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습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 한용운, '해당화'
*경대(鏡臺) : 거울을 버티어 세우고 그 아래에 화장품 따위를 넣는 서랍을 갖추어 만든 가구.
시낭송 | 감상하기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상징적, 여성적, 독백적, 애상적
• 제재 : 해당화
• 주제 : 돌아올 기약을 어긴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당신(광복)이 오지 않음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
• 어조 : 애절한 그리움이 담긴 여성적이고 섬세한 어조
• 구성 :
1연: 임보다 먼저 온 봄에 대한 두려움
2연: 임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 피어 버린 해당화를 보며 눈물을 흘림.
• 특징
① 경어체 어미가 각운을 이루어 운율을 형성함.
② 해당화가 피고 지는 자연 현상을 통해 임에 대한 기다림과 슬픔을 형상화함.
• 1920년 作
작가 한용운(韓龍雲, 1879년 8월 29일 ~ 1944년 6월 29일)
일제 강점기의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 호는 만해(萬海)이다. 세조 때의 권신 한명회의 동생으로 전구서승(典廏署丞)을 지낸 서원군 한명진의 후손이었다.
1879년 8월 29일(고종 16년)에 아버지 한응준(韓應俊)과 어머니 온양 방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은 유천(貞玉)이며 용운은 출가 했을때 은사 스님으로부터 받은 법명이다. 호적상 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며 형제로는 형 한윤경이 있었다.
몰락한 양반 사대부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한응준은 홍성군 관아의 하급 임시 관리였으며, 집안은 몹시 가난하였다. 그의 집안은 형 한윤경이 일시적으로 가세를 일으켜 토지를 마련했지만 만해가 토지를 매각해 독립자금으로 썼다고 했다. 유년시대에 관해서는 본인의 술회도 없고 측근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6세부터 성곡리의 서당골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9세에 문리를 통달하여 신동이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1892년 14살 되던 해, 풍속에 의해 지주 집의 딸 전정숙과 결혼했지만 가정에 소홀하였다. 16살 되던 해인 1894년부터 홍성읍 내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전정숙에게서 아들 한보국을 두었으나 그는 출가하였다. 후일 한보국이 부친인 그를 보러 왔을때 그는 외면하였다 한다.
1894년에 가출하여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하였으나, 그의 아버지는 홍주감영 관군의 중군이 되어 농민군을 토벌하는데 참전한다.
1895년 또는 1897년에 고향 홍성을 떠나 인제군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수년 간 불교서적을 읽었다. 대중의 결혼생활, 가장이라는 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중생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으나 승려의 결혼을 허가해 달라는 그의 주장은 묵살당한다. 한일합방 직후인 1910년 11월에 다시 조선총독부에 결혼을 허가해 달라는 두 번째 탄원 역시 묵살당한다. 한일합방 직후 총독부가 조선인을 차별대우하고 내지인을 우대하자 불만을 드러냈다. 만해의 상좌였던 춘성스님에 의하면 만해는 평소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차별 정책에 대해 "왜놈의 머슴살이 같으니라구!"라며 불만을 토로하였다 한다.
1919년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일설에는 용성 선사의 도장도 그가 찍었다 한다. 경성 탑골공원에서 독립 선언서 낭독과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었다. 민족대표자들이 기획한 평화 시위는 격화되었고, 민족대표자들은 자수를 결심한다. 이종일의 회고에 "체포되기 전 만해는 일제의 고문 및 위협에 벌벌 떠는 나약한 민족대표들에게 인분을 퍼다가 머리에 퍼부었다."라고 전한다.
만해는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복역하며 재판을 받는데, 옥중에서 변호사는 물론 사식과 보석을 거부할 것을 결의하고 수감생활을 한다. 옥중에서 '조선독립의 서'를 집필하다가 발각되어 결국 원본을 형사에게 제출했지만, 일본인 서울지방법원 검사에게 제출하기 전 일부를 휴지에 작은 글씨로 옮겨 두었다. 그리고 형무소 밖으로 나가는 의복의 갈피에 숨겼다. 이렇게 외부로 나온 선언서는 상해까지 전달된다. 인간의 권리와 자유와 평등에 대한 길을 가로막는 어떠한 형태의 무력, 군사력, 압제 정치는 결국 스스로의 덫에 걸려 스스로 패망하게 되리라는 내용이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다. 님의 침묵에서 그는 인위적으로 한글 표준어를 쓰지 않고 충청도 방언과 토속어가 세련되지 않은 표현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이러한 향토적 정감의 방언 및 토속어 애용과 서민적인 시어의 활용은 님의 침묵에 민중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931년 53세의 나이에 주변 친구들의 권유로 21살 연하의 유숙원과 재혼하였다. 유숙원은 결혼하기 전까지 단성사 옆에 위치했던 진성당병원의 간호사로 일하였다. 다음 해에 딸 영숙이 태어나고 1933년에 심우장을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며 작품활동을 지속하였다.
1940년 5월부터는 창씨개명 반대운동을 하였고, 1943년에는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말년에는 방응모, 정인보, 안재홍, 홍명희, 김성수, 만공 등과 교류하며 그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어렵게 생활하였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인 심우장*에서 냉방으로 생활하였다.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집도 조선총독부 반대 방향인 북향으로 지었고, 식량 배급도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그러나 실제로 심우장에 가보면 주변의 집들이 대부분 심우장과 같은 방향으로 지어져 있고 이것은 그곳의 지형상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총독부를 등지고 싶어서 북향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는 성북구에서 세워놓은 심우장의 푯말에만 보이는데 아마도 후세의 창작이 아닐까 짐작된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만해의 생계는 그의 친구인 안재홍, 방응모, 김성수, 송진우, 조만식, 최남선, 이광수, 윤치호 등이 십시일반으로 부담해주었다. 말년에 중풍과 영양실조로 고생하였지만 병원 진료를 거부하다가 1944년 6월 28일 조선총독부의 특별 훈련으로 공습경보가 발령되었을 때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후 계속 혼수상태로 있다가 1944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 중풍으로 승랍* 49세, 세수* 66세로 열반*에 들었다.
*승랍(僧臘) : 승려가 된 햇수. *세수(歲首) : 한 해의 처음. 또는 한 해의 첫 달. *열반(涅槃) : 1.불교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경지.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2.불교 승려가 죽음. 유의어: 도탈, 입적, 해탈
그가 사망하였던 1944년은 일본 제국이 패망하기 1년 전이자 광복을 1년 앞두고 있던 때라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의 독립은 끝내 생전에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지 1년 후인 1945년 8월 15일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 제국이 패망하게 되면서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친일로 변절한 최남선에 관하여서는 1937년 자신에게 최남선을 언급한 김홍규에게는 "아직도 최남선이 살아 있소?"라고 하는가 하면, 최남선이 탑골공원에서 인사를 하자, 처음에는 알은체도 하지 않다가 최남선이 자신을 못 알아보겠냐면서 계속 이름을 말하자 "내가 아는 육당은 이미 죽었소."라면서 차갑게 대했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에서 화자는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봄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해당화가 피기 전(봄이 오기 전)에 돌아 온다고 한 임과의 약속이 실현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화가 피기 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한 임이 기한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화자는 봄이 너무 일찍 온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해당화는 임과의 재회를 기대하게 하는 시간적 의미를 지닌 소재이자 임이 돌아오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소재이다.
화자는 해당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봄바람에 경대 위에 놓인 해당화 꽃을 보고 더 이상 상황을 회피할 수 없게 된다. 봄바람이 야속한 것은 결국 돌아오지 않은 임에 대한 야속함 때문이다. 꽃에게 말을 거는 것 역시 임에 대한 야속함과 그리움 때문이다. 임과의 약속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화자는 야속함과 서러움을 느낀다. 자신의 외로움이 지속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화는 임과의 만남에 대한 약속이면서 오지 않은 임에 대한 그리움과 야속함을 느끼게 하는 소재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시는 해당화를 매개로 돌아오지 않는 임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서글픔에 젖은 화자는 이미 피어 버린 해당화 꽃잎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경어체를 활용한 섬세한 어조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해당화는 5~6월에 피어, 7~8월에 해풍에 그슬린 빨갛고 탐스런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늦봄에 피는 꽃으로 화자가 기다리는 대상인 임, 조국 광복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봄은 이미 늦어버려서 당신이 돌아오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 버렸다. 화자는 봄기 오기를 바라면서 당신과의 재회를 갈망했지만 기다리는 임은 아니 오고, 봄이 너무 빨리 온 것에 대한 시적 화자의 원망이 드러난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 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이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시적 화자의 상황과 대조적인 대상으로 해당화가 핀 사실을 알리지만, 화자는 임이 오지 않은 상황에서 봄이 왔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못들은 체한다. 야속한 봄바람은 시적화자의 마음도 모르고,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이게 해 시적 화자로 하여금 봄이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에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임이 오지 않는 안타까움에 "너는 언제 피었니"하고 물어본다. 끝내 꽃은 화자의 눈물에 비치고, 임과 재회하지 못하는 슬픔과 임에 대한 간절한 사랑은 더욱 커져만 간다.
이 작품에서 봄은 임이 돌아오기로 약속한 시간으로, 화자에게는 임과의 재회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행복한 시간이자 임이 오지 않아 슬픔을 느끼게 되는 상실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당화는 봄이 왔음을 알려 주는 소재로, 임과의 만남을 상징함과 동시에 오지 않는 임에 대한 간절함을 의미한다. 또한 눈물은 해당화가 피었어도 임이 오지 않아서 흘러나오는 감정의 응결체로, 임에 대한 시적 화자의 간절한 사랑을 압축한다. 작가인 한용운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이 시에서 당신은 시적 화자가 기다리는 사랑하는 임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조국광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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