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박용래,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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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율격 : 내재율
• 성격 : 향토적, 애상적, 전원적
• 표현 : 감각적. 반복과 병렬. 표현의 절제
• 구성
- 1행 : 겨울밤의 향수(눈) ---<기>
- 2행 : 겨울밤의 향수(달빛) --<승>
- 3행 : 주체할 수 없는 향수 --<전>
- 4행 : 향수를 달래는 마음 ---<결>
• 제재 : 겨울밤
• 주제 :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 출전 : <싸락눈>(1969)
작가 박용래(朴龍來, 1925년 8월 24일 ~ 1980년 11월 21일)
시인. 1925년 충청남도 논산 강경읍에서 태어났다. 1943년 강경상업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취직했다. 해방후 1946년에 호서중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55년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로 박두진의 첫 추천을 받고, 다음 해인 1956년에 〈黃土길〉〈땅〉으로 3회 추천을 완료하여 문단에 등단했다. 《현대시학》 제정 제1회 작품상과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1973년 고혈압 때문에 교직을 사임하였다. 1980년 7월에 교통사고로 3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가, 그해 11월 21일 오후 1시,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충남문인협회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고, 1984년 대전 보문산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시인은 평소 눈물을 하도 많이 흘려서 시인과 가까이 지내던 소설가 이문구는 시전집《먼 바다》에 실린 〈박용래 약전〉에서 시인을 '눈물의 시인', '정한의 시인'이라고 명했다. 이문구는 또한 박용래가 “해거름녘의 두 줄기 눈물을 석잔 술의 안주로 삼았다”고 표현했다.
최동호는 박용래의 서정시가 김소월, 김영랑, 박목월로 이어지는 서정시의 계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끝없이 소거시켰다는 점, 그리고 정지용, 김광균의 모더니즘적 기법도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시작법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면을 갖고 있는 서정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최승호는 박용래가 근대에의 거부를 통해 궁핍의 미학과 제유의 수사학을 시작 방법으로 썼음을 밝히며 그런 염결의식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근대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것이 하나의 위대한 거부이자, 예술적 승리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것이 미약한 대안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제유의 수사학으로는 근대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맞설 수가 없으므로 뒷 시대인 1970년대의 민중적 서정시가 지니는 은유의 수사학에 길을 비켜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계를 명확히 밝혔다.
이해와 감상
잠 못 이루는 겨울밤에 떠오르는 고향 생각을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외로운 객지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향토적 시어, 반복과 병렬, 시행의 시각적 배치 등을 통해 치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마치 여백이 있는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한 시로 볼 수 있다.
이 시의 고향은 어느 한 곳을 가리킨다기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고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에 나타나는 시간은 특정한 어느 한 날이 아니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여러 날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겨울밤에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을 간결한 소묘법으로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이 그려 놓은 이 소묘 속에서 고향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은 여백의 공간 속으로 침윤되어 있을 뿐, 그 감정의 크기나 깊이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쓸쓸함과 애틋함 또는 삶의 무상감이 뒷 그림처럼 작품에 깔려 있으나, 그것이 감상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것을 4행의 절제된 시 형식과 압축된 표현으로 적절히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눈’, ‘달빛’, ‘물’, ‘바람’ 등의 전원 상징의 시어와 ‘잠’, ‘고향’, ‘마늘밭’, ‘추녀’, ‘발목’ 등의 인간적 체취의 소재를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향수를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근원적 향수는 ‘눈’‘달빛’의 시각적 이미지와 ‘물’‘바람’의 청각적 이미지의 대응을 통해 그리움과 외로움의 정서를 유발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의 본질적 고독과 인간의 생래적(生來的) 외로움이 전원 상징의 시어 속에서 향수와 그리움으로 변모해 가는 것이다.
이처럼 박용래(朴龍來)의 시는 전원 상징의 시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친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것들의 본질이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향수와 그리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