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즐거운 편지 - 황동규

열공햐 2021. 3. 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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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산문시, 서정시

성격 : 서정적, 고백적, 사색적, 연가풍, 낭만적, 주정적, 감각적

어조 : 간절한 고백의 어조

구성

  - : 그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

  - : 기다림으로 바뀌어 버린 사랑

표현 : 반어적 표현이 보임. 순환론적.

특징

  ① 반어적 표현을 통해 사랑의 간절함을 고백.

  ② 사랑의 감정을 자연 현상에 빗댐으로써 주제를 표현함.

제재 : 사랑,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과 기다림

주제 : 기다림을 통한 이별의 정한 극복, 젊은 날 사랑의 안타까움과 즐거움

출전 : 현대문학(1958)

 

 

 

이해와 감상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인 황동규, 자칫 아버지의 명성에 가려질 수 있었던 그의 재능은 뛰어난 시인으로서 빛을 발한다. 위의 시는 황동규가 20살에 쓴 작품이다. 발표가 그때였으니 고교시절에 씌여졌을 가능성도 있다.

 

  2연으로 이루어진 산문시변함없는 기다림의 즐거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위안기쁨을 주는 것이지만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언젠가는 끝나고 말 것이다. 따라서 헤어짐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의 영원히 변치 않는 기다림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 기다림의 정서적 측면에서 전통적인 사랑과 이별의 방식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삽입되어 더욱 유명해진 시이다.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영화 '편지'

 

최진실 '즐거운 편지' 낭송 장면

 

  황동규의 초기시에는 이별 모티프가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흔히 그 이별은 현상적인 차원에서 닿을 수 없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쉽게 말해 죽음의 이별) 현실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위 시에서는 영원한 이별이 아닌 만남을 가정한 기다림의 미학으로 전환함으로써 이별을 부정하며 그럼으로써 영원한 사랑으로 이별을 치환시킨다.

 

  2연의 마지막의 계절적 순환은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 이별은 사랑의 단절이 아니라 기다림이 있기에 영원한 사랑일 수 있다는 점이 이 시의 아름다움이며 강한 울림이다. 또한 1연의 일상적인 사랑이 더욱 감동을 주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시적 화자에게는 의무가 아닌 삶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이며 당위라는 점 때문이다. 막스 밀러의 <독일인의 사랑>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시구이다.

 

막스 밀러 '독일인의 사랑'

  즐거운 편지라는 제목이 반어적으로 들리지만 이별의 아픔이 승화된 시적 화자의 심리를 고려한다면 행복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 시는 황동규의 등단 작품이다. 사랑과 기다림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젊은 날의 사랑과 이별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1연은 시적 화자가 그대를 사랑하는 일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소함이란 의미 없음이라기보다는 언제나 그대를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즉 사소함이란 그대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의 반어적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 시적 화자는 그대를 불러보는 것이다. 그대가 괴로울 때면 언제나 위로의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사랑의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2연에서는 시적 화자의 사랑의 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대에 대한 사랑이 기다림에서 비롯되었음을 진술하고 있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듯 사랑의 결말 또한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다림은 그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가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는 표현에서도 인간의 유한한 삶과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시적 화자가 사랑의 허무를 극복하는 방식인 ‘기다림’은 인간은 유한하다고 하는 실존적 한계를 초월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대를 사랑하는 정도와 비례하는 삶의 태도이기 때문에 치열하고 처절한 사랑의 방식이기도 한 것이다.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하는 일상적 삶의 시간 속에서 시적 화자는 그대를 기다릴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시의 제목 ‘즐거운 편지’는 바로 이 기다림의 아픔과 고통을 아이러닉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퍼붓는 눈의 이미지는 사랑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의 굳은 자세를 보여주는 내면적 풍경인 동시에 순결성을 상징해 주고 있다.

 

 

 

작가 황동규(黃東奎, 1938년 4월 9일 ~ )

  대한민국의 시인, 영문학자이다. 본관은 제안(齊安)이다. 소설가 황순원의 장남이다.


  평안남도 숙천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평안남도 강동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훗날 평안남도 평양에서 잠시 자라다가 1946년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월남하였다. 서울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나왔다. 1958년 《현대문학》에 시 〈10월〉,〈동백나무〉,〈즐거운 편지〉 등을 추천받아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한밤으로〉,〈겨울의 노래〉,〈얼음의 비밀〉 등의 역작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초기 시들은 첫 번째 시집 《어떤 개인 날》에 수록되어 있다. 이어 두 번째 시집 《비가(悲歌)》, 3인 시집 《평균율》을 간행하였고 《사계(四季)》의 동인으로 활약했다. 그 밖의 시집으로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풍장(風葬)》 등이 있다. 1968년 현대문학신인상, 1980년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황동규의 시는 전통적인 한국 서정시의 강한 편향성과 서정성에서 벗어나 1950년대 이후의 현대시사 위에 독자적인 맥락을 형성한 것으로 보이며 독특한 양식적인 특성과 기법으로 인해 현대시의 방법적, 인식적 지평을 확대해 놓았다는 점에서 동시대 비평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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