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전문

김원일 '어둠의 혼(魂)' 전문

열공햐 2021. 6. 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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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혼()

김원일

 

 

  아버지가 잡혔다는 소문이 온 장터 마을에 좍 깔렸다. 아버지는 어제 수산 장터에서 붙잡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 진영(進永) 지서로 묶여 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밤에 아버지가 총살당할 거라고들 말했다. 지서 뒷마당 웅덩이 옆에 서 있는 느릅나무에 칭칭 묶여 총살당할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선바위산 묘지골로 끌려가서 총살당할 거라고들 떠들었다.

 

  병쾌 아버지를 포함해서 아버지와 같은 짓을 했던 마을 청년들이 이미 일곱 명이나 총살을 당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죽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아버지는 한줌의 연기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게다. 그 사라진 연기를 다시 모을 수 없는 것같이 이제 우리 오누이들은 아버지라고 불러 볼 사람이 없게 된다. 그것이 슬플 뿐, 다른 생각은 안 난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이태 넘어 늘 집에 없었으니깐. 산도둑같이 텁석부리로, 또는 선생처럼 국방복을 입고 문득 나타났다 잽싸게 사라져 버리는 요술장이 아버지. 이제 아버지의 그 요술도 끝이 나고 말았다. 무엇을 위한 요술인지 알 수 없는 요술, 그 요술의 뜻을 내가 미처 깨치기도 전에 아버지가 죽는다는 게 슬플뿐, 사실 나는 지금 그보다 더 큰 괴로움에 떨고 있다. 굶주림이다. 배가 고프다. 지독히 고프다. 그러나 아직 어머니는 안 온다. 보리쌀을 빌리러 나간 지가 벌써 언젠데. 두 시간? 그쯤은 되었을 거다. 그렇다, 내가 영어 숙제를 하고 있을 때 나갔으니 이 집 저 집 너무 많이 빌려다만 먹었는데 누가 또 빌려줄려구.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이모네 집으로 터덜터덜 갔을 거야. 그럼 이모는 틀림없이 어머니한테 욕설을 퍼부을 거야. 그러나 이모는 마음이 착하니 금세 아이구 불쌍타 새끼들이 불쌍타 하며 쌀 한 되쯤, 아니면 보리쌀 두 되쯤은 빌려줄 테지. 그럼 내일까지는 염려없다. 죽을 쒀 먹는다면 모레까지는 걱정없다. 이모네 집에서는 많이도 빌려다 먹었다. 그걸 언제 다 갚을까. 지금은 아무 쓸데도 없는 아버지긴 하지만, 아버지마저 총살을 당하고 만다면 누가 다 갚게 될까. , 나도 이젠 아버지가 없는 아이가 되는구나. 그러데 아버지는 왜 그 짓을 하게 되었는지 몰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고 무서워들 하는 그 짓을 왜 하고 다녔는지 몰라.

 

  몇 해 전, 해방이 되던 날만 해도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다. 쨍쨍 내리쪼이는 햇빛 아래서 목이 터져라고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언제쯤부터인가? 그렇다, 재작년 겨울부터 아버지는 사람의 눈을 피해 숨어서 다니기 시작했었지. 밤을 낮삼아 다니기 시작했었지.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간 나타나고, 나타났다간 사라져 버리곤 했었지.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맡아서 그러고 다녔는지는. 마을 사람들이 아버지를 두고 쑤군쑤군했고, 순사들이 자주 우리집을 들랑거렸지만 재작년 겨울부터 그들은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인지, 누구를 시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쌀 한 톨 생기지 않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산길을 타고 다닌 아버지의 요술을 어쩜 다른 사람은 알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하는 짓은 스스로의 문제라는 듯 나에게는 물론 어머니나 이모부에게조차 알리지를 않았으니깐. 꽃이 왜 피는지, 꽃은 향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듯 이 세상에는 남이 모를 일이 너무 많으니깐.

 

  국민학교 이학년 때던가. 나는 아버지와 산책을 나갔던 적이 있었다. 안개도 자욱한 초여름의 이른 새벽이었다. 이슬에 바짓가랑이를 쫄닥 적신 채 아버지와 나는 들길을 거닐었다.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았고, 잠으로부터 트이기 시작하는 나의 귀는 종달새의 자랑스러운 재잘거림을 듣고 있었다. 아버지는 물기 맑은 풀잎에서 폴짝 뛰어오르는 한 마리의 청개구리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아버지의 손톱 만한 그 놈의 빛 고운 연초록 등판은 윤기가 쪼르르 흘렀고, 얇고 흰 뱃가죽은 놀람 탓인지 연신 팔닥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요 꼬마 놈은 매일 아침 하루도 쉬지 않고 높이뛰기 연습을 한단 말이야. 첫날은 반 뼘을 뛰지만, 이튿날은 한 뼘을 뛰거든. 다음날은 한 뼘 반을 뛰고 그 다음날은 두 뼘을 뛰고 그 다음날은……. 아버지, 그럼 나중에 하늘에 닿겠네요? 아니지, 하늘에 닿아 보려고 뛰지만 결국 하늘에는 닿지 못하지. 왜냐하면 하늘은 끝이 없으니까. 그럼 죽을 때까지 뛰겠네요? 그렇지, 죽는 날까지 매일 뛰지. 참 불쌍한 놈이네요? 아냐, 자기가 뛰고 싶어 뛰니깐. 왜 뛸까요? 그건 아버지도 몰라.

 

  아, 무섭다. 땅거미가 깔린다. 곧 어두워질 것이다. 어둠은 무섭다. 밤이 싫다. 벌써부터 내일 새벽이 기다려진다. 선바위산 뒤에서 해가 솟아오르고 날이 훤해질 때까지 나는 잠을 설칠 것이다. 그래서 날이 밝으면 왜 내가 어릴 적 그런 거짓말을 했냐고 묻기도 전에 아버지는 죽고 없을 것이다. 청개구리 말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안 올까. 지서에 갔을까.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나서 울고 있을까. 아니야. 지서에는 가지 않았을 거야. 어머니는 늘 아버지 험담만 퍼부었으니 지서에 가지는 않았을 거야. 조금 전만 해도 처자식 요렇게 고생만 시키니 죽어도 싸다고 오히려 악담만 퍼붓고는 휭하니 나갔으니 지서에 갔을 리가 없다.

 

  나는 사립문 앞에 쪼그리고 않은 채 다시 하나 둘 하고 세기 시작한다. 옆집 박선생네 검둥이가 지나간다. 힘이 없어 보인다. 언제 보아도 그놈은 여위어 있다. 우리 오누이들처럼 뼈만 앙상히 남았다. 비틀거리는 꼴이 곧 죽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학교에 갔다올 때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가 있다. 그때는 다리에 힘이 쑥 빠지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실 난 조회 시간에도,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몇 번이나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럴 땐, 이제 나도 죽는구나, 작년 여름 물에 빠져 죽은 내 짝 병쾌처럼 나도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 속을 스쳐 가곤 했었다.

 

  배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난다. 참 이상하지, 배가 고프면 그런 소리가 나거든. 정말 못 참겠다. 생각을 하지 말자. 밥 생각일랑 잊어버리자. 오늘도 점심을 굶었지. 찬길이 녀석은 참 좋겠다. 매일 도시락에 쌀밥을 가득 싸오니. 그러나 난 찬길이보다 공부를 잘 하지. 박선생이 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갑해야, 넌 가정 환경만 좋으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하고 말했지. 그러나 난 학교도 오래는 다니지 못할 것야. 이모부가 언제까지나 내 학비를 대어 주지는 못할 테니깐.

 

  ...아흔 아홉, , 벌써 백까지 세었군. 그런데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장터와 연결되는 다리 쪽으로 눈길을 준다. 나무다리는 이제 제 명을 다한 듯 싶다. 다리 바닥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사람이 지나갈 땐 삐거덕 소리를 낸다. 달구지가 지나갈 땐 찌거덕 소리를 낸다. 그 다리 위에 만수 동생이 올챙이처럼 볼록한 배를 드러낸 채 혼자 제기차기를 하고 있다. 녀석네도 우리집만큼이나 가난한데 그래도 오늘 저녁은 알차게 먹은 모양이다. 볼록한 배가 신이 나서 촐랑거린다. 우린 왜 이렇게 못 살까. 어머니 말처럼 모두 아버지 탓일 게다. 아버지가 그 짓을 하고 다녔기 때문일 게다. 갑자기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누나가 울고 있다. 누나와 분선이가 쪽마루에 걸터앉아 있다. 누나는 집이 떠나가란 듯 큰 소리로 운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난다. 허리를 굽혀 쪽마루 쪽으로 걸어간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장독대엔 벌써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뒷편 대추나무는 꼭 귀신 같다. 곱슬한 머리칼을 풀어허뜨린 게 무섬기를 들게 한다. 어두워진 뒤에 보는 대추나무는 언제나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열흘쯤 전이던가. 그때도 그랬다. 밤 열시쯤 되어서 내가 막 잠이 들려는 때였다. 담을 뛰어넘어 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순사 두 명이 방안으로 왈칵 들어왔다. 신을 신은 채였다. 순사들은 소스라쳐 일어난 어머니의 가슴에 총뿌리를 들이대며 소리쳤다. 배용범이 어디로 갔어? 이 방에 있는 걸 봤는데 금새 어디로 갔어? 이년아, 네 서방을 어디다 숨겼냐 이거야! 순사는 어머니의 멱살을 틀어잡기까지 하며 악을 썼다. 한 순사는 어머니의 허리를 모질게 걷어찼다. 이어 호각 소리가 집 주위 여기저기에서 요란스럽게 들렸다. 많은 순사들이 집안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으나 끝내 아버지를 붙잡지는 못했다. 그날 밤 사실 아버지는 집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순사들은 애꿎은 어머니만 데리고 지서로 돌아가 버렸다. 한사코 버티는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끌며 순사들이 떠나자, 우리 세 오누이는 갑자기 밀어닥친 무섬기에 꽁꽁 묶이고 말았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날 밤 누나는 큰 소리로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분선이와 나는 서로 꼭 껴안은 채 밤새 소리 죽여 울었다. 울기조차도 못하게 했다면 분선이와 나는 기절을 하든지, 아니면 죽고 말았을 것이다. 봉창이 훤해질 때까지 오들오들 떨며 콧물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울며 새운 그 밤의 무서움은 정말 지독한 것이었다. 죽어뿌리라, 어디서든 콱 죽고 말아뿌리라. 나는 아버지를 두고 몇십 번이나 이 말을 되씹었는지 모른다. 한밤중 순사들이 밀어닥쳐 집안을 뒤지는 날 밤, 나의 머리에 떠오르는 아버지는 밉다 못해 원수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그 이튿날, 학교 갈 생각도 않고 늘어져 누워 있을 때 어미니가 지서에서 풀려나왔다. 이모가 어머니를 부축해서 데리고 왔다. 어머니의 얼굴은 온통 피멍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죽어 가는 소리로 아버지를 두고 순사를 두고 쌍말을 섞어 가며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순사들이 밀어닥치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잡혔기 때문이다. 총살을 당할 거라고들 사람들은 말한다. 아버지가 죽고 나면 그래도 사람들은 우리 집 빨갱이 집이라고 손가락질할까.

 

  대추나무 뒷편 하늘은 벌써 짙은 보라색이다. 나는 보라색을 싫어한다. 손톱에 들이는 봉숭아물도, 닭 벼슬 같은 맨드라미꽃도, 코스모스의 보라색 꽃도 다 싫다. 어머니의 젖꼭지 색깔까지도 싫다. 보라색은 어쩐지 아버지의 하는 일을 떠올리게 해주고 어머니의 피멍 든 얼굴을 생각나게 한다. 보라색은 또 말라붙은 피와 같고 깜깜해질 징조를 보이는 색깔이다. 옅은 보라에서 짙은 보라로, 그래서 야금야금 어둠이 모든 것을 잡아먹다가 끝내 깜깜한 밤이 온다는 것은 참으로 무섭다. 이 세상에 밤이 없는 곳이 있다면 나는 늘 그곳에서 살고 싶다. 나는 빛 속에 함께 끼여 놀고 싶고, 또 빛 속에서 자고 싶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총살당할 것이다.

 

"언니야, 와 자꾸 우노. 울지 마래이. 오메가 곧 올끼다. 언니야 니 자꾸 그래 울몬 범이 와서 콱 물어간데이"

 

하며 분선이가 누나의 손을 쥔다.

 

  그러나 누나는 더욱더 큰 소리로 운다. 그렇게 슬픈 목소리도 아니다. 언제나 그렇다. 오직 소리를 지를 뿐이다. 울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함이다. 그러나 눈물은 끊임없이 칠칠 흘리고 있다. 맑은 콧물도 줄줄 흘리고 있다. 변변히 먹지도 못하는데 눈물 콧물은 어디서 저렇게 많이 나올까. 이상스럽다. 물을 많이 먹어서 그럴까. 아니야, 천치라서 그렇지. 누나는 바보다. 아니 천치다, 만치다. 나는 쪽마루 앞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배가 흔들리지 않게 걸어야지. 배가 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다. 빨리 걸으면 배가 잠을 깰는지도 몰라. 잠에서 깨어 뱃속이 빈 것을 보면 쪼르르 하고 울거나 마구 벽을 긁으며 앙탈을 부릴 거야.

 

"오빠야, 니는 와 자꾸 밖에 나가노. 니도 누부야 좀 달래라. 내사 정말로 몬살끼다"

 

분선이가 나를 보며 어른스럽게 말한다.

 

"내 조 문 앞에서 오메 안 기다렸나. 그러니께 니가 좀 달래라. 내사마 말할 기분도 없는 기라. 자꾸 이래 말하몬 배가 잠을 깰라 안카나"

 

  나는 분선이 옆 마루에 걸터앉는다. 누나는 자꾸만 칠칠 운다. 상여가 나갈 때 곡하는 소리 같다. 분선이는 동그란 눈을 힘없이 깜박거린다. 사립문을 보고 있다. 나는 누나의 울음소리가 도무지 듣기 싫다.

 

"누부야, 저거 바라. 저기 오메가 쌀자루 들고 안 오나. 기분이 좋아서 덩실덩실 춤추며 오고 있네이"

 

  나는 거짓말을 해본다. 누나는 내 말에 속은 모양이다. 울음을 뚝 그치고 사립문 쪽을 본다. 그러나 역시 어머니는 보일 리가 없다. 어둠만이 짙게 배어들고 있을 따름이었다. 누나는 화가 난 듯이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그러자 분선이가 뽀르통해져서 말한다.

 

"오빠 니 와 자꾸 거짓말하노. 니 나중에 천벌 안 받는가 보래이"

 

  그리곤 어깨를 옴싹옴싹 떤다. 저녁의 한기를 느끼는 모양이다. 바람이 분다. 싸늘하면서도 포근한 바람이다. 나 역시 으시시하다. 배가 고프니 그런 모양이다. 갑자기 나도 울고 싶어진다. 콧마루가 찡해 온다. 그러나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참는다. 울면 배가 더 고프다. 운다고 금세 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지난 겨울 그 추위 속에서도 불 한 번 지핀 적 없는 찬방에서도 견디어 냈는데. 분선이가 울지 않는데, 내가 왜 울어. 나는 분선이한테 말을 시켜 본다.

 

"지금 무슨 달인 줄 아노?"

 

"사월달이지 머꼬"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아노?"

 

"금요일이지러"

 

"모레 공일 나 나무하러 갈 때 니도 또 따라 안 갈래?"

 

"그래 가꾸마 오빠야. 그런데 이제 쑥도 늙어서 못 뜯을 끼라 그자?"

 

"그래도 진달래는 다 안 졌을 끼라. 진달래꽃 따 묵고 칠기()도 캐묵자이"

 

"찰칠기는 얼매나 맛있다고. 장터에는 벌써 칠기 장수가 많이 나왔더라"

 

"……" 분선이는 시무룩해진다.

 

"그런데 오메는 와 안오노. 언니가 이래 울어쌓는데"

 

분선이의 목소리가 점점 울먹해진다. 분선이는 다시 누나를 달래기 시작한다.

 

"언니야 내 노래 불러 주꾸마 울지 마라. 뜸북새 불러 주꾸마 울지 마래이"

 

  그러는 분선이는 정말 기특하다. 분선이는 이제 얼마 있잖으면 사학년이 된다. 공부도 잘 한다. 나는 국민학교 때 늘 둘째를 했고, 분선이는 다섯째에서 맴돈다. 밥만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면 나는 일등을 할 수 있고, 분선이도 부급장을 할 수 있을 거다. 동네 사람들은 분선이를 똑똑하고 귀여운 가시내라고 늘 칭찬한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겨우 천천히 걷기밖에 못하는 아기 같은 누나를 분선이는 어머니처럼 보살핀다. 남들은 다 시집가도 언니는 누가 데리고 갈 사람도 없을 거라고 말하며 분선이는 곧잘 어른스럽게 혀를 찬다. 오줌을 함부로 흘린 누나의 누런 팬티를 어머니가 없을 때는 분선이가 빤다. 빨래 방망이를 톡톡 두드리며 분선이가 빨래를 할 때 그 곁에 앉아 히히 웃는 누나가 분선이에게는 항시 귀여운 모양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달갑잖게 생각하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누나를 싫어하지만 분선이만은 누나에게 천사같이 잘한다.

 

  분선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는 그만 목이 콱 매여 온다. 누나보다도 분선이가 더 불쌍하다. 이젠 나도 정말 울고 싶어진다. 분선이를 꼭 껴안고 그저 울고 싶다. 그러나 꼴깍 침을 삼키며 참는다. 목울대가 떨린다.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누나의 울음소리도 귀에 썩 거슬린다. 어둠에 묻혀 가는 집도 싫다. 분선이 외에는 모든 것이 싫어진다. 어머니도 누나도, 모든 세상 사람도 다 싫어진다. 나는 마루에서 일어선다.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분선이의 노래 소리가 쓸쓸하고 곱게 퍼져 나간다. 그러나 노래가 뚝 끊어진다.

 

"오빠야, 또 어데 가노?"

 

  분선이는 투정하듯 묻는다. 나는 등뒤로 느끼고 있다. 이제 곧 분선이도 울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분선이의 모습을 지우려고 노력해 본다. 분선아,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너처럼 착하지도 못해, 난 누나를 달랠 수가 없어. 그러나 분선이의 물기 젖은 눈동자가 자꾸 내 앞을 막는다. 하는 수 없이 멈춰 선다. 돌아서서 분선이를 보고 말한다.

 

"오메 찾으러 안 가나. 빨리 찾아와야 지러 밥해 묵지, 이모집에 가몬 오메가 있을 끼라. 내 얼른 댈꼬 오꾸마. 그래가꼬 우리 쌀밥 해 묵자이"

 

  더욱 짙게 배인 어둠 건너편 분선이의 얼굴은 하이얗다. 표정이 없다. 까만 눈동자만 어둠살 건너편에서 흐려진 것 같다. 속이 쓰려 오기 시작한다. 가물가물하는 내 눈에 하얗게 돋보이는 분선이의 얼굴이 아래위로 끄덕거린다. 누나는 기진맥진해진 목소리로 아직 울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침을 흘리고 있겠지. 나는 돌아선다. 걷는다. 사립문 곁 꽃밭은 음침하다. 애써 구한 씨를 분선이와 함께 뿌린 꽃밭이다. 백일홍도 분꽃도 채송화도 아직 모종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 해바라기가 그중 제일 잘 자랐다. 벌써 숟갈 만한 잎을 의젓하게 벌리고 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꽃밭은 침침하다. 사실 꽃밭만은 밤낮을 가리지 말고 좀 밝았으면 싶다. 꽃밭까지 어두워진다는 것은 하느님이 세상을 만들 때 무엇인가 잘못한 듯하다. 언제 보아도 꽃밭은 푸르고 알록달록해야지. 겨울도 꽃밭 주위만은 비켜 지나가야지.

 

  나는 대문을 나선다. 공동 우물터에서 여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두레박이 돌벽에 부딪쳐선 물 위에 철썩 떨어지는 소리가 차갑게 들린다.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들린다.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까. 마을의 온갖 잡소문을 다 떠벌리고 있을 테지. 그러자 우물터에서 이야기하는 말이 내 귀에 들린다. 그 말은 통나무를 쪼개는 쐐기처럼 내 귀에 아프게 박힌다.

 

"똑똑한 사람 죽구만. 우찌면 몇 해 사이에 사람이 고렇게 변할 끼고"

 

"애들이 불쌍한기라. 천치 분임이를 두고라도 갑해랑 분선이가 안 그렇나. 쯔쯔"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걸음을 빨리 한다. 눈물이 빙글 돈다. 아낙네들의 이야기를 듣자 웬지 아버지가 가여워진다. 배만 고프지 않다면 무섭긴 하지만 지서로 가 보고 싶다. 꽁꽁 묶여 있을까, 매를 맞고 있을까. 피를 흘리는 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울부짖고 있을 얼굴도 떠오른다.

 

  해방되던 해 가을이 생각난다. 추석날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있고 우리 오누이는 아버지와 함께 성묘를 갔었다. 아버지는 누나를 업었고 분선이와 나는 손을 잡고 걸었다. 폐가 나빠 젊었을 때 세상을 떠나셨다는 할아버지의 무덤은 산을 두 개나 넘은 오치골에 있었다. 그곳에는 할머니의 무덤도 할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 무덤도 있었다. 산길은 단풍 빛도 고왔다. 내 키보다 더 자란 갈대들이 눈부신 햇살을 받고 바람에 몸을 흔드는 것도 유쾌했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낙엽 소리도 듣기가 좋았다. 다람쥐도 보았고, 산딸기도 따먹었고, 여치도 보았다. 분선이는 들까불며 노래를 불렀다. 걸어도 걸어도 다리 아픈 줄 몰랐다. 아버지는 말했다. …… 그래서 말이야, 난 아버지 얼굴도 모르지. 그때 우리집은 참 잘 살았던 모양이야. 그러나 네 할아버지가 삼 년을 앓으시다 보니 약을 쓴다고 논도 다 팔고, 돌아가셨을 땐 겨우 나 하나를 키울 정도의 논밖에 없었던가봐. 그러니깐 네 할머닌 머슴 하나와 나를 데리고 혼자 사시다가 돌아가셨지. 내가 일본서 고학을 하며 공부할 때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받았어……. 아버지는 나에게 들려주는 말이었으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했다.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나는 너무 어렸고, 아버지는 심심하시니깐 그저 자기한테 이야기하는 거였고. 성묘를 하고 무덤에 벌초까지 끝내자 아버지와 우리 오누이들은 싸가지고 온 과일과 떡과 달걀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좀 곯려 주고 싶어 대뜸 어려운 질문을 꺼냈다. 그 질문은 그 즈음 우리들 또래에서 이상한 수수께끼로 나돌아 선생을 곯릴 때도 싱거운 아이들이 그 질문을 불쑥 던지고 했던 것이다. 아버지, 이 세상에 처음 달걀이 먼저 났게요, 닭이 먼저 났게요? 나의 당돌한 질문을 받자 아버지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지나쳤다.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문 채 한참을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나를 물끄러미 건너다보며 내가 알아맞춰 볼까 하셨다. 그래요, 맞춰 보셔요.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아버지의 꾹 다문 입술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답은 간단하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답은 말이야. 아무도 몰라.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몰라. 나는 아버지의 대답에 실망하고 말았다. , 그런 답이 어디쎄, 나도 그런 답은 할 수 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힘주어 말했다. 너도 학교에서 조금은 배웠겠지만 닭과 달걀의 조상을 쭉 따라 올라가면, 몇 억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암놈 숫놈이 한 몸이었을 때가 있었지. 그땐 물론 사람이 생겨나지도 않았을 때니깐 말이야. 그럴 때 과연 어떤 게 먼저 낳는지 알 사람을 아무도 없지. 어떤 훌륭한 학자라도 추측조차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깐 그 답은 모른다는 게 옳은 답이야. 나는 풀이 죽어 말했다. 그래도 어디 그럴 수가 있어요? 아니야 넌 답이란 반드시 맞다, 아니면 틀렸다 두 가지뿐인 줄만 알지? 그래요, 모른다는 건 답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녜요. 모른다는 건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말하는 거여요. 아냐, 닭과 달걀이 누가 먼저 생겼냐란 질문에는 <모른다>가 답이야. 닭이 먼저 났다는 것도 틀리고 달걀이 먼저 났다는 것도 틀리고, 오직 모른다는 것만이 백점이야. 너도 자라면 차츰 알게 되겠지만, 이 세상은 참 수수께끼란다. 모른다는 것이 맞는 답이 참 많거던.

 

  다리를 건너면 함악댁, 다음 집이 판쟁이댁이다. 그 다음은 장터다. 함안댁에서는 곧잘 구수한 냄새가 난다. 떡을 찌는 냄새는 언제나 구수하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 냄새도 안 난다. 그렇지 내일이 김해장이지. 모래가 가숩장, 낼모레가 진양장이지. 김해장은 멀다. 그래서 함안댁은 내일 떡을 팔러 가지 않는다. 그러니 떡을 찌지 않겠지. 나는 함안댁의 낮은 담 너머로 안을 들여다본다. 마당은 어둠 속에 비어 있다. 방문에는 벌써 불이 빤하다. 새끼를 꼬고 있는 판돌이의 그림자가 보인다. 지난겨울 내내 판돌이는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 방에만 틀어박혀 새끼만 꼬아 온 것이다. 마을 아낙네들이 우물터에서 판돌이를 두고 이야기하던 소리를 나도 들은 적이 있었다. 나이도 열 여덟 살밖에 안 된 애 놈이 어떻게 저토록 부지런한지 알 수가 없군. 이제 꼬박 삼 년만 지내면 딸 주려는 집 많을 거야. 이번 겨울만 해도 그 많이 꼰 새끼를 팔면 송아지 한 마리는 느끈히 살거야. 이따금 짚을 잡아 올리는 판돌이의 그림자만 보일 뿐 방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없다.

 

  해방되기 전에 아버지는 역 아래 철하에서 야학당을 차린 적이 있었다. 학교에도 가지 못한 청년들과 처녀들을 모아 글을 가르친 것이다. 나도 몇 번 그 야학당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등잔불 아래 스무 명 남짓한 젊은이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 판돌이도 끼여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말한 적이 있었다. 판돌이는 참 머리가 좋아. 그렇게 한글을 빨리 깨치는 애는 처음 봤어. 그러나 야학당도 대동아 전쟁이 한참인 무렵 문을 닫고 말았다. 그 뒤로부터 아버지는 집에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부산으로 서울로 무슨 일 때문인지 나다녔다. 한 달 또는 두 달씩 집을 비우다가 불쑥 나타나서 며칠을 못 있다 다시 떠나곤 했다. 집에 있을 때도 어떤 책인지는 모르지만 가지고 온 두툼한 책만 열심히 읽었다. 어머니는 이모한테 말한 적이 있었다. 갑해 애비가 아마 그때부터 그놈의 사상인지 뭔지에 미쳤나 봐요.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변할 수가 있담. , 사람일은 알 수 없어. 사람이 벙어리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나 말이 없을 수 있겠어요. 며칠을 꼼짝 않고 지내다간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니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란 말이에요.

 

  함안댁에도 어머니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있을 리가 없다. 이제 함안댁은 우리집에 보리쌀도 빌려주지 않을 테니깐. 지난주에 함안댁과 어머니가 몹시 싸웠던 것이다. 빌려다 먹은 보리쌀을 갚지 않는다는 것이 싸움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분선이나 나는 함안댁한테 떡도 자주 얻어먹었다. 함안댁은 어머니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아이들을 참 좋아한다. 나는 자주 그 인정 많은 함안댁이 어머니였으면 하고 생각한다. 언젠가 함안댁을 보고 어머니라고 불러 본 꿈도 꾸었지.

 

  판쟁이집 앞을 지나다 끝순이를 만난다. 판을 만들어 파는, 온몸에다 푸른 문신을 해박은 술주정뱅이 추씨의 맏딸이다. 끝순이는 눈이 쬐그맣다. 코도 밋밋하다. 거기다 살짝 곰보다. 분선이와는 같은 반이다. 끝순이는 나를 말끄러미 보며 말한다.

 

"갑해야, 분선이 집에 있지러?"

 

  나는 머리를 끄덕여 준다. 분선이한테도 또 산수 숙제 공책을 빌리러 가는 모양이다. 나는 장터로 들어선다. 넓은 장터에는 흙먼지가 풀풀 일고 있다. 휴지와 지푸라기들이 흙먼지에 휩쓸린다. 으시시 춥다. 목을 잔뜩 옴츠린다. 장터 가운데는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뛰놀고 있다. 고함을 빽빽 질러 대는 꼴이 모두 저녁밥은 먹은 모양이다. 시장 건물엔 벌서 깜깜한 어둠이 끼었다. 초저녁 달이 떠서 그런지 거기만 더 어둡게 보인다. 시장 건물 쪽에서 합창으로 불러 대는 유행가 소리가 들린다. 틀림없이 밤송이처럼 머리칼을 기른 녀석들이 처녀를 꼬여 내려고 저렇게 수작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걷는다. 장터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이모는 술장사를 한다. 장터에서는 제일 큰 술집이다. 술을 따라 주는 색시도 있다. 이모네 집은 장터에서 소방서로 내려가는 어귀에 있다. 나는 담뱃집 앞을 지난다. 찬길이 형이 담배를 사고 있다. 찬길이 형은 일본서 대학을 다니다 학병에 끌려갔었다. 해방이 되자 외팔이가 되어 돌아왔다. 그 뒤부터 실성한 사람처럼 매일 술만 마시고 지낸다. 찬길이 형은 담뱃갑 껍질을 입으로 물어 뜯는다. 한 가치를 빼어 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인지 입술에 문 담배를 칵 뱉고는 내 쪽을 힐끔 돌아본다. 담뱃집에서 내비치는 호롱불 빛에 술 취한 눈이 번들거린다. 찬길이 형이 불쑥 묻는다.

 

"자슥아, 네 애비가 죽는데 넌 지금 어델 홰질러 댕기는 거야?"

 

"……"

 

"미친놈의 세상. 뭣때매 싸움질들인지 몰라. , 죽어라, 죽어. 뒈질 놈은 뒈져 버려라. 그게 더 편한 세상이니깐"

 

  찬길이 형은 심술궂게 내뱉는다. 그러더니 끄윽 하고 트림을 한다. 찬길이 형 집은 장터에서 가장 부자다. 집도 고래등 같고 논도 많다. 방앗간도 있고, 과수원도 있다. 찬길이 형은 비틀비틀 내려간다. 잠시 걷더니 담벽에 기대선다. 나도 멈춰 선다. 찬길이 형은 토하기 시작한다. 손가락을 입속에 쑤셔넣고 토한다. 초저녁인데 벌써 꽤나 마신 모양이다.

 

"제가 무슨 불셰비키라고 오뉴월 개처럼 제물이 되겠다는 게야. 차라리 유관순처럼 진작 못 죽고, 해방된 마당에서 동포의 손에 개값도 못하고 죽어……"

 

  나는 잠시 아버지 생각에 휘말린다. 아버지는 왜 여태껏 도망만 다녀야 했을까. 빨갱이란 얼마만큼 나쁜 사람들이기에 잡기만 하면 총살을 시킬까. 재작년 밀양의 <조선 모직 회사>에서 번진 방화 사건, 그때부터 순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었지. 사람들은 말했다. 빨갱이짓을 하면 천벌을 받게 된다고, 빨갱이짓을 하려면 숫제 삼팔선을 넘어가서 해야 마음놓고 할 수 있다고. 그런 말을 사람들은 쉬시하면서 낮게 소곤소곤 말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달걀이냐, 닭이냐에 대한 질문에서 아버지가 대답한 답을 깨칠 때쯤이면 나도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찬길이 형은 이모네집 유리문을 드르륵 연다. 나는 이모네집 큰 대문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찬길이 형의 뒤를 따라 얼른 들어간다. 안은 구수한 냄새가 꽉 차 있다. 구수한 냄새가 서린 김이 천장에 자욱하다. 유리갓을 씌운 등잔 두 개가 부윰한 빛을 내비치고 있다. 나무 술상을 앞에 놓고 술꾼 서넛이 술을 마시고 있다. 한 사람이 탁 갈라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젓가락으로 술상을 치고 있다. 찬길이 형은 그들과 한패가 아닌 모양이다. 외따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문 옆에 섰던 색시가 찬길이 형의 빈 잔에다 술을 친다.

 

", 화자야. 술 좀 따뤄라. 오늘 저녁에 한판 쥐몬 니 하나쯤은 하이야(택시)에 태워 부산서 매칠 호강시킬 수 있데이. 추중걸이가 이래봐도 목통 크고 활냥이다"

 

  판쟁이 추씨가 고함을 지른다. 그러나 색시는 팔짱을 낀 채 코웃음만 친다.

 

"노름 좋아하는 인간들치고 그 정도 허풍도 못 떨면 숫제 죽는 게 낫지"

 

색시는 튕기듯 말한다. 내게 눈을 준다. 뽀하얗게 화장을 한 얼굴이다. 방긋 웃는다.

 

"울 오매 여기 왔지예?"

 

  나는 색시에게 물어 본다. 색시는 그래그래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손은 붉고 크다. 그러나 어머니의 손보다는 곱다. 분 냄새가 코를 콕 찌른다. 쪼르르 배가 끓는다. 나는 슬그머니 부끄러워진다. 더이상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작은 미닫이문을 열고 이모네집 큰채로 들어간다. 더이상 참을 수가 없게 배가 고프다.

 

  저편 안쪽 마루에 등이 달려 있다. 그 마루에 어머니와 이모가 앉아 있다. 어머니가 무슨 이야긴가를 하고 있다. 이모는 장죽을 쭉쭉 빨며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어머니를 보니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어머니 곁에는 큼직한 자루 하나가 놓여 있다. 쌀이든 보리쌀이든 어쨌든 양식인 모양이다. 이빨을 드러내고 히부죽히 웃을 누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기운이 난다. 저 자루를 가져가 밥을 하게 된다면, 부엌 앞에 바싹 쪼그리고 앉아 부지깽이로 솔가릴 밀어 넣으며 쫄랑쫄랑 노래를 부를 분선이의 꽃같이 밝은 얼굴이 떠오른다. 맥이 탁 풀린다. 이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와 이모 사이에 갑자기 뛰어들기가 멋적어진다.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성님, 말도 마이소. 인자 우리는 우예 살꼬. 밉든곱든 서방인데 저래 죽고 나면 초롱같은 세 자슥 데불고 우예 살꼬……"

 

마침내 어머니는 징징 울기 시작한다. 나도 갑자기 서러워진다. 눈에 눈물이 핑글 돈다. 콧마루가 시큰하다.

 

"형부가 지서로 가긴 갔구마는 그 큰 죄를 지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노. 시집 한 분 잘못 가서 니가 이 험한 꼴 안 당하나"

 

이모는 측은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달랜다.

 

"아이구,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이 고생이고. 성님 성님, 내 팔자 와 이래 험한교. 오메는 살아 생전에 내 귓밥 커서 잘 살게라 카다마는 와 이래 요모양 요꼴로 지지리 가시밭길인교"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오메"

 

  나는 어머니를 부른다. 꾀죄죄한 광목 치마자락으로 눈두덩을 훔치던 어머니가 나를 본다. 울상이던 어머니의 얼굴에 노기가 서린다. 눈을 부릅뜬다. 어머니는 눈이 크다. 그래서 겁이 많다. 나는 어머니의 눈을 닮았다. 그래서 겁도 많다. 어머니의 날카로운 고함이 내게 떨어진다.

 

"이노무 빌어 묵을 자슥아. 집에 처박혀 있잖고 머하러 왔노?"

 

그러자 이모가 내 편이 되어 준다.

 

"불쌍한 애놈이 무슨 죄가 있다고, 쯔쯔. 갑해야, 여 온나"

 

  나는 비슬비슬 이모 곁으로 다가간다. 이모는 댓돌에다 장죽을 톡톡 턴다. 두툼하고 미끄러운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거린다.

 

"갑해야, 배고프제? 니는 여기서 밥 좀 묵고 가거라. 갑해야 갑해야, 니사 얼매나 똑똑하노. 그러니께 이모부가 니 공부시켜 주고 안 있나. 크거들랑 큰 사람이 되거라이. 니 애비맨쿠로 미친 짓 하지 말고 열두 대문 담장치고 살거라. 니 그래 되도록 내가 살아얄낀데"

 

  이모의 단 입김이 귓밥을 스친다. 술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손님이 주는 술을 또 받아 마신 모양이다. 이모는 술만 마시지 않으면 참 좋은 분이시다. 조그만 마셔도 괜찮다. 그러나 취하면 아무한테나 욕설을 퍼붓는다. 아니면 방바닥을 치며 큰 소리로 운다. 자식 하나 두지 못하고 오십을 바라보는 신세를 한탄한다.

 

  그러자 어머니가 다시 읊조리기 시작한다. 목을 길게 빼고 있다. 긴 속눈썹이 큰 눈을 덮고 있다. 윤기 없는 머리칼이 푸시시하다.

 

"이노무 팔자 무슨 놈의 죄 많아서 이래 서방복도 없노. 저노무 자슥 새끼들만 없어도 헌 서방이나마 얻어 가지러. 아이구 내 팔자야, 서름도 많고 한도 많다"

 

이모가 어머니의 우는 꼴을 흘기는 눈으로 본다. 입술을 비죽거리더니 또 핀잔을 준다.

 

"마 치아라, 이년아. 자슥들이 불상치도 않나. 어서 가거라. 가서 밥이나 해먹이라. 니사 그래도 부모 덕 많아 한창 클 때 배는 안 곯았지러. 애들이 무슨 죄가 있노. 기 미친갱이 남편이사 홍수에 떠내려 보냈다 치고 악착같이 살 생각은 않고 무슨 탄식이 그래 많노. 이제사 허리끈 졸라매고 뭐든지 해봐라. 발벗고 나서몬 산입에 검구(거미줄) 치겠나. 니도 함안댁 뽄 좀 바라. 호열자에 서방 잃고 판돌이 데불고 얼매나 야무지게 사노. 떡판 이고 장터마다 댕기느라고 소꼿가랭이 성할 날 없어도 설 지내고 논 한 마지기 또 안샀나. 아이구 이년아, 니도 악심 안 묵으몬 장래 팔자 더 험할 끼다"

 

  그 소리를 듣자 어머니는 땅바닥에 코를 휭 풀며 일어난다. 그리고는 곁에 있는 자루를 든다. 그 자루에 든 것이 쌀이든 보리쌀이든, 나는 그걸 볼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어머니는 갑자기 표범으로 변한다. 나의 머리에다 불꽃 튀는 알밤을 준다. 눈앞에 별이 번쩍 빛난다.

 

"에이, 빌어 묵을 밥통아. 그래 머슴아라는기 밤이몬 집 지킬 줄은 모르고 기집아들만 놔두고 머하러 왔노. 오메가 서방 정해 갈까봐 찾아 댕기나, 도둑질할까봐 찾아댕기나"

 

  연신 떨어지는 알밤에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죽은 듯이 참을 수밖에 없다. 서러움보다도 아픔 때문에 눈물이 고인다. 어머니는 곧잘 모든 화풀이를 나에게 해 버리는 버릇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용케 이모가 어머니와 나 사이를 막아선다.

 

"갑해를 너무 후지박지 마라. 니나 얼른 가서 기다리는 딸년들 밥이나 해먹이라. 갑해는 여기서 술국에 밥이나 한술 말아 묵이고 보내꾸마"

 

그러자 어머니는 거센 숨을 몰아쉬며 달아나듯 이모네 집을 나선다.

 

"나중에 집에 오기만 해봐라. 뼈가죽을 안 남길끼다"

 

  어머니는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나는 눈에 배인 눈물을 닦으며 마루에 걸터앉는다. 이모는 연방 혀를 찬다. 잠시를 서성거린다. 그러다 지서가 있는 쪽으로 눈길을 한 번 준다.

 

"갑해야, 배고프제. 잠시만 기다리레이. 내가 얼른 국밥 하나 만들어 오꾸마"하고 이모는 말한다. 이모는 마당을 가로질러 술방 안으로 사라진다.

 

  잠시 후 이모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 한 그릇을 가져온다. 나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 한 그릇을 금방 먹어 치운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셔 버린다. 김치가 있었으나 젓가락질 한 번 해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빨리 먹었다. 이모 보기가 쑥스럽다.

 

"더 주까?"

 

  이모가 콧물을 찍으며 측은한 목소리로 묻는다. 내 먹는 꼴이 불쌍했던 모양이다. 나는 더 먹고 싶었으나 머리를 흔든다. 나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씩 웃어 보인다.

 

"괜찮심더. 인자 배가 부릅니더"

 

  이제 살 것 같다. 기운도 난다. , 오늘은 살았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자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 집에 들어가면 모르긴 하지만 부지깽이로 몇 차례 맞게 되리라. 누나와 분선이는 지금 얼마나 배고파 할까. 그래도 어머니가 쌀자루를 들고 들어오는 걸 봤음 배고름도 잊겠지.

 

이모가 말한다.

 

"갑해야, 니 지서 한 분 가봐라. 안에 숙 들어가지는 말고 이모부가 있능강 한분 보고 온나. 그래가꼬 니 애비가 우예됐는공 소식 가꼬 온나"

 

  나는 이모의 말뜻을 금방 알아차린다. 그곳에는 지금 아버지가 잡혀 있다. 그리고 지서 주임과 가까운 사이인 이모부가 가 있다. 지서 주임과 이모부는 성도 같고 항렬까지 같은 먼 친척붙이다. 이모부는 다리를 절고 있다. 해방 전에는 일본서 살았는데 관동 대지진 때 일본 사람 몽둥이에 맞고 다리뼈가 부러져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해방후 고향으로 돌아오자, 이모는 술장사를 하고 이모부는 매양 놀고 있다. 사람들은 이모가 이모부의 후처라고들 한다.

 

  이모부는 참으로 점잖다. 이모는 술장사를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모부를 학자님으로 떠받든다. 이모부는 학교 한문 선생보다 한자를 더 많이 안다. 하루에 몇 차례씩 큰 소리로 어려운 한문책을 읽는다. 붓글씨도 잘 쓴다. 난초와 대나무도 잘 그린다. 활터에 활도 쏘러 다닌다. 그런데 이모부는 술장사를 하는 이모와 함께 산다.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한 이모부가, 남자처럼 목소리도 굵고 성질도 괄괄한 이모와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만 해도 그렇다. 아버지는 일본까지 가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한글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어머니와 같은 사람에게 장가를 가게 되었는지 나는 참 알 수가 없다.

 

  지난겨울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마구 고함을 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깊은 밤중인데 오줌이 마려워 눈을 뜨니 놀랍게도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수염도 깎지 못했고 머리는 새집처럼 헝클어진 아버지가 홍길동처럼 나타나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남루한 회색 바지저고리에 검은 개털 모자를 쓰고 검은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울면서 애들을 데리고 서울이든 어디든 떠나 살자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큰 소리도 아니고 낮은 소리로, 이젠 더이상 지서로 불려 가 매질을 당할 수도 없고, 남의 손가락질 받고 살 수도 없다고 투정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연신 문쪽을 살피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오줌눌 생각도 잊은 채 이불깃 사이로 아버지를 훔쳐보며 귀를 기울였다. 무서웠다. 곧 순사가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자수를 하든, 아니면 도망을 가든 하날 택하란 말예요. 그래, 당신이 사람탈을 쓴 인간이오, 뭐요. 처자식 이 고생시키고 그 짓 해서 잘 될 줄 알아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자꾸 높아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마구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 죽이고 가, 죽이고 가란 말이야! 이 미친 남자야, 이 자슥놈들하고 날 죽이고 가란 말이야! 내 죽어서라도 혼백이 너 따라다니며 망하게 하고 말 테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지가랭이를 잡고 늘어졌다. 그놈의 짓이 처자식보다 그렇게 중하다면 일찌기 부랄 떼어 놓고 그짓 시작지 뭣 때문에 이 꼴 만들고, 미쳐! 그러자 아버지는 우리 오누이 쪽으로 잠시 눈길을 주다간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뒷문으로 날쌔게 도망을 쳤다. 어머니가 뒤쫒아 나갔으나, 이미 아버지가 담을 넘는 소리가 쿵 하고 들렸다. 나도 오줌을 누기 위해 일어났다. 마당에 내려가서 땅이 언 꽃밭에다 소변을 보자 그제서야 아니나 다를까, 호각 소리가 들렸다. 잡아라! 저쪽이다! 활터 쪽이다! 순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언 하늘을 속속들이 후벼파며 연달아 총소리가 들렸다. 죽여라, 죽여! 쏴 버려! 순사들의 고함이 점점 멀어졌다. 나는 후들후들 떨며 소변을 마쳤다. 어느 사이에 나는 울고 있었다. 잉크빛 하늘에 외롭게 걸린 달을 보며 나는 소리내어 울었다. 찬 뺨에 뜨거운 눈물이 줄기줄기 흘러내렸다. 왜 아버지는 죽어야 하는지, 그는 왜 스스로 목숨을 걸고 도망만 다녀야 하는지, 나는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오직 그러므로 해서 쑥대밭처럼 되어 버린 집안꼴이 서러웠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연민이 함께 뒤섞여 나의 눈물을 강요했다. 바람을 타고 먼 산에서 여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을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얼룩진 눈에 차가운 별빛이 아롱거렸다. 그날 밤, 아버지는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를 놓친 순사들이 다시 집으로 밀어닥쳤다. 순사들은 장농이며 벽장이며 닥치는 대로 뒤졌다. 누나와 분선이와 내가 한묶음이 도어 울고 있는 가운데, 어머니는 다시 지서로 끌려갔다.

 

  나는 제법 활기 있게 지서를 향해 걷는다.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젠 춥지도 않다. 사실이지 비로소 아버지가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불쌍한 아버지! 소방서 앞을 지난다. 대장간을 지나고, 어물점을 지난다. 이제 소장터만 지나면 지서다. 지서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순사들로부터 매를 맞고 있으리라. 그 옆에서 이모부가 아버지를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고 있을는지 모른다. 감옥소는 보내도 좋은데 죽이지만 말아 달라고 빌고 있을지 모른다.

 

지서의 램프불이 보인다. 지서 앞 초소에 순사가 서 있다.

 

"아저씨, 우리 아버지 말입니더,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됐어예?"

 

  나는 조심스럽게 순사한테 물어 본다. 순사는 내가 누구의 아들인지 금방 알아본다. 왜냐하면 작년 봄에 이 순사가 나를 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순사가 나에게 사탕 한 봉지를 주며, 아버지가 언제쯤 집에 오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아버지가 언제 집에 올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사는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면서 한사코 뿌리치는 나의 손에 사탕 봉지를 쥐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봉지를 순사와 헤어진 뒤 개울에다 버리고 말았다.

 

"갑해 녀석이구나. 아버질 찾으러 왔다 이 말이제? 그러나 니 아부진 벌써 죽었던 말이다."

 

"죽었어예? 울 아버지가 벌써 총살을 당했다 이 말이지예?"

 

나의 힘없는 되물음에 순사는 킬킬거리며 웃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어깨에 메었던 총을 벗어 나를 향해 겨눈다.

 

"니도 죽고 싶냐? 죽기 싫으면 빨리 집으로 가. 가서 이불 둘러쓰고 잠이나 자란 말이다."

 

장난인 줄 알면서도 나는 깜짝 놀란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몇 발 물러선다. 킬킬 웃고 있는데도 순사는 정말 나를 쏠 것만 같았다. 죽는다는 것이 별 무섭지는 않은데, 숨이 콱 막힐 지경이다.

 

"아닙니더. 이모부, 이모부를 찾으러 왔심더?"하고는 나는 다급하게 말한다. 그때 이모부가 어깨를 늘어뜨린 채 절룩거리며 지서 정문으로 나온다.

 

나는 달려가 이모부의 두루막 자락에 매달린다. 그리고 소리친다.

 

"이모부요, 정말로 우리 아버지가 벌써 총살되어 뿌릿능교?"

 

나의 울음 섞인 고함에 이모부는 아무 대답이 없다. 내 손만 꼭 쥔다.

 

이모부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한다.

 

"갑해야, 니 아부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먼데로, 아주 먼데로 가 뿌릿다"

 

"정말로 마 죽었능교? 순사가 총으로 콱 쏘아죽여 뿌릿능교……"

 

나는 흐느낀다. 눈물과 콧물이 섞여 마구 쏟아진다. 이모부의 손이 나의 들먹이는 등을 잔잔하게 두들겨 준다. 내 손을 더욱 힘있게 쥔다.

 

"갑해야" 이모부가 조용히 나를 부른다. 나의 눈물 젖은 눈에 이모부의 침통한 표정이 흔들린다. 이모부는 뿌드득 이빨을 간다. 그러더니 무엇인가 결심한 듯 빠르게 말한다.

 

"가자. 니 아버지 보여주꾸마"

 

  이모부는 내 손을 끌고 지서 뒷마당으로 간다. 다리를 절며 이모부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잎순이 터지려는 느릅나무의 잔가지가 바람에 잔잔히 떨리고 있는 뒷마당은 조용하기 짝이 없다. 오직 달빛만 비치고 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모부는 말이 없다. 어둠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린다. 가슴속이 마구 방망이질을 한다. 찜질한 눈을 닦고 아버지의 모습을 죽은 아버지의 몸뚱이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더듬어 본다.

 

  느릅나무 밑, 거기에 가마니에 덮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모부가 걸음을 멈춘다. 가마니 밑으로 발목과 함께 닳아빠진 농구화가 삐어져 나와 있다. 그러나 정갱이 부근부터 머리까지 가마니에 덮여 있다. 나는 숨을 멈추고 이모부의 허리를 꼭 잡는다. 온몸이 어들어들 떨린다.

 

"이거다. 이게 니 아버지의 시체다. 똑똑히 보았제. 앞으로는 절대 아버지를 찾아서는 안 된다. 알겠제"

 

이모부는 말한다. 그리고는 내 손을 놓고 가마니를 휠쩍 뒤집는다.

  아, 나는 볼 수 있었다. 달빛 아래 희미하게 드러나는 아버지의 처참한 얼굴을. 반쯤은 피에 가려 있고 나머지 부분은 하얗게 바래 버린 찌그러진 얼굴, 죽은 아버지의 눈은 부릅뜨고 있었다. 턱은 퉁퉁 부어 있고, 입은 커다랗게 벌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저렇게 되다니.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낡고 검은 국방복의 저고리 단추가 풀어진 사이로 보이는 아버지의 가슴, 나는 어릴 때 그 가슴에 안겨 얼마나 재롱을 떨었던가! 그런데 이제 아버지의 가슴은 그 무서운 보라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축 늘어진 어깨와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두 팔, 아버지는 분명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다.

 

"죽다니, 저렇게 죽고 말다니!"

 

  나는 흐느낀다. 이모부가 내 팔을 잡는다. 나는 사납게 뿌리친다. 그리고 내닫기 시작한다. 나의 눈에는 이모부도, 보초를 선 순경도 보이지 않는다. 아버진 거짓부렁이야. 거짓말만 하다 죽고 말았어. 아니야, 아니야. 죽지 않았어. 거짓말처럼 죽은 체하고 있을 따름이야. 나는 헐떡거리며 집과 반대인 낙동강 쪽으로 달린다. 숨이 턱에 닿는다. 달빛에 뿌옇게 드러난 강둑이 보인다. 강뚝에 올라서자 나는 숨을 가라앉힌다. 달빛을 받은 강물이 잉어 비늘처럼 번뜩인다. 강 건너 장승처럼 서 있는 키 큰 포플라가 아버지 같다. 나를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어릴 적 아버지와 나는 강둑을 거닐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쉬지 않고 흐르는 이 강처럼 너도 쉬지 않고 자라야 한다. 아버지는 이런 말도 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죽었다는 실감이 비로소 나의 가슴에 소름을 일으키며 아프게 파고 든다. 나는 갑자기 오들오들 떨기 시작한다. 서른 일곱으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아버지. 이제 내가 죽기 전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 아버지. 어린 나에게 너무나 큰 수수께끼를 남기고 죽어 버린 아버지의 일생을 더듬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사시나무처럼 떤다. 그와 더불어 나는 무엇인가 깨달은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느낌을 꼬집어 내어 설명할 수는 없었으나, 이를테면 살아 나가는 데 용기를 가져야 하고 어떤 어려움도 슬픔도 이겨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의 것이었다. 모든 것이 안개 속 같은 신기한 세상, 내가 알아야 할 수수께끼가 너무나 많은 이 세상을 건너갈 때, 나는 이제 집안을 떠맡은 기둥으로서 힘차게 버티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굳은 결심이 나의 가슴속을 뜨겁게 적시며 뒤채이는 눈물을 달래고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아버지가 죽은 그 해, 초여름에 육이오 사변이 터졌다. 그리고 이모부는 그 전쟁이 소강 상태로 들어갔을 때 이미 땅 위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성년이 된 후까지 이모부가 왜 아버지의 시체를 어린 나에게 구태여 확인시켜 주었느냐에 대해서는 여쭈어 볼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1973<월간 문학>

 

 

 

핵심 정리

- 갈래: 단편·순수·전후·성장·분단 소설

- 성격: 회상적

-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 문체: 현재형의 급박한 문체. 어린 화자를 통해 상황 묘사에 사실성을 부여 

- 배경: 광복 직후 1949년 경, 경남 진영 어느 시골

- 특징: 독백조의 문체를 통한 심리주의적 서술 

- 구성 
발단: 아버지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음 
전개: 아버지의 과거 회상과 어머니를 찾아다니는 소년 
위기: 어머니를 만나게 됨 
절정: 이모부가 확인시켜 준 아버지의 죽음 
결말: 아버지의 죽음이 가져다 준 깨달음 
에필로그: 어른이 된 소년 
- 제재: 분단 이후 사상 대립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 주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 고발과 비참한 삶의 극복 의지, 이념 대립으로 인한 비극과 혈연 의식의 회복 

- 감상: 광복 직후 좌우 사상적 대립을 그린 분단 소설이다.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이데올로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가치 판단은 하지 않고, 이데올로기 문제와 그 비극만을 다루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가족의 문제와 결부한 것은 이데올로기가 낳은 민족 동질성의 훼손을 혈연 관계의 회복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 준다.

-인물 :

  나(갑해): 주인공. 좌익 운동을 하던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삶의 자세를 배우는 소년

  아버지: 고학으로 일본 유학을 하고, 광복 후 좌익 활동을 하다 총살

  어머니: 남편 떄문에 수시로 경찰서에 끌려가 고초를 겪는 여인

- 출전: [월간 문학](1773.1) 

  

- 표현 및 특징

독백조의 문체를 통한 심리주의적 서술 기법 
어린 화자를 통해 상황 묘사사실성을 부여 
호흡이 짧은 현재형 문장을 사용하여 상황을 실감나게 전달 
상징적 의미를 담은 삽화(청개구리 이야기)를 통해 주제 암시 
⑤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과 가족 공동체의 몰락을 보여 줌으로써 이데올로기의 허구성 폭로
⑥ 한 가정의 파괴와 한 소년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어린이의 시선을 통해 전달하여 비극성 고조

- 등장인물 
  아버지: 고학으로 일본 유학을 한 뒤, 광복 후 좌익 활동을 하는 인물. 가족을 돌보지 않은 채 좌익 활동을 하다 끝내 목숨을 잃는다. 주어진 상황에서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인물로 결국 사회적 힘에 굴복당하는 인물이다. 
  어머니: 남편 때문에 수시로 경찰서에 끌려가 고초를 겪는 여인. 아버지 대신 가족의 생계를 돌보느라 숱한 고생을 하며 살아간다. 사상의 대립 속에서 피해 받은 힘없는 시민의 모습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이모부, 이모: 이모는 어머니의 동생으로 술장사를 하고, 이모부는 갑해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시켜 줌. 소설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서 소설에 장치적 요소로 쓰인 인물들로, '나'의 아버지, 어머니 역할을 대신해주는 인물들이다. 
  '나'(갑해): 좌익 운동을 하던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삶의 자세를 배우는 소년. 주인공. 화자.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원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문학적의미 :'어린아이'로 화자를 설정함으로써 시대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표현하였다. 힘없고 가난한 서민적 시점을 갖게 하는 인물이다. 
  찬길이 형: 시대적 상황에 굴복하는 지식인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누나(분임), 여동생(분선): 분임을 백치로 설정한 까닭을 하염없이 우는 모습으로 6.25로 인한 분단비극의 슬픔을 나타내려는 의도였다. 분선은 어른스럽게 나오지만 실은 여린 아이적 모습을 지닌 인물이다. 그로써 작가는 그 당시 성숙해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을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분선과 분임의 대조적 모습을 통해 그 당시 모순이 많던 세상을 나타내려 하였다. 

 

 

 

김원일(金源一, 1942년 3월 15일 ~ )

  대한민국의 소설가. 본관은 함창. 1942년 3월 15일에 3남 1녀 중 장남으로 경상남도 김해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상남도 밀양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경상북도 대구에서 성장하였으며,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아버지가 월북함으로 인하여 부친과 헤어져 신문배달 등을 하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1964년에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5년 영남대학교 국문학과 3년에 편입하였고 이후 1968년에 영남대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이후 1984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유년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람과 강》, 《마당 깊은 집》 등을 창작했다. 1961년 소설 〈알제리아〉가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 이후, 1967년 《어둠의 축제》가 《현대문학》 장편소설 공모(공개 모집)에 당선되는 등 주목받는 소설가가 되었다.

 

  동생인 김원우 역시 소설가이며 형을 보고 소설가가 될 결심을 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김원일이 전쟁과 관련된 가족사를 작품에 많이 담아낸 반면 김원우는 거의 그러지 않았다.

 

 

 

줄거리 

  소년 갑해의 아버지는 고학으로 일본 유학을 한 뒤 광복 후 좌익이 된 지식인이다. 야학을 벌여 계몽 사업을 할 때, 아버지는 떳떳하게 마을을 다녔다. 그러나 광복 후, 좌익이 된 아버지는 좌우익이 극렬하게 대립함에 따라 경찰의 추적을 받고 쫓기는 생활을 한다. 아버지는 갑자기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요술을 부린다. 

  아버지가 가족의 생활을 돌보지 못하므로 어머니가 홀로 자식들을 거느리고 생계를 도맡아야 했고 가족들은 매일같이 굶주림에 허덕인다. 경찰의 추적이 집요해지자 아버지는 언제나 깊은 밤중에만 잠시 왔다가 사라지고, 그 때마다 어머니는 경찰서에 끌려가 매를 맞고 돌아온다. 

  식량을 구하러 나갔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갑해는 기다리다 못해 어머니를 찾으러 나가려 한다. 바보인 누이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곡을 하며 울고, 동생 분선이는 누이를 달랜다. 갑해는 의젓한 분선이가 보기 좋다. 갑해는 결국 어머니를 찾아 밤길을 나서게 된다. 

  갑해는 겨우내 새끼만 꼬는 판돌이네를 기웃거려 본다. 판돌이 어머니인 함안댁은 떡을 만들어 판다. 여기엔 어머니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어머니가 함안댁에서 꾼 곡식을 갚지 않아서, 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갑해는 발길을 돌려 이모집에 간다. 이모네는 크게 술집을 한다. 어머니는 이모 집에 있었다. 갑해는 이모에게서 국밥을 얻어먹고, 어머니는 식량을 가지고 집에 돌아간다. 이모는 지서에 잡힌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러 가라고 갑해에게 시킨다. 

  지서에 가자 이모부가 아버지는 벌써 죽었다며, 아버지 시체가 있는 곳에 갑해를 데려간다. 아버지의 시체를 보고 갑해는 어린 자신에게 큰 수수께끼를 남기고 죽어 버린 아버지의 일생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무언가 깨달은 느낌을 가진다. 그 느낌은 꼬집어 내어 설명할 수는 없으나, 이를테면 살아가는데 용기를 가져야 하고 어떤 어려움도 슬픔도 이겨 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안개 속 같은 신기한 세상, 내가 알아야 할 수수께끼가 너무 많은 이 세상을 건너갈 때, 나는 이제 집안을 떠맡은 기둥으로서 힘차게 버티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다. 

  

아버지의 삶과 나의 삶의 연관성 

① 지적 수준이 높음 → 거리감을 느낌 
② 좌익 활동 → 가족의 굶주림과 미워함, 이해 못함. 
③ 검거됨 → 불안과 저주 
④ 총살당함 → 죽음의 의미 깨달음, 삶의 의지를 다짐. 

  
이모부가 ‘나’에게 아버지의 시신을 보여 준 이유 

① 전쟁의 고통을 겪으며 희생된 아버지 세대를 확인시키기 위한 것 
② 전쟁이라는 역사적 혼란의 이유를 묻고 그것으로 인한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소년에게 남겨진 과제임을 암시하는 것 
③ 조국이 분단된 상황에서는 갑해 역시 아버지처럼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음을 확인시키는 것 

 

 

시점의 특징과 효과

  어린 시절과 6. 25를 관련시켜 전쟁과 분단의 문제를 표면화하고 있는 「어둠의 혼」은 일인칭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시점을 취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의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의도에서이다. 이를 통해서, 이 글에서의 사건이 남의 이야기도 아니고, 꾸며낸 이야기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겪은 실제의 이야기라는 진실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 글은 일인칭 시점과 어린 시절의 체험을 유연하게 접목시키고 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쟁의 체험과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이면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겠지만, 어린아이의 순진한 관점을 통해 아버지와 어른들의 세계를 암시적으로 서술하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년의 시선이기에 사건의 전모가 제한되어 서술될 수도 있으나 역설적으로 전쟁, 좌․우익의 대립이 어린 소년에게 얼마나 큰 비극을 몰고 왔는가를 보여 줌으로써 이데올로기 대립의 참상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다.  (OSAN KJS)

 

성장 소설

  성장소설이란 소설 속의 미성년 주인공이 갈등과 방황을 유발하는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된다는 식의 내용을 지닌 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소년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정신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자, 아버지가 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소년에게, 세계와 현실은 온통 혼란스러운 것이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결코 쉬운 아니지만, 이제 자신이 가장이 되어 어머니를 모시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소년에게 있어서 정신적 성숙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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