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박용철, '떠나가는 배'
*묏부리 : 산봉우리
*고향 : ‘항구, 골짜기, 묏부리, 사랑하는 사람들, 구름' 화자가 아쉬움과 미련, 애착을 느끼는 대상
*희살짓는다 : 훼방놓는다
시낭송 | 감상하기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순수시
율격 : 내재율, 4음보격, '나두야 간다', '-거냐'의 반복
어조 : 비애와 의지가 담긴 독백적 어조
성격 : 의지적, 감상적, 서정적, 낭만적
태도 : 정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비애, 미련, 안타까움 속에서도 떠나려는 의지가 드러남
구성 :
-1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의지)
-2연 눈물 어린 슬픈 화자(미련)
-3연 바람마저 돌아다보는 구름을 훼방(동요)
-4연 '떠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반복(의지)
제재 : 이별
주제 :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유랑인의 비애
특징
① 수미 상관(운율 형성, 의미 강조(화자의 의지강조), 여운 형성, 시적 안정감)의 구조
② ‘-거냐’의 의문형 어미와 ‘-련다’와 같은 종결 어미를 통해 의지를 드러냄
③ 띄어쓰기를 통해 호흡을 조절하고 있음.
출전 : <시문학> (1930)
작가 박용철(朴龍喆, 1904-1938)
시인. 문학평론가, 번역가로도 활동했다. '떠나가는 배' 등 식민지 설움을 묘사한 시로 세상에 알려졌으나 실상은 이데올로기나 모더니즘을 지양하고 순수시적 경향을 보였다. 김영랑, 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파를 형성했다.
전라남도 광산군(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출생하였고 본관은 충주(忠州)이고 아호는 용아(龍兒)이다. 배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 아오야마 학원(靑山學園)과 연희전문에서 수학했다.
일본 유학 중 시인 김영랑과 교류하며 1930년 《시문학》을 함께 창간해 등단했다. 1931년 《월간문학》, 1934년 《문학》등을 창간해 순수문학 계열로 활동했다. "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가련다"로 시작되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 등 시작품은 초기작이고, 이후로는 주로 극예술연구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해외 시와 희곡을 번역하고 평론을 발표하는 방향으로 관심을 돌렸다.
1938년 결핵으로 요절해 자신의 작품집은 생전에 내보지 못했다. 사망 1년 후 《박용철 전집》이 시문학사에서 간행됐다. 전집의 전체 내용 중 번역이 차지하는 부분이 절반이 넘어, 박용철의 번역 문학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다. 괴테, 하이네, 릴케 등 독일 시인의 시가 많았다. 번역 희곡으로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입센의 《인형의 집》 등이 있다.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번역한 작품들이다.
박용철은 1930년대 문단에서 임화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으로 대표되는 경향파 리얼리즘 문학, 김기림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문학과 대립해 순수문학이라는 흐름을 이끌었다. 김영랑,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이 같은 시문학파들이다. 박용철의 시는 김영랑이나 정지용과 비교해 시어가 맑거나 밝지는 않은 대신, 서정시의 바탕에 사상성이나 민족의식이 깔려 그들의 시에서는 없는 특색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는 릴케와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아 회의·모색·상징 등이 주조를 이룬다.
광주에 생가가 보존돼 있고 광주공원에는 〈떠나가는 배〉가 새겨진 시비도 건립되어 있다. 매년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는 용아예술제를 열고 있다.
이해와 감상
시의 화자는 일제식민지 상황에서 강제 이주와 가난, 징용, 독립 운동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식민지 백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은데, 이 시는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떠나는 정황의 비극성과 떠나는 자의 비통한 내면을 노래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식민지 현실에 대한 폭넓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나 두 야 간다'의 띄어쓰기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낭독하게 되어 시어에 담겨 있는 떠남에 대한 망설임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본래 시를 읽어 나가는 속도에 변화를 주어 상황을 강조하는 효과를 줄 수도 있는데, 이와 같이 낭독 속도에 변화를 주는 방법은 박목월의 ‘청노루’ 등에도 사용되어 독자들에게 여운을 주는 효과가 있다.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떠나가는 배'는 암담한 현실(일제의 수탈)을 벗어나기 위해 정해진 목적지 없이 고향을 떠나는 우리 민족의 비애와 고뇌를 상징한다.
나 두 야 간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 거냐 / 나 두 야 가련다 //
이 시의 1연과 4연은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수미상관의 형식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고, 의미를 강조하며, 시적 안정감과 여운을 준다. “나 두 야 간다”라는 독특한 띄어쓰기는 시각적 효과와 리듬감에 더불어 화자의 망설이는 마음을 잘 대변하는데 고향을 떠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잘 드러내며, 확고한 진술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 진입하는 젊은이의 의지를 나타냄과 동시에 그 기쁨과 설렘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기교는 박용철이 추구한 순수시가 현실에 대한 성찰 없이 예술성에만 집착하는 시가 아니라, 현실을 노래하면서도 예술성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두(나도)’에 강조의 조사 ‘야’가 결합된 “나두야”라는 표현은 ‘나’ 이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그들과 ‘나’는 같은 운명을 지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수 없어 정든 고향을 떠나는 ‘나’의 행위에는 식민지의 비극적인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소망이 깃들어 있다.
"눈물로야 보낼 거냐"라는 설의적 표현은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화자는 떠날 수밖에 없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아쉬움 가득한 절박함을 말한다. 눈물의 의미는 2연에 묘사된 정든 산천이며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이고, 또 하나는 3연에 진술된, 이렇게 떠나 부딪쳐야 할 정처(定處) 없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모양 /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
3연에서는 타의에 의해 떠나는 그가 남기고 가는 사람들과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면서 앞으로 마주칠 세계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도 암시되고 있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라는 표현을 통해 정든 고향을 쉽게 떠날 수 없는 마음을 설의적으로 표현한다.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에서 떠나는 슬픔의 눈물이 안개같이 흐리다.
떠나는 고향의 모습은 아직도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으로 눈에 밟힌다. '주름살도 눈에 익은' 정든 동포들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떠나는 마음이야 오죽할까.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에서 돌아보는 구름에게도 바람은 훼방을 놓고, 그렇게 박대와 함께 유랑을 떠난다.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든가,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등의 표현은 그의 다른 시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참신한 표현들로서 이 시를 성공시킨 주요한 요인으로 지적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의의와 평가시적 주체의 상념과 슬픔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점은 비교적 덜 성숙한 화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실된 고향이나 초월적 이상향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정서는 당대의 현실 속에서 강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작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노스탤지어 (nostalgia) :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