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백록담 - 정지용

열공햐 2021. 4. 17.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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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絶頂(절정)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消耗(소모)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花紋(화문)처럼 版(판)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咸鏡道(함경도)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八月(팔월)한철엔 흩어진 星辰(성진)처럼 爛漫(난만)하다. 山(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

2
巖古蘭(암고란), 丸藥(환약) 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
白樺(백화) 옆에서 白樺(백화)가 髑髏(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白樺(백화)처럼 흴것이 숭없지 않다.

4
鬼神(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통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海拔六千呎(해발육천척)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녀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여진다.

6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山(산)길 百里(백리)를 돌아 西歸浦(서귀포)로 달어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힌 송아지는 움매 ─ 움매 ─ 울었다. 말을 보고도 登山客(등산객)을 보고도 마고 매여 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毛色(모색)이 다른 어미한틔 맡길것을 나는 울었다.

7
風蘭(풍란)이 풍기는 香氣(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濟州(제주) 회파람새 회파람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굴으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 ─ 솨 ─ 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측넌출 긔여간 흰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조친 아롱점말이 避(피)하지 않는다.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삭갓나물 대풀 石茸(석이)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高山植物(고산식물)을 색이며 醉(취)하며 자며 한다. 白鹿潭(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여 山脈(산맥)우에서 짓는 行列(행렬)이 구름보다 莊嚴(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여 붙인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긔지 않는 白鹿潭(백록담) 푸른 물에 하눌이 돈다. 不具(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좇겨온 실구름 一抹(일말)에도 白鹿潭(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골에 한나잘 포긴 白鹿潭(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祈禱(기도)조차 잊었더니라.

- 정지용, '백록담(白鹿潭) — 한라산 소묘(素描)' 
    

 

* 화문 : 꽃무늬 * 성진 : 별 * 별들이 켜든다 : 꽃들이 피어난다 * 나는 기진했다 : 황홀경에 빠졌다 * 암고란 : 바위 틈에서 자라는 난초의 열매 * 촉루 : 해골. 여기서는 죽은 나무의 하얀 몸뚱이 * 파랗게 질린다 : 도체비꽃이 피었다 * 승없지 않다 : 흉하지 않다 * 도체비 : 도깨비 * 해발 육천척 : 속세와 단절된 거리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산문시, 서정시
▪ 운율 : 내재율
▪ 성격 : 산문적, 신비적, 묘사적
▪ 심상 : 시각적, 후각적, 청각적
▪ 특징
  - 한라산을 등반하며 보이는 정경을 표현.
  - 자연과의 합일(合一). 몰아일체(沒我一體)의 동양적 세계관이 드러남
▪ 구성 : 전체 9장
▪ 제재 : 백록담
▪ 주제 : 백록담의 신비로움과 몰입경

 

 

작가 정지용(鄭芝溶, 1902년 6월 20일 ~ 1950년)

 

 

  본관은 연일(延日), 아명은 지용(池龍), 세례명은 프란치스코(方濟角)이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납북되었고 사인은 폭사로 추정된다.


  1902년 6월 20일 충청북도 옥천군 읍내면 향청리(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3]에서 아버지 정태국(鄭泰國)과 어머니 하동 정씨 정미하(鄭美河) 사이의 4대 독자로 태어났다. 옥천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한국 시단의 3천재로 불리우던 오장환의 스승이기도 하다. 구인회의 창립멤버이기도 하였고 일제의 탄압이 이어지자 모더니즘, 그 중에서도 이미지즘에 눈을 돌리기도 하였다. 그 결과는 1941년에 출판된 그의 시집 《백록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청록파에 영향을 주었다. 

청록파(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와 윤동주, 그리고 이상은 그가 추천하였다. 그리고 일제와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1942년 이후 붓을 꺾고 글을 쓰지 않았다.

 정지용은 한국 현대 시 문학사에서 언어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그의 시들은 두 권의 시집 《정약용 시집》(1935)과 《백록담》(1941)으로 집약되고 있다. 그는 자기 감정의 분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1920년대의 서정시와는 달리, 시적 대상에 대한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내는 새로운 인식의 시를 썼다. 

 정지용은 거의 일관되게 시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1930년대 중반에 그가 빠져들어 있던 종교적인 구도의 세계를 제외할 경우 특히 그렇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잡지 《가톨릭 청년》에 수많은 종교시를 발표한 바 있다. 그가 초기의 시에서부터 시집 《백록담》에 이르기까지 시를 통해 발견한 것은 자연 그 자체였다. 여기서 시를 통한 자연의 발견이라는 명제를 유달리 정지용의 시에서만 문제 삼는 것은 시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노래하는 방법이 그 이전의 서정시와는 본질적으로 차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자연을 통해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와 감정의 세계를 토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면서 자연에 대한 자신의 감각적인 인식 그 자체를 언어를 통해 새롭게 정서화하고 있다. 이 새로운 시법은 모더니즘이라는 커다란 문학적 조류 안에서 설명되기도 하고 이미지즘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정지용이 보여 준 새로운 시법으로서 가장 중요시되어야 하는 것은 예리하고 섬세한 언어적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언어에 대한 자각은 물론 그 이전의 김소월이나 동시대의 김영랑의 경우에도 그 중요성이 인정된다. 이들은 모두 시를 통해 전통적인 정서에 알맞은 율조의 언어를 재창조하였기 때문이다. 정지용의 경우 이들과는 달리 율조의 언어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언어의 조형성에 대한 탐구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는 시의 언어를 통해 음악적인 가락의 미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조형의 미를 창조한다. 이 같은 특징은 언어의 감각성을 최대한 살려 내고자 하는 시인의 노력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정지용은 생활 속에서 감각의 즉물성과 체험의 진실성에 가장 잘 부합될 수 있는 일상어를 그대로 시의 언어로 채용한다. 그러므로 정지용의 시에는 상태와 동작을 동시에 드러내는 형용동사들이 많이 쓰이며 상태와 동작을 한정하는 고유어로 된 부사들을 자주 활용하여 사물의 상태와 움직임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정지용이 그의 시에서 활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시법은 주관적 감정의 절제와 정서의 균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적이고도 감정적인 것들을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사물과 현상을 순수 관념으로 포착하여 이것을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적 표현은 사물의 언어와 교신하는 그의 특이한 언어 감각과 기왕의 고정된 감각을 모두 해체시켜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하는 그의 시적 욕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린 딸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진 〈유리창〉과 같은 작품을 보면 이 같은 감정의 절제된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리창〉에서는 어둠으로 표상되는 무학의 세계와 대면하는 경계선에 유리창이 가로막고 있다. 유리창에 입을 대고 입김을 불어 보는 시인은 지금 이곳의 세계와 저기 어둠 속의 세계를 상상력의 힘으로 서로 연결한다. 창밖 어둠 속에 빛나는 별빛을 보는 순간 자신의 슬픔과 열망 같은 것은 모두 소멸되는 것이다. 

 정지용의 시에서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균제미는 시집 《백록담》에 이르러 거의 절정에 이른다. 시 〈장수산〉이나 시집 《백록담》과 같은 작품에서는 시적 심상 자체가 일체의 동적인 요소를 배제한다. 그리고 명징한 언어적 심상으로 하나의 고요한 새로운 시공을 창조해 낸다. 이러한 시적 방법에서 우리는 정지용이 체득하고 있는 은일의 정신을 보게 된다. (권영민)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한라산의 풍경과 그에 따른 화자의 정서를 형상화한 시이다. 화자가 한라산의 정상에 이르는 과정과 정상에서의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화자는 한라산에서 어미를 여읜 송아지를 보면서 일제 강점기에 정체성을 잃은 우리 민족의 모습을 연상하고 있으며, 백록담의 맑고 순수한 모습에서 몰아(물아일체)의 경지를 느끼고 있다. 

 

 제재인 ‘백록담’은 제주시 한라산 봉우리에 있는 화구호(火口湖)로, 시적 화자에게는 등반의 최종 목표이자 고통, 수난, 도취를 통한 몰아(沒我)의 경지이다. 시적 화자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민족의 정기를 상징하는 백록담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정지용은 잊혀진 시인이었다. 1930년대 한국 현대시의 성취를 대표하는 이 시인은 우리 역사의 험한 물결에 묻혀 한동안 흔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외로운 세월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우리말을 다루는 재주에서, 그리고 그것을 시적 직관과 함께 용해하는 데서 그는 우뚝한 봉우리를 점했다. 그의 시는 오늘 다시 읽어보아도 세련됨의 빛이 퇴색하지 않는다.

  제주도는 시인의 손길에 의해 다채롭고 풍요로운 기록을 얻고 있다. 시인은 여행객이 되어서 제주도의 풍광을 그리는데, 그것이 간단한 기행에 그치지 않고 높은 시적 성취를 얻고 있는 것은 축약과 배치의 묘에서 말미암는다. 적절히 생략하고 배제하여, 뻐꾹채꽃, 암고란, 백화, 도체비꽃, 말, 소 풍란, 꾀꼬리, 휘파람새,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그리고 수많은 고산식물들이 제각기 의연한 자리를 지키게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객관적 외경을 시인의 특이한 시선으로 정돈하는 데서 벗어나, 간혹 새 행에 삽입된 시인의 주관적 내면의 토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1에서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는 없어도 무방할 것 같지만, 자칫 잊어버릴 위험이 있었던 화자의 존재를 재미있게 환기하고 있다. 또 3에서의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라는 오만함, 6에서의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의 애상, 9에서의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의 익살 등이 그러하다. (해설 : 이희중)


絶頂(절정)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消耗(소모)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花紋(화문)처럼 版(판)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咸鏡道(함경도)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八月(팔월)한철엔 흩어진 星辰(성진)처럼 爛漫(난만)하다. 山(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 

1연 : 한라산을 등반하는 과정에서 그 고도가 올라감에 따라 산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화자가 산록에서 산정에 이르기까지의 등반 과정이 뻑국채꽃 줄기의 길이가 줄어드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를 묘사함에 있어서 허리가 스러지고, 모가지가 없고, 얼굴만 갸옷 내다본다 등의 섬세한 듯 하면서도 우리 언어를 적절히 구사하여 감각을 높여주고 있다. 꽃 키가 점점 줄어 나중에는 꽃무늬처럼 지면에 판 박힌 모습을 통해 백록담 가까운 산머리의 정경을 드러내며, 아울러 함경도 끝에서나 불 찬 바람과 세기가 같아지는 꼭대기에서 꽃의 키는 완전 소멸되면서 하늘의 별과 같은 이미지로 순간 만난다.

  흩어져 핀 꽃을 8월 밤하늘의 성신에 비유한 것이지만, 이 결합은 꽃과 별을 이미지로 통합하게 되어 산정에서의 흥취를 신비롭게 만든다. 산 그림자 어둑해질 저녁 무렵, '별'로 비유한 꽃들이 자리를 옮겨 하늘의 별로 화하는 이 신비로움에 화자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만다. 극단의 도취경을 읊은 대목이다. 흩어져 피어있는 꽃들을 8월 밤의 성신에 비유하고 있지만, 이는 꽃과 별이란 이미지를 통해 산정에서의 시인의 심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 피곤한 육신에 자연에 취한 정신이 더해지며 기진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평자들이 이 1연의 마지막 부분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를 두고 백록담에 오른 것으로 해석을 하는데, 아홉 개의 연을 읽어보면 1연의 내용은 정상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한라산 등반을 시작하여 어느 중간 등성이에 오를 때까지의 모습이다. 요즘이야 1,100고지 혹은 성판악까지 버스가 다니고, 웬만한 높이까지는 승용차로도 갈 수 있지만 이 시를 쓸 당시에는 밑에서부터 걸었을 것이다. 그러니 서생이었던 정지용에게는 힘든 등반이 되었고, 어느 정도 높이에 올랐을 때 기진맥진했을 것이다. 어리목이라든가 사제비동산과 같은 한라산의 여러 오름들 중 한 곳에 도착한 것이다. (현산, 이병렬)

 


巖古蘭(암고란), 丸藥(환약) 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2연 : 기진했던 몸이 되살아난 것은 자연의 영약을 먹었기 때문이라 한다. 어여쁜 암고란의 그윽하고 신비한 열매를 마치 환약인 양 먹었다는 것에서 화자가 아름다운 광경에 얼마나 취했는지 알 수 있다. 바위 틈서리에 난 오래된 난초라 하여 일부러 신비하게 그렸을 뿐, 실제로 난초 열매를 먹고 살아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황홀경을 그리기 위해 짐짓 아양을 부려보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정지용의 시에 더러 보인다. <난초>의 마지막에도 '난초잎은 칩다'라고 하여 얼마간 엄살을 부려 보는 멋을 즐기고 있다. 지용에 있어서의 과장은 정신의 여유와 동양적 멋의 한 흥취이다.  

 


白樺(백화) 옆에서 白樺(백화)가 髑髏(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白樺(백화)처럼 흴것이 숭없지 않다. 

3연 : 백화나무들 사이에 고사목이 된 백화나무들이 하얀 등걸을 드러낸 채 서있다. 시인이 한라산에 오른 때는 8월이다. 8월에 보는 자작나무 - 잎은 푸르지만 나무 자체는 흰색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죽은 나무들도 있다. 죽은 나무의 하얀 몸뚱이를 '촉루(해골)'라 하여 흰빛의 이미지를 두드러지게 한다. 나무 이름이 '백화(白樺')인데다 촉루를 결합하여 신비롭고 정갈한 이미지를 보인다. 그 백화처럼 자신도 죽어 촉루로 남게 될 것을 생각하니, 보기 흉하지는 않겠다 여겨진다.

 


鬼神(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통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4연 : 도체비꽃이 파랗게 피어있다. 정지용의 시에 푸르고 찬 이미지가 많이 보이는 것은 그것을 통해 감성보다는 지성적 성격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 때문인데, 여기서도 도체비꽃이 핀 정경을 그리면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쓸쓸한 정경과 파랗게 질렸다는 표현은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너무 쓸쓸하여 귀신(鬼神)도 살지 못하는 곳이라 해놓고 거기에 귀신의 하나인 도채비 이름을 딴 꽃이 피었다고 하여,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진술을 통해 쓸쓸함의 정도를 시각적으로 강화한다. 이 연에서는 산정의 신비로움을 극대화한다.   

 


바야흐로 海拔六千呎(해발육천척)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녀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여진다. 

5연 : 마소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사는 환상적 공간으로 그린다. 해발 6천 척(1,800미터)만큼의 격차는 속세와의 단절된 거리를 드러내며, 신비로운 광경을 그린다. (송승환, '한국 현대시 제대로 읽기')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山(산)길 百里(백리)를 돌아 西歸浦(서귀포)로 달어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힌 송아지는 움매 ─ 움매 ─ 울었다. 말을 보고도 登山客(등산객)을 보고도 마고 매여 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毛色(모색)이 다른 어미한틔 맡길것을 나는 울었다. 
  
6연 : 첫 새끼를 낳느라 혼이 난 어미소가 놀라 달아나고, 새끼는 아무나 어미인 줄 알고 매달린다. 저 송아지가 털빛 다른 어미에게서 길러질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된다면 하고 생각하니 송아지가 가여워 울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달 의미에 비해서 문장의 길이가 매우 압축되어 있다. 산문시에서도 언어를 아끼고 절제한 흔적이 역력하다. 



風蘭(풍란)이 풍기는 香氣(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濟州(제주) 회파람새 회파람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굴으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 ─ 솨 ─ 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측넌출 긔여간 흰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조친 아롱점말이 避(피)하지 않는다. 

7연 : 온갖 아름다운 정경들이 펼쳐진다. 후각과 청각의 다양한 감각 이미지를 동원하면서 산에서 맛보는 즐거움을 표출한다. 길을 잘못 든 것도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얼룩점박이 말도 피하지 않는 선경(仙境)으로 그리고 있다. 

 

  7연은 시인의 표현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風蘭(풍란)이 풍기는 香氣(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濟州(제주) 회파람새 회파람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굴으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 ─ 솨 ─ 솔소리……’ 풍란의 향기가 퍼지고, 돌에 물이 구르고, 바다가 구겨진단다. 시냇물 흐르는 모습을, 파도치는 모습을 어찌 이렇게 표현했을까. 후각, 청각, 시각을 넘나드는 감각적 표현들, 시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이야 정상안내소 부근은 대체로 평평하지만 숲이 우거진 곳이 아니다. 오히려 키 작은 풀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시인이 한라산을 오를 당시에는 키는 작지만 여러 나무들이 우거진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길을 잘못 들어 헤맸던 모양인데 길을 헤치고 나와 마주친 ‘아롱점말’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이미 이곳은 사람과 동물이 한 데 어우러져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산 이병렬)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삭갓나물 대풀 石茸(석이)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高山植物(고산식물)을 색이며 醉(취)하며 자며 한다. 白鹿潭(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여 山脈(산맥)우에서 짓는 行列(행렬)이 구름보다 莊嚴(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여 붙인채로 살이 붓는다. 

8연 : 온갖 식물들이 서로 벗하며 자라는 공간을 노래한다. 고산 식물인 데다 별 같은 이슬마저 머금었다는 것에서 신비로움은 더해 가는데, 이 고산 식물과 온갖 다른 식물이 벗하여 자라는 것을 사귀다 취해서 잠드는 모습으로 그리는 데서 신비로움은 극에 달한다. 온갖 식물을 먹고 취하며 자는 동물의 모습도 연상된다. 백록담 그 조찰한 물을 보려 행렬을 이룬 무리가 산맥 위에 장엄하게 둘러서 있고, 소나기를 노상 맞지만 무지개로 날이 개면 말리고, 미끄러져 엉덩이에 꽃물이 들고 살이 부은 채로 백록담을 향해 가는 즐거움은 가득하다. 

 


가재도 긔지 않는 白鹿潭(백록담) 푸른 물에 하눌이 돈다. 不具(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좇겨온 실구름 一抹(일말)에도 白鹿潭(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골에 한나잘 포긴 白鹿潭(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祈禱(기도)조차 잊었더니라.


9연 : 백록담의 청정 무구(淸淨無垢)한 모습이다. 맑은 호수에 한나절 나의 얼굴을 포개고 보는 일체화의 경지에 달한다. 물의 명징(明澄)함과 정신의 순일(純一)함이 합치되는 순간이다. 그 정신의 투명한 상태를 쓸쓸하다고 표현했다.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잃은 몰아(沒我)의 경지에 빠지고 만다.

  산정에 이르는 도정(道程)의 신비와 정겨움, 즐거움으로 그려지다 드디어 산정에 이르러 자아와 세계가 혼융(混融)하여 일체화되면서 등반의 과정은 절정에서 멈추며, 화자의 정신도 함께 멈추어 절대의 고요와 정신의 투명성이 만나 동양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다. 

 

  시 <백록담>의 압권은 바로 9연이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고 한다. 발이 저린 것을 흔히 ‘쥐가 났다’고 표현하는데, 1950미터를 오르느라 피곤한 다리를 ‘소가 갔다’고 표현한다. 읽다가 문득 이 기막힌 표현 앞에 무릎을 쳤다. 역시 시인이다. 정상 - 눈앞에 펼쳐진 백록담 수면은 가재도 기지 않을 정도로 잔잔하다. 그 수면에는 하늘이 돌고 있다. 물에 비친 구름이 정말 하늘을 도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좇겨온 실구름 一抹(일말)에도 白鹿潭(백록담)은 흐리운’단다. 실구름 한 자락에도 흐려지는 백록담 수면 ― 그만큼 맑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 백록담이 쓸쓸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한나잘 포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한나절은 시간이다. 그런데 ‘포긴’을 ‘폭인’으로 해석할 때 ‘폭’은 길이, 넓이, 두께, 깊이, 간격 등 여러 곳에 쓰이는 단위이다. 달리 해석하여 ‘한나절 포갠’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쓸쓸하다와 연결지으려면 ‘내 얼굴에 한나절만큼 포갠’으로 해석할 때 의미가 통한다. 즉 그렇게 한나절 바라본 백록담이 쓸쓸하다는 것이다. 혹은 백록담을 에워싼 봉우리를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려면 한나절 정도 걸릴 듯한 백록담의 폭(좌우 직선거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깨다 졸다 祈禱(기도)조차 잊었’다는 시인. 시에도 나오지만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길을 잃고 헤매고 주저앉기도 하면서 겨우겨우 올라온 1950미터, 더군다나 정상안내소에서부터는 가파른 길을 헥헥거리며 올라와 바라본 백록담. 물결조차 일지 않는 백록담 수면, 그 위에 비친 하늘, 실구름에도 흐려지는 맑은 물을 보며 시인은 오히려 쓸쓸해진다. 쓸쓸해진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외롭다는 뜻이 아니라 백록담의 장관(壯觀)에 취한 모습이리라. 그러니 등반하느라 피곤한 육신, 백록담 평화로운 광경에 취한 마음이 섞이어 카톨릭 신자인 시인은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던 것이 아닐까. 백록담의 장관과 하나가 된, 흔히 물아일체란 말은 이 때에 쓰는 말이리라.

  이처럼 작가는 '산'이라는 공간에 자신을 몰입시키며 걷던 도중 마침내 별 속을 걷는 것만 같은 착각 속에 빠지면서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기진하게 된다. 바로 여기서 작가는 육체의 세속적인 지배력을 해소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산'과 하나가 된다. 즉, 구체적 사물인 '산'의 묘사를 통해 그가 꿈꾸어 왔던 추상적인 황홀경의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맛보게 된 것이다. 


  정지용의 <백록담>을 어느 비평가는 ‘9편으로 구성된 연작시’라 하는데, 연작시가 아니라 9개 연으로 구성된 한 편의 시이다. 1941년에 출간된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에 표제작으로 수록되어 있는 이 시는 ‘한라산 소묘’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시인의 눈에 비친 백록담 등반 과정과 한라산의 모습을 기행문 형식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 

  정지용의 <백록담>은 기행문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된다. 무엇보다도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는 과정 속에 시인의 눈에 비친 대상들이 이내 시인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산수시란 명칭을 낳게 했던 그의 여러 시편들 중에 이 시가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은 아마도 가본 적이 없는 금강산을 노래한 시들보다 내가 직접 한라산 백록담에 오른 경험이 있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실은 정지용이 이 시 속에 그만큼 여실하게 그의 자연관을 보여주었고, 그의 세계에 내가 취했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정지용은 참 대단하다. 시인 고은은 산에 오를 때에는 전혀 꽃을 못보고 겨우 ‘내려갈 때 보았’다고 했는데, 정지용은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며 꽃, 나무, 풀, 새와 온갖 동물까지 다 꿰고 있다. 정상 정복만을 염두에 둔 산행이 아니라 천천히 여유롭게 자연과 함께한 것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미 자연과 하나가 된 영혼이어 그렇지 않았을까. 나는 한라산을 오를 때 숨이 턱에 차서 게우게우 발걸음을 디뎠기에 눈에 뵈는 게 없었는데, 이 시를 읽을수록 정지용의 그 여유가 참 부럽다. 게다가 시인이 표현해 놓은 식물과 동물들까지 내 마음의 눈에 쏙쏙 박힌다.

  ‘한라산, 백록담’은 우리 민족의 맑고 깨끗한 정기와 정신을 상징한다. 정지용 시인은 험난한 등반 과정을 견뎌내고 백록담에 오르면서 일제강점기의 부정적인 상황을 비판하고, 현실 극복 의지를 이미지즘을 빌어 현장감 넘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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