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 올 뿐.
산 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박두진, '도봉'
시낭송 | 감상하기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사색적, 서정적
• 특징
1.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의 전개
2. 영탄적, 독백적 어조
3. 자연과 인간의 상호 조응적 관계
• 구성
- 1단락 (1 - 3연) : 외로운 배경
- 2단락 (4 - 5연) : 공허감
- 3단락 (6 - 8연) : 현실적 비탄(삶의 외로움과 사랑의 괴로움)
- 4단락 (9 - 10연) : 구원의 갈망
• 시상 전개 :
① 석양 무렵부터 황혼,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
② 원경(遠景)에서 근경(近景)으로 묘사됨.
• 제재 : 가을 산
• 주제 : 삶의 외로움과 사랑의 괴로움
• 출전 : <해 (1949)>
이해와 감상
이 작품에는 그리움이나 갈망이 착색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황혼 무렵에 우뚝 솟아 있는 도봉 - 늘 누구를 기다리며, 그 기다림 때문에 쓸쓸해지고 괴로워지는 이미지를 갖는 산이다. 이는 인간의 본원적 고독과 배경의 변모 과정과 대응하여 절제된 율감(律感)의 시어로 잘 형상화되어 있다.
먼저 고독한 배경이 제시되고(1-3연), 그 배경 속에서 나는 기다리는 그 누구를 불러 본다. 그러나, 부르는 내 소리만 되돌아와 공허감만 더해 주고 (4-7연) 나는 그로 인해 더욱 비탄에 빠진다(8-10연).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1단락(1-3연)은 느릿하고 차분한 분위기로부터 시작한다. 산새도 구름도 보이지 않으며, 사람의 자취도 끊어진 가을 산의 저녁 무렵을 배경으로 하여 작중 인물이 있다. 분위기는 조금 쓸쓸하지만 외로움이나 괴로움 같은 사람의 감정은 아직 드러나 있지 않다. 이에 따라 독자들은 평온함 마음으로 작품 속의 상황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먼 골 골을 되돌아 올 뿐.
산 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2단락(4-7연)은 변화가 일어난다. '나'는 대답할 사람도 없는데 소리 높여 누군가를 부르고, 그 소리는 헛되이 빈 골짜기들을 울리고 되돌아 온다. 시간은 저녁 무렵 --- 넘어가는 붉은 해의 산 그늘이 길어지고, 황혼이 펼쳐진다. 얼마 뒤에는 별빛과 함께 밤이 올 것이다. 이 적적한 풍경 속에서 누군가를 헛되이 불러 보는 '나'의 행동은 어떤 외로움을 암시해 준다. 대답하는 이 없이 되돌아 오는 울림은 허전한 그의 마음 속에 와 닿아 쓸쓸한 반향을 일으킨다. 황혼은 밤에 앞서 오고 밤이 오면 별이 뜨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의 고독과 사랑의 고통은 우리 인간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절대적 원리이자 숙명으로 화자에게 인식된다.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3단락(8-10연)은 작중 인물의 괴로운 독백으로 바뀌면서 그 외로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삶은 갈수록 쓸쓸하기만 하고 사랑은 괴로울 뿐이다. 이 말을 보건대, 그는 이루어지지 않는 그리움을 안은 채 이 쓸쓸한 산을 찾아 온 것이다. 그리움의 대상은 '그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나'는 그대를 위하여 길고 외로운 밤과 슬픔을 겪는데, 그대는 이 저무는 무렵 어느 마을에서 쉬는가? 여기에 보이는 그대가 어떤 사람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작품의 흐름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그가 누구일까를 상상해 보는 것은 독자의 자유이다. 어떤 경우든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마지막 행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깊어지는 외로움과 그리움의 분위기는 다시금 음미하여 볼 만하다. 특히, 9 - 10연에 나타난 '밤'과 같이 어두운 시대엔, 도봉과 같은 산 속에 숨어서, 울면서 시를 지었을까?
여기까지 보아 오는 동안 어떤 독자는 벌써 느꼈을 터이지만, 이 작품의 내용은 멀고 넓은 데에서부터 점차 가깝고 좁은 것에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인다. 영화의 수법을 들어 비유한다면, 첫 부분에는 쓸쓸한 가을 산의 전체적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으며, 둘째 부분은 이 속에서 누군가를 불러 보는 주인공과 그 주변의 상황을 제시한다. 마침내 셋째 부분에 이르면 화면 가득히 주인공의 괴로운 모습이 나타나면서 그의 마음 속에 담긴 슬픔까지도 포착하게 된다. 이처럼 먼데서부터 가까운 데로 이동해 오는 수법은 독자로 하여금 이 시가 그리는 풍경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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