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먹는 사람들 신경숙 나는 지금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을비는 병원 뜰의 메말라가는 누런 잔디를 싸악, 훑어내리고 있습니다. 가만히 얼굴을 숨기려던 오래된 것들이 저 빗방울에 쓰라리겠습니다. 창문을 슬몃 제껴봅니다. 훅, 밀려드는 찬 공기 속에 섞인 비 냄새가 쏴아, 창 안으로 밀려들어옵니다. 바람에 내 머리칼이 뒤로 휘날려서 갑자기 얼굴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가을이 왔군요, 산천에만 말고 이 병원에도. 어떤 젊은이들은 우산 하나에 두 몸을 숨기고 서로의 손이 우산 속에서 맞닿는 감촉에 볼이 발그레해져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겠지요. 같은 시간, 이 병원 저 위층 창가에서는 오래된 환자가 저 가을비를 내다보며, 생각하겠지요. 내가 내년에도 저 뜰을 내다볼 수 있을까? 저 빗속의 단풍이며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