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 도로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
너는 너른 세상에 설움을 피로 새기러 오고
네 눈물은 수천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 놓았다.
여기는 먼 남쪽 땅 너 쫓겨 숨음직한 외딴 곳,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호젓한* 이 새벽을
송기한* 네 울음 천 길 바다 밑 고기를 놀래이고,
하늘가 어린 별들 버르르 떨리겠구나.
몇 해라 이 삼경(三更)*에 빙빙 도는 눈물을
씻지는 못하고 고인 그대로 흘리웠느니,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 몸은
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느니*,
무섬증 드는 이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
저기 성(城) 밑을 돌아나가는 죽음의 자랑찬 소리여,
달빛 오히려 마음 어둘 저 흰 등 흐느껴 가신다.
오래 시들어 파리한* 마음마저 가고지워라.
비탄의 넋이 붉은 마음만 낱낱* 시들피느니*
짙은 봄 옥 속 춘향이 아니 죽었을라듸야
옛날 왕궁을 나신 나이 어린 임금이
산골에 홀로 우시다 너를 따라 가시었으니
고금도(古今島) 마주 보이는 남쪽 바닷가 한 많은 귀향길
천리 망아지 얼렁 소리* 쇤 듯 멈추고
선비 여윈 얼굴 푸른 물에 띄었을 제
네 한된 울음 죽음을 호려* 불렀으리라.
너 아니 울어도 이 세상 서럽고 쓰린 것을
이른 봄 수풀이 초록빛 들어 풀 내음세 그윽하고
가는 댓잎에 초승달 매달려 애틋한 밝은 어둠을
너 몹시 안타까워 포실거리며* 훗훗* 목메었느니
아니 울고는 하마 지고 없으리, 오! 불행의 넋이여,
우거진 진달래 와직* 지우는 이 삼경의 네 울음
희미한 줄 산(山)*이 살풋 물러서고
조그만 시골이 흥청 깨어진다. - 김영랑, '두견'
*두견 : 서럽고 외롭고 여윈 시적 화자의 분신(시조에 등장하는 두견은 실제로는 소쩍새를 착각한 것) *호젓하다 : 1. 후미져서 무서움을 느낄 만큼 고요하다. 2. 매우 홀가분하여 쓸쓸하고 외롭다.[유의어] 쓸쓸하다, 후미지다, 고적하다2 *송기한 : 소름돋게하는 *삼경[三更] :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눈 셋째 부분. 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사이 *지늘꼈느니 : 취했느니 추정 *가고지워라 : 가고 싶어라 *파리하다 : 몸이 마르고 낯빛이나 살색이 핏기가 전혀 없다. 유의어 수척하다 초췌하다 핼쑥하다 *낱낱 : 하나하나마다 *시들피느니 : 시들시들 피느니 *얼렁소리 : 얼렁질하는 소리 -얼렁질 : 실 끝에 작은 돌을 매어 서로 걸고 당겨서 어느 실이 더 질긴가를 겨룸. 또는 그런 장난. *호려 : 홀려 *살풋 : 살포시 *포실거리며 : 두견새 우는 소리의 의성어 *훗훗 [후툳] : 바람이나 입김 따위가 훈훈하게 거듭 안겨 오는 모양. 또는 열기 따위가 후끈하게 거듭 안겨 오는 모양. *와직 : 북한어 잘 마르지 아니한 나뭇가지 따위가 세게 타들어 가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줄산(山) : 줄줄이 늘어선 산
시낭송 | 감상하기 |
핵심 정리
• 작가 : 김영랑, 영랑시집에서 유일하게 제목이 있는 시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낭만적, 감상적, 애상적, 비탄적, 동양적
• 심상 : 시각적, 청각적 심상
• 어조 : 영탄적 어조
• 표현 : 두견새에 감정을 이입하여 표현, 의고체 어휘, 방언 사용, 감각적 표현
• 구성
1. 제1연-원한과 슬픔에 지친 두견
2. 제2연-저승의 노래를 토해 내는 두견
3. 제3연-비탄의 넋에 대한 한(恨)
4. 제4연-삶의 고뇌에 대한 설움
• 주제 : 삶의 슬픔과 비애
• 출전 : <영랑시집>(1935)
작가 김영랑(金永郞, 1903년 1월 16일 ~ 1950년 9월 29일)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金允植), 본관은 김해(金海)인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대지주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강진보통학교를 다니면서 13세의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1년 만에 사별하였다.
졸업 후 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 운동 때 학교를 그만두고 강진에서 의거하다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다음해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 영문학과에서 공부하다가 간토 대지진 때 귀국하였다. 1926년에 두 번째로 결혼하였다.
1930년 정지용, 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에 가입하여 동지에 여러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이 무렵 쓴 시이다. 이 때의 문학사조를 문학사학자들은 순수서정시라고 부른다.
1935년 첫째 시집 《영랑시집》을 간행하였고,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뚜렷해지자 《독(毒)을 품고》등의 저항시를 썼다. 이후 신사참배, 창씨 개명등에 저항하여 두어차례 붓을 꺾기도 하였으나 해방 후에는 시작 활동에 전념하다가 고향인 강진에서 제헌국회의원에 출마 했다가 낙선하였고, 공보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수복 전투 중 서울을 탈출하지 못하고 포탄 파편에 맞아 48세로 사망하였다.
김영랑은 사회주의 문인들인 카프 문인들이 쓴 목적의식이 담긴 시를 거부하고, 이상적인 순수서정시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어 속을 흐르는 조용한 저항의식이 담긴 민족주의적 시를 쓰기도 하였는데,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뚜렷해진 일제강점기 말에 쓴 《독(毒)을 품고》가 그 예이다. 주로 ㄴ, ㄹ, ㅁ, ㅇ같은 부드러운 소리(유음, 흐르는 소리), 남도 방언등으로써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살린 섬세한 시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해와 감상
두견은 슬픈 전설을 간직한 새다. 봄밤에 끊임없이 울어대는 두견새, 그 새의 울음 속에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이고 전통적 정서인 설움, 눈물, 슬픔, 그리움, 한 등이 서려 있다. 이 시는 촉왕 망제, 즉 두우의 망혼이 두견새가 되었다는 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러한 감상적, 낭만적 정서를 지닌 두견의 울음 소리를 통하여 시의 화자는 희망과 꿈의 계절인 봄의 흥겨움을 노래하는 대신 어둡고, 암담하고, 쓰라린 삶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설움과 한을 간직해 왔다. 춘향이 그러하고, 왕궁을 떠난 나이 어린 임금이 그러하고, 먼 섬으로 귀양 간 선비들이 그러하고, 그들을 보내고 맞는 백성들 그러하였다. 이 시의 화자 역시 현실의 암담함과 쓰라림 속에 그러한 삶의 고뇌를 저 두견처럼 밤을 지새우며 비탄하고 있는 것이다.
영랑은 이 시의 발상 단계에서 서양 시인 키츠(Keats)의 <나이팅게일에 부치는 노래>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견의 울음(노래) 소리에 취하여 모든 감각이 마비된 상태로 이끌어지고 있다든지, 그 두견의 울음소리를 통해서 죽음(이 시에서는 저승, 키츠의 시에서는 황천)을 공통적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시에서 남해 바다의 '고금도'를 설정한 것이 키츠가 '요인국(妖人國)'을 설정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총 4연 32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약간의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 4음보의 율격을 취하고 있다. 4음보는 3음보와 더불어 이 시인의 시의 율격 구조의 토대로, 그는 전통 시가의 율격을 다양하게 살리고 있다. 김영랑은 그의 다른 시 <오월 아침>이나 <오월 한(恨)>에서도 '두견'을 등장시키는데 대개 이 소재는 '비극적 순환의 희생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김영랑이 비극적 세계 인식을 하게 된 것은 그의 삶을 통해 끊임없는 좌절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 촉나라 망제의 넋이 화하여 된 새, 두견. 그 새의 울음 소리를 통하여 현실적 삶의 비탄을 노래한 이 시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인 한의 정서와 접맥되어 있다 할 것이다.
'문학 > 현대운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밤 - 박용래 (0) | 2021.03.25 |
---|---|
해당화 - 한용운 (0) | 2021.03.24 |
들길에 서서 - 신석정 (0) | 2021.03.19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0) | 2021.03.18 |
도봉 - 박두진 (0) | 2021.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