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裸像)*
이호철
*裸 : 옷 벗을 나, 像 : 형상 상
시원한 여름 저녁이었다.
바람이 불고 시커먼 구름 떼가 서편으로 몰려 달리고 있었다. 그 구름이 몰려 쌓이는 먼 서편 하늘 끝에선 이따금 칼날 같은 번갯불이 번쩍이곤 했다. 이편 하늘의 별들은 구름 사이사이에서 이상스레 파릇파릇 빛났다. 달은 구름 더미를 요리조리 헤치고 빠져나왔다가는, 새로 몰려오는 구름 더미에 애처롭게도 휘감기곤 했다. 집집의 지붕들은 싸늘한 빛으로 물들고, 대기에는 차가운 물기가 돌았다. 땅 위엔 차단한 정적이 흘렀다.
철과 나는 베란다 위에 앉아 있었다. 막연한 원시적인 공포같은 소심한 감정에 사로잡혀 둘이 다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철은 먼 하늘가에 시선을 준 채 연방 담배를 피웠다. 이렇게 한 시간쯤 묵묵히 앉았다가 철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형은 스물일곱 살이었고 동생은 스물두 살이었다. 형은 좀 둔감했고 위태위태하도록 솔직했고, 결국 좀 모자란 축이었다.
해방 이듬해 삼팔선을 넘어올 때, 모두 긴장해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판에 큰소리로,
"아하, 이기 바루 그 삼팔선이구나이 아하"
이래 놔서 일행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때도 화를 내며 형을 쥐어박았고, 형은 엉엉 울었고 어머니도 찔끔찔끔 울었다.
아버지는 애초부터 이 형을 단념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불쌍해서 이따금 찔끔거리곤 했다.
물론 동생에 대한 형으로서의 체면이나 위신 같은 것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던 탓에, 이미 철들자부터 형을 대하는 동생의 눈 언저리와 입가엔 늘 쓴웃음 같은 것이 어리어 있었으니, 하얀 살갗의 좀 여윈 얼굴에 이 쓴웃음의 동생의 오연(태도가 거만하거나 그렇게 보일 정도로 담담)한 성미와 잘 어울려 있었다.
어머니는 형에 대한 아버지의 단념이나 동생의 이런 투가 더 서러웠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형은 아버지나 어머니나 동생의 표정에 구애없이 하루하루가 그저 태평이었다.
사변이 일어나자 형제가 다 군인의 몸이 됐다.
1951년 가을, 제각기 놈들의 포로로 잡혀, 놈들의 후방으로 인계돼 가다가 둘은 더럭 만났다.
해가 질 무렵 무너진 통천(通川)읍 거리에서였다.
형은 대뜸 울음을 터뜨렸다.
펄렁한 야전 점퍼에 맨머리 바람이었고, 털럭털럭한 군화를 끌고 있었다.
동생도 한순간은 좀 흠칫했으나, 형이 울음을 터뜨리자 난처한 듯 고이 외면을 했다. 형에 비해선 주제가 좀 덜했고 초록색 작업복 차림이었다.
시월달 밤이라 꽤 선들선들했다. 멀리 초이렛날 밑에 태백산 줄기가 써늘히 뻗어 있었다. 형은 동생 곁에 누워 자꾸 쿨쩍거리기만 했다.
일행 모두가 잠들었을 무렵, 경비병들도 사그라진 불 곁에 둘러앉아 잠이 들었다. 하늘 한복판으론, 이따금 끼룩끼룩 밤기러기가 울며 지나갔다.
그제야 형은 울음을 그쳤다. 잠시 기러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더니 동생의 귀에다 입을 가져다 댔다.
"벌써 기러기가 지나구나이."
"......"
잠시 조용했다가,
"넌 어떡허다 이 꼬락서니가 된?"
"......"
푸르끼한 얼굴이 히죽 한번 웃었다.
"......"
"난 잡힌 지 한 보름 됐다. 고향 삼방(三防) 얘긴 아예 입 밖에도 내지 마라."
"......"
"날 형이라 그러지두 말구."
"......"
한참 후, 형은 또 쿨쩍쿨쩍 울었다.
밤나무 가지 사이론 별들이 차갑게 깔려 있었다.
이튿날, 새하얀 가을날 볕 속을 일행 70여 명은 걷고 있었다.
초조한 불안의 고비를 넘어서 이미 이 상태에 젖어 익은 가라앉은 표정들이었다. 행렬엔 막연한 침울함, 살벌함, 뿐만 아니라 고요함이 흘렀다. 언뜻 봐선 퍽 평화스럽게 보였다. 형제는 행렬의 중간쯤을 가지런히 서서 걸었다.
이 속에서, 형은 주위에 대한 쌔록한 관심과 놀라움과 솔직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펄렁한 야전 점퍼에 털럭털럭한 군화로 해서, 그러지 않아도 허술한 몰골이 더욱 허술해 보였다.
"아하, 저 밤나무 굉장히 크다. 한 오백 년은 묵었겠다."
"이젠 낮이 꽤 짤라졌구나이......"
"야아, 저 까마귀 떼들 봐라."
이러며 머리를 이리저리 주억(고개를 앞뒤로 천천히 끄덕)거렸다. 목소리도 퍽 뚜릿뚜릿 했다. 그 모습도 웬 활발기를 띠고 있었다. 이러곤 곁에 있는 동생을 힐끔힐끔 곁눈질해 보았다.
그러나 동생의 하얗게 야윈 표정엔 싸늘한 고요함이 풍겨 있을 뿐이고, 같이 끌려가는 다른 사람들은 이런 형을 물끄러미 건너다만 보고, 둘레에 따르는 경비병들은 끼드득거리며 웃었다.
"저 새끼가 돌았나, 야, 너 몇 살이냐?"
"스물일굽 됐수다."
"고향이 어디야?"
"저......"
"너 여기가 어딘 줄 알어!"
형은 벌죽 웃으면서,
"참 여기가 머라구 그러는 뎁니까?"
경비병은 발끈 성을 내는 눈치다가, 형의 표정을 보자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날 밤도 형은 동생 곁에 누워 간밤처럼 쿨쩍쿨쩍 울었다. 울면서 동생에게, 넌 목석(木石)이다, 눈물도 없느냐, 집 생각두 안 나느냐, 모두 보고 싶지도 않느냐, 넌 이 꼬락서니가 그렇게두 마땅하니, 마땅해, 좋겠다, 장하다, 이놈아...... 이렇게 넋두리하고 있었다.
간밤에도 울긴 울었지만, 그래도 좀 반가워하는 듯한 표정이 섞여 있었는데, 이날 밤은 그렇질 않았다. 시종 노여운 듯 부리부리해 있었다.
동생은 여전히 대답이 없다.
하늘 한가운데로 또 기러기가 울며 지나가고 먼 어느곳에선 이따금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은 후들짝 놀라며,
"야야 여기두 개가 짖누나이......?"
"......"
"기러기가 또 지나가누나."
잠시동안 형은 차분하게 가라앉는 눈치더니 다시 또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흘째 되던 밤이었다.
밤이 어지간해서 또 형은 동생의 허리를 쿡 찌르곤, 점퍼 포켓에서 웬 밥덩이 한 덩이를 꺼내며 벌쭉 웃었다. 초저녁에 한 덩이씩 얻어먹은 그 수수밥 덩이였다.
어느새 반은 갈라서 어적어적 씹으며,
"자, 묵어."
반은 동생에게 내밀었다.
"......"
동생의 좀 의아한 표정에 벌컥 성을 내듯, 그러나 여전히 귓속말로,
"자,...... 빨리 받어라, 받어...... 초저녁에 가만히 보니 몇 덩이 남을 것 같드구나. 고 앞에 지키구 섰다가 죽는 시늉을 했어, 그 새끼 있잖니? 어제 낮에 날 보구 지랄하던 새끼...... 그 새끼가 한 뎅이 던저주두나, 먹는 것체럼 허군 슬쩍 집어뒀다...... 그 새끼가 기래두 기중 맘이 좀 낫시야."
이러군 또 벌쩍 웃었다.
비로소 동생도 받아먹기 시작했다. 어느새 형은 다 먹어치우고 손가락을 쭉쭉 빨며,
"어때 좀 낫지? 행겔 덜 허지?"
이날 밤이 깊도록 형은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집에 돌아가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면 모두 굉장히 웃을 기다, 더더구나 어머닌 허리가 끊어지게 웃을 기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나...... 이렇게 연방 지껄이며 혼자 히득히득거렸다.
이따금 또 흠칫흠칫 놀라며,
"야아, 너, 저 개소리 듣니?"
"......"
"기러기 소리 듣니?"
"......"
사실 이따금 개가 짖고 하늘 한가운데로 기러기가 울며 지나가고 있었다. 형은 무슨 깊은 생각에나 골똘하듯 한참은 말이 없었다.
이튿날 저녁도 그 이튿날 저녁도 형은 꼭꼭 그 경비병에게서 밥 한 덩이를 얻어 넣었다.
그 사람은 얼굴이 검고 두 눈이 디룩디룩 한 게 꽤 익살꾸러기이면서도 한편으로 성미 급한 데가 있었다. 걸핏하면 너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너의 집인 줄 아느냐, 이러면서 형을 후려치는 것이었지만 형이 엉엉 울면 너털너털 웃으며 재미있어했다.
이러다가도 저녁이면,
"야, 낮에 때린 값이다...... 네 어머이 노릇을 좀 해야겠다."
꼭 밥 한덩이를 더 얻어 주곤 했다.
형은 그것을 점퍼 포켓에 넣어두었다가, 밤이 깊어서 모두 잠들었을 무렵에야, 동생과 반씩 갈라 먹곤 했다.
거의 매일 밤 이랬다. 차츰 동생도 밤이 어지간하면 형이 얻은 밥덩이를 은근히 기다리게끔 되었다.
이렇게 밥을 못 얻은 저녁엔, 형은 또 흑흑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울면서 동생에게, 넌 내가 혼자만 먹은 줄 알고 화가 나서 뾰로통해 있나, 이렇게 못 얻을 때두 있지, 매일 저녁이야 어떻게 얻니, 사람의 일이 한도가 있는 법이지...... 이렇게 넋두리했다. 동생은 역시 대답이 없었다. 형은 더욱 신명이 나서 밥 한 덩이를 전부 동생 앞에 내밀었다.
"자, 너 다 묵어."
동생이 반을 가르려 들면, 형은 또 벌컥 성을 내며,
"난, 때때루 아침에도 얻어 먹잖니? 이침에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먹는 거다, 너 안 줄래 안 주는 게 아니구...... 다른 새끼덜 눈이 있어 놔서...... 이렇게 밤까지 기대릴람 하루 종일 주머이다 넣어둬야 되겠으니, 손으로 주물럭거려서 손때가 다 옮아오르구..... 또 사실 견딜 수가 있니? 목을 닳아서 히히히......"
동생도 형의 고집을 아는 터라 혼자서 다 먹곤 했다.
형은 벌쭉벌쭉 웃으며, 동생 손에 있는 밥덩이를 만져보면서,
"좀 퍼뜩퍼뜩 먹으려무나, 오무작오무작거리지 말구. 어떠니 오늘 저녁 건 쌀알이 좀 많니? 좀 괜찮은 것 같니?"
이러면서 침을 꿀컥 삼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엔 이렇게 동생이 한 덩이를 다 먹어치웠을 때 형은 갑자기 또 울음이 터졌다.
"......"
동생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형은 동생의 허벅다리를 마구 꼬집어 뜯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는 사이엔 동생은 이런 형 앞에 지난날 스스로가 간직하고 있었던 오연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형이 남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거나 그렇지 않은 것은 물론, 좀 어처구니 없었으나 이런 형의 까닭으로 해서 도리어 마음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죽하게 두 팔을 들어올리는 싱거운 뒷모습이 오히려 어울리는 형의 모습이긴 하다! 생각하며, 이런 꼬락서니로 형과 만나진 데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이런 형일수록 오히려 형 다운 것이, 종래의 모든 것을 철저히 단념해 버리고 잃어버린 지금 마음 밑바닥에 철저한 무관심이 자리잡고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이런 형의 그 마음가락에 휩쓸려 들어가는 스스로를 의식하며 벅차게 서러워오고 지난날의 형에 대한 스스로가 후회되며, 더불어 엉뚱한 향수 같은 것이 즐거움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지금 이런 형에게서 의지 논리로서 얻어진 신념 같은 것이 멀리 미치지 못할 어떤 위엄 같은 것조차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동생은 형의 귀에다 입을 대고 불쑥,
"낼은 세수나 좀 하자."
하곤 픽 웃어버렸다. 도시 처음으로 형에게 한 말이었다.
"......?"
형도 조금 놀라며,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피식 웃었다.
"야하, 이젠 꽤 춥다이."
이렇게 말했다.
이튿날, 행렬 속에서 형은 세수를 좀 해야겠는데, 세수를 좀 해야겠는데, 세수를 좀 해야겠는데, 이렇게 연탕 혼잣소릴 지껄여댔다.
동생은 새삼스레 좀 난처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형은 그냥 같은 소릴 지껄여댔다.
이렇듯 어느 날 새벽엔 형의 이 소리가 기어이 행렬 전체를 강한 실감으로 휩싸 버렸다.
동생이 맞받아 불쑥,
"참으로 오늘은 세수들을 하구 떠납시다."
한 것이다.
일순간 조용했다. 다음 순간 수선스럽게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끼드득거리며들 웃었다. 다시 조용했다. 누구의 얼굴을 보나 실로 세수를 좀 해야 할 얼굴들인 것이다. 후다닥후다닥 놀라듯이. 세수를 하구 떠나자, 오늘은 세수를 하자...... 한쪽 구석에서 형은 좀 겸연쩍은 듯이 멀뚱이 동생을 건너다보며 두 손으로 턱을 씩씩 문지르고 있었다. 누구나 집합 장소를 나가지 않고 머뭇머뭇거렸다. 세수를 하자 세수를 하자...... 집합이 늦다고 뛰어들어오던 경비병들도 일행들의 이런 분위기를 직각하자, 피식피식들 웃었다. 이 꼴을 본 일행들은 한꺼번에 웃음이 터졌다. 신들이 나서, 세수를 합시다, 오늘은 세수를 합시다...... 새하얀 가을 햇살이 온 강산에 내리부을 무렵 일행은 긴 방죽이 휘돌아간 강가에 쭈름히 앉아, 왁자지껄하며들 세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밤 퍽 즐거워할 줄 알았던 형은 어째선지 초저녁부터 흑흑 흐느껴 울었다.
밤이 깊어서 또 동생의 귀에다 입을 대고, 오늘 저녁도 그놈이 없어서 밥덩일 못 얻었다. 아마 변소 갔었는가부드라, 이러곤 한참을 조용하다가 또 흐느껴 울었다. 한참 후엔 울음을 그치고 우락부락 성을 내며,
"야, 너 낼 저녁엔 밥 한 뎅이 혼자 또 다 먹으려니 생각허지? 나 입때꺼정 저녁 몇 번 굶은지 아니? ...... 나 두 번이나 굶었다...... ."
“…….”
“거푸 이틀 저녁 못 얻을 때두 있거든. 낼 저녁에 못 얻으문, 난 또 굶으란 말이지? 그렇지?
“…….”
동생은 어둠 속에서 그냥 물끄러미 형을 건너다만 보았다.
기어이 눈물이 두 볼을 흘러내렸다.
형은 동생이 우는 것을 처음 보자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당황하며 머뭇머뭇거리더니,
“울지 마라, 울리 마라, 괜찮다, 오늘 세수도 했잖니.”
하고는 도리어 제 편에서 더더 흐느끼고 있었다.
원산에 다다르자 경비병들은 모두 바뀌었다. 형에게 늘 밥덩이 하나를 더 얹어주던 그 사람은 형 곁으로 와서 익살을 피우며,
“야, 섭섭허다. 몸조심해라.”
형은 한쪽 입모서리를 씰룩이며 머리만 한번 끄덕이더니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저어, 성함이 머라구 그럽니까?”
“나? 네 사촌이다. 네 어머니두 되구.”
하고 녀석은 너털너털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형은 또 울었다. 밤이 깊도록 어머니까지 불러가며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동생도 형 곁에서 남 모르게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울었다. 그저 형의 설움과 울음을 따라 울 뿐이었다. 동생도 이렇게 울면서 어쩐지 마음이 조금 흐뭇했다.
이날 밤의 감시는 밤새도록 엄했다.
바깥은 첫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형은 울음을 그치고 불쑥,
“야하, 눈이 내린다, 눈이, 눈이. 벌써 겨울이 다 됐네.”
물론 감시병들의 감시가 심하니까 동생의 귀에다 입을 대지도 않고 이렇게 혼잣소리처럼 지껄였다.
“저것 봐, 저기저기, 에에이, 모두 잠만 자구 있네.”
동생의 허리를 쿡쿡 찌르기만 하면서…….
어느새 양덕도 지났다. 하루하루는 수월히도 저물어갔고 겨울 하늘은 변함없이 푸르렀을 뿐이었다. 산도 들판도 눈에 덮여 있었다. 경비병들의 겨울 복장을 바라보는 형의 얼굴에는 천진한 애들 같은 선망의 표정이 어려 있곤 했다. 날로날로 풀이 죽어갔다.
어느 날 밤이었다. 일행도 경비병들도 모두 잠들었을 무렵, 형은 또 동생의 귀에다 입을 대고, 이즈음에 와선 늘 그렇듯 별나게 차악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 새끼 생각이 난다. 맘이 꽤 좋았댔이야이.”
“…….”
“난 원래 다리에 담증이 있는데이. 너두 알잖니. 요새 좀 이상한 것 같다야.”
하고는 헤죽이 웃었다.
“…….” / 동생은 놀라 마주 쳐다보았다. 여느 때 없이 형은 쓸쓸하게 웃으면서 두 팔로 동생의 어깨를 천천히 그러안으면서
“칠성아, 야하 흠썩은 춥다.” / “…….”
“저 말이다, 엄만 날 불쌍히 여기댔이야 잉. 야 칠성아, 칠성아, 내 다리가 좀 이상헌 것 같다야이.” / “…….”
동생의 눈에선 다시 눈물이 비어져나왔다.
형은 별안간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동생의 얼굴을 멀끔히 마주 쳐다보더니,
“왜 우니, 왜 울어, 왜, 왜. 어서 그치지 못하겠니.”
하면서도 도리어 제 편에서 또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튿날, 형의 걸음걸이는 눈에 띄게 절름거렸다. 혼자소리도 풀이 없었다.
“그만큼 걸었음 무던히 왔구만서두. 에에이, 이젠 좀 그만 걷지덜, 무던히 걸었구만서두.”
하고는 주위의 경비병들을 흘끔흘끔 곁눈질해 보았다. 경비병들은 물론 알은 체도 안 했다. 바뀐 사람들은 꽤나 사나운 패들이었다.
그날 밤 형은 동생을 향해 쓸쓸하게 웃기만 했다.
“칠성아, 너 집에 가거든 말이다, 집에 가거든.”
하고는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벌쭉 웃으면서,
“히히, 내가 무슨 소릴 허니. 네가 집에 갈 땐 나두 갈 텐데, 앙 그러니? 내가 정신이 빠졌어.”
한참 뒤엔 또 동생의 어깨를 그러안으면서,
“야, 칠성아!”
동생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쳐다보기만 했다.
바깥은 바람이 세었다. 거적문이 습기 어린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히곤 하였다. 문이 열릴 때마다 눈 덮인 초라한 들판이 부유스름하게 아득히 뻗었다.
동생의 눈에선 또 눈물이 비어져나왔다.
형은 또 벌컥 성을 내며,
“왜 우니, 왜? 흐흐흐.”
하고 제 편에서 더더 울었다.
며칠이 지날수록 형의 걸음은 더 절룩거려졌다. 행렬 속에서도 별로 혼잣소릴 지껄이지 않았다. 평소의 형답지 않게 꽤나 조심스런 낯색이었다. 둘레를 두리번거리며 경비병의 눈치를 흘끔거리기만 했다. 이젠 밤에도 동생의 귀에다 입을 대고 이것저것 지껄이지 않았다. 그러나 먼 개 짖는 소리 같은 것에는 여전히 흠칫흠칫 놀라곤 했다. 동생은 또 참다못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형은 왜 우느냐고 화를 내지도 않고 울음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동생은 이런 형이 서러워 더더 흐느꼈다.
그날밤, 바깥엔 함박눈이 내렸다.
형은 불현 듯 동생의 귀에다 입을 댔다.
“너, 무슨 일이 생겨두 날 형이라구 글지 마라, 어엉?”
여느 때답지 않게 숙성한 사람 같은 억양이었다.
“울지두 말구 모르는 체만 해, 꼭.”
동생은 부러 큰소리로,
“야하. 눈이 내린다.”
형이 지껄일 소리를 자기가 지금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이미 형은 그저 꾹하니 굳은 표정이었다.
동생은 안타까워 또 울었다. 형을 그러안고 귀에다 입을 대고,
“형아 형아, 정신차려.”
이튿날, 한낮이 기울어서 어느 영 기슭에 다다르자, 형은 동생의 허벅다리를 쿡 찌르고는 걷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형의 걸음걸이를 주의해 보아오던 한 사람이 뒤에서 따발총을 휘둘러 쏘았다.
형은 앉은 채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 사람은 총을 어깨에 둘러메면서,
“메칠을 더 살겠다구 뻐득대? 뻐득대길.”
철의 얘기란 대강 이러했다.
여름 날씨란 변덕도 심하다. 금세 한 소나기 쏟아질 것 같던 서편 하늘의 구름이 어느새 씻은 듯 없어졌다. 온 하늘에는 별들만 새파랗게 깔려 있고, 초이레달이 한복판에 허전히 걸려 있다. 바람은 씽씽 더욱더 세차게 불고, 집집의 지붕들은 깊숙하고도 싸늘한 빛으로 물들고, 땅 위에는 차단한 정적이 흘렀다. 철은 또 담배를 꺼내 붙이면서 말끝을 맺었다.
“자, 넌 어떻게 생각하니? 형이라는 사람의 그 모자람이라든가 혹은 둔감이라는 것을? 결국 형의 그 둔감이란 어떤 표준에 의한 의례적인 몸짓이라든가 상냥스러움, 소위 상대편에 눈치껏 적응하고 또는 냉연하고 할 수 있는 능력의 결핍,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그 표준에 의거해서 생활을 다루어나가는 마음의 긴장을 늘 잃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 일정한 표준의 울타리 속에서 민감하다든가 우아하다든가 교양이 높다든가 앞날이 촉망된다든가 이런 소릴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아버지라는 사람도 이런 표준에 의해서 큰아들을 단념했었고, 어머니는 큰아들을 불쌍히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포로로 잡힌 그들 형제 중에 누가 더 둔감했다고 보겠느냐, 형이냐? 동생이냐? 그 둔감이란 뜻부터가 어떻게 되느냐? 과연 누가 더…….”
나는 아직 무엇인지 불안했고 얼떨떨할 뿐이었다. 자꾸 저 하늘 한복판 초이레달의 허전스러움 같은 것이 걱정되었다.
“결국 동생은 만포진의 수용소에서 아득한 날을 보내다가 지난 포로 교환 때 나왔다.”
철은 갑자기 내 곁으로 바싹 다가앉으면서 이때까지의 어조와는 생판 다른 조용한 목소리로,
“내 어릴 때 이름이 칠성이었다.”
“…….”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철의 입가에는 연한 조소 같은 것이 떠 있었다.
“자, 나는 다시 이렇게 범연한 내 고장으루 돌아왔구, 다시 내 그 오연함이란 것을 되찾아입었다. 그런데 그전보다 좀 편편치 않다. 뒷받쳐야 할 의지라는 것이 자꾸 다른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로선 아마 손해일는지도 모르지.”
텅 빈 하늘에 바람은 그냥 미친 듯이 불고 달은 사르르사르르 떠는 듯했다.
줄거리
어느 여름 저녁 베란다에서 '나'는 '철'에게 6 · 25 때 북한군의 포로로 잡혀 함께 이송되었던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형'은 27살, 동생 '칠성'은 22살이 된다. 형은 둔감하고 위태위태하도록 솔직하며 좀 모자란 편이었다. 아버지는 형을 단념하였고, 어머니는 형을 불쌍하게 여겼으며, 동생은 오연(태도가 거만하거나 그렇게 보일 정도로 담담함)한 눈빛으로 형을 대했다.
전쟁이 터지고 형과 동생은 국군으로 참전하나, 각각 포로로 잡힌다. 그리고 후방으로 인계되어 가는 길에 서로 만나게 된다. 동생은 상황에 맞지 않는 어수룩한 행동을 하는 형을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자신을 위하는 형에게 점점 마음을 열고 형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게 된다.
어느 날 밤 형이 동생에게 담증 때문에 다리가 이상하다고 말하자 동생은 눈물을 흘린다. 이튿날 형은 절름거리며 걷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절룩거린다.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밤 형은 불현듯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자신을 형으로 여기지 말고 모른 체하라고 당부한다. 동생은 형이 지껄일 소리를 대신하고 울었지만 형은 굳은 표정을 지을 뿐이다. 이튿날 형은 길을 가다가 털썩 주저앉고 만다. 뒤에서 경비병이 가차 없이 총질을 하고, 형은 앉은 채 꼬꾸라진다. 여기서 형제의 이야기가 끝나고 '철'은 '나'에게 자신의 어릴 적 이름이 바로 '칠성'이었다고 말한다.
구성 단계
- 발단 : 여름 저녁에 '나'는 '철'로부터 전쟁 때 북한이 포로로 잡혀 함께 이송되었던 형과 아우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 전개 : 상황에 맞지 않는 어수룩한 행동을 하는 형을 동생은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자신을 위하는 형에게 점점 마음을 열고 형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 위기 : 담증에 걸린 다리가 오랜 행군으로 곪아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자 형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모른 체하라고 연신 당부한다.
- 절정 : 형은 결국 행군 중 주저앉게 되고 북한군의 총을 맞아 죽게 된다.
- 결말 : '나'는 '철'로부터 이야기 속의 동생이 자신이라는 고백과 함께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를 듣게 된다.
핵심 정리
- 배경 : 6.25 전쟁
- 갈래 : 현대소설, 단편소설
- 시점 : 외부 이야기(1인칭 관찰자), 내부 이야기(전지적 작가)
- 구성 : 액자식 구성
- 외부 이야기 : 나와 철이 베란다 위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형제에 관한 이야기)
- 내부 이야기 : 형제의 사연
- 외부 이야기 : 형제 중 동생이 철임을 밝힘(내 어릴 때 이름이 칠성이었다.)
- 제목의 의미 : '나상(나체)'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허위와 위선을 벗어 버린 진실한 인간의 모습을 비유한 말이자 본연의 순수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천진난만한 형의 모습
- 주제 → 극한 현실에 대응하는 올바른 삶의 방식에 대한 모색, 전쟁의 비극성과 근원적 인간성의 소중함
- 발표 : 1956년 ‘문학예술’지 1월호
- 표현상의 특징
- 내화와 외화를 넘나드는 한 인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작품의 주제를 확장하는 효과를 얻음
- 전쟁의 광폭함과 그에 휘둘리는 인간 군상을 통찰력 있게 그려 냄
- 형의 죽음과 대조되는 소재(함박눈)를 활용하여 결말의 비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킴
- 등장인물
- 형 : 매사 호기심 많고 둔감하고 솔직하여 조금 모자라 보이는 순수한 인물로 전쟁 포로 이송 과정 중 총에 맞아 죽음
- 동생 : 철. 어리숙한 형을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형의 순수함에 마음을 열고 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게 됨
이호철(李浩哲, 1932년 3월 15일 ~ 2016년 9월 18일)
함경남도 덕원군 현면 현동리(현 강원도 원산시 현동리)에서 태어났다. 첫 작품은 탈향(1955), 마지막 작품은 판문점 2(2012)이다. 전광용의 '꺼삐딴 리'와 함께 '닳아지는 살들(1962)'로 제7회 동인문학상 수상, '판문점(1962)'으로 제7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은관 문화 훈장을 받았다.
원산시 출신의 원로 소설가다. 분단 문학의 거장이며, 본인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남과 북, 전쟁과 분단에 대한 소설을 주로 썼다. 6.25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통일과 민족의 화합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져왔다. 통일이 되기를 누구보다 고대했으나, 통일이 되기 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32년 함경남도 덕원군 현면 현동리에서 아버지 이찬용과 어머니 박정화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8.15 광복 후 1946년 북한의 토지개혁으로 집안 소유의 토지를 모두 빼앗기고 1948년 이웃의 중청리로 쫓겨나갔다. 그는 갈마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원산 시내의 원산 고급중학에 입학했는데, 3학년 때 6.25 전쟁이 발발하여 조선인민군에 징집되었다. 그러다가 1951년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남하했다. 1주일이면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내려왔으나, 그게 가족과의 생이별이었다.
월남한 후 부두 노동자 등을 전전하며 습작하던 이호철은 1955년 ‘문학예술’에 단편 ‘탈향’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초기 작품들은 사회 저변의 소시민적 삶의 생태를 주로 그렸으며, 1961년에 단편 〈판문점(板門店)〉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한반도 남북의 사회 심리에 대한 예리한 분별력을 보여 주었다. 이후 장편소설 ‘소시민’ ‘서울은 만원이다’ ‘남풍 북풍’ ‘그 겨울의 긴 계곡’, 중단편 소설 ‘퇴역 선임하사’ ‘무너지는 소리’ ‘큰 산’, 연작소설 ‘남녘 사람 북녘 사람’ 등을 썼다. 60여 년 그가 붙들어 맨 문학의 화두는 분단의 상처였다.
1970년대 전반기에 발표한 연작소설 《이단자(異端者)》는 조국의 분단 상황이 빚은 비리(非理)들을 인정적인 차원에서 잘 형상화했다. 1970년대 문단·작단에 이르기까지 활약한 소장(少壯) 작가들의 대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저서 및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나상(裸像)》,《이단자(異端者)》, 장편소설 《소시민》,《서울은 만원(滿員)이다》,《역여(逆旅)》를 비롯해 여러 권이 있다. 1962년 《닳아지는 살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민주화 운동에도 투신해 고은 선생과 자유실천문인협회를 창설했다. ‘문인 간첩단’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기도 했다. 냉전시대가 낳은 분단의 질곡은 문학뿐만 아니라 개인사를 관통하는 시련이기도 했다.
아내 조민자 씨는 “늘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하시면서 남북 관계가 냉각되는 걸 안타까워했다”라고 말했다.
뇌종양 판정을 받아 입원하기 하루 전까지도 문인협회가 발간하는 ‘월간문학’에 연재하는 ‘우리 문단의 지난 60년 이야기’ 원고를 썼다. 잡지사에 넘기지 못한 13회가 유작이 됐다.
최일남, 최성배, 신경림, 김남조, 유안진, 김승옥, 한말숙 등 한 시대를 함께 호흡했던 원로 문인들을 포함한 문인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와 추모했으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 이재오 전 의원 등도 찾았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이문구(2003)·박경리(2008) 선생의 장례식에 이은 3번째 문인장이 치러질 예정이다.
주요 작품
- 장편소설 : 소시민 (1964~1965), 서울은 만원이다 (1966), 심천도 (1967), 재미있는 세상 (1969~1971), 남풍 북풍 (1972~1973), 그 겨울의 긴 계곡 (1977~1978), 물은 흘러서 강 (1982~1983), 문 (1988~1989), 네 겹 두른 족속들 (1988~1989),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 (2009)
- 단편소설 : 탈향 (1955), 나상 (1956), 판문점 (1961). 닳아지는 살들 (1962), 큰 산 (1970), 이단자 (1972~1974), 남녘 사람 북녘 사람 (1983~1
이해와 감상
작가는 원산고등학교 3학년 때 6·25 전쟁을 맞아 인민군에 동원되었다가 국군포로가 되어 북송되던 중 풀려나자, 그해 12월 단신으로 월남해 부산에서 부두 노동자, 미군부대 경비원 등으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은 등단작을 비롯한 초기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1955년 황순원에 의해 단편소설 '탈향(脫鄕)'이 문예지 《문학예술》에 추천되고, 이듬해 '나상(裸像)'으로 추천이 완료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분단의 아픔을 그린 '탈향'을 비롯해 '나상', '소묘', '파열구' 등 전쟁의 상흔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초기 작품들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보여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남북 분단 문제를 비롯해 남쪽 소시민들의 삶을 예리한 역사 감각으로 조명해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초기의 서정적 차원에서 벗어나 현실세계를 넓게 포용하는 객관적 리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특히 1961년 《사상계》에 발표한 단편소설 '판문점'은 초기의 개인적 체험에서 사회적 현실로 관심의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과도기적 작품으로서 작가의 문학적 변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소설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북한군의 포로가 된 형제를 통하여 근원적인 인간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철'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형은 세상 파악이 빠르고 명석한 동생과 달리, 어수룩하지만 주위에 대한 관심이 많고 솔직하며 동생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포로로 잡힌 상황에서 형은 여전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얼뜬 모습을 보이면서 동생을 난처하고 화나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동생은 차츰 자신을 위하는 애틋한 마음과 솔직함을 지닌 형에게 이전과 다른 느낌을 받게 되고, 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게 된다. 형이 총에 맞아 죽은 후, 포로에서 풀려난 동생은 현실 논리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거기에 적응해 온 '살아남은 자들'의 영리함이 형이 지니고 있었던 둔감함과 순진성보다 낫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형의 모습은 이 소설의 제목인 '나상(나체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올바른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전쟁은 특히나 6 · 25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갈등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동족상잔의 비극과 더불어서 국제 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서 고통과 아픔을 겪었으며 이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좀 더 극적으로 그리는 것이 소설인 듯하다. 소설을 통해서 비극을 간접 체험하고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작가는 벌거숭이 인간인 형이 외부의 폭력에 의해서 희생이 되는 모습을 통해서 근원적인 인간성을 살펴보려 하는데 폭력성의 극한적 모습인 전쟁이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할 듯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학 작품을 통해서 성찰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전쟁의 폭력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야 하는데 그런 면이 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195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북한군의 포로로 되어 만난 형제가 이송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천진난만한 '벌거숭이 인간'인 '형'이 외부의 폭력에 희생되는 모습을 묘사하여 근원적인 인간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준다. 또한 이 소설은 포로 호송이라는 상황을 빌려 구성원을 획일화하는 사회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형제가 전쟁 중에 북한군의 포로가 되어 이송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형은 둔하고 조금 모자란 사람인 반면, 동생은 평소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이었으나 이송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동생은 차츰 모자라 보였던 형의 솔직함과 순수함, 자신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느끼게 되면서 형의 삶의 방식을 조금씩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형이 총에 맞아 죽은 후, 포로에서 풀려난 동생은 살아남은 자들의 영리함이 형의 둔감함과 순진함보다 낫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호철, <닳아지는 살들>
분단의 아픔과 이산가족 문제 등 남북문제를 작품화해 온 대표적 분단 작가답게 <닳아지는 살들>에서는 전후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실향민 가족의 권태와 비극을 그려내고 있다. 제목인 ‘닳아지는 살들’은 힘들어지는 이산가족의 삶을 의미한다.
이호철 작품의 특징과 결함
작가의 50년대 소설은 소외된 실향민이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삶의 외곽지대를 맴돌며 상처 받고 슬퍼하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의 소설에서 가장 뚜렷하게 부각되는 인물형은 환경에 오염되지 않고 인간의 타고난 보성을 간직하고 사는 순백색의 인물이다. 작가는 작품의 분위기 묘사와 상황 속의 심리 변화에 대한 세밀한 추적이 주이다.
소설의 첫 번째 결함은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유형적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모든 작품의 인물들이 하나하나 그 자체의 개성을 지니지 못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창녀들의 모습이다. 작가의 안이한 인물 설정의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두 번째 결함은 관념적이고 복잡한 수사로 일관된 문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문장이 지나치게 길고 복잡하게 연결되고 있으며 또 거기에 동원된 어휘들이 서로 응집되지 못한 채 흩어지거나 상호 모순적인 의미로 충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울었다' '흐느꼈다' '눈물을 흘렸다.' 세 번째 결함은 빈번한 '시점의 이동'과 '작가 개입'을 들 수 있다. 50년대 소설은 전후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개인적 감정적인 면에서만 단순화시켜 나타낼 뿐, 역사적 사회적 시각으로 구체화시켜서 그리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을 지적할 수 있다.
[한국전쟁 60주년-문학으로 본 전쟁과 기억] 소설가 이호철
“부산 피난 일기가 내 소설의 뿌리”
함경남도 원산이 고향인 실향민 소설가 이호철(78)은 6·25 전쟁과 민족분단의 비극, 이산가족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뤄온 분단문학 작가군의 중심에 서 있다. 가족을 두고 고향을 떠나온 실향의 아픔, 전쟁 및 분단으로 뒤틀린 동시대인들의 삶은 그의 문학의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지난 18일 서울 불광동 자택에서 이호철 작가를 만났다. 하얀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그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목소리에 기운이 넘쳐흘렀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인데 6·25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습니까.
“6·25가 터졌을 때 원산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어요. 그해 7월 인민군에 동원됐고 10월에 강원도 양양에서 포로가 됐죠, 북진하는 군을 따라 북으로 호송되다 천행으로 풀려나 고향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해 12월 9일 다시 혼자 남으로 내려왔어요.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원자폭탄이 떨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해 무작정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었죠. 사람들이 온통 원산 선창가로 모여들었고 그 틈에 끼어 미군 LSD(상륙 수송선)에 몸을 실어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일주일이면 돌아갈 줄 알았는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네요.”
그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 고향을 뜨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일본에서 나온 문고판 에세이집 한 권을 몸에 지니고 나올 정도로 문학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막심 고리키가 톨스토이, 체호프, 안드레예프 등 3명의 러시아 문호에 대한 추억을 정리한 ‘3인의 추억’이란 책이었죠. 고등학교 3학년 때 교내 문학서클 책임자였는데 많은 책을 읽었어요. 러시아 소설에 특히 관심이 많았지요. ‘광장’을 쓴 최인훈이 2년 후배였어요.”
-전쟁 때 비극적인 상황을 숱하게 겪었을 텐데.
“인민군에 동원되고 바로 우리 부대는 원산 신풍리 뒷산 골짜기에 호를 파고 잠복해 있었어요. 미군이 어떻게 알았는지 대대적인 공격을 해 왔지요. 구름이 잔뜩 낀 날이었는데 미군 폭격기들이 커다란 폭탄을 퍼부어 댔죠. 폭탄이 호에 정통으로 떨어져 수십 명이 처참하게 떼죽음을 당하는 걸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지요. 전투기 기총소사로 사람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것도 봤고요.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었던 거죠.”
-그런 전쟁터에서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극한 상황이다 보니 매 순간마다 어떻게 살아남느냐에 골몰했지 딴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생각해 봐야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완전히 무심(無心)의 상태로 지낸 거죠.”
-부산에서의 피난 생활은.
“부두 노동자, 제면소(국수 만드는 곳) 직공, 미군부대 경비원 등으로 일했죠. 그러면서 글을 썼어요. 51년 남포동 금강 다방으로 황순원 선생을 찾아가 제가 쓴 작품을 보여주기도 했었죠. 부산 피난생활을 일기로도 기록했는데 당시 경험은 이후 내 소설의 밑바탕이 됐지요.”
그는 52년 겨울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다. 지금의 숙명여대 뒤에 있던 미군부대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했는데 종전(終戰) 얘기가 나오던 때였는데도 밤마다 파주 쪽에서는 총소리, 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 전투기가 서울 상공까지 날아온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6·25는 우리 민족에게 어떤 사건이었나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우리 5000년 역사에 그런 비극이 다시없어요. 사람들이 광기(狂氣)에 사로잡혔던 때였던 것 같아요. 이데올로기 대립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그런 운명 같은 사건이었죠.”
그는 6·25가 자신은 물론 동시대인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내 삶을 가장 결정적으로 좌우한 것은 월남(越南)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얼마 전 원산 동창회 모임에서 누가 묻길래 그렇게 대답했더니 모두들 내 의견에 맞장구를 치더라고요. 6·25 때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죠. 가족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요행이기도 했어요. 이북에 있었다면 문학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거예요.”
-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될 당시 심정은.
“정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저는 전쟁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집에 가기는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지요.”
그가 고향을 홀로 떠나올 때 원산에는 할아버지와 부모, 누나 둘,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중국 옌볜 쪽을 통해 가족들을 찾았을 땐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세상을 뜬 뒤였다.
-실향민이기 때문에 통일에 대한 마음이 간절했을 텐데.
“남북 적십자회담 등 남북한 만남이 있을 때면 신문에 그런 심경을 담은 칼럼도 많이 썼죠. 2000년 8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평양에서 누이동생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지요. 전쟁과 분단, 통일을 빼고는 내 문학을 얘기할 수 없어요. 내 문학은 탈향에서 귀향으로 가는 여정인 셈이죠.”
하지만 그는 “이제 지쳤다”라고 했다. 일주일이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귀향의 길이 너무나도 길어졌고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리라.
“분단 극복의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했지만 아직까지도 해결의 실마리가 안 보이니 사실 맥이 빠지기도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통일에 관심이 없는 게 안타깝지요. 남북한이 갈리기 전에는 열차 표만 사면 부산서 회령까지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죠.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았었는데 분단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이제 북한 사람들을 달나라 사람으로 취급할 정도가 돼 버렸어요.”
-통일은 어떻게 이뤄야 하나요.
“나는 통일이라는 말이 싫어요. 너무 무겁거든요.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통일은 일단 놔둬야 해요. 남북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게 중요해요.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한솥밥 먹는 사람이 늘어나면 통일은 물이 차오르듯이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겠어요?”
작가는 ‘한살림 통일론’으로 불리는 자신의 통일관과는 달리 최근 남북교류가 전면 중단의 위기에 처하게 된 상황에 대해 “걱정스럽다”며 안타까워했다. 북한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
[한국전쟁 60주년-문학으로 본 전쟁과 기억] 이호철의 작품세계는… 스무 살 무렵 전쟁의 상흔 녹여내
소설가 이호철의 작품세계는 6·25 전쟁과 민족분단 문제를 씨줄로, 귀향과 통일의 염원을 날줄로 삼아 짜였다. 스무 살 남짓 그 어름에 겪은 전쟁의 기억과 상처는 이후 그의 문학의 토대였다.
전쟁이 휩쓸고 간 1950년대에 발표한 단편들은 전쟁의 상흔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55년 ‘문학예술’에 황순원 추천으로 발표된 등단작 ‘탈향(脫鄕)’은 부산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의 애환을 그렸다. 이북의 한 마을에 살던 광석, 두찬, 나, 하원 등 4명의 청소년과 젊은이가 주인공이다. 피난민을 실은 배 안에서 우연히 만나 부산이란 타향에 내던져진 이들은 부두 노동자로 일하면서 서로를 의지한다. 화물기차에서 잠을 자야 하는 고달픈 생활에도 좋은 반찬은 양보하고 고향에 함께 돌아갈 날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다. 사교성이 좋아 피난 생활에 잘 적응하는 광석과 그렇지 못한 두찬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이 와중에 광석이 기차에 치여 숨을 거둔다. 광석이 죽어가는 걸 보고도 외면했던 두찬은 죄책감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고향을 떠올리며 눈물만 짜는 어린 하원이 귀찮아져 나는 그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뿌리 뽑힌 실향민의 비애를 그렸지만 이 작품은 전후에 쏟아졌던 ‘귀향 소설’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갈 날을 꿈꾸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가려는 실향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제목에 작가의 그런 의도가 깔려 있는 셈이다.
56년에 발표된 ‘나상(裸像)’은 군인이 된 형제가 각자 포로가 돼 끌려가다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되는 이야기다. 형은 약간 모자라 남들의 비웃음을 사지만 경비병에게 어렵게 얻은 밥덩이를 감춰뒀다가 동생과 나눠 먹는 형제애를 보여준다. 형은 다리를 절게 되고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상태에서 경비경의 총격에 목숨을 잃는다. 죽음을 예감한 듯 형은 전날 밤 동생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 “무슨 일이 생겨두 날 형이라고 글지 말라. 울지두 말구 모르는 체만해. 꼭.”
이어 발표한 ‘소묘’ ‘파열구’ ‘빈 골짜기’ 등도 전쟁의 비극을 감각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담아낸 작품들이다. 작가는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어느 쪽에도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전쟁은 그곳에 휩쓸린 이들의 책임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래서 모두가 전쟁의 피해자라는 시선이 깔려 있다. 인민군에 동원됐다가 포로가 되고, 원산에서 풀려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연작 장편 ‘남녘 사람 북녘 사람’에서 포로인 ‘나’를 심문하던 국군 헌병을 묘사하는 대목에 이런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도대체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이 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같은 민족끼리, 조선 사람끼리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짓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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