도 생각했으나, ‘지난 주일날 예배당에서 성냈던 앙갚음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나서 나는 그냥 벽장 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벽장 안은 답답하고 더웠습니다. 그래서, 이윽고 부지중에 나는 슬며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 동안이나 잤는지요? 이윽고 잠을 깨어 보니까 아까 내가 벽장 안으로 들어왔던 것을 잊어버리고, 참 이상스러운 데에 내가 누워 있거든요. 어두컴컴하고 좁고 덥고……. 나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나서 엉엉 울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갑자기 어디 가까운 데서 어머니의 외마디 소리가 나더니 벽장문이 벌컥 열리고 어머니가 달려들어서 나를 안아 내렸습니다.

“요 망할 것아.”

하면서, 어머니가 내 엉덩이를 댓 번 때렸습니다. 나는 더욱더 소리를 내서 울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어머니도 따라 울었습니다.

“옥희야, 옥희야, 응, 인제 괜찮다. 엄마 여기 있지 않니, 응. 울지 마라, 옥희야.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다. 옥희 하나만 바라구 산다. 난 너 하나문 그뿐이야. 세상 다 일이 없다. 옥희만 있으면 엄마는 산다. 옥희야 응, 울지 말라 응, 울지 마라.”


이렇게 어머니는 나더러 자꾸 울지 말라고 하면서도 어머니는 그치지 않고 자꾸자꾸 울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원 고것이 도깨비가 들렸단 말인가, 벽장 속에 왜 숨는담.”

하고 앉아 있고, 외삼촌은,

“에, 재수 메유다.”

하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튿날 유치원을 파하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갑자기 어제 벽장 속에 숨었다가 어머니를 몹시 울게 했던 생각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기가 어째 부끄러워졌습니다. ‘오늘은 어머니를 좀 기쁘게 해 드려야 할 텐데……. 무엇을 갖다 드리면 기뻐할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문득 유치원 안의 선생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꽃병 생각이 났습니다. 그 꽃은 개나리도 아니고, 진달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꽃은 나도 잘 알고, 또 그런 꽃은 벌써 피었다가 져 버린 후였습니다. 무슨 서양꽃이려니 하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어머니가 꽃을 사랑하는 줄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 꽃을 갖다가 드리면 어머니가 몹시 기뻐하려니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 유치원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잠깐 어디를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 나는 그 꽃을 두어 개 얼른 빼들고 달음질쳐 나왔지요.

집에 오니 어머니는 문간에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안고 들어갔습니다.

“그 꽃은 어디서 났니? 퍽 곱구나.”

하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걸 엄마 드릴라구 유치원서 가져왔어.’ 하고 말하기가 어째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잠깐 망설이다가,

“응, 이 꽃! 저, 사랑 아저씨가 엄마 갖다 주라고 줘.”

하고 불쑥 말했습니다. 그런 거짓말이 어디서 그렇게 툭 튀어나왔는지 나도 모르지요.

꽃을 들고 냄새를 맡고 있던 어머니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엇에 몹시 놀란 사람처럼 화닥닥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금시에 어머니 얼굴이 그 꽃보다 더 빨갛게 되었습니다. 그 꽃을 든 어머니 손가락이 파르르 떠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무서운 것을 생각하는 듯이 방 안을 휘 한 번 둘러보시더니,

“옥희야, 그런 걸 받아 오문 안 돼.”

하고 말하는 목소리는 몹시 떨렸습니다. 나는 꽃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어머니가, 이 꽃을 받고 그처럼 성을 낼 줄은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도 성을 내는 것을 보니까, 그 꽃을 내가 가져왔다고 그러지 않고, 아저씨가 주더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 참 잘 되었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성을 내는 까닭을 나는 모르지만, 하여튼 성을 낼 바에는 내게 내는 것보다 아저씨에게 내는 것이 내게는 나았기 때문입니다. 한참 있더니 어머니는 나를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옥희야, 너 이 꽃 얘기 아무보구두 하지 말아라, 응.”

하고 타일러 주었습니다. 나는,

“응.”

하고 대답하면서 고개를 여러 번 까닥까닥했습니다.

어머니가 그 꽃을 곧 내버릴 줄로 나는 생각했습니다마는, 내버리지 않고 꽃병에 꽂아서 풍금 위에 놓아 두었습니다. 아마 퍽 여러 밤 자도록 그 꽃은 거기 놓여 있어서 마지막에는 시들었습니다. 꽃이 다 시들자 어머니는 가위로 그 대를 잘라내 버리고, 꽃만은 찬송가 갈피에 곱게 끼워 두었습니다.

내가 어머니께 꽃을 갖다 주던 날 밤에, 나는 또 사랑에 놀러 나가서 아저씨 무릎에 앉아서 그림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저씨 몸이

흠칫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귀를 기울입니다. 나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풍금 소리! 그 풍금 소리는 분명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풍금을 타나 부다.”

하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안으로 뛰어왔습니다. 안방에는 불을 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음력으로 보름께나 되어서 달이 낮같이 밝은데 은빛 같은 흰 달빛이 방 한 절반 가득히 차 있었습니다. 나는 그 흰옷을 입은 어머니가 풍금 앞에 앉아서 고요히 풍금을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나이 지금 여섯 살밖에 안 되었지마는, 하여튼 어머니가 풍금을 타시는 것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유치원 선생님보다도 풍금을 더 잘 타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머니 곁으로 갔습니다마는, 어머니는 내가 곁에 온 것도 깨닫지 못하는지 그냥 까딱 아니하고 앉아서 풍금을 탔습니다. 조금 있더니 어머니는 풍금 곡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도 나는 이 때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참으로 우리 유치원 선생님보다도 목소리가 훨씬 더 곱고, 또 노래도 훨씬 더 잘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어머니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는 마치도 은실을 타고 별나라에서 내려오는 노래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얼마 오래지 않아 목소리는 약간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늘게 떨리는 노랫소리, 그에 따라 풍금의 가는 소리도 바르르 떠는 듯했습니다. 노랫소리는 차차 가늘어지더니 마지막에는 사르르 없어져 버렸습니다. 풍금 소리도 사르르 없어졌습니다. 어머니는 고요히 일어나시더니 옆에 섰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 다음 순간, 어머니는 나를 안고 마루로 나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꼭꼭 껴안는 것이었습니다. 달빛을 함빡 받은 내 어머니 얼굴은 몹시도 새하얗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천사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새하얀 두 뺨 위로는 쉴 새 없이 두 줄기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니 나도 갑자기 울고 싶어졌습니다.

“어머니, 왜 울어?”

하고 나도 훌쩍거리면서 물었습니다.

“옥희야.”

“응?”

한참 동안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옥희야, 난 너 하나문 그뿐이다.”

“엄마.”

어머니는 다시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하루는 밤에 아저씨 방에서 놀다가 졸려서 안방으로 들어오려고 일어서니까 아저씨가 하아얀 봉투를 서랍에서 꺼내어 내게 주었습니다.

“옥희, 이거 갖다가 엄마 드리고 지나간 달 밥값이라구, 응?”

나는 그 봉투를 갖다가 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 봉투를 받아 들자 갑자기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그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았을 때보다도 더 새하얗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봉투를 들고 어쩔 줄을 모르는 듯이 초조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거 지나간 달 밥값이래.”

하고 말을 하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잠자다 깨나는 사람처럼 “응.” 하고 놀라더니, 또 금시에 백지장같이 새하얗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습니다. 봉투 속으로 들어갔던 어머니의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이 지전을 몇 장 끌고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입술에 약간 웃음을 띠면서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어머니는 무엇에 놀랐는지 흠칫하더니, 금시에 얼굴이 새하얘지고 입술이 바르르 떨렸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바라다보니 거기에는 지전 몇 장 외에 네모로 접은 하얀 종이가 한 장 잡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결심을 한 듯이 입술을 악물고, 그 종이를 차근차근 펴 들고 그 안에 쓰인 글을 읽었습니다. 나는 그 안에 무슨 글이 씌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으나, 어머니는 그 글을 읽으면서 금시에 얼굴이 파랬다 발갰다 하고, 그 종이를 든 손은 이제는 바들바들이 아니라 와들와들 떨리어서 그 종이가 부석부석 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한참 후에 어머니는 그 종이를 아까 모양으로 네모지게 접어서 돈과 함께 봉투에 도로 넣어 반짇고리에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아서 전등만 쳐다보는데 어머니 가슴이 불룩불룩합니다. 나는 혹시 어머니가 병이나 나지 않았나 하고 염려가 되어서 얼른 가서 무릎에 안기면서,

“엄마 잘까?”

하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내 뺨에 입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입술이 어쩌면 그리도 뜨거운지요. 마치 불에 달군 돌이 볼에 와 닿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자고 나서 잠이 채 깨지는 않았으나, 어렴풋한 정신으로 옆을 쓸어 보니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가끔 가다가 나는 그런 버릇이 있어요. 어렴풋한 정신으로 옆을 쓸면 어머니의 보드라운 살이 만져지지요. 그러면 다시 나는 잠이 들어 버리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그래서 잠은 다 달아나고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돌려 살펴보았습니다. 방 안에는 불은 안 켰지만 어슴푸레하게 밝습니다. 뜰로 하나 가득한 달빛이 방 안에까지 희미한 밝음을 던져 주는 것이었습니다. 윗목을 보니 우리 아버지의 옷을 넣어 두고, 가끔 어머니가 꺼내서 쓸어 보시는 그 장롱문이 열려 있고, 그 아래 방바닥에는 흰옷이 한 무더기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장롱을 반쯤 기대고 자리옷만 입은 어머니가 주춤하고 앉아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눈을 감고 무엇이라고 입술로 소곤소곤 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마 기도를 하나 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어가서 어머니 무릎을 뻐개고 기어 들어갔습니다.

“엄마, 무얼 해?”

어머니는 소곤거리기를 그치고 눈을 떠서 나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들여다보십니다.

“옥희야.”

“응?”

“가서 자자.”

“엄마두 같이 자.”

“응, 그래 엄마도 같이 자.”

그 목소리가 어째 싸늘하다고 내게 생각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옷들을 한 가지씩 들고는 가만히 손바닥으로 쓸어 보고는 장롱 안에 넣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장롱에 넣곤 하여, 그 옷을 넣은 다음, 장롱문을 닫고 쇠를 채우고, 그리고 나서 나를 안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우리 기도하고 자?”

하고, 나는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밤마다 재워 줄 때마다 반드시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할 줄 아는 기도는 주기도문뿐이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도 모르지만 어머니를 따라서 자꾸자꾸 해 보아서 지금에는 나도 주기도문을 잘 외웁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젯밤 잘 때에는 어머니가 기도할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잤던 것이 지금 생각이 났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어젯밤 자리에 들 때 내가,

“기도할까?”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어머니가 너무도 슬픈 빛을 띠고 있어서 그만 나도 가만히 아무 소리 없이 잠이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응, 기도하자.”

하고 어머니가 고요히 기도했습니다.

“엄마가 기도해.”

하고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기도하는 보드라운 음성이 듣고 싶어져서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어머니는 고요히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처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시험에 들지 말게…… 시험에 들지 말게…….”

이렇게 어머니는 자꾸 되풀이하였습니다. 나도 지금은 막히지 않고 줄줄 외는 주기도문을 글쎄 어머니가 막히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시험에 들지 말게…….”

하고 자꾸만 되풀이하는 것을 나는 참다 못해서,

“엄마, 내 마저 할게.”

하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하고 내가 끝을 마쳤습니다. 어머니는 한참이나 가만 있다가 오랜 후에야 겨우,

“아멘.”

하고 속살거렸습니다.

요새 와서 어머니의 하는 일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어떤 때는 어머니도 퍽 유쾌하셨습니다. 밤에 때로는 풍금을 타고, 또 때로는 찬송가도 부르고, 그러실 때에는 나도 너무도 좋아서 가만히 어머니 옆에 앉아서 듣습니다. 그러나 가끔가끔 그 독창은 소리 없는 울음으로 끝을 맺는 때가 많은데, 그런 때면 나도 따라서 울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를 안고 내 얼굴에 돌아가면서 무수히 입을 맞추어 주면서,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야, 응, 그렇지…….”

하시면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요일날, 그렇지요. 그것은 유치원 방학하고 난 그 이튿날이었습니다. 그 날 어머니는 갑자기 머리가 아프시다고 예배당에를 그만두었습니다. 사랑에서는 아저씨도 어디 나가고, 외삼촌도 어디 나가고, 집에는 어머니와 나와 단 둘이 있었는데,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옥희야, 너 아빠가 보고 싶니?”

하고 물으십니다.

“응, 우리두 아빠 하나 있으문.”

하고, 나는 혀를 까불고 어리광을 좀 부려 가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한참 동안을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고 천장만 바라다보시더니,

“옥희야, 옥희 아버지는 옥희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돌아가셨단다. 옥희두 아빠가 없는 건 아니지. 그저 일찍 돌아가셨지.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는 아직 철이 없어서 모르지만 세상이 욕을 한단다. 사람들이 욕을 해.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해. 옥희 아버지는 죽었는데, 옥희는 아버지가 또 하나 생겼대. 참 망측두 하지,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한단다. 그리 되문 옥희는 언제나 손가락질 받구, 옥희는 커두 시집두 훌륭한 데 못 가구.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에 그까짓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

이렇게 어머니는 혼잣말 하시듯 드문드문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옥희야.”

하고 또 부르십니다.

“응?”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내 곁을 안 떠나지.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엄마하구 같이 살지. 옥희는 엄마가 늙어서 꼬부랑 할미가 되어두, 그래두 옥희는 엄마하구 같이 살지. 옥희가 유치원 졸업하구, 또 소학교 졸업하구, 또 중학교 졸업하구, 또 대학교 졸업하구, 옥희가 조선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돼두, 그래두 옥희는 엄마하구 같이 살지, 응! 옥희는 엄마를 얼만큼 사랑하나?”

“이만큼.”

하고 나는 두 팔을 짝 벌리어 보였습니다.

“응? 얼만큼? 응! 그만큼! 언제나, 언제나 옥희는 엄마만 사랑하지, 그리구 공부두 잘하구, 그리고 훌륭한 사람이 되구.”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또 울까 봐 겁이 나서,

“엄마, 이만큼, 이만큼.”

하면서 두 팔을 짝짝 벌리었습니다.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습니다.

“응, 그래, 옥희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야. 세상 다른 건 다 소용없어. 우리 옥희 하나문 그만이야. 그렇지, 옥희야.”

“응!”

어머니는 나를 당기어서 꼭 껴안고 내 가슴이 막혀 들어올 때까지 자꾸만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 날 밤, 저녁밥 먹고 나니까 어머니는 나를 불러 앉히고 머리를 새로 빗겨 주었습니다. 댕기를 새 댕기로 드려 주고, 바지, 저고리, 치마, 모두 새것을 꺼내 입혀 주었습니다.

“엄마, 어디 가?”

하고 물으니까,

“아니.”

하고 웃음을 띠면서 대답합니다. 그러더니, 풍금 옆에서 내리어 새로 다린 하얀 손수건을 내리어 내 손에 쥐어 주면서,

“이 손수건, 저 사랑 아저씨 손수건인데, 이것 아저씨 갖다 드리구 와, 응. 오래 있지 말구 손수건만 갖다 드리구 이내 와, 응.”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수건을 들고 사랑으로 나가면서 나는 접어진 손수건 속에 무슨 발각발각하는 종이가 들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마는, 그것을 펴 보지 않고 그냥 갖다가 아저씨에게 주었습니다.

아저씨는 방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손수건을 받는데, 웬일인지 아저씨는 이전처럼 나보고 빙그레 웃지도 않고 얼굴이 몹시 파래졌습니다. 그리고는,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면서 말 한 마디 아니하고 그 손수건을 받더군요.

나는 어째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저씨 방에 들어가 앉지도 못하고, 그냥 되돌아서 안방으로 도로 왔지요. 어머니는 풍금 앞에 앉아서 무엇을 그리 생각하는지 가만히 있더군요. 나는 풍금 옆으로 가서 가만히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어머니는 조용조용히 풍금을 타십니다. 무슨 곡조인지는 몰라도 어째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야요.

밤이 늦도록 어머니는 풍금을 타셨습니다. 그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를 계속하고 또 계속하면서…….

여러 밤을 자고 난 어떤 날 오후에 나는 오래간만에 아저씨 방엘 나가 보았더니, 아저씨가 짐을 싸느라고 분주하겠지요. 내가 아저씨에게 손수건을 갖다 드린 다음부터는 웬일인지 아저씨가 나를 보아도 언제나 퍽 슬픈 사람, 무슨 근심이 있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만 보고 있어서, 나도 그리 자주 놀러 오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짐을 꾸리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습니다.

“아저씨, 어데 가우?”

“응, 멀리루 간다.”

“언제?”

“오늘 기차 타구!”

“응, 기차 타구……. 갔다가 언제 또 오우?”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없이 서랍에서 예쁜 인형을 하나 꺼내서 내게 주었습니다.

“옥희, 이것 가져, 응. 옥희는 아저씨 가구 나문 아저씨 이내 잊어버리구 말겠지!”

나는 갑자기 슬퍼졌습니다.

“아니.”

하고 얼른 대답하고, 인형을 안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엄마, 이것 봐, 아저씨가 이것 나 줬다우. 아저씨가 오늘 기차 타구 먼 데루 간대.”

하고 내가 말했으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십니다.

“엄마, 아저씨 왜 가우?”

“학교 방학했으니깐 가지.”

“어디루 가우?”

“아저씨 집으루 가지 어디루 가.”

“갔다가 또 오우?”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십니다.

“난 아저씨 가는 거 나쁘다.”

하고 입을 쫑긋했으나, 어머니는 그 말에 대답 않고,

“옥희야, 벽장에 가서 달걀 몇 알 남았나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깡충깡충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달걀은 여섯 알이 있었습니다.

“여스 알.”

하고 나는 소리쳤습니다.

“응, 다 가지고 이리 나오너라.”

어머니는 그 달걀 여섯 알을 다 삶았습니다. 그 삶은 달걀 여섯 알을 손수건에 싸 놓고, 또 반지에 소금을 조금 싸서 한 귀퉁이에 넣었습니다.

“옥희야, 너 이것 갖다 아저씨 드리고, 가시다가 찻간에서 잡수시랜다구, 응.”

그 날 오후에 아저씨가 떠나간 다음, 방에서 아저씨가 준 인형을 업고 자장자장 잠을 재우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들어오시더니,

“옥희야, 우리 뒷동산에 바람이나 쐬러 올라갈까?”

하십니다.

“응, 가, 가.”

하면서 나는 좋아 덤비었습니다. 잠깐 다녀올 터이니 집을 보고 있으라고 외삼촌에게 이르고, 어머니는 내 손목을 잡고 나섰습니다.

“엄마, 나 저, 아저씨가 준 인형 가지고 가?”

“그러렴.”

나는 인형을 안고 어머니 손목을 잡고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뒷동산에 올라가면 정거장이 빤히 내려다보입니다.

“엄마, 저 정거장 봐, 기차는 없군.”

어머니가 아무 말씀도 없이 가만히 서 계십니다. 사르르 바람이 와서 어머니 모시 치맛자락을 산들산들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산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어머니는 다른 때보다도 더 한층 이쁘게 보였습니다.

저편 산모퉁이에서 기차가 나타났습니다.

“아, 저기 기차가 온다.”

하고 나는 좋아서 소리쳤습니다. 기차는 정거장에 잠시 머물더니, 금시에 뻑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움직였습니다.

“기차 떠난다.”

하면서 나는 손뼉을 쳤습니다. 기차가 저편 산모퉁이 뒤로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그 굴뚝에서 나는 연기가 하늘 위로 모두 흩어져 없어질 때까지, 어머니는 가만히 서서 그것을 바라다보았습니다.

뒷동산에서 내려오자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이 때까지 뚜껑을 늘 열어 두었던 풍금 뚜껑을 닫으십니다. 그리고는, 거기 쇠를 채우고 그 위에다가 이전 모양으로 반짇고리를 얹어 놓으십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는 찬송가를 맥없이 들고 뒤적뒤적하시더니, 빼빼 마른 꽃송이를 그 갈피에서 집어 내시고,

“옥희야, 이것 내다 버려라.”

하고 그 마른 꽃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 꽃은 내가 유치원에서 갖다가 어머니께 드렸던 그 꽃입니다. 그러자, 옆 대문이 삐걱하더니,

“달걀 사소.”

하고, 매일 오는 달걀 장수 노파가 달걀 광주리를 이고 들어왔습니다.

“인젠 우리 달걀 안 사요. 달걀 먹는 이가 없어요.”

하시는 어머니 소리는 맥이 한푼어치 없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이 말씀에 놀라서 떼를 좀 써 보려 했으나, 석양에 빤히 비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때 그 용기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저씨가 주신 인형 귀에다가 내 입을 갖다 대고 가만히 속삭이었습니다.

“얘, 우리 엄마가 거짓부리 썩 잘하누나. 내가 달걀 좋아하는 줄을 알문서 생 먹을 사람이 없대누나. 떼를 좀 쓰고 싶다만, 저 우리 엄마 얼굴을 좀 봐라. 어쩌문 저리두 새파래졌을까? 아마 어데가 아픈가 부다.”

라고요.

 

 

 

반응형

 

줄거리

 

   『홀로 된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우리 집'에 생전에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아저씨가 하숙을 하게 된다. 아저씨는 이 동리 학교 선생님으로 온 것이다.

   아버지가 쓰던 사랑에 기거하게 된 아저씨는 '나'와 금방 친해진다. 아버지 없는 '나'로서는 아저씨가 아버지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어느 날, 아저씨에게 불쑥 그 말을 꺼냈더니 아저씨는 까닭 없이 얼굴을 붉히며 '못쓴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몹시 떨리었다. 또,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유치원에서 살짝 뽑아 온 꽃을 아저씨가 갖다 주라고 하였다며 어머니에게 주었을 때 어머니도 얼굴이 빨개진다.

   어느 날 밤, 어머니는 달빛 속에서 아버지의 옷을 장롱 속에서 꺼내 보고 있었다. 아저씨나 어머니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으나 모두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듯하다. 어머니가 종이가 든 아저씨 손수건을 '나'를 통하여 전한 며칠 뒤 아저씨는 예쁜 인형을 '나'에게 주고 영영 집을 떠나 버린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뒷동산으로 올라가 아저씨가 탔을 기차를 멀리 바라본다. 요즈음 어머니가 가끔 치시던 풍금 뚜껑은 다시 닫히고 찬송가 책갈피에 끼워 있던 마른 꽃송이도 버려진다. 매일 사던 달걀도 이젠 사지 않게 되었다.』

 

 

주요섭(朱耀燮, 1902년 11월 24일 ~ 1972년 11월 14일)

주요섭(朱耀燮, 1902년 11월 24일 ~ 1972년 11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소설가, 시인, 영문학자로 아호는 여심(餘心)·여심생(餘心生), 본관은 신안(新安)이다. 한국문학번역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생애
장로교 목사의 아들
그의 형은 주요한(朱耀翰)이며 동생은 주영섭(朱永涉)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내천면 신양리 외가에서 개신교 목사 주공삼(朱孔三, 아명 주진우(朱珍雨), 1875년~ ?)의 4남 4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평안남도 강동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평안남도 평양 본가에서 성장하였다. 장로교 목사의 아들인 그는 당연히 종교에 대한 이해가 깊었으므로, 인력거꾼, 사랑 손님과 어머니, 첫사랑 값에서 종교를 민중과 여성을 비참한 삶, 사회의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특히 인력거꾼에서는 비참한 삶을 사는 인력거꾼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고,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간다면서 현실의 고통을 위로할 뿐인(인민의 아편)개신교의 문제를 비판한다.

신경향파 문학
그는 형 주요한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상하이 후장 대학교를 마친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 취득하였다. 중국 유학 경험은 《첫사랑 값》, 《인력거꾼》. 《살인》등 영국 조계에서 영국 관헌들의 폭력으로써 억압을 받으며, 파업과 파학, 파상으로써 즉 노동거부, 학교거부, 상업거부로써 저항하는 중국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의 삶, 중국 여학생을 사랑하지만 중국과 조선은 전통이 다르니 마음속으로 갈등하는 청년, 조선에서 팔려와 성을 착취당하던 여성이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자 자신을 착취하는 노파를 죽이고 자유를 찾는 이야기 등, 현실을 아무런 꾸밈없이 쓴 신경향파 소설의 소재이다.

대표작으로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 《아네모네의 마담》, 《개밥》, 《살인》 등이 있고, 문학과 지성사에서 한국문학전집 주요섭 중단편선 《사랑손님과 어머니 외》로 펴내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 《사랑손님과 어머니 등》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주요섭 작가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영향으로 통속소설 작가로만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개밥, 살인 등 가난한 사람들, 천대받는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소재로 글을 쓴 신경향파 작가이며, 《사랑손님과 어머니》도 남편 경선과 사별한 옥희 엄마가 남편 친구와 사랑에 빠지지만 옥희를 "옥희가 대학교에서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되어도", "사람들이" "화냥년의 딸"이라고 욕할 것을 염려해서 사랑을 포기한, 여성의 사랑을 억압하는 사회를 5살 여자 어린이인 옥희의 눈으로써 비판한 단편소설이다. 실제 HDTV TV문학관에서는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이해하고 죽은 아들의 친구인 영호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여성의 사랑을 억압하는 사회 때문에 포기하는 옥희 엄마의 갈등에 집중하고 있다.

1984년 주요섭의 이름을 딴 '주요섭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제1회 수상자는 구인환 서울대 교수이고[1], 1985년 제2회 수상자는 최진우 중앙대 교수이다.

 

 

핵심정리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애정 소설, 예술 소설, 심리소설, 본격소설, 현대 소설

  문체 : 경어체, 구어체, 섬세한 여성적 문체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여섯 살 아이의 시선을 통해 통속적인 어른들의 사랑을 순수하게 바라보게 한다.)

  구성 : 순행적 구성(평면적 구성)

  표현 : 인간 심리의 사실적 묘사

  성격 : 서정적, 심리적, 사실적, 인간주의적, 사실주의적, 낭만적

  배경 : 시간 - 1930년대, 공간 - 시골 읍내 어느 작은 마을

  경향 : 서정적

  주제 :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 애정과 봉건적 윤리관 사이의 갈등

  출전 : 월간지 [조광(朝光)](1935. 11월호)

 

  구성

-  발단 : 어머니와 '나'가 살고 있는 집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인 아저씨가 하숙을 든다.

-  전개 : '나'는 아저씨와 친해지고, 맛있는 반찬과 달걀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다.

-  위기 : 아저씨는 어머니에게 관심을 갖지만 어머니는 내외한다.

-  절정 : '나'의 거짓말로 아저씨가 준 꽃으로 알고있는 어머니는 동요한다.

-  결말 : 아쉬움과 미련을 남긴채 아저씨는 떠나고, 어머니는 마른 꽃을 '나'에게 주며 갖다 버리라고 한다.

 

• 특징

1) 손님과 어머니의 미묘한 애정 심리를 여섯 살 순진한 어린이의 눈과 입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2) 인물 성격의 간접 묘사 :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행동, 대사)을 통해 간접적으로 성격,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3) 특별한 사건 없이 미묘한 감정의 흐름에 따라 연정을 서술하고 있다.

4) 현실과 규범 사이의 갈등을 객관적으로 묘사하였다.

5) 주동 인물(손님, 어머니)만 등장하고 있다.

6) 인물 간의 심리가 섬세하게 그려졌다.

7) 아이가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는 구화(口話) 형식을 취하고 있다.

8) 섬세한 여성적 문체의 경어체를 사용하였다.

9) 작중화자의 주관적 관찰과 등장인물의 객관적 외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0) 전통적 봉건 윤리 의식과 애정 심리가 빚는 갈등을 잘 묘사하였다.

 

 

 

등장인물

 

나(박옥희) : 여섯 살 소녀로 관찰자이자 서술자. 어머니와 아저씨와의 애정을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머니 : 24세 과부. 자상하고 현숙하고 다정다감하며 인내심이 강하다, 아저씨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 옥희에 대한 사랑, 당대(當代) 봉건적 인습의 굴레와 세인의 이목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일부종신(一夫終身)하는 전형적인 한국 여인. 

사랑손님(아저씨) : 옥희 아버지의 옛 친구이자 교사. 옥희네 사랑방에 하숙한다. 옥희 어머니에게 연정을 갖지만 다소 소극적이며 온건한 성격으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집을 떠나게 된다.

외삼촌 : 부수적 인물. 활달하고 솔직하며 누나(옥희 어머니)와 달리 진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1930년대의 변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소재의 상징적 의미 

달걀

작품 속 달걀은 등장인물의 감정적 관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나처럼 아저씨도 삶을 달걀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아저씨에게 강한 호감을 느낀다. 어머니 역시 아저씨가 삶을 달걀을 좋아한다는 말에 달걀을 많이 사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저씨가 떠나면서 달걀을 더 이상 사지 않는다. 달걀은 어머니의 아저씨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소재이다.

 

풍금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하지만 절정에서는 아저씨에 대한 연정과 갈등을 드러내기도 한다.

 

손수건

손수건은 눈물을 닦는 용도로 이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해와 감상

  주요섭의 단편 소설로 1935년 [조광(朝光)]지에 발표. 여섯 살 난 어린아이의 독백을 통해 과부인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과의 미묘한 애정심리를 서술하고 있다. 초기의 신경향파 문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연주의적인 세계에 접근한 첫 번째 작품으로서 예술적인 향취가 풍긴다. 단순히 사랑과 좌절을 그렸다는 것뿐만 아니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연정(戀情)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특히, 사랑의 좌절이 윤리적인 모럴에서 오는 갈등을 다룬 이 작품은 예술의 본원적인 영역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여섯 살 난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과부인 젊은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과의 미묘한 애정 심리가 전달된 1인칭 관찰자 시점이 성공적으로 사용된 작품으로, 시점이 소설의 다른 요소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문학적 장치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와 아저씨 사이의 연정과 갈등을 표현한 장면들은 통속적인 어른의 사랑을 어린아이의 맑고 깨끗한 눈으로 순수하게 그려낸다.

 

  천진난만한 '나'의 행동과 시선은 두 어른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어른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어렴풋한 그리움과 망설임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화자가 어린 여자애이기 때문에 서술과 묘사가 표면적이고 즉물적(卽物的)인 선에 머물기도 하지만 이런 불충분함이 소설의 예술성을 극대화한다. 

 

  작품의 기법은 '분명히 드러내기'보다는 '의미의 감추기'가 핵심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머니와 사랑손님의 감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장면에서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한다든지, 지연(遲延) 효과를 노린다든지 하는 것들은 해당 장면이 암시하는 의미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는 고도의 예술적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특이한 효과는 어른들의 감정 세계를 이해할 수 없어 오히려 편견 없는 순진한 시선으로 견문한 대로 표현해서 독자에게 진실성이 진하게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 드러난 객관적 사실이나 모습만 전달되므로 독자는 가능한 다양한 상상을 하면서 즐거움을 맛보는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네 단계로 나누어지는 작자의 작품 경향 중 2기에 속하며, 전통 윤리에 좌절되는 젊은 과부 어머니의 사랑을 작중화자인 딸 옥희의 눈을 통하여 그리고 있다. 제1기의 갈등으로 인한 파괴적 충동이 빚는 물리적 폭력과 대조되는 소극적인 순응의 자세로 봉건 질서에 억압된 욕망의 치열함을 잘 부각시켰다.

 

  이후의 「극진한 사랑」(1948)이나 「열줌의 흙」(1967)의 여인상과 대비해보아도 순종과 억압의 폐쇄 사회에서 저항과 자유의 개방 사회로 가는 과도기적 인간상이 ‘어머니’와 ‘사랑손님’임을 알 수 있다. 일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그려진 심리 변화나 행동에 대한 정적인 묘사가 이 작품을 수작으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하였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1935년 11월『조광(朝光)』 창간호에 발표되었고, 1948년수선사(首善社)가 간행한 단편집 『사랑손님과 어머니』에 수록되었다. 성인의 연정을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서정성 짙은 가작이라고 평가되어온 이 작품은 가장 널리 알려진 주요섭의 대표작이다.

 

문학과 지성사

 

주요섭, 한국 근대소설사의 빈 곳을 메우다!
소외된 통속 작가가 아닌 한국 근대소설사의 중대한 결락부로 재조명

탁월한 현실 재현 능력을 선보이며
탄력적으로 소설 미학을 실험한 주요섭의 중단편 10편

 

 

한국 근대소설사에서 가장 잘못 이해된 소설가

 

  주요섭은 1920년 『매일신보』를 통해 등단한 뒤 1972년 만 70세의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40여 편의 소설과 시․희곡․동화 등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작품을 썼고 외국 소설도 번역하였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한국 현대문학사의 평가는 대체로 인색한 편이다. 「첫사랑 값」 「사랑손님과 어머니」 「아네모네의 마담」등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긴 했지만 이로 인해 주요섭은 애정소설 작가, 통속 작가로 그릇되게 알려지며 연구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펴내는 <한국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중단편선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여태껏 공석으로 방치되어 있던 주요섭의 자리가 온당한 평가와 함께 채워져야 함을 발의한다. 사랑을 주제로 한 애틋한 심리묘사는 물론이거니와,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투철한 민족정신까지, 이 책은 그간 알려지지 않은 주요섭의 진면목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랑손님 / 사랑방 손님

 

  주요섭의 대표작으로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꼽는 사람이 많다. 좀더 정확하게는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주요섭의 작품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많은 작품 중 하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주요섭 작품의 전부인 양 기억되고 있는 데는 영화와 TV드라마로 대중에게 소개된 이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제목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바뀐 것은 주요섭의 작품 세계가 왜곡된 채 전파된 한 사례라 하겠다. ‘사랑손님’과 ‘사랑방 손님’은 그 어감의 차이가 확연하다. ‘사랑손님’은 사전적 의미로 ‘사랑방에 든 손님’임과 동시에 ‘사랑하는 손님’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와 드라마의 제목처럼 ‘사랑방 손님’이라고 한정을 지어버리면 이러한 세련된 중의성은 사라지고 투박하고 통속적인 이미지만 남는다. 대중적 인지도를 우선시해야 하는 상업적 매체의 한계가 빚은 일임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대목이다.

 

제도와 관습에 짓눌린 ‘사랑’

 

  그렇다고 해서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획득해온 유명세를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요섭이 ‘사랑’을 주요 모티프로 다루었던 작가였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쟁점은 주요섭은 ‘사랑’만 쓴 게 아니며, ‘사랑’을 쓸 때에도 작가적 시각으로 이해한 세계를 그렸다는 점이다. 주요섭에게 ‘사랑’은 일종의 프리즘이었다. 한 줄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색으로 분광되듯, 당시의 사회적 제도와 관습은 「사랑손님과 어머니」 「아네모네의 마담」 「첫사랑 값」 등 일련의 이른바 ‘연애소설’을 통과하며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불온한 속성, 즉 가부장적인 억압과 기만적 위선이나 편견 등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 엄마는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과부의 재가를 금지하는 유교의 악습을 떨치지 못하고, 「아네모네의 마담」이 속한 사회는 ‘기생 오입’은 묵인하면서도 원치 않은 결혼을 한 사람이 궁구하는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은 기혼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생 오입’보다 더 더러운 일로 여기며, 「첫사랑 값」의 ‘나’는 유학 중에 사랑하는 이(‘N’)를 만나지만 상대가 조선인이 아니라는 점이나 조국이 처한 식민지 현실과 그 안에서 자신의 소명 등을 따지며 스스로에게 제약을 가한다. 그것이 ‘나’라는 인물 개인의 심리적 장애에 그치지 않고 세계가 그에게 강요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첫사랑 값」의 대 사회적 항거의 성격마저 엿볼 수 있다. 독자들은 주요섭 소설의 이러한 형식과 내용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읽는다면 ‘연애소설’ 혹은 ‘통속 작가’라는 수식어가 왜 부당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뚜렷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주요섭만의 재현representation 방식

 

  수록작 중 「추운 밤」 「인력거꾼」 「살인」 「개밥」 등은 빈민층의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동시대 선후배 작가의 성과들과 비교하면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일가족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엔 동사한다는 이야기인「추운 밤」에서 주요섭은 선배 작가 전영택이 「화수분」에서 보여준 아이러니하지만 희망적인 결말과는 달리 아이러니하면서도 절망적인 방식을 택한다. 이는 재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주요섭 식의 대답으로 읽을 수 있다. 「인력거꾼」은 제목에서부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데, 인력거꾼들이 몇 푼의 삯을 벌기 위해 감내하고 있는 노동을 비롯한 참담한 실상은 지옥같은 현실을 극사실적으로 보고한다. 「살인」은 가난 때문에 인신매매되다시피 팔려간 여자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데, 여성 인신매매와 매춘이 다반사로 이루어지던 근대 초기의 정황은 김동인의 「감자」를 비롯해 김유정, 나도향 등의 작품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주요섭이 「살인」에서 보여준 것처럼 조선 여성이 상하이로까지 팔려 간 사실에 대한 문학적 보고는 매우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개밥」은 식모가 주인집 개가 먹을 쌀밥과 고깃국을 훔쳐다가 아픈 딸에게 먹이는 내용이다. 개는 사람의 밥을 먹고 사람은 개의 먹이를 먹는다. 그러던 중 먹을 것을 사이에 둔 사람과 개가 서로 물어뜯으며 싸운다. 한국 문학사에서 이처럼 참혹하고 잔인하면서도 절실하고 눈물겨운 장면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료적 가치 높은 미완성작 수록 등 기존 선집과 차별화

 

  책임 편집을 맡은 장영우 교수(동국대)는 이번 선집 작업을 하면서 주요섭은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전기적 사실마저 매우 소홀히 취급되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애석함을 감추지 못했다. 교수는 주요섭의 자필 이력서까지 찾아내는 등 주요섭 발굴에 진력하였고 주요섭 부친의 성명과 같은, 아직 논란 중인 몇몇 사안들을 비교적 신뢰할 만한 자료를 근거로 들어 일단락해놓았다. 또한 미완성 중편 「첫사랑 값」을 선집에 포함한 과감함도 돋보인다. 미완성 작품은 일반독자들에게 혼동을 줄 염려가 있어 선집을 제작하는 출판사들은 수록을 기피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의 주요섭 중단편선은 미완성작이지만 작가가 실제 중국 유학 경험을 토대로 집필한 작품이기에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 다른 대표작들과 함께 수록했다. 이는 ‘주요섭 재발견’이라는 기왕의 기획 의도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주요섭 소설의 대표작으로 보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소설은 주요섭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일 뿐 유일한 대표작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는 상하이와 조선의 빈민 계층의 고단하고 무망(無望)한 삶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탁월한 기량을 보였으며, 북간도에서의 조선인 투쟁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민족의식을 주제로 한 작품도 발표하였다. [……] 그는 다작의 작가도 문제작을 여럿 발표한 작가도 아니지만, 남녀 간의 애정 문제를 주로 다룬 통속 작가로 인식되는 것은 교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는 「인력거꾼」과 「사랑손님과 어머니」 등의 작품에서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객관적 묘사의 한 전범을 보여주었으며, 「북소리 두둥둥」과 「낙랑고분의 비밀」을 통해서는 환상성을 수용함으로써 보다 탄력적인 소설미학을 실험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주요섭은 우리의 길지 않은 현대소설사에서 제외되어도 좋은 통속 작가가 결코 아니며, 하루빨리 그의 문학이 정당한 해석과 평가를 받아 한국 문학사의 결락 부분이 온전히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_장영우, 작품해설 「한국 근대소설사의 결락과 보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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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예스24, 위키백과,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재봉틀의 국어방, 『한국현대소설론』(천이두, 형설출판사, 1969), 「주요섭론(朱耀燮論)」(구인환, 『아네모네의 마담』, 1976), 「여인상 창조에 보인 탁월한 재능」(임헌영, 『사랑손님과 어머니』, 삼중당, 197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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