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봉감별곡 어젯밤에 불던 바람은 금성(金聲, 가을의 느낌을 자아내는 소리)이 완연하다. 모란봉 추운 바람이 단풍과 낙엽을 흩날려서 평양성중으로 불어 떨어뜨리는데, 사정없이 넘어가는 저녁빛에 홀로 서창을 의지하여, 바람에 불려 떨어지는 낙엽을 맥없이 보며 앉아 있는 여인은 평양성 밖에 사는 김 진사 집 처녀 채봉이라. 김 진사는 평양에서도 조신(삼가서 몸가짐을 조심)하는 양반이라. 문벌과 재산이 남부럽지 않을 만하지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항상 한탄하더니, 만년에 딸 하나를 낳아 이름을 채봉이라 하여 금옥같이 기르니, 채봉이 재주가 총명하여 침선여공(針線女工)과 시서문필(詩書文筆)이 일취월장하고, 화용월태(花容月態, 아름다운 여자의 고운 용태)가 미인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라, 김 진사 내외 극히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