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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전문 104

장끼전 전문

장끼전 하늘과 땅이 비로소 열릴 때 만물이 번성하니, 그 가운데 귀한 것은 인생이며 천한 것은 짐승이었다. 날짐승도 삼백이고 길짐승도 삼백인데 꿩의 모습을 볼라치면 의관은 오색이오 별호는 화충이다. 산새와 들짐승의 천성으로 사람을 멀리하여 푸른 숲속 시냇가에 휘두러진 소나무를 정자 삼고, 상하로 펼쳐진 밭과 들 가운데 널려 있는 곡식을 주워 먹고 살아간다. 그러나 임자 없이 생긴 몸이라 관포수(官砲手)와 사냥개에게 툭하면 잡혀가서 삼태육경 수령방백 새와 들짐승과 다방골 제갈동지들이 싫도록 장복(長服)하고 좋은 깃 골라내서 사령기(使令旗)에 살대 장식과 전방 먼지털이며 여러 가지에 두루 쓰여지니 그 공적이 적다 하겠는가? 평생을 두고 숨어 있는 자취와 좋은 경치를 보고자 하여, 구름 위로 우뚝 솟아오른 높..

문학/소설전문 2020.09.24

강경애 '지하촌' 전문

지 하 촌 강 경 애 해는 서산 위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다. 칠성이는 오늘도 동냥자루를 비스듬히 어깨에 메고 비틀비틀 이 동리 앞을 지났다 . 밑 뚫어진 밀짚모자를 연신 내려쓰나, 이마는 따갑고 땀방울이 흐르고 먼지가 연기같이 끼어, 그의 코 밑이 매워 견딜 수 없다. “이애 또 온다. ” “어 아.” 동리서 놀던 애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칠성이는 조놈의 자식들 또 만나는구나 하면서 속히 걸었으나, 벌써 애들은 그의 옷자락을 툭툭 잡아당겼다. “이애 울어라 울어.” 한 놈이 칠성이 앞을 막아서고 그 큰 입을 헤벌리고 웃는다. 여러 애들은 죽 돌아섰다. “이애 이애, 네 나이 얼마?” “거게 뭐 얻어 오니? 보자꾸나.” 한 놈이 동냥자루를 툭 잡아채니, 애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칠성이는 우뚝 ..

문학/소설전문 2020.09.24

이인직 '혈(血)의 누(淚)' 전문

소설듣기 이인직 - 이인직 일청전쟁(日淸戰爭)의 총소리는 평양 일경이 떠나가는 듯하더니, 그 총소리가 그치매 사람의 자취는 끊어지고 산과 들에 비린 티끌뿐이라. 평양성의 모란봉에 떨어지는 저녁 볕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저 햇빛을 붙들어매고 싶은 마음에 붙들어매지는 못하고 숨이 턱에 닿은 듯이 갈팡질팡하는 한 부인이 나이 삼십이 될락말락하고, 얼굴은 분을 따고 넣은 듯이 흰 얼굴이나 인정 없이 뜨겁게 내리쪼이는 가을 볕에 얼굴이 익어서 선앵둣빛이 되고, 걸음걸이는 허둥지둥하는데 옷은 흘러내려서 젖가슴이 다 드러나고 치맛자락은 땅에 질질 끌려서 걸음을 걷는 대로 치마가 밟히니, 그 부인은 아무리 급한 걸음걸이를 하더라도 멀리 가지도 못하고 허둥거리기만 한다. 남이 그 모양을 볼 지경이면 저렇게 어여쁜 젊은..

문학/소설전문 2020.09.24

최척전(崔陟傳) 전문 - 조위한

소설 듣기 최척전(崔陟傳) - 조위한 최적의 자는 백승이며 남원 사람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숙과 함께 남원부 서문밖에 있는 만복사의 동쪽에서 외롭게 살고 있었다. 최척은 어려서부터 뜻이 크고 기개가 있었으며, 친구와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사소한 예절에는 구애를 받지 않았다. 이에 그의 아버지가 경계하여 말했다. “네가 배우지 않으면 무뢰한이 될 터인데, 너는 장차 어떤 사람이 되려 하느냐? 하물며 지금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바야흐로 고을마다 무사를 징집하고 있는데, 너는 쓸데없이 활을 쏘거나 말을 타고 놀며 늙은 아비에게 근심만 끼치고 있으니 효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머리를 숙이고 선비를 좇아 과거 공부를 한다면, 비록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는 오르지 못할 지라도 등에 화살을 지고 ..

문학/소설전문 202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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