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성에꽃 - 최두석

열공햐 2021. 3. 1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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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 최두석, '성에꽃'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서정적, 사회 비판적(현실 참여적), 상징적, 회화적, 감각적, 역설적

운율 : 내재율

어조 : 우울한 사회 현실을 노래하는 낮고 잔잔한 어조

표현 : 감성과 지성이 균형 잡힌 시선으로 시대 현실을 표현함.

심상 : 시각적

제재 : 버스 창문에 핀 성에꽃

주제 : 80년대의 시대적인 아픔, 동시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 어둡고 고통스런 사회 현실과 서민들의 남루한 삶

구성 

  1~ 4: 차창에 핀 성에꽃

  5~10: 성에꽃의 아름다움

  11~16: 성에꽃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17~22: 유리창에 비치는 친구의 얼굴

출전 : <성에꽃>(1990)

 

 

 

이해와 감상

  이 시의 화자는 추운 날 새벽 차창에 서리는 성에꽃을 바라보면서 이 버스를 타고 다녔을 무수한 이웃들을 생각하고 있다. 도시 변두리에서 가난한 삶을 영위하면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하나씩 떠올려 볼수록 그들에 대한 연민이 깊어만 간다. 그 연민은 차츰 그들이 모두 함께 힘겹게 그러나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확대되어 간다. 마침내 이 정직한 삶을 방해하던 것들에 맞서 몸을 던진 친구까지, 우리 모두 현실의 모순을 뚫고 나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 시에서 성에꽃그것이 지워지고 난 자리에 비치는 시적 화자의 얼굴, 다시 자신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친구로 이미지가 전이되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의 구절과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에서 역설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에서는 그 의미가 친구에서 서민들로까지 확장된다.

 

  친구에 대한 의미는 마지막 구절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에서 친구가 같은 삶(민주화 운동)의 여정을 걸어 왔으나 암담한 사회적 상황으로 인하여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 시는 이렇듯 소외된 자리에서 ‘푸석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대감을 서둘거나 외치지 않고 조용하고 푸근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새벽 시내 버스 유리창에 낀 성에를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발견하고,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다가 투옥된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다. 화자는 성에라는 누구나 보았음 직한 평범한 대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민중의 입김과 순결이 피워낸 기막힌 아름다움이라고 경이로움을 토로하였다. 또한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성에꽃이라는 시적 대상에 몰입하고 있다.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걷다가 투옥된 친구를 떠올리리는 끝 부분에서는 시인의 사회적, 역사적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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