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 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시낭송 | 감상하기 |
핵심 정리
• 주제 : 이상을 향한 전진의 의욕
• 제재 : 바퀴
• 성격 : 암시적, 상징적, 주지적, 사회비판적
• 표현 : 반복법, 상징법
• 시상의 전개
* 제1연 - 굴리고 싶은 마음
* 제2연 - 정체된 모든 것을 굴리고 싶은 마음
이해와 감상
'바퀴'는 굴러가야 하는 것이 그 소임이다. 만일 바퀴가 굴러가지 않고, 정지되어 있다면 그것은 발전이 아닌 정체와 퇴보의 현상이다. 바퀴가 갖고 있는 이러한 이미지를 이용하여 이상주의를 향한 전진의 의욕을 시화하고 있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1연에서는 어떠한 바퀴든 굴리고 싶어진다는 사람의 자연스런 심리를 열거한다. 바퀴는 둥근 것이기에 굴리고 싶어지고 굴려야 한다는 타당성을 편승시킴으로써 쾌적한 느낌을 주고 있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 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2연에서는 보이는 것, 안 보이는 것을 막론하고 모든 것을 굴리고 싶어진다는 것을 비치고 있는데, 시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이 시는 국가와 사회의 어떤 '정체되어 있는 상태'에 대한 신랄한 시인의 자의식이 기조가 되어 있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에서 보듯이, 시대의식이 표출된 시이면서도 시적인 포괄성을 유지하고 있는 데에 이 시의 장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 조류에 대한 시인 의식이 바퀴라는 한 물체를 통하여 삶의 진실성과 당위성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굴러가야 할 바퀴처럼 삶의 세계도 너무 당연하게 굴러가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황동규는 정치 현실이나 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시인이다. 그런데 그것이 '의미' 쪽보다는 수사적 변형 쪽에서 보다 주관적인 굴절을 보임으로써 시적 긴장을 보인다. 가령 <계엄령 속의 눈>이란 시를 보면, 그 제목에 비하여 시의 내용은 주관적 굴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아 병든 말(言)이다 / 발바닥이 식었다 / 단순한 남자가 되려고 결심한다'는 것은 이 시의 도입부인데, '계엄령'이라고 하는 일반적 연상과는 달리 수사적 분식이 개인의 주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단순한 남자가 되려고 결심한다'만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의 시에서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감대의 이미지에 의하여 이해되는 측면을 지닌다. 평범하면서도 단일한, 우주적 질서 의식이 있고, 삶에 대한 일깨움도 함께 주고 있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이 시의 마지막 끝 구절인데, '나는 바퀴를 굴리고 싶어진다'가 생략되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는 '늦기 전에'의 뜻으로 한번 지나간 것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역사의 엄숙성이 있다. '날으는 길 위로'는 '우주 질서적인 정정당당한 길 위로 나는 바퀴를 굴리고 싶어진다'는 뜻이 되고 있다.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서 여러 가지를 암시해 주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작가 황동규(黃東奎, 1938년 4월 9일 ~ )
대한민국의 시인, 영문학자이다. 본관은 제안(齊安)이다. 소설가 황순원의 장남이다.
평안남도 숙천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평안남도 강동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훗날 평안남도 평양에서 잠시 자라다가 1946년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월남하였다. 서울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나왔다. 1958년 《현대문학》에 시 〈10월〉,〈동백나무〉,〈즐거운 편지〉 등을 추천받아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한밤으로〉,〈겨울의 노래〉,〈얼음의 비밀〉 등의 역작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초기 시들은 첫 번째 시집 《어떤 개인 날》에 수록되어 있다. 이어 두 번째 시집 《비가(悲歌)》, 3인 시집 《평균율》을 간행하였고 《사계(四季)》의 동인으로 활약했다. 그 밖의 시집으로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풍장(風葬)》 등이 있다. 1968년 현대문학신인상, 1980년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황동규의 시는 전통적인 한국 서정시의 강한 편향성과 서정성에서 벗어나 1950년대 이후의 현대시사 위에 독자적인 맥락을 형성한 것으로 보이며 독특한 양식적인 특성과 기법으로 인해 현대시의 방법적, 인식적 지평을 확대해 놓았다는 점에서 동시대 비평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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