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한 - 박재삼

열공햐 2021. 4. 8. 07:07
반응형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 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 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러질까 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꺼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전생(前生)의 내 전(全) 설움이요 전(全)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박재삼, '한'

 

*느껍다 : 어떤 느낌이 마음에 북받쳐서 벅차다. 나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느꺼워 가슴이 뭉클해졌다.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애상적, 회의적, 영탄적

정서 : 사랑을 전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서러움, 사별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 

태도 : 소극적 애상적 태도

형식 : 

  ① 비유와 상징을 통해 시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② 시구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 '그 사람의', '그 사람이', '전 설움', '전 소망' 등에 나타나 있다.  

  ③ 어순의 도치를 통해 시적 대상을 드러내고 있다.

  ④ 자연 현상화자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투영하고 있다.

  ⑤ 영탄적 어조를 통해 감정을 분출하고 있다. 

주제 : 임에 대한 사무치는 한과 그리움 

 

 

열매(감나무)의 의미

열매(감나무) : 서러움, 사랑, 소망 / 임에 대한 소극적 사랑 / 죽음 암시 - 저승
마음을 모름     
그 사람(임)   감나무를 심고 싶었을지 몰라. 나에 대한 사랑, 서러움이 있었을지 몰라!

 

 

 

작가 박재삼(朴在森, 1933년 4월 10일 ~ 1997년 6월 8일)

  1933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나 삼천포에서 자랐다. 삼천포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 사환으로 들어가 일했는데, 이곳에서 교사이던 시조시인 김상옥을 만나 시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그 뒤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 중퇴하였다.

 

  1953 [문예]에 시조 <강가에서>를 추천받았고, 1955 [현대문학]에 시 <섭리>, <정적> 등이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19551964년 월간 현대문학사 기자를 거쳐 19651968년 대한일보 기자, 19691972년 삼성출판사 편집부장 등을 지냈다.

 

  시인은 개인적인 추억과 생활 주변의 체험을 비애어린 서정적 감각으로 엮었으며, 시에 '운다'(동사) '눈물'(명사)이란 시어가 많이 등장한다. 그의 시는 가난과 설움에서 우러나온 정서를 아름답게 다듬은 언어 속에 담고, 전통적 가락에 향토적 서정과 서민생활의 고단함을 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정주 시인은 박재삼 시인을 일컬어 한()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시인이라 하였다. 평생을 자유롭게 살았던 시인은 가혹한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고, 임종시까지 고혈압, 뇌졸중, 위궤양 등으로 투병하였다.

 

  현대문학신인상, 문교부 문예상, 인촌상, 한국시협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평화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조연현문학상, 6회 올해의 애서가상(1996) 등을 수상하였고, 은관문화훈장(1997)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춘향이 마음>, <천년의 바람>, <뜨거운 달>, 수필집 <아름다운 삶의 무늬>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감나무 열매'를 통해 화자의 '사랑과 서러움'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의 삶은 이승에서 사랑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 서러움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화자는 저승에 있는 '그'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자연물인 감나무를 매개로 사랑의 열매를 건네려고 한다.

 

  그러나 이승과 저승의 한계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 거라는 의구심을 갖게한다. 이처럼 불가역적인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려는 강렬한 소망이, 어쩌면 '그'도 지금의 화자처럼 한(恨)스러운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확장된다. 화자는 '한(恨)'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매개로 하여 '그'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는 것이다.

 

  마음을 전할 수 없는 삶과 죽음 사이의 절대적 거리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교감하려는 행위는, ‘그 사람’의 삶과 사랑도 자신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의 ‘모름’단순한 ‘무지’의 모름이 아닌 의구심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감나무쯤 되랴, /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 가는 /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1연에서는 도치를 통해 서러움의 크기를 감나무에 빗대어 도드라지게 한다. 감나무에 달린 서러움을 지닌 사랑의 열매는 화자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재미있는 표현이다.​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 가서 /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러질까 본데,​

  2연에서는 '감나무가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다'라는 표현을 통해 열매를 전해야 할 사랑하는 사람이 이승에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저승으로 향해야만 전할 수 있는 사랑의 열매는 서러운가보다. 

 

  감나무이승과 저승을 연결(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정면이 아니다.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 가서'라는 표현을 통해 이승에서 전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화자는 사랑의 마음을 '감'이라는 소재를 통해 저승에서라도 간접적으로나마 전하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사람이 /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 느꺼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 전생(前生)의 내 전(全) 설움이요 전(全) 소망인 것을 /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3연은 2연의 마음과 달리 그 사람의 마음을 상징하는 안마당에서 '느꺼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즉,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열
매 빛깔'화자의 마음은 '전생(前生)의 내 전(全) 설움이요 전(全) 소망'으로 서러움과 사랑의 정서가 시각적으로 나타난다. 화자의 전부였던 마음을 그 사람이 알아낼지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마지막 3행에서 화자의 의구심은 그 역시도 서러움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확장되며 정서적 동질성의 기대감을 드러낸다.

반응형

'문학 > 현대운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록담 - 정지용  (0) 2021.04.17
떠나가는 배 - 박용철  (2) 2021.04.09
두만강 - 김규동  (0) 2021.04.01
겨울밤 - 박용래  (0) 2021.03.25
해당화 - 한용운  (0) 202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