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다리 위에서 - 이용악

열공햐 2021. 3. 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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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거센 밤이면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
누나는
별 많은 밤이 되려 무섭다고 했다

국숫집 찾아 가는 다리 위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숫집 아이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벌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
아버지의 제삿날만 일을 쉬고
어른처럼 곡을 했다

 

- 이용악, '다리 위에서'

 

*장명등 : 대문 밖이나 처마끝에 달아 두고 밤에 불을 켜는 등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회상적, 고백적
어조 : 그리움의 어조

특징 :

  ① 유년시절과 관련된 단편적인 기억들을 제시함. 

  ②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상을 떠 올리고 있다. 

  ③ 독백적 어조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④ 어린 시절의 삶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형상화 

시상 전개 : 과거 - 현재 - 과거
구성 :
  1연 - 어린 누나의 모습
  2연 - 국숫집으로 가는 다리 위에서 유년 시절을 추억함 
  3연 - 가난했던 유년 시절
주제 : 유년 시절과 누나에 대한 그리움, 남매의 고단한 삶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난 뒤, 가난과 두려움 속에서 힘들게 살았던 화자가 성인이 되어 국숫집으로 향하는 다리 위에서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화자는 국숫집을 찾아가는 다리 위에서 문득 어린 유년 시절과 누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어린 시절의 화자와 누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국숫집의 아이들이었다. 단오도 설도 쉬지 못하고, 아버지의 제삿날에만 일을 쉬고 어른처럼 곡을 했던 화자는 어린 시절의 회상을 통해 힘겨웠던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고 있다. 비록 화자의 어린 시절은 가난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그런 유년 시절에 가족들이 서로 살을 맞대고 함께 살았던 단편적인 기억들을 간결하게 제시하면서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용악 시인의 집안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수대에 걸쳐 밀수와 상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 왔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낯선 타향에서 참담한 최후를 맞이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의 가족에게 두려움과 공포와 같은 내적 상처를 안겨 주었으며,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그는 어릴 적부터 힘든 일을 해야 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간접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바람이 거센 밤이면'고달픈 현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누나의 여린 면모'와 대비된다.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대문 밖이나 처마 끝에 달아 두고 밤에 불을 켜는 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라는 표현에서 키가 작은 어린 화자가 거센 바람 속에서도 밤을 무서워하는 누나를 위해 불을 밝히려는 애잔한 애정이 드러난다.

  힘든 기억 속에서도 '문득 그리워지는'이라는 직접적인 정서 표출을 통해 어린 시절 추억과 누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나타난다. 

  화자는 남들처럼 단오(음력 5월 5일, 그네뛰기·씨름·활쏘기 등의 민속 놀이를 즐김)나 설날에도 놀고 싶었지만,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벌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 아버지의 제삿날만 쉴 수 있었다. 풀벌레와 가을 어린 화자의 곡소리는 더없이 슬프고 안타까운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고단한 삶의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유년 시절, 누나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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