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열공햐 2021. 3. 1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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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 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외경(畏敬) : 공경(恭敬)하고 두려워함

*구원(久遠) : 몹시 오래 됨

*연민(憐憫) : ①가엾어 함  ②불쌍히 여김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참여시

성격 : 참여적, 남성적, 격정적

어조 : 진실하고 격정적인 어조

표현 : 대립어의 사용, 상징법 구사, 시간의 이동에 따른 구성

구성 : 시간의 이동에 따른 구성

  ① 암울했던 과거의 삶(1-3)

  ② 현실 극복의 결의(4-6)

  ③ 인고의 삶(7-8)

  ④ 밝은 미래의 희원(9)

제재 : 하늘(암울한 삶)

주제 : 암울하게 살았던 과거, 현재 삶의 극복과 밝은 미래에 대한 희원(希願). 인간 본연의 삶

 

 

‘한국근대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89), 신학철 作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작가 신동엽(申東曄, 1930년 8월 18일 ~ 1969년 4월 7일)

  시인.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호는 석림(石林).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신동엽은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 신연순과 어머니 김영희 사이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4년 부여국민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같은 해 국가에서 숙식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김응교 시인이 쓴 민족시인 신동엽(사계절)에 따르면 신동엽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그의 부친 신연순이었다. 성격이 차분한 아들을 보면서 글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6살때부터 글을 가르쳤으며, 없는 살림이었지만 책과 붓을 마련하였다. 또한 사범학교 시절에 독서에 힘씀으로써 아나키즘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갔다.

  1948년 11월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 미실시와 친일 미청산에 항의하는 동맹 휴학으로 학교에서 퇴학되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있었던 신동엽은 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사범학교에서 퇴학되었지만 교원자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부친은 사법 서사로 노동을 해서 버는 돈으로는 학비를 대지 못했기 때문에 밭을 내놓았다. 학문을 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존중한 것이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의 지식을 조직사업에 활용하려는 인민군의 요구로 1950년 한국전쟁 시절에 부여 민주청년동맹(민청)선전부장으로 일하였다. 세상을 바꿔가야 한다는 공산주의의 주장에 동의했지만 무정부주의자였다.

 

  인병선은 ‘참여시인 신동엽의 아내’나 ‘짚풀문화 연구가’로 불리지만, 좀더 잘 아는 이들에겐 일제 강점기 때 사상가 ‘인정식씨의 딸’로도 기억된다. 그가 신동엽을 처음 만난 것은 철학도를 꿈꾸던 이화여고 3학년 때인 1953년 시인이 일하던 서울 돈암동 고서점에서였다. “온통 그에게만 심취해 있었다”는 인씨의 고백처럼 이후 둘은 담백하면서도 뜨거운 사랑을 주고받았다. 1957년 인씨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중퇴를 감행하면서 가난한 시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생활인으로서 대책이 없는 신동엽은 1969년 인씨와 2남 1녀를 남기고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인씨는 지금까지 혼자 자녀들을 키워내며 짚풀문화를 연구해 왔다. 출판사 등에 다니며 생활을 꾸려나가는 한편 신동엽 시인의 육필 원고를 모아 책을 냈다. 신동엽이 알려진 것은 온전히 인씨의 노력에 힘입은 결과다. 70년대 민주화의 상징시 ‘껍데기는 가라’는 출판되자마자 곧바로 판매 금지되지만 절창은 숨겨질 수 없었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1969高大文化 (5)에 발표된 신동엽의 유작으로 19604·1919615·16, 19636·3사태를 모두 거친 뒤 쓰여 졌다.

 

  이 시의 제목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는 먼저 누구에게 하는 질문인가를 생각해 봐야한다. 우선 썩은 정치인들에게 하는 질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썩은 정치인들, 민중의 시야를 가리려고 하는 지배계층이 민중들에게 거짓 선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민중에게 이제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좋은 세상이 왔다'고 이야기함으로써 1960년대의 거센 투쟁 의지를 조금이라도 누그러트리기 위해 한 말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반대로 무지한 민중 스스로에게 질문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4·19를 겪으면서 잠시 맑은 하늘을 봤다고 착각하는 민중들에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질문했다는 것이다. 뒤의 내용을 살펴보면, 후자 쪽의 관점이 더 적당한 듯 하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제1연은 역사 의식과 사회 의식을 관련시켜 해석해야 한다. 동학 혁명3.1독립 운동, 4.19 혁명 때 잠깐 맑은 하늘이 빛났었으나, 백성들은 한번도 맑은 하늘 아래서 마음껏 자유와 평화를 누려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2연과 3연에서 '네가 본 건, 먹구름',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 쇠항아리'라는 시구에서 처음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란 질문의 대상이 되는 것이 민중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네가 본 건 먹구름이고 지붕 덮은 쇠항아리이지 맑은 하늘이 아니라는 말은, 4·19를 겪으면서 잠시 맑은 하늘이, 자유로운 세상이 도래하는 듯 했으나 그건 착각일 뿐이고 여전히 먹구름이 낀 암울한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4연의 '아침저녁 /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윤동주의 시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라는 구절과 비슷한 표현이란 인상을 받는다.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라는 부분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아침저녁'이라는 부분은 같이 시간적 배경을 제시하여 준다. 하지만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라고 해서 밤에만 한정을 두어 해석하기보다는 ''이라는 시간을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참회록에서의 '녹'(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거울'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의 '구름''마음'에 각각 연결시킬 수 있다. '녹''구름'은 각각 '거울''마음'속에 끼어서 진정한 모습의 '거울'과 '마음'을 가리는 존재이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의 '마음'은 앞에서 나오는 '하늘'과 같은 의미의 시어이다. 그리고 두 시 다 '닦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거울''마음'을 가리는 것을 없애자고 하고 있다.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 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5연과 6연의 '아침저녁 /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의 시구 또한 4연의 '아침저녁 /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와 거의 유사한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속 구름을 닦고', '머리 위 쇠항아릴 찢은' 사람은 티없이 맑은 영원하고 구원한 하늘을 볼 수 있고, 그럼으로 외경과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7연과 8연의 '서럽게 / 아 엄숙한 세상을 / 서럽게 / 눈물 흘려' 에서는 세상을 엄숙하게 서럽게 여겨 비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연의 '살아가리라'라는 첫 행은 이 시에서 작가가 가장 강렬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비록 '서럽게 눈물 흘리며' 살지라도 '살아가리라!!'

 

  이것은 작가가 한 때(5·16, 6·3사태 이후) 정신주의로 침잠하여 안정을 추구하여 구체적으로 현실 인식을 포기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살아가리라'라고 하는 굳은 현실 극복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그리고 뒤이어지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는 부분은 첫 연과 같은 구절로써, 순환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 '살아가리라' 다짐했지만 아직은 처음(첫째 연)에서처럼 현실 상황은 아직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는 신동엽이 1960년 현실 상황을 인식하고, 그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시라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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